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떻게 죽을 것인가 ㅣ 아툴 가완디 ㅣ 김희정 옮김ㅣ 부키




"죽음은 실패가 아니다.

죽음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죽음이 비록 우리의 적일는지는 모르지만,

만물의 자연스러운 질서이기도 한 것이다."




누구든 태어나면 죽게 되지만 삶을 사는 동안에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이가 들어가고 기력이 쇠약해지면 그제야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누구든 호상이라고 부르는 죽음을 원한다. 수치스러운 치료를 받지 않고 화학적 치료를 받아 가며 힘겹게 삶을 연장하기보다는 그저 잠을 자다 편하게 가고 싶다고들 하나같이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의 죽음임에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일 것이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에게 바램은 있다. 애쓰고 아프다가 죽지 않고 그동안 수고했다는 위로와 편안히 죽고 싶은 안식이 있는 죽음을 바란다.



저자인 아툴 가완디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100인 중 한 명이고 외과의이기도 하다. 그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는 죽음에 관련된 많은 이야기가 등장한다. 주로 노인들의 마지막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요양원, 호스피스, 안락사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상세한 서사를 다룸으로써 노인들의 죽음이 어떠한지를 눈으로 보는 듯 생생함을 전해준다. 점점 균형을 잡지 못하고 다리에 힘이 빠지고 자꾸 넘어지며 시력과 청력을 잃고 관절염에 시달리는 노인들의 마지막은 절대로 그들이 지키고 싶은 자존심과 수치스러운 죽음만은 면하고 싶은 속내를 마주하게 된다.





부모와 자녀가 독립생활을 하게 되고 의학산업은 더욱 발전하기 시작했다. 요양원이 늘어나고 호스피스 병동이 생겼으며 이제는 위로와 안식과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려는 사람들의 욕구가 늘어가기 시작했다. 노인들은 자식들에게 의지하려 하지 않고 요양원도 기피했지만 그들은 보살핌이 필요했고 의료시스템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개인의료 서비스분야의 발전으로 삶을 더 지속 연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죽음을 목전에 둔 그들은 의료시스템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의 투병이 시작되었고 환자의 삶을 연장시키기 위해 연명치료를 하는 것에 치중된 현대의학. 그러나 정작 환자가 원하는 것이 연명치료인지는 개인마다 다르기에 저자는 현대의학이 맞춰야 할 포커스는 그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현대의학이 발전했고 인간에게 많은 혜택이 주어진 것은 사실이다. 평균수명이 늘어난 것도 이중 하나이지만 평균수명을 늘리는 것이 과연 정답인지는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호주의 최고령 과학자였던 데이비드 구달이 생각났다. 특별한 질병이 없었지만 스위스로 건너가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104세였고 적당한 시기가 되면 자유롭게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구달 박사는 더 이상의 삶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자신이 더 늙어 누군가의 보살핌이 절실히 필요한 순간을 맞이해 수치스럽고 존엄함이 박탈될 것을 염려했을 수도 있다. 인류는 오랫동안 이어져왔지만 아직까지 죽음에 대해서는 그러니까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을 선택하는 부분에서는 초보자다. 죽음은 미지의 영역이고 아직까지는 흔쾌히 반갑게 맞아줄 수 있는 관문은 아니다. 그러나 삶을 영위하는 인간은 언젠가는 죽게 되어 있고 현재는 삶만큼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정말 어떻게 죽어야 하는 것일까? 읽는 내내 아쉬움의 한탄이 이어졌고 답답하면서도 묵직한 내용의 글들은 쉽사리 내려놓을 수 없는 얘기들로 가득했다.




한 개인의 죽음은 단순하지 않고 많은 사연을 담고 있기에 의미가 있다. 죽기 직전 생의 마지막에서 아름답지 못하고 아프게 생을 마감하는 일은 환자 당사자든 가족이든 누구에게나 슬픈 일일 것이다. <#어떻게죽을것인가>, 쉽사리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지만 죽음을 앞에 둔 환자가 치료의 고통, 죽음의 공포, 남겨진 가족들의 걱정 등에서 벗어나 존엄하고 품위 있으며 편안한 죽음을 맞이한다면 우리의 행복했고 힘들었던 삶이 완성되는 일일 것이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어떻게 죽을 것인가> 꼭 한 번은 내게 올 죽음, 한 번은 진지하게 생각하고 그 진지함에 힘을 실어줄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러티브 뉴스
셰릴 앳키슨 지음, 서경의 옮김 / 미래지향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러티브 뉴스 ㅣ 셰릴 앳키슨 ㅣ 서경의 옮김 ㅣ 도서출판미래지향



"진실이 내러티브에 맞지 않을 때 뉴스는 진실을 버린다"




진실을 추구하는 일은 너무나 어려운 일일까? 어두운 곳을 조명하고 잘못된 사실을 밝히고 고쳐야 한다는 사실을 시사하며 같이 노력해야 함을 피력하는 것이 언론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언론에 오랫동안 몸담아 온 저자는 기자들이 다른 누군가가 뉴스를 설계하고 만들어내려고 시도하는 것을 잡아냈을 때 묘사하는 단어인 <내러티뷰 뉴스>를 제목으로 책을 썼다. 원제는 SLANTED(편파적인)라고 한다. 언론이 정치와 또 다른 권력과 결탁해 편파 뉴스를 뿌리는 일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오래된 이야기이고 관행된 일이다. 이제 뉴스의 진실이 묻히고 심지어 조작되는 일은 흔히 있으며 더 이상 우리가 뉴스를 통해 진실을 만나기는 어려워졌다.



이런 어려움을 정면으로 부딪치며 깨버린 사람이 있다. 바로 셰릴 앳키슨이란 사람으로 에미상과 에드워드 머로 탐사 보도상을 받았다. 업계에서 꽤나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이지만 저자는 자신이 몸담은 직장과 업계의 부패에 대해서 폭로하는 책을 썼다.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음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바로 이런 이들이 있어 진실에 한 발자국 앞서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이 책의 목적이 가장 강력한 집단들이 가장 교묘한 방법을 이용하여 만들어내는 내러티브들을 폭로하고 물리치는 것이라고 밝히며 <내러티브 뉴스>를 통해 '그래도 미래는 있다'라는 희망을 내비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이 준비한 뉴스 중 사장되었거나 조작되어 방송된 뉴스들의 사례를 하나하나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진실에서 멀어져 갔고 가짜 뉴스를 대하고 살았던 것이다. 이것이 미국 내에서 있었던 일들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얼마나 중요한 뉴스들이 사장되고 있으며 조작되었는지를 읽어내려가는 시간들은 당혹스럽기도 했고 또한 대선을 앞두고 있는 지금 책에는 트럼프의 이야기들이 많이 나와 흥미롭기도 했다. 미투(me too)는 내러티브를 이끌어내기에 아주 효과적인 무기로 사용된다고 하는 이야기나 '충격', '속보'를 제목에 붙여 관심을 끄는 모양새와 미국인들의 시각에는 한국이 전투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는 것, 특히 여론조사 그러니까 뉴스에서 나오는 통계 등을 믿을 수 없다는 저자의 얘기들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가짜 뉴스와 조작에 속아넘어가고 있는지 깨닫게 하는 시간들이었다.



저자가 들려주는 사례 등을 통해 낱낱이 밝혀지는 조작과 진실의 죽음은 우리 스스로 뉴스를 대하는 시선이 어떠해야 할지 돌이켜보는 기회가 된다. 지금은 뉴스가 들려주는 언론사의 생각이 우리에게 주입되는 세상이다. 뉴스를 보고 공정하게 생각할 힘이 없다면 우리는 모두 저자가 서문에서 말한 조지 오웰의 <#1984>속 대중과 다를 바가 없다. 진실을 알고 있을 때 우리는 통제와 조작된 진실에 넘어가지 않는다. 우리는 더 현명해져야 한다. 진실을 똑바로 쳐다볼 줄 알며 무엇이 공정한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아마 40년간 언론에 몸담았던 저자는 바로 이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 책을 썼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러티브뉴스>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된다. 누구든 쏟아지는 뉴스들 속에서 비켜갈 수 없고 더 이상 무기력하게 뉴스에 속아넘어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공정하지 못한 가짜 뉴스를 통해 세상을 잘못 보고 있다면 우리는 공정하고 진실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저자의 용기와 40년 경력이 집대성된 <내러티브 뉴스>를 통해 언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가져보자. 대선을 앞두고 정치뉴스가 넘쳐난다. 바로 지금을 뉴스를 공정하게 보기 시작하는 시점으로 삼으면 좋겠다.



내러티뷰 뉴스를 보며 움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소설 <제0호>가 생각났다. 창간되지도 않을 신문을 무기로 세력가의 욕심을 위해 존재했던 이들의 이야기. 창간되지도 않을 신문의 면들을 채울 가짜 기사들을 쓰는 기자들. 소설이지만 이쯤되면 믿을 언론이 없다는 것에 고민되는 대목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도서를 지원해주신 도서출판 미래지향께 감사드립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리커버)
글배우 지음 / 강한별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ㅣ 글배우 ㅣ 강한별




무기력한 이유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아이들이 커가면서 단절되었던 경력을 다시 연결하고자 시도했을 때 그 시도들이 물거품이 되어 나는 많이 상심했다. 무기력해졌고 생산성이 떨어진 사람이라는 생각에 참 힘들었었다. 그때 나는 지쳤고 좋아하는 게 없었다. 나이는 마흔 중반을 넘어서고 있었고 나의 고민은 점점 더 커져갔다. 경력단절의 시간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고 나름 육아에 애썼기 때문에 보람은 있었지만 나 개인의 삶에서는 암담했었다. 그럼 암담함이 책에서도 느껴졌다. 작가는 의류사업에 실패하고 "어차피 열심히 해도 안 될 테니까 최대한 웅크린 채 아무도 나에게 다가오지 않고 나도 아무에게도 다가가지 않으며 행복을 잠시 잊기로 했다"라고 썼다. 그의 심정에서 마치 내가 너무 힘들어했던 시기에 겨울잠을 자듯 웅크렸던 때가 떠올라 안타까웠다. 젊은 나이에 사업의 실패란 마치 인생의 실패로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그 실패를 나름의 방법으로 이겨내고자 애쓴 작가의 노력들이 배어 나오는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는 읽기에 부담 없이 하지만 진정성 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누군가의 성공과 누군가의 실패의 이야기는 쉽게 읽히는 내용들은 아니지만 작가의 잔잔한 필체의 성공과 실패의 이야기 그리고 그것들이 가져다주는 마음이 상처와 성장의 흔적들은 아파본 사람들은 알아챌 것이다.



진로를 고민할 때나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때 누구나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생각한 적이 다들 있을 거다. 나는 딱히 끌리는 게 없었기 때문에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뭔지 생각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답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도대체 나란 사람은 어떻게 좋아하는 것도 뭘 잘 하는지도 모르는가라는 결론에 슬펐던 기억이 많다. 지금도 그렇다. 평생 뭘 좋아하고 잘하는지 잘 모르겠다. 내게는 다 고만고만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열심히 살았던 기억은 있다. 좋아서 한 일도 아니고 잘해서도 아니었다. 단지 내 앞에 놓인 일이었기 때문에 그저 옆을 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렸다. 그래서 뒤돌아보았을 때 열심히 했던 그 순간을 떠올리면 나 스스로도 대견하고 뿌듯하다. 하지만 다시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 나는 여전히 열광할 만큼 무언가를 좋아하는 게 없다. 그래서 책 제목을 보았을 때 내 마음이 담겨 있어 훅 호기심이 일었고 반가웠다.



우리가 힘들 때 가장 큰 위로가 되는 것은 바로 '알아주는 것'이다. '힘들었겠다' '아팠겠다' 이런 말들이 구구절절 논리적인 분석보다 나의 마음을 알아줄 때 위로받음에 눈물이 또르르.... 흐르게 된다. 바로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는 그런 위로의 말들이 담겨있다. 더 나아가 "전부를 알 수 없지만 성공과 실패에 상관없이 당신이 노력한 시간을 존경한다"라는 작가의 말이 내게는 참 위로가 되었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만큼 좋은 이가 없고 그런 기쁨이 없다. 그런데 내가 노력한 시간을 존경한다는 말은 위로와 기쁨을 넘어 힘들었던 내 인생이 그리 초라하지는 않다고 훌륭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인정받는 느낌이 든다. 바로 이 맛에 우리는 글배우의 글을 읽어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 아닐까 싶다. 만약 지금 하는 일이 잘 안되고 위로가 필요하거나 자존감이 낮아졌거나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다고 생각된다면 글배우의 <지쳤거나 좋아하는게 없거나>를 읽어보라. 부담없이 편안히 읽을 수 있는, 당신을 위로할 글들이 가득하다. 코로나로 인해 하루 확진자가 어마어마한 숫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새로운 임인년은 좀 더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있을지 모른다. 도전하기 전에 마음을 다스릴 책이 필요하다면 지금 읽어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도서를 지원해주신 강한별 출판사께 감사드립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마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21년 12월
평점 :
품절




소마 ㅣ 채사장 ㅣ 웨일북




"잘 다듬어진 화살은 궤적 위에서 방향을 틀지 않는다.

올곧은 여행자는 자신의 여정 중에 길을 바꾸지 않는다.

소마는 잘 다음어진 화살이고 올곧은 여행자다.

언젠가 삶의 여정 어딘가에서 길을 잃을 때도 있을 게다.

하지만 소마는 다시 본래 자신의 길을 찾게 될 거다.

걱정의 시간도 후회의 시간도 너무 길어질 필요는 없다.

아버지의 말을 명심하거라."




작가는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시리즈를 펴낸 사람이다. #베스트셀러였던 책으로 읽은 후 지금까지 좋은 느낌으로 남아 있다. 작가의 방대한 지식에 놀라기도 했던 책이었는데 인문 교양 도서를 썼던 작가가 이번에는 소설을 썼다기에 조금 의외였다. 인문 교양 도서를 썼던 사람이면 픽션인 소설에서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뭘까 싶었고 어떻게 풀어나갈지, 분위기는 어떨지 상당히 궁금해졌다. <#소마>는 주인공 이름이다. 소마라는 인물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는 <소마>를 펴내며 작가는 이런 말을 했다. "언제나 알고자 했던 것은 인간이었다. 세상의 모든 나라는 존재는 어디에서 오는가. 무엇을 하고, 어디로 가는가. 인문학을 쓰며 나는 인간을 알게 되었고, 소마의 인생을 따라가며 나는 인간을 사랑하게 되었다." 작가는 인문 교양 도서를 쓰며 인간을 알게 되었고 자신이 만들어낸 인물을 통해 인간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한 작가의 말이 내게도 궁극적인 물음을 갖게 했다. 인간이란 무엇이고 무엇을 추구하며 더 나아가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물음을 갖게 했다.



태어나던 날 젊어서는 세상을 호령하고 늙어서는 깨달음에 이른다는 신탁을 받은 아이 소마는 어느 날 모든 것을 잃었다. 마을은 폐허가 되고 부모님은 돌아가셨다. 괴로움에 스러져가던 소마를 기독교 가문의 한나의 남편이 거둔다. 마침 아이를 잃은 한나는 소마를 마치 친자식처럼 기른다. 하지만 한나의 오빠인 바가렐라가 자신의 막내아들인 헤렌을 한나에게 양자로 주며 소마는 노예도 아닌 아들도 아닌 채로 보살핌 없이 청년이 된다. 헤렌으로부터 핍박을 받던 소마는 생각 끝에 군에 입대하고 얼굴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주 기사단장에게 곤혹스러운 훈육을 당한다. 왕립기사단의 일원인 네이케스와 고네 남매로부터 소마는 모임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게 된다. 그들은 당시 마녀사냥을 돈벌이로 이용하는 이들에게서 사냥감을 구출하는 일을 하고 있었고 소마도 그 일에 가담하게 된다. 그리고 고네와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 소마. 그러나 소마는 곧 고네와 너무나 슬픈 이별을 맞이한다. 그로부터 20년 후 소마는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게 되는 전쟁의 화신이 되어 나타난다.



소마라는 인물은 어린 시절 사랑에 결핍되고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로 자라는 인물이다. 상처를 받아도 표현하지 못하고 늘 무표정한 얼굴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마음이 닫힌 소마. 그런 소마의 옆에는 욕망과 집착으로 똘똘 뭉쳐진 인물들이 많다. 순수하고, 옳은 일을 행하는 착한 이들도 많지만 자신의 뜻을 이루고자 다른 이가 나서도록 선동하다 해가 될 듯하면 가차 없이 배신하고 마는 그런 인물들이 소마가 권력을 잡은 뒤에는 더 많아진 듯하다. 소마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인지라 권력을 잡은 후 변해간다. 그도 인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평범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런 모습에서 안타까움과 슬픔이 일었다. 작가는 <소마>에서 신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 아니다. 인간이기에 나약하고 어쩔 수없는 모습들을 소마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주고 있기에 같은 인간으로서 안쓰러운 마음이 컸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욕구충족을 향해 달려가는 개체에 지나지 않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소설이 아닌가 싶다. 몰입감 있고 스케일이 큰 이야기로 작가의 소설은 처음이지만 작가다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마>를 읽으며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고 하면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근육과 뼈를 깎는 고통을 주고 몸을 굶주리게 하고 생활은 빈곤에 빠뜨리고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한다」 는 맹자의 글이 생각나기도 했고 승려 조신의 삶을 한바탕 꿈으로 살아낸 배창호 감독 안성기, 황신혜 주연의 영화 <꿈>도 생각이 났다. 맹자의 말이 생각났듯 녹록지 않았던 소마의 삶에서 무엇이 인간을 욕망으로 치닫게 하는지 생각해 본다. 사랑, 핍박, 복수, 집착, 욕심, 질투, 증오란 감정들이 소마의 전 생애를 통해 스토리와 함께 읽혔다. 책을 덮으며 시대와 배경 그리고 성별은 다르지만 소마라는 인간의 일대기는 인간이 살면서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감정과 스토리를 모두 담고 있지 싶다. 글을 마무리하며 인간의 삶은 한바탕 꿈일 수도 커다란 성장과 깨달음을 가질 수도 있는 야누스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
에리카 산체스 지음, 허진 옮김 / 오렌지디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 l 에리카 산체스 l 허진 옮김 l 오렌지D




"온종일 요리하고 청소하는

순종적인 멕시코 아내가 되느니

차라리 노숙자로 살고 말지."



멕시코 이민자인 에리카 산체스의 자전적 이야기인 <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는 미국 내에서 차별받는 이민자들과 그 2세의 성장이야기를 잘 드러내고 있다. 전미문학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11개월 연속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였던 이 작품은 영화화되기도 했다고 한다. 작가는 괴짜 소녀였다고 하는데 주인공인 훌리아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 그래서인지 훌리아의 자유롭고 거침없는 말투와 자신이 원하는 바가 뚜렷해 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아직 어린 소녀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노력하는 모습과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고민하는 모습이 예쁘게 느껴졌다. 당당한 훌리아가 점점 성장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다른 소녀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된다.


이민자들의 삶, 그들의 이민 과정 등이 억지스럽지 않게 비치고 가족들의 애환에서 이민자들의 아픔을 새롭게 알 수 있었고 그 아픔은 훌리아의 성장기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녀가 성장하는 모습은 나라와 언어를 떠나 성장기의 청소년들이 비슷하게 겪는 성장통인 듯하다. 진실을 받아들이며 아프지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같은 것이라고 하고 싶다.




훌리아는 멕시코에서 건너 온 이민자 가정의 소녀로 언니인 올가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소유자다. 언니 올가는 요리 잘하고 얌전하고 순응하는 딸이지만 훌리아는 까다롭고 제멋대로인 열다섯 살의 소녀이다. 친구들로부터 잘난 척한다는 얘기를 종종 듣기도 한다. 언니 올가의 죽음으로 집 안은 온통 우울한 기운으로 넘쳐나고 엄마는 이제 하나 남은 훌리아를 더욱 멕시코 딸로 키우려는 듯하다. 실수나 잘못을 하는 경우에는 외출금지 등으로 훌리아의 손발을 묶어 놓는다. 그러나 훌리아는 올가의 죽음이 영 석연치 않아 올가의 죽음에 어떤 비밀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훌리아는 자신을 예뻐해 주고 말이 잘 통하는 미국인 남자친구를 사귀게 된다. 그를 통해 조금 더 성장하게 되고 언니 올가의 죽음에 한 층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드디어 올가가 가족과 주위가 생각하는 평소의 올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주한 진실을 훌리아는 부모님께 말씀드려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데...




멕시코 이민자인 훌리아의 부모는 꽤 보수적이다. 딸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듯하지만 세상에 나아가기보다는 가정에 안주하기를 바란다. 또한 영어보다는 스페인어를 자주 쓴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2세들은 부모들이 그들의 문화를 지키려는 고집 때문에 세대 간의 갈등을 피할 수가 없다. 미국에 살면서도 미국보다는 멕시코에 가까운 삶을 사는 그들에게는 성장통이 훨씬 더 하지 싶다. 특히 늘 언니인 올가와의 비교로 인해 훌리아는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고 지켜나가기가 더욱 어려운 듯 보인다. 훌리아와 부모님과의 대화에서 나라와 언어를 떠나 기성과 신세대의 갈등은 똑같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마치 예전의 나의 모습을 보는 듯도 했고 현재 내가 아이들과 겪는 갈등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부모보다는 자녀의 입장에서 성장기를 바라볼 수 있었던 <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는 현재 성장통을 앓고 있는 자녀가 있다면 부모가 읽어보기 좋을 듯하다. 자녀의 입장이 어떤지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완벽하지 않아도 믿음으로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듯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도서를 지원해주신 오렌지D출판사께 감사드립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