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러티
콜린 후버 지음, 민지현 옮김 / 미래지향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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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러티 ㅣ 콜린 후버 ㅣ 민지현 옮김 ㅣ 미래지향





지금도 그녀를 잘 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자서전을 쓴 그 베러티는 알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자기가 아는 걸 쓰는 거니까.

베러티가 악당의 관점에서 글을 쓰는 건

그녀가 악당이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녀의 내면 자체가 만약 사악함으로 가득하다면.





우리가 공포영화를 볼 때 아직 공포스러운 장면이 나오지 않았음에도 계속 긴장하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 긴장감의 발로는 갑작스러운 공포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서이며 감독이 어느 지점에 공포스러운 장치를 넣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번에 만난 <#베러티>가 내게는 잊혔던 그 긴장감을 느끼게 했다. 어디서 만나게 될지 모를 공포로 도입 부분부터 이야기가 끝나가는 결말 부분까지 계속된 긴장감은 반전을 만나 증폭되고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도 여운이 계속 남아 책을 덮었지만 내 마음은 덮을 수가 없었다.



작가 로웬은 출판사 에이전시와 새로운 출판 제의를 받은 출판사와의 미팅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건널목에서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사망자의 피를 뒤집어쓰게 되고 어디선가 나타난 남자의 도움으로 로웬은 남자의 셔츠로 갈아입고 미팅 장소에 도착한다. 그런데 미팅 장소에서 다시 만난 그 남자는 유명 작가 베러티의 남편으로 베러티가 마무리하지 못한 시리즈의 뒷부분을 의뢰한다. 거액의 금액과 함께. 교통사고로 누워있는 베러티. 공동 작가로 그녀를 지목했고 그녀는 제의를 받아들여 작품에 대한 기록을 취합하기 위해 베러티 부부의 집을 방문한다. 작업 중 발견한 베러티의 자서전에는 그들 부부의 연애사부터 쌍둥이 딸들의 죽음과 그녀의 교통사고에 대한 이야기까지 담겨 있었는데 그 내용이 너무나 충격적이었으며 로웬은 베러티를 사이코패스로 규정한다. 베러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제레미와 사실을 알리고 싶은 로웬. 한 편 로웬은 제레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그때부터 '이상함'을 감지한다.



출간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고 '미국과 유럽을 사로잡은 마약 작가'라 불리는 콜린 후버는 '이해할 수 없는 설정도 이해하게 만드는 필력'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는데 작가로서 받을 수 있는 특급 칭찬이 아닐까. 심리 스릴러 작품이다 보니 등장인물들의 심리에 주목하게 되는데 생각보다 잘 읽혔다. 보통 서양의 책들은 우리의 정서와 다르기 때문에 캐릭터들의 심리나 대사가 공감되지 않아 잘 읽히지 않는다. 생각의 구조가 다르다고 해야 할까? 등장인물들의 생각이 잘 흡수돼야 하는 것은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나아가 작가의 의도까지 파악하는데 중요한 베이스가 되기 때문에 이질감이 없이 읽힌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책을 읽기 전부터 아마존 차트 역주행의 도서라기에 기대감이 높았다. 기대감이 높으면 실망하는 경우도 더러 있는데 <베러티>는 그 실망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나를 가격하는 타격감에 밤을 지나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각에 나는 콜린 후버라는 작가를 주목하게 된다. 앞서 말한 잘 읽히는 문장들과 처음부터 주어지는 묘한 긴장감, 로맨스를 절묘하게 그려내기로 유명한 작가의 장기가 특히나 돋보인다. 여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몽유병, 제러미의 아들 크루의 눈빛과 말, 베러티의 간호사의 태도 등으로 베러티에 대한 의혹이 커갈수록 로웬의 두려움은 증폭되고 독자 또한 의문을 품게 된다. 왜 베러티는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되었을까 하는. 그리고 마주한 슬픈 결말과 작가가 던져 준 충격적인 반전은 진실과 거짓의 두 가지 관점으로 나뉘어 생각할 수 있다. 바로 이 관점 때문에 <#베러티>가 역주행하고 있으며 "읽고도 끝나지 않는 소설"이라는 별칭을 가지게 되었다. 진실의 분별, 진실이 왜곡된 현실, 묻히는 것은 진실이냐 거짓이냐는 독자의 몫이 된다. 나는 아직 로웬의 심리상태와 동일선상에 있고 가시지 않는 여운은 좋은 작품을 만났을 때 경험할 수 있는 것이라서 누군가 심리 스릴러 작품을 찾는다면 단연코 추천해 주고 싶다. 폭염의 여름밤에 읽기에 그만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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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걷는 자의 독백
정기태 지음 / 감커뮤니티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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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걷는 자의 독백 ㅣ CELESTE. C 정기태 ㅣ 감커뮤니티







사랑은 표현해야 알아.

I know love has to be expressed.




<#시간을 걷는자의독백>은 공간디자이너인 셀레스테 정기태 작가의 아트북이다. 아트북은 처음이라 설레기도 했고 조금 낯설기도 했다. 그래서 보는 내내 호기심이 솟구치고 떨리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마치 젊은 시절 소개팅 자리에서 만난 호감 가는 상대방에게 느껴지는 감정이랄까?


작가는 공간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활동하다가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를 만드는 데 그 새로운 시도의 산물이 바로 <시간을 걷는 자의 독백> 속 캐릭터들이다. 출판사의 정보에 따르면 마고(MAGO), 보보(BOBO), 토비(TOBY)의 이름을 가진 그 캐릭터들은 어디선가 본 듯한 친근함을 가지고 있다. 측은하기도 하면서 슬퍼 보이기도 하지만 자신에게 솔직하다. 때론 사랑에 약해지는 모습은 연민스럽지만 꽤나 예쁘기도 하다.


작가의 첫 마음은 동심인 듯하다. 동심으로 대변되는 콜라. 어릴 적 콜라를 처음 맛보고 느꼈던 그 놀라움과 맛이 전해주는 행복감은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곧 마주한 그의 전쟁에 대한 두려움, 슬픔, 우려 등은 갑작스러운 대비 감 때문에 주춤하기도 했다. 고통으로 신께 기대고 싶은 인간의 나약함, 인간의 욕심이 빚어낸 역사의 전쟁 속에 별이 된 이들을 추모하고 사랑을 그리며 외로워하고 인류애를 품고 신께 기도하는, 무한적인 충성과 사랑을 주는 반려견과의 일상, 그저 그렇게 소소한 일상 속의 행복을 얘기하는 그림들은 우리 인류의 이야기를 모두 담고 있는 듯하다.




의인화된 캐릭터들을 통해 듣는 사랑, 동심, 가족, 신, 전쟁 등의 이야기는 인간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긴 텍스트로 만났던 이야기들은 긴 터널을 지나 결론을 알게 되지만 아트북은 고속도로를 통과하는 느낌이랄까? 그 속도감과 동시에 주변의 나무들과 새들의 지저귐까지 들러리로 협공하니 아트북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캐릭터의 정체성을 읽어내는 과정도 새로운 경험으로 흥미로웠는데 짧지만 함축적이면서 가볍지 않은 의미를 담은 글 밥들도 다시 한번 읊조리게 하는 힘이 있었다. 글과 그림의 콜라보가 이렇게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것은 작가의 생각이 보는 이로 하여금 공감되게 만드는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보며 아쉬운 생각이 든 건 건 캐릭터들에 대한 설명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각각의 캐릭터가 지니는 정체성을 더 알고자 하는 충족의 욕구를 채우고 싶어진 거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을 보며 그 캐릭터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은 내가 작가에게 제대로 낚인 증거가 아닐까?






멍이 든 듯하고 상처가 있으며 슬픔을 삼키는 듯한 연필 드로잉의 캐릭터가 책 표지인 <시간을 걷는 자의 독백>은 내가 텍스트에 길들여진 사람이었다는 생각과 함께 그림이 전해주는 것이 이렇게나 여러 갈래의 느낌일 줄은 몰랐다. 설명이 없는데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그림이면서 이것이 바로 예술이구나라는 새삼스러운 생각에 놀라웠다. 설명이 없는 그림들, 그리고 툭 던져지는 생경스러운 글 밥이 주는 느낌은 작가의 마음을 알고자 들어선 미로 같기도 했다. 이렇게나 예술에 문외한인 나를 탓하면서 슬퍼지기도 했다가 때론 웃기도 했다가 때론 심각해지기도 했던 <시간을 걷는 자의 독백>은 얇지만 작가의 시간과 감정 그리고 가치관까지 모두 담긴 무거운 예술이라는 이름을 가진 삶에 다르지 않았다.


누군가의 생각을 만나는 통로는 글이 될 수도 있고 그림이 될 수도 있다. 또 다른 매체가 될 수도 있다. 어떤 통로가 되었든 누군가의 생각을 만나는 과정은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새로운 경험이 된다. 그 새로움은 마치 잊혔던 어느 옛날의 기억일 수도 있고 아직 만나지 못한 인연이 될 수도 있겠다. 이 모든 것은 삶이 다양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 아름다움의 한 조각 아트북을 만났다.








*본 도서의 리뷰는 소정의 원고료와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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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생의 찬미 1~2 - 전2권
서자영.강헌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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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찬미 ㅣ 서자영·강헌 ㅣ 고즈넉이엔티




"그녀는 총명했고 호기심이 많았으며 거침이 없었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고, 허세도 없었다. 단지 그녀는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것만이 중요했다. 남들의 수군거림이나 그 장소의 숨은 의미 같은 건 그녀에겐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었다. 아마 그녀의 삶에 '경계' 같은 건 없을 것이다. 아니 경계가 뭔지도 모를 것이다. 단지 제가 원하면, 그뿐이었다. 제가 하고 싶으면, 그게 전부였다. 행동에 스스럼이 없었으나 천박하거나 저열하지 않았다. 아니 그런 기준이나 잣대는 심덕에겐 하등 쓸모없는 것들이었다. 심덕은 다른 차원에서 존재했다. 세상의 언어로 그녀를 단정 짓는 것은 오만이었다."(생의 찬미1 354p)




'사의 찬미'로 유명한 윤심덕은 김우진과 함께 배를 타고 바다에서 사라졌다. 사람들은 둘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비관해 죽음을 선택했다고 생각했고 윤심덕이 죽기 직전에 녹음한 '사의 찬미' 앨범이 그들의 죽음 후에 발매되자 그 판매량이 대단했다. 덕분에 미미하던 축음기의 판매마저 덩달아 올랐다. 그런데 윤심덕과 김우진이 배 위에서 바다로 뛰어들며 맞이한 죽음이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이 새롭게 떠오른다.



부산으로 향하던 관부연락선 도쿠주마루에서 뛰어내린 둘을 봤다는 증언과 그들이 쓴 승선 명부의 이름(김수산과 윤수선) 그리고 객실에 남아 있던 가방만으로 김우진과 윤심덕이 情死했다고 단정지었던 것인데 배 안에는 그 둘이 원래 없었고 유서가 없었으며 당연히 시체도 발견되지 않았다. 더구나 그 둘을 아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말하길 둘은 결코 내연의 관계가 아니라는 점과 죽음 이후 유럽으로 도피했다~ 이탈리아에서 잡화점을 하는 동양인이 바로 그들이었다~ 하는 소문이 꾸준히 있어 그 둘이 살아있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게 된다. <#생의찬미>는 윤심덕과 김우진이 살아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쓴 작품이다.



교회에서 알게 된 광혜여의원의 책임자인 외국인 홀을 통해 심덕은 영어를 배웠고 의사가 되는 조건으로 홀에게 학비를 지원받아 평양여고보에 진학한다. 의사가 되는 것이 싫었던 심덕은 1년 후 음악을 하고 싶어 경성여고보로 진학하고 졸업 후 지방의 음악선생으로 근무한다. 그러나 타고난 재능이 있고 야심이 컸던 심덕은 졸업하지 않은 평양여고보 동창회에 참석해 학무국장을 만나 관비유학생을 뽑는 시험이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고 시험에서 1등을 한다. 동경의 아오야마학원에서 공부하게 된 심덕은 일본 귀족출신인 테츠와 사랑에 빠진다. 테츠는 심덕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심덕과 영원을 꿈꾸었다. 지극한 사랑을 받았고 청혼도 받았으나 심덕은 테츠를 버리고 조선으로 와서 무대에 오른다. 그녀는 조선의 첫 소프라노 가수를 꿈꾸었다.



추측과 소문으로만 나돌던 이야기들이 가능성이라는 명제를 부여받아 윤심덕과 김우진의 죽음이 '기획'에 불과하다는 설정은 꽤나 흥미롭다. 등장인물들의 개연성 넘치는 서사와 함께 꽤 탄탄하게 뿌리를 만들고 있다. 당시 시대적 상황으로 볼 때 워낙 센세이셔널한 사건이었고 아직까지 사실 여부를 알 수 없기에 궁금증을 자아내는 그들의 정사 이야기는 그들이 조선시대의 엘리트들이었고 만약 살아있다면 조선의 문화수준의 위상이 꽤 높아졌을 기대가 있기에 그만큼 그들의 죽음이 주는 상실감이 꽤 컸어야 하는데 오히려 몰래 한 사랑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 그리고 그들이 결국 죽음으로 사랑을 관철하려 했다는 점에만 초점이 맞춰진, 덧붙여 음반과 축음기의 발매로 상업적인 이슈로 마무리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작가의 글쓰기 시도로 조금은 위로가 되는 마음이다.




심덕이 언제나 최선을 다해 사랑했던 생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죽음에 배팅하기로 결심했다.

생과 사는 정반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백지장처럼 맞닿아 있었으므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생은 곧 사였고 사는 곧 생이었으니,

생에서 얻지 못했을지라도 사에서는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다.




동아일보 기자인 남상철의 조사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조선사회의 사회적 분위기, 지역 분위기에 대해 꽤 디테일하게 그리고 있다. 윤심덕이 자유연애주의자로 홍난파와 이용문, 김우진 등과 연애를 했다고 하는데 윤심덕의 입장에서 본 그들과의 관계, 그녀에게 있어 사랑의 의미와 일본인 테츠와의 사랑 이야기가 흥미진진했다. 무서울 만큼의 집착도 보이고 그러면서도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일본인 남자 테츠의 사랑과 순수하면서도 우직하고 강한 남상철의 사랑을 그리고 있는데 정작 죽음의 동반자였던 우진과의 사랑은 다루고 있지 않다.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 인물마다의 시선과 캐릭터가 잘 그려져 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미스터리한 죽음일수록 호기심과 궁금증이 크다. 그 호기심과 궁금증에 적당한 대가를 돌려받은 듯해 만족스럽기도 하다. 이야기 속에는 관동대지진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된다. 조선인학살사건에 대해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아쉬웠던 건 생에 대한 집착이 컸고 무대위에 오르는 것을 갈망했던 그녀가 모종의 기획을 수용했다는 작가의 의견은 조금 부족하다는 개인적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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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이징 브루클린
제임스 맥브라이드 저자, 민지현 역자 / 미래지향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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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이징 브루클린 ㅣ 제임스 맥브라이드 ㅣ 민지현 옮김 ㅣ 미래지향




"이제 알겠구나. 내가 왜 너를 죽이려고 했는지. 너의 부모는 너를 위해 선을 이루는 삶을 선택하지 않았지. 난 너의 삶이 나처럼 또는 나의 헤티처럼 슬픔에 젖어 부두에서 끝나는 걸 원치 않았어. 나는 이제 내 인생의 마지막 시월에 서 있다. 사월을 다시 맞이할 수 있을지 몰라. 나 같은 늙은이가 선한 인간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옮은 것처럼, 너도 좋은 청년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게 옮아. 내가 기억하는 강하고 멋있고 영리한 청년으로 말이야." (p. 430)



때는 1969년, 파이브엔즈 침례교회의 집사인 쿠피는 마약 중개업자인 열아홉 살 딤즈 클레멘스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쿠피 즉 스포츠코트를 신고하지 않았다. 위장근무 중인 경찰도 당사자인 딤즈마저도 그를 신고하거나 그에 대해 사람들에게 분노를 터트리지 않았다. 왜일까?


아내를 잃고 맹인인 아들과 살아가는 스포츠코트는 커즈하우스 단지의 파이브 앤즈 교회 집사이면서 야구 코치이기도 하다. 교회에서 어릴 적부터 야구를 가르친 딤즈를 스포츠코트는 죽이려 총을 쏘지만 다행히도 귀를 한쪽 잃는 부상으로 목숨은 건진다. 딤즈의 할아버지는 스포츠코트의 친구였기에 딤즈는 왜 자신을 죽이려 했는지 궁금해하면서도 할아버지 때문에 참는다. 딤즈는 스포츠코트가 본 누구보다도 훌륭한 투수가 될 아이였지만 어느 날 마약중개상이 되어버리고 스포츠코트는 점점 술이 없이는 견딜 수 없는 알코올중독자가 돼버린다. 그리고 2년 전 죽은 아내 헤티와 늘 대화에 빠져있다. 사건을 해결하려고 탐문조사를 하는 경찰은 주민들의 척박한 삶을 맞닥뜨리며 그들에게 날카로운 행정의 잣대를 들이대지 못한다. 자신이 딤즈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스포츠코트. 그리고 마약 조직이 마수의 손길을 뻗게 되며 커즈하우스는 긴장하게 된다.



브루클린은 치안이 탄탄한 안전지역이기도 하고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어 젊은 세대에게 각광받는 지역으로 변모한 듯하다. 하지만 책에서의 1969년은 유색인과 부두 노동을 하기 위해 건너온 이탈리아인들, 라틴계 이주민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스포츠코트라는 인물이 내용의 중심에 있는데 이 인물도 흑인이고 그를 둘러싼 이웃들이 모두 흑인이며 경찰은 백인, 이탈리아 제노아 출신 등이 등장한다. 책에서 알 수 있듯이 한마디로 표현될 일이 아니지만 흑인들은 타인으로부터 존칭인 '씨'도 붙이지 않은 채 호명된다. 그 외의 것들은 말할 것도 없이 아무것도 없는 땅에 싸구려 아파트를 짓고 교회를 짓고 청소를 하고 정원 관리사로 일하는 등 허드렛일을 하며 그들은 그들의 삶을 연명해 왔다. <#어메이징브루클린>은 바로 그들의 이야기다. 슬픔과 의혹, 척박한 환경 속에 불운까지 겹치고 생사의 문제에 마약까지 개입된 그들의 삶은 악순환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운명들이었다.



경찰로부터 스포츠코트를 보호하려는 핫소시지, 딤즈로부터 벗어나 성공하려는 딤즈조직의 일원, 마약조직으로 성장하려는 조 펙, 커즈하우스 단지에서 자리를 잡았지만 절대 마약은 손대지 않는 엘레판테, 이야기의 열쇠를 쥐고 있는 폴 자매, 교회 목사의 부인인 지 자매 등등 아주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고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커즈하우스의 주민들은 모두 구구절절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서로의 아픔의 역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서로에게 믿음과 신뢰가 있었고 또 하나의 사건으로 커즈하우스에 큰 혼란을 가져다주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그들의 가족 같은 끈끈함으로 아름답게 결말을 내는 것에서 아름다운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슬픈 엔딩도 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 인생을 멀리서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면 웃으며 인생의 슬픔을 견디어 낼 수 있겠다는 희망을 주는 말이다. 브루클린의 그들도 인생을 멀리서 보았을까. 그들의 삶은 힘들었지만 슬픔을 받아들이며 이겨내며 웃음을 잃지 않았다. 책이 꽤 두껍기도 하고 그들의 지난한 삶과 많은 등장인물에 조금은 내용의 맥을 잡기 힘들기도 했지만 뒤로 갈수록 소리를 내어 웃기도 하고 따뜻한 이야기에 감동을 받게 된다. 인간의 삶은 역시 어메이징하다는 생각에 책 제목에 공감이 된다.



작가인 제임스 맥브라이드는 1996년 어머니와 가족에 관한 에세이 <컬러 오브 워터>롤 출간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고 <어메이징 브루클린>은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 최고의 소설 TOP 10, 뉴욕타임스 2020년 최고의 도서 TOP 10, 오프라 윈프리 2020 북클럽 선정 TOP 20, 버락 오바마 선정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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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활인 상.하 - 전2권
박영규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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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인 ㅣ 박영규 ㅣ 교유서가




"대군께서는 어떤 사람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람을 살릴 사람이 왕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사람을 죽이는 사람이 왕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그거야 당연히 사람을 살릴 사람이 왕이 되어야 하겠지요."

"그러면 대군께서 정치를 하신다면 활인의 길을 택하겠습니까? 살인의 길을 택하겠습니까?"

"그것도 물론 활인의 길을......"




때는 이방원이 왕좌를 차지하고 양녕대군이 몹쓸 짓을 일삼고 있을 당시로 역병이 돌았다. 역병잡이 승려라고 소문 난 탄선은 서활인원의 수장으로 승려, 무녀들과 함께 역병치료에 힘쓰고 있었다. 역병의 특징을 정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대응 수칙을 세우려고 애를 썼지만 쉽게 대응책을 세울 수가 없었다. 역병으로 죽은 시신들을 파묻던 중 한 시체를 두고 역병이 아닌 살해당한 사람이라고 우기는 오작인(지방관아에 속하여 수령이 시체를 임검할 때에 시체를 수습하는 일을 하던 하인)이 있었는데 오작인의 설명을 들은 탄선은 그를 일개 오작인으로 치부하지 않고 의원으로 키우기로 한다.


그 오작인은 노중례라는 이로 나장들과 함께 사체로 발견된 궁녀의 사인을 밝히지 못해 무녀의 딸인 서활인원의 의녀 소비의 도움을 받는다. 그 소비는 탄선의 제자였다. 노중례는 소비의 설명을 듣고 깜짝 놀란다. 노중례에게 오작의 일이란 생업을 뛰어넘는 의미였는데 너무나 쉽게 밝힌 궁녀의 사인으로 자신이 아직은 멀었다고 자책한다. 한 편 소비는 충녕대군의 아기씨, 훗날 문종이 되는 ' 향'의 치료로 심 씨 부인과 충녕대군의 인정을 받는다. 탄선과 노중례, 노중례와 소비, 소비와 충녕대군. 앞으로 그들의 만남은 어떻게 이어질지...




세계가 감탄했던 대한민국의 방역시스템은 아마 IT강국이면서 위생에 대한 높은 의식수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지만 긴 병에 효자 없듯 긴 역병으로 인해 국민들은 방역에 지쳐가고 함께 몰락하는 경제로 인해 더욱 타격을 입은 상태이다. 우스갯소리로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걸러진다고들 하고 형식적인 만남이나 의식들이 줄어가고 있는 듯 하지만 일상생활을 해야하는 국민들과 무서운 속도로 전염되는 오미크론으로 인해 의료시스템과 관계자들이 부족하고 많이 지친 상황이다. 이런 때에 작가는 '활인'이라는 화두를 건넨다. 의미 있고 좋은 책을 출간하는 출판사로 알고 있는 교유서가에서 '실록사가'라는 찬사를 받는 작가 박영규의 <활인上下>가 출간됐다.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시리즈'의 작가인 박영규의 <#활인>은 현재 공중파에서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이야기와 함께 보면 좋을 듯하다. 드라마를 보면서 태종 때문에 화가 나는데 <활인>에서 충녕대군이 왕위에 오르고 그의 '활인' 정치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어 속이 편해진다.



주로 역사에 대해 저술했던 박영규의 <활인>은 승려 탄선과 의녀 소비, 그리고 태의 노중례를 등장시켜 역병을 대하는 의료진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도서이다. 역병을 연구하는 탄선은 역병이 도는 곳이라면 마다않고 찾아가 그 특징을 잘 살펴 대응책을 편다. 백신도 없고 항생제 하나 없지만 대책을 세우고 방역에 임하는 모습은 꽤나 체계적이다. 거기에 환자들의 병증과 그에 해당하는 치료법, 침과 뜸의 사용법, 각 약재의 쓰임, 의술서 등의 등장으로 작가가 역사 뿐만 아니라 의술에도 능통한 이로 생각된다. 부족한 사료에도 작가는 실제 인물의 남겨진 업적만으로 캐릭터를 만들고 충분한 개연성을 갖춘 에피소드를 선보인다. 이것이 역사 소설의 매력일 것이다. 실제 인물인 충녕대군, 승려 탄선, 태의 노중례, 의녀 소비 등의 등장만으로도 이야기가 탄탄할 것이라는 기대에 그들이 보여주는 의술과 사연들은 역사소설의 개연성이 멋지게 살아난다.



승려 탄선은 제자 노중례와 의녀 소비에게 원수가 병든 몸으로 누워있다면 그를 살릴 것인지 죽일 것인지 묻는다. 노중례와 소비는 각자의 원수들을 치료할 상황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바로 이 질문은 탄선이 두 사람에게 의원이 갖춰야할 덕목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물은 것이지만 사실은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더불어 왕좌에 오르기 위해 많은 이의 목숨을 앗은 태종의 아들인 충녕대군에게 활인이냐 살인이냐를 물으며 앞으로 그의 정치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 것은 정치 또한 근본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일, 바로 활인의 큰 의미를 전하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숨겨져 있는 듯하다. 잡으면 놓을 수 없는 재미와 전개에 푹 빠지게 하는 <#활인>, 박영규의 다른 역사소설이 궁금할 만큼 재미지다. 단, 역사소설을 읽을 때는 꼭 어디까지가 역사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인지 독자가 필터링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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