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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걷는 자의 독백
정기태 지음 / 감커뮤니티 / 2022년 4월
평점 :
시간을 걷는 자의 독백 ㅣ CELESTE. C 정기태 ㅣ 감커뮤니티
사랑은 표현해야 알아.
I know love has to be expressed.
<#시간을 걷는자의독백>은 공간디자이너인 셀레스테 정기태 작가의 아트북이다. 아트북은 처음이라 설레기도 했고 조금 낯설기도 했다. 그래서 보는 내내 호기심이 솟구치고 떨리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마치 젊은 시절 소개팅 자리에서 만난 호감 가는 상대방에게 느껴지는 감정이랄까?
작가는 공간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활동하다가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를 만드는 데 그 새로운 시도의 산물이 바로 <시간을 걷는 자의 독백> 속 캐릭터들이다. 출판사의 정보에 따르면 마고(MAGO), 보보(BOBO), 토비(TOBY)의 이름을 가진 그 캐릭터들은 어디선가 본 듯한 친근함을 가지고 있다. 측은하기도 하면서 슬퍼 보이기도 하지만 자신에게 솔직하다. 때론 사랑에 약해지는 모습은 연민스럽지만 꽤나 예쁘기도 하다.
작가의 첫 마음은 동심인 듯하다. 동심으로 대변되는 콜라. 어릴 적 콜라를 처음 맛보고 느꼈던 그 놀라움과 맛이 전해주는 행복감은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곧 마주한 그의 전쟁에 대한 두려움, 슬픔, 우려 등은 갑작스러운 대비 감 때문에 주춤하기도 했다. 고통으로 신께 기대고 싶은 인간의 나약함, 인간의 욕심이 빚어낸 역사의 전쟁 속에 별이 된 이들을 추모하고 사랑을 그리며 외로워하고 인류애를 품고 신께 기도하는, 무한적인 충성과 사랑을 주는 반려견과의 일상, 그저 그렇게 소소한 일상 속의 행복을 얘기하는 그림들은 우리 인류의 이야기를 모두 담고 있는 듯하다.
의인화된 캐릭터들을 통해 듣는 사랑, 동심, 가족, 신, 전쟁 등의 이야기는 인간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긴 텍스트로 만났던 이야기들은 긴 터널을 지나 결론을 알게 되지만 아트북은 고속도로를 통과하는 느낌이랄까? 그 속도감과 동시에 주변의 나무들과 새들의 지저귐까지 들러리로 협공하니 아트북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캐릭터의 정체성을 읽어내는 과정도 새로운 경험으로 흥미로웠는데 짧지만 함축적이면서 가볍지 않은 의미를 담은 글 밥들도 다시 한번 읊조리게 하는 힘이 있었다. 글과 그림의 콜라보가 이렇게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것은 작가의 생각이 보는 이로 하여금 공감되게 만드는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보며 아쉬운 생각이 든 건 건 캐릭터들에 대한 설명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각각의 캐릭터가 지니는 정체성을 더 알고자 하는 충족의 욕구를 채우고 싶어진 거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을 보며 그 캐릭터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은 내가 작가에게 제대로 낚인 증거가 아닐까?
멍이 든 듯하고 상처가 있으며 슬픔을 삼키는 듯한 연필 드로잉의 캐릭터가 책 표지인 <시간을 걷는 자의 독백>은 내가 텍스트에 길들여진 사람이었다는 생각과 함께 그림이 전해주는 것이 이렇게나 여러 갈래의 느낌일 줄은 몰랐다. 설명이 없는데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그림이면서 이것이 바로 예술이구나라는 새삼스러운 생각에 놀라웠다. 설명이 없는 그림들, 그리고 툭 던져지는 생경스러운 글 밥이 주는 느낌은 작가의 마음을 알고자 들어선 미로 같기도 했다. 이렇게나 예술에 문외한인 나를 탓하면서 슬퍼지기도 했다가 때론 웃기도 했다가 때론 심각해지기도 했던 <시간을 걷는 자의 독백>은 얇지만 작가의 시간과 감정 그리고 가치관까지 모두 담긴 무거운 예술이라는 이름을 가진 삶에 다르지 않았다.
누군가의 생각을 만나는 통로는 글이 될 수도 있고 그림이 될 수도 있다. 또 다른 매체가 될 수도 있다. 어떤 통로가 되었든 누군가의 생각을 만나는 과정은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새로운 경험이 된다. 그 새로움은 마치 잊혔던 어느 옛날의 기억일 수도 있고 아직 만나지 못한 인연이 될 수도 있겠다. 이 모든 것은 삶이 다양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 아름다움의 한 조각 아트북을 만났다.
*본 도서의 리뷰는 소정의 원고료와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