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젠가
이수현 지음 / 메이킹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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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젠가 ㅣ 이수현 ㅣ 메이킹북스




"취업 기간이 길어질수록

위태롭게 쌓아 올린 유리 젠가가 마음속에 가득 들어찼고

금방이라도 내 존재 자체가 와장창 부서질 것 같았다"




<#유리젠가>는 2020년 충북작가 신인상 소설 부문에 당선하고 2020년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수필 부문에 당선된 작가로 별그램에서 나의 인친님이시다. 책을 출간하며 선물 도서를 보내주셨는데 이제야 읽고 서평을 쓰게 되었다. 직장인으로 틈틈이 글을 써 작가 활동을 하고 있는데 얼굴로 봐서는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의 동안이신 작가님이 이렇게 글을 잘 쓰실 줄은 몰랐다. 술술 읽히는 글도 놀랍지만 기승전결의 구조 속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매력과 완급조절까지, 신인상을 받을 때는 그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단편의 주인공들은 모두 청년이 대상이다. <유리 젠가>는 총 4편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져 있고 현 시대가 양산한 취업 준비생과 오랜 연애 중인 30대 후반의 미혼 여성, 동거 중인 미혼 여성 그리고 가업을 이으려는 아들이 주인공들이다. 나라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더 이상 투자할 곳이 없는 선진 대열에 들어서면서 가장 힘겨움을 겪는 세대가 청년세대일 것이다. 한 자릿수의 낮은 성장률을 보이는 한국은 지금 최저시급, 마이너스 취업률, 고학력의 실업화 등이 사회문제로 두드러졌고 거기에 코로나라는 큰 걸림돌에 발목이 잡혀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은 <오징어게임>이 내게는 현 시점을 반영한 참 슬픈 영화로 다가왔다. 이렇게 #오징어게임이 인기였던 것은 아마도 공감에 있을 것이다.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죽는다는 명제가 예전에는 실패해도 기회는 있었지만 지금은 실패하면 다시 말해 기회를 잃으면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것으로 그만큼 사회에서 배제되고 소외되는 억울함을 모두가 공감했다는 결론일 것이다. 작가도 바로 이런 현실을 <유리 젠가>에서 다룬다. 젠가를 유리로 설정해 청년들의 위태로운 삶을 유리 젠가에 빗댄 것이 적절한 표현이지 싶다.



배제되고 소외된 주인공들은 점점 사회적으로 고립되어가는 자신을 보여준다. 가령 '친구 관계를 만드는 것조차 어쩌면 내겐 최선이었다.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때마다의 만남과 생일 축하를 위한 기프티콘과 축의금과 조의금을 보내야 함을 의미했다'라는 대목에서 최소한의 사회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을 보여준다. 이런 주인공들은 점차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개념에서 멀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유리젠가>에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sns와 통화만으로 신뢰감을 쌓고 그 신뢰감을 사랑이라고 철저히 믿는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누가 봐도 이성적이지 않은 관계인데 주인공만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청년들의 모습을 나열하고 있지만은 않는다. 그저 길냥이인 고양이에게조차 위로를 받는 외로운 상황이고 코로나로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동거녀가 출근을 하든 말든 그저 이부자리를 지키고 잠만 자며 씻지도 않는 무력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들은 느리더라도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달팽이를 보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대학을 포기하고 조부 때부터 내려오는 가업을 현시대에 맞는 마케팅으로 승부하며 점차 자신감을 얻고 아버지의 인정을 받아내는 청년의 모습을 그려내며 우리에게 아직은 희망이 있음을, 조금 느려도 자신만의 속도로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그렇게 제자리를 찾는 것,

달팽이의 움직임처럼 조금은 더디겠지만

서서히,

서서히 제 삶을 그려나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리라.





조금은 우울한 이야기의 되새김일 수 있겠다 싶을 때쯤 주인공들은 어떻게든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고 일어서는 모습에서 참 희망적인 이야기들에 웃음을 찾고 힘을 받는 기분이었다. 올해로 코로나는 3년 차를 맞이했다. 사회는 어수선하고 불안하며 두려움에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이런 시국에도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희망을 찾아야 한다. <유리젠가>에서 주인공들이 스스로 희망을 찾고 다시 일어설 힘을 낸 것은 앞으로 우리 청년들이나 팬데믹 시대를 사는 모든 이들이 해야 할 일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조금의 희망만 있으면 모두 일어설 수 있는데 그 조금의 희망마저 배제되었기 때문에 위축이 되어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2021년을 보내며 생각도 많고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이렇게 희망적인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더불어 작가님의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 본다.





도서를 선물해주신 작가 이수현님께 감사드립니다.

도서를 선물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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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 돋는 수학의 재미 : 상편 - 공부 욕심이 절로 생기는 기발한 수학 이야기 소름 돋는 수학의 재미
천융밍 지음, 김지혜 옮김 / 미디어숲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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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돋는 수학의 재미(상) ㅣ 천융밍 지음 ㅣ 리우스위엔 그림 ㅣ 김지혜 옮김 ㅣ 미디어숲



요즘 학생들에게 수학은 선행을 생각하지 않을 수없는 중요한 과목이다. 그만큼 많은 공부시간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고등 올라가서 수학을 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번 2022년 수능에서는 문이과 통합 첫 수능으로 자연계열 학생들이 인문계열로 교차지원 가능성이 매우 높아 문과 학생들에게 수학은 더욱 시간이 필요한 과목이 되었다. 물론 공통, 선택과목 지정으로 조금 더 시간적 여유가 생겼을지도 모르지만.



수학이 젬병이고 졸업한 지 30년이 훌쩍 지난 엄마가 수학을 도와줄 수는 없어서 학원의 힘을 빌리는데 늘 아쉽기만 하다. 이 아이가 수학을 지겨워하지 않고 고3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면 수학의 재미를 느껴야 될 거라 생각돼 재미있는 수학 책을 고민하고 있던 터였다. 이번에 만난 <#소름 돋는 수학의 재미(상)>은 유리수와 무리수, 수열, 파이, 극한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 기대감을 주는 책이다. 문제집 속에서 만나던 수학과는 다른 재미를 줄 수 있을 듯하다. 엄마가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없지만 추천해 줄 책이 있어서 다행이다.



수학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고 수학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이들이 꽤나 많다. 그들이 제시하는 문제들을 살펴보자.


- 어느 해 하버드 대학교 박사학위 수여식에서 앳된 얼굴의 소년을 본 학장은 그의 나이가 궁금해 물으니 "내 나이의 세제곱 수는 네 자리, 네제곱 수는 여섯 자리입니다. 이 두 수에는 10개의 수 0, 1, 2, 3, 4, 5, 6, 7, 8, 9가 모두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의 나이는 몇 살일까?


- 아이를 데리고 학교에 간 아버지가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반의 학생 수는 몇 명인가요? 우리 아이를 선생님 반에서 공부하게 하고 싶어요."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만약 우리 반 학생 수를 두 배로 하고 다시 우리 반 학생 수의 1/2을 더한 다음, 또 우리 반 학생 수의 1/4을 더한 다음에 다시 당신의 아들을 더하면 총 100명의 학생이 됩니다." "도대체 학생 수가 몇 명이라는 거죠?"


- 요즘은 QR코드를 사용하는 일이 많다. 특히 코로나 시대에는 식당이나 카페 등을 입장할 때 QR코드로 인증을 하는데 이 QR코드를 한정 없이 쓸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만약 바닥날 일이 생긴다는 가정을 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 보통 1개의 QR코드에는 1000개의 격자가 있고 이 1000개의 격자무늬를 흑백색으로 임의로 칠하는 방법은 총 2의 1000가지다. 또한 QR코드의 수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매일 1만 개의 QR코드를 생성한다고 하면 이를 다 쓰는 데는 최소 1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년이 걸린다. 지구 수명이 50억 년 밖에 안되니까 안심해도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전에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 QR코드였는데.



책을 읽다 보면 마치 tvN의 <문제적 남자>를 보는 듯한 느낌이라 퀴즈에 진심인, 도전의식이 있는 이들에겐 꽤나 흥미있는 책일 듯하다. 책에는 수학의 블랙홀과 사랑공식이란 것도 나온다. 수학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이들은 사랑을 공식으로까지 표현하고 있다. 어쩌면 그들에게 수학은 소통의 한 수단일지도 모른다. 대화가 아닌 수학으로 소통한다는 것, 굉장히 매력적이다. 이쯤 되면 수학으로 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문제를 푸느라 머리가 아팠지만 작은 아이가 수 I, II를 좀 더 친근하게 느끼길 바라며 이 책을 옆에 두어야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도서를 지원해주신 미디어숲 출판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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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여자가 더 상처받는다
라이이징 지음, 신혜영 옮김 / 미래지향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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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여자가 더 상처받는다 ㅣ 라이이징 ㅣ 신혜영 옮김 ㅣ 도서출판미래지향



p. 11 자기 자신에게 너무 많은 요구를 하지 말자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가는 사람이 진정한 '착한 여자'다. 타인의 망상에 실현해 주기 위해 살지 말고, 비극적인 영웅으로도 살지 말자. 여자에게 이것 저것 많은 것을 요구하는 사람은 그냥 이기적인 사람이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자기 삶에 책임을 질 줄 알면 그걸로 됐다.



<#착한여자가더상처받는다>는 서문을 읽고 나서부터 슬슬 올라오는 화가 주체가 안돼 책을 읽다가 쉬기를 반복해 오랜 시간이 걸려 읽었다. 처음에는 안됐다고 생각했다가 안쓰럽고 답답하고, 약자인 그녀들을 몰아간 사람들에게 화가 치밀고 감정의 소모가 컸다. 점점 읽을수록 도를 넘어서고 어떻게 착한 사람을 이렇게나 이용하려고만 하는지... 하는 생각에 힘들었다. 착한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같은 여자로서 정말 속상한 이야기들이다. 좋은 며느리, 좋은 딸,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애썼던 그녀들의 마음과 시간 그리고 노력은 모두 밑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왜 그녀들의 마음과 노력이 모두 헛수고가 된 것일까? 이것은 나만 잘하면 모두 행복할 것이고 모두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그녀들의 '착함'을 당연시하고 그것을 이용했던 사람들 때문이며, 미련하리만치 자신을 희생했던 그녀들의 '착함'때문이기도 하다.



<착한 여자가 더 상처받는다>의 저자 라이이징 또한 '착한 여자'였다. 이 책은 '착한 여자'에서 벗어나 혼자의 희생을 버리고 자신을 보듬기 시작한 작가가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를 모아 그 이야기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형식이다. 자신을 찾아온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선한 사람들일수록 상처가 심각하다는 놀라움에서 출발했다. 이야기는 이렇게까지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착한, 아니 미련해 보이기까지 하는 여자들의 이야기였다. 그야말로 '착함'이 독이 된 사례들이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은 지금도 적용되지만 자신을 만신창이로까지 만들면서 불행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면서까지 희생하는 여자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출판사로부터 의뢰를 받고 그녀들의 이야기와 해결책을 제시하는 저자의 지혜가 담긴 이야기로 명쾌하게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야기들은 어쩌면 우리 주변에서도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효도를 해도 딸이 될 수 없는 그녀들, 결혼을 했음에도 친정어머니에게 끊임없이 돈을 드려야 하는 그녀들, 시부모님의 도박 빚을 책임져야 하는 그녀들.... 각자 다른 상황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여성들은 대만 여성들이다. 과연 우리나라에도 이런 여성들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때, 지인으로부터 '잘하고 싶고 이쁨 받고 싶고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았다'라는 말을 듣고부터는 보통의 며느리들, 보통의 여자들은 이런 마음을 갖는다는 걸 새삼 느꼈다. 그 지인에게 조금만 더 당당해지라고 조심스럽게 조언하며 어른들로부터 희생하며 살라고 배웠던 것을 떠올렸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도 배웠다. 지금의 여성들은 그런 교육을 받지도 않을뿐더러 이런 교육이 먹히지도 않는다. 관계는 누군가의 희생만으로 평온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는 그녀들이 빠진 늪에서 당당히 걸어 나와야 한다. 어른이 된다고 다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 그녀들은 이제 스스로를 사랑하고 보듬어야 한다. 사랑의 사랑의 무게가 한쪽으로만 내려간 시소처럼 그녀들의 부담과 고통을 이제는 줄이고 자신의 생각을 지혜롭게 풀어가야 할 때이다.



<착한 여자가 더 상처받는다>는 만약 누군가가 착한여자 컴플렉스를 겪고 있으며 점점 자신의 부담이 커지고 있음을 발견한다면 자신과 비슷한 이야기를 접하고 자신의 상황에 눈을 떠 문제점을 확인하고 누군가가 자신을 사랑하고 치유해 주는 이야기로 받아들여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야기 속 그녀들이 저자의 해결책을 따른 후의 후기는 실려있지 않아 아쉽지만 그녀들이 해결책을 따르고 좀 더 행복해졌기를 바래본다. 지금도 자신을 챙기지 않고 가족만을 생각하는 그녀들에게 행복은 누군가의 불행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자신이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착한 여자가 더 상처받는다>를 통해 그녀들의 그 '착함'이 빛이 될 시간이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도서를 지원해주신 도서출판미래지향출판사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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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에서 9시 사이
레오 페루츠 지음, 신동화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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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에서 9시 사이 ㅣ 레오페루츠 ㅣ신동화 옮김 ㅣ열린책들






"나는 자유를 원했어.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자유를 원했다고, 슈테피.

그런데 나는 그저 지쳤을 뿐이고 이제 내가 원하는 건 

단 한 가지.

편안히 쉬는 거야."






공원에서 한 남자가 다른 이의 개로부터 아침식사를 뺏기고 있다. 개 주인은 개를 말리며 남자에게 개로부터 멀리 반대쪽으로 음식을 옮기라고 하지만 남자는 자기에게 그럴 의무는 없다고 말한다. 개에게 식사를 뺏기는데 왜 옮기지 않고 의무를 말하는 것일까? 남자는 공원의 벤치에 앉아 있는 아가씨의 옆에 앉는다. 아가씨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남자들이 늘 말을 걸어오고 이 남자도 자신에게 곧 말을 걸어올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자 우산을 떨어뜨리고 남자는 곧 주워줄것이라 생각하지만 남자는 자신은 양팔을 잃은 장애인이라고 소개한다. 사랑하는 여자의 사무실로 찾아간 남자, 뎀바. 그의 이상한 행동에 여자와 친구들은 그가 망토 속에서 손을 꺼내지 않는 것은 바로 리볼버를 쥐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떨어뜨린 돈 봉투를 쥐여줘도 절대 손을 내밀어 받지 않고 사인을 하지 않아 돈을 취하지 않는 남자. 특이한 사람인 줄 알았더니 장애인이고 장애인인 줄 알았더니 사실 손에 리볼버가.....?



슈타니슬라우스 뎀바는 과외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고 있는 학생이다. 조냐라는 여자를 사랑하고 멀어져 가는 그녀의 마음을 잡기 위해 여행 계획을짠다. 하지만 그에겐 돈이 없었고 그 돈을 마련하고자 애쓰지만 손을 쓸 수 없다. 남들에게 손을 보여줄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자신의 치부를 들키지 않으면서 돈을 벌기 위한 사투를 벌이는데 이쯤 되면 그의 손이 어떤 상태인지 몹시 궁금해진다. 도대체 진실은 무엇일까?



레오 페루츠의 소설 <심판의 날의 거장>과 <스페인 기사>를 재미있게 읽어서 그의 작품들을 더 읽고 싶은 마음에 <9시에서 9시 사이>를 읽게 되었다. 앞의 두 권 모두 독특한 내용들이고 매력적인 작품들이었는데 <9시에서 9시 사이> 또한 그렇다. 그의 작품을 하나 읽고 나면 다른 소설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과 기대감이 생기고 독서 후 역시 믿고 보게 되는 작가로 자리매김한다. 독특한 소재,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대범함, 그리고 인간의 내면을 깊숙하게 끌어내 보여주는 그의 능력은 탁월한 그의 필력이 뒷받침한다.



망토 겉으로 손을 꺼낼 수 없는 뎀바는 마치 자유를 빼앗긴 인간의 모습과 같다. 인간이 만들어 낸 형벌로 자유를 빼앗긴 채 그 속에서 자신의 욕망을 관철시키기 위한 뎀바의 모습은 인류가 저지른 잘못을 통해 스스로 내린 가장 큰 형벌을 받고 괴로워하는 모습 그 자체다. 뎀바가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인물들을 만나고 그들의 눈을 통해 비쳐지는 뎀바의 모습은 괴이하고 우스꽝스럽다. 뎀바는 지성인이지만 시한폭탄같은 인물이다. 무시해도 되는 사람이었다가 한순간 위협적인 사람으로 돌변하는 그의 모습이 바로 자유를 억압당한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은 아닐지.



주인공의 손의 비밀에 대한 추측이 번번이 틀려 오기가 생기는 대목에서는 작가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주인공의 괴이스러운 행동때문에 커져가는 의혹으로 더욱 호기심이 증폭되었다. 주인공이 가진 비밀을 풀어가는 미스터리적 요소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큰 축이 되며 그 과정속 자유를 박탈당한 주인공의 모습이 측은하고 안타까움으로 와닿으며 주인공과 함께 전전긍긍하고 조마조마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금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일련의 과정은 작가와 주인공 그리고 독자가 하나가 되는 경험이 된다. 긴박감, 괴이스러움, 대담함, 그리고 미스터리 모두 레오 페루츠라는 작가가 가진 매력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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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옥 - 노비가 된 성삼문의 딸
전군표 지음 / 난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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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옥 ㅣ 전군표 ㅣ 난다




"그런데 왜 의로운 일을 하는 이가 무참히 죽어야 하는 겁니까. 정통을 지키려고 한 것이 옳은 일이 아닙니까. 왜 하늘은 옳은 자를 돕지 않습니까. 하늘은 왜 말이 없는 겁니까."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기고 지는 것은 이 세상의 시간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 우주 만물은 영원하고 세세대대 생명은 이어진다. 그 긴 시간 속에서야 이기고 지는 걸 판별할 수 있다. 또 세상살이에서 정의가 꼭 불의를 이기는 것이 아니다. 사바세계에서 짧은 시간으로 보면 선이 악에게 질 때가 더 많다. 악은 이기기 위해 선택하는 방법조차도 교활하고 부도덕하지만 선은 그리할 수 없기 때문에 판판이 악에게 지고 만다. 그런데 긴 시간을 두고 보면 이긴다는 것도 진다는 것도 별 의미 없다. 죽음과 삶이 하나이듯 이 모든 것이 형체가 없어 無라고밖에 할 수 없다."

"도대체 충절이 무엇이기에 그걸 지키고자 남자들은 삼대가 다 죽어나가고 여자들은 모두 노비가 되어야 하는 겁니까?"

"그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귀한 일이다. 참혹한 희생이 따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대를 이어 우러르는 것이다. 나부터도 그 참혹한 일을 따라 할 수가 없었다. 어찌 그들이 받아야 할 존숭을 같이 받을 수 있겠느냐? 그 삶은 단지 잘 먹고 잘살기를 바라는 보통 사람들의 소망과는 다르다. 육신을 떠나 고매한 정신으로만 가능한 거다. 그 사람들은 대신 영원한 삶을 산다. 지금은 내가 이렇게밖에 대답할 수가 없구나.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아도 매 순간 우리는 죽음으로 향 해 가지 않더냐. 그들도 얼마 안 가 제 운명 속에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아무리 용을 쓴들 세조도 한명회도 머잖아 죽을 것이다. 남는 건 이름뿐이다. 짧도다. 부질없도다. 악이 찰나라면 선은 영원한 것..... 너는 어떤 사람이고자 함이냐."




학창 시절 사육신, 생육신에 대해 다들 들어봤고 그에 해당하는 이름을 외우려고 애썼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수양대군과 단종의 이야기는 워낙 유명해서 영화나 드라마로 많이 각색하여 만들어졌다. 흔히들 우리가 세조라고 부르지 않고 수양대군이라고 부르는 것은 은근 천륜과 정통성을 뒤집어 스스로 왕이 되려 했던 그를 낮춰 보기 때문이 아닐까. 그만큼 그의 왕위찬탈은 대를 이어 손가락질 받는다. 그러나 사람들의 손가락질보다 스스로가 잘못되었음을 아는 것이 더 큰 괴로움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꿈에서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의 원혼이 나타나 침을 뱉은 이후로 피부병증이 심해졌다고 하니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되짚으며 크게 후회했을지도 모르겠다. 세조의 피부병이 심해져 치료를 위해 온천욕을 다녔고 문수보살상 앞에서 100일 기도 후 목욕을 하는데 지나가던 동자승이 등을 밀어줬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행여나 상감 옥체에 손을 대고 흉한 종기를 씻어드렸다는 얘기를 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을 받으려는 세조에게 동자승은 상감도 오대산에서 문수동자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지 말라 했다고 하니 이 둘의 비밀을 지금의 우리가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상에 금박을 새로 입히던 중 불상 안에서 피와 고름이 묻은 세조의 적삼과 발원문이 함께 발견되어(1984년) 세조의 피부병이 사실이었고 아주 심각한 상태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살아생전에 자신의 잘못에 대한 벌을 받고 뉘우쳤다면 그나마 세조는 맘 편히 죽지 않았을까? 한 나라의 왕의 자리는 하늘이 내리는 것이니 권력으로 인명을 해하며 얻은 자리가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조는 큰 아들인 의경세자를 잃고 둘째 아들인 해양대군은 즉위 후 13개월 만에 죽음을 맞이했다. 해양대군은 한명회의 딸과 혼인하여 원자를 낳았지만 세자빈과 원자 모두 생을 달리했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세조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들이 되었다.




수양대군은 단종을 상왕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세조로 즉위하였으나 후일 단종을 사사하고 사육신을 모두 처형한다. 그리고 성삼문의 딸 효옥은 박종우 대감의 노비로 가게 되는데 해양대군은 박종우 대감의 집에 찾아와 효옥을 부탁한다. 어쩌면 둘은 부부의 연을 맺었을지도 모를 인연이었고 효옥을 본 순간 해양대군은 효옥을 마음에 두었었다. 한 편 세조의 피부병이 심해지고 박종우 대감의 아들 박선규는 효옥을 탐내기 시작하는데...




<효옥>은 세조와 단종의 이야기를 뿌리로 하며 성삼문의 딸 효옥이라는 인물의 인생을 소설화시켰다. 성삼문이 사육신으로서 고문을 당하고 죽음을 맞이한 후 그의 부인과 딸은 운성부원군 박종우의 노비로 살아가게 된다. 하루아침에 양반에서 노비로 전락한 그들의 삶이 얼마나 고되었을까?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성종 때 성삼문의 부인과 딸 효옥은 면천된다. 20년이나 노비로 살았던 그들이다. <효옥>을 읽으며 안타까웠던 일은 해양대군, 즉 예종은 둔전屯田의 민경民耕을 허락했으며 훈구파와 대립하였다. 개혁정치를 꿈꾸었던 왕으로 만약 그가 요절하지 않았다면 숙종이나 영조처럼 권력형인 왕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조선은 조금 더 빠른 개화의 물결을 타지 않았을까. 그의 죽음이 훈구파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설이 제기되기도 했다고 하니 나라가 개혁되었을 때 가장 손해를 볼 것은 그들 훈구파였기 때문이다.



<효옥>은 역사를 쉽게 접할 수 있으며 역사 속 인물들에 대해 흥미롭게 서술된 책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며 역사 속 인물들의 생애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재미있는 시간들을 선사한다. 역사가 어려운 청소년들이나 역사를 재미있게 만나보고 싶은 이들이라면 추천한다. 다만 <효옥>은 소설이기에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적인 측면인지는 스스로 필터링 해야한다. 자칫 이야기에 빠져 소설을 사실로 착각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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