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시아드 - 황제의 딸이 남긴 위대하고 매혹적인 중세의 일대기
안나 콤니니 지음, 장인식 외 옮김 / 히스토리퀸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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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시오스 1세 콤니노스는 1081년부터 1118년까지 동로마 제국을 다스렸던 황제이다. 동로마 제국의 군사적, 재정적 부흥을 이끌었고 그의 치세 동안 제국의 영토가 넓어졌으며 안정을 찾았다고 평가받는다. 또한 그가 다스리는 동안 십자군 원정이 시작되었는데 그 혼란을 잘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콤니노스 왕조를 탄탄하게 하는 데 기여한 황제로 인정받는다. 여기까지가 세계사를 공부할 때 나오는 대략의 설명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세계사는 큰 흐름을 쫓아갈 뿐 각 인물 한 명, 한 명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고난을 거쳐 업적을 이루었는지 어떻게 성장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이름을 남겼는지 자세히는 알 수가 없다. 그저 몇 줄로만 요약된 것을 읽고 그런가보다, 지나칠 뿐이다. 만약 그가 스스로 쓴 일기가 있다면, 아니면 그 주변 인물이 쓴 일기나 더 나아가 그들 사이에 오간 문서가 남아있다면 혹은 그들의 생애를 오랜동안 지켜 본 누군가의 책이 존재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조금의 상상을 더해 짜 맞추어가던 역사가 다각적인 면에서 풍부하게 되살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알렉시아드>는 바로 알렉시오스 1세의 딸 안나 콤니니가 쓴 역사서이다. 서구 최초의 여성 역사가라는 점도 매력적이지만 그런 역사가가 자신의 남편이 쓰다 만 역사서에 더해 오랜 세월 지켜봐 온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책을 썼다는 것은 무척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이 쓰려는 인물의 딸이라는 점에서 안나 콤니니는 모든 객관성을 띨 수는 없었을 것이다. 15권이라는 긴 서술 속에 그녀가 계속해서 객과성을 유지하려고 애썼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렉시아드>는 알렉시오스 1세의 청년 시절에서부터 시작하여 어떻게 황제의 위치에 오르고 재위 기간 동안 어떤 일들을 했으며 심지어 사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까지를 적어 그 어떤 동로마 제국사보다 뛰어난 책이 되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역사서는 마치 전쟁 소설을 읽는 듯 하다. 고등 교육을 받은 안나 콤니니는 그리스어를 매우 열심히 공부하여 문학에도 정통했고 수사학이나 기하학, 음악, 천문학, 산술학까지 굳건히 한 여성으로 <알렉시아드>가 문학적으로도 인정받는 책이 되도록 하였다.

책 속에는 각각의 전쟁 속 양측의 계획, 전술을 무척이나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고 각 인물들이 나눈 대화까지도 그대로 묘사하고 있어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동로마를 공부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한 인물의 일대기를 읽고자 하는 이들도, 더불어 서로마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동로마 속 격변의 시대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도 <알렉시아드>는 중요한 책이 될 것 같다. 이번에 첫 번역으로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것이 너무나 기쁜 이유이다.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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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트넛 스트리트
메이브 빈치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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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브 빈치 여사님, 만만세~! 뭔지 모르겠지만 좋다, 정말 좋다. 그 전에 읽었던 <그 겨울의 일주일>과는 또 다른 느낌, 하지만 같은 결의 책이다. 아마도 장편과 단편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체스트넛 스트리트>는 2012년 타계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써 온 단편소설을 남편이 묶어 펴낸 책이다. 때문에 읽다 보면 그 시간의 간극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게 또, 좋다. 우선 이 책은 가상의 거리 "체스트넛 스트리트"에서 벌어진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이므로 피카레스크식 구성을 띤다. 읽다 보면 저절로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이나 박태원의 <천변풍경>이 저절로 생각나기도 한다. 처음엔 체스트넛 스트리트에서 벌어지는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는데, 페이지 뒤로 갈수록 앞에 나왔던 주인공이 등장하기도 하면서 짜릿함을 느끼기도 한다.

약 540페이지에 달하지만 37편의 단편이 묶인 책이므로 한 편당 페이지 수는 길지 않다. 또한 각 단편의 이야기가 한 편 한 편 매력적이어서 아주 천천히 각각의 단편을 음미하며 읽을 수 있다. 대부분은 미소지으며 ("그저 하루", "페이의 새 삼촌", "리버티 그린", "불면증 치료제" 등), 때론 씁쓸하게 ("돌리의 어머니", "택시 기사는 투명인간이다.", "품위라는 선물" 등)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다.

메이브 빈치의 이야기들이 매력적인 건 어느 세월, 어느 공간이든 보편적인 인간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 다 그렇게 살고 있다고.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건 바로 이 작가의 지혜가 소설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나도 이렇게 살아야지, 나는 이런 실수를 하지 말아야지~ 하고.

우리나라에는 그녀의 많은 작품들 중 5권만 번역되어 출간된 것 같다. 더 많은 작품이 출간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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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고양이 말이 들리는 건 비밀이야
요아힘 프리드리히.미나 맥마스터 지음, 아스트리트 헨 그림, 홍미경 옮김 / 알라딘북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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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책에선 어떤 일이든 일어난다. 동물들이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거나 동물들이 사람처럼 행동할 수 있거나 사람이 동물들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쉿! 고양이 말이 들리는 건 비밀이야>에서도 주인공 루카스가 동물들의 말을 들을 수 있다. 단,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없어 끼는 보청기를 껐을 때만.

그런 루카스의 엄마는 수의사이고 루카스는 수컷이지만 이름이 밀리센트인 고양이를 키우고 있으니 어쩌면 루카스에게 혼자만의 조용한 세계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편하겠다는 생각은 든다. 내가 원할 때 사람과의 대화를 차단할 수 있고, 동물과도 마찬가지다. ㅎ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카스는 누군가와 대화를 차단하는 방법으로 보청기를 끄지 않는다. 오히려 동물들과, 사람들과 대화하기 위해 껐다 켰다 할 뿐이다. 어쩌면 혼자만의 어쩌구... 하는 건 어른인 나의 나쁜 생각이고 순수한 아이들에게는 아주 훌륭한 소통의 창구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루카스에게 어느 날 사건이 하나 일어난다. 우선, 엄마의 동물 병원에서 만난 마리라는 아이와 호르스트라는 개와의 만남, 또하나는 이 동물병원으로 온 한 마리의 앙칼진 고양이 한 마리. 그리고 첫 만남은 어색하고 호의적이지 않았지만 그 고양이 한 마리를 위해 의기투합한 마리와 루카스는 어른들의 도움이 불발되자 직접 나서기로 한다.

사건으로 이어지는 내용도, 그 사건을 풀어낸는 과정도 흥미진진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보청기를 껐다 켰다 하며 애쓰는 루카스와 어떻게든 도와주려는 개 한 마리, 고양이 한 마리, 마리의 노력이 즐거웠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거슬렸던 것 하나. 바로 번역이다. "너의 아빠"라거나 "사실 그것은 상당히" 라거나 등등. 번역 투의 문장들이 계속해서 눈에 밟혀서 신경쓰였다. 아이들은 영어학원을 다니며 우리말 글쓰기를 할 때도 번역 투의 문장을 잘못된 줄도 모르고 자주 사용한다. 그러니 재밌게 읽을 책만이라도 제대로 자연스럽게 우리 말로 번역해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좀 아쉬웠다.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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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어렸을 때 책을 많이 읽어주어야 한다

예진이는 ‘횃불을 들고‘의 ‘햇‘이 어색해서 "왜앳?" 하고놀라듯이 읽기도 했다. 나는 어렸을 때 안데르센 동화 「엄지공주』에 나오는 표현 ‘을씨년스러운 날씨‘가 믿기지 않았다.
한 글자씩 짚어 가며 발음하고 금기를 어긴 듯한 기분을 느꼈던 게 생각난다. ‘으스스한 소리‘를 ‘스르르한 소리‘로 읽는가 하면 인물의 대사를 연기 톤으로 읽는 데 몰입한 나머지 지문까지 격앙된 목소리로 읽다가 문득 깨닫고 머쓱해하는 어린이도 있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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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그녀가 하는 말이 잘 믿기지 않았다.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 말은 서서히, 똑똑 떨어지는 수돗물처럼 그에게 스며들었다. "미안하단 소리는 그만둬요, 농담도 그만두고 겉으로는 웃고 분장 아래로는 우는 그런 광대역은 집어치워요. 자신을 사랑하세요, 젊은이, 자신을 사랑하면 다른 사람들도당신이 자신에게 부여한 딱 그만큼의 가치로 당신을 대할 거예요."
노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는 자신이 아주 잘났다고생각하는 사람들을 싫어했다. 스스로를 인간 종족에게 내려진 신의 선물로 생각하는 콧대 높은 작자를 보면 깔아뭉개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은 수돗물처럼 똑똑 스며들어, 그는 그레이스를 믿게 되었다. 그녀가 말해준 모든 것이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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