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남자 - 개정판 폴 오스터 환상과 어둠 컬렉션
폴 오스터 지음, 김현우 옮김 / 북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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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2008년에 출간되었던 폴 오스터의 <어둠 속의 남자>가 아주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 재출간되었다. 마지막 유작이라는 <바움가트너>를 얼마 전 읽었는데 그 여운이 좋아서 언젠가 전작을 모두 읽어보겠다는 계획을 하나씩 실천할 수 있어서 아주 기쁘다. 읽을 때마다 이 작가가 더 좋아지고 있다.

나, 오거스트 브릴은 딸 미리엄과 손녀 카티야와 함께 살고 있다.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쳐 불편한 오거스트는 1층에, 딸과 손녀는 2층에서 거주한다. 밤마다 잠이 오지 않아 자신만의 이야기를 구상하고 가능한 자꾸만 떠오르는 생각을 피하려고 한다. 낮에는 카티야와 영화를 보며 하루를 보낸다. 매일 같은 하루하루지만 각자의 방에서 잠드는 이들은 각자의 상실로 잠들지 못하고 겨우겨우 버티며 하루를 이어간다.

책은 오거스트의 상상 속 이야기에서 시작해 오거스트가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주변에서 듣고 일어난 "전쟁"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전쟁은 오거스트와 카티야가 상실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하나의 사건으로 귀결된다. 모두 다섯 가지의 전쟁은 모두 처참하고 끔찍하다. 그리고 결국 그 전쟁으로 인한 상실은 살아남은 이들의 숙제로 남는다.

오거스트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는 문장.

"괴상한 세상은 굴러가고."...260p

그렇다. 세상엔 정말 이상한 일들이 가득하고 이상한 사람들에 의해 너무 착한 사람들이 죽기도 하고 상처받고 이상한 나라에 의해 아무 잘못 없는 사람들이 죽어간다. 그런 세상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또 그런 세상 속에서 우린 살아간다. 밤부터 시작해 동이 트는 아침까지 온갖 걱정과 시련과 삶이 지나갔어도 그렇게 또 하루가 시작하는 것이다.

정말 아름다운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이후로 상실의 아픔에 대해 이렇게 훌륭하게 표현해 낸 소설이 있을까 싶었는데 첫 시작부터 마지막 귀결까지 모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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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11
버지니아 울프 지음, 오진숙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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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자기만의 방>을 읽었던 것이 5년 전이다. 뭔가 공감하면서 읽었지만 온전히 책을 이해했던 것 같지는 않다. 그저 표면 상의 내용들과 버지니아 울프 책을 드디어 읽었다, 라는 만족감 정도이지 않았을까. 그사이 나는 오십이라는 나이를 넘어섰고 한정된 환경이지만 두 번째 사춘기(게다가 딸)를 키우고 있고, 엄마도 돌아가셨고, 지금은 나름 인생의 전환기를 맞고 있다. 그래서 조금 더 성장했을까? 이번에 읽은 <자기만의 방>은 조금 달랐다.

놀랍게도, 지난 번 읽었을 때는 그저 에세이라고만 생각했지 여학생들을 앞에 둔 강연 내용을 토대로 엮은 책인 줄 몰랐다(분명 책에 나와 있음에도 그저 설정이라고만 생각했다). 강연이기 때문에 주제가 있고, 이 강연의 주제는 <여성과 픽션>이다. 그렇게 놓고 보니 <자기만의 방>은 더없이 논리적인 글이다.

1장은 "여성이 픽션을 쓰고자 한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었어야 한다"(...10p)는 견해를 내놓고 왜 그런지 자신(혹은 다른 어떤 여성 누군가)을 따라 일상 속에서 여성과 남성이 얼마나 다른지, 불평등하게 대해지는지를 직접 상상하며 경험하게 한다. 2장에선 대부분의 책이 남성들에 의해 씌여졌고 그 속에 담긴 여성들 또한 남성이 바라보는 여성들임을 언급하며 인간이 존엄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돈(500파운드)이 있어야 다양하고 넓은 시선과 가치관을 가질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3장부터는 엘리자베스 시대부터의 픽션 속 여성들의 삶(남성 작가들이 쓴)과 조금씩 등장하는 여성 작가들을 비교하며 그들의 환경과 그럼으로써 쓸 수 있었던 작품들을 하나씩 비교한다. 19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등장하는 제인 오스틴과 에밀리 브론테를 통해 가부장제 속에서 자신들만의 가치관을 고수한 천재성과 성실성을 칭찬하며 그렇지 못한 작가들에겐 여전히 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의 돈이 필요했음을 증명한다.

6장에 이르러 결론으로 향하는데 사실 이 마지막 장이 정말로 울프가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를 패미니즘과 패미니스트로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로 여기지만 6장을 잘 읽다 보면 여성으로서의 역할과 권리보다는 "작가"로서 성에 대해 인식하고 글을 쓰는 건 치명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여성으로서의 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자리에서 무지하지 말며 스스로 나서 자신에게 필요한 돈을 벌어 지식을 쌓은 후에야 작가, 소설을 쓸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멈춰있지 말라는 거다.

전적으로 공감했다. 그리고 이 여성이 얼마나 똑똑하고 아름다운 여성인지 다시 한번 깨닫는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의 성 역할 때문에 여성들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면서도 주부로 주저앉아 있고 싶어했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어머니가 아닌 "나" 자신으로서 독립하지 못한다면 결국 내 삶은 없다. 픽션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서의 인생을 살기 위해 나를 위한 독립은 필수불가결이다. 울프는 용기를 내라고, 움직이라고 말한다. 모든 연령대의 여성들이 꼭 한 번 이상 읽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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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인생 열린책들 세계문학 275
카렐 차페크 지음, 송순섭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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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렐 차페크라는 작가의 이름을 처음 알게된 건, <정원가의 열두 달>이라는 책을 통해서였지만 사실 카렐 차페크는 "로봇"이라는 단어를 처음 만들어 낸 희곡 <R.U.R>로 더 유명한 작가다. 어째 처음 알게 된 <정원가의 열두 달>도, 워낙 유명한 <R.U.R>도 아닌 그의 <평범한 인생>을 먼저 읽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느낌따라 책을 고르는 나로서는 아마도 저 우주의 기가(ㅋㅋㅋ 몇십 년 전, <시크릿>을 읽은 후부터 이리 되었다) 지금쯤 네가 이런 책을 읽을 때가 되었다고 알려주는 것 같다. 그리고 최근 이렇게 고른 책들(책에 대해 알고 고른 것이 아니다. 그저 표지나 제목으로 느낌가는대로 고르는데 그렇다)이 모두 "죽음", "삶", "인생".... 과 연관된 것들이다.

사실 처음 표지와 작가와 제목을 봤을 땐 그저 진짜 평범한 인생을 사는한 인간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막상 책 표지를 펼쳐 작가 소개를 읽다 보니 이 책은 "카렐 차페크 철학 소설의 3부작의 대미"라고 소개되어 있다. 알게 모르게 철학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으로서 잠깐 꺼려졌으나... 그래도 읽어 본다. 그런데 생각보다 재미있다.

늙은 포렐 씨는 오랜만에 어릴 적 친구인 철도 공무원을 찾아오지만 그는 이미 죽었다. 그곳에서 만난 한 의사(하지만 철도 공무원과는 정원에서 만나 서로를 도와주던 관계)에게 이야기를 듣고 그가 남긴 기록을 받아 읽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철도 공무원의 어릴 적부터 죽기까지의 기록이 이어진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평범하고 시시한 삶인가!"...19p

"놀랍게도 우리가 사랑을 시작할 때와 신혼 시절에 대해서도 거의 회상하지 않는다. 제일 많이 떠오르는 생각은 우리의 역에서 보낸 조용하고 변화 없는 시절이다."...120p

철도 공무원은 가족의 보호 아래 다양한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평범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그가 어릴 적 만난 한 소녀와 그 소녀를 둘러싼 여러가지 일들은 그에게 씻을 수 없는 충격과 영향을 미쳤고 결국 책 뒤쪽에서 또다른 자아로 등장한다.

한 사람이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건 뭘까. 내가 보여주고 싶은 '나'와 내가 추구하는 나라는 이상형, 하지만 그와는 다르게 행동하는 '나'와 내 안에서 가장 혐오하고 싫어하는 '나'가 동시에 존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싫은 '나'를 제외하고 가능하면 내가 추구하는 이상형에 가깝게 보여지도록 행동하려 하지만 또다른 '나'로 행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평범한 인생>은 그저 한 철도 공무원의 한 평범한 삶을 조명하는 것 같지만 책의 뒤편으로 갈수록 한 인물에 대한 다층적인 심리를 들여다보며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어떠한 경험이 모두에게 같은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그 경험만으로 사람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다양한 경험과 다양한 관계, 성격과 환경 등이 어우러져 누군가에겐 평범하기도, 누군가에겐 평범하지 않기도 한 삶이라고 느끼는 것이 아닐까.

"나"라는 인간을 소설을 따라 생각하게 한 놀라운 소설이었다. 그래서 철학 소설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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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탱 게르의 귀향
내털리 데이비스 지음, 양희영 옮김 / 지식의풍경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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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보았던 제라르 드 빠르디유가 주연했던 영화 <마틴 기어의 귀향>을 아주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었다. 단란해 보였던 한 가정과 재산 분배를 두고 일어난 고소, 새로운 증인으로 인해 그 가정의 가장이 본인이 아니라는 증언으로 일어난 재판 속에 등장한 진짜 마틴 기어. 내용 자체 만으로도 너무 충격적이었는데 무엇보다 완벽한 다른 인격인 것처럼 연기한 제라르 드 빠르디유가 무척 인상깊었다. 중고서점을 거닐다 <마르탱 게르의 귀향>을 보자마자 옛 기억을 떠올리며 데려온 이유다.

으흠~ 나는 도서를 구매할 때마다 항상 성급하다. 또다시 몇 년을 묵혔다가 읽어야지~하고 펼쳐 든 표지에서 보고야 만 것이다. "역사가의 상상력이 빚은 16세기 프랑스의 생생한 생활사" ! 뭐라고요? 소설이 아니라고요? 그 이야기가 실제라니.... 엣? 그럼 이 책도 소설이 아니라고? 멘붕에.... 멘붕...ㅎㅎㅎ

그래도 읽어본다. 의외로 난 역사를 좋아하고, 돈 주고 산 돈이니~ 이렇게 포기할 순 없다고... 이상한 똥고집이 또 등장한다. 그런데... 역시~ 재밌다. 그러니까 <마르탱 게르의 귀향>은 역사가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가 16세기 당시 실제했던 한 사건(마르탱 게르가 본인이 아닌 "팡세트"라 불렸던 희대의 난봉꾼 아르노 뒤 틸이라고 마르탱 게르의 삼촌 피에르가 고소한 사건)에 다방면으로 접근하여 사실과 가깝게 재구성한 책이다.

리으에서의 재판에 항소(피에르의 승)한 아르노 뒤 틸이 툴리노에서 다시 항소했고 그 항소심을 맡았던 장 코라스의 기록들과 실제 재판 기록, 장 코라스의 책을 기반 삼아 뒤이어 나온 책들을 기반으로 역사가의 상상과 배경지식이 합쳐져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여러 사람을 이해해 보려 한 책이 되었다. 무엇보다 항소심에서 장 코라스 판사는 진짜 마르탱 게르가 등장하기 전까지 아르노 뒤 틸이 마르탱 게르일 확률이 높다고 봤으며 아르노 뒤 틸에게 더 많은 공감과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음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여러 사람들이 싫어하던 난봉꾼 아르노는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마르탱 게르가 될 생각을 했는지, 무엇보다 마르탱의 부인 베르트랑드가 진짜 자신의 남편이 아닌지를 알고 있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처음에는 아르노가 진짜라고 주장하다가 아니라고 말을 바꿨는지 등이 무척 흥미로웠다.

몇 백 년이 지나도록 사람들 사이에 회자된 이 이야기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서 무척이나 충격적인 사건이었음에 틀림없다.(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가끔씩 리플리 증후군을 겪는 사기꾼들이 진짜 존재하니까. ) 역사가의 입장에서 그 당시 프랑스 시골 사회와 각각의 인물의 생각을 되짚어가는 과정이 정말로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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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란자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3
J.M 바스콘셀로스 지음, 이광윤 옮김 / 동녘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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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이후 오랫동안 그 뒤의 이야기를 읽어야지~ 읽어야지~하다가 이제서야 마무리한다. <햇빛 사냥>까지는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와 결이 같다고 느꼈다. 제제의 외로움과 아픔을 제제 마음 속의 누군가와 함께 나누는 이야기였으니까. 하지만 이번 3편 <광란자>는 조금 다르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가 제제의 5살, 뽀루뚜가 아저씨와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제제의 친구(라임오렌지나무 밍기뉴)와의 우정을 통해 철이 들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라면 <햇빛 사냥>은 그 이후 본가에서 다른 곳으로 입양을 간 제제의 청소년 시절을 그린 작품이다. 3편 격인 <광란자>는 <햇빛 사냥>에서 등장했던 마음 속 친구 두꺼비나 다른 영화배우 인물들을 떠나보내고 온전히 홀로 성인의 나이에 이르게 되는 이야기다. 제제와 함께 하던 누군가들이 사라져서 조금 아쉽기만 한데, 이제 거의 성인이 된 제제가 아직도 반항하는 모습이 아쉽기만 하다.



성인에 가까운 제제는 아직도 성급하고 제멋대로다. 다섯 살에 철이 들어 인생을 알아버린 것 같던 제제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여전히 방황하고 외로워할 뿐이다. 아마도 그건 어린 시절부터 받지 못한 사랑 때문이 아닐까.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들출 때마다 보이는 속표지 속 가족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그런 생각을 떠오르게 한다. 아이에게 얼마나 많은 애정을 쏟아야 그 아이가 제대로 자랄 수 있는지~!



뒤편 이야기가 있다면 무조건 읽고야 만다~라는 이상한 편집증 때문에 읽게 된 <햇빛 사냥>과 <광란자>였지만 왠만하면 추천하지는 않는다. 제제의 아름답고 안타까운 이야기는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에서 아름답게 끝내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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