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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모자 ㅣ 철학하는 아이 9
앤드루 조이너 지음, 서남희 옮김, 김지은 해설 / 이마주 / 2018년 1월
평점 :
다섯 살이 된 저희 둘째는 분홍이라면 사족을 못 씁니다. 엄마, 아빠, 언니까지 기겁하지만 어떨 때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분홍으로 치장할
때도 있지요. 한때일 뿐일 거라고 위안 삼으며 다양한 색을 좋아해줄 때까지 기다려주고 있죠. 요 또래의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은 분홍을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여성을 상징하는 색이 어느샌가 분홍이 된 것 같습니다. 유방암 예방 캠페인에 분홍 리본이 사용되는 것을 보면 말이죠.
처음 <분홍 모자> 그림책을 선택했던 건, 단지 우리 딸이 분홍이라는 색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이에요. 그렇게나 좋아하는
분홍색이 들어가는 그림책이라니, 얼마나 좋아할까... 하고요. 하지만 막상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다 보니 그저 쉽게, "분홍"이 등장하는 그림책이
아니었던 거지요. 물론 5살 아이에겐 아주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지는 못했어요. 그냥 그림책 그대로, 보이는 대로 읽어주었고요. 뒷부분 아이가
궁금해 할 만한 부분에선 간단히만 설명해 주었지요. 그 후 엄마의 공부가 필요했음은 두말할 것도 없고요.

건물로 가득한 도시, 맨 왼쪽과 맨 오른쪽 이웃한 거리에 한 아주머니와 한 아이가 살고 있네요.(사실 이 둘이 이 장면에 함께 등장한 다는
것은, 그림책을 3,4번 읽고 나서야 발견했어요.ㅠㅠ)
아주머니는 편안하게 편안한 의자에 앉아, 여자아이는 바이올린을 켜며 창문을 바라보고 있어요.

아주머니는 분홍 털실로 모자를 뜨고 있어요. 아주 따뜻해 뵈는 모자이지요. 이 분홍 모자는 아주머니의 모자도 되었다가, 따뜻한 발싸개도
되었다가, 고양이의 놀잇감이 되기도 해요.
하지만 이 고양이의 장난에 창문 밖 나무 위에 떨어지고, 그렇게 이 분홍 모자는 여행을 떠나게 되지요.
어린 아이들에게, 강아지에게, 그리고 드디어 한 여자아이에게 발견됩니다.
이 여자아이에게 이 분홍 모자는 어떤 의미가 될까요?
전 여자입니다. 두 딸을 키우고 있지요. 어린 시절부터 당했던 여성 차별이나 성추행들을 떠올리며 작년에 베스트셀러가 된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이나 최근 미투 사건들을 바라보았어요. 우리 아이들이 자라는 세상은 제발 좀 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난 어떤
행동을 했는지 돌아보게 만든 그림책이었습니다. 바로 이 <분홍 모자>라는 그림책이요.
작년 2017년 1월 21일은 세계 곳곳에서 500만 명의 여성이 행진을 벌인 날이라고 하네요.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취임식 다음
날이었고 트럼프의 여성 비하 발언으로 시작한 "세계여성공동행진"이었다고 해요. 우리나라에서도 강남역에 모여 수천 명의 여성들이 행진을 했다고
하네요. 나름 뉴스를 꼼꼼히 챙겨보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얼마나 놀랐는지요. 마침 함께 있던, 최건 여성 인권에 관심이 많은 16, 큰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요. 며칠 후 SBS 스페셜 다큐멜터리 "미투, 나는 말한다"를 함께 보며 한 번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죠.

배경지식을 넓히고 찬찬히 그림책을 들여다 보니 글은 별로 없지만 정말로 많은 것을 표현하는 그림책이란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림책이라서 어린
아이만 읽는 책이 아니라 중학생이나 어른들까지 모두 읽고 되새겨볼 수 있는 그림책이고요. 가만히 있으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고, 억울한 것이 있으면 함께 행동해야 한다는 귀한 교훈을 얻을 수 있었던 그림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