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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밤과 서쪽으로
베릴 마크햄 지음, 한유주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아름다운 책이다. 고즈넉한 배경의 표지뿐만 아니라 그 내용까지도 그렇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베릴 마크햄이라는 이름도, 그녀의 업적도
아니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이 책을 읽고 했다는 말, "이 책을 읽고 작가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다."라는 문장 때문이었다. 위대한 작가가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책은 도대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어떤 문장들이 가슴을 울릴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에세이의 고전이 되었다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말에 공감하며, 왜 에세이의 고전이 되었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보통 여성 조종사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아멜리아 에어하트이다. 최초 대서양 횡단 기록을 세우고 연속된 도전을 하다 비행기와 함께 사라진
조종사이다. 그녀 외에도 다른 여성 조종사들이 있었겠지만 언제나 "최초"나 "최단"이 붙지 않으면 후세 사람들에게 잘 기억되지 않는 게
사실이다. 이번에 베릴 마크햄의 에세이를 읽으며 그 옛날에도 새로운 도전에 끊임없이 도전한 여성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베릴 마크햄은 <이 밤과 서쪽으로>를 자서전이 아니라 했다. 생각나는 추억에 대해 적은 책이라고. 실제로 그렇다. 태어나서부터
순서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기억하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해 나간다. 그래서 에세이이다. 그런데 막상
읽어나가다 보면 에세이라는 생각이 그다지 들지 않는다. 문장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사건을 서술하는 묘사력이 너무나 뛰어나서다. 그녀의 경험
자체가 도저히 일상에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소재라서 그렇기도 하다. 이런 여러 요소들이 겹치니 마치 소설 같은 느낌을 많이 받는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감정에 온전히 빠져들 수 있다.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4살 때 아빠를 따라 케냐에 온 베릴은 거의 대부분의 삶을 아프리카에서 살았다. 또래 백인 여자아이들이 없어서인지 주변
원주민들과 함께 사냥을 하며 아프리카 초원으 누비며 자랐다. 원주민 소녀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던 이 경험들은 평생 그녀가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도록, 어떤 위험에 맞딱뜨려도 물러서지 않고 맞서 싸울 수 있도록 하였다. 처음엔 아빠에게서 배운 말 조련에서부터 비행기 조종을 배우고
대서양을 횡단하기까지 그녀의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왜 비행을 할까?"...(중략)
"그런데 그걸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너무 지루할 것 같아."...92p
남들은 행복이라고 여기는 안정감을 베릴은 지루하다고 한다. 그래서 매번 새로운 도전을 한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 그녀의 삶을 즐길 수
있었던 이유는, 모든 실수를 지나치지 않고 모든 이에게서 배움을 얻고 자신을 성숙시킬 줄 아는 여성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에세이지만 말의 입장에서 서술하기도 하고, 한 사건도 무척 다양한 묘사를 통해 전개시키기 때문에 굉장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
평생 한 번 가볼 수 있을까 싶은 아프리카라는 낯선 대륙에 대해 눈에 그리듯 느낄 수 있었다는 것과 20세기 초의 시대 상황(전쟁이나 인종
차별, 코끼리 사냥 등)을 가까이에서 목격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세세한 묘사가 정말 좋았다. 책은 대서양 횡단에서 끝이 난다. 그
이후의 삶은 또 어땠을지, 궁금해진다. 아마도 그녀는 또다른 모험과 도전에 뛰어들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