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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삼킨 아이
파리누쉬 사니이 지음, 양미래 옮김 / 북레시피 / 2020년 8월
평점 :
읽는 내내 불편했다. 작가 파리누쉬 사니이의 <나의 몫>을 읽으면서도 그랬지만 그땐 이란의 역사를 담고 있는 조금은 시간이 지난 이야기라서 그렇다고 위안 삼으며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이란이라는 나라가 세계에서도 보수적이기로 이름난 나라이기는 하지만, 물론 이란의 모든 남자들이 그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책 속 남성들의 권위적인 모습에 기가 빨린 느낌이다.
전작 <나의 몫>이 너무나 인상적이었고 흔히 읽을 수 없는 이란의 작품이기에 선택한 <목소리를 삼킨 아이>는 일곱 살이 될 때까지 말을 못했던 아이의 실화를 바탕으로 씌어진 작품이다. 소설은 20살의 생일을 맞은 샤허브가 사진 한 장을 보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는 형식이다. 뿐만 아니라 샤허브와 샤허브의 엄마 미리얌이 번갈아가며 서술한다. 때문에 같은 상황에서 샤허브와 미리얌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건 아빠 나세르인데 아빠가 직접 서술하지 않고 샤허브나 미리얌을 통해 이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부분이 좀 아쉬웠다. 내가 읽기 불편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나세르인데 말이다.
샤허브는 자신이 기억하는 가장 오랜 기억인 네 살에 말을 하지 못했다. 사촌들은 이런 샤허브를 "벙어리"라거나 "멍청이"라고 불렀지만 샤허브는 그렇게 말해주며 웃어주고 맛있는 걸 사주었기 때문에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비로소 그 말들이 자신을 놀리고 있었던 말이라는 사실을, 웃음에는 즐겁고 기뻐서 웃는 웃음뿐만 아니라 비웃음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런 주위 사람들의 행동이 샤허브가 가장 사랑하는 엄마를 얼마나 속상하게 하고 울리는지를 알고 그들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나쁜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나는 내가 벙어리라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것을 예민하게 인식했다. 내 영혼이 그때처럼 깨어 있던 순간은 그 후로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12p
보통 만 3세까지가 아이들의 잠재력이 무궁무진하게 발달하는 시기라고 한다. 아이를 직접 키우다 보면 우리 아이가 천재가 아닌가 싶은 시기가 바로 이때이다. 그런데 샤허브는 말을 하지 못했고 자신 혼자만의 세계에 침잠해 이렇게 발달시키다 보니 외부인의 입장에선 샤허브가 이상할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 읽다 보면 사실 좀 말이 늦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조금 더 읽다 보면 사실 샤허브는 말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직접 목소리를 내려 하면 심장이 쿵쾅대고 목구멍이 조여오는 느낌에 말을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아이를 가장 많이 관찰하고 이해해주어야 할 아빠 나세르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만 아이를 판단하려 했고 엄마 미리얌 또한 자신만의 우울에 빠져 있어 아이의 눈빛을 보고 소통하고 그나마 아이 편을 들어주기는 했지만 완벽한 보호막 역할은 하지 못함으로서 샤허브의 "벙어리"는 일곱 살까지 계속된다.
소설 속엔 샤허브가 함구증이 된 이유가 이것일까, 저것일까 추측하게 하는 여러 단서들이 나온다. 하지만 특정적으로 이것이다라고 보여주는 대신 이 가족이 샤허브라는 아이로 인해 어떻게 붕괴되는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아직 어린 아이인 샤허브는 샤허브대로 가족을 오해하고, 가족 또한 샤허브가 말을 하지 않으니 이해할 수가 없고 가족들 간에도 오해와 불신이 쌓인다. 그러니 외할머니 비비의 등장은 이 가족에겐 구세주와 같았을 것 같다. 아이를 온전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시는 분, 딸의 우울과 무기력함을 꼬집어 충고해주실 수 있는 분, 사위의 일중독과 가정의 소홀함도 꾸짖어주실 수 있는 분으로 말이다.
사실 앞부분의 내용에 비하면 뒷부분은 후다닥 끝내버리는 느낌이 없지 않다. 그래서 20살이 된 샤허브에게도 아직 어려움이 있음이 안타깝다. 물론 누구나가 여러 사람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사회적일 필요는 없다. 있는 그대로 그 사람 자체를 인정할 줄 아는 사회가 진정 배려할 줄 아는 사회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