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 그린 - 버지니아 울프 단편집
버지니아 울프 지음, 민지현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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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책은 언제나 도전 목록이다. 지금껏 여러 번 도전했으나 제대로 읽은 건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이번 <블루 & 그린>이라는 단편집은 "단편집"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역시나 도전이었다. 장편소설보다 단편이 훨씬 더 어렵다는 사실을 간과한 결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있었다고 하고 싶다. 버지니아 울프의 문학적 특징이 단편이기에 잘 드러났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미완성된, 그녀의 글 조각들을 읽을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책은 두고두고 생각날 때마다 읽을 예정이다.


맨 앞부분을 차지하는 "블루&그린"은 책 제목을 대표하고 있는 만큼 버지니아 울프의 사진 찍듯 묘사하는 특징을 아주 잘 드러내고 있는 단편이다. 줄거리나 상황 설명 없이 그저 초록초록한, 또한 푸릇푸릇한 장면들을 묘사한다. 블루는 나에게 익숙한 색은 아니어서 블루보다는 봄의 그 초록초록한 묘사가 훨씬 와 닿았다. 이 또한 40 중반을 넘어가며 깨닫게 된 것이지만. 이후 이어지는 몇몇 단편들은 그저 혼란스러울 뿐이다. 분명 대사도 있고 묘사도 있고 한데, 도대체가 "그래서 뭐..."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거다. (사실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읽으며 이런 말을 하면 안된다. 그저 받아들여야 할 뿐.) 도대체가 익숙해지지 않는 이 사실적으로 들여다 보는 듯한 한 장면, 한 장면의 단편들은 따라서 계속해서 나에게 "고스란히 받아들여!"라는 도전 단편들이 될 것 같다.


하지만 "프라임 양"부터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불가사의한 V양 사건"은 현대 사회의 익명성과 간섭하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라 특히 더욱 공감했던 것 같다. 그저 잘 살고 있을 거라고, 다들 다 그렇게 살지 않느냐고 적당히 무관심하게 사는 것이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런가 하면 "존재의 순간들"은 <올랜도>를 슬쩍 생각나게도 하는 조금은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풍기기도 한다.


무척 다양한 느낌의 단편을 한 권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다. 그리고 언제나 도전이 된다는 점도. 버지니아 울프의 책들을 읽을 땐 버지니아의 삶이 항상 먼저 생각나서 언제나 우울 모드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둘을 떼어놓고 글만으로 읽어야지, 하다가도 또다시 글 속에서 작가를 찾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더 오랫동안 그녀의 책들은 내게 숙제와 도전이 될 것 같다.


*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버지니아울프 #블루&그린 #더퀘스트 #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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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여성, 나혜석과 후미코
나혜석.하야시 후미코 지음, 안은미 옮김 / 정은문고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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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자마자 "우왓"을 외쳤다. 뛰어난 편집력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표지 안쪽 옮긴이 소개를 읽다가 알았다.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작가 시리즈'를 엮었다는 사실을. 그럼 믿고 읽는다. '작가 시리즈'부터 좋은 주제로 잘 알려지지 않은 글들을 묶어 펴 낸 것에 무척 감동이었다. 그런 그가 엮은 책이다. 역시나 마찬가지로 식민지 조선의 부귀한 나혜석과 일본의 가난한 작가 후미코의 비슷한 여행기를 함께 읽는 책이다.


나혜석에 대해선 여기저기서 귀동냥으로 주워들어 대강은 알고 있었다. 또한 여성의 인권에 대해 쓴 글에 대해서도 한 편 정도는 읽어본 적이 있었다. 나혜석이라는 여성의 삶을 알고 읽은 그 글은 무척 처절하고 아렸다. 하지만 이번 책에서의 <구미여행기>는 그녀의 불행이 막 시작되기 전 혹은 그 불행의 씨앗이 되는 글이다. 때문에 왠지 이 글이 곧 일어날 불행에 앞선 전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나혜석의 여행기는 무척이나 무미건조하다. 마치 여행기라기보다는 간단한 메모를 모아놓은 것 같다. 자세한 묘사나 설명, 자신의 느낌이나 감상 같은 것보다는 어디를 갔고 누구를 만났으며 무엇이 있다 정도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후미코의 <삼등여행기>는 사뭇 다르다. 작가의 글솜씨 그대로 마치 요즘의 여행 에세이를 읽는 듯 그곳 장소나 주변 거리 등의 설명, 묘사보다는 그곳에서 겪은 일 위주로 서술되고 있다. 어쩌면 이건 식민지 여성과 다스리는 나라의 여성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비록 나혜석은 1등칸을 타고 최고로 유명한 곳에 지체 높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이어지지만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위치이고 후미코는 3등칸을 타고 언제나 돈에 쪼들리지만 그 무엇에도 거리낌없는 마음가짐이기 때문이라는 것 말이다. 그런 점들을 비교해서 읽고 있자면 비록 이 두 편의 글은 모두 여행기이지만 우리 역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고 때문에 가슴 한 켠이 아파온다.


여행은 현실을 벗어나 쉬고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우기 위해 떠난다. 실제로 좋은 여행은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자양분이 되기도 하는데 두 여성의 여행이 각자의 역사와 사회 상황에 따라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이어 생각하면 안타깝기만 하다.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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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언제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끼십니까?"
그가 숨죽이고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대화하듯 말을 건넸다.
"여러분을 가둬두는 것이 공간이든 시간이든, 저와 같은 신체적 결함이든…. 부디 그것에 집중하지 마십시오. 다만 사는 동안 여러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데만 집중하십시오. 그 과정에서 절벽 끝에 서 있는 것처럼 위태로운 기분이드는 날도 있을 겁니다. 올해의 제가 바로 그랬죠. 저는 이번 꿈을 완성하기 위해 천번만번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을 꿔야 했습니다. 하지만 절벽 아래를 보지 않고, 절벽을 딛고 날아오르겠다고 마음먹은 그 순간, 독수리가 되어 훨훨 날아오르는 꿈을 완성할 수 있었죠. 저는 여러분의 인생에도 이런 순간이 찾아오길기원합니다. 그리고 제가 만든 꿈이, 그런 여러분에게 영감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겁니다. 큰 상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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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의 일주일
메이브 빈치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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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무엇을 하다가 "메이브 빈치"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온라인 서점에서 이 작가의 이름을 발견하면 마구!

정말 아무 의식 없이 이 작가의 책을 장바구니에 담기 시작했다. ㅋㅋㅋ

도대체 무슨 짓인지~!

그냥 느낌이 왔나 보다. 무조건 재미있을 것 같다는 그런 느낌!

500여 쪽에 달하지만 정말 틈날 때마다,

못 읽어서 안달이었다.

너무 궁금하고 재미있고 막~ 설레고!

그런 재미로 책을 읽는 거지~^^

무엇보다 메이브 빈치의 책에는 "인생"이 담겨있지 않은가.

누구나 인생의 시련을 겪을 때가 있고 그런 순간마다 꿈꾸는 "쉼!"

그 쉼터에 스톤하우스는 정말 적격이다.

읽는 것만으로 "쉼"이었다.

나도 그런 휴가를 떠나고 싶다고, 직접 아일랜드를 찾아가 볼까 싶기도 했는데

그보다는 이렇게 메이브 빈치의 또다른 책을 찾아나서겠다고...ㅋㅋㅋ

결심해 본다.

오랜만에 느긋하게 (사실 궁금해서 빨리빨리~) 쫓기지 않고 읽은 책이라 더욱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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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델과 또 다른 유령 - 마음의 얼룩을 사진 찍을 수 있을까? 미래그래픽노블 11
브레나 섬러 지음, 임윤정 옮김 / 밝은미래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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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그래픽 노블을 많이 만나게 되는 것 같다. 몇 편의 그래픽 노블을 경험하며 얼마나 문학적인지 충분히 느끼게 됐다. 어린 아이들이 읽는 저학년 그래픽 노블도 그렇지만 진정한 매력은 청소년용일 때 극에 달한다. 문학적 깊이가 더해지고 그 안에 담긴 주제가 훨씬 의미있게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다.


<웬델과 또 다른 유령>은 <웬델>의 두 번째 이야기다. <웬델>은 읽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두 번째 이야기를 읽다 보니 <웬델>이 정말로 궁금해졌다. 두 번째 이야기를 통해 첫 번째 이야기를 유추하는 것도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정작 주인공 마조리와 유령인 웬델이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에 대해선 밝혀지지 않아 궁금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웬델과 마조리는 친구이고 마조리의 어려움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됐음은 알아챌 수 있다. 대신 제목에서처럼 2편에선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유령처럼 떠도는 다른 인물이 등장한다.





마조리는 엄마의 죽음을 어느 정도 극복했지만 동생 오웬은 그렇지 못했고 마조리의 학교 생활도 평탄하지는 않다. 괴롭히던 친구는 어느새 그룹을 이루어 자신을 "우리 마조리"라고 부르며 좌지우지하려고 하고 남자친구라고 믿었던 콜튼은 애매한 자세를 취한다. 여전히 삶은 힘들고 어떻게 해야 자신으로 남을 수 있는지 헷갈린다. 하지만 삶은 지속되고 삶의 주인은 "나"다.





때론 사람들 사이에서 유령처럼 사라지고 싶어도 유령으로 느껴진다 해도, 나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잃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손을 내밀면 누군가는 그 진실함을 알아줄 수 있지 않을까.


마조리처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는 작가는 이 작은 마을에서 듣고 자란 유령에 익숙해져 있고 그 어린 시절 아이들 사이에서 있을 법한, 겪을 법한 이야기들을 찬찬히 잘 엮어나갔다. 사실 처음엔 유령 이야기라서 초등용 그래픽 노블인 줄 알았는데 청소년용이다. 세심한 감성과 친구들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이해하려면 초등 고학년 이상은 되어야 제대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무엇보다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갔으면 한다.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웬델 #웬델과또다른유령 #마음의얼룩 #밝은미래 #그래픽유령 #청소년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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