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말 - 새로운 번역과 원문을 통해 만나는 셰익스피어의 인생 철학 110가지
가와이 쇼이치로 지음, 박수현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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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에 앞서.

[마음이 가는 문구를 넘어, 교훈이 되는 문구] 를 주장하는 이 책의 주제는 분명 이를 접하는 수 많은 독자들을 격려하기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야말로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때때로 어떠한 격려과 용기를 받고자 할때.. 이에 많은 사람들은 이때 비로소 '학문의 문'을 두들기지만, 곧이어 생각해보면 그 아무리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인물이라 해도 셰익스피어는 소위 '극작가'의 삶을 산 인물이기에, 이에 그가 현실적으로 어떠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가에 대하여 나름의 의구심을 품을 수 있는 여지도 있다 생각이 된다.

물론 셰익스피어 스스로가 후대를 위한 '학술적 글쓰기'를 행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극작가로서, 수 많은 작품들을 써내려가며, 그 작품의 내면에 나름의 주제를 녹여냈고, 이에 저자는 그 주제의 일부를 꺼내어 '인생의 메시지'라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저 먹고 자기만 하면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다면? 짐승과 다를 바 없다.

신은 우리에게 앞을 내다보고 뒤를 되돌아보는

큰 사고력을 주셨다.

그 능력과 신에 버금가는 이성을

가졌음에도 썩혀두어 좋을 리 없다.

햄릿 제4막 제4장 164쪽

물론 세상은 그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빛을 발한다. 예를 들어 문학으로서, 그리고 오랜 지성의 아름다움을 회상하는 하나의 상징으로서, 그의 작품들은 그 영국이라는 하나의 나라를 넘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어 오늘날까지 이르렀다. 덕분에 셰익스피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로미오와 줄리엣'을 알고, 또한 책을 읽지 않아도 '베니스의 상인'의 줄거리를 알게 되었지만, 허나 그렇다고해서 단순히 상식으로서 아는 것만으로 셰익스피어가 지닌 오늘날의 명성과 가치까지 오롯이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에 나 스스로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각설하고 저자는 그 나름 깊이 셰익스피어를 이해한 인물이다. 그야말로 옛 영어권의 작품을 접하고자 할 때 마주하는 난관과, 또 이를 번역하는 와중에 마주한 어려움에 대하여, 저자는 이를 두고 "대사의 의미를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권하겠다" 고 했다. 말 그대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 그리고 인물들의 대사를 비롯한 수 많은 표현을 포함하여, 저자는 오롯이 작품의 깊이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한 것이다.

이는 분명 셰익스피어를 향한 (나름의)애정이 없다면 할 수 없는 말이다. 좀더 그의 작품을 이해하고 싶은 열망, 그리고 무엇보다 셰익스피어의 의지가 왜곡되는 일이 없이 알려지고 이해되어야만 한다는 열망이 이 책의 이곳저곳에 드러나는 것 같다. 때문에 저자가 말한 '인생의 격언' 또한 한낮 어느 작품 속의 독백이나 대사가 아닌 또 다른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야말로 리어왕과 포샤... 다른 수 많은 인물들의 말이 드러난 그의 작품들은 결국 그 시대의 삶을 살면서 단련한 '인물' 스스로의 가치를 오롯이 담아낸 그릇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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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왕릉실록
이규원 지음 / 글로세움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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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까지 나 스스로가 흥미를 가져온 역사... 그중 (과연) 한반도의 역사는 '나에게 있어서 어떠한 위치에 놓여 있을까?' 예를 들어 단순히 (스스로) 독서로서 마주한 여러 역사서의 대부분은 서양사와 일본사 그리고 인물로 나누어지는 타국의 것이 많았다. 물론 이는 이미 어린시설부터 '국사'(지금의 한국사)를 통틀어 크게 교육을 통해 학습한 지식에 만족하고 말았다는 일종의 '나태함'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한다.

실제로 수 많은 사람들은 해당 (국가) 스스로의 역사에 대하여 '유구하다'라고 하지만, 정확히 각각의 역사가 어떠한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에 대한 탐구에는 게으르다. 예를 들어 이 책에도 기록에 있어 가장 크게 기대는 것은 어쩌면 '삼국사기'가 아닐까 하지만, 과연 지금 현대인의 입장에서 그 삼국사기는 어떠한 가치관으로 이해되어야 하는가?

왕 19년 2월, 여우때가 궁중으로 몰려와 그중 백여우 한 마리가 상좌평 책상에 걸터 앉았다. 4월 태자궁 암탉이 참새와 교미했다.

460쪽 백제 부흥운동

예를 들어 현대의 가치관에서, 과연 알을 깨고 태어난 '인간' 그리고 더욱이 150년 이상을 장수한 어느 인물 등을 비추어 이를 오롯이 진실이라 인정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역사라는 학문은 단순히 그 기록을 마주하고, 읽고 이해하는 행위 죽 기록의 유무를 앎으로서 만족해야만 하는 것일까?

물론 역사는 오래될수록 그 진실을 발견하기 어렵고, 또한 기록의 양에 따라 견고함이 더해지는 학문이다. 때문에 지금까지도 고대 한반도 역사는 그 기록과 현실의 경계 속에서, 한계를 오롯이 가지고 있으며, 이에 사람들 또한 역사와 야사를 구분함으로서, 역사의 정체성?을 이끌어내려 하였지만, 과연 그 경계를 구분짓는 것만이 역사의 쓸모를 증명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는가. 아니... 도리어 역사학은 그 존재의 증명을 넘어, 그 (해당)기록이 지닌 역사성 등을 탐구함으로서, 이를 현대의 후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그 방향성을 제시하는 학문이 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역사를 풍미한 유명 인물의 공과는 사서에 기록된 행적이나 사가들의 연구 결과에 의해 평가된다. - 중략- 동일인의 평가에 대해서도 사학의 견해는 다를 수 있다.

442쪽 김유신

실제로 과거와 오늘날 어느 한 인물과 문명 그 경계를 넘나들며 생겨난 '상식'또한 이후 소위 방향성에 의하여 크게 변화해 왔다. 물론 이는 역사학의 수 많은 가설들이 충돌함으로서 만들어진 '합리적인 역사'이기도 하지만, 크게 생각하면 과거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 발견됨으로 하여 수정된 지식, 즉 유물과 기록의 발견과 연구의 결실로서 수정되어진 역사학의 진보의 일면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처럼 결국 역사의 가설을 증명하는 방법은 바로 과거의 증거를 발견하는 것이다. 물론 이에 기록을 탐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자는 더 나아가 이 땅에 남아있는 증거, 즉 무덤에도 큰 가치가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무덤은 그 주인의 인물이 실제했음을 증명하기도 하지만, 이후 부장품과 수 많은 유물을 통하여, 그 당시의 문화와 기술 등을 가늠하게 해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저자는 한반도의 왕릉을 역사의 중심축으로 삼고, 그 해당 인물들을 바탕으로 한 한반도의 삼국시대를 표현했다.

물론 덕분에 이 책의 삼국시대는 소위 지도자들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는 인물의 역사가 되어버렸다. 고구려, 백제, 신라... 그리고 그밖에 주변의 여러 국가들의 운명을 결정지은 역사적 사실 속에서, 이에 오늘날까지 그 이름을 남긴 무덤의 주인들은 어떠한 삶을 산 인물들이였을까... 이에 한번 그 궁금증을 가지고 역사에 다가서 보는 것도 그 의미가 크다고 생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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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역사학 선언 - 근대 동아시아에 나타난 역사적 전환들
강상규 지음 / 에피스테메(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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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극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이 '걸어 나아가려 하는 길' 그리고 그 배경 속에서 피어난 갈등과 그 갈등의 중심에 선 역사에 대한 인식과 정의에 대하여... 어쩌면 사람들은 그 역사 자체를 미래의 전진에 방해가 되는 일종의 족쇄로 여길지도 모를 일이다. 예를 들어 각 국가의 사회 속에 만연한 '비판'과 '혐오' 사이에서 그들은 저마다의 현상 속에서 (나름의) 정의를 품고 있다.

어째서 일본은 과거의 전쟁범죄에 반성하지 않는가? 어째서 중국은 새로운 질서를 꿈꾸며 '패권주의'에 매달리는가? 또 이를 이유로 지적하고 수정하려는 한국(국내)에서의 움직임은 과연 어떠한 인식과 정의를 배경을 가지고 있을까... 이처럼 (적어도) 대한민국의 수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또 불안해하는 어느 현상에 대하여, 적어도 이 책은 역사를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보다는 보다 폭 넓은 이해가 중요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는 감상을 준다.

이처럼 동아시아 삼국에 19세기는 상이한 패러다임의 만남과 충돌 속에서 빚어지는 고민과 혼돈, 모색과 좌절이 뒤섞인 '위기의 시대'였다.

67쪽 서양의 팽창과 '동아시아 문명기준의 역전'

그야말로 저마다 걸어 온 역사의 패러다임 속에서, 분명 각각의 국가들 또한 (저마가) 추구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목표'를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목표를 이루는 과정 속에서 적어도 한반도의 민족은 힘에 유린되었고, 또 정복되기도 한 과정을 거쳤다. 이때 이를 극복하는 와중에 형성된 '정의'가 현재 대한민국의 역사관의 중심에 서 있다면? 결국 힘에 기댄 정의는 적어도 대한민국의 정의에 있어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가치로 다가올 것이다.

허나 현대 국제적인 현상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그 경계의 과정은 갈등을 이끌어내었다. 특히 역사의 과거를 옳고 그름으로 바라보는 이분법적 사고가 만들어낸 폐해는 그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 특히 더 두려운 것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에 이르기까지 앞서 언급한 흑백논리가 통용되면서 더욱 더 커다란 갈등을 만들어내는데 있을 것이다. 때문에 과거 역사의 인식을 대신할 새로운 인식을 주문하면서, 저자는 과연 어떠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일까?

각자의 내러티브는 내부자들간의 유통되고 소모될 뿐, 국경이나 진영을 넘나들며 공유되거나 풍요로운 대화로 들어가지 않는다. -중략- 역사의 진실은 없고 자기중심적인 해석들만이 평행선을 그리며 대결한다.

37쪽

결국 저자가 제안하는 바는 이해라는 단어로 압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어느 사건에 대한 저마다의 해석과 정의가 충돌할때 결국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류와 안목으로 다져진 '지성'에 기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어쩌면 이 책이 드러내려는 가장 큰 주제가 아닐까? 물론 오늘날의 수 많은 사람들 또한 저마다 정의와 지성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들이 만들어낸 인식을 통하여, 국가가 이익을 탐하고, 공동체를 선동하며, 끝끝내 과거의 상처를 가리려는 비봉책으로 소모하려 한다면... 결국 역사라는 학문이 가지는 가치 뿐만이 아니라, 그 학문이 나아가려는 목표에 이르기까지 그 수 많은 방향 또한 일그러게 된다는 것을 한번 경계해 보는 것도 의미가 크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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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근대적 건강을 상상하다 - 근대적 과학지식과 해피 드러그 건국대학교 아시아콘텐츠연구소 동아시아 모더니티 7
김경리 외 지음 / 소명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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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드러그'(행복 약물?) 이는 언듯 들어보면 크게 일상생활에서는 들어보지 못하는 단어인 것 같지만? 오늘날 '건강보조식품'으로 팔리는 여러 약물 등을 떠올리면, 이에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처럼 현대인이 건강식품을 소비하는 것에는 크게 질병예방이라는 목적이 더해진다. 그러나 때때로 크게 효능이 보장되지 않은 발모제와 근력강화제, 또는 피임제 등이 소비되는 현상은 과연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 혹 그 이면에는 현대 사회적인 현상에 더해 개인 스스로의 욕구충족을 위하여, '삶의 질을 핑계삼아' 또 다른(형태의)소비를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처럼 보다 다양한 소비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만한 여건 (또는 시스템)이 구축되었다는 것이다. 이때 이 책은 그 시스템이 구축되어가는 과정... 흔히 근대의 발달과정에서 생겨난 새로운 소비문화가 만들어지는 와중 극동아시아 전체의 흐름에서 보여진 나름의 특징을 드러내려 한다.

두개의 신문광고가 의미라는 것은?

1920년 소비를 향한 대중의 욕망은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에서도 끓어오른다. '박래품' '양품' 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을 통해 들어오는 상품의 소비는 '신세계'의 문명을 체감하는 지름길이기도 했다. -중략- 아래 신문기사는 '모던 걸' '모던 보이'가 되고 싶은 조선인들의 욕망을 그대로 보여준다.

139쪽 대중소비시대의 도래

그러나 새로운 소비의 시대, 특히 소비의 여유가 가져다준 시대의 흐름을 그리는데 있어서, (결국)식민지 조선의 지위는 너무나도 모호하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당시 시대의 '제국주의'는 크게 식민지의 착취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제국 스스로의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자본)시장의 확보라는 것에 주목하여보자, 각설하고 결과적으로 제국 일본은 본국 뿐만이 아니라, 식민지 조선에 있어서도 해피 드러그를 유통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는 크게 상품의 개발과 유통, 광고와 소비에 이르는 방대한 시스템의 발달을 불러와 (해당)소비자들로 하여금 근대의 가치에 걸맞는 욕망을 지니게 했다.

실제로 (책 속의) 여느 상품들을 광고하는데 있어서, 구시대의 '만병통치약'이라는 표현은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앞선 서양의 문화권에서 인정받은 지식(또는 권위),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는 것... 이른바 근대 가치관에서 보여지는 과학만능주의가 의학의 영역에까지 확산됨으로서, 이를 신뢰하는 풍조가 소비를 이끈다.

결과적으로 그 변화는 오늘날의 현대에도 그대로 계승되었다. 때문에 근대의 소비풍조를 이해하는 것은 현대사회의 많은 현상을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야말로 정치(통치)와 상관없이 모두의 욕망을 상징한 해피 드러그는 그야말로 근대에 널리퍼진 '건강의 상품화'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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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이야기 부산대학교 일본연구소 번역총서 5
아쓰지 데쓰지 지음, 류민화 옮김 / 소명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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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대한민국 신문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가? 아니... 신문 뿐 만이 아니라, 서적에서 공문서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국한문혼용'은 일상사회에 있어서 뿌리깊게 박힌 현상이였다. 그렇기에 나의 어린시절에도 한자는 나름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실제로 학교에서도 한자를 가르쳤고,심지어는 언론조차도 점차 한자에 익숙해지지 못하는 '신세대'들이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것이라는 것을 사회문제로 꺼내 보도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러한 걱정과는 달리 오늘날에는 '한자문맹'따위는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다. 그도 그럴것이 이제 (한국)사회는 순한글에 익숙해져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로 인하여 생겨나는 문제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옛 기록에 대한 접근성에 문제가 있는'단점' 이외에 한글화가 가져온 '장점'은 없는 것일까? 아니다. 어쩌면 한국사회는 한자의 어려움에서 벗어남으로서, 비교적 옛 전통(한자문명)에 안주하는 사회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인 세계를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영어 붐이 일지 않았는가?)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한자가 1000자, 일반 사회에서 문자 사용기준인 '상용한자'가 1945자, 그 이외에 '인명용 한자'가 284자가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일본에서는 대략 2000개 남짓의 한자를 사용할 수 있다면 사회 생활을 하는데 불편하지 않다고 일단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180쪽

때문에 적어도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는 (책 속의) 한자의 세계화에 대하여 그리 공감하기에는 쉽지 않게 되었지만, 저자의 조국, 즉 일본사회에서는 그 나름 사정이 달라지게 된다. 물론 그것은 오래전 일본 스스로가 한자문화권에 들어 이를 계승하고 발전시킨 덕분이다. 또한 일본어 문자 자체의 한계를 한자에 빌어 극복하는 과정도 있었으니... 결과적으로 일본 국어에 있어 '일본 한자'또한 이미 필수가 되어 그 중요성도 커져 있기도 하다.

다만 저자는 단순히 문자인 '한자가 지니는 역사성' 그리고 오늘날까지 미친 한자문화의 영향력을 되돌아보고자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도리어 저자는 오랜 역사속 일본이라는 국가가 한자를 받아들인 것을 인정하는 동시에, 오늘날 높은 '국격'을 이루는 와중에서 일본의 한자 또한 그 '세계적인 전달수단' (문자)로서 지위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하여 이 책을 지었다는 감상이 든다.

오늘날의 일본어는 표의문자인 한자와 표음문자인 히라가나.카타카나를 구별하여 쓰고 있습니다. -중략- 성질이 다른 문자를 적어도 3종류나 자유자재로 구별하여 쓸 수 있는 언어는 세계적으로 거의 유래가 없습니다. 그 점에서 일본어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지극히 유일한 표기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91쪽 가나의 발생

한자는 세계의 문자로서 역활을 할 수 있을까?

결국 이 책을 마주하다보면 위의 의문을 마주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오늘날 세계화시대에 있어서, 한자가 차지 할 수 있는 역활은 어떠한 것이 있는가? 그리고 현재 한자는 극동아시아 일부의 문화권에서 사용되는 한정된 문자라는 인식을 과연 저자는 어떠한 주장으로 반박하려 하는가? 그리고 한자라는 문제체계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표의문자는 미래에 어떠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가... 결국 저자는 오늘날에 이어 미래의 문자 그 역활의 중심에 한자 또한 나름의 장점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른바 표의문자로서의 장점, 시각에 형상을 통해 알기 쉽게 다가설 수 있다는 장점은... 과연 크게 활용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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