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자들 3 - 사회 발견자들 3
대니얼 J. 부어스틴 지음, 이경희 옮김 / EBS BOOKS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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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하나의 국가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 국가의 공용어와 문자를 사용한다. 그 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특유의 보다 첨단을 달리는 기술의 혜택을 누리고 또 사회 문화적으로 진보된 가치관을 통하여 형성되어진 많은 인식 등을 공유하며, 그야말로 '나'는 다른 수 많은 교육 등을 통하여 '현대의 국민으로서' '또는 문명인으로서' 어떠한 의무와 권리의 가치를 가늠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나름의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처음 이 책이 표현하는 이전의 역사는 오늘날 '당연하게 생각했던 수 많은 것이 없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물론 당연하게도 앞서 언급한 모든 것은 역사의 진행과정에서 발전한 결과물임이 틀림없다. 다만, 한 언어를 설명하는데 있어서도 (서양의 중세 초) 국가간이 아닌 나름 떨어진 도시 사이에서도 서로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정도였다니... 그것은 결국 단순히 사투리라는 어느 방언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사회 고위층들이 공유하고 독점한 (공용어의 지위를 가진) 라틴어가 막상 당시 사회의 (토착어)언어의 형성에는 그리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는 것이며, 또한 서로의 활발한 교류가 아닌 독자적으로 성장한 당시 사회의 한 단면이자 한계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오늘날 라틴어가 (대중사회에) '죽은 언어'가 되었다는 점, 더욱이 각 유럽의 국가들이 스스로 자국어라 부를 수 있는 언어를 선택하고 또 발전시켜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결국 문명은 점차 자신만의 것이 아닌 보다 폭넓은 융합을 통해 나름 결과를 축척해 온 것이다.. 그야말로 역사는 보다 선진적인 기술과 가치, 또는 최초라는 지위에 대하여 눈여겨볼 것이 아니라, 그 어떠한 것들이 발생하여 전파되는 것이 어떠한 문화와 가치관 아래서 빛을 발하는가를 마주하고 또 현대에 있어서 그 가치를 어떠한 모습으로서 계승해야 하는가에 대한 끝없는 탐구와 시도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학문으로서 기능해야 마당하다. 는 것을 보다 학문적으로 접근한 것이 이 책의 주제가 아닌가 한다.

서구의 위대한 종교도 반복되는 동물의 세계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정반대의 길을 찾아냈다(...) 역사 속으로 향하는 길을 추구했다. 경험에서 도피하는 약속 대신에 경험에서 의미를 찾았다.

174쪽

결국 역사 속에서 보여지는 수 많은 가치관... 예를 들어 정치, 사회, 문화, 기술에 이르는 인간문명의 핵심요소들은 오늘날까지 커다란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과거 단순한 왕정국가에서 오늘날 자유와 민중을 상징하는 민주주의가 대세를 이루게 되기까지, 정말로 많은 역사적 사건들은 그야말로 인간이 보다 더 높은 차원의 욕망과 지성을 추구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그렇기에 이에 그 다음의 시대에서 다루어질 가치관은 과연 어떠한 모습인가에 대한 궁금증은 (나름) 이 책을 마주한 이후 생각해 볼 수 있는 최고의 질문이 되어줄 수 있다. 각설하고 지금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긍정하는 세상'은 특권과 권리가 평등한 사회, 그리고 무엇보다 국가가 보다 높은 차원의 발전을 이루는데 있어서, 평등과 박애의 기치를 그 바탕에 두어야 한다는 전제(또는 합의)가 이루어진 공동체를 뜻한다.

그러나 교양있는 유럽인들은 마침내 '고전적'이고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통을 벗어나 전 세계가 문명의 혈통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316쪽

그러나 지금까지도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서구식 가치관'의 영향력에 (더욱)익숙하고, 심지어 과거의 잔재에 불과한 수 많은 지식과 상식을 버리지 못한다. 과연 그 까닭은 무엇인가? 물론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미국과 영국 등 수 많은 서구식 가치관들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보급되고, 학습되어 결국 그것이 현대사회의 높은지성으로 인정받고 소비되어간 한 시대의 모습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앞으로도 그러한 인식이 계속 지속되면서 발생될 수 있는 현상... 더욱이 그것을 통하여 앞으로의 인류가 더 나은 차원의 사회적 발전을 이룰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이처럼 이 책은 앞으로 발전되어야 하는 인류 공통의 가치관 그리고 보다 세계적인 차원의 교류와 지식 등의 융합을 주문하는 나름의 내용이 담겨있다는 감상을 준다. 물론 오늘날의 세상 또한 모든 현상에 대한 탐구와 이해가 이루어져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다만 적어도 오늘날은 과거와는 다른 '어느 시대의 지배적인 사상과 고정관념 등에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에 있어서,' 이에 인류가 보다 뛰어난 발전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를 품을 수 있다고 생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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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포니원 - 포니를 만든 별난 한국인들
강명한 지음 / 컬쳐앤미디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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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급격한 산업성장을 이룬 나라다. 물론 그 영향으로 인하여 정치.사회적으로 여러가지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한국인의 특성을 만든 산업화의 영향은 이후 과거가 아닌 미래를 이끌어갈 세대에게도 그 나름의 가치관을 계승하게 할 나름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과거 성공을 이룬 이야기를 마주하는 것은 오늘날에 있어서 그 어떠한 도움도 되지 못한다. 물론 자동차 산업을 주제로 한 이 책은 이전 변변한 자동차조차 생산하지 못했던 대한민국의 기술. 산업 속에서 사람이 어떠한 성장을 이루어냈는가에 대한 그 과정과 결과를 비춘다. 허나 그 결실이라고 할 수 있는 포니자동차가 출시된 1976년와 2022년의 대한민국의 모습은 그 모습 뿐 만이 아니라, 내면의 여러 환경 또한 다른 것이 사실이 아닌가? 예를 들어 오늘날의 젊은 사람들에게 회사에 종속되거나, 일과 성과를 위해서 개인의 일과를 포기하라고 한다거나, 때때로 실적과 성과를 최대의 보상으로 생각하라 주문한다면, 분명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1986년 정우사에서 출간했던 책입니다. (...)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태동기를 1인칭 시점으로 생생히 묘사한 책이 드물어 사료적인 가치도 있고(...)

13쪽 35년만에 드리는 인사

때문에 알고 보니 이 책은 본래 1986년에 처음 출판된 책이라고 한다. 이는 아직까지 대한민국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이였던 시절 또는 국가의 성장과 실적이 국민의 긍지이자 또는 절박한 희망이였던 시절이였기에, 분명 기술자의 기억은 소위 '헝그리 정신'을 주문하던 당시의 필요성과 융합하며, 보다 긍정적인 감상을 이끌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언급한 것과 같이 오늘날 2022년의 독자들은 과거와는 다른 가치관을 지니고 있기에, 분명 과거와는 다른 감상을 가질 수 있다. 이때 나 스스로가 가진 감상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한국의 산업이 막 일어나던 시절, 막대한 투자와 노동자의 헌신이 오늘날 '자동차 산업'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접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저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어떠한 성과를 이루기 위하여, 선택한 길이 지금에 이르러서는 마냥 권장 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라는 것이다.

물론 포니가 완성되기까지 일개 '기술노동자의 길'을 걸었던 저자조차도 일본과 영국 독일 등을 아울러 세계를 돌아다니며 '배움을 청한 것'은 그만큼 저자가 기술을 갈망하고 또 필요로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야말로 이는 당시 현대의 직원이자 포니 프로젝트에 참여한 기술자로서, 그들이 단순히 '기업' 현대의 1호차를 만들겠다는 것이 아닌 대한민국 최초로 국산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남다른 의식을 가지고 그같은 실행력을 발휘했다는 사실을 비춘다. 그렇기에 이후 오늘날에 있어서, 이 가치가 빛을 발하는 영역 또한 단순한 어느 산업이 아닌, 스스로 어떠한 것을 시작하기 위하여 가져야 하는 나름이 각오와 노력, 그리고 사고의 유연한 변화 등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예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외국에서 발달한 자동 제어와 여러 가지 자동 기계를 잘 생각해보면, 귀찮아도 참고 그저 꾸준히 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조금이라도 일을 편하게 하려고 머리를 짜내고 더 나은 대안을 궁리한 사람들에 의한 것이다.(...) 바로 이렇게 머리를 쓰는 방향성으로 사람들을 유도하는 것이다. (...) 품질 좋은 차를 만드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228쪽

실제로 처음 손수 선반과 밀링머신을 톨려 부품을 만들고, 또 엔진을 만들던때 이들이 그저 단순한 노동자나 숙련된 장인만을 꿈꾸었다면 분명 오늘날과 같은 산업의 발전은 없었다. 그러나 저자를 포함한 많은 젊은이들이 그저 꿈같은 미래를 그리고 또 그 실행과 방향성을 제시한 '리더'를 따라, 그 스스로 또한 미지의 기술발전과 숙련을 꾀한 결과가 어떠하였는가... 이에 그 결과는 이 책 속의 성과만이 아닌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모습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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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선의 사람들 - 후쿠시마 원전 작업자들의 9년간의 재난 복구 기록
가타야마 나쓰코 지음, 이언숙 옮김 / 푸른숲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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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전을 통하여 생겨난 '콘텐츠의 공유'는 분명 오늘날 개인의 삶과 여가에 있어서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이때 단순한 오락의 공유를 떠나, 세계에 일어나는 여러가지 현상이 공유됨으로 인하여 이제 '세계인'은 멀리 떨어진 외국의 일 또한 보다 빠르고 현장감있게 접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대신 여과없이 쏟아지는 정보를 접하는 와중에서 생겨나는 여러 문제점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하는데는 지금도 여러 해결책이 나와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각설하고 2011년 일어난 동일본대지진과 이후 일어난 쓰나미는 분명 일본사회를 넘어 전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콘텐츠의 공유와도 무관하지 않은데, 실제로 오늘날 많은 사람들 또한 언론의 정보를 뛰어넘어, 재난을 마주한 수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영상을 보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마주하며 충격을 받고, 또 안타까운 마음을 품었다. 그러나 이후 그들이 재난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가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크지 않다... 아니 적어도 이 책은 세계인 뿐만이 아니라, 재난의 당사자인 일본 스스로도 '후쿠시마 원전' 을 잊어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는 동일본대지진의 여파로 해당 시설의 파괴(또는 폭발)와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며 매우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결국 그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서 일본정부가 선택한 길은 '신속한 복구' 이다. 실제로 원자력 발전소가 복구되어 '재가동' 되지 않는다면 이는 일차적으로 전력부족을 피할 수 없을 뿐 만이 아니라, 이후 원자력 발전을 운영하고 유지하는데 필요한 실질적인 인원의 육성에도 커다란 어려움이 따른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는 '일상화'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 (...) "요컨데 평범한 공사현장이 된 것이다. 일상, 일상 이라고 시끄러울 정도로 강조한다. 절차나 보고 서류도 늘었다"고 불만을 표했다.

138쪽 무리하게 진행되는 일상화

그렇기에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서는 복구를 위한 커다란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다만 단순히 건축물의 손상과 파괴가 일어난 '현장' 과는 다르게 원전은 매우 치명적인 '방사선 물질'이 누출된 곳이기에, 결과적으로 이러한 현장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매우 철저한 안전관리와 장비 등의 지급이 이루어져야 마땅하지만, 이에 이 책은 그 현장의 '실질적인 모습' 그대로를 취재하려는 활동을 통하여, 결국 여느 열악한 공사현장과 비교하여 다르지 않은... 아니, 오히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방사능이라는 보이지 않는 위험에 노출되어 더욱 더 위험한 현장에 노출되어 있는 현실을 마주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내일 현장을 떠납니다 (...) "올해분 방사선량 18mSv가 차버려서. 사장이 더는 관리 할 수 없으니 떠나랍니다. 써 먹을 만큼 썼으니 해고라네요. (...) 지금까지 취재하면서 "우리는 일회용" 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을까? 도망치치 않고 위험한 고선량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일해온 작업자들을 갑자기 내동댕이치는 '퇴직'이나 '해고'는 너무나도 가혹했다.

182~183쪽 작업자는 피폭 수치로만 존재하는가

특히 '현장에서 노동하는 사람들' 흔히 용접이나 배관 기타 단순한 노동작업에 투입되는 '일선 작업자' 의 대우는 나날히 악화되어 간다. 처음 도쿄전력이 제공한 급식과 숙소의 편의가 사라지고, 점차 책임감 하나로 버티던 작업자들이 피폭되어 현장을 떠나고, 이어 뒤이어 그 자리를 채워가는 하청업체와 일용근로자는 본래 '비용절감'이라는 이유로 마주하는 (건축업 본래의) 부조리를 넘어, 정부가 목표로 하는 대책과 계획에 따라 무리한 공역을 강요당한다.

물론 이때 정부와 현장에서 일어나는 이 많은 부조리들은 생각 여하에 따라, 일반적인 공사 현장 곳곳에서 보이는 고질적인 문제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은 그 상황과 환경을 고려했을때, 보다 정부와 지자체의 관리와 지원 등이 필요한 곳이 아닐까? 실제로 노동자들은 갑갑한 방호복과 마스크, 그리고 수십킬로의 텅스텐 조끼를 입어야 한다. 이는 치명적인 방사성 물질에게서 노동자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비이지만, 문제는 이를 착용하고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탈수와 피로 등 신체의 부담을 견디지 못해 사망하는 사례까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가혹한 환경과 점차 (그들 스스로 정한) 일상화에 무뎌지는 정부와 도쿄전력의 '책임감'은 결국 아직까지도 치명적인 환경에 놓인 복구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이에 '순조롭게 복구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최첨단 공법이 적용된다' '방사능 오염수는 관리되고 있다' 등의 정부차원의 주장들이 바라고자 하는 바와 실질적으로 그 현장 본연의 모습이 보여주는 차이점을 마주하면서... 이에 탐방.보도의 기록이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그 둘 사이에서 (정작) 희생되어가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인식을 하는 동시에, 오늘날에도 존재하는 그 현장에 대하여 보다 대중과 사회 모두가 지속적이고 엄격한 시선(또는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데 있다고 생각이 된다.

결국 최악의 사고가 일어나고, 또 그 피해의 후유증이 남아 존재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그 책임을 지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비용을 감내해야 하는 존재는 '노동자'가 아니다. 그들은 원전의 참상과 위험을 알면서도 현장에 뛰어들었다. 더 나은 일본의 미래를 위해서, 고향 후쿠시마가 보다 빨리 정상화 되었으면 하는 열망을 담아... 심지어 단순히 현장에 일이 있기때문에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도 결국 이들이 이전 폭발사고를 방지하지 못한 책임을 하나 라도 더 짊어져야 하는 사람들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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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 리얼리티 - 전직 함장이 들려주는 진짜 잠수함 이야기
최일 지음 / 행북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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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제는 '잠수함'이다. 이때 나 스스로에게 있어서도 그 단어를 통하여 수 많은 궁금증을 품는다. 예를 들어 기술적인 영역에 있어서 잠수함의 어제와 오늘은 어떠한 변화를 거쳐왔는가? 그리고 군사적 가치에 있어서 잠수함이 지니는 영향력은 얼마이며, 또 어떠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가... 이처럼 잠수함의 역사와 더불어 현대 무기로서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한 (한국형)진단을 하고 싶은 입장에 있어서 과연 이 책은 어떠한 정보를 전달해 줄 것인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분명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많은 궁금증을 풀어 줄 수 있는 내용을 품고 있다. 그야말로 역사 속에서 잠수함이 등장한 시기와 병기로서 잠수함이 가장 막강한 위력을 떨친 시대를 넘어, 현대 많은 사람들... 특히 현대의 대한민국의 사람들이 왜 잠수함을 최강의 '전략병기'로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더해 이야기를 풀어 나아간다. 그렇기에 전직 잠수함 함장이였다는 저자의 과거(또는 경험)는 분명 위 내용들에 전문성과 설득력을 더해주는 귀중한 밑바탕이 되어준다. 실제로 오늘과 미래, 대한민국이 처한 안보와 지정학적 특수성을 극복하는데 '잠수함의 역활'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통하여, 이에 비전문가인 일반 독자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라도 먼저 저자 스스로가 그 주장에 대한 보다 냉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어야 할 것이 분명하다.

잠수함은 전시에는 그 몫을 톡톡히 하다가 막상 전쟁이 끝나면 무대에서 주연의 자리를 양보하는 전철을 밟아왔다. (...) 잠수함은 수상함 대비 탁월한 은밀성 (...) 그 가치가 점점 더 높아지는 분위기이다.

52쪽 미래의 잠수함

그러나 역설적으로 저자 스스로는 자신이 "전문가가 아니다" 라고 주장한다. 다만 잠수함에 대한 여러 정보를 공유하는 매체로서 단순히 딱딱한 이론서나 군사관련 서적이 아닌, 보다 잠수함에 대한 올바른 정보와 가치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는 (나름의) 의도를 드러냈기에 이후 드러나는 '취미로서 잠수함을 마주하려는 방향성'에 대해서도 (결국) 독자의 입장에서 그 얼마만큼 이해할 수 있는가에 따라, 나름 책을 읽은 이후의 만족감 또한 달라지지 않는가? 하는 감상을 품는다.

각설하고 이 '대중을 위한 잠수함에 대한 책'은 개인에게 있어서도 많은 흥미거리를 가져다 주었다. 물론 앞서 언급한 잠수함의 발전사는 물론이요, 이후 과거 전쟁의 역사 속에서 그 매력을 더하는 U보트에 대한 많은 정보들을 접하면서, 이에 역사를 배움에 있어서, 이미 알고 있는 정보 또한 많았지만, 그와 달리 저자 스스로의 지식과 가치관 등이 정리된 본문의 내용을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보다 더 정교한 역사적 사건과 의의를 정리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에 있어, 분명 이 책은 그 나름의 유익함과 즐거움을 가져다 주었다.

때문에 보다 잠수함에 대한 흥미를 키우고 싶은 사람이라면, 나는 감히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단순히 비대칭전력으로서 유용하고 또 위력적인 병기하는 통념에서 벗어나, 어떻게 잠수함이 전함 등과는 다르게, 그 본연의 장점을 극대화 하는 방향성으로 진보하고 있는가.... 이에 그 나름의 질문과 이해를 구한다면, 분명 책은 그에 걸맞는 내용을 보여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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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바꾸는 인문학, 변명 vs 변신 - 죽음을 말하는 철학과 소설은 어떻게 다른가?
플라톤.프란츠 카프카 지음, 김문성 옮김 / 스타북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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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대의 철학자와 근대의 작가 사이에는 분명 기나 긴 시간과 변화의 차이점이 존재 할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굳이 이 다른 것 같은 두개의 작품을 묶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고, 또 나름의 이유를 들어 이 둘 사이를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소크라테스의)'변명'은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그의 변론을 표현한 고전 (플라톤) 철학의 기록이며, '변신'은 크게 작가의 상상력과 표현력을 빌린 소설이기에, 이에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시대도 장르도 주제도 다른 두개의 작품에서 나름의 공통점을 찾는 것이 과연 어떠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의구심 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남을 해치면서 간섭에서 벗어나려는 것은 명예롭지 못한 도피법입니다. (...) 이것이 내가 죽기 전에 나에게 사형을 투표한 분들에게 드리는 예언입니다.

86쪽

그러나 단순한 죽음을 넘어, '타인에게 인간으로서의 명예와 존엄을 유린당한 존재'라는 것에서 이 둘은 나름의 공통점이 존재한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의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이유로 고발당하고, 사형을 선고받은 소크라테스는 스스로 단순히 지혜와 진리를 갈망하고 탐구한 존재였을 뿐이라 말한다. 그리고 아테네 시민들에게 "지혜를 사랑하고 타인을가르치며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것을 그만두지 않겠다" 고 장담했으나, 안타깝게도 고대 아테네의 법정은 그러한 소크라테스에게 죽음을 선고함으로서, 결과적으로 그의 의지와 행동 모두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는 저것을 없애 버려야만 해요

192쪽 변신

각설하고 카프카의 변신에서도 벌레로 변한 청년 '그레고르'가 점차 스스로의 목숨을 단념하게 되기까지 그 변화가 어떻게 진행되어가는지를 보면 상당히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는 단순히 벌레로 변한 자신의 모습에 절망한 것이 아닌, 가족에게 버림받은 순간 스스로 인간이 아니게 된 것을 자각한다. 그는 부모의 아들이자, 여동생의 오라버니로서, 사랑을 받았고, 더욱이 어엿한 회사원으로서 유능하지는 않지만 근면한 존재로서, 사회 속의 역활을 다했지만, 결국 그 역활을 수행하지 못하는 벌레가 됨으로 인하여, 그는 세상 모두에게 불쾌감을 안겨주는 존재로 추락한다.

이처럼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타인에 의하여 '자신을 부정당하는 것'은 어쩌면 그에게 죽음을 부여하는 것 이상으로 잔인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미친다. 그야말로 이 둘은 크게는 세상 속의 권위와 작게는 불안과 고독에 맞서 패배한 인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글이다. 물론 이러한 파편적인 교훈을 바탕으로 스스로가 어떠한 인문학적 교훈을 이끌어낼수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날의 사회현상 가운데 이 같은 폭력과 소외의 모습은 어떠한 형태로 드러나고 있고, 또 개인의 영역에 있어서 (또는 사회적인 영역에 있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무엇인가에 대해 이 책은 그 나름의 고민을 이끌어내려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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