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설하고 나를 기준으로 생각해봐도 '삽십육계'는 상당히 낮선 개념이다. 물론 세상에는 삼십육계 줄행랑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는 하지만, 과연 그것이 본래의 삼십육계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한 이해는 그다지 깊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위의 삼십육계와 손자병법 또는 오자병법과 같이 고대의 군사적 개념을 정리하거나 해석하는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시나 각각의 병서가 등장하기까지의 과정과 그 해당시대의 모습과 같은 환경에 대한 지식또한 접하는 것이 올바를 것이라 생각이 된다.
예를 들어 저자는 유명한 '삼국지연의'를 곧 잘 이 책의 예(또는 해석의 재료)로 활용한다. 이는 대중적인 인식에 비추어 '병법'어떠한 것으로 이해 되고있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다. 그야말로 대중이 이해하는 책사란? 어떠한 난관을 극복하는 와중 '착실한 준비'만으로는 그 역량이 부족할 때, 이를 보충하는 역활로서 '인간의 지혜가' 큰 보조적 역활을 할 수 있다는 나름의 믿음을 상징하는 존재인 것이다.
때문에 오래도록 삼십육계가 '기만술'만을 강조한 계책으로 치부된 것도 생각해보면 표면적으로 이 내용에서 전략 전술의 '기본'을 쉽게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였을 것이다. 물론 이는 오늘날에는 상당히 수정되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이 책 속의 요점이 현대의 가치에 어떻게 부합될 수 있는가, 정리하자면그 어떠한 것보다 '상대'를 중점으로 성립하는 여러 계략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고 또 활용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가르침이 아닌가 한다.
과거 타국의 침략에 대비한다며 스스로 성벽을 쌓고, 해자를 파고, 무기를 갈고 닦는다면 물론 그것만으로 그들은 '최선을 다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삼십육계의 의미를 더하면 결국 그 최선은 반쪽...도 아닌 무의미한 노력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 노력의 일면에는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예의 삼국지연의에서도 그러한 면면이 드러난다. 최선의 병법, 최선의 모략을 모색하는데 있어서, 곽가는 원소를 제갈량은 조조를 그 누구보다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 이야기 속의 최선의 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장사를 하고 싶으면 고객의 마음을 잡고, 거래를 하고 싶으면 상대를 이해하고 나서야 비로소 첫 삽을 뜰 수 있다. 물론 이는 당연한 말이라 할 수 있지만, 의외로 우리들은 그 교훈을 실행하는데 있어서 (나름) 어리숙한 면면을 많이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