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과 거북선 논쟁의 새로운 패러다임 - 민족의식을 탄생시킨 임진왜란 거북선 구조 논쟁의 새로운 가설, 도(櫂) 젓기
김평원 지음 / 책바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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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에서 활약한 '진짜' 거북선의 모습을 복원하기 위하여, 과연 오늘날까지 어떠한 노력이 있었는가. 물론 오래전에도 수 많은 학자들은 그 정답에 다가서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실상 거북선의 세세한 설계도 등이 발견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그나마 현대에 알 수 있는 것은 그저 임진왜란의 전란에서 활약한 돌격선이자, 전후 좌우 위력적인 대포를 발사할 수 있는 (거북머리를 단) 장갑 함선이였다는 것 뿐이다.

(이는 철갑선이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철갑 또는 목재를 둘러 탑승 인원을 보호하는 구조였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료 부족'에도 불구하고, 오래도록 거북선은 (나름) 역사학을 통해 복원되고, 더욱이 대중 사이에 어떠한 상식선 등으로 정형화되었다. 예를 들어 나의 어린시절에는 철갑의 지붕에 유황 안개를 뿜어대는 (고개를 치켜세운) 작은 용머리를 가진 전투선이 흔히 '이순신 장군이 만들어 낸' 거북선이였고, 특히 주변 그 누구도 그 거북선의 모습에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다만 오랜 시간이 지난 오늘날에는 분명 기존과는 다른 형태의 전투선의 모습 등으로 변화하였다. 특히 이는 단순히 이전의 '기록'에만 매몰되어 경직되어왔던 '역사학의 변화'와도 일맥상통한다. 그야말로 역사 속의 거북선을 복원하고자 하는 대전제를 목표로 그 밖의 진행과정 속에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 즉 주변의 다양한 전문 기술 등의 조언을 받아들임으로서, 단순히 이전 기록에 부합하는 해답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바다를 항해할 수 있는 선박, 특히 전장에서 활약할 수 있는 위력적인 전투선을 복원하는 시도를 통해 결국 오래전 잃어버린 거북선의 본질을 재발견 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가는 것 또한 오늘날 '역사학의 성과'로 인정해야 마땅하다.

임진왜란 당시의 거북선을 타당하게 '상상 재현' 하기 위해서는 (...)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이순신 거북선 원형에 집중되었을 뿐, 1795년 당시 실물로 존재했던 통제영 거북선과 거북선을 추정 재현하는 연구들은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72쪽

때문에 이후 거북선의 원형을 발견하기 위한 학술적 연구와, 거북선의 실질적 복원을 시도하는 다양한 형태의 프로젝트는 결국 현대 역사학의 가치 속에서 융합하였다. 그렇기에 흔히 영화에서 보이는 '거북선' 또한 단순히 오락적 요소나 어느 상징성을 띄는 소모품이 아니라, 오늘날까지 발전한 역사적 성과 또는 오류의 수정 가운데 다듬어진 결과물을 마주하는 것으로도 보여진다.

그렇기에 오늘날의 독자들은 거북선의 복원을 통해서 많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이전 많은 이들이 거북선의 원형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무엇인가? 특히 그 (관심 등의)과정을 통해, 임진왜란의 발발과 이순신 장군의 활약... 더욱이 거북선이 왜적을 맞아 위력을 떨칠 수 밖에 없었던 역사적 사건(사실) 등을 마주하며, 분명 한국인으로서의 동질감과 민족적 자긍심을 자극받은 점은 없었는가?

결국 이는 오래전부터 한민족에게 있어 거북선 등은 어느 민족적 긍지, 또는 우월성을 공유하고 대중화 하는 수단으로서 만들어지고 또 그에 만족해왔다는 뜻이다. 허나 오늘날에는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보다 다양한 사실을 발견하기 위한 무수한 시도가 이루어진다. 이는 결국 현대인들이 단순히 정형화된 사실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가져다주는 다양함과 불완전성을 해결하기 위해 보다 똑똑해지고 또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물론 이 책에 등장하는 무수한 거북선의 모습 또한 '가설'에 불과하다. 때문에 오늘날 어느것이 '정답인가'에 대한 무의미한 논쟁과 다툼보다 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현대 불확실한 '역사를 마주하는 탐구자'로서, 모두가 역사의 진보를 이끄는 보다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또 그 주장을 증명하는 활동을 이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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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로드 - 길 위의 삶, 호보 이야기
잭 런던 지음, 김아인 옮김 / 지식의편집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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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bo 호보 / 인터넷 사전에서는 '떠돌이 일꾼'으로 정의되었지만, 적어도 이 책의 내용을 접하다보면 커다란 의문이 든다. 물론 이 책은 호보의 의의를 방랑자에 두고 있다. 특히 저자 스스로가 방랑자의 삶을 살았기에, 그는 이 수 많은 일화를 자유와 결부시키지만, 반대로 (흔히) 사회화에 익숙해진 사람들이라면 결국 그들의 삶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이를 읽고 있으면 많은 이들은 '분노의 포도'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같은 대공황을 맞이하며, 많은 이들이 일과 보수 그리고 직장을 얻기 위해서 떠돌이가 되고, 또는 여느 토박이들의 박해와 착취의 대상이 되었지만, 단 하나 이들은 (사회화에) 감내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 했다면, 호보는 보다 다른 방식을 통해 스스로의 인간의 존엄을 표현한 존재이다.

각설하고 '직업 없이 떠도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제일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이들이 떠도는 이유를 찾으려고 할 것이다. 실제로 호보들이 대량으로 발생한 것은 사회학의 가치로 볼때 1929년 미국의 대공황을 기점으로 한다. 그야말로 자본주의의 파산이 만들어낸 결과물로서, 이들은 오늘날 한 시대를 가늠 할 수 있는 '특별한 예'로 취급되지만, 이에 정작 호보들에게는 여느 수 많은 '전문가들의' 분석과 결론따위는 그다지 중요치 않았을 것이다.

나는 남의 집 뒷문에서 권위있는 평론가들이 단편 소설의 미학적 요소라고 평가하는 진정성과 현실성을 키울 수 있었다. 이런 냉혹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15쪽

그렇기에 호보는 결국 세상에 '해결되어야 하는 존재'가 된다. 만약 현대의 가치를 투영한다면, 사회가 이들을 위해 해야만 하는 정책은 얼마나 많은가? 예를 들어 안정적인 직업을 알선하거나 교육시키는 것 부터, 당장 필요한 생활지원에 이르기까지, 어디까지나 사회적 약자로 인식되는 이들을 사회라는 울타리 속에 다시 품기 위해서, 기나긴 역사 속에서 국가는 보다 민주화된 제도를 갈고 닦아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과거의 미국은 이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고, 결국 호보는 사회의 안전망 또는 경계에서 벗어나 그들만의 새로운 가치 속에서 모인 이들로 구성된 현대의 떠돌이들이 되었다.

때문에 책 속의 주인공 또한 여느 호보의 길을 걷는 존재중 하나에 불과하다. 허나 그 중 인상적인 것이 있다면 (주인공) 호보는 크게 '그다지 미래(의 가치)에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그 순간의 휴식과 음식(또는 안정)을 얻을 수 있다면, 그들은 기꺼이 타인의 호의는 물론, 그들의 동정을 받기 위한 거짓을 꾸미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다.

때문에 이들 '부랑자'는 여러 부분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당시의 세상 속에서 호보들은 '무임승차의 달인' 이였고, 타인의 동정심을 먹어치우는 '대식가' 였으며, 특히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세상의 진리를 떠받들고 있는 절대 다수와는 다른 별난 소수파들이였다.

때문에 이제 다시 자본주의의 정신이 재건된 세상 속에서, 이러한 소수파들이 어떠한 가치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지만, 적어도 인간 본연의 가치 중 '자유' 라는 렌즈를 통해 이들을 들여다본다면... 어쩌면 이들의 삶은 '호보 강령'이라는 것을 통하여 보다 인간미 넘치는 존재로도 보일 수 있다고 생각된다.

1.자신의 삶은 자신이 결정할 것, 다른 사람이 휘두르게 두지 말 것.(...) 15.필요하다면 언제 어디서나 동료 호보들을 도울 것, 언젠가 당신도 그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다.

240쪽 호보 윤리 강령

결국 이들은 그 무엇보다 자유를 선택한 존재들이다. 당시 자본주의의 불안정함을 마주하며, 단순한 부지런함 만으로는 사회의 울타리 속에서 '안정'을 얻을 수 없다면... 반대로 그 울타리를 벗어나, 오롯이 스스로만을 책임지는 삶을 산다는 개념이 등장한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물론 이를 반사회적인 현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그리고 이후 히피 문학에 영감을 주었다는 평가를 이유삼아 보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허나 결과적으로 호보는 과거 미국 문화의 한 틀을 차지하는 개념이 되었다. 이전 서부개척시대와 비슷하게 거칠고 황량하지만 개인의 자유와 그 삶을 개척하는 '무법자' 로서, 어쩌면 오늘날 전형적인 규범에 저항하는 문제아? 들은 그러한 과거의 호보정신을 오늘날에도 계승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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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병사의 전선 일기 - 제1차 세계대전의 기록 1914 지양청소년 과학.인문 시리즈 4
바루 지음, 이성엽 옮김 / 지양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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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짧은 분량의 일기... 더욱이 여느 한 인간의 기록에 불과하기에, 분명 당시의 커다란 역사적 사건이 없었다면 이렇게 후대에 책으로 엮일 일은 없었을 것이다. 각설하고 '세계1차대전'은 세계사에 있어서도 매우 커다란 비극으로서 이해된다. 그도 그럴것이 가장 격렬한 전쟁을 치룬 독일과 프랑스(또는 영국도 포함하여)는 '한 세대가 소멸했다.' 라고 정의할 정도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는 단순히 무수한 생명을 잃은 것을 떠나, 향후 전쟁이라는 수단과 방법이 가져올 더욱더 잔혹한 미래를 드러내었지만, 안타깝게도 근현대의 인류는 그러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또 한번 세계를 전쟁의 무대로 끌어올린다.

그렇기에 1.2차 세계대전을 치룬 인류는 이제 '현대 전쟁이 지닌 파멸적인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국지적인 형태의 분쟁과 '대리 전쟁'이라 불리우는 작은 전쟁은 여전히 발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의 전쟁이 확산되지 않는 것은 적어도 인류 스스로가 '역사를 통해 무언가 배우는 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그러한 배움의 연속성, 특히 반전 의식의 학습을 이어가는 역활로서, 이 책은 그러한 과정에 속에서 등장한 성과라 정의해도 틀리지 않다. 물론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이 책만 가지고는 1차대전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크다. 다만 한 병사가 징집되어 전장으로 향하는 '사실' 그리고 스스로 전쟁을 마주하며 어떠한 감정을 가졌는가에 대한 '기억' 등은 결국 한 명의 독자에게 있어서 인간성에 대한 눈을 뜨게 한다.

여전히 똑같은 생활이다. 지루해서 죽을 지경이였다. 그리고 슬펐다. 전선에서 싸우지 못하는 것이 가끔 안타깝기도 했다.

93쪽

분명 이 한명의 군인 또한 전쟁의 발발을 기꺼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주변의 다른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 만세!'를 부르고, 전쟁의 추이를 궁금해하고, 저자의 헌신에 감사한다 하고, 특히 그 스스로가 전쟁의 와중 부상을 당하며 후방에서 회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때문에 그는 생각보다 빨리 전장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나는 그 무엇보다 이후 그가 전쟁이 끝난후 어떠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가가 궁금하다. 실제로 저자는 기록의 마지막에 (병원에서의 시간이) 지루하다고, 그리고 보다 빨리 전장에 서지 못하는 자신이 안타깝다고 기록했다. 허나 그러한 인물이 이후 지루한 참호전과 독가스 공격의 두려움, 특히 베르됭 전투와 같은 무자비함을 겪었다면... 과연 그는 이후 스스로의 행운을 뒤로 하고 푸념?(또는 안타까워)한 자신의 오만함을 과연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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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생의 마지막 도전 - 황혼이 깃든 예술가의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 분투기
윌리엄 E. 월리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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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문명의 최대의 전성기... 라고 딱히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양 정신의 또 다른 도약과 발전 을 상징하는 단어로서, 르네상스는 분명 남다른 역사적 무게를 담아내고 있음이 분명할 것이다. 때문에 이 책의 주인공인 미켈란젤로 또한 한 명의 유명한 예술가라는 영역을 뛰어넘어 이른바 '거장'으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어낸 인물이기에, 그 결과 조르조 바사리를 시작으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이 위의 인물을 탐구하는 동시에, 그의 장점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려 했다.

때문에 역사속의 인물로서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는 위의 언급한 것과 같이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거장 중 한 명'으로서 존중받는다. 더욱이 화가이자 조각가 그리고 건축가로서 이름높은 명성을 얻었기에, 결국 보다 폭넓은 예술의 영역에서 활약한 '남다른 열정'을 상징하는 인물로서도 쉽게 평가되고는한다.

소네트든, 대리석 조각이든, 성 베드로 성당이든, 79세의 예술가는 (...) 그가 두 손으로 직접 만드는 것만 작자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구상과 창의만으로도 작자 자격을 획득한 것이다. 이러한 강조점이 이동은 미켈란젤로를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항이다.

252쪽

그렇기에 그가 남긴 여러 예술 작품들은 당시 '미켈란젤로'의 정신과 인생을 대변하는 좋은 증거가 되어준다. 예를 들어 1499년 불과 24세의 나이에 조각한 '피에타'는 당시 예술적인 가치와 명성을 추구하는 혈기 넘치는 젊은 시절을 상징한다. 그도 그럴것이 그 작품의 한 켠에 자신의 서명을 새겨넣은 행동은 이 작품으로 말미암아 그 스스로의 실력을 뽐내는 동시에, 수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미켈란젤로의 이름을 각인시키려는 나름의 욕망(또는 혈기)에서 이루어졌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열정과 실력이 뒷받침된 '인생의 절정'을 살펴보는 것도 그 한 인물의 면면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시도일 것이다. 다만 이 책의 내용은 보다 더 나아가 인생의 후반기... 이를테면 이제 노년의 휴식을 만끽해도 이상하지 않을 70~80세의 미켈란젤로가 그 스스로 운명으로서 맞아들인 계획, 즉 성 베르로 성당의 건축 책임자로서 활동한 시간을 통하여, 그가 생애 끝까지 붙잡고 놓아주지 않은 '열정' 즉 예술에 바친 그의 꾸준한 자세를 드러내는데 목적을 둔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 아니고, 예술은 전쟁, 정치, 불확실한 재정상태, 변덕스러운 후원자들 앞에서 아무런 힘도 없다. (...) 여든한 살이 된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예술가 경력이 끝났다고 생각할 만했다.

전쟁과 피난

실제로 오늘날에도 건재한 성 베드로 대성당의 위용은 (결국) '미켈란젤로의 헌신'이 없었다면 마주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베드로 대성당이 오롯이 미켈란젤로의 작품인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오래도록 공사의 책임자로서 현장의 질서를 바로잡고, 더욱이 (절대 갑!인) 교황청의 고질적인 변덕 등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서, 결국 그는 대성당의 많은 부분에 있어서 그의 예술적인 영향을 부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노년의 예술가가 그렇게 대성당의 건축에 헌신 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그도 그럴것이 굳이 교황청의 계획에 따르지 않아도 그는 이미 뛰어난 예술가로서 이름이 높았다. 이미 이룩한 명성을 뒤로 하고, 특히 그의 오리지널리티를 뽑낼 수 있는 계획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째서 대성당의 건축을 담당하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는가?

결국 이는 당시의 미켈란젤로의 노년의 모습, 그리고 이제 막 중세의 옷을 벗어던지려는 당시의 시대상 뿐만이 아닌, 중세인으로서의 (유럽의)사고방식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실제로 미켈란젤로는 여느 예술가의 모습과는 달리 (비교적) 사회 친화적이고 유연한 모습을 보이는 인물이기도 했다. 허나 이는 개성적인 모습과 더불어 독선적이고 높은 자존감을 보인 여러 예술가들과는 다른 (내면의)연약함을 가진 인물이라는 말이 된다.

때문에 노년의 미켈란젤로는 그의 주변의 많은 사람들, 특히 그의 정신적 가치를 공유하는 동료의 죽음을 감내하는데 커다란 어려움을 보인다. 허나 다행스럽게도 그가 남긴 노년의 많은 기록들을 통하여, 그의 삶과 죽음에 대한 고뇌,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서 '노년의 육체적 한계를 벗어나 성취 할 수 있는 또 다른 형태의 예술활동'을 모색한 흔적 또한 드러난다.

교황 율리우스3세 시절에, (...) 그는 멀찍이 떨어져서 크게 개입하지 않으면서 공사들을 관리했다. (...) 미켈란젤로는 그 자신의 활동 범위를 넓히고 확대했다.

5장 새교황 율리우스 3세

결국 미켈란젤로의 노년의 모습은 단순한 '워커홀릭'이 아닌 또 다른 형태로 확장되어진 예술활동의 일부라 정의 할 수 있다. 특히 오늘날의 안정적인 시대가 아닌 전쟁을 포함한 수 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자칫 중단되기 십상인 대공사를 이끌어 진행시킨 추진력은 분명 미켈란젤로가 지닌 '예술성'(또는 예술에 대한 열망)을 다시끔 재확인 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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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
가스통 르루 지음, 이원복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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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앞서 고백하자면 나는 오페라의 유령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접하게 되었다. 물론 뮤지컬로서도, 문학으로서도 세계적으로 이름높은 이 작품을 아주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줄거리를 이해하는 것과 함께, (나름) 나 스스로가 다른 수 많은 평론과 감상에서 자유로운 무지의 상태에서, 어떠한 감상을 가질 수 있는가?를 시험하고자 하는 의도에 있어서, 이 책은 그 나름대로의 실험?에 활용되어질 좋은 소재가 되어줄 것이라 기대한다.

잔인한 사람 또는 불쌍한 사람, 이처럼 작품 속 '유령'의 존재로 등장하는 에릭은 작품 속 등장하는 여러 등장인물들에게 있어서 다양한 인식을 심어준다. 예를 들어 오래된 오페라하우스의 터줏대감으로서, 그는 분명 자신의 존재를 은연 중에 비춤은 물론, 그 건물에서의 최대의 예우 그리고 보수를 요구하기도 한다. 때문에 아무도 유령의 정체를 모르지만 곧 많은 이들이 유령의 존재를 인정하고 또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이어지며, 실제로 유령은 오페라하우스의 '그림자의 왕' 으로 군림한다.

그는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많이 하고 있어요, 또 그는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많은 것을 알고 있어요(...) 그는 유령이 아니에요 말하자면 하늘과 땅에 속하는 사람이에요.

294쪽

그렇기에 작품 속에서 유령은 곧 미스터리한 존재로서, 보다 많은 궁금증을 자아낸다. 과연 그는 어떠한 존재인가? 그리고 이후 일어나는 사람의 죽음과 도난 사건에 그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그리고 유령 스스로가 크리스틴의 '노래 천사'를 자청하며 곧 어떠한 대가를 바라게 되는가... 그야말로 그는 미지의 악마(또는 다른 존재)로서, 점차 독자들에게 어떠한 존재로 인식되어가는가? 에 대한 (줄거리 자체의) 흐름을 즐기는 것이 상당히 즐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불행한 에릭! 그를 동정해야 할까 아니면 저주해야 할까?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보통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이였다.

544쪽

결과적으로 에릭은 스스로의 뛰어난 재주 때문에 '유령'이 되었다. 물론 매우 흉측한 얼굴 또한 그가 유령의 삶을 선택하게 된 하나의 요소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코 유령으로서 타인에게 (공포의)'존재감을 드러내는 것'만이 아닌 또 다른 내면의 욕구를 실현시키려는 여러 모습을 보인다.

이에 독자의 입장에서는 에릭이 추구하는 '애정' 그 무엇보다 '평범한 부부의 삶'을 손에 넣고자 하는 행위를 마주하며, 일종의 동정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의 행보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에릭 스스로가 '해치우는' (현대적 가치 속의) 야만을 목격했으면서도 불구하고, 결국 많은 사람들이 작품 속의 여성 '크리스틴' 처럼 유령 에릭에게 동정어린 애정 또는 측은한 감정을 비출 수 있을 것이다.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나름 이 책이 지니는 특징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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