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51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무법자 - The outlow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여러 영화를 짬뽕한 최악의 영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밀애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어설픈 여배우의 연기와 조악한 스토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림자살인 - Private ey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다들 아시겠지만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탐정이라는 직업이 존재하는 반면 우리나라에선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요.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을 굳이 찾아본다면 흥신소나 심부름센터를 꼽아볼 수 있겠는데, 보통 불륜을 캐는 등 개인적인 일을 비밀리에 해주는 일을 주로 하죠.
그러다보니 일본이나 미국 소설에서 종종 탐정이 등장하지만 국내 소설에선 찾아보기 힘들며 영화에서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 직업입니다. 그런 면에서 탐정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점은 신선하면서 충분히 흥미를 땡길 만한 요소입니다.
게다가 영리하게도 시대를 현대가 아닌 조선말기 혹은 일제시대로 설정을 해놓았잖아요. 그 당시엔 탐정이라는 직업이 지금처럼 금지되어 있지도 않았을테니 탐정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비현실적은 아닐테니까요. 시대를 현대로 설정을 했다면 현실감이 떨어지는 탐정이라는 직업을 보여주는 데 어려움이 많았을 겁니다. (경찰에 들키지 않고 수사를 벌여야하는 어려움도 있겠고 사람들이 경찰도 아닌 사람한테 사건에 대해 털어놓지도 않을테고요.)

 하지만 많은 흥미와 재미를 유발하고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한 소재를 가지고도 썩 영리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즉, 신선하고 좋은 음식 재료를 가지고도 그저그런 요리를 만든 꼴이죠.

 우선 이 영화는 탐정추리극을 표방하고 있어요. 이 말은 이 영화에서 기본 갈등인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탄탄하게 그려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런 초반 사건을 맡게되는 과정부터 너무나 수상합니다.
먼저 위험한 일은 하지 않는다는 자기 나름의 철칙을 지닌 주인공 홍진호가 왠 어린 의학도가 찾아와 살인범을 찾아달라고 하는데 자신은 돈에 관심이 없으니까 현상금 500원을 다 가지라고 하는 말에 혹에 사건을 맡게되는 설정이 그렇죠. 분명 그는 현상금 500원이 걸린 벽보를 보았을텐데 위험한 일이라 그 땐 관심이 없다가 장광수의 말을 듣고는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부터가 썩 그럴 듯 하지 않아요. 차라리 홍진호가 먼저 미국행 배삯을 위해 이전 철칙을 잠시 예외로 하고 살인범을 찾으러 여기저기 들쑤시다가 우연히 시체와 같이 있는 장광수를 목격하게 되었다라는 설정이 더 그럴 듯하죠.
 또 하나의 주인공 장광수도 그래요. 칼에 찔려 죽은 시신이란 걸 아는 의학도가  그 시체를 몰래 가져와 해부실습용으로 쓸 정도로 대담성을 보여주다가 그 시체가 고위 대신의 아들이란 걸 알자 벌벌 떨며 살인범을 찾아달라고 홍진호를 찾아온다는 설정도 엉성하단 말이죠. 의학도라는 사람이 칼에 찔려 죽은 채 밖에 내버려있는 시체를 보았다면, 그 시체가 살인사건의 피해자이며 순사들이 수사를 벌일 거라는 걸 몰랐을까요? 아니죠. 당연히 알았을 것을 이 영화에선 몰랐다고 고집하는 것도 이상하고 자신이 살인범으로 몰릴 걸 두려워한 장광수가 외부인 홍진호에게 그 비밀을 말해버리는 것도 이상하죠. 차라리 시체 몸 속에 돌같이 무거운 걸 집어넣고 아무도 모르게 밤에 호숫가같은 데에 버리는 게 더 그럴 듯하죠.  
홍진호가 순사한테 장광수와 시신을 신고해버리면 어떡할 작정이었을까요? 무고한 자를 범인으로 몰 순사부장이라면 시신을 보관하고 있는 장광수를 범인으로 모는 건 일도 아니었을텐데요.
(게다가 그 시신이 그곳에 있다라는 걸 장광수가 어찌 알고 가져올 생각을 했는지도 그냥 넘어가야하는 부분인가요?)

사실 엉성한 부분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어떻게 범인이 하인들이 단단히 지키고 있을 고위 대신인 집에 아무도 모르게 들어가서 아들 민수현을 죽일 수가 있으며, 또 그 시체를  핏자국없이 들고나올 수가 있죠? 특히 쥐도새도 모르게 죽이는 것도 아니고 민수현이 벽에 핏자국을 남기고 몸부림을 칠 정도면 민수현이 소리를 질렀을 법한데 말이죠.
게다가 최고의 권력을 자랑한다는 경무국장집에서도 똑같이 아무도 모르게 들어가 죽이고 그 시체를 핏자국을 내지 않고 들고 나오는데 아무런 설명이 없어요. 또한 범인의 정체를 봤을 땐 그 경무국장 일본인이 아무 호위없이 그 조선인과 단둘이 만난다는 것도 이해가 안가는 면이죠.

 뒤의 후반 범인의 정체와 살해 동기를 고려해봤을 때는 그 시체를 밖에 유기해버리기보다는 그 방에 죽인 채 나오는 게 더 적절하죠. 왜냐하면 범인은 아이들한테 끔찍한 일을 한 자들에게 복수를 저지르는 것이니 일부러 쉽게 발견되도록 해야하니까 말이죠. 밖으로 유기하다가 장광수같이 누군가가 들고가거나 해서 발견이 되지 않으면 어떡하나요? 사람눈이 있는 고위관직 집에서 자기 몸 하나 빠져나오기도 힘들텐데 굳이 힘들게 그 시체를 가져올 이유가 없죠. 아니면 빨리 순사한테 발견이 되도록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신고를 하던가요.
이뿐만 아니라 마지막 무라타 총감때도 홍진호가 그 집에 들어갈 때나 무라타를 시원하게 혼내줄 때도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는다거나 홍진호, 순덕, 장광수가 그 무라타에 짧은 시간내에 일처리를 한다든지 후반부로 갈수록 이런 엉성한 내용이 남발되어 힘이 떨어져요.

또한, 그 당시 의학지식이라도 시체의 사망시간이나 흉기같은 정보는 알아낼 수 있어요. (영화 <기담>에서도 나왔죠.)
즉,  일부 특수한 사람만 사용할 법한 양날검같은 걸 흉기로 사용한다라는게 너무나 이해가 가지 않는 구석입니다. 그당시 그런 흉기를 사용할 법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순사가 그 흉기의 출처만 제대로 조사한다면 충분히 그 범인은 잡혀도 한참전에 잡혔을껄요. 물론 범인이 한 사람만 죽이고 도망갈 것이라면 또 모를까. 계속 고위층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범인이 그렇게 위험한 행동을 한다는게 말이나 되나요?

 삿갓을 쓴 미행자와의 추격장면에서 홍진호가 놓칠 위기에 처하자 장광수가 어디선가 인력거를 잡아 타라고 하는 장면은 또 어떤가요? 이는 마치 형사물에서 주인공이 범인을 뒤쫓다가 범인이 탈 거를 이용하여 빠져나가려고 하자 파트너가 차를 몰고와서 타라고 하는 장면같습니다. 근데 이 장면이 뭐가 이상하냐고요? 좀만 생각해보면 그냥 발로 뛰어가는게 성인 두 남자를 태운 인력거를 인력거꾼이 모는 것보다 더 빠를 것이라는 걸 알아챌 수 있어요. 결국 이 영화의 각본을 작성할 때 곰곰히 생각해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차에서 인력거로 바꾸어놓았다는 걸 보여주는 꼴이죠.  
신문기자로 위장하여 서커스 단장의 방을 조사한다는 것도 참 안일하죠. 차라리 서커스를 공연할 때 몰래 뒤지는 게 더 그럴 듯하지 않나요? 신문기자라고 함부로 서커스 내부에 출입을 시키거나 이것저것 들쑤시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테니까요.

 그리고 자신이 어린아이를 대준 사람이 하나둘씩 죽어나가도 아무런 의심없이 서커스만 하는 형이나 경무국장이 자신의 어깨 위치의 옷을 입으로 물어뜯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모른 채 돌아간 동생이나 매한가지죠. 입으로 어깨 위치의 옷을 물어뜯었다면 살점도 같이 물렸을 것이고 알아챌 법하죠. 물론 살이 닿지 않는 소매부분이면 또 모르죠. 

결국, 이 영화 전반에 걸쳐 스토리 전개가 너무나 엉성하고 비현실적인 구석이 너무 많아요.
이는 각본을 쓸 때 제대로 꼼꼼하게 쓰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단지 조선말에 탐정과 의학도가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한다라는 큰 줄거리만 잡아놓은 채 그 잔가지 설정이나 전개는 세밀하게 짜지 않은 탓이죠.

이 영화의 문제점은 스토리가 엉성하다는 점뿐 아니라 캐릭터가 개성과 일관성이 없다는데에도 있어요.

 탐정 홍진호를 살펴볼까요? 초반에 그는 한 의뢰인의 부인의 불륜 현장을 추적하여 돈을 버는 사람(흥신소처럼)인 것으로 묘사를 합니다. 그리고 위험한 일은 하지 않는다라는 게 그의 모토입니다. 그가 미국에 가서 불륜 현장을 잡아 떼돈을 벌려는 계획을 세우는데, 돈없이는 못 사는 인물로 보여줍니다. 그런 그의 과거가 순덕의 입을 통해 약간이나마 밝혀지죠. 옛날 군관출신에다가 믿음직스럽게 순덕을 호위하기도 했을 뿐더러 순사부장인 영달의 상관이기도 했었던 인물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정의감넘치고 유능한 강력반 형사가 남의 불륜 장면이나 캐내 돈이나 벌려는 자로 전락해버린 건데 이 두 인물 사이의 갭이 너무 커요.
순덕의 말을 보면 홍진호가 나름 싸움도 잘하는 인물인 것같은데 영화에선 썩 그런 것같지도 않고, 돈밖에 모르던 홍진호가 갑자기 서커스 어린이 단원에게 자신이 모아두었던 돈을 다 써버렸다고 하는 등 캐릭터가 너무나 우왕좌왕해요. 잘 알려진 탐정 셜록 홈즈나 에르큘 포와로처럼 그 나름의 개성을 설정하여 이를 밀어붙여야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이것저것 가져다 이야기에 집어넣었어요.

 다음으로 의학도 장광수를 볼까요? 그는 자신의 의학지식의 향상을 위해 출처를 알 수 없는 시체를 들고와 실습을 하는 인물이에요. 초반 장면을 보면 이름없고 가난한 사람의 시체라면 불법실습을 해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죠. 그런 그가 서커스의 어린 여자 아이가 죽을 위기에 처하자 자신의 의학생명이 끝나버릴 수도 있는 행동을 합니다. 마치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이냥 두 얼굴을 보이고 있어요. 그가 돈보다는 사람들의 생명을 위해 의술을 펼치려는 진정한 의사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고 설정을 했다면 버려진 시체를 무턱대고 들고와 불법실습을 하게되어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라는 이야기를 내밀어야 했을까요?
 이 두 캐릭터를 셜록 홈즈와 왓슨에서 가져다썼다는 게 뻔히 보입니다. 뭐. 주요 캐릭터를 다른 곳에서 따왔다는 걸 나쁘다라고만 할 순 없지만, 이를 제대로 구축하지도 못하지 못했다는 건 문제가 있는 것이죠.



 사실 제일 불쌍한 캐릭터는 바로 순덕입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이 영화에서 제일 개성있고 재미있을만한 인물인데 이 영화에서 하는 일이 딱히 별로 없으니까 말이죠. 그녀는 서양 과학 기술에 관심이 많아 이것저것 재미있는 발명품을 개발하지만 이 영화에선 거의 쓰이지가 않아요. 고추가루를 갈아 만들었다는 스프레이도 단지 그 몇 초의 웃음을 위해 설정된 도구였습니다. (그걸 마지막 억관과 싸울 때 사용하나 싶더니만 그냥 <양들의 침묵>에서의 장면을 그냥 본따서 좀 실망했어요.)
 주인공으로 홍진호와 장광수보다는 차라리 네로 울프와 아치 굿윈처럼 머리로 생각하는 순덕과 몸으로 뛰는 홍진호로 하는 게 더 괜찮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또한 감으로 수사하며 코믹하고 어리버리한 순사부장과 고위관직과 결탁하여 악행을 저지른 자의 공범이라는 설정은 충돌을 일으키고 말이죠. 생각해보세요. 어린아이를 데주며 뒷돈을 챙기는 서커스 단장과 고위관직을 이어주면서 돈을 받는다고 설정한 순사부장이 그 고위관직이 죽어나가면 자신이 돈을 버는 뒷통로가 끊긴다라는 사실도 모를 뿐더러 게다가 내무대신한테서 자신의 아들을 찾지 못하면 자신이 그동안 쌓아왔던 게 한순간에 날라갈 위기에 처했는데, 어이없게 엉뚱한 사람만 족치려고 하니 웃기는 일이 아닐 수가 없죠. 그가 정말 사악한 범죄의 공범자라면 자신의 돈줄과 인생이 걸린 연쇄살인범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야 하며, 단순히 웃기려고 나온 어리버리한 순사부장이라면 사건을 종결하기 위해 엉뚱한 인물을 범인으로 몰려고 하는게 맞겠죠.

또 하나, 이 영화에서 연출도 썩 좋지 않아요.
특히 삿갓 쓴 자를 홍진호가 추격하는 장면은 너무 카메라를 흔들어서 오히려 몰입이 방해돼요. 본 시리즈처럼 단지 카메라만 흔들어대기만하면 긴박감이 든다고 생각한 것같은데, 그게 적당한 타이밍과 씬이 맞아떨어져야 긴박감이 드는 것이지 무턱대고 카메라를 흔들어댄다고 되는 게 아니란 걸 모르는 겁니다.
 그리고 경무국장을 죽이는 범인의 얼굴을 대놓고 보여주는 건 관객들한테 생각할 여지를 아예 막아버리는 연출입니다. 뭐 사실 용의자도 딱 한명밖에 없긴 하지만요. 관객이 홍진호와 같이 살인사건을 뒤쫓지 못하게 해버리니 김이 새고 재미가 떨어질 수밖에요. 
 중반 이후로 갈수록 늘어지는 감이 듭니다. 가령, 서커스 장면 중 부채 마술 장면에서 종이를 부채로 날리는 장면은 깔끔하게 끊어야하는데 이를 별거 없이 길게 끄니 너무 지루해요. 얼른 종이를 나비로 바꾸는 장면이 나와야했습니다. 특히 결말은 끝낼 타이밍을 놓쳐버렸고 말이죠.

황정민씨나 류덕환씨 등 배우들의 좋은 연기가 볼 수 있다는 게 그나마 나은 점이라고 할까요.

-  홍진호와 장광수의 설정은 셜록 홈즈에서 따오더니만 엔딩 프롤로그는 에드가 앨런 포의 "도둑맞은 편지"에서 따온건가요? 뭐 아니면 셜록 홈즈의 "보혜미아 왕국 스캔들"에서 따온 건지도 모르겠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게이머 - Gam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혹시 '레인보우 식스', '테이큰 다운', '서든 어택' 이란 게임을 아시나요?
이 게임의 공통점은 바로 FPS(First-Person Shooter):1인칭 슈팅 게임이라는 거죠. 이 영화의 소재는 바로 이 FPS 게임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이전 FPS 게임이 가상의 캐릭터를 조종했다면 이 영화는 그보다 한차원 달라져 사형수와 무기징역수들인 진짜 사람을 조종한다는 설정을 깔고 있습니다. 실제 사람을 조종하여 게임을 하게 된다면??
어찌 보면 사람의 인권과 관련해 무시무시한 설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윤리적인 면을 떠나서 그런 기술이 미래엔 가능할까요? 사람을 조종하는 마인드 콘트롤이 분명히 지금의 현실에선 불가능한 기술이지만 미래에선 가능할 지도 모르죠. 혹은 불가능할 수도 있고요. 

 

  이 마인드 콘트롤 시스템을 설명하기 위해 집어넣은 기술이 바로 나노 기술인데, 사람의 머리 속에 나노셸을 주입하면 이 나노셸의 자가복제를 통해 그 사람을 통제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 한창 각광을 받고 있는 기술이 바로 나노 기술(Nano-Technology)이기 때문에 영화상에서 가져왔겠지만, 사실 각본가가 나노 기술 용어에 대해 어느 정도라도 알고 있다면 용어를 안일하게 쓰지는 않았을 겁니다. 
 가령, "나노셸"이라는 용어가 흰자가 얇은 계란 모양의 구조를 지닌 나노물질을 뜻하는 용어인데, 본 영화에서는 이게 무슨 인공지능이나 만능로봇같은 걸 의미하는 것처럼 설명하고 있죠. 과학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한텐 생소한 단어이니 그런가보다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법하겠지만. (자세한 설명은 맨밑에 달아놉니다.) 하지만 그런 자가복제를 통해 마인드 콘트롤을 설명하려면 나노 기술보단 생명 과학 기술을 언급하는 게 더 적절했습니다.

뭐, 한발짝 물러나서 나노셸로 마인드 콘트롤을 할 수 있다고 하죠. 하지만 영화는 마인드 콘트롤 시스템의 설정을 제대로 구축하지도 못했고 이를 그럴 듯하게 이야기를 진행시키지도 못하고 있다는 문제점에 또 다시 봉착합니다.
가령, 나노셸때문에 게이머가 시키는 대로 움직인다고 하면, 주인공은 꼭두각시가 되어버린 죄수 케이블이 아니라 그 죄수를 조종하는 게이머 사이몬이 되어야합니다. 우수한 신체조건보단 누가 조종하느냐가 게임의 승패를 결정하니까 말이죠. 게임 '스타크래프트'에서 동일한 테란의 마린이라하더라도 누가 조종하느냐에 따라 저그 럴커가 오면 피해야만 하는 허약한 마린이 될 수도 있고 오히려 럴커를 잡아버리는 슈퍼마린이 될 수 있습니다.  케이블이 승승장구하며 살아남은 건 사이몬이 뛰어나게 게임을 잘 해서 그런 것일뿐 케이블의 의지와는 무관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마치 시키는대로 움직이는 케이블을 주인공으로 삼아 '슬레이어즈' 게임의 황태자인양 묘사해버립니다. (사실 일정 수의 게임에 죽지 않고 승리하면 풀어주겠다는 설정은 <데쓰 레이쓰>와 너무나 유사합니다. ) 또한 영화속 게임 '슬레이어즈'의 룰도  마음대로 바뀌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기본적인 골격은 케이블에 누명을 씌워 감옥에 보낸 자를 추적하고 그 음모를 박살낸다는 스릴러입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너무나 헐거워요. 예를 들어, 케이블이 실험 대상이 되어 마인드 콘트롤을 당해 사람을 죽인 과거의 사건으로 인해 감옥에 들어갔다는 것이고, 비밀단체가 케이블에게서 그 정보를 빼내려고 했다는데, 그 비밀단체는 어디서 케이블에 대한 정보를 알게되었으며, 음모의 핵심인 켄 케슬 사장은 왜 케이블을 자살하게해 입을 막아버리지 않고 위험천만하게 감옥에 보낸 것인지 등등 전체적으로 이야기고리가 탄탄하지가 않아요. 게다가 마지막 켄 케슬 사장이 죽고나서 그전엔 회사의 비밀을 지키려고 고군분투하던 부하 직원들이 군소리없이 물러난 것이나 케이블이 나노셸을 없애달라고하자 순순히 없애준 결말은 어이없기만 하죠.
또한, 등장인물도 전체 스토리에서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있기보다는 단편적으로 등장시켜버린 감이 있어서 이야기에 힘을 실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감독의 전작이 <아드레날린24>인 걸 보면 차라리 스릴러보단 되지도 않는 이야기를 단순화시키고 액션에 좀 더 초점을 맞추는 게 좋지 않았나 싶네요. 초반 게임 장면은 꽤 볼만했거든요.


(바로 이 FPS게임을 보는 듯한 장면은 좋았습니다.)

- 제작비가 2000만불이 채 되지도 않은 영화를 국내 개봉 당시엔 마치 블록버스터인 것마냥 홍보를 했었죠. 우리나라 관객이 블록버스터 영화에 빠져있어서 그런 것이겠지만 솔직히 그런 홍보는 자제했으면 합니다. 블록버스터로 기대를 하고간 관객에게 욕먹기 딱이잖아요. 그래도 북미에선 제작비 이상을 벌였다네요.
- 리뷰를 작성하다 갑자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인간과 유사한 안드로이드를 조종하는 전쟁게임 '슬레이어즈'에서 승승장구를 보이는 게이머 사이몬이 게임을 하던 중 자신이 조종하는 안드로이드가 로봇이 아니라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깨닫고, 음모를 파헤칩니다. 자신의 뛰어난 컴퓨터 실력으로 해킹을 해보니, 범죄율로 감옥에 죄수가 넘쳐나고 유지비가 엄청나게 들어가자 정부가 '슬레이어즈'게임을 개발한 기업과 결탁하여 문제가 되는 죄수들을 없애고 게임 기반 비용을 줄이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게되는 거죠. 제목처럼 게이머 사이몬이 주인공인 이야기로요.

- 영화에서 언급한 나노 기술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볼까요? 일단 나노라는 단위는 10의 (-9)승 미터로 눈으론 아예 볼 수도 없을 정도로 아주 작은 크기입니다. 그래서 일반 (광학)현미경으로도 보이지가 않는데, 이는 가시광선의 파장보다 작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보통 나노 입자는 1에서 100 nm까지의 크기를 지닌 입자를 말하는데, 이 나노 기술은 나노 물질의 합성과 성질 규명, 그리고 응용에 이르기까지 나노 물질과 관련된 전반적인 기술을 말합니다.

- 영화에서 언급이 된 나노셸(Nanoshell)은 실리카같은 유전체위에 금속 셸이 얇게 싸인 구형 구조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노른자를 얇게 흰자가 싸고있는 계란같은 구조입니다. 과학계에 자주 등장하는 나노셸로는 골드 나노셸(Gold Nanoshell)이 있는데, 이는 금이 나노 크기로 줄어들게 되면서 Surface Plason Resonance라고 일컬어지는 독특한 성질을 띄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금이 특정 파장의 빛을 흡수하는 성질을 말하는데, 보통의 금 구형입자가 520 nm근방의 빛을 흡수하는데 반해 이 골드 나노셸은 장파장인 근적외선(Near-IR)의 빛을 흡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성질을 이용하면 우리의 몸을 영상화(Biomedical Imaging)을 하거나 암세포를 죽일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이 나노셸이라는 것은 단순히 흰자가 얇은 계란 모양의 구조를 뜻하는 용어이지, 영화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무슨 인공지능이나 만능로봇같은 것을 뜻하는게 아닙니다. 이는 마치 나무막대기를 잘개 부수어 먹으면, 그게 몸 속을 돌아다니며 알아서 병원균이나 암세포를 없애준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거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굿’ 바이 : Good&Bye - Good&By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이 영화의 시작은 전혀 예상치못하게 코믹하게 진행이 됩니다.
이 영화의 처음에 다짜고짜 주인공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가 직접 '납관(염습)' 일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는 앳된 얼굴의 소녀에게서 예상치 못한 '그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나서 이 영화의 제목이 뜨고 이야기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데, 사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 셈이죠.(중반 이후 따로 떼어 배치된 초반 장면을 다시금 볼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시작을 전체적인 이야기 중 극히 일부분만 따로 떼어 초반에 배치한 이유가 무었일지 궁금해졌어요. 영화쪽엔 거의 문외한이라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문득 이런 상황이 떠올랐어요.  
긴장때문에 몸이 굳어있는 사람한테 긴장을 풀어주려고 농담을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잔잔하면서 진지한 영화라고 생각하고 있는 저에게 그 딱딱함을 풀어주기 위해선 이 코믹스러운  장면이 딱이었죠. (이게 이런 영화였나 싶을 정도로 약간 의외였지만 그 장면 이후 이 영화의 이야기에 무난히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도쿄에서 오케스트라 첼리스트로 일을 하던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입니다. 남들은 다 알고 있었지만 자신은 몰랐던 악단 해체로 인해 그는 도쿄에 남기보다는 어머니가 남겨준 집이 있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하게 돼요. 게다가 그 오케스트라에 들어가기 위해 어마어마하게 비싼 첼로를 구입하기 위해 받은 대출금때문에 도쿄에는 남기가 힘들었거든요. 그런 그가 직업을 구하기 위해 구인광고를 보던 중 우연히 한 광고가 눈에 띄었는데 바로 '납관(염습)'일을 하는 NK에이전트라는 회사에서 낸 광고였습니다.

 이 '납관'이 이 영화의 주된 소재인데, 이는 시신을 닦고 수의를 입히는 일을 일컫는 말이에요. 이를  일본에서는 '납관'이라고 부르지만 우리 한국에서는 '염습'이라고 부르죠. (자막에선 '납관'이라고 표시가 되었어요.)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되며, 이 '염습'이라는 건 산 자가 죽은 자를 배웅하는 과정인 동시에 죽음과 삶의 소통인 것이죠. 
이 영화에선 죽음과 삶, 산자와 죽은자, 그리고 현대와 전통과 같은 반대적인 이미지의 것들을 찾아볼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서로 상충하고 충돌하는 게 아니라 소통을 통해 결국 조화를 이루며 수렴해요.
 
 이 영화의 주인공인 다이고는 대도시 도쿄에서 한 오케스트라의 첼리스트였습니다.  첼리스트라고 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직업인 동시에 현대적인 이미지를 보이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죠. 그에 반해 이쿠에이는 한적한 시골에서 오랫동안 염습일을 해온 베테랑 납관사입니다. 이 납관사라는 직업은 시신을 직접 다뤄야하는 일이다보니 대다수의 사람들이 불결한 직종로 여기거나 하찮게 보는 직업으로 여겨져왔어요. (그러다보니 일본에서도 이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고 해요.) 
어찌보면 다이고는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또는 현대 지식인)을 상징하는 반면 베테랑 납관사인 이쿠에이는 다이고랑 반대의 연장선에 서있는 사람을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에요. 그러기에 이 둘은 처음 만날 때부터 서로 불조화가 발생해요.
가령, 깐깐한 면접을 예상하고 긴장을 하고 온 다이고에게 이쿠에이는 질문 하나만 던지고선 무턱대고 합격이라고 해버리죠.
또한 다이고가 NK 에이전트에서 처음 출근해서 따라간 일이 바로 죽은 채 며칠이 지나버린 독고노인을 '납관'하는 일이었는데 거기서 다이고는 제일 크게 혼이 납니다. 사실 이런 일은 우리의 현실에서 비일비재합니다. 오랫동안 시골에서 옛 전통과 가치관을 고수해온 어르신이 대도시에서 살아간다면 분명 처음엔 여러모로 충돌이 발생할 것이고, 반대로 대도시에서 현대적인 가치관으로 살아온 청년이 시골로 가게되는 경우도 그럴 것이라 예상할 수 있죠. 



하지만 그 부조화에서 끝이 나버리는 게 아니라 하나의 사건을 통해 서로 마음을 열고 가까워지는 게 참 따뜻했어요.
'납관'이라는 일에 선입견을 지니고 있던 다이고가 자신의 생각을 달리 품게 된 계기는 두 번째로 따라간 일인 한 가정의 아내이자 어머지, 그리고 할머니인 여성을 이쿠에이가 염습을 하는 걸 직접 보면서였습니다. 이 장면에서 다키타 요지로 감독은 이쿠에이가  납관일을 하는 장면과 그걸 지켜보는 다이고의 얼굴,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그 가족들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는데, 다이고의 심경의 변화를 느끼기엔 충분했어요.  
 

아마 이전에는 다이고는 납관사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건지 잘 알지 못한 채 염습에 대해 안좋은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죽은 이를 배웅하는 베테랑 납관사의 진지한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하면서 일본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온 직업인 납관사의 길을 밟게 되죠. (왠지 이를 보고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속담이 떠올랐습니다.)
이러한 연출은 뒷 부분에서도 등장해요. 남편 다이고의 친구의 어머니이자 목욕탕을 운영하셨던 아주머니의 염습 장면이 바로 그것이죠. 다이고가 염습을 하는 장면과 미카와 친구 가족이 이를 지켜보는 장면을 번갈아 보여주고 있거든요. 여기서 납관사라는 직업에 반대하는 아내 미카는(그리고 친구까지) 남편 다이고가 염습하는 걸 지켜보면서 자신이 전에 가지고 있던 납관사의 선입견을 버리게 돼요. 그 결과 남편 다이고가 자신의 아버지를 염습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남들 앞에서 떳떳하게 남편의 직업을 말하게 되었죠.

 이 영화에선 먹는 장면이 참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먹거리들은 하나같이 죽은 것들입니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치킨이나 복어의 정자 주머니를 먹으면서 죽은 것들에게는 참 미안스럽게도 맛있다라는 대사가 찡하게 마음 속에 와닿은 이유는 바로 우리의 삶 속에서 알게모르게 죽은 것과 서로 교통을 하기 때문이에요. 과학 시간을 통해 하나의 동물이 죽게 되면 먹이피라미드의 위의 단계에 있는 생명체의 영양분으로 흡수가 이루어지고 최종에는 땅 속의 영양분으로 변해 다시 식물한테 돌아가는 일련의 과정을 우리는 알고 있어요. 

또한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음악이에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히사이시 조가 이 영화의 음악을 맡아 첼로의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주고 있는데, 이 영화의 내용과 잘 어울리면서 더욱 그 감동이 배가 되었어요.  

 시놉시스를 읽어보면 납관사라는 직업을 놓지않으려는 다이고와 그 직업을 유지하는 걸 반대하는 아내 미카 및 친구의 갈등이 일어나는 것처럼 적혀있지만 실제 그 갈등은 이 영화에선 잘 나오지 않을 뿐더러 중요한 것도 아니에요. 미카가 다이고를 내버려두고 친가로 돌아가지만  얼마 후 다시 되돌아오거든요. 그에 반해 다이고와 아버지간의 갈등이 더 깊어요. 다이고는 어머니를 버리고 딴 여자랑 눈이 맞아 집을 나간 아버지를 미워해요. 이 영화에선 그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잘 말해주고 있지 않아 자세한 사정은 알 수는 없지만 같은 회사에 일하고 있는 여직원을 통해 아버지의 상황을 유추해볼 수 있어요. 미안함때문에 자식을 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지냈던 여직원의 입을 통해 다이고의 아버지 또한 그런 마음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고 말이죠.  그걸 보여주는 게 아버지 시신을 염습하는 도중 아버지 손에 쥐고 있던 돌이 아닐까요?  그 돌은 다이고가 어릴 적 아버지와 서로 교환했던 돌이었으니까요. 그 돌을 봄으로 인해 다이고는 그동안 품었던 아버지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아버지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 마지막 장면이 너무나 찡하게 다가왔어요. 만약 미카의 말대로 납관사의 길을 접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랬다면 아버지 손에 쥐고 있던 그 돌을 확인할 수 없었을 테고 죽을 때까지 자신을 버렸다며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을까요?

 흠이라면 다이고가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를 직접 '납관'을 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아버지 코가 벌렁벌렁 대는 장면을 들 수 있겠군요. 시체 연기가 쉬운 일이 아닌지라 이해는 가지만 그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장면에서 코가 벌렁대니 약간 감흥이 떨어진다고 할까나.

- 주인공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의 아버지 역을 맡은 중견배우 미네기시 도오루가 영화 개봉 직전 10월 11일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51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