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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를 위해 여럿과 함께 있는 것보다
정의로운 혼자가 훨씬 낫습니다.
-혼자라도 좋아


정말 성공하고 싶다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규칙 하나.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마세요.
-나에게 진실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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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사는 이유 - 카르페 디엠, 시간의 의미를 기억하라
오스 기니스 지음, 홍병룡 옮김 / IVP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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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한 번쯤은 '카르페디엄(Carpe Diem)', '욜로(YOLO)' 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카르페디엄은 호라티우스의 송시에 나온 경구로, '오늘을 붙잡으라(Seize the day)'라는 의미이고 욜로는 '인생은 한 번뿐이다(You Only Live Once)'라는 뜻이다. 한동안 욜로가 유행하여 젊은이들은 퇴사를 하고 여행을 다니며 SNS에 사진을 올리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일을 그만두고 잡업을 하는 자칭 프리랜서들이 늘어났고 자신들의 이야기로 책을 내기까지 했다. 나도 여행한 것으로 책을 내서 이 대열에 합류할 뻔 했지만 다행히 구직을 하여 프리랜서를 면하게 되었다.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물음은 여전히 우리 모두의 고민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산다. 인생의 마지막 때를 생각하며 매일의 일상을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인생이란, 잠시 왔다가는 안개와도 같은 것”이라고 성경에서 얘기하듯이, 우리의 인생은 너무나도 짧기에 인생의 목적을 모른 채 헤매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우리에게 인생의 원대한 계획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그 계획들을 다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시간의 노예가 되지 않고 의미 있게 살다갈 수 있을까?


오스 기니스(Os Guinness)는 책 『오늘을 사는 이유(Carpe Diem Redeemed)』에서 카르페디엄(Carpe Diem)의 의미를 세 가지 -순환적(cyclical), 언약적(covenantal), 연대기적(chronological)- 시간관을 통해 고찰하며, 가장 위대한 시간관념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을 가장 잘 사용하고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시간의 의미와 함께, 이 땅에서 한 번뿐인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통찰력 있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던져준다.



우리가 올바른 시간관을 갖고 있을 때에만 하찮은 것과 중요한 것, 지나가는 것과 영구적인 것, 임의적인 것과 의미심장한 것을 구별할 수 있다. 우리가 뒤돌아볼 때에만 점들을 연결해서 우리 인생이라는 대본의 줄거리를 이해할 수 있다. (p.200-201)



저자는 먼저 순환적, 언약적, 연대기적 시간관을 비교하며, 구속사적 관점에서의 언약적 시간관을 제시한다. 순환적 시간관에서 인생은 끊임없이 돌고 도는 것으로 불교의 윤회사상과 일맥상통한다. 우리 각자가 이전 생애에 지은 업보(카르마;karma)에 따라 환생하여 다음 생에서의 자리가 결정된다. 순환적 시간관에서 인생은 한 번뿐인 유일한 것이 아니라 매번 반복되므로 현생의 의미가 작아지고 개혁의 의지 또한 적다. 싯다르타는 삶을 ‘고해(고통의 바다)’라고 했듯이, 윤회를 믿는 자들은 쳇바퀴 같은 생의 고해 속에서 순환의 고리를 끊어줄 구원자를 찾기보다, 요가나 명상 등을 수련함으로써 내면의 정념을 다스리며 삶을 견뎌낸다.

저자는 순환적 인생관에 대하여 변화와 개혁이 없고 진정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위해 일하려는 혁명적인 요소가 없다고 비판한다. 또, 저자는 쇼펜하우어가 했던 “역사가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상 인류의 길고 무겁고 헷갈리는 꿈일 뿐”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만일 만물이 돌고 돌아 항상 시작한 곳으로 되돌아간다면, 냉혹한 카르마와 운명의 무거운 압박에서 벗어날 길이 있을까? 인생이 계속 돌고 도는 것이라면 역사 속에서 우리가 취하는 행동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 순환적 시간관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언약적 시간관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선불교에서 인간은 '아무런 잔물결도 일으키지 못하는 연못에 던져진 돌'에 불과하다면, 언약적 시간관에서 는 인간을 '연못에 던져져 잔물결(변화)를 일으키는 의미있는 존재'로 본다. 언약적 시간관에서 인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유일무이하고 특별한 존재라면, 순환적 시간관에서 인간은 우연히 존재하는 여러 생명체들 중에 하나에 불과하다. 또한, 순환적 시간관에서 시간과 역사는 쳇바퀴 돌듯이 반복되므로 그 의미가 적었다면, 언약적 시간관에서 역사와 시간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큰 목적을 향해 발맞춰 나아가는 것으로 그 의미가 크다.




폴 고갱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1897년, 141×376㎝, 캔버스에 유채, 보스턴 미술관 소장



순환적 시간관이 어느 정도 맞는 부분도 있다. 우리의 인생에 순환적인 요소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사계절을 거치면서 출생해서 성장하고 노화하여 죽음에 이르는 삶의 흐름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분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불어 넣어 주셨기에 우리는 다른 생명체들과 달리 특별한 존재이다. 우리는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 자의식과, 시간의 범위를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살아나가며, 미래를 계획하는 생명체는 인간뿐이다. 우리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주체적으로 과거로부터 배운 것들로 현재를 살아나가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



모든 성인에게는 과거가 있고 모든 죄인에게는 미래가 있다.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저자는 성경의 역사관에는 운명, 불가피성, 필연성, 또는 역사적 결정론 같은 것이 없다고 말한다. 니체가 말한 “영원한 회귀”도 없고, 요기 베라(Yogi Berra)가 말한 “또다시 데자뷔”라는 것도 없다. 자유란 진정한 선택, 진정한 창조성을 의미하므로 진정한 변화와 진정한 혁신이 언제나 가능하다. 우리는 경험에서 배우고 이후에는 다르게 행동하기로 결심할 수 있다. 언약적 시간관에서 우리는 거대하고 확고부동해 보이는 사회 환경과 정치 환경도 바꿀 수 있으나, 훨씬 더 중요한 점은 우리 자신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목적을 엉성하게 깎을지라도

결국 그것을 실현하는 분은 신이다. -세익스피어의 햄릿



언약적 시간관을 열어주는 것은 신의 섭리와 인간의 협력 관계, 신의 주도권과 인간의 동의를 잇는 고리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이들, 곧 하나님을 알고 그분과 동행하는 이들은 세상에서 그분의 목적을 증진시키는 일에 그분과 기업가 파트너가 된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이들은 그분과 언약한 협력자가 되어 세상을 본래 설계되었고 언젠가 또다시 그렇게 될 상태로 고치고 회복시키는 일에 동참하게 된다. 언약적 시간 속의 인생은 언제나 신의 섭리 아래 있다.




너는 특별하단다(You are special), 맥스 루케이도(Max Lucado)




연대기적 시간관은 언약적 시간관에서 시간과 역사의 주관자이신 신과 영원의 관점(sub specie aetermitatis)을 배제한 '직선적' 시간관념이다. 그러나 언약적 시간관에서 우리는 우연에 의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각자 인생의 목적을 부여받고 지음 받은 귀한 존재이다.

하나님은 역동적으로 일하시며 우리에게 자유롭게 선택할 '자유의지(free will)'를 주셨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에게 주신 자유의지로 우리가 선택한 행위에 대한 책임이 있다. 하나님이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신명기 30장 19절)”고 말씀하셨듯이, 우리는 인간에 주신 자유의지를 주신 것을 감사하며 이 자유의지를 타락하는데 써서는 안될 것이다.

동시에 우리의 선택은 항상 결과를 낳을 것이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과 역사의 심판 앞에 책임 있는 존재로 겸손히 서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유발 노아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인간이 '지구 행성의 신'이 되는 “주인 세대(the master generation)”가 도래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간이 방종하여 자유를 잘못 사용하면 스스로 중독의 노예가 되는 타락의 나락으로 빠질 수도 있다. 따라서 언약적 시간관념 안에서 이 모든 우주를 창조한 창조주의 눈 앞에서 사는 것이라는 경외심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Le Christ apothicaire prescrivant à Adam et Eve le remède du salut. Chants royaux sur la Conception, couronnés au puy de Rouen de 1519 à 1528.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에 대해 저자는 ① 하나님 앞에서 걸으며 ②시대의 징표를 읽으면서 ③ 이 세대에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노력하여, 다가오는 위대한 주님의 날에 소망을 두는 모든 이들과 다함께 일하면서 겸손히 오늘을 붙잡자고 제안한다.

① 하나님 앞에서 걷기

신앙생활에 필요한 자연스러운 토대는 하나님 앞에서 걷는 일이다. “어떤 사람의 성품을 묘사하려는 일은 헛수고로 돌아가겠지만, 그의 행위를 모아 보면 그 성품이 드러날 것이다.” 라고 괴테가 말했듯이, 한 사람이 말하고 행하는 방식, 매일의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은 항상 한 사람의 믿음을 시험하는 최상의 방법이며 우리의 심중에 의향과 동기를 드러내준다. 진리의 다층적 실재는 믿음으로 영위한 삶을 통해, 즉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삶의 실체를 통해 그 진가가 드러난다.

믿음의 삶은 단지 믿음을 진술하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삶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믿음의 사람들에게 오늘을 붙잡는다는 것은 결코 갑작스러운 충동이나 계획되지 않은 영감을 따라 무작위로 행하는 것이 아니다. 새해 결심처럼 일시적 생각이나 의도가 아니다. 오늘을 붙잡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삶의 방식의 창조적 표현이고, 항상 시간과 역사와 인생이 “하나님 아래” 있음을 알며, 그분 앞에서 신실하게 그분의 방식대로 사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걷는 것”은 하나님의 의도에 따라 사는 것이고, 그것 없이는 인생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불가능한 필수 토대라고 저자는 말한다.

② 시대의 징표를 읽기

오늘을 붙잡고 시간을 구속하고 인생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두 번째 요건은 이 순간과 이 시간을 분별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태복음 16:3)라고 말씀하신다. 날씨는 분별하면서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모르는 우리의 분별력 없을을 꾸짖으신 것이다.

우리는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손에는 신문 또는 인터넷을 들고 '시대의 징표를 읽도록' 부름받았다. 저자는 성경을 색안경을 끼고 오독하거나 왜곡하지 말고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현시대에 일어나는 일들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님의 직접적인 격려에 의해 반드시 인도를 받아야 한다. 이는 오직 하나님의 영만이 상황에 관한 진리를 아시고, 우리의 더러운 렌즈를 닦고 우리의 눈을 열어 현재 일어나는 현상과 하나님이 행하고 계시는 일을 볼 수 있게 해주시기 때문이다.

③ 자신의 세대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오늘을 붙잡고 시간과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따르는 데 필요한 세 번째 요건은 우리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려는 노력이다. 다윗은 시대의 징표를 읽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이였기에 하나님은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말씀하시며 흡족해 하셨다(대상 12:32). 그에게는 분별력이 있었다.

저자는 현시대의 세속적인 유행과 사고방식을 따라가지 말고, 다윗과 같이 분별력을 가지고 “선지자적 반시대성(Prophetic Untimeliness)” 정신으로 예수님의 가치관을 품는 제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선지자적 반시대성이란 저항적 사고방식으로, C.S. 루이스는 “진보는 저항적 재료로만 만들어질 수 있다”고 했다. 저자는 선지자적 반시대성 정신을 갖고 사는 삶이란, 인생을 성경적 관점에서 해석하여 시대의 징표를 읽되,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고 노력하며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는 식의 오류에 빠지지 않는 삶이라 말한다.




오늘을 사는 이유, 오스 기니스




오스 기니스는 마지막 ‘끝은 끝이 아니다’장에서 언약적 시간관에서의 끝(마지막 때)의 개념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 오스 기니스 가문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는 중국에 뼈를 묻은 선교사 집안의 일원으로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할아버지는 전염병에 걸린 중국인 군인을 치료하다가 전염병에 옮아 54세의 나이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부모님 두 분 모두 할아버지가 설립하신 허난성의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셨다. 그의 부모님과 조부모님이 중국에서 선교사로 사역하시는 동안 누명을 쓰고 체포되는 등의 힘든 일도 많았지만 중국인들을 섬기는 것을 특권으로 여기며 항상 감사와 기쁨이 충만하셨다고 저자는 회고한다.

저자의 부모님이 중국 공산당 정권에 의해 사역이 중단되고 중국을 떠나야 했을 때, 사람들은 그 모든 사역이 낭비된 것이 유감스럽다고 그들을 위로했다. 이에 그의 아버지는 이렇게 답하셨다고 한다. “낭비되었다고요? 우리는 씨앗을 뿌리는 특권을 누렸고, 현재 일어나는 일은 하나님께 달려 있지요.” 중국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오신 아버지는 평안히 잠든 가운데 세상을 떠나셨다.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했어도 하나님의 언약적 계획 안에서는 ‘끝’이 아니라 중국의 선교에 불을 지피는 ‘시작’이었던 것이다.



오스 기니스 가문의 가훈은

“내 소망은 하나님께 있다

(Spes mea in Deo est)”였다.

하나님은 모든 것보다 더 크시니

모든 상황에서 그분을 신뢰할 수 있다.

하나님을 믿으라.

두려워하지 말라.


-『오늘을 사는 이유(Carpe Diem Redeemed)』 , p.189



성경은 ‘끝(종말)’에 대해 분명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악인에게는 그에 맞는 정해진 결말이 있고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끝’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종말로서의 끝(finis)’은 ‘목적으로서의 끝(telos)’과 동일하지 않다고 라인홀드 니버가 말했듯이, ‘종말로서의 끝’에 도달할 때마다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더 크신 계획하심 아래 ‘목적으로서의 끝’을 향해 열려있다. 우리의 실패로 끝난 일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는 어떻게 목적으로서 끝을 맺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종말처럼 보이는 끝이 사실은 그분의 역사 안에서 중대한 목적들을 향해 움직인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과업은 현실적으로 끝이 종말임을 바라보고, 소망을 품고 목적으로서의 끝을 위해 일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과 협력할 때 우리는 종말 속에서도 그분의 더 높은 목적을 섬길 수 있다. 심지어 그 높은 목적이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고 우리의 능력을 벗어날 때에도 그럴 수 있다. 신실하게 행한 일과 믿음으로 영위한 삶은 결코 헛되지 않다.


인간의 도성은 항상 줄줄이 무너지겠지만 하나님의 도성은 영원하다. 십자가의 끝이 놀라운 부활의 목적으로 이끌었듯이, 마지막 때의 묵시는 언젠가 메시아 시대의 회복으로 이끌 것이다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끝은 끝이 아니다. 믿음은 낙심하는 방향으로 자라면 안 된다. 믿음은 항상 그 소망을 통해 격려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어둠과 낙담과 낙심의 시기에, 심지어는 폭력과 전쟁, 죽음과 혼란의 시기에도 선지자의 메시지가 새롭게 울려 퍼지는 것이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히브리서 2장 4절의 말씀처럼 그리스도인은 가장 어두운 시기에도 어둡지 않은 소망을 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이해는 언제나 불완전할 뿐이다. 우리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 대해 다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여전히 ‘거울로 희미하게’ 볼 뿐이다. 슬프고 부끄럽고 고통스럽고 헷갈리는 과거의 모든 부분, 온갖 악과 수수께끼로 채색된 과거는 메시아의 재림 때 밝히 드러날 미래의 빛에 조명되어 말끔히 풀릴 것이다. 제인 오스틴이 『설득』에서 얘기했듯이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될 것"이고, 시간 역시 최후의 묵시(apocalyptic), 곧 베일이 벗겨지는 날 온전히 설명될 것이다.

“그분이 오실 때까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날이 도래할 때까지 우리는 믿음으로, 소망을 품은 채 살아간다. 신뢰하고 순종하고 일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뒤돌아보며, 소망을 품고 앞을 내다보며 살아간다. 우리가 하나님의 협력자이자 공저자로서 크고 작은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붙잡고 시간을 구속하는 일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


인생은 짧지만, 우리는 우리의 잠재력을 최대한 개발하고, 인생을 최대한 선용하고, 하루하루를 붙잡도록 부름받았다. 가장 위대한 시간관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시간을 가장 잘 사용하고 즐길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 걸으면서, 시대의 징표를 읽으려고 애쓰면서, 항상 우리 세대에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노력하면서, 다가오는 위대한 주님의 날에 소망을 두는 모든 이들과 다함께 일하면서 겸손히 오늘을 붙잡자!




우리가 올바른 시간관을 갖고 있을 때에만 하찮은 것과 중요한 것, 지나가는 것과 영구적인 것, 임의적인 것과 의미심장한 것을 구별할 수 있다. 우리가 뒤돌아볼 때에만 점들을 연결해서 우리 인생이라는 대본의 줄거리를 이해할 수 있다. - P200

시간과 역사에는 의미가 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중요성이라는 한 쌍의 진리 아래. 시간과 역사는 어디론가 가고 있고. 우리 각자는 본질적으로 유일무이하고 중요한 존재일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과 세대, 나아가 전체 역사 안에서 담당할 독특하고 중요한 역할이 있다.(…) 우리는 바람에 흩날리는 먼지가 아니다. 우리는 결국 무의미한 것으로 드러날 우주, 언젠가 무의미하게 사라질 우주 속에서 방향을 상실한 기이하고 우연적인 존재가 아니다.
- P49

하나님은 인격적이셔서 역사에 관여하고 인간과 교류하신다. - P51

하나님은 시간의 창조주로서 언제나 시간 바깥에 계시고 시간 위에 군림하신다. - P69

Live for today(오늘의 위해 살고); Plan for tomorrow(내일을 위해 계획하고); Remember yesterday(어제를 기억하라). -Aesop(이솝) - P9

Beware the barrenness of a busy life.(열매 맺지 못하는 바쁜 생활을 경계하라.) -Socrates(소크라테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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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항상 한 사람의 자기인식에,
그들의 의식적 기억과 무의식적 기억에, 그들이 선택을 통해 쌓은성품에, 그들의 발화 패턴에, 그리고 물론 과거의 악행에서 오는죄책감과 같은 것들에 현존한다. 윌리엄 포크너 (Williamm Faulkner)가 한 수녀를 위한 진혼곡 (Requiem for a Nium)에서 썼듯이, 과거는 결코 죽지 않았다. 과거는 심지어 지난 것도 아니다."

그런데 만일 과거보다 현재에 특권을 부여해선 안 된다면, 원하든 두려워하는 상상된 미래에 현재와 과거보다 특권을 부여해서도 안 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결코 나누면 안 된다. 시간의세 얼굴은 하나이고 나눠질 수 없다. 셋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이고, 셋은 우리 삶에서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서로 얽혀 있고편재한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 과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미래는 아직 존재하지 않지만, 진부한 구별이 너무 가볍게 언급되곤 한다. 리처드 니버 (Richard Niebuhr)가 말했듯이, 과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여전히 현존하고, 미래는 "아직"
존재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우리의 소망, 우리의 비전, 우리의 흥분, 우리의 염려, 또는 우리의 두려움을 통해 "이미 현존하고" 있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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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 wise, strain the wine and cut back long hope into asmall space. Even as we speak, envious time flies past.
Seize the day [carpe diem) and leave as little as possiblefor tomorrow.
HORACE, ODE XI, FIRST BOOK OF ODES

Nothing must be postponed. Take time by the forelock.
Now or never! You must live in the present, launch yourselfon every wave, find your eternity in each moment. Foolsstand on their island opportunities and look towardanother land. There is no other land; there is no other lifebut this, or the like of this. Where the good husbandman is,
there is the good soil. Take any other course, and life willbe a succession of regrets. Let us see vessels sailingprosperously before the wind, and not simply strandedbarks. There is no world for the penitent and regretful.
HENRY DAVID THOREAU, JOURNAL ENTRYThe cost of a thing is the amount of what I will call lifewhich is required to be exchanged for it,
immediately or in the long run.
HENRY DAVID THOREAU, WALDENLife can only be understood backwards, but it has to belived forwards.
SØREN KIERKEGAARD, JOURNAL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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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is
Too Slow for those who Wait,
Too Swift for those who Fear,
Too Long for those who Grieve,
Too Short for those who Rejoice,
But for those who Love,
Time is not.

HENRY VAN DYKE, MUSIC AND OTHER PO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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