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란 우리 앞에 놓인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싹눈 속에 자리하고 있다. 미래는 이미 우리 곁에 있다. 지금 우리 곁에 자리하지 않은 것들은 미래에도 우리와 함께할 수 없다. 단지 땅속에 숨어 있기에 새싹을 보지 못하듯, 우리 내부에 자리하고 있기에 우리는 미래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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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0-06-08 17: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이 아닌 높은 차원에서 본다면,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은 이미 결정되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우리가 시간의 제약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순간만 보는 것인지도요. 그런 면에서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일상 안에 과거의 흔적과 현재 그리고 미래의 단초가 담겨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니의 책다방 2020-06-08 17:43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겨울호랑이님의 댓글을 읽으면서 ˝아기는 미래를 갖고 태어난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겨울호랑이님의 말씀처럼 우리 인간은 시간의 제약에 얽매여 있지만, 시공간을 초월하는 존재가 볼 때는 얼마나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서로 아웅다웅하는지 다 보고 계시겠지요

하니의 책다방 2020-06-08 17:47   좋아요 1 | URL
지금 읽고 있는 오스 기니스의 <오늘을 사는 이유>에서 순환적, 언약적, 연대기적 시간관념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뭔가 주제가 통하는 것 같아요~!

겨울호랑이 2020-06-08 18:00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저는 <오늘을 사는 이유>를 읽어보지 않았지만, 책식주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보니 요즘 ‘시간‘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시는 것 같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시간에 대한 책인 것을 보면 더 그런듯 합니다.^^:)

하니의 책다방 2020-06-08 18:42   좋아요 1 | URL
앗 그렇네요 <잃시찾>!!🤩 겨울호랑이님이 추천해주셨던 책! 전 프루스트 양말도 있는데 빨리 읽어봐야겠어요 ㅋㅋ 평안한 저녁 되세요~💗
 


-인간은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은 복수적(plurality-한나 아렌트) 존재이다.

-우리는 고통받는 자의 곁에 있음으로써 고통을 다룰 수 있다.

-고통의 곁에 서는 것 고통의 곁에도 곁이 필요하다. (˝곁의 곁˝)

-나 스스로가 나의 곁이 되어주는 법

1. 성찰하는 글쓰기 (일기, 자서전)

2. 함께 걸으며 이야기하기



고통의 당사자는 어떻게 스스로 자신의 곁에 설 수 있는가? 절규하는 자에서 말하는 자로 바뀔 수 있는가? 

근대 사회는 이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훌륭한 도구를 발견하고 그것을 보편화했다. 
바로 글이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을 통해 사람은 고통받는 타인의 곁 뿐만 아니라 고통을 겪고 있는 자기의 곁에 설 수 있게 되었다.

글쓰기는 고통의 당사자가 고통의 절대성에 절규하는 당사자의 자리에 머무르며 외로움 때문에 세계를 파괴하는 것에서 벗어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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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력이 없어서 침대 위에 눕거나 안락의자에 앉은 채로 반수상태에 빠져 있는 이들, 나는 그 잠든 행성의 침묵을 지켜보면서 최악의 방식으로 끝을 향해 가는 그들의 생을 바라본다.(p.43)

"그래서 제 생각인데요, 제가 하루에 한 시간씩 피키에 씨에게책을 읽어드리는 거예요. 엄청 좋은 생각 아닌가요!? 그러면피키에 씨에게 도움이 되고, 저는 또 주방에서 한 시간 덜 있게 될테니 저한테도 좋고요! 딱 한 시간만요! 피키에 씨, 피키에 씨가 한 번 원장님에게 말씀 드려 보시겠어요?"
내 어조는 의혹과 간청 사이에서 흔들린다. 그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 그건 분명하다. 그리고 콜레라를 피하려고 페스트를 택하는 것 같은 느낌. 계속 피하려고 달아나려 했던 곳에 제 발로 찾아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 하지만 노인은 이런 문제들에는 관심이 없다. 그의 얼굴이 환하게 빛난다. (p.27-28)

내가 아무리 반항해봤자,결정권은 언제나 그의 주먹에 있다. 나는 가혹행위들과 부당행위들에 굴복하고 만다. 엉덩이 때리기. 불알 움켜잡기. 손가락으로귀 튕기기. 나는 뭐든 당해야 한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를 건조기 안으로 밀어넣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문을 닫는다. 온도를뜨겁게 맞춘다. 아주 뜨겁게. 면직물용 강력 코스.

아, 생업의 세계여, 얼마나 행복한지! 이 문제를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 있을까? 엄마? 그럴 순 없다. 피키에 씨? 이런 일로 그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다. 책 읽기는 신성한 것이다. 나는 이를악물고 꾹 참는다. 그러면 매번 효과를 보는데, 소리 내어 책을읽는 동안 나를 옭아매고 있던 모든 매듭들이 조금씩 풀린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 폭군이 나에게그 모든 모욕들이 하나하나 지워진다. 낭독이 끝날 때쯤이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고 화가 모두 사라진다.

몰입하면서 나는 모든 걸 잊는다. 낭독을 마치는 순간, 나는 망각으로부터 현실로 돌아온다, 씻기고 정화된 채로 행복한 현실로. 나는 피키에 씨와 얼싸안을 것이다. 지금도 서로 악수를 나눈다.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은밀하게 통하는 공모자들이다.(p.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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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시간은 언제나 두껍게 얼어버린 빙하 같았다. 좀처럼 쪼개지지 않아 틈을 낼 수 없었으나 돌아보면 한 세기처럼 거대한 단위로 훌쩍 흘러갔다. 어린 그녀들은 이제 중년을 훌쩍 넘었고 그 시간의 긴 바다를 건너 맨해튼 한복판에서 만나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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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78)
피곤한 사람은 싸울 거리를 찾아다닌다는 옛말이 있다. 배고픈 사람, 목마른 사람, 뭔가 심통거리가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상처가 있으면 누가 스치기만 해도, 아니 스친다는 생각만해도 아프듯이 마음이 약해지면 사소한 일에도 상처를 받는다.

그 결과 인사나 편지, 말투, 질문 등이 빌미가 되어 싸움이 일어난다. 아픈 부위가 어디든 환부를 만지면 비명이 나오게 마련이다.


(p.183) 화에 대한 최고의 치유책은 유예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처음에 끓어오르던 기세는 누그러지고 마음을 뒤덮었던 어둠은걷히거나 최소한 더 짙어지지 않게 된다. 하루 아니, 한 시간도안 되어 너를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게 만든 것들이 어느 정도 진정될 것이고 어떤 것들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설사 화를 유예시킴으로써 네가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적어도 그것은 이제 화의 모양새가 아니라 심판의 형태를 취할 수있게 된다. 네가 어떤 일의 성격을 알고자 할 때는 언제나 그일에 시간을 주어라. 일렁이는 물결 위에서는 아무것도 정확히판단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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