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의 시장성에 관련된 문제는 서사의 전달을 위한 새로운 기술과 결합하여 서사의 문화적 제약이라는 논점 전체에 복잡한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유럽의 르네상스에서, 시장성이 있는 서사 기술은 책과 무대 연극이었으며, 서로 대조적인 두 매체는 비약적인 호황을 누렸다. 양 매체는 최소한의 수입 목표를 충족시켜야 했기에 유료 관객들을 반드시 필요로 했다. 그러나 이들 양 매체의 수요자들은 부분적으로 겹치기는 했어도 두 매체를 생산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의 차이만큼이나 서로 달랐다. 이 시기에 문자서사를 (특히 비교적 최근에 발견된 묵독을 통해) 사적으로 읽는 경험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책을 위한 틈새시장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는 더 큰 규모의 문화 규범과 전적으로 다른 가치관을 지닌 소규모 하위문화의 출현을 의미했다. 책들에는 또한 '재고 유효기간'이 있어서 17세기 서점 주인들은 독자들이 찾아와 책을 구매하기까지 끈기 있게 기다릴 수 있었다. 그러나 무대 연극들은 정해진 시간에 상연되는 큰 규모의 이벤트였다. 그들은 자금과 노동의 막대한 투자를 필요로 했다. 이들에게는 급료를 지불해야 하는 극단과 짓거나, 사거나, 대여해야 하는 극장 등이 필수적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또한 흥행을 위해서는 여러 범위에 걸쳐 있는 사회의 폭넓은 단편들을 화제로 한 작품을 무대에 올려야만 했다. 이들 두 서사매체에 관련된 기술과 마케팅의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커져갔다. 현재는 인쇄된 서사물들이 양과 다양성 면에서 무대 공연을 훨씬 압도한다. 페이퍼북은 대략 10~20달러인 반면, 도시 극장에서 상연되는 연극의 저렴한 좌석은 30~90달러이다.
<서사학 강의> 240쪽, H. 포터 애벗, 문학과지성사
책이 다른 서사매체와 비교해서 가진 장점은 무엇일까? 첫번째는 비교적 싼 가격에 생산 가능하다는 점이고, 두번째는 은밀함이고, 세번째는 그로 인한 사유의 대담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세 가지 특성은 책이 무척 대중적인 매체이면서도 동시에 상당히 개인적인 매체가 되도록 이끌었을 것이다. 이는 생각해 보면 대단히 모순적인데, 열려 있으면서도 닫혀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는 책은 불특정다수가 살 수 있는 '개방성'과, 특정한 책 혹은 작가에 대한 공동체가 형성되는 폐쇄성이 공존하는 식으로 이 모순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해온 듯 하다.
그리고 현재, 인터넷의 등장은 책의 장점을 거의 고스란히 받아들인 매체의 등장이라 할 수도 있겠다. 책보다도 싼 가격(누구나 글을 써서 웹 페이지에 공개할 수 있으니까), 책보다는 덜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높은 은밀함(원한다면 비공개된 장소에서 글을 올릴 수도 있다), 그리고 책보다도 높은 사유의 대담성(출판물에서는 감히 하기 어려운 욕설과 헛소리가 가능하다)이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저질화에 대한 논란에서, 때로는 이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왜냐하면 개방성은 대담하고 극적인 사유를 전개하는 것을 가능케 하지만, 그만큼 저질의 생산물이 나올 가능성을 같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역사를 생각해 보면(물론 현재진행형이지만) 책 역시도 인쇄 기술이 발달하면서(즉 생산비용이 저렴해지면서)저질의 생산물과 과감하고 대담한 주장을 가진 생산물이 점점 더 많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걸 보면 정말로 모든 사물에는 언제나 양면이 존재하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