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사는 너 1
오드리 니페네거 지음, 나중길 옮김 / 살림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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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애가 돈독한 형제나 자매들 사이에는 무엇인가 끈끈한 연결의 끈들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끈은 쌍둥이들 사이에서는 그 힘이 더욱 강력하다고 한다. 놀랍도록 생김이 닮아있고, 그 생김만큼 서로 닮아있는 하나의 몸에서 갈라져 나온듯한 두 사람. 쌍둥이의 신비함은 그래서 때로는 과학이나 학문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신비한 힘으로 미스테리라는 이름을 빌려 세상에 그 힘을 보여주기도 한다. 내 안에 사는 너는 바로 그렇게 돈독하게 맺여진 쌍둥이 자매와 그 자매의 쌍둥이 딸들이 만들어내는 끊으려 했으나 끊어지지 않는 신비한 힘을 소재로 한 이야기이다.


어느 날 단 한번도 제대로 만나보지 못했던 엄마의 쌍둥이 언니에게 재산을 물려받게 된 쌍둥이 자매. 서로의 모습이 너무도 닮아 미러 트윈스라 규정되어진 또 하나의 특별한 존재인 그녀들은 말 그대로 좌우대칭의 형태로 태어나 모든 생김과 내장기관까지 서로 맞닿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좌우 대칭인 그녀들은 그토록 닮았음에도 다른 부분이 존재하고 그녀들의 서로 다른 차이점은 그녀들의 엄마와 엄마의 자매가 그래왔던 것처럼 아주 오랜 시간동안 소리 없이 균열을 일으켜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를 하게 하는 치명적인 위협으로 작용할 위험이 된다. 어머니와 오랜 시간 왕래가 없었으면서도 조카인 자신들에게 막대한 재산을 물려준 이모. 그 이모의 조금은 특별하고 조금은 기괴한 유언을 따라 그녀들은 그녀들의 이모가 마지막을 살았던 아파트로 들어오고, 그곳에서 그녀들은 오랜 시간 유지해온 그녀들의 삶을 조금씩 뒤흔드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죽은 이모의 영혼과 그 이모들과 한동안의 시간을 보낸 연인, 그리고 그녀의 이웃들을 말이다. 그리고 그 안에 그녀들이 채 생각하지 못한 비밀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은밀하게.. 그리고 아주 위험하게..

오드리 니페네거는 전작인 시간 여행자의 아내가 영화화되어 큰 인기를 끌면서 주목을 받은 작가이다. 시간여행자의 아내는 시간여행이라는 다소 미래적인 소재를 다루었지만 주된 이야기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순간 시간을 거슬러 움직이는 남자를 사랑한 한 여인의 기다림과 불안함에 대한 이야기였기에 사랑의 아름다움 보다는 고통에 대한 이야기라는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었다. 그렇게 오드리 니페테거는 사랑을 이야기 하지만 그 사랑의 이야기 안에 조금은 생소할 것 같은 SF적 요소를 끌어다 놓았고, 아름답기만한 순수한 사랑과 상상을 이야기 하기 보다는 우리가 그저 환상으로 품었던 그 상상을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과 버무려 아름답지만은 않은 그리고 그렇기에 더욱 아름다운 이야기로 만들어내었던 작가이기도 했다. 그런 작가의 두번째 작품. 내 안에 사는 너는 이런 작가의 전작과 여러 부분에서 비슷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자신들만의 비밀을 가지고 인생 전체를 건 게임을 한 쌍둥이 자매와 대를 이어 그 운명에 얽힌 또 다른 쌍둥이 자매의 이야기는 그래서 아름답기 보다는 고통스럽고 부드럽고 포근하기 보다는 언제나 불안하고 위태로운 위험을 끌어 안고 있는 느낌을 준다. 하나에서 갈라져 나온듯 닮은 자매들이 서로 다른 인생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고, 그 노력과 집착으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갈등에 놓이는 이야기. 그리고 그 집착으로 인해 문제가 겉잡을 수 없을 정도까지 얽히고 섥히는 이 이야기는 그래서 아름답다고는 말할 수 없는 사랑의 이야기이자 자매의 애증의 이야기이도 고통과 번뇌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죽어서도 매듭짓지 못한 자신의 인생을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것도 불사하는 집착. 아름다워야 할 자매의 가족애마저 흐트려 놓은 집착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사랑은, 그래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도 용납되어서는 안되는 일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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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의 간주곡>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허기의 간주곡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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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고통스러운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허기의 간주곡>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라는 식욕, 그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 느껴야 하는 상실과 좌절, 그리고 고통의 감각 허기. 그 허기를 노래하는 이야기라면, 가장 본질적이고, 가장 처절한 고통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으리라. 그리고 그 고통을 통해 허기의 근원을 말하리라. 허기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허기의 처절함에 이야기하며 허기가 가져다 주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달음질을 말할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허기의 간주곡>은 그렇게 채 한줄도 되지 않는 제목만으로, 인간의 처절한 고통과 갈증, 그리고 절대 채워지지 않을 욕망에 대한 경고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첫 장을 펼쳐들기 전,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이 이야기 속에 펼쳐질 허기에 대한 고통스러운 노래가 나에게 전염되지 않도록, 하지만, 그 고통과 괴로움을 느낄 수는 있도록, 그렇게 나를 단속해야했다.

<허기의 간주곡>은 이 책의 저자인 클레지오의 어머니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라고 한다. 그래서 <허기의 간주곡>은 그의 어머니가 겪었던 시대와 역사의 모순된 모습을 그리고있다. 그리고 그 안에 그 모든 역사의 시간을 온전히 겪어내고, 그 역사를 허기라는 처절한 고통으로 클레지오에게 보여준 한 여성의 모습을 간결하고도 단정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시작에는 허기와 전혀 관련이 없었을지도 모를 에텔이라는 여성이 어떻게 삶을 통해 허기를 깨닫고 끝없는 허기를 느껴야 했는가를 보여준다.

부르주아 가정에서 별로 부족할 것 없이 성장하던 에텔, 그녀의 시작은 그녀가 평생을 꿈으로 그리며 살아갈 바로 그곳, 연보랏빛의 아름다운 집에서부터 시작한다. 남부러울 것 없는 부유한 가족, 그녀를 사랑하는 조부, 그녀의 삶은 그 시작에 있어서만큼은 균열없는 깨끗한 도자기 같았을 것만 같다. 하지만, 그녀에게 물려준 유산들을 빼앗은 그녀의 아버지와,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불화, 가식과 허영으로 삶을 채우고 끝내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음을 내딛는 그녀의 아버지로 인해 그녀의 삶에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균열사이로 그녀는 사회의 부조리함과 기성세대의 가식과 타락을 향해 넌덜머리를 내게 된다.



연보라빛 집을 꿈꾸는 그녀의 허기는, 끝없는 고통에서부터 시작해 아름다운 행복을 쟁취한 것이 아닌, 처음부터 아름다운 행복을 소유한 기억을 가지고 있기에, 그 실체가 너무도 뚜렷한, 그래서 더욱 더 절실하고 처절한 허기가 되어가고, 여기에 그녀가 사랑했던 친구와 연인에 대한 절실함까지 더해져 그녀를 끝나지 않을 허기로 이끌어버린다.

에텔은 결국,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회적 사건과, 그녀 가정에 드리워진 수 없이 많은 균열의 틈새로 들어온 불행들로 인해, 따뜻하고도 아름다운 가정의 품에서 곱게 자란 고운 소녀에서 무언가를 향해 끝없이 돌진해야만 하는 여인으로 자라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인생이란 결코 끝나지 않는 허기에 시달리는 과정임을 온 몸으로 처절하게 체득해나가게 된다.

'나는 허기를 잘 알고 있다'

에텔의 허기는 이 책의 시작을 알리는 한 줄의 말로 이어진다. 그녀의 허기는 이제 그녀의 허기로 끝나지 않고, 클레지오에게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군트럭을 쫓아다니며 초콜릿을 얻어 먹고 좋아했던 어린 시절의 허기,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면 흰 빵이 먼저 떠오르는 허기. 전쟁이 남긴 허기는 클레지오에게 인생전체를 통해 다시 온전히 겪어야 할 허기의 전초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어머니를 통해 어린시절 느꼈던 허기와 또 다른 의미의 허기를 이어받았을 것이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이들은, 허기에 시달리고 있으리라, 그 이름과 원인은 다르더라도, 그들이 끝없이 달리고 꿈꾸는 이유는, 절대 채워지지 않을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허기는 분명, 고통스럽지만, 또 이런 생각을 해본다. 허기로 인해 우리가 살고 있다고, 그 고통을 피하고 욕망을 채우기 위해 우리가 분주히 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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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결탁>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바보들의 결탁 - 퓰리처상 수상작
존 케네디 툴 지음, 김선형 옮김 / 도마뱀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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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든, 혹은 드라마이든, 그것도 아니면, 영화나 전래동화의 주인공이든, 작가라는 창조자에 의해 만들어진 전해지거나 옮겨진 이야기들은 대게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공통점들이 존재한다.

세상은 넓고 할일도 많은 세상이다보니, 만들어지는 이야기도, 천차만별, 점차 다양해지고 있기는 하지만, 허구의 이야기를 전하거나 혹은 만들어내는 창조자들의 그들의 이야기에 누군가의 눈과 귀를 끌어다 앉히게 하기 위해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요소. 그것은 바로 공감이다. 사랑이든, 연민이든, 그것도 아님 동정이나 정의감이라도, 사람들의 눈과 귀에 무언가의 이야기와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그 이야기에 동조하고 공감해야만 한다는 것은, 어쩌면 말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사실이리라.



그래서 일까? 작가들은 자신들의 이야기에 공감이라 불리울만한 감정의 동요를 이끌어내기 위해 주인공에게 여러 특성을 부여한다. 인간의 가장 선한 본성이라든지, 혹은 행위의 정당성이라든지, 혹은 그 누구도 비난하지 못할 불우한 환경이나 근거들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책을 읽고 드라마를 보는 동안, 그 주인공이 왜 그렇게 해야했는지, 혹은 어떻게 그 위기를 극복하는지를 공감하고 이해하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수록 그 이야기는 성공적이되고,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록 그 이야기는 설득력을 가진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그렇다보니, 책이나 드라마의 주인공들에게는 비슷한 공통점들이 한가지쯤은 있다. '그럼에도 그는 선한 일면을 가진 사람이었네..'식의 여지말이다. 바로 그 본질적인 인간의 선한면을 바탕으로 이야기들은 그를 정당한 이유가 있는 악인, 혹은 어떤 상황에도 정의를 쫓는 선인으로 만들어낸다. 최소한, <바보들의 결탁>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바보들의 결탁>은 첫 장을 펼치고 한참 동안을, 바로 이 규칙,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선하다" 따위에는 전혀 구애받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이 책의 주인공인 이그네이셔스의 행동과 말들을 따라가다보면, 짜증스럽고, 때로는 분노하게 만드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기 까지 하다. 이전의 수 없이 많았던 이야기와 영화, 드라마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었던 이 어이없는 캐릭터를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하는 것일까?

이그네이셔스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을 얻지 않은채 홀 어머니에게 빌붙어 사는 백수 중의 백수이다. 꽤 오랜 시간 백수생활을 하고 있으니, 지금쯤이면 주눅이 들어 뭔가 소일거리라도 없나 이리저리 두리번 할 법도 한데, 이그네이셔스는 황당하게도 이 끝날줄 모르는 백수생활에 뭔가 거창하고 장엄한 이유를 가져다 붙이며, 그의 백수생활이 정당하고도 고결한 것이라는 억지 주장을 참 천연덕스럽게도 늘어놓는다. 도대체 뭐라고 쓰고 있는건지도 모를 낙서같은 기록들을 이리저리 끄적이며, 마치 노트들이 인류의 역사에 커다란 획을 그을 전인류적 과제라도 되는 양 거들먹거리기까지 한다. 자신이 아닌 모든 사람들은 모두 하등한 존재가치를 지니며, 자신은 그들보다 고차원적인 사고를 하고 있기에 세상과 섞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논리. 이그네이셔스의 이 논리들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이노무 자슥, 한 대 확 쥐어박고 싶네'싶은 마음이 당연히 들 듯 하다.

<바보들의 결탁>은 바로 이 문제적 골치덩어리 이그네이셔스와 그의 어머니 라일라,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몇몇 사람들의 일상과 생각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물론, 가장 특이한 인물은 이그네이셔스이지만, 그를 둘러싼 인물들 모두 하나하나 범상치 않은 인물들이니, 이 이야기가 500페이지가 넘어가는 장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는 듯 하다.

<바보들의 결탁>은 읽어내려가는 초반에는 분명, 굉장히 신경거슬리고, 짜증스럽게 하는 이그네이셔스의 행동과 말투들로 유쾌하지만은 않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가 실존하는 인물이라면, 뭔가 가르쳐야 할것도 같고 혼도 내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 될 수록 이그네이셔스의 이러한 자기방어 방식에 묘한 동정과 측은함을 느끼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녹녹치 않은 세상에 스스로 녹아들어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에 실패한 청년, 그리고, 그안에서 자괴감에 빠져 우울하고 침잠하기보다는 세상을 부정하는 것으로 자신을 보호해야하는 그의 신세가 사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바보들의 결탁>이 쓰여지던 과거와 지금의 세상사 모두 살아가기 빡빡한 것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기도 하다.

<바보들의 결탁>은 분명 즐겁고 행복한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삐딱하고 냉소적인 이그네이셔스의 말과 행동을 통해 과거와 다를바 없이 현재를 이어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그 안에 여전히 남아있는 수 없이 많은 이그네이셔스들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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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2월 3주

사람들에게는 가끔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 생기기도 합니다. 단 하루의 기억이, 평생동안 아름답게 기억되는 추억이 되기도 하고, 단 하루의 경험이 인생 전체를 뒤흔드는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기도 하죠. 또, 단 한번의 만남이 이후의 삶을 바꾸어 놓기도 합니다. 비록 순간의 짧은 만남에 지나지 않더라도, 비록, 찰나의 감정일 뿐이라도, 이런 기억들은 시간이 흘러도 절대 잊혀지지도, 지워지지도 않죠.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그 향기와 추억은 강해질 수도 있죠. 어쩌면 그 순간이 짧았기에 더욱 오래 더욱 잊혀지지 않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만추는 바로 그런 만남과 인연을 그린 영화입니다. 짧지만, 강렬한, 그래도 더욱 잊을 수 없는 인생의 한 순간에 대한 의미를 그린 영화라고 하면 어느 정도 정의를 내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남편의 위협과 의심을 견디지 못하고 살인을 저지른 애나는 수감된지 7년만에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비보를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여할 수 있는 72시간의 외출을 허락받죠.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애나는 시애틀로 향하는 버스에서 한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남자는 애나에게 급하게 차비를 빌리게 되고, 애나는 그저 무심하게 그에게 돈을 빌려주죠. 물론 받을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그녀에게 돈을 빌린 남자는 호스트로 소위 말해 나이 많은 누님들 등이나 쳐먹고 사는 제비입니다. 애나는 별 의미 없는 그와의 만남을 무시하려 하지만 이 남자는 웬일인지 애나곁을 맴돌죠. 물론, 이 남자 역시 처음부터 애나에게 감정을 가진것은 아닌듯 합니다. 그저 호스트로 일하며 체득한 특유의 서글함일 뿐일지도 모르겠구요. 아직까지 그는 그녀가 어떤 여자인지 모르고, 그녀 역시 그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다시 그를 마주치게 되고, 그와 함께 72시간의 시간 중 어느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결코 길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녀에게는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시간을 말이죠.
 

7년의 시간동안 감옥이라는 격리된 세상에 살고 있다가 아주 짧은 시간동안 세상으로 나오게 된 애나는 가족에게서도, 그리고 세상에서도 위로를 받지 못합니다. 그녀 자신도 이제 곧 스스로가 감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현실속으로 파고들 엄두를 감히 내지 못하죠. 그래서 터져나오는 슬픔도,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드는 소외감도 결코 표현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녀와 다른 나라에서 건너와 그녀의 모국어인 중국어로는 대화도 할 수 없는 낯선 남자 훈에게서는 알 수 없는 위로를 받습니다. 그를 통해 슬픔을 토해내고, 그에게만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할 수 있었죠. 그리고 그 역시 그녀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위로하고 함께 합니다. 사랑을 느끼기에는 짧은 시간, 그 짧은 시간동안 그들은 이제 막 사랑을 느끼게 되고, 그렇게 헤어지게 됩니다. 그녀가 다시 세상으로 나오는 날 그들이 함께한 안개가 짙었던 어느 버스 휴게소에서 만나기로 약속한채로..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은 이유인지, 극장에는 개봉첫날임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꽤 많은 비율이 여성관객이었음은 두말할 나위없을 테구요. 하지만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을 그리며 만추를 찾은 관객들에게 만추는 그다지 친절한 영화는 아닙니다. 시크릿 가든의 현빈을 위한 영화이기 보다는 오히려 여주인공인 애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고, 시크릿 가든 속 까도남 이미지의 재벌3세 김주원이 아닌 뺀질한 제비 훈이 있을 뿐이니까요. 하지만, 그런 기대를 가지고 극장을 찾은 관객이 아니라면, 그저 만추라는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궁금했던 관객이라면 만추는 꽤 괜찮은 영화입니다. 스펙타클한 영상미도 없고, 빠른 전개로 긴장감을 주는 영화도 아니지만 섬세하게 그리고 비교적 감성적으로 주인공인 애나의 감정을 그려내고 있는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목처럼 싸늘한 가을바람처럼 애잔한 여운을 남기는 영화이기도 하구요. 
 

 

 

밴드의 기타리스트 루이스와 장래가 촉망되는 재능있는 첼리스트 라일라는 각자 자신만의 음악세계에서 나름의 재능을 인정받고 있는 이들입니다. 루이스는 밴드음악을 하고, 라일라는 클래식 연주를 하고 있죠. 이들은 어느날 우연히 파티에서 서로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사랑에 빠지게 되죠. 아주 짧은 순간의 만남이지만, 이들은 분명 사랑을 느끼게 되고, 그 날 밤을 함께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루이스와 라일라는 결국 헤어짐이라는 아픈 상처를 얻게 됩니다. 그들이 헤어지고 난 후 라일라는 자신이 루이스의 아이를 가지게 된 것을 알게 되고, 라일라는 그 아이를 낳게 되지만, 그녀에게 촉망받는 첼리스트의 미래를 포기하게 할 수 없었던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낳은 아이가 유산되었다는 거짓말을 한 후 아이를 고아원으로 보내버립니다. 그렇게 고아원으로 보내어진 라일라의 아이는 기타리스트인 아버지와 첼리스트인 어머니의 재능을 물려받아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을 가진 아이로 성장하게 되는데요. 어느날 아이는 부모님을 만나고 싶다는 일념으로 고아원을 떠나버립니다.

어거스트 러쉬는 짧은 하룻밤의 사랑으로 만들어진 한 생명이 자신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부모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담은 영화입니다. 아이는 이 여행을 통해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세상에 알릴 기회를 얻게 되고, 이 재능을 통해 다시 부모님을 만나게 됨은 물론, 그동안 헤어져 지내던, 그리고 서로를 그리워만 하던 루이스와 라일라를 다시 한 자리에 서게 하죠. 긴 시간의 만남은 아니었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서로를 알아보았던 한 쌍의 남녀와, 그들의 사랑이 만들어낸 하나의 생명, 그리고 두 사람을 비로소 하나로 만들어주는 이 아이의 존재가 음악이라는 세 사람의 공통분모와 서로를 끝없이 그리워하고 추억했던 마음으로 이들을 완벽한 사람들로 만들어줍니다.

영화 자체는 훗날 어거스트 러쉬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 아이의 재능과 이 아이의 여행을 중심으로 펼쳐지지만, 짧은 만남에도 서로를 향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열렬히 사랑했던 이들의 간절함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그 하룻밤이, 인생 전체를 흔들어버린 가장 소중한 시간이 되었던 것이죠. 만추가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생길 수 있는 강렬하고도 깊은 교감에 해서 이야기 한다면, 어거스트 러쉬의 루이스와 라일라는 짧은 시간동안 사랑을 느낀 두 사람이 그 사랑을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워하며 추억하는가를, 그리고 그 사랑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서로를 서로에게 향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 사람의 감동적인 이야기, 그리고 아름다운 음악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며 감동적인 영화이기도 합니다.
 

 

 

학교로 돌아가는 기차 안, 셀린느는 우연히 그 기차안에서 제시라는 이름의 청년을 만나게 됩니다. 셀린느는 프랑스 여인이고, 제시는 미국청년이죠. 제시는 유학을 온 여자친구를 만나러 왔다가 뜻하지 않은 실연을 겪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기차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이들은 길지 않은 기차여행동안 서로 대화를 주고 받으며 시간을 채워가죠. 그리고 그 시간동안 서로가 잘 통한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헤어짐이 아쉬운 제시는 셀린느에게 함께 기차에서 내려 하루의 시간을 함께 보내자고 제안합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지만 셀린느 역시 제시와 헤어지기가 아쉬워 그의 제안을 수락하죠. 그들은 그 하루의 시간동안 서로 더욱 많은 이야기들을 나눕니다. 그 누구에게도 쉽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 그러나 그들에게 중요했던 인생의 여러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은 날이 새기 전까지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그렇게 서서히 혹은 너무도 빠르게 사랑에 빠진 두 사람. 이제 제시는 미국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비포선라이즈는 개봉한지 정말 오래된 영화입니다. 벌써 15년이나 흐른 영화이니까요. 또 이 영화는 크게 강렬한 사건이 있지도 않고, 엄청난 반전이 있지도 않습니다. 그저 셀린느와 제시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열어감을, 그리고 그 틈을 비집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겨남을 새벽녘의 아련한 모습처럼 희미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보여주는 영화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화려한 치장없이, 그리고 대단한 사건 없이도 사랑이란 그 존재자체만으로 아름답고, 사랑이란 때로는 짧디 짧은 찰나의 순간에서도 느껴지는 것이라는 걸 이 영화는 보여주니까요. 이들의 인생에서도 사랑이란 감정은 그리 큰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으로도 충분하죠.

하지만 비포선라이즈의 커플들은 이 사랑에 대해 확신까지는 가지지 못합니다. 아마도 실제 우리에게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추의 애나와 훈 커플처럼 무작정 기다리거나, 어거스트러쉬의 루이스와 라일라처럼 한없는 그리움을 간직하기 보다는 비포선라이즈의 커플처럼 망설이고 두려워 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비포선라이즈는 앞선 두 영화보다 더욱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후 비포선라이즈는 비포선셋이라는 영화를 따로 제작해 이들의 훗날의 모습도 보여주긴 합니다. 하지만, 비포선라이즈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순간의 강렬한 감정에 대한 젊은 남녀의 고민과 망설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영화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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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첫눈에 반하는 사랑도 있다고들 합니다. 아마도 그것은 자신들이 경험한 사랑에 기초해 내릴 결론들이겠지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바로 그 찰라에 가까운 순간은 분명 존재한다는 것일겁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인생 전체를 뒤흔드는 중요한 것이라면, 누군가의 인생은 분명 그 찰라의 순간에 의해 변화하는 걸테구요. 꼭,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을지도 모릅니다. 만추나, 어거스트러쉬, 비포선라이즈의 남녀처럼 순간에 인생을 걸만한 사랑은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영화들이 보여주는 그 단 한순간이 정말 중요한 이유는, 그 시간의 길고 짧음이 아니라, 그 순간에 사랑이 존재한다는 바로 그 이유때문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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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책을 소개하는 내용들을 보다보면, 인간의 삶은 언제나 아주 단순하고, 간단한 한번의 만남이나 한번의 사건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이 변화하기도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이야기속의 주인공들 뿐 아니라, 우리들도 언제나 인생의 아주 짧은 순간을 기점으로 변화하거나 발전하기도 하고, 또, 반대의 상황에 놓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 이야기속의 주인공들이, 인생의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그들의 인생에 어떤 소용돌이를 일으키는지, 혹은 빨려드는지, 사뭇 궁금하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 

 예전에 천국에서의 골프라는 책에서 이 비슷한 이야기를 읽었던 적이 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역사적으로 너무도 유명한 인물들을 만나 골프경기를 치루며 인생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들을 되짚어보는 주인공의 이야기. 이 이야기 역시 역사적으로 유명한 이들을 만나 인터뷰한다는 가상의 설정을 기초로 이야기를 시작한다고 한다. 물론 이야기의 목적은 사후에 만난 이들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시각으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논하게 되겠지만, 우리가 결코 만날 수 없을 수 없이 많은 역사적 인물들의 모습들이 이 책에서 어떤 말과 이야기로 풀어질지는 읽어보아야만 알 수 있으리라.  

 

 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 

간단히 소개된 책에 대한 이야기들만으로는 이 책이 외 시인들의 고군분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저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처럼 경제적으로 윤택하지 못한, 혹은 경제적으로 고난에 처한 청년이 삶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바로 그 모습. 그리고 그런 구조를 만들어낸 사회의 어둡지만 때로는 어이없이 웃기는 그런 모습들을 그려낸 것 같다는 예상만을 할뿐이다. 과거와 미래를 말하는 많은 작품들 사이에서 현실의 우리를, 또, 나와 비슷한 청년기를 지나가는 이들의 삶의 모습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호기심이 가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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