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러스킨의 드로잉
존 러스킨 지음, 전용희 옮김 / 오브제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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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을 전공하거나, 미술학원에서 직접 연필이나 붓을 잡아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미술이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들 중 하나일 때가 많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면 되는 것이라고 말들하지만, 그 안에서 논해지는 전문적인 이야기나, 평단의 평가는 물론, 시시때때로 들려오는 고가의 미술품에 대한 단편적인 뉴스들은, 미술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특수한 집단의 특권이나 또 다른 방식의 금전적 가치를 지닌 재산증식 방식으로만 느껴진달까? 그래서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이들에게, 혹은 미술에 대한 전반적이거나 혹은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미술이란, 궁금은 하지만, 감히 범접하기에는 다소 어색한, 그런 존재가 되어있는것이다.

생각해보면, 살짝 억울할 수도 있는 일인것 같다. 어린시절, 학교에서 크레파스나 연필자루를 손에 뒤고, 그림한번 끄적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유명화가의 기법과, 미술평론에 대한 지식은 없을지라도, 누구나 한번쯤 그림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그림을 통해 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무언가 전문적인 기술과 전문적인 지식이 없다면 그림에 대해서는 논하거나 공감할 자격이 없다는 것처럼 느껴지게 되는 지금의 모습들이 말이다.

존 러스킨의 드로잉은, 그래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책이다. 화려한 색채와 뛰어난 기법들을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연필 한자루를 가지고 사물을 표현해내는 드로잉. 때로는 단순하게, 때로는 정밀하게, 때로는 보이는 것 이상의 것들을, 때로는 보이는 것 그대로의 모습들을 표현해내는 드로잉이라면, 나처럼 미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고, 미술에 대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림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림이란 어떻게 표현하고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인지를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기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존 러스킨의 드로잉은 내가 상상하던 드로잉 교본과는 조금 다른 책이었다. 단순히 따라하면 다 되는 드로잉 교재가 아니라, 드로잉에 여러가지 기법와 함께 드로잉이라는 장르의 그림들을 대할때 가져야하는 매 순간의 마음가짐과 존 러스킨 자신이 드로잉을 통해 느꼈던 그림 이상의 것들에 대해 기록해놓은 그만의 그림철학이 담긴 한권의 강의노트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달까? 때문에 이 책은 단순히 눈으로 보고 따라하는 것이 아닌, 그림을 대하는 태도와 준비에 필요한 모든 과정들에 대한 총체적인 이야기를 드로잉이라는 장르를 통해 전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드로잉을 어떻게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드로잉이라는 미술의 한 부분을 통해 미술을 전체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림을 그리고자 한다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그림철학을 드로잉을 통해 보여준다고 할까? 때문에 이 책을 읽고 나면, 드로잉이란 미술의 한가지 기법을 배웠다기보단, 그림이 왜 아름다운지 그 자치를 살짝 엿본 느낌으르 가지게 된다.

존 러스킨의 드로잉은, 그 안에 존 러슽킨의 목소리를 아주 생생하게 담고 있다. 단호하게, 그리고, 무척 섬세하게, 그림을 시작하는 사람들, 혹은 그림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림은 그리는 기술이 아니라 느끼고 공감하는 감성이라는 것을 전달한다. 그리고 때문에 그림에는 그리는 사람이 사물을 보는 눈과 마음이 그대로 담기게 되고, 그림을 보는 사람은 단지 장면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림안에 담긴 시선을 공감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살짝 들려준다. 그래서 존 러스킨의 드로잉은, 드로잉이라는 장르를 통해 그림에 접근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꼭 한번은 들어야 할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그림에 담고 싶은 것들에 다가가는 작가의 시선에 대한 이야기들을, 그리고 그림을 보는 눈을 가지고자하는 이들에게는 그림을 볼 때 진정 그 그림의 가치를 느끼기 위해 가져야 할 자세를 들려주는 존 러스킨 선생님의 친절하고도 매우 자세한 강의가 될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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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8월 4주

예전에는 우리나라에서 아역배우로 시작해 성인배우까지 순탄하게 연기생할을 이어가는 배우들을 만나는 일이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아주 어릴적부터 성장기를 지나 성인배우까지 안정된 연기력 혹은 폭풍연기력을 갖추고 여기에 폭풍성장까지 더해 매력을 폴폴 날리는 아역배우 출신들이 꽤 많죠. 사실, 아주 어릴때부터 귀엽고 깜찍한 모습들을 보이던 어린 소년, 소녀들이 자신의 나이만큼 차곡차곡 연기경력을 갖추며 성장하는 모습은, 어느날 갑자기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에 나타나 톱스타가 된 남녀배우들과 비교한다면 조금 색다른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블라인드 111분 | 개봉 2011-08-10

경찰대학을 다니다가 사고로 동생을 잃고 두 눈의 시력까지 잃게 된 수아. 이제 겨우 앞이 보이지 않는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져가지만, 여전히 세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여러모로 좌절감을 가져다 줍니다. 학교에 다시 복학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게 된 수아는 자신이 자라온 보육원에서 수녀님과 다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택시를 잡아타게 되죠. 뭔가 어색한 점이 많은 택시 안, 수아와 택시기사가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택시는 길가의 사람을 치고맙니다. 눈은 보이지 않지만, 덕분에 육감이 발달한 수아는 이 사실을 눈치채고, 기사는 그런 수아를 버린채 달아나죠. 수아는 그가 뺑소니 사고를 일으켰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바로 경찰서에 신고를 합니다.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수아가 교통사고를 목격자라는 사실은 경찰서에서 수아의 진술 자체를 믿을 수 없게 만들죠.

그리고, 이 사건이 그저 단순한 교통사고 뺑소니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수아가 목격한 사건에는 또 한명의 목격자가 출연합니다. 닭집 배달원인 기섭이가 말이죠. 하나의 사건에 보이지 않는 목격자와 보이는 목격자가 다른 진술을 하면서 이 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이릅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수아의 진술로는 사건 수사에 진척이 없었지만, 눈으로 목격한 새로운 목격자는 사건의 신빙성을 더하게 되고, 결코 단순 뺑소니 범이 아니었던 범인에게도 위협이 된것이죠. 이제, 이 사건은 범인과 수아, 그리고 기섭의 싸움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블라인드에는 눈이 보이지 않는 목격자 수아 역으로 김하늘, 그리고 또 다른 목격자 기섭 역으로 유승호가 출연합니다. 이 글의 제목인, 잘 키운 아역 하나 열 톱스타 안부럽다의 대표주자인 유승호군, 어린 나이이지만, 데뷔작인 가시고기부터 그 존재감을 무시할 수 없었던 그 아역배우가, 이제는 스크린을 장악하는 능력을 가진 매력적인 배우로 성장한, 이제는 결코 아역이라는 꼬리표로 재단할 수 없을 것 같은 바로 그 유승호가 출연하죠. 사실, 유승호 군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그는 꽤 많은 영화에 존재감을 드러내었던 배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많이 기억하고 있는 집으로부터, 돈텔파파와 마음이, 얼마전 예능 출연으로 더욱 인기를 끌고 있는 고창석씨와 함께 출연한 부자까지.. 영화의 흥행과는 상관없이 '유승호 보러 영화관 간다'는 팬들이 있을만큼 인기도 높았죠. 또, 다양한 드라마에 꾸준히 출연하면서 방송을 통해 성장하는 유승호를 여과없이 보여주며 오히려 더욱 그가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을 대중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기도 했습니다. 아역배우가 성인배우로 성장하려면 그 중간에 뭔가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배역 하나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대중들에겐 약간 색다른 기분을 느끼게 해준 배우이기도 하죠.

이 영화에서 유승호는 지금 자신의 나이를 연기합니다. 배달을 하며 생활하는 약간은 껄렁한 불량기 있는 청소년의 역할말입니다. 순하디 순한 웃음으로 화면을 뽀샤시하게 만들던 그 동안의 유승호와는 다르게, 욕도 하고 침도 뱉는, 나름 파격 연기변신도 시도했구요. 다행히, 이 영화는 현재 매우 좋은 평으로 순항중에 있습니다. 아마 꽤 좋은 흥행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현재 방송중인 무사 백동수와 맞물려, 이제 유승호가 착하고 예쁜 역할만이 아닌, 뭔가 조금 더 다른 모습도 보여줄 수 있다는 가능성과 함께, 배우로서 흥행에도 일조를 하는 아우라를 지니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써니 124분 | 개봉 2011-05-04

바쁜 남편과 사춘기에 접어든 딸, 보통의 가정주부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나미는, 그런 일상이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을 평범한 다른 주부들처럼 받아들입니다. 무언가로 바쁜 남편과 딸 사이에서 가끔은 우두커니 외로움을 느끼며 말입니다. 남편은 출근하고, 딸은 등교한 후 어느날, 나미는 몸이 아파 병원에 누워계신 엄마를 찾아갔다가 우연히 병동에서 어린 시절 자신과 학창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 춘화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가 이제 살아갈 날이 얼마남지 않은 중환자라는 것도 알게 되죠. 오랜만에 재회한 춘화와 나미는 서로 그리웠던 학창시절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이제 얼마남지 않은 춘화의 시간에 나미는 그 때의 친구들을 모아 선물하기로 하죠. 그렇게 나미는, 일명 써니라고 불리웠던 친구들을 찾아나섭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그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친구들을, 한명한명 말입니다.
 

 

 

써니는, 두 말이 필요없는 2011년 상반기 최고의 흥행작입니다. 5월에 개봉한 작품이 아직도 상영중에 있을 정도이니, 영화 상영기간이 비교적 짧은 국내 분위기에서는 엄청난 장기 상영작이기도 하죠. 전작에도 비슷한 분위기로 엄청난 흥행성적을 거두었던 과속스캔들의 강형철 감독의 작품이기도 하죠.

이 작품에는 잘 키운 또 한명의 아역 심은경양이 출연합니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나미 역으로 출연하는 유호정씨의 어린 아역으로 말이죠. 실제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역할은 성인이 된 나미이지만, 이 영화 자체가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모습들을 많이 담고 있기 때문에 나미의 역할을 맏고 있는 심은경의 비중이 꽤 큽니다. 자연스레 나미의 역할을 맡은 배우에게 비중이 쏠릴 수 밖에 없었고, 영화를 끌어가는 역할을 해야하는만큼 연기력도 안정적인 배우가 필요했던 배역이라고 할 수 있죠. 심은경은, 이런 나미의 역할을 너무도 사랑스럽게, 잘 해내었습니다. 오히려, 성인이 된 써니 멤버들의 이야기보다, 그들이 추억하는 어린시절이 영화를 내내 뒤흔들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까지 하죠. 개인적으로 써니를 보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심은경양이 신들린 척 하며 전라도 사투리로 욕을 해대는 바로 그 장면이었으니까요. 전라도 사람인 제가 봐도 정말 기가찰 만큼 잘 해낸, 그리고 배가 아플만큼 웃어댄 장면이기도 했구요.

아직은 어리지만, 상반기 최고 흥행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너무도 잘 해낸, 이 어리고 작은 배우, 현재는 유학생활이라고 하는데요. 앞으로 얼마나 더 대단한 모습을 보여줄지 은근히 기대되는 소녀이기도 합니다.
  

 

 

 우리동네 114분 | 개봉 2007-11-29

연쇄살인이 일어나고 있는 한 동네, 이 동네에 추리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 경주가 살고 있습니다. 그의 소설도 살인과 관련된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죠. 하지만, 경주의 소설은 출판사에서 매번 퇴짜를 맞습니다. 리얼리티가 떨어질 정도로 잔인하기만 하다는 차가운 평과 함께 말이죠. 경주는 뜻대로 되지 않는 작업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힘든 상황에 놓기에 되고, 급기야는 살던 방에서 내쫓기는 상황에 이릅니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 집 주인을 찾아 필요한 물건들을 가져가겠다고 말하는 경주에게, 집 주인은 마지못해 방안으로 들어가게 해주지만 온갖 경멸과 비난 섞인 막말로 경주를 몰아붙이고 무시합니다. 그리고, 경주는 집주인 여자를 살해하게 되죠. 정신을 차린 경주는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감추기 위해 동네에서 벌어지고 있는 연쇄살인과 유사한 방식으로 자신의 살인을 위장합니다. 그리고, 이 모방범죄가 동네의 진짜 연쇄살인범을 자극하게 되죠. 이제 경주는, 살인범인 자신의 정체를 숨겨야함은 물론 위협적으로 자신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하는 진짜 살인범과도 대면해야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우리동네'에는 두명의 살인범이라는 설정이 등장합니다. 보통, 연쇄살인범과 형사와의 추격적이나 추리과정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들이 많지만 이 영화는 살인범과 모방범 사이의 설정을 배치해 다른 스릴러물과는 조금 다른 구조를 보여주죠. 그리고 이 영화안에, 진짜 우리동네의 원조 연쇄살인범 효이로 등장하는 배우가 바로 류덕환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앞서 언급한 유승호, 심은경보다 더욱 더 좋아하고 관심있는 배우이기도 한 류덕환은, 류덕환이라는 이름보다는 천하장사 마돈나의 여자가 되고 싶었던 소년이나, 웰컴 투 동막골에서 여일이를 좋아하던 북한군 소년병이라는 설명이 따라붙었을 때 연상이 더 빠른, 류덕환이라는 한 배우보다는 캐릭터로 기억하는 것이 빠른 배우이기도 하죠.

우리동네에서 류덕환은 그간 그가 맡아왔던 뭔가 풋풋하고 푸르른 느낌을 주는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가 맡은 역할이 살인을 저지르는데 아무런 가책도 망설임도 없는 사이코패스의 역할이기 때문이죠. 20대 초반의 아직은 소년티가 남아있는, 그것도 아역배우 출신인 류덕환이 연기하는 사이코패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조금 상상이 되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동네를 보고 난 다음, 기억에 남는건, 오히려 경주 역의 오만석도, 재신 역의 이선균도 아니었어요. 평소에는 너무도 착하고 순한 모습으로 살아가다, 광기가 번득이면 그 어떤 망설임도 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엽기적인 방법으로 시신을 유기하기까지 하는 류덕환의 모습이 가히 충격적이었죠. 저 순한 얼굴에 저런 표정이 나올수도 있는거구나 싶어 가히 꿈에 나올까 무서울 지경이었습니다. 누군가는, 류덕환이 연기변신을 위해 너무 과한 시도를 한것 같다고도 평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통해, 류덕환이 선하고 순수한 역할만 하는 배우가 아니라, 그 모습으로 상상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역할도 해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많은 배우들이, 자신의 이름보다는 캐릭터가 기억되는 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아마도, 그만큼 충실히 하나의 작품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은채 철저히 캐릭터 자체가 되어 연기하는 것이 진짜라는 생각들을 많은 배우들이 가지고 있기 때문일텐데요.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제 20대 중반의 어리다면 어린 배우가 바로 그런 모습으로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대단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어쩐지, 앞으로도 쭉~ 굉장히 오랫동안 연기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만 같은 배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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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특사 이준
임무영.한영희 지음 / 문이당 / 2011년 7월
절판


책의 서문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준 열사에 대해 고종의 명을 받고 헤이그에 갔다가 돌아가셨다는 정도밖에 모르는 듯 하다. 조금 관심있는 경우 열사가 대한제국 최초의 검사라고 알고 있을 것 같다'

나는 딱 이 범주에 속하는 사람 중 한명이었다. 그것도 이준 열사가 대한제국 최초의 검사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조금 관심있는 사람들이 아닌, 이준 열사가 고종의 명을 받고 헤이그에 갔다가 돌아가셨다는 정도만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에 속하는 한명 말이다. 이 책을 만나게 되기 전까지 이준 열사에 대한 나의 정보는 바로 그 한줄 이었다. '이상설, 이위종과 함께 고종의 명으로 헤이그로 밀명을 받고 파견된 헤이그 특사', 그리고 이 책을 손에 들었을 때 바로 그것을 기대했던것 같다. 딱 한줄로만 남아있던 이준 열사에 대한 조금 더 인간적인 이해 말이다. 역사책에 나오는 간단하고도 명료한 사실 이외에, 국권이 흔들리고, 한치 앞을 내다보는 것이 어려웠던 그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지식인이자 지도자로서의 그의 삶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이 책을 통해 시작되기를 바랬다.

책의 시작은, 내가 알지 못했던 이준 열사의 인생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밀명을 받고 헤이그를 향해 떠난 열사 이준이 아닌, 법률에 관심을 가지고, 변화하는 시대에 유연하게 대처하며,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알고 한걸음 한걸음을 뗄 줄 알았던 소신있던 젊은 이준부터 말이다. 이준은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잘 읽을 줄 아는 젊은이였다. 체계가 잡히지 않은 조선의 옛 근간 대신 명확하고 체계가 잡힌 새로운 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 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고, 스스로 기존의 특권을 버리고, 새로운 시대를 받아들이기 위해 도전할 줄 아는 도전의식을 가진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조선의 양반층이라면 괄시하고 무관심했던 율법에 일찍부터 관심을 가졌고, 법률에 대한 새로운 체계가 도입된다는 사실을 알고서 그 사진이 기존의 전근대적 사고방식과 특권을 벗어던지고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위해 새로운 시작을 할 용기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급변하는 시대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국가의 운명 앞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 했다. 스스로의 안녕보다는 법조인으로서의 강직함과 굳은 의지를 통해 국민들을 위할 줄 아는 이였고, 언제나 새로운 학식과 스스로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발전시킬 줄 아는 유연함도 가지고 있었다. 그의 강인함과 곧은 의지, 그리고, 새로운 것들에 대한 관심과 유연한 사고는, 그를 군림하는 법조인이 아닌, 국민을 위한 법조인의 길로 이끌었고, 그는 그렇게 대한제국 최초의 검사로, 올곧은 법조인으로 스스로의 의지를 늘 곧추세운 인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그의 인품은, 때로는 그에게 가장 좋은 자양분으로, 때로는 그 자신을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불안감으로 그에게 작용하곤 했다. 자신들의 특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기득권층에게 올곧기만한 법조인 이준은 그다지 반가운 이가 아니었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렇게 정직한 눈으로 국민을 위해 일하는 법조인이 있었다는 사실은, 아마도 큰 위안이었을 것이다.

그는 역사의 흐름에 의해 수 없이 많은 변화와 고난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가의 주권이 흔들리고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 국가의 운명 한 가닥을 손에 쥐고 역사에 길이남을 길을 가게 된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헤이그 밀사로서 그가 국가의 운명을 짊어진 바로 그 사건을 통해서 말이다. 그의 헤이그 파견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다시피, 성공적인 결말을 맺지 못했다. 그리고 밀사 이준 역시 열사라는 이름으로 남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국가의 운명을 지고, 자신의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그 길을 나선 밀사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최소한 누군가가 목숨을 바쳐 지키고자 했던 나라 안에서 살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통해, 그길을 갔던 열사 이준이 얼마나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나라를 위해 인생을 바쳤던 사람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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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면 꼭 가봐야 할 100곳 - 언젠가 한 번쯤 그곳으로
스테파니 엘리존도 그리스트 지음, 오세원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11년 7월
절판


올해도 변함없이 뜨거운 더위가 찾아왔다. 연일 폭염주의보가 내리고 있고, 정말이지 문 밖으로 한걸음만 내딛으면 찝찝한 열기를 피할 수 없는 계절, 게다가 조금만 움직이면 땀이 줄줄 흐르고, 쉽게 지치고 피곤해지는 여름이 된것이다. 올해는 유난히 더 더울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보가 있긴 했지만, 이번 여름은 정말이지 심하다 싶은 더위가 연일 이어진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여름을 은근히 기다리게 되는 이유는, 여름에만 허락되는 직장인들의 휴식이 바로 이 여름에 있기 때문일 듯 하다. 몇일간의 휴가를 통해 일상을 잊고 가족들과의 즐거운 추억을 만들기도 하는 바로 그 시간 말이다.

물론, 가족들과 함께, 친구들과 함께, 연인들과 함께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여름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휴가라는 시간을 반드시 가족이나 연인, 친구들과 보내라는 법은 없으니, 올 여름은 조금 특별한 휴식을 취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은 없을까? 이를테면, 혼자만의 테마여행 같은 색다른 스케쥴을 잡아 여행을 훌쩍 떠나는 것 처럼 말이다.

여라자면 꼭 가봐야 할 100곳은, 혹시 이런 여행을 꿈꾸는 여성들이라면, 여행을 위한 뭔가 색다른 시각을 제시해줄 수 있는 다양한 정보들이 담겨 있다. 여자이기 때문에 더욱 즐겁고, 여자이기 때문에 더욱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색다른 장소부터, 모두가 사랑하는 여행지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더욱 행복할 수 있는 의미를 찾아 더욱 깊은 추억으로 새길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여성' 혹은 '여자'라는 이름으로 남들보다 더욱 진하고 강한 여운이 남는 여행을 꾸밀 수 있는 약간의 사전정보와 지식들을 담은 여행책자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조금씩 다른 의미나 즐거움들을 가지고 있는 100여곳의 여행지들을 각각 다른 아홉가지의 테마로 나누어 정리해둔 것 점 역시 잘 이용한다면, 자신이 가고 싶은 여행지, 원하는 여행을 꾸밀 수 있는 아주 좋은 정보가 될 수 있다는 점 또한 매력적이다. 물론, 하나의 여행지에는 또 다른 수많은 이야기를 담은 다양한 장소들이 자잘하고 세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의 서문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이 책은 여자로서 당당하게 인정받고 존중받을 수 있는, 그래서 그곳에 가면 새로운 힘과 열정에 사로잡히괴 되는 그런 장소들에 대한 기록이다.' 라는 글이 바로 그 글귀이다. 그리 길지 않은 글이지만, 이 글귀에는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들이 왜 의미가 있는지를 아주 정확하게 보여주는 듯 하다. 여자이기 때문에 더욱 당당할 수 있고, 여자이기 때문에 존중받을 수 있는 뭔가 특별한 장소, 일상에 지치고, 여자이기에 더욱 고단했던 일상을 잠시 있고 잠깐의 여유를 즐기면서 스스로의 가치를 되찾기를 바라는 것이 여자들의 특별한 휴가라면, 이보다 더 큰 목적은 없을테니 말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그곳에 가면, 새로운 힘과 열정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말 또한 매력적인 글귀이다. 여행을 통해 일상의 노곤함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열정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기를 원하는 재충전의 의미를 여행에 부여한다면, 그 또한 아주 행복한 일이니 말이다.

당장, 지금이 아니라도 좋을 것 같다. 더운 여름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을 때 언젠가 떠날 이탈리아의 트레비 분수 앞에서 달콤하기로 유명하다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상상을 하는 것으로, 아름다운 도시 피렌체에서 여성의 아름다운 모습을 칭송한 예술품들을 만날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살짝은 행복해질 수 있으니 말이다. 언젠가 여자로서 더욱 아름다워질 수 있는 세계 곳곳의 여행지에서, 여자라는 것에 더욱 행복해질 추억을 만들기 위한 여행계획을 필요로 한다면 여라자면 꼭 가봐야 할 100곳이 아주 좋은 여행정보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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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소설가의 고백 - 세상의 모든 지식을 읽고 쓰는 즐거움
움베르토 에코 지음, 박혜원 옮김 / 레드박스 / 2011년 7월
품절


움베르토 에코라는 이름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몇가지 단어들이 있다. 언어학자, 기호학자, 세계적 석학,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나에게도 움베르토 에코라는 이름은 이런 단어들과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이름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깊이 각인된 에코의 또 다른 이름은, 바로 '장미의 이름'이라는 그의 첫번째 소설의 제목이다.

'장미의 이름'을 읽던 시절 나의 감상은 이러했다.
'그냥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참 어렵고 복잡하다. 하지만 또, 엄청나게 재미있다.'
두 권으로 되어 있던 꽤 많은 분량의 소설 책. 장미의 이름이라는 뭔가 그럴듯한 제목과 움베르토 에코의 명성까지 더해져, 한껏 기대를 하게 했던 장미의 이름이라는 그 소설은, 뭔가 이상한 매력이 있었다. 그리고 독자로서 자리를 잡고 책장을 넘기던 나를 상당히 애먹이는 책이기도 했다. 소설 책에 건물의 설계도가 있기도 했고, 잘 이해되지 않는 말들로 나를 혼란스럽게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책을 펴들고 한참을 몇장 읽다가 앞으로 되돌아가고, 또 몇장 읽다가 앞으로 되돌아가는 무한반복을 독서를 하게 하기도 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이렇게 애 먹이는 책이라면, 재미도 없어야 하는데, 첫 서두에 나를 애먹이던 몇페이지를 넘어가자, 이 책은 나를 마지막 장까지 절대 놓아주지 않는 흥미까지도 더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몇가지 의문이 들었다.
이 책을 쓴 사람의 머리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정보와 지식들이 들어있을까?
세상의 모든 소설가들은 이렇게 많은 지식들을 머리에 축적해놓고 글을 쓰는 걸까?
적어도 에코의 소설만큼은 그 지적 수준을 따라가지 못한 이상, 이 책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도 없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들 말이다.

에코는 나에게 그런 작가였다. 엄청난 지식을 품고, 그 지식들을 시작점으로 또 엄청난 재미까지 더한 책들을 써내는 신비한 작가말이다. 움베르토 에코가 왜 대단한 작가인지, 또 왜 그를 단순히 소설가가 아닌 세계적인 석학이라고 부르는지, 장미의 이름 한 권만 가지고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고 해야할까? 그리고 이후, 에코 이외의 다른 소설들이나 여러 작가들의 작품들을 계속해서 읽고 경험하며 에코가 왜 위대한 인물인지를 더욱 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에코의 작품들은 그렇게 그가 아니면, 절대 만들어내지 못할 많은 정보들과 지식들이 담겨 있다. 읽는 독자들이, 그의 글들을 읽으며 그렇게 그의 지식들을 살짝 엿보는 것만으로도 경탄을 금치못하게 만드는 힘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에코의 글들을 읽으면 자연스레 이런 궁금증도 생기게 된다. 에코는 도대체 그 엄청난 지식들을 어떻게 조합하고 다듬어 이런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일까? 그의 이야기들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라는 궁금증 말이다.

이 책 <젊은 소설가의 고백>은 바로 그런 궁금증에 대한 에코의 답들을 정리한 책이다. 자신이 그동안 어떻게 그만의 작품들을 만들고 구성해왔는지, 그가 만든 세상들이 어떤 과정을 겪으며 차근히 세워진 것인지 말이다. 때로는 건축가가 건물을 설계하고 구조를 만들듯, 스스로 그 세상의 작은 창문 하나도 설계하고 만들어낸 에코의 능력이 <젊은 소설가의 고백>안에 차분하고도 자세하게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젊은 소설가의 고백>은 마치 에코의 자서전 같은 제목이지만 사실은 에코가 설계하고 만들어낸 세상의 과정을 담은 건축일지같다

<젊은 소설가의 고백>을 읽기 전, <젊은 소설가의 고백>의 표지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에코의 머리를 훔치다'

에코의 글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참, 귀가 솔깃한 문구였다. 그리고 한켠에는 이 책을 읽으면 그처럼 짧은 글줄이나마 멋있게 써내려가는 요령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젊은 소설가의 고백>을 읽으며 이런 나의 기대는 무참히 깨어졌다고 고백한다. 아직도 창작가로서 젊은 나이에 있기에, 앞으로 꽤 오랜 시간을 소설가로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 에코의 고백 안에서, 에코처럼 치밀하고 엄청난 지식의 탑으로 이루어진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업은, 에코가 아니면 그 누구도 해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가 하나의 작품을 구상하고 계획하며 완성해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과정을 거치며, 얼마나 치밀한 설계와 수정을 반복하는지, <젊은 소설가의 고백>은 보여준다. 때문에 이 책은 에코의 머리를 훔치는 것이 아니라, 감히 범접하지 못하는 에코의 소설세계에 대해, 그 위대함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그의 비밀수첩이라고 해야할 듯 하다.

<젊은 소설가의 고백>대로라면, 역시나 에코는 이 시대의 석학이자 소설가로서 '넘사벽'의 존재가 맞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저 그가 세운 설계로대로 차곡히 쌓여 견고하게 만들어진 그의 건축물을 경의로움을 표하며 감상하는 것 만으로도 감사해야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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