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전쟁 - 세계 최강 해군국 조선과 세계 최강 육군국 일본의 격돌 우리역사 진실 찾기 2
백지원 지음 / 진명출판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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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학자 E.H.Carr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역사는 사실 그대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관점에서 늘 새롭고 다양한 측면을 발견해내고 재조명했을때 그 의미가 더욱 강해진다는 의미가 아닐까? 역사는 그렇게 사실로서의 가치보다 현재에 어떻게 적용하느냐 그리고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변동하며 이를 위해 많은 역사학자들은 이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를 위해 오랜시간을 연구하고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내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이다.

 

임진왜란이 아닌 조일전쟁,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많은 인물과 사건들.

조일전쟁의 가장 큰 강점은 임진왜란이라고 널리 알려진 역사적인 사실을 재조명하고 이긴자들에 의해 왜곡되어 평가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관련인물들과 사건들에 대해 조금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일테다. 임기5년의 대통령만 바뀌어도 때때로 전혀다른 역사적 평가가 수면위로 부상하는 것이 역사학계인데 시간이 지난 조선시대라고 해서 그렇지 않겠는가? 집권층의 정당성과 권력의 유지를 뒤해 자신들의 위상을 높이고 일어난 사건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작업이 있었으리라는 예상정도는 굳이 역사학자가 아니라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이 책, 조일전쟁이 역사속에 자칫 왜곡된 채로 남겨졌을지 모를 수많은 인물들과 사건들에 대해 다시 되짚어 보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별다른 업적이 없는 왕 이하로는 생각하지 않았던 선조의 구체적인 실정의 내용이나 인간 이순신에 대한 고찰, 그리고 국내 뿐 아니라 전쟁에 관련했던 왜장에 대한 평가까지.. 국사책 한권으로는 채 알지 못했던 사실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이 책 조일전쟁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한다.

 

강한 어조 아래 자칫 놓치기 쉬운 역사학자의 시선.

조일전쟁을 처음 접한 순간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책의 전체적 분위기를 좌우하는 저자의 어법이었다. 막말에 가까운 표현과 지극히 주관적으로 보이는 사건과 인물에 대한 평가, 그리고 혼자 읊조리듯 사이사이를 채우고 있는 작가의 관점들은 이전의 어떤 책에서도 만난 적이 없었기에 그 당혹감은 더욱 크게만 느껴졌으리라. 전작인 <백성 편에서 쓴 조선왕조실록, 왕을 참하라.>의 발간 이후 인터넷을 통해 상당한 악플세례를 받았다고 언급한 것을 볼때, 아마 전작에서도 이런 어법으로 책을 저술하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도 하게 한다. 읽기에는 다소 불편하고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만을 늘어놓는 것으로 보이는 이 책에 대해 사실 나도 부정적인 느낌을 강하게 받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을 저술하는 어법 자체가 아니라 이 책이 제시하는 역사에 대한 끝없는 의문이 아닐까 한다. 자칫 이 책을 접했을때 받는 부정적인 첫인상으로 인해 저자가 독자에게 묻고 있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의심해 보았는가?"라는 질문을 놓치지 않는 것이 이 책을 읽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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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21세기와 소통하다
안희진 지음 / 시그마북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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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은 늘 모호하다.

학창시절 철학관련 수업을 유난히 좋아했던 나이지만..

모든것이 명료하고 읽는 순간 깨달아지며 듣는 순간 사고하는 서양철학에 비해 동양철학은 모호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난해한 것이 바로 돌고도는 의문이 끊이지 않는 도가, 그리고 장자였다.

장자의 생각은 왜 그렇게 모호하고 난해하기만 하였을까?

20살이 갓 넘은 나에게 그의 사상은 도저히 머리로 따라갈 수 없는 지혜 그 이상의 것이었다.

 

자연스러움의 강조, 강조, 그리고 또 강조

장자라는 이름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도가사상을 대표하는 학자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학창시절 공자와 맹자에 비해 작은 부분으로 다루어졌던 장자이지만 시대가 변화하고 요구하는 덕목이 조금씩 변화하는 영향일까? 최근 장자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그가 강조했던 자연스러움에서 그만큼 멀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장자의 사상을 설명하자면 참으로 많은 단어와 이야기들이 동원되겠지만 그 모든 말들을 모아 한 단어로 표현해야 한다면 그때 선택해야 하는 단어는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자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인위적인 것은 그것이 어질어도 어진것이 아니며, 강요된 것은 그것이 진실이라도 진리가 아니며, "위하여" 하는 것은 옳아도 옳은 것이 아니다. 어질어도 어진것을 모르는 것, 진실이라도 진리인 줄 모르는 것, 옳아도 옳은 것인 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진정한 어짐과, 진리, 옳음이라는 그의 말은 스스로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일들이 어질고, 진실되며, 옳을 수 있다는 이야기로 이어질 정도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그대로의 것들을 강조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그가 인용하는 이야기나 그가 전하는 이야기가 이렇게 너 자체로 자연스러울 것을 말하는 것이 장자의 사상, 그 가장 핵심이랄까? 때문에 무엇이나 만들어야 하고 정당성을 가져야 하며 해내야 하는 강요된 지금의 세상에 그의 이름이 새롭게 재조명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어려운, 그러나 어럼풋하게 느껴지는 지혜.

책 한권으로 그의 그 심오함을 넘어 흐릿하기만한 사상들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어려울 것이다.한번으로는 이해할 수 없어 두번을 읽어내려갔지만 아직도 나에겐 장자에 관해 이야기 하는 이 책은 어렵고 어렴풋한 느낌을 주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장자라는 이름으로 많은 이들을 이끌었던 그의 사상이 조금 더 쉬운 현대적 언어로 설명되고, 누구나 가질법 한 의문도 부가적으로 설명되어 지는 것은, 난해하기만 한 그의 생각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지름길, 혹은 이정표가 되어 줄 것만은 분명하지 않을까? 또 공자, 맹자만이 아닌 또 다른 한명의 대사상가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줄 책으로도 그 의미는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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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의 관람차 살림 펀픽션 2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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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호하는 장르의 책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을 종종 받게 된다.

나의 경우 가장 먼저 적어 넣는 선호 장르는 뭐니뭐니 해도 소설, 그리고 역사, 인문이 뒤를 따른다.

이 순서는 선호하는 순서일뿐 아니라 읽는 양의 순서이기도 하다.

온전히 빠져서 즐겁고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 중간중간 흥미를 가지고 있는 역사서적이나 역사소설들을 읽고, 너무 재미위주로만 책을 읽었다 싶으면 인문서적 한권 살짝 끼워주는 센스랄까?

소설은 그만큼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만들어주기에 더 없이 만족스러운 장르이다.

 

코믹 액션 감동 밀실 스릴러. 그 복잡 미묘한 장르의 적절한 분배.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소설이긴 하지만 소설은 또 다시 다양한 장르로 구분되는데 이들 중 어떤 장르를 선호하느냐에 따라 읽는 이의 취향이 다시 갈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장르,  코믹 액션 감동 밀실 스릴러는 어떠한가? 이 책의 작가 기노시타 한타는 코믹 액션 감동 밀실 스릴러라는 장르로 벌써 세번째 작품인 이 작품 악몽의 관람차를 내놓았다고 한다. 코믹 액션 감동 밀실 스릴러는 말 그대로 밀실에서 벌어지는 코믹 액션 감동 스릴러라 설명할 수 있는데 그럼 이 복잡한 장르는 소설 속에서 어떻게 녹아들까? 자칫 죽도 밥도 아니게 될 가능성이 있는 이 장르는 악몽의 관람차에서 각각의 칸막이를 치고 각 공간에서 구분되어 존재한다. 관람차 17호의 고소공포증 아빠와 순진한 미인 엄마, 조숙한 딸, 말썽쟁이 아들 가족에게는 감동과 코믹이, 18호 사연이 있는 미인 의사와 마술이 취미인 건달 커플에게서는 스릴러와 감동이, 19호 전설적인 소매치기와 그 제자에게서는 코믹과 액션이, 20호 이별청부업자인 여자에게서는 스릴러가 각각의 공간에서 모두 연결되어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각각의 공간에는 별개의 사연이 존재하지만 각각의 사연 뒷편이 모두 이어진 복수극. 코믹 액션 감동 밀실 스릴러의 장르가 하나의 거대한 복수극으로 종결되어지는 그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은가?

 

모두가 공감하고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사건

소설은 다이지로라는 청년의 인질극으로 시작하지만 이 인질극은 단순한 인질극이 아닌 청년이 일생을 걸고 준비한 가족의 복수극이라는 이면을 보여준다. 물론 밀폐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 복수극은 정확하게 의도한 과정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지만 결과적으로는 복수의 성공으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이 복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각 관람차에 타고 있는 탑승객의 숨겨진 이야기가 펼쳐지며 단순한 복수극이 아닌 여러 사람들의 과거가 뒤엉킨 여러 사람의 인생사로 펼쳐진다. 또 복수극을 펼친 다이지로에게 그럴만한 과거의 상처들이 있었음을 밝히며 결국 인질범이 아닌 몸값을 지불한 피해자가 사실은 더 많은 이에게 해가 되는 악인이었다는 이야기로 그에게 면죄부를 주게 된다.

 

유주얼 서스펙트만큼 끝까지 끝나지 않는 반전

전혀 상관없어 보이던 관람차 탑승객들이 모두 한 패였다는 설정, 그리고 그 설정에 다다르기 까지의 끝없는 반전들은 소설을 보는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이다.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반전의 연속은 마치 그 유명한 반전영화의 대표작 유주얼 서스팩트같기도 하지만 그 이상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니 기대해도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또한 소설을 덮고 나면 우리가 나누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잣대가 사실은 너무나 단편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될것이다. 더 큰 잘못으로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을 사지로 몰아대는 악인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을지 모를 세상에 단지 눈에 보이는 단순한 폭력범이나 몇 잡아 넣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사실은 내 주변의 저명한 누군가가 조직폭력배보다 더욱 큰 악인일지도 모른다는 그 가정이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반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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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사회학
수디르 벤카테시 지음, 김영선 옮김 / 김영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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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서적은 어렵다." 그 뿐 아니라 어렵기까지 하다.

눈은 책을 향하고 있지만 때로는 내가 뭘 읽고 있는지 잘 모를때도 있다.

다른 책을 읽는 것의 3배에 가까운 집중력을 발휘해야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것 같다.

"나만 그런건가?" 친구에게 물었더니 나만 그런건 아닌 모양이다.

인문학 서적에 대한 이런 선입견은 그래서 인문학 서적들을 멀리하게 하고, 한번 읽기로 마음 먹었더라도 정말 큰 맘 먹고 시작해야 하는 부담감을 먼저 안겨주곤 한다. 세상살이에 필요한 사회학, 심리학, 정치학, 경영학을 다루는 수많은 책들.. 내가 살고 있는 사회를 다루는 학문이고 그 학문을 전하는 책이기에 안읽는 것 보단 읽는것이 훨씬 도움이 되는 그야말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시간이지만 그것보단 재미있는 책들도 많은 것이 사실인지라 여전히 인문학 서적은 나에게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일 뿐.. 그리고 그런 중에 이 책 [괴짜 사회학]을 만났다.

 

흥미진진한 모험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한 사회과학서적

[괴짜 사회학]은 사회과학 서적이다. 분명히 인문학 서적에 속하는 이 책은 그러나 앞서 내가 가지고 있던 인문 서적에 대한 나의 선입견을 완전히 깨버리는 문제작이 되어버렸다. 사회과학 서적이...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는 것일까? [괴짜 사회학]의 저자 수디르 벤카페시는 대학원 시절 자신의 연구와 논문을 위해 주제를 정하고 연구방법을 모색하던 중 다른 사회학자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을 선택한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자료를 정리하고 통계를 내어 그래프를 그리고 빈민이 아닌자의 입장에서 빈민 정책을 연구하는 것 대신 빈민 속에서 그들을 경험하고 직접 생활하는 것으로 실질적으로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를 내놓는 것을 목적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는 그 연구의 끝에 이 책 [괴짜 사회학]을 완성했다. [괴짜 사회학]은 통계도, 그래프도, 정책에 대한 논의도 없다. 그저 그가 겪었던 그들의 삶과 매일의 일상에 대해 그가 기억하는 것들을 소상히 서술한다. 사회과학 서적이라기 보단 그의 갱단과 빈민생활 체험기라고 해야 더 가까울것 같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그는 책 속에서 아무것도 주장하지도 않고 어떤 대책도 내어놓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이야기와 그들 속에서 그들을 지켜본 중립적이려 노력(?)했던 자신의 느낌들을 기술할 뿐이다. 여기에 더해 갱단 친구를 만들었던 과정, 첫 폭행현장의 목격담, 빈민공동체의 권력자, 하루동안의 보스 체험기들을 양념으로 곁들인다. 정규교육 과정을 거쳐 사회의 엘리트 집단 중 하나인 교수가 될 준비를 하는 한 사회학도와 폭력과 무질서의 상징 갱단, 그리고 정부 보조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빈민층의 친구되기는 너무나 생생하여 읽는 내내 그와 함께 나의 입장에 대해 생각하고 내가 알고 있던 알려진 그들의 현실과 실제 맞딱드리게 된 그들의 현실 사이에서 발생하는 격차에 당황하게 했달까? 그리고 그러는 동안 책상 앞에서 만들어진 사회학의 맹점과 개선점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괴짜 사회학]의 가장 큰 가치는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일방적인 정보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집단이 내어놓는 연구결과들에 대해 비전문가들인 일반인들은 학습하고 받아들이는 정도에서 멈출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이 내어놓은 연구결과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그들이 그 연구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그들에게 접근한 방법이 어떤 것이었는지, 혹시 너무 일방적인 시선으로 접근한것은 아니었는지, 단면적인 부분에 집중해 전체를 망각하진 않은 것인지 의심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에 대한 여지를 남겨두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었을까? [괴짜 사회학]의 저자가 [괴짜 사회학]을 통해 묻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어떤 집단을 위한 정책이라는 것이 그들의 시선에서 나온 것인지 그 집단에 속하지 않은 나머지에 의해서 나온 것인지 좀 더 다양한 시각을 적용해보자는 것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의문과 다양한 시각의 적용은 비단 사회학 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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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수집가 - 어느 살인자의 아리아
트리아스 데 베스 지음, 정창 옮김 / 예담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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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했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화가와 가수들, 그리고 때로는 정치가이기도 한 그들은 간혹 정확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일화로 남기기도 한다. 이런 일화는 때로는 미스테리한 신화로, 때로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가쉽으로 그 형태가 참 다양한데 이 정확하지 않은 이야기들은 후에 다양한 형태로 풍부한 이야기들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물론 작가적 상상력들이 더해진 소설이기에 사실과는 거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이런 소설들은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탓에 좀 더 생생하고 기억에 오래남기도 한다. 그것이 순전히 상상일 뿐이라도 말이다.

 

실존했던 테너가수와 그의 아내가 남긴 조금은 미스테리한 이야기

이 소설 역시 이렇게 실존했던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한다. 실존했던 테너가수 루트비히 슈노어와 그의 아내 말빈 가리구에스는 실제로도 [트리스탄과 이졸데]라는 바그너의 오페라 초연을 한 인물들이며 공연을 마친 루트비히의 다소 극적인 죽음에 그의 사후에 미쳐버린 그의 아내가 실성한 상태에서 했다는 다소 황당한 망언들까지 뒤엉켜 소설의 결말을 만들어준다. 물론 책 속의 이야기는 이렇게 실제였던 사건들에 비해 다소 당황스러울만치 신화에 의존하고 있지만 신화로 시작된 이야기가 현실로 결말지어지고 이후에 다시 저주걸린 작품이라는 전설로 이어지면서(실제로 바그너의 이 작품에는 저주가 걸려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전해졌다고 한다.) 책을 읽는 내내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혼동하게 하기까지 한다.

 

자신을 위해 수많은 이들을 죽였으나 사랑하는 한명을 위해 자신을 죽인 한 남자의 이야기

루트비히는 자신의 욕망대로 살아가기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잔혹한 살인자인 동시에 그들에게 사랑의 행복을 선사한다. 사랑의 노래로 자신의 삶을 유지하는 루트비히는 사랑을 팔아 삶을 연명하는 것이다. 타인이 죽이는 것에는 무게를 두지 않고 자신이 사는 것에만 관심을 두었기에 너무나 잔혹했던 살인자가 살인을 멈추기로 한 것은 우습게도 또 다시 사랑이다. 수 많은 여성을 죽이며 양심을 피했던 그가 스스로의 사랑 앞에서는 그토록 잔혹하게 연명한 삶을 미련없이 내버릴 수 있었던 것. 그렇게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이라는 존재를 끌어안고 간다. 역시 인간에겐, 특히나 사람의 감성을 움직여야했던 예술인들에게 사랑은 절대로 놓을 수 없는 족쇄였던 것일까?

 

작가는 혹시 염세주의자?

주인공인 루트비히는 수많은 사람을(이성 뿐 아닐 남성까지도 포함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목소리만으로 유혹할 수 있으나 그의 목소리에 유혹 당한 이들은 단 하룻밤의 댓가로 죽음에 이른다. 아무런 이유도 없다. 그저 그에게 매혹당한것이 이유일뿐. 루트비히의 사랑의 목소리를 들은 댓가를 죽음으로 치루어내야하는 그녀들에게 작품은 어떠한 연민도 드러내지 않지만 작품이 끝에 다다르면 이 불편한 설정은 불멸의 사랑은 죽음으로만 가능하다는 염세주의자 쇼펜하우어의 생각과 맞닿으며 설명이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죽었지만 죽는 순간 행복했기에 그녀들은 불멸의 행복을 얻었고, 그녀들이 불멸의 행복을 얻기 위해선 죽음이 필요했다는 설정. 참으로 서글픈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책은 지극히 환상적이고 몽환적이다.

신화와 현실을 절절히 섞었다지만 사실 실존했던 것들은 잠시잠깐씩 얼굴을 들이밀 뿐이고 책은 대부분 상상의 세계로 나를 끌고 다녔다. 그래서 조금은 당황스럽지만 오히려 부담스럽지 않게 책을 덮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 아니었을까? 게다가 꽤 재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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