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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공감 - 우리는 왜 남의 말에 휘둘리는가
제나라 네렌버그 지음, 명선혜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25년 10월
평점 :
나는 예로부터 토론을 좋아했다. 항상 사색에 빠져있었으며 딴생각을 하기 좋아했다. 초등학교 5학년때 어머니에게 유통의 구조와 단계마다 수익발생이 어떻게 발생하냐고 물어본적이 있다. 뭐라고 답했는지 기억은 안나는데 아마 나는 아이스크림을 예로 들었으며 엄마는 답해줬다. 정도만 기억난다. 사람들은 나와 같은 사회적, 사색적 토론을 부담스러워하며 일상적인 이야기로 시선을 돌린다. 물론 정치랑은 좀 다르다. 철학, 인문, 사회적 사색을 좋아하는데 이 책을 통해 정치를 불편해했음에 순간 반성하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건 토론하고싶고 아닌건 아닌거고? 나는 이게 사회적인 현상임을 이미 알았다. 사회는 이미 토론을 불편해하며 자신의 말이 편가르기가 될까봐 조심스럽다. 일단 진지하고 이론적인게 싫기도 하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악플이란게 생기고 다정한 사람들은 조심성을 길렀다. 안타깝게도 의견 피력마저 악플의 일부라고 여겨버렸다. 아닌건 아닌거라고 선을 긋는게 중요하지만 건전한 토론에 선을 긋는게 과연 올바른 것인가. 그리고 왜 토론은 찬반, 흑백논리에 대한 발언이라고 몰아가는가.
📌 자기 자신이 소중하듯, 우리가 마음으로 맺는 관계 또한 그만큼 소중하고 신성하다. 연인이든, 가까운 친구든, 반려동물이든 마찬가지다. 만약 우리가 자기 능력만 키우고, 그것을 누군가와 나누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또 갈등을 함께 넘는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딘가 불완전한 채로 남게 된다. 너무 단호하게 들릴 수 있으나,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혼자서도 완전해질 수는 있다.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 상처 입는 걸 허용하고, 직접 부딪혀 보고, 관계에서 오는 진짜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 이것은 실제 삶 속에서 직접 만나는 사람들과의 갈등이어야 하며, SNS 같은 가상의 세계와는 다르다. _ 210 ~211
📌 그녀는 <하버드 교육 리뷰> 에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사람들의 삶 속에서 고등 사고와 이성적 추론이 가장 뚜렷이 기능하는 장은 바로 논쟁이다˝ 또한 <사이언스 에듀케이션> 에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논쟁적 사고는 우리가 품는 신념과 판단, 그리고 이끌어 낸 결론들 안에서 언제나 스며 있으며, 삶의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떠오른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간의 사고 과정을 살필 때, 가장 중심에 두어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논쟁적 사고다.˝ 쿤의 주요 논지는 사고란 곧 논쟁이라는 것이다. 서로 다른 관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끊임없는 변증법적 긴장 속에서, 우리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자기 사고를 되짚는다. 반복과 조율 속에서 사고는 구체화되고, 그것이 바로 사고의 본질적 형태라는 것이다. _ 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