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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트리만과 - 2025 아르코 제작지원 선정작
김병호 지음 / 세종마루 / 2025년 11월
평점 :
인간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죽음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대하는 것인가. ‘죽겠어‘와 ‘왜 죽겠다는거야‘의 엇갈리는 대화 각종 비유를 통해 내면의 나와 외면의 나로 보이는 아이들은 복잡한 대화를 나눈다. 중간 소설은 레퍼런스 현장에 등장한 까마귀 한마리와 ˝마하˝라는 의문의 남자의 등장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끝을 알 수 없는 SF의 항연이다. 작가는 이로서 무엇을 말하고자 한걸까, 이 소설에선 그게 제일 중요했던 것 같다. 그만큼 너무 많은 메시지를 던지고는 한다. 핵심은 없다. 오로지 인간의 고뇌, 인간의 만행과 인간의 죽음에 대한 통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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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지난밤 나와 떼어놓을 수 없는 친구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죠. 아니, 결론은 그보다 훨씬 먼저 나 있었어요. 여자들을 만났고, 아니 남자들일 수도 있어요. 그들을 만나서, 아니 그 이전부터 죽기로 했어요. 내 친구는 나에게 뭐가 그리 바쁘냐고 물었는데, 내 자발적 의지를 무기로 나 자신을 삶에서 떼어놓기로 했어요. 죽음으로 편안한 무질서를 회복하는 거죠.˝ _ 127
• 서둘지 마, 이제 죽음을 얘기해야 해. 최기의 엔트로피 상태가 뭐야? 어떤 움직임도 없는 최고의 무질서이지. 아무 움직임도 없는 편안한 상태. 죽음이지. 우리가 죽는다는 과정은 불안으로 진동하는 고도의 질서 상태에서 벗어나는 일이지. 편안한 무질서를 회복하는 일이야. _ 83
• 흥분은 잘 가꾼 이성을 한순간에 냄새나는 똥으로 만든다네. _ 82 ~ 83
• 생각보다 많았어. 밤을 건너는 일에 거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이들, 그래서 우연찮게 시를 하나 읽었는데, 처음으로 시라는 것에 공감할 수 있었어. 좀 웃기지? 웃기면 웃어야지. 힘든 사람이 나 혼자뿐이라면 더 견디기 힘들잖아? ‘내 밤은 세 개의 베개를 딛고 건너야 하는 미친 밤이다.‘ 이렇게 시작하고는, ‘초저녁의 그물베개는 낮이 지르는 어지러운 비명들을 걸러내는 아가미이고, 가쁜 호흡이었고, 한밤을 떠다니는 사각의 목침에서는 내 물먹은 정신과 변성된 기억을 버티기 위해 딱딱한 두 개의 다리가 자라고 노 젓고 가라앉고 새벽녘을 출렁이는 털베개는 다가오는 아침의 불안을 막으려, 그래서 바닥 없는 탄성을 가진 것이었다.‘ 이렇게 진행되는데, 새벽에 땀에 흠뻑 젖은 베개를 끌어안고 잠에서 깨는 기분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싶어.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이렇게 위안이 되는 줄 몰랐어. _ 41 ~ 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