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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면 밖의 이야기
박용준 지음 / 행복우물 / 2026년 3월
평점 :
2017년, 2022년, 2024년도 신입, 중고신입으로 캐드캠사무원 단기근무를 했었다. 고집이 세고 담아두지 않는 성격이어야 이 일에서 버틸 수 있는데, 조금만 무슨일이 있으면 현장과 싸우고 거래처와 어긋나기 때문이다.
철강 하나도 모두 kg당 돈이고, 실수를 해서 철조각만 쓴다고 해도, 그것도 돈의 일부여서 제대로 잘라도 나가는 철값에 예민하다. 크기가 어떻냐, 두께가 어떻냐에 따라서 실수 한 번, 마우스 클릭, 키보드, 치수재기 한번한번이 회사에 손해를 불러올 수 있다. 그만큼 꼼꼼하지 않으면 이 일을 할 수가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그만큼 직업정신이 있으면서도 마음에는 관대해야 한다. "그럴수도 있어, 다시 바로잡으면 되"라고 억세같은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사무원이었지만 이 일이 전문영역으로 가면 책임싸움으로 퍼져 전체적인 예산이 부풀어 오를 수 있다. (책에 나온 것 처럼) 그때부턴 전문가 지식이 있다고 해도 통하지 않는다. 가장 낮은 공정에 있는 사람은 재료가 되는 물건의 상태와 완벽에 공을 들여야 하는데, 나같이 모든 걸 마음에 담아두고 예민한 사람들은 낮은 공정임에도 불구하고 사무실 바깥으로 나가 서성이며 많은 사람에게 울고불고 전화를 했다.
현장사람들이 전화를 해서 일을 따져 물으면 가슴이 쿵 내려 앉았고, 일에 집중하지 못하면서 내 평가도 그만큼 밑으로 추락했다. 한 순간이라도 감정이 우선시 되는 순간 공정이 망가지고 신뢰를 잃는 것이다.
악바리가 있어야 한다. "니가 나한테 뭐라 그래? 내가 실력으로 보여줄게" 이런 기본적인 마음가짐 말이다. 그리고 될때까지 붙잡아야 된다. 수없이 연구해야 하며, 워라벨이라는 말은 기계현장에 통하지 않는다. 신입이 너무 워라벨에 집착하는 만큼, 꼼꼼함을 잊고 '완성' 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만큼 이 일은 마음의 균형, 시간의 균형을 잘 맞춰야 하고, 심리적으로 너무 예민해 모든 걸 담아두면 더이상 지속할 수 없다. 나도 여러 차례 도전했으나 마음때문에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수없이 많은 실수를 한 끝에 회사를 나왔다.
다시는 그 일을 하지 않겠다고 조금 다른 악바리를 쓰지만, 사람들은 "그일 아니면 할 거 있어?"라며 단호하게 말한다. (내가 리뷰에 매달리는 이유기도 하다.)
하물며, 현장 사람들은 어떨까? 지금의 대부분 현장 사람들은 젊었을 때 부터 먹고살기위해 기술을 배우고 밑바닥부터 시작했기때문에 모두 자신의 다른 꿈을 가지고 있다. 특히 우리 아버지같은 베이비부머들은 평생을 현장에 헌신하며 자신이 못다이룬 꿈을 추억한다.
이쯤되면 내가 아파트 올렸다, 다리 건설했다 하는게 절대 그냥하는 자랑이 아닌 것이다. 나라의 발전을 위해 고생하여 산업혁명을 이끌고 하물며 나와같은 캥거루 족을 여전히 품어주는 현장 사람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캥거루족인 나도 부디 꿈을 찾아 도리어 아버지를 품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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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방 배관과 전기 트레이 고정용 서포트가 서로 간섭되는 문제를 두고 배관을 자르느니 마느니 하는 논쟁은 일쑤였고, 층 사이에 배관이나 케이블을 통과시키기 위해 만든 슬라브의 주인은 목소리가 큰 쪽으로 넘어갔다. 전기팀에서는 아직 배관 용접이 끝나지 않았는데 주요 설비를 건물 안으로 밀어 넣고는 주변에서 용접을 하지 말라고 선언하질 않나, 건축팀은 덕트를 설치하기 위해 뚫어 놓은 벽체를 침범하여 마감하려다가 들킨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복잡한 설계도 문제였지만, 책임이라는 이름을 빌린 인간의 이기심이 부딪히며 드러나는 혼돈의 끝을 보는 듯 했다. _ 58
✍ 한 사람의 무게가 회사 전체를 대표하는 이곳, 현장이라는 곳은 대체 어떤 곳일까. 수많은 사람이 결정과 책임이 얽히고 설킨 이곳에서, 한 사람의 목소리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들의 단단한 태도와 그들이 견뎌내야 할 책임의 무게는 실로 경이롭다. 결국 현장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라는 사실을 나는 실감했다. 그런데 막상 문제가 생기면 왜 이렇게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인지. 역시, 사람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