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창작 본능 - AI 시대, 우리가 낙서를 멈추지 않는 이유
정연덕 지음 / 어웨이크(AWAKE) / 2026년 2월
평점 :
어릴적부터 디자이너가 되고싶었다. 아마추어 작가도 해보고 디자인과도 다녀봤는데 두 일의 공통점은 모방에서 벗어나려면 미친듯이 파야된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저작자들은 모두 모방부터 시작했지만 나 자신을 키우기위해 모방이 아닌 한 순간의 쪽팔림을 감수했다. 한번쯤은 자신감이 넘쳐 겁없이 내놓더라도 세상이 차갑게 굴면 두번 세번이 넘어갈 때 쪽팔리기 시작한다.
나만해도 겉도는 편이었는데, 평생 그날의 컨디션이 바로 작업물에 드러났기 때문에
˝너는 잘할 땐 잘하고, 못할 땐 못한다˝ 는
디자인과 교수의 말을 듣기도 했다.
그만큼 창작자는 항상 일관성을 유지해야하며 그 가운데 모방을 깨부실 독창성과 자기 실력, 자기만의 무기를 가지고 있어야한다.
이 험난한 방패들을 뚫고 프로의 세계로 가게되는데 실력은 좋지만 아이디어에서 막힌다. 아마추어에서 부터 이미 느낀다. 세상 사람들은 의외로 다 기막히게 똑같은 아이디어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정답사회가 정형화 된 한국 예술가들은 특히나 그 틀을 뚫고 나오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프로가되면 법의 보장을 받기위해 매달려야되고 내가 모방을 약간만 해도 아니 안해도 어느 순간 남의것과 겹친다. 우연의 일치로 같은 생각을 했거나, 아니면 너무 잔상이 남아 내것처럼 느껴졌거나.
조울증이나 조현병이 있으면 예술을 하는데 좋다는 평이 있는데 같은 부류로서 그것도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순간 예술로 승화하고 싶다라는 선천적인 폭발적 욕구가 있어야하며, 깜빡 하고 사라지는 생각들을 순식간에 붙잡고 평생이 될 작품에 녹여야된다.
창작은 곧 싸움이지만 사람들은 창작을 하고싶어한다. 특히 비슷비슷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사람은 창작을 한다.
창작이란 곧 자존감 표현이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누구나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 한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라고.
자기만의 악기를 가지고 있어서 키운 사람에게 최소한 알고도 침해를 한다면 모방할 권리를 행사한걸까, 아니면 지식재산인권을 건드린걸까.
모아니면 도다, 라는 틀을 세울 수 없는 창작의 시대
AI가 들어서면서 더욱이 창작지분은 얼마인가, Ai를 창작자로 내세워야하는가 명령어를 쓴사람이 주인인가..
창작자는 싸워야할 상대가 많다, 더욱 늘고있다.
내가 누구인지 증명하는 과정에서 프로그램과도 싸워야한다.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아니다.
그럼 뭐가 문제일까
〰️〰️〰️〰️〰️〰️〰️〰️〰️〰️〰️〰️〰️
✍ AI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과 영상을 만들어내는 시대에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인간의 창작은 무엇으로 남는가?‘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인간은 왜 여전히 창작의 주체인가?‘ 라는 질문이다. 사람은 창작을 통해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을 통해 ‘나는 여기에 있다‘ 는 감각을 얻는다. Ai에게 창작은 연산이지만, 인간에게 창작은 경험이다. ‘내가 실제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 는 인간의 믿음은 반복적인 시도와 실패, 수정과 재도전을 통해 추적된다. 창작은 기술이기 이전에 신념의 문제이며, 이 신념은 인간에게만 형성된다.
✍ 이 판결은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결국 창작한다는 것은 세상에 이름을 남기는 일이다. 그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한 인간이 평생에 걸쳐 세계와 맺어온 관계의 압축이다. 성명표시권과 크레디트는 창작자의 자존심인 동시에 생존권이며, 법이 인정하는 ‘인간다운 창작‘을 위한 최소한의 선언이다.
✍ 다시, 사람들은 왜 글을 쓰는가? 생계를 위해서일 수도 있고, 명예를 위해서일 수도 있으며,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밑바단에는 단 하나의 진실이 존재한다. ‘내가 여기에 존재했노라‘ 라는 사실을 세상에 남기고 싶다는 욕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