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내 나라는 아니오만 - 대한독립에 헌신한 외국인 15인의 용기와 연대에 관한 기록
남기현.김영진.이혜린 지음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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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날 외국인들은 정의를 위해 국가를 가리지 않았다. 서양외국유공자들을 비롯해 심지어 정의로운 일본 유공자도 있었다. 만약 우리가 열강이고 누군가를 지배했으면 지배국으로서 꿋꿋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겠는가. 사실 나는 마음처럼 안된다고 본다. 인간은 누구나 합법적으로 누구를 열등한 상태로 취급하고 우열해지고 싶어한다. 대부분 자신의 애국심이 있기 때문에, 타국가에 대한 감정은 더더욱 그렇다. 중요한건 국가인가 인격인가, 나는 본능적으로 어디를 택할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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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헐버트는 스위스에서 언더우드를 만나 미국의 협력을 얻어낼 필요성에 대해 논의한 뒤, 파리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고종 황제가 일본의 불법적 조약 체결에 항의하려고 나를 비밀리에 보냈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과 다르다˝라고 말함과 동시에 ˝일본은 한국에 대한 모든 통제권을 독점하려 하고 있으니, 서구 열강이 이를 외면할 경우 후일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 이라고 경고했다.

✍ 3.1 운동이 일어난 1919년에도 헐버트는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밝혔다. 필라델피아에서 발행된 《미국 한국평론》1919년 10월호에 실린 < 제 1차 세계대전과 한국 > 이라는 글에서, 그는 ‘인류애가 고상함이나 영웅주의에 가려진다면, 그것은 인류에 대한 반역‘ 이라고 썼다. 나아가 3.1운동을 ‘신의 손이 작용한 일‘로 해석하며, 한국인의 독립이 천부적인 권리임을 강조했다. 이후에도 헐버트는 다양한 강연과 저술을 통해 한국의 독립을 지지했다.

✍ 심지어 옥고를 치르고 석방된 1922년 무렵, 그는 이륭양행의 사무원이던 김문규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고, 인도의 독립 역시 머지않았다. 다음은 조선이다. 일본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대들이 만족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쇼는 독립을 꿈꾸는 조선인들의 희망에 진심 어린 연대와 확신을 보내고 있었다.

✍ 그리어슨도 한국인의 민족운동과 독립운동에 우호적인 태도를 가졌다. 그리어슨은 선교일지에 러일전쟁 이후 일본이 부끄러움을 모른 채 강제로 한국을 보호국으로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또한 군대 해산 이후 전개된 의병활동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일본 사람들은 한국의 모든 무기 창고를 접수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일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씩 똑똑하고 재빨라서 무장해제를 당하기 전에 약 1만 명 정도를 군인들의 총과 탄약을 몰래 감추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의병‘ 이라고 칭했고, 남한 각처의 산에 들어갔다‘ 며 일본의 강제 협병 과정에서 발생한 의병 활동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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