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사이드와 역사 쓰기 이제이북스 아이콘북스 15
셸리 월리아 지음, 김수철 외 옮김 / 이제이북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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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사이드와 역사 쓰기

 

주지하다시피 에드워드 사이드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분쟁지역인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1947년 무렵 유엔이 팔레스타인을 아랍지구와 유대지구로 분할하자 이집트로 망명하였다. 그리고 얼마 뒤 다시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사이드는 빼앗긴 문화에 대한 깊은 귀속감을 가슴 속에 묻은 채 고향을 떠나 삶의 대부분을 타향에서 보냈다. 그렇기에 그는 어느 문화에 귀속되기 보다는 주변인이나 경계인 비슷한 삶을 살게 된다. 사이드는 영어식 이름에 아랍식 성을 가지고 미국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계 기독교인의 감정을 소유한 양면적이고 모순적인 위치를 지닌 사람이었던 것이다. 미국의 우익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사무실이 불타는 등 인종주의자들의 폭력에 시달리면서 사이드는 적대 세력에 대항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고 세상에 만연해 있는 불의에 맞서는 글쓰기 작업을 시작하였다.

 

이런 사이드를 대변하는 단어가 있다. 그는 비평을 할 때 시종일관 한 단어만 사용해야 한다면 그것은 바로 저항이라는 단어일 것이다.”라고 단언했다. 평범치 않은 인생들을 걸은 그에게 문학과 문화비평마저도 사회와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이자, 서구 중심주의로 경도된 세계를 저항하는 강력한 무기였던 것이다. 이런 그의 생각을 담은 글이 바로 오리엔탈리즘문화와 제국주의. 오늘 읽은 이 책은 작은 소책자지만 에드워드 사이드의 삶과 글쓰기에 대해 잘 정리하고 있다.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어렵다. 그것은 사이드를 분석하는 틀로 현대 철학을 이용하고 있어서인데, 그람시, 푸코, 데리다, 포스트모더니즘 등의 난해한 철학이 책을 이해하기 힘들게 한다. 적어도 내게는.

 

어느 역사학도가 말했듯이 오리엔탈리즘을 읽고 나서 입가심정도로 읽으면 괜찮을 법한 책이다. 따라서 사이드를 처음 접하는 이에게는 이 책을 권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내공을 쌓은 이에게 적합한 책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몸으로 부딪힌 지식인, 에드워드 사이드를 존경한다. 어디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큰 권력 집단(특히 서구)에 저항하면서 자신을 인식할 수밖에 없었던 그를 동정하면서도 그의 용기에 박수치지 않을 수 없다. 내게 없는 용기와 실천 의지를 가진 인물이기에. 다시금 사이드를 생각하게 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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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의 여왕들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9
조범환 지음 / 책세상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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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좋은 책이었다. 다소간 학술적 냄새가 풍기긴 하지만 쉽게 접할 수 없는 역사 지식들을 알게 되어 제법 유익한 책이었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알게 된 잘못된 정보들을 정리하여 체계적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출간된지 제법 된 책인데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외에는 변변한 자료가 없는 우리의 고대사. 그 속에 남겨진 작고작은 사료들을 확인 또 확인한여 겨우겨우 사실들을 발견해낸다는 사실에 안타까움과 경이로움을 동시에 느낀다. 그리하여 가끔은 고대사는 잘 짜여진 소설일지 모른다는 착각마저 든다. 우리에게 없는 자료가 중국과 일본에 풍부하게 남아 있을리도 없고. 안타까운 대목이다. 이 책에도 이런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즉 사료의 부족분을 대부분 저자의 합리적(?) 추론에 의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선 선덕여왕을 보자. 그녀가 기혼자인지 몰랐다. 그것도 자신의 친삼촌과 결혼했을 확률이 높다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녀는 없었던 듯하다. 더구나 드라마에서 멋있게 그려진 비담이 실은 선덕여왕의 치세 마지막에 반란을 일으켜 그녀가 그 와중에 죽었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다음에 즉위한 진덕여왕은 남겨진 기록이 더 없는 여왕이다. 결혼 여부와 자식 유무는 확인할 길이 없단다. 그렇지만 불교에 많이 의지한 선덕에 달리 진덕은 한화정책(당나라를 배우려는 정책)을 펼쳤다는 점에서 신선함 마저도 느껴졌다. 여기에 색녀라고 알려진 진성여왕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주장에 고개가 잠시 끄덕여 진다. 즉 당시 신라 사회의 여건상 그녀의 역할은 어쩔 수 없었다는 논리가 그것이다. 제법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물론 미남자를 불러들여 그들에게 정치를 맡긴 점은 비판 받을 수 있겠지만, 삼촌과의 애정행각 같은 이들이 어쩌면 유교적 논리에 치우친 후대인들의 외눈박이식 비판일 수 있다는 얘기다.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 혹은 지식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마저 느끼지만 그렇기에 새로운 사실을 알고자 진력하는 일에 더욱 흥미가 느껴진다. 나 같은 이의 경우 역사에서 더욱 그렇다. 비록 책을 덮음과 동시에 많은 사실들을 잊어버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다시 펼칠 때마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되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ㅎㅎㅎ 자화자찬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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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였다. 내 양 손엔 닭강정과 라볶기를 포장한 비닐 봉지가 각각 하나씩 들려져 있었다. 순간 행복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원하는 것들을 살 수 있다는 현실에 감사했다. 그리곤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뿌듯해짐을 느꼈다. 가장으로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큰 만족감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결국 내가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는 토대는 물질이고 돈이구나 하는. 내가 돈이 없다면 이런 현실에 만족할 수 없고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까? 나라는 존재 역시 어쩔 수 없이 돈의 노예요 물질의 노비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내 순간 느꼈던 행복감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읽고 공부하고 배워온 것들 중에 하나가 물질이나 돈에 굴종하는 삶을 살자는 것이었다. 이것은 내가 믿고 따르는 하나님 말씀과도 상통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내 현실은 그와 거리가 있다. 먹을 것 하나에, 물질의 구비 여부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순간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자본주의 현실에 나는 노예 근성으로 살고 있음이 명백했다. 물질과 돈만을 숭배하며 살아가는 작금의 상황 앞에 나는 충실했고 앞으로도 그리 살고자 노력하는 불쌍한 인간임에 틀림 없다.

 

하여 생각을 더 심화시켜 보았다. 그렇다면 나의 삶은 어떠해야 할까? 물질과 금전의 노예에서 해방이 되려면 어찌해야 하나? 내가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즉 현실에 만족하는 삶을 살자는 생각이다. 불만족스런 과거나 다가오지 않는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찬 삶보다 현실에 충실하여 나의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채워가는 삶 말이다. 글이 길었을지 모르지만 내용은 간단하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내 방식대로 살자는 게다.

나만의 삶의 철학을 짧은 시간 안에 완성하고나니 기분이 좋아지고 다시 우쭐해졌다. 그냥 혼자서 말이다.

 

그런데........... 길을 걷다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아내에게 몇 일 전부터 말하던 과자가 어느 가게 앞에서 할인행사되고 있는 것이었다. 고민이 되었다. 이미 양 손에 먹을거리가 있는 데다 나는 좀전에 물질의 노예가 되지 말자고 다짐하던 터였다. 이를 어째야 하나.... 결국 나는 졌다. 눈의 유혹 앞에 넘어가고 두 개 사면 하나를 더 준다길래 세 개를 손에 집고 말았다. 역시 내 머리에는 어쩔 수 없는 개똥철학만 가득찬 모양이다. 겨우 5분도 넘기지 못할.

 

나란 존재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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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는 왜 유대인을 학살했을까? - 현대 민음 지식의 정원 서양사편 10
송충기 지음 / 민음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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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급적이면 교과 진도에 맞춰 해당 분야의 책을 한 권씩 읽으려 한다. 조선 후기에 '정조'와 관련한 책을 읽는 식으로. 그래야 새로운 정보나 지식을 전달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말이다. 책의 두께나 수준 혹은 개인적 사정으로 진도에 딱딱 맞출 수는 없지만 가급적 현재까지는 그런 노력을 조금씩(!)하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 덮은 <나치는 왜 유대인을 학살했을까? - 송충기 저>. 역시나 민간인 학살 문제는 괜히 마음을 심난하게 만든다. 지금 한창 제주4.3사건을 가르치고 있기도 하지만. '인간 말종' 유대인을 말살하려다 자신들이 사라져버린 나치의 행위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유대인들에게 용소를 구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독일인의 자세도.

 

이 책은 유대인 학살에 대한 구체적 이유와 설명을 적절한 사료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유럽인들의 유대인들에 대한 맹목적 적대감까지. 예수 죽음 이래로 고착된 유대인관은 근대에 들어서까지 유대인에 대한 강한 부정 의식을 심어주었고 이것이 나치당의 정치 정략으로 맞물려 들면서 심화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성 말살도 역시 인간 스스로 저지른 잘못인다. 독일의 이성과 철학은 어디로 숨어버렸던 것일까? 물론 훌륭한 지식인과 일반인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나치의 명령을 수용했다. 영화 <더 리더 - 책읽어 주는 남자>의 여주인공처럼. 아무튼 이 책은 역사를 통해 인간성에 대해 다시금 반성하게 해주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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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병자호란 1~2 세트 - 전2권 - 역사평설 병자호란
한명기 지음 / 푸른역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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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두 권짜리 책들을 두 편 읽었다. 소설로는 로렌스의 <아들과 연인>을, 역사서로는 한명기의 <역사평설 병자호란>을. 그런데 소설보다 역사책을 더 빨리 깊게 읽은 느낌이다. 그만큼 흡입력 있다는 얘기기도 하다. <병자호란>이.

그런데 이책은 역사서이지만 슬픈 연애소설처럼 다 읽고나면 깊은 상실감과 우울감을 준다. 17세기 초, 중반 조선 민초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늘지 잘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무능한 왕과 신료들이 합작해낸 정묘와 병자의 난을 왜 아무런 힘 없는 백성들이 다떠안아야 한단 말인가. 이것이 유학의 원리이자 성리학식의 정의인가!

이상하게 역사 속에서는 데자뷰 현상을 자주접할 수 있다. 명과 청 그리고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하루하루 허덕이며 연명하던 조선이나 작금의 대한민국은 무엇이 다르던가.... 대국 명과 미국을 맹목적으로 섬기는 권력자들의 자세마저 판박이다.어쩌면 실패를 거울 삼지 못하는 것도 어제나 오늘이나 매일반이다. 그러니 민초들의 모진 삶도 그대로다.

비전과 리더십 없는 지도자는 정말 최악이다. 사리사욕이 넘치는 관리는 질곡의 원인이다. 이 둘이 만나 나라와 백성들을 통째로 말아먹는 것이다. 역사는 과거를 다루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좋은 탕약임에 틀림없다.다만 현실에서는 이 쓴 탕약을 거부하는 권세가들이 많아 문제다.

<병자호란>. 참 좋은 책이다. 내용도 글쓰기도 마음에 들고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는 점에서도 큰 점수를 주고 싶다. 대중 역사서가 단순히 이야기거리에 치우치는 것을 나는 경계한다. 대신 현실 비판과 미래 준비에 역할늘 담당했으면 좋겠다. 이런게 역사학 자들의 현실 참여 아닐까? 이런 점에서 이책이 마음에 드는것이다.

늦은 밤 몇 자 끄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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