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하는 책읽기를 했다.아직 독서에 대한 열정이 큰 아이들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독서 습관을 들게 해주고 싶다.아들은 과학 분야의 책을,딸은 사회성 분야의 책을 읽었다.이제 내가 아이들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늘어날 것 같다.오래 지속할 수 있을 지 의문이지만 기대가 크다.개학 후에도 이어지길 빈다.그런데 알라딘에서 책 검색이 안된다.아무래도 전집이라 그런 모양이다. 쩝.
요즘 스토리텔링이란 분야가 각광받고 있다. 심지어 초등학교 저학년 수학에도 등장한다. 내가 말하려는 의도와는 조금 다르지만 내용, 즉 이야기가 있는 무언가를 만드려는 노력이다. 일종의 의미부여하기인 셈이다. 길가의 돌맹이도 의미를 부여하면 소중한 탑이 될 수 있는 것처럼.유럽 축구에는 의미부여가 참 많다. 스토리텔링적 요소를 잘 활용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팬들의 충성도를 높이고 즐거움을 배가 시킨다. 가끔은 눈물도 나게 만든다.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면 감동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내가 축구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의 축구계에서도 배워야 할 부분이다.http://m.sports.naver.com/wfootball/news/read.nhn?oid=208&aid=0000001030
부끄럽지만 <조선책략>과 `영남만인소`를 이제서야 읽었다. 핵심 내용은 이미 알고 있지만 본문을 제대로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 황준헌, 김홍집, 이만손 등의 마음이 전해지는 듯하다. 어디까지가 그들의 본심이고 어디가 정치적 술사인지 아직 나의 수준으로는 명확히 알기 어렵지만 그래도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내용을 정리해 본다....우선 책의 앞부분에는 김홍집과 일본주재 청국외교관과의 필담이 실려 있다. 여기에 <조선책략>의 핵심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다. 신실하고 상대에 대한 깊은 신뢰가 깔려 있는 대화는 지나치게 격식에 치우치고 현실에 맞지 않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겠지만, 내게는 그런 대화의 자세가 참으로 눈물겹다. 형식적이고 정감 없는 대화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좋은 자극이 될만하다. 그런 사람을 만나길 기다리기보다 나 자신부터 그런 시실한 자세를 견지해야겠다. ㅎㅎ나는 개인적으로 <조선책략>의 의도를 지지한다. 물론 중국인의 입장에서 중국을 위한 정책을 내세운 책이라 비판할 수 있겠으나, 황준헌의 진심도 느껴지고 개화의 길을 걸어야 할 조선에 대한 조언이라고 생각할 여지도 많아 보인다. 조약체결이나 조세(특히 관세) 문제에 대한 자세한 조언에는 당시 조선이 잘 알지 못하던 정보가 담겨 있었다. 어쩌면 중국의 실패에서 배운 것을 조선에 전해주었을지도... 일본에서 배운 바도 컸을 것이다.다만 왜 황준헌은 미국을 그렇게 과대하게 칭찬했는지 그리고 일본을 과소하게 평가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그는 직업 외교관으로서 나름 국제 정세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미국은 서구 세력에 대항하고 아시아 국가들을 옹호한다는 말도 안되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미국 역시 제국주의 국가일 뿐인데도 말이다. 게다가 일본은 재정도 부족하고 군사력도 약하니 조선을 침략할 가능성이 낮으니 속히 그들과 체결된 조약을 이행하고 그들과 가까이 지내라 한다. 여기에 러시아에 대한 평 역시 다소 과장된이 아닌가 싶다. 러시아의 남하가 두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연 그렇게 심각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는 지 의문이 든다.아울러 이 <조선책략>을 비난하는 `영남만인소`는 작성자의 심정이 느껴지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극강 보수의 답답함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우리 것만이 좋은 것이니 알지 못하는 오랑캐와 교류할 수 없다는. 세상의 변화를 알지 못하고 자신의 것만 고집하는 옹고집쟁이의 한계가 아닐까 싶다.현재의 한국은 위와 같은 위기를 극복하고 잘 성장해 왔다. 지금은 여기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 <조선책략>이 퍼졌던 후기의 조선과 비교해 우리는 우월한 위치에 있는지 자문해보고 싶다. 사대정책은 여전하고 문을 절대로 열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있다. 어느 길이 현명한 길일까? 혼란스럽다. 안타깝고 답답하다.
공감을 넘어 실천해야 할 덕목이라 생각된다. 소로우! 그의 삶에 존경을 넘어 경외심마저 느껴진다. 100년 전의 미국와 지금의 한국에는 차이가 없다. 특히 정부의 압박은. 경찰과 검찰은 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한 인간의 지성이나 양심을 상대하려는 의도는 결코 보이지 않고 오직 그의 육체, 그의 감각만을 상대하려고 한다. 정부는 뛰어난 지성이나 정직성으로 무장하지 않고 강력한 물리적 힘으로 무장하고 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강요받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을 쉬고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보도록 하자."헨리 데이빗 소로우, <시민불복종>, 이레, 1999에서 인용.
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다...진은영폐부를 찌르는 글이다. 세월호 사태가 지겹하고 하는 이들에게 앵커 손석희가 던진 문장이다. 글은 다른 문학 잡지(문학동네 가을호 <특집. 4.16, 세월호를 생각하다> 中)에서 따온 것이지만. 아이들 앞에서 어찌 지겹다는 표현을 쓸 수 있겠는가. 나는 부끄럽고 부끄러워 고개들지 못하겠는데...추운날 문득 아직 찾지 못한 이들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