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치는 여자 - 2004 노벨문학상
엘프리데 옐리네크 지음, 이병애 옮김 / 문학동네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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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래전에 영화화(영화명 `피아니스트`) 된 소설인데다, 2004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글이라 제법 큰 기대감으로 읽기 시작했다. 한동안 고전 소설만 읽어왔던터라 현대소설을 읽고픈 마음도 강했다. 아무튼 이런저런 의욕을 가지고 첫장을 넘겼다.

주인공 에리카는 음악원 피아노 교사다. 피아니스트가 되려다 날개가 꺽인 그녀는 사회와 사람과의 관계를 끊고 오로지 어머니와 고립된 채로 살아간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것은 에리카의 자발적 선택이락보다 어머니의 오래된 기획이었다. 돈버는 기계가 되어버린 그녀는 어머니와 한 침대에서 자고 개인의 삶을 잃어버린다. 문제는 그로인해 그녀의 내면이 일그러지게 된다. 특히 이성과의 관계가 정상적인 길을 벗어나 자신을 파괴하고 비이성적 행동을 하게 만든다. 클레머라는 연하의 제자와 사랑을 나누고자 하지만 정상적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한 에리카는 결국 영혼과 육체의 고통만 겪게 된다.

책을 읽으며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왜 에리카는 독립된 객체로 성장하지 못했냐는 것이다. 물론 위에서 언급했듯이 어머니의 기획이기도 했지만, 그녀는 성장해가며 어머니에게 제대로 맞서지 못했을까 의문이 든다. 확실히 그녀는 독립할 의지가 약했고 그러한 방법을 알지 못했다. 결국 나는 저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부모의 역할에 집중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자신을 위해서만 딸 에리카를 키웠다. 딸에 대한 존중이나 애정은 남달랐다. 그것은 어머니의 욕심이 채워질 때만 가능했다. 에리카는 철저히 어머니에게 이용되었다. 결국 그녀 주위에는 친구도 친척도 없게 된다. 아버지도 정신병원에서 죽는다. 대체 정상적인 사랑과 관계라는 것이 없는 삶은 어떤 것일까? 에리카를 보며 내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를, 아니 이 아이들이 스스로 잘 성장해가도록 도울지를 고민했다.

사실 이 책은 심리묘사가 깊고 넓다. 그래서 주인공의 감정 표현이 길게 묘사되고 있다. 이 대목이 개인적으로는 소설의 흥미를 반감시켰다. 문학적으로는 어떤 평을 받는지 모르지만 뒤로 갈수록 책장을 넘기기 힘들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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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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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가 읽는 소설들은 신간이 거의 없다. 주로 출간된지 서너 해가 지나 눈에서는 사라졌지만 가끔 인구에 회자되는 그런 책들을 고른다. 물론 그 기준은 다분히 주관적이겠지만. 오늘도 난 그런 철지난 책 한 권을 읽었다.

전작이던 <눈먼자들의 도시>가 주던 묘한 흥미와 관점이 이 책을 고르게끔 만들었다. 그런데 뭐할까. 이 책을 펼치자마자 뭔가 이상했다. 어느 책에나 있는 `문단 나눔`이 없는 게다. 또한 인물들의 대화를 따옴표 등으로 구분하기 마련인 데 이 책에는 아예 없는거다. 즉 한 장이 끝날 때까지 거의 하나의 문장으로 연결되어 있다. 대화를 포함하여. 허거거.....

<눈먼자들의 도시> 이후의 4년을 이 책은 무대로 하고 있다. 그런데 상황이 좀 웃긴다. 선거 결과 83%의 시민이 백지 투표를 한 것이다. 이를 놓고 정부는 일종의 `불순세력`이 사주했을 거라며 시민들을 의심하고 뒷조사를 실시한다. 그래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자 정부를 옮기고 수도를 포위한 다음 각종 사고들을 일으킨다. 정부가 주도하여 폭탄테러 등을 일으킨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정부는 전작의 여자 주인공을 이번 사건의 희생양 삼아 암살해버린다.

이 책을 읽는내내 작금의 한국 현실과 대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 정부가 벌이는 공작 정치가 소설 속의 정부와 닮아 있다. 총리 마음대로 인사를 하고 테러를 지휘하는 모습도 윗동네 지도자랑 똑 같아 보인다. 우리네 한반도는 그런 곳인가보다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데... 이 책은 결정적으로 전작에 비해 재미가 없다. 몰입하기 힘든 구조다. 그 이유는 첫문단에 밝힌 바다. 현실의 한국을 비판하는 도구로 읽다 (솔직히) 지겨워서 얼른얼른 책장을 넘겼다. 즉 크게 강추하는 책은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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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내 페이스북 타임라인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었다. 아니 실은 격렬해 눈을 가리고 읽고 싶을 정도였다. 내 견해는 주로 역사학자들의 주장과 비슷하지만 지인 중에는 박유하 교수를 지지하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두 진영에서 논의(혹은 싸움)가 깊어질수록 나 혼자 난감해지기도 한다.

이참에 나도 본격적으로 공부해보고자 정영환의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와 <황해문화>를 구매했다.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는 PDF파일로 읽기로 했다. 사려고 하니 왠지 꺼려지는...ㅎㅎㅎ 중립적 입장에서 읽으려 했는데 벌써 진영의 논리에 빠지는 것은 아닌지...

양진영의 대립이 격화되는 것을 보며, 특히 페이스북을 통한 설전은 상당히 놀라울 정도인데, 내 생각을 다시 정리해보기로 했다. 과연 나같은 개인은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학교에 근무하는 나는 어떠한 사건이든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려고 노력한다. 학교폭력이 가장 대표적이다. 가해자의 주장은 참고하는 수준이다. 위안부 문제 역시 그렇다.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과 그분들의 삶이 중요한 것이지 일본 정부의 상황을 고려해서 그들의 사과나 배상을 수용하는 것은 2차적인 문제라고 본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수용을 거부한다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 현실은 어떤가? 작년 12월 정부는 할머니들에게 귀 기울이지 않고 일방적 논리로 일본의 사과를 수용하고 할머니들에게는 통보만 해주었다.

박유하의 책은 아직 읽고 있는 중이라 언급은 피한다. 다만 이미 너무나 많은 비판 기사와 논문을 읽을 탓에 선입견이 생긴 듯하여 조금은 걱정이 된다.

학문이 현실을 떠난 존립할 수 없다면, 학문은 분명 현실 문제를 도외시할 수 없다. 하지만 그 학문이 정치색을 띠어 어느 일방을 지지하거나 옹호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경우 그 학문은 반쪽의 진실에 그칠 위험을 안게 된다. 권력의 힘에 기대 자신의 반경을 쉽게 넓히려 한다면 반대편의 강력한 저항에 필연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다. 과연 누가 그 위험한 배를 탔는지 나는 조사하러? 감독하러 간다. ㅎㅎㅎ

이런 독서 역시도 즐겁기만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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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을 건졌다.
우연히 들른 헌책방에서 대어를 낚은 것이다.
우헤헤 이렇게 좋을 수가.
그동안 비싸서 입맛만 다시고 있었는데 운좋게 반값에 구매했다.
역시 헌책방엔 가끔 들러서 발품을 팔아야 한다.
흐미 기분 좋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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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6-07-24 0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브루스 커밍스를 낚으시다니, 부럽습니다. 감축 드리옵니다 ^^

knulp 2016-07-24 09:21   좋아요 0 | URL
ㅎㅎ 감사합니다. 그저 운이었죠
 
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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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주인공들이 평범하지 않다. 일상적 인간의 특별한 내밀함을 탐구한다기보다 특별한 인간들의 일상을 글에 녹여내고 있다. 이 소설은 정상 범주에 속하는 정신질환을 가진 여자(쇼코)와 결벽증을 가진 의사이자 게이(무츠키)의 이야기다. 둘을 부부이면서 자신들이 가진 치명적 결함(?) 때문에 스스로도, 상대방도, 가족도 힘들게 만든다.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사랑없이 한 결혼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들이 현실에서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제 부모보다 상대에게 더 편안함을 느끼고 기대게 된다. 이것도 사랑일까?

이 책을 읽으며 내내 걸인 것은 역시 내가 가진 신앙 때문이다. 신앙의 이름으로 필터링을 하니 소설이 소설로써 읽히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잠시 신앙을 내려놓고 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하니 눈에 들어오는 게 사람의 속내였다. 한국이니 일본이니 하는 국적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게이니 정신병자니 하는 것도 중요한 게 아니었다.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데 사랑이나 상대에 대한 배려, 이해심이 중요한 것임을 느꼈다. 물론 책이 너무 행복하게 끝맺음 되는 게 어색하기는 했지만, 관계 속에서 힘들어하기도 하고 행복을 느끼기도 하는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속에서 사랑이란게 싹트겠지?

이 책을 덮고 다시 에쿠니 가오리의 <울 준비는 되었다>를 읽기 시작하는데 너무 술술 읽히는 게다. 역시 읽은 책이었다. ㅎㅎ 내 기억력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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