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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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요.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않소.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69쪽)

이수근이나 김희철 같은 연예인들을 보며 많이 느꼈다. 공부가 아닌 것에 저렇게 재능이 많은 이들인데 저들에게 계속 공부만 강요한다면 그들은 지금 어떻게 되어 있을까 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주위 사람과 사회와 불화하는 주인공 스트릭랜드를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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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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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태어나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고 그 길을 간다는 것은 여간 큰 행운이 아니다. 실제 주변에서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이야기들을 자주 듣는다. 그것은 자신의 성향이나 관심사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고 또한 외부에서 강요된 길을 가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반증이도 하다. 전통사회처럼 신분에 의해, 남녀의 구분에 의해 정해진 길만 가야하는 시대가 저물고 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달과 6펜스》는 내게 의미 있게 다가왔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 쉽게 자신의 기반이 되고 있는 과거와 현실을 끊어내지 못한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는 불안하고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 마흔을 넘어 자기 꿈을 개척하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자신의 현재와 결연히 단절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선다. 심지어 가족과 자신의 나라마저 등지고. 이런 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요.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않소.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69쪽)

런던의 증권 중개인이자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스트릭랜드는 어느 날 갑자기 편지 한 장으로 아내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가정을 버린 채 파리로 떠나 버린다. 파리에서 그는 그림에는 전념하지만 가난한 생활로 인해 쓰러진다. 이때 그의 천재성을 알아 본 스트로브 부부의 헌신적 보살핌으로 되살아난다. 하지만 그는 스트로브 부인과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스트로브 가정을 풍비박살 낸다. 이후 스트릭랜드는 우연한 기회로 배를 얻어 타고 타히티로 가게 된다. 이곳에서의 3년은 그의 일생 중에 가장 왕성히 작품 활동을 하던 행복한 때였다. 그래서일까? 그는 문둥병에 걸려 고통 받으면서도 그는 필생의 대작을 자신이 살던 오두막의 벽에 남긴다. 비록 그의 유언으로 오두막과 함께 불태워지지만.

이런 스트릭랜드의 행동에는 공감을 얻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가족을 버렸다는 점과 자신을 헌신적으로 보호해준 친구의 가정을 파괴했다는 점은 그의 예술적 재능을 넘어 큰 인간적 흠결로 지적될 수 있겠다. 예술이 인간의 존엄을 넘어설 수는 없지 않은가! 반면 저자 서머싯 몸은 이 책에서 인간성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화자를 통해 그 점을 언급하지만 결론부로 가면 스트릭랜드의 예술성에 감화되는 것으로 끝맺는다. 타이티에서의 성취는 역사적 예술품으로 인정받지만 그의 인간적 이력은 거기에 묻히고 만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예술지상주의를 표방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읽으며 이 지점에서 독자로서의 내적 갈등에 시달렸다. 나 역시도 책의 말미에 스트릭랜드의 엄청난 예술홈에 감화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땅의 근대소설가 김동인은 《광화사》, 《광염소나타》를 통해 극단적 예술지상주의를 드러냈다. 주인공 솔거와 백성수는 자신들의 예술 세계를 위해 폭력과 살인 같은 행위를 마다하지 않는다. 예술을 위한 이런 광기를 우리는 수용할 수 있을까? 개인의 의지와 도덕성이 대결하고 현실과 예술성이 마주치는 《달과 6펜스》를 읽자니 내내 김동인이 머리를 맴돌았다. 지역은 다르지만 동시대를 살았던 작가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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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주의 사고의 프런티어 2
고모리 요이치 지음, 배영미 옮김,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기획 / 푸른역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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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혹은 가공의 차이에 일반적.결정적인 가치를 매기는 것으로 이 가치 매김은 고발자가 자신의 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해 피해자를 희생시키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하는 것이다.‘

과연 누가 윗글을 읽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바로 찾아낼 수 있을까? 나의 짧은 지식으로는 이 한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읽고 또 읽어야만 했다. 그런데 한국의 사전에서는 좀 더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 용어에 대해 다음 백과사전에서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개개 인종의 생물학적, 생리학적 특징에 따라 계급이나 민족 사이의 불평등한 억압을 합리화하는 비과학적인 사고방식‘. 이렇게 읽으니 의미가 좀 더 명확해졌다. 이 용어는 책의 제목과 같은 ‘인종차별주의‘를 말한다.

다윈의 진화론부터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을 거쳐 19세기 후반 서구 열강이 문명과 야만이라는 흑백논리로 제국주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데 일조한 것이 생물학적 인종차별주의였다. 이 인종차별주의는 20세기 중반까지 맹위를 떨치며 단순한 ‘차이‘를 마치 절대적인 차이인 양 혈통과 유전이라는 숙명적 요인으로 규정해 나갔다. 또한 그 ‘차이‘에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자신을 긍정하고 타자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인식하게 하였다. 인종차별주의는 나아가 차이를 통해 피차별자를 비인간화시키는 역할에까지 했다.

인종차별주의는 특권이나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을 옹호할 때 주로 나오는 편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힘을 가진 국가 권력이 약소 민족이나 국가의 식민지화에 대해 이는 어떻게든 역사적 필연일 수밖에 없다는 식의 책임회피 논리로 이어졌다. 따라서 그들에 의한 역사수정주의를 비롯한 역사 부정은 반드시 인종차별주의 맞닿아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지배자와 제국은 자신의 양심과 이성의 회로가 정상궤도를 벗어나게 되고 자신의 죄를 잊어버린 채 편안함마저 느끼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와 같은 인종차별주의를 프로이트의 심리학,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그리고 일본 근대 문학 분석을 통해 심화 설명해준다. 오리엔탈리즘 분석을 통한 인종차별주의 이해는 일반적 연구 경향에 속한다 할 수 있지만, 유아기의 언어 습득을 통해 내면화하게 되는 차별 의식 분석은 조금 특별한 시도로 보였다. 특히 일본근대문학 전문가인 저자의 이력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랬다. 마지막으로 <<악감>>이라는 일본 근대 소설을 통해서 보는 일본식 인종차별주의는 늘 그들 모두를 같은 인종차별주의자라고만 평가해오던 데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서게 한다. 프랑스에서 공부한 한 일본인이 같은 일본인을 폄하하고 부끄러워 하는 장면에서 그들의 뒤틀린 심리를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일본인들 안에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었음이 확인된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이 끝난다. ‘인종차별주의가 언어를 구사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뇌의 사고를 정지시키고 동물의 뇌가 선택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며 항상 인간의 폭력성을 선동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깊은 울림을 주는 문장이다. 단순히 피부색으로 차별하는 인종주의만을 떠올려서는 안된다. 그 안에 내재된 폭력성과 차별 역시 감지하고 구분해야 한다. 우리 뇌가 그것들에 의해 압도되지 않도록!

제법 어려운 책이다. 이론서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두 번 읽었다. 그래야만 머리에 녹아 들었다. 물론 이는 분명 내 좋지 못한 머리 탓이다. 다만 읽고 싶은 분야를 확장해주어 의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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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그는 왜 한국을 무너뜨리려 하는가
호사카 유지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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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순간적으로 분노가 치밀었다. 과연 이래도 된단 말인가! 이것이 진정 과거에 대해 반성하고 직시하는 자세일까 싶다.

현재일본법에는 전범과 관련된 항목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A급 전범으로 죽은 사람의 유족들은 지금도 일본 정부로부터 연금을받으면서 잘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현재 일본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과거사 인식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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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릭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07
레오 리오니 글 그림, 최순희 옮김 / 시공주니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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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심 파괴자임이 틀림없다. 우리 아이들에게 동화 읽어주며 의아하게 생각한 부분들을 아내에게 들려주니 아내가 내게 붙여준 것이다. 있는 그대로 이해하면 될 것을 왜그리 이상하게 생각하냐며... 그래서일까?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읽으면 자꾸 오류라고 생각되는 부분만 눈에 들어온다. 이번에 읽은 책도 그랬다.

남들 일할 때 생쥐 프러드릭은 상상이나 공상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겨울이 오고 가족들은 쌓아둔 식량을 먹으며 지내다 문득 레드릭의 상상이 궁금해 한다. 이에 프레드릭은 신나 그동안 쌓아놓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고 가족들은 그에게 깊이 공감한다.

책의 해설을 읽자니 이것은 예술의 의미를 일러주는 내용이라 한다. <개미와 베짱이>와는 결이 다르다고 설명해준다. 나는 갸웃거려졌다. 동시에 한국의 대표화가 이중섭도 떠올려졌다. 갑자기.

가난한 예술가는 자신도 가족을 굶긴다. 그러나 그는 훌륭한 예술품을 통해 인류에 헌신하고 사회를 풍요롭게 한다. 생산적인 일에 직접 뛰어들진 않지만 예술을 통해 사회와 삶을 풍요롭게 한다. 그러면 가족은? 내 머리에서는 이 주제가 떠나질 않는다. 남에 의해 연명하는 삶이란 인간 존엄에 어떤 의미일까? 특히나 가장이라면? 물론 예술도 중요하지만.

그래서 난 <프러드릭>이 불편했다.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지 못한 것이다. 또 동심을 파괴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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