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대한 생각은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히데요시의 업보가 큰 때문인 듯하다. 실제로는 이에야스에 대한 부정적 기록도 적지 않다.

 조선 사절들은 대체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전쟁을 주모한 잔인하고흉악한 이로 보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온화하고 총명한 군주로 보았다. 그런데 이에야스의 이미지는 약육강식의 전국 시대를 살아남아 최후의 승리자가 된 사람이라 하기에는 과도하게 선한 쪽으로 미화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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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를 알지 못한다. 그는 내가 쓴 <아베, 그는 왜 한국을 무너뜨리려 하는가>의 서평에 장문의 댓글을 달았다. 요지는 일본은 한국에 할만큼 했는데 한국은 대체 왜이러느냐였다. 나는 일반적 수준의 답글을 남겼다. 그래도 지속적인 사과는 필요하며 독일의 사례를 거론했다. 그는 이에대해 친절히 재반론하며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것은 생각의 다름에서 올 수 있는 문제니까. 하지만 아래의 댓글이 나를 좀 자극했다.

모바일에 검지손가락으로만 글써야 하는 나로서는 반론 제기가 여간 귀찬은 일이 아니다. 서평 역시도 한참을 미뤘다 쓰는 판국인데. 나의 부실한 반론이 우스웠던지 한수 가름침을 준다. 제대로 공부하고 대응하란 얘기다.

이곳은 서평이나 독후감 쓰기를 주로 하는 곳이다.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고 싸우는 장이 아니다. 그는 이점을 망각한 듯하다. 일상에서 똥은 더러워 피하는 것이지 무서워 피하는 게 아니다. 나는 이점을 명백히 하고 싶다. 그는 비밀글로 썼으니 여기에 댓글을 달지 모르겠으나 부디 그리 살지 말길 바란다. 나의 부실한 대응에 화난다면 저자인 호사카 유지 교수에게 덤비길 바란다. 난 답글 달기도 귀찮다. 그리고 남의 공간에 왔으면 부디 예의는 쌈 싸먹지 말고 잘 챙겨 다니시길.

이승만학당에서 열공하시는 그분 열의는 진심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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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진을 만드는 정승익의 사진 구도 - 전면개정판 좋은 사진을 만드는 정승익의 사진 시리즈
정승익 지음 / 한빛미디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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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산지 10년이 넘어서야 지난해에 제대로 찍는 법을 배웠다. 실력이 늘지 않는 통에 비싼 카메라는 집의 어둔 구석에서 내내 잠자야 했다. 가끔 유물을 찍기 위해 들고 나서기도 하지만 1년에 두어번 남짓이었다. 카메라에게 미안했었다.

그래도 사진에 대한 기본기를 배우니 찍고자 하는 열의가 생겼다. 그것도 잘 찍고 싶은 욕심이. 혼자 카메라 들고 동네 구석구석을 다녔다. 직장도 섭렵했다. 확실한 것은 이전과 달리 다르게 또한 특별하게 찍고픈 욕심이 강해졌다는 점이다. 이전엔 주로 유물 위주로 찍다보니 보관의 의미만 강했었다. 이런 나을 넘어서게 한 것은 역시 배움이었다. 그런 점에서 사진 강사님께 감사드린다.

《사진 구도》는 말그대로 어디서 어떻게 찍으면 좋을지를 친절히 설명해 준다. 장소나 상황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면 좋은 사진이 나오는지 작가 자신의 사진을 통해 안내한다. 책의 결론은 찍고 싶다는 욕구를 안겨주는 것이었다. 책 속의 저 예쁜 사진이 별거 아닌 거 같아 지금 당장 카메라를 들고 나서고 싶게 한다. 손끝이 감질감질하다. ㅎㅎ 

사진을 포토샵 등으로 편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자신의 힘으로, 멋진 구도를 찾아 찍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편집은 2차 작업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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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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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통해 본 저자 김영하는 매우 밝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박식하며 호기심 많은 그는 ‘똘똘이‘의 전형이었다. 오래 전에 읽은 그의 책에 대한 불유쾌한 기억이 있긴 했지만 TV를 통해 접하게 된 그에 대한 이미지는 상당히 마음에 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 .

《오짇 두 사람》은 우울하기 짝이 없는 소설이다. 소외되고 독립적이지 못한 여성, 아이를 잃은 부모,  첫사랑의 죽음을 접한 나, 정신병에 걸린 작가, 타국에서 죽은 아버지의 옷을 입은 편집장, 불륜을 위심받는 불행한 남편, 지하 방에 갇힌 젊은이들이 이 단편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왠지 소설의 주인공이라기엔 부족하고 어색해 보이는 그들. 책을 읽으면 그들의 심정에 어느 정도의 공감이 가면서도 마음 한켠은 내내 아리다. 주인공들으로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상황 앞에서 독자인 내가 더 좌절하고 분노한다. 대체 왜 이런 아픔이 생기는거야, 작가는 대채 왜 이런 글을 쓰는 거야 하면서.

작가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가진 채 마지막까지 읽어야만 했다. 이런 불행에 간접적으로나마 내가 동참했다는 것 자체가 싫었다. 하지만 ‘작가의 말‘을 읽으며 오해를 풀 수 있었다. 

˝이제 우리도 알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는 이들이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깊은 상실감 속에서도 애써 밝은 표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세상에 많을 것이다. 팩트 따윈 모르겠다. 그냥 그들을 느낀다. 그들이 내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다.

윗글을 읽고서야 저자의 의도를 이해하게 되었다. 삶의 막다른 길에선 그들에 공감하고 관심을 가지는 자세. 그것이 조금이나마 덜 아픈 자들이 가져야 할 마음 아닐까? 이렇게 이해고서야 책이 준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김영하라는 작가 참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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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서의 역사 - 나의 서양사 편력기 대우휴먼사이언스 18
이영석 지음 / 아카넷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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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종의 자서전이다. 저자는 역사학자로서 자신의 인생 역정과 그 과정에서 역사 연구가 어떻게 진척되어 왔는지 친절히 설명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삶으로서의 역사>라는 책의 제목이 와닿는다. 이 책을 통해 역사가 이영석의 개인적 삶을 들여다볼 수도 있지만, 그가 체계화한 ‘역사를 보는 눈‘을 배울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역사학의 교과서처럼 읽히기도 한다. 이점을 중심으로 독후 활동을 해보려 한다.

흔히 역사는 객관적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역사는 상당히 주관적이고 역사 연구는 더욱 그러하다. 물론 전문 연구자는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지만 그것인 완전할 수는 없다. 이런 점에서 포스트모던 역사는 의의가 있다. 저자는 이점을 인정하고 자신의 연구 자세를 수정하는 담대함을 보인다. 세상에 완벽히 객관적일 수 있는 것이 어디 있으랴. 이 책에는 개인의 삶이 역사가 되고 또 그 역사는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과정이 잘 드러난다. 1980년대에 저자는 왜 역사학(그것도 서양사)을 택했는지, 어떤 류의 책들을 읽었는지, 연구 자세는 어떠했는지를 통해 역사 연구의 주관성이 읽힌다. 역사 연구가 당대 사회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는 것은 당연지사다.

역사가 주관적이라 하면 거부감이 들지 모르겠으나 이는 위에서 밝힌 것처럼 인간의 속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역사가 의미를 가지는 것은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연구자들의 부지런한 자세 때문 아닐까 싶다. 저자 이영석은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개인적으로 한 번 강의를 들은 것이 전부(책은 4권 소장)지만 그는 성실한 연구자임에 분명하다. 저서와 논문의 숫자도 그렇지만 스스로 영국에서 1차 사료를 발굴하는 자세와 수도권이 아닌 곳에서 혼자 서양사를 연구하는 자세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게을러지고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환경에도 그는 스스로를 독촉해 지금에 이르렀다. 이런 점은 그가 연구자라는 점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존경의 마음이 들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임지현의 <역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떠올랐다. <삶으로서의 역사>에도 등장하는 임지현은 이영석과 동시대의 서양사학자로 그 역시도 치열한 연구와 남다른 시각으로 논쟁적인 글을 많이 써왔다. 그의 도발적(?) 주장들은 역사학계를 들쑤시기도 했지만 나 같은 독자들에게는 시원한 사이다처럼 다가왔다. 이에 비해 이영석의 글은 분석적이며 꼼꼼함이 두드러진다. 어느 누구의 글이 좋냐 나쁘냐 하는 그런 일차원적 구분은 아니다. 그저 연구자의 성향과 연구 자세가 드러나는 것일 뿐.
한편 이 책은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특히 그의 연구 이력과 영국사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서양사 전공자가 아니면 쉽게 다가서기 힘들다. 이점은 서양사가 대중에게 다가서기 위해 넘어야 할 장벽이 아닐까 싶다. 나 같은 역사 전공자도 이런데 일반인들은 어떨까 싶다. 이점은 저자 역시 고민하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원래 출판사에서는 저자에게 역사학 전공자들을 위한 책으로 써줄 것을 요청했으나 저자가 방향을 틀어 지금의 책으로 출간되었다고 한다. 저자의 의도에 공감하면서도 아쉬움은 남는다. 한국 역사학자들이 쓴 역사학 입문서들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실제 읽히는 책은 대부분 번역서들이다. 아직도 필독서의 반열에 올라 있는 <역사란 무엇인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물론 이 책을 뛰어 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눈에 맞는 역사학 입문서는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많은 학자들이 자신은 그런 정도의 역량이 못된다며 겸양해 하지만 이래서는 안될 듯하다.

역사가 개인의 삶을 통해 역사를 배웠다. 그의 연구 자세를 통해 나는 어떻게 공부하고 사회(혹은 역사)를 바라봐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나는 이 책보다 저자를 더 알게 되었다는 점에 독서의 의의를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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