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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 - 개정판
조나단 스위프트 지음, 신현철 옮김 / 문학수첩 / 1992년 7월
평점 :
독서 동아리의 8월의 책은 조너선 스위프트의 1726년작 《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였다. 이 책은 당시 시대의 상황을 풍자한 소설로 알려져 있으며,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나라에서 동화로 각색되어 아이들을 위해 출간되고 읽혔다. 국내에서는 주로 책의 1부(작은 사람들의 나라)만 소개되었지만 간혹 2부의 큰 사람들의 나라와 3부의 하늘을 나는 섬의 나라도 함께 출판되기도 했다. 하지만 4부 말들의 나라는 신성 모독의 이유로 영국에서조차 삭제됐었고 국내에서도 오랜 기간 원문을 아니면 읽기 어려웠다. 사실 《걸리버 여행기》는 일본 지브리 스튜디오의 명작 '천공의 성, 라퓨타'의 소재가 되기도 했고 인기(?) 검색 엔진 '야후'에 이름을 제공하기도 했다.
한편 그는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계였지만 국내의 작가 소개는 영국 출신으로 쓰인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당시 아일랜드가 영국의 식민지이긴 했지만 지금의 우리가 그를 영국인으로 봐야 할지는 의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의 경우에도 식민지 조선의 손기정이 일장기를 달고 뛰었다고 해서 우리가 그를 일본인 선수로 봐야 하느냐와도 직결된다. 잡설이었다.
위에서도 밝혔듯이 대중들에게는 1부인 작은 사람들의 나라인 릴리퍼트 기행을 걸리버 여행기의 전체 내용인 것처럼 알려져왔다. 소설의 내용을 모델로 각색하여 만들어진 영화 '걸리버 여행기'가 개봉되기도 하였다. 게다가 그 배우가 잭 블랙이었던 만큼 영화가 소설의 풍자성보다는 코미디에 치중하였음은 명약관화하다. 국내에서 《걸리버 여행기》는 19세기 말 영어 천재 윤치호에 의해 처음으로 번역되어 소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뒤 1992년 출판사 문학수첩에서 원본 그대로 무삭제 완역판을 처음으로 출간하였다.
이렇게 장황하게 《걸리버 여행기》를 소개한 것은 독자였던 내가 책 자체 크게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책의 수준이 낮아서가 아니라 풍자의 배경이 된 18세기 무렵의 영국에 대해 아는 바도 적고 그런 유의 책들을 즐겨 읽지 않았던 탓도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독자에게 묘한 인상을 남긴다.
그것은 첫째,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을 경험할 수 있다. 조너선 스위프트는 작가이면서도 신학자(혹은 사제)였다. 그런 그가 말의 나라처럼 신성 모독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상상력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18세기 당대에 하늘을 나를 섬을 어떻게 떠올렸을까? 작가의 남다름에 그저 감탄만 나온다.
둘째, 자세히 읽으면 은근히 당대의 사회에 대한 정보들이 실려 나온다. 잘나가던 나라의 국민(영국인)이 유럽의 주변국을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 당대의 일본은 어떤 나라였는지, 여성은 어느 정도의 지위에 있는지, 여행자들을 대하는 태도 등 사소해 보이지만 18세기의 사회를 읽을 수 있는 작은 정보들이 잘 녹아 있다. 특히 4부 말들의 나라에는 야후라 불리는 야만인들을 통해 인간 사회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래서일까? 작고 큰 사람들의 나라에 대한 소개보다 말을 통해 배우는 인간의 위선이 더 잘 눈에 들어온다. 특히 법과 변호사들에 대한. 이는 박지원이 《양반전》을 통해 조선 양반 사회의 위선을 드러낸 것처럼 말이다.
셋째, 이 책은 유럽이나 아프리카, 아메리카가 무대가 아니다. 그러면 어딜까? 결국 아시아일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보면, 비록 상상력의 소산이기는 하지만, 아시아는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아닌 듯하다. 작거나 큰 사람들 살고, 하늘을 나는 섬이 있고, 쓸모없는 연구만 하는 인간들이 모여 있고, 심지어는 말이 인간을 지배하는 곳이 바로 아시아였다. 이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처럼 아시아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지만 그것은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즉 아시아는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던 것이다. 이런 점은 영화 '300'이나 '알렉산더'에서 소개되는 것처럼 아시아 국가들은 비정상적이고 야만적이라는 선입견을 깔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일종의 무의식적인 '오리엔탈리즘'처럼 말이다.
고전이 항상 재밌는 것은 아니다. 그 시대에 대한 역사적 정보를 어느 정도 가진 독자라면 몇 배 더 재밌고 유익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게 《걸리버 여행기》는 조금 아쉬웠다. 아니 나의 부족함을 조금 더 깨닫는 계기이기도 했다. 수백 년 읽힌 것을 보면 내공이 대단한 책일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