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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고재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마루야마 겐지,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바다출판사.
한 선배의 권유로 읽은 책. 단순히 시골 혹은 귀향과 관련한 책일 것이라는 짐작만으로 시작한 책. 저자는 시골 생활이 도시민들이 상상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 책을 저술했을지 몰라도 책을 읽은 독자에게는 그 이상의 울림을 준다.
과수나무를 키우며 박완서의 수필을 읽으며 전원생활에 대한 약간의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시골이 고향인지라 그곳에서의 삶이 쉽지 않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게다가 아무런 재능이 없는 나로서는 아파트를 벗어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두렵기까지 하다. 전등 갈아 끼우는 것 외엔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도시 인근(!)의 한적한 곳에 들어가 정원을 가꾸는 삶은 놓을 수 없는 미래 계획이었다. 철마다 피는 꽃들과 실한 열매를 주는 과수나무를 키우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리고 잔디밭의 잡초를 뽑고 작은 텃밭을 일구는 것으로 퇴직 후의 일상을 꿈꾸어봤다.
그런데 저자 마루야마 겐지를 그런 소리하지 말란다. 이것이야말로 실패하는 귀향의 첩경이라고 한다. 그런데 대체 왜? 이런 마음이 들기 시작하니 책이 읽히지 않았다. 나도 나름 시골을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 생활을 적잖이 체험했는데 대체 왜 이러시나 하는 마음?
시골 생활이란 게 어떻게든 되는 게 아니라고 그는 주장한다. 좋은 경치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런 곳이 오히려 위험에 취약할 수 있단다. 농사일이란 것도 벅차서 텃밭 가꾸기도 힘들단다. 시골에서의 각종 행사에 빠지면 찍혀서 생활하기 힘들다거나 각종 단체장 선거에 도시락만 대주면 당선될 것이라는 정보도 제공해준다. 이 정도만 읽으면 저자는 사기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한걸음씩 나아가면 그의 진의를 알게 된다. 가게도, 병원도 먼 곳에서 노후의 삶이 보장될 수 있을까? 고요해서 자그마한 소음에도 더 민감해지는 현실을 알까? 준비도 없이 막연한 기대감에 시작된 시골 생활이 정말 삶과 정신에 안정감을 줄까? 시골 사람들이 정말 너희들에게 우호적일까? 시골은 살인사건도 없이 살기 좋은 곳일까? 하는 의문들을 줄줄이 안겨준다. 대체 이 사람 뭐야 하는 질문과 함께.
그렇다면 저자는 독자들에게 시골 생활하지 말라는 것일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시골 생활을 하려면 제대로 준비하고 단단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내려오라는 것이다. 아울러 시골 생활은 도시에서의 삶과 달리 나를 도와주거나 지탱해줄 것들(친척, 친구, 동료, 조직, 아파트 관리사무소 등)이 없기에 홀로서기할 수 없으면 애초에 단념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해준다. 여기까지는 그저 평범한 귀향 서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의 백미는 이보다 게을러진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이다.
즉 그는 시골에서의 삶에 막연한 환상을 가지지 말고 나 자신이 혼자 힘으로 설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조금 전에 언급한 ‘홀로서기’일 것이다. 이는 건강한 삶과도 연관된다. 의사나 병원에 무조건 기대지 말고, 술과 담배에 의지해서도 안 되며, 병을 불러들이는 생활 습관도 버리라 한다. 건강한 삶을 살아야 홀로서기가 가능해 진다. 의사에게 기댄다 해도 그가 나의 건강과 생명을 보장해주진 않는다. 저자는 조금 더 극단적이다. 그는 의사도 직장인일 뿐이라고 한다. 도시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던 나는 그 한계를 벗어나면 무기력해진다. 그렇다면 시골에서의 생활은? 불 보듯 뻔하다. 지금 당장이라도 홀로서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런 단단한 마음을 가진 자라면 시골 생활을 해도 무방할 것이다. 현실은 녹록치 않겠지만.
끝으로 저자의 독설 한 구절을 싣는다. 왜 건강해야 하는지 그리고 부질없이 병원에 기댔다가 동태눈처럼 변한 자신의 눈을 발견했을 때의 불안함이 없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간접적으로 대답해 준다.
“눈빛이 죽어 있는 야생동물은 없습니다. 야생동물은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본래 눈빛을 잃는 법이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당연한 생명의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