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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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영희의 글이 좋다. 솔직하고 지적이고 따뜻하며 주위를 잘 살피는 그녀의 시선이 그대로 드러난 글은 사람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힘이 있다. 신체적 어려움 때문에 겪게 되는 일화들을 통해 세상의 부당함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또다른 공간과 사람이 있음을 알게 해준다. 정상인이 내가 부끄러워지기보다 나도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며 자연스레 다짐까지 하게 된다. 그녀의 글에는 이런 힘이 있다. 부드러운 글인데도, 차분한 글인데도 그 속에 숨겨진 힘이 전해진다.

무엇보다 내게는 그녀의 관찰력이 부럽다. 솔직히 나는 가르치는 학생들을 잘 살피지 못한다. 그들의 대략적인 개성과 상황은 파악하고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볼 줄 모른다. 어쩌면 그 너머 보기를 두려워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 글에서 학생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하지만 장영희는 이런 나와는 달리 학...생들을 잘 파악하고 있다. 그것은 상담 시간이 길다거나 그들과 자주 대화한다기보다 순간순간 찾아온 만남을 잘 활용하고 있는 듯하다. 즉 잘 들어주고, 쉽게 잊지 않고, 가끔은 재확인하는 일들. 체계적이지 않지만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그녀 속에 내면화되어 있는 듯하다. 대화의 파트너로서 믿음이 가는 것이다. 여기에 비해 나는 참 많이 부족하다.

나는 기본적으로 남의 말을 오래 듣기 힘들어 한다. 그러니 대화의 파트너로서 부적격이다. 게다가 잘 잊어버리고 재확인같은 건 언감생심 꿈꿀 수도 없다. 학생들 얼굴이나 이름도 쉽게 잊어버리고 누군지 꼭 확인해야 하는 편이니...

장영희의 문학론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이다. 그녀가 얼마나 문학을 사랑하고 또 문학이 인간에게 얼마나 유용한 것인지 쉽게 풀어 쓴 책이다. 그러나 저자는 조용히 말한다. "책 좀 읽으라"고. 이 좋은 것을 왜 않읽니 하고 그녀가 묻는 것 같다. 그것도 고전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그런데 기분은 좋다. 그녀는 내게 강요하지 않는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 지금 당장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고픈 기분이 드니까. 이게 그녀가 가진 힘이다.

아픈 그녀가 아버지를 닮아 영문학을 전공하고 영어교과서를 집필하고 수필집을 펴냈다. 어쩌면 '아픈'이란 수식어를 붙인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리라. 그것은 불편한 것이지 그녀의 삶을 이상한 길로 인도한 것이 아니니까. 그녀 역시도 그리 생각한 것 같을뿐. 주위 사람들면 그녀를 색안경끼고 바라 본 듯하다. 아무튼 그녀의 문학 사랑은 내게 전해졌고 나는 한동안 문학에 빠질 듯하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 하루키의 글을 읽는다. ㅋㅋㅋ

참! 이 책은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한국 대표 100권에 뽑혀 독일에서도 전시되었단다. 역쉬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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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책략 범우문고 229
황준헌 지음, 김승일 옮김 / 범우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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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진도에 맞춰 책읽기 프로젝트는 여전히 진행중. 아마도 내가 교직에 있는 한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책 읽기가 힘들어지거나 돈이 아깝다고 느껴지는 어느 순간 그만 둘 수도 있겠지만. 이런 상상이 이어지다보니 과연 퇴직 후에 이런 즐거움을 이어갈 수 있을 지 하는 작은 걱정도 든다. 없는 걱정을 미리 만들어 본다. ㅎㅎ

부끄럽지만 <조선책략>과 '영남만인소'를 이제서야 읽었다. 핵심 내용은 이미 알고 있지만 본문을 제대로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 황준헌, 김홍집, 이만손 등의 마음이 전해지는 듯하다. 어디까지가 그들의 본심이고 어디가 정치적 술사인지 아직 나의 수준으로는 명확히 알기 어렵지만 그래도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내용을 정리해 본다.

...

우선 책의 앞부분에는 김홍집과 일본주재 청국외교관과의 필담이 실려 있다. 여기에 <조선책략>의 핵심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다. 신실하고 상대에 대한 깊은 신뢰가 깔려 있는 대화는 지나치게 격식에 치우치고 현실에 맞지 않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겠지만, 내게는 그런 대화의 자세가 참으로 눈물겹다. 형식적이고 정감 없는 대화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좋은 자극이 될만하다. 그런 사람을 만나길 기다리기보다 나 자신부터 그런 시실한 자세를 견지해야겠다. ㅎㅎ

나는 개인적으로 <조선책략>의 의도를 지지한다. 물론 중국인의 입장에서 중국을 위한 정책을 내세운 책이라 비판할 수 있겠으나, 황준헌의 진심도 느껴지고 개화의 길을 걸어야 할 조선에 대한 조언이라고 생각할 여지도 많아 보인다. 조약체결이나 조세(특히 관세) 문제에 대한 자세한 조언에는 당시 조선이 잘 알지 못하던 정보가 담겨 있었다. 어쩌면 중국의 실패에서 배운 것을 조선에 전해주었을지도... 일본에서 배운 바도 컸을 것이다.

다만 왜 황준헌은 미국을 그렇게 과대하게 칭찬했는지 그리고 일본을 과소하게 평가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그는 직업 외교관으로서 나름 국제 정세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미국은 서구 세력에 대항하고 아시아 국가들을 옹호한다는 말도 안되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미국 역시 제국주의 국가일 뿐인데도 말이다. 게다가 일본은 재정도 부족하고 군사력도 약하니 조선을 침략할 가능성이 낮으니 속히 그들과 체결된 조약을 이행하고 그들과 가까이 지내라 한다. 여기에 러시아에 대한 평 역시 다소 과장된이 아닌가 싶다. 러시아의 남하가 두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연 그렇게 심각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는 지 의문이 든다.

아울러 이 <조선책략>을 비난하는 '영남만인소'는 작성자의 심정이 느껴지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극강 보수의 답답함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우리 것만이 좋은 것이니 알지 못하는 오랑캐와 교류할 수 없다는. 세상의 변화를 알지 못하고 자신의 것만 고집하는 옹고집쟁이의 한계가 아닐까 싶다.

현재의 한국은 위와 같은 위기를 극복하고 잘 성장해 왔다. 지금은 여기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 <조선책략>이 퍼졌던 후기의 조선과 비교해 우리는 우월한 위치에 있는지 자문해보고 싶다. 사대정책은 여전하고 문을 절대로 열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있다. 어느 길이 현명한 길일까? 혼란스럽다. 안타깝고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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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고재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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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야마 겐지,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바다출판사.

 

한 선배의 권유로 읽은 책. 단순히 시골 혹은 귀향과 관련한 책일 것이라는 짐작만으로 시작한 책. 저자는 시골 생활이 도시민들이 상상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 책을 저술했을지 몰라도 책을 읽은 독자에게는 그 이상의 울림을 준다.

 

과수나무를 키우며 박완서의 수필을 읽으며 전원생활에 대한 약간의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시골이 고향인지라 그곳에서의 삶이 쉽지 않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게다가 아무런 재능이 없는 나로서는 아파트를 벗어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두렵기까지 하다. 전등 갈아 끼우는 것 외엔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도시 인근(!)의 한적한 곳에 들어가 정원을 가꾸는 삶은 놓을 수 없는 미래 계획이었다. 철마다 피는 꽃들과 실한 열매를 주는 과수나무를 키우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리고 잔디밭의 잡초를 뽑고 작은 텃밭을 일구는 것으로 퇴직 후의 일상을 꿈꾸어봤다.

 

그런데 저자 마루야마 겐지를 그런 소리하지 말란다. 이것이야말로 실패하는 귀향의 첩경이라고 한다. 그런데 대체 왜? 이런 마음이 들기 시작하니 책이 읽히지 않았다. 나도 나름 시골을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 생활을 적잖이 체험했는데 대체 왜 이러시나 하는 마음?

 

시골 생활이란 게 어떻게든 되는 게 아니라고 그는 주장한다. 좋은 경치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런 곳이 오히려 위험에 취약할 수 있단다. 농사일이란 것도 벅차서 텃밭 가꾸기도 힘들단다. 시골에서의 각종 행사에 빠지면 찍혀서 생활하기 힘들다거나 각종 단체장 선거에 도시락만 대주면 당선될 것이라는 정보도 제공해준다. 이 정도만 읽으면 저자는 사기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한걸음씩 나아가면 그의 진의를 알게 된다. 가게도, 병원도 먼 곳에서 노후의 삶이 보장될 수 있을까? 고요해서 자그마한 소음에도 더 민감해지는 현실을 알까? 준비도 없이 막연한 기대감에 시작된 시골 생활이 정말 삶과 정신에 안정감을 줄까? 시골 사람들이 정말 너희들에게 우호적일까? 시골은 살인사건도 없이 살기 좋은 곳일까? 하는 의문들을 줄줄이 안겨준다. 대체 이 사람 뭐야 하는 질문과 함께.

 

그렇다면 저자는 독자들에게 시골 생활하지 말라는 것일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시골 생활을 하려면 제대로 준비하고 단단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내려오라는 것이다. 아울러 시골 생활은 도시에서의 삶과 달리 나를 도와주거나 지탱해줄 것들(친척, 친구, 동료, 조직, 아파트 관리사무소 등)이 없기에 홀로서기할 수 없으면 애초에 단념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해준다. 여기까지는 그저 평범한 귀향 서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의 백미는 이보다 게을러진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이다.

 

즉 그는 시골에서의 삶에 막연한 환상을 가지지 말고 나 자신이 혼자 힘으로 설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조금 전에 언급한 홀로서기일 것이다. 이는 건강한 삶과도 연관된다. 의사나 병원에 무조건 기대지 말고, 술과 담배에 의지해서도 안 되며, 병을 불러들이는 생활 습관도 버리라 한다. 건강한 삶을 살아야 홀로서기가 가능해 진다. 의사에게 기댄다 해도 그가 나의 건강과 생명을 보장해주진 않는다. 저자는 조금 더 극단적이다. 그는 의사도 직장인일 뿐이라고 한다. 도시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던 나는 그 한계를 벗어나면 무기력해진다. 그렇다면 시골에서의 생활은? 불 보듯 뻔하다. 지금 당장이라도 홀로서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런 단단한 마음을 가진 자라면 시골 생활을 해도 무방할 것이다. 현실은 녹록치 않겠지만.

 

끝으로 저자의 독설 한 구절을 싣는다. 왜 건강해야 하는지 그리고 부질없이 병원에 기댔다가 동태눈처럼 변한 자신의 눈을 발견했을 때의 불안함이 없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간접적으로 대답해 준다.

 

눈빛이 죽어 있는 야생동물은 없습니다. 야생동물은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본래 눈빛을 잃는 법이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당연한 생명의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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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하는 저녁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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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에쿠니 가오리의 글을 좋아한다. 문장에 꾸밈이 적도 깔끔한 느낌이 들어서다. 소설이 대체로 짧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속의 이야기는 짧지 않고 오히려 긴 여운을 남겨준다. 그녀가 다루는 주제가 '사랑'에 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사랑'이 다양하여 단순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냉정과 열정사이>, <웨하스 의자>, <도쿄타워>, <빨간장화> 등을 보면 부모의 반대로 헤어진 연인들이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재결합하기도 하고, 유부남과 사랑하기도 하고, 남편과의 관계에서 권태를 느끼기도 하고, 엄마의 친구와 사랑하는 고등학생 이야기가 등장한다. 쉽게 이해되는 주제고 있지만 가슴 한켠에 심한 불편함을 안겨주는 주제도 있다. 내게는 한국식과는 다른 문제의식을 던져주는 일본 소설이 재밌다.

 

이 소설은 사랑하는 남자를 15개월에 걸쳐, 서서히 떠나보내는 여자의 시간에 관한 것이다. 그 시간동안에도 여주인공 리카는 그 남자(다케오)만을 바라보고 살아왔지만 남자의 시선은 다른 여자(하나코)에게 가 있다. 하지만 다케오의 사랑도 결국엔 실패한다. 그래서 더욱 슬픈 이야기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사랑도 남녀가 함께여야 한다. 그런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랑은 외롭다. 리카는 다케오를, 다케오는 하나코를 사랑하지만 하나코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하나코는 오히려 모든 사랑과 관심에서 벗어나고자 자살한다. 사랑은 이렇게 파국을 맞이한다. 독자인 내게 이런 관계는 불편하다. 헤어진 남자에 대한 연민을 끊을 수 없고, 그의 여자와 함께 지내야 하는 말도 안되는 일상은 독자인 내게도 힘들다.

 

쓸쓸한 뒷맛을 남기는 이 소설을 나는 왜 흥미롭게 읽은 것일까? 왜 일본 소설에 끌리는지 참...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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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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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 시절. 좀머 아저씨와의 조우. 이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이는 우리가 간과해 버릴 수 있는 사소한 것들이다. 그러나 감수성이 강한 저자는 이런 것을 쉽사리 놓치지 않고 글로 써 낼 수 있다는 게  존경스럽다.

 

난 어린 시절 무엇을 생각해낼 수 있을 까. 거기에서 난 어떤 것들을 구할 수 있을까. 아니 구할 수 없어도 좋다. 그것이 내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그것만이라도 제대로 알고 싶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우리의 성격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도 우리네 어른들이 이를 무시하기라도 하듯이 어린이들 앞에서 얼마나 많은 잔인한 일들을 저질러 왔단 말인가. 나 자신도 이는 부인하지 못한다.

 

저자는 자신의 옛 기록인 듯한 이 글을 동화를 이야기하듯이 어려운 내용없이 담담히 설명하고 있어 어느 누구라도 어려움 없이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내용이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이는  저자의 어린 시절 그 차제는 별 문제가 되지 않으나 좀머 아저씨와는 깊은 관계가 있다. 그의 병적인 행보나 호수에서의 죽음 등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지 스스로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임이 틀림없다. 당시 전후 독일의 문제를 다룬 것인지 죽음의 문제를 소년이라는 주인공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 것인지 나름의 잣대를 가지고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쉽게 읽히지만 가슴에서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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