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진을 만드는 정승익의 사진 구도 - 전면개정판 좋은 사진을 만드는 정승익의 사진 시리즈
정승익 지음 / 한빛미디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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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산지 10년이 넘어서야 지난해에 제대로 찍는 법을 배웠다. 실력이 늘지 않는 통에 비싼 카메라는 집의 어둔 구석에서 내내 잠자야 했다. 가끔 유물을 찍기 위해 들고 나서기도 하지만 1년에 두어번 남짓이었다. 카메라에게 미안했었다.

그래도 사진에 대한 기본기를 배우니 찍고자 하는 열의가 생겼다. 그것도 잘 찍고 싶은 욕심이. 혼자 카메라 들고 동네 구석구석을 다녔다. 직장도 섭렵했다. 확실한 것은 이전과 달리 다르게 또한 특별하게 찍고픈 욕심이 강해졌다는 점이다. 이전엔 주로 유물 위주로 찍다보니 보관의 의미만 강했었다. 이런 나을 넘어서게 한 것은 역시 배움이었다. 그런 점에서 사진 강사님께 감사드린다.

《사진 구도》는 말그대로 어디서 어떻게 찍으면 좋을지를 친절히 설명해 준다. 장소나 상황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면 좋은 사진이 나오는지 작가 자신의 사진을 통해 안내한다. 책의 결론은 찍고 싶다는 욕구를 안겨주는 것이었다. 책 속의 저 예쁜 사진이 별거 아닌 거 같아 지금 당장 카메라를 들고 나서고 싶게 한다. 손끝이 감질감질하다. ㅎㅎ 

사진을 포토샵 등으로 편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자신의 힘으로, 멋진 구도를 찾아 찍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편집은 2차 작업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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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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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통해 본 저자 김영하는 매우 밝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박식하며 호기심 많은 그는 ‘똘똘이‘의 전형이었다. 오래 전에 읽은 그의 책에 대한 불유쾌한 기억이 있긴 했지만 TV를 통해 접하게 된 그에 대한 이미지는 상당히 마음에 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 .

《오짇 두 사람》은 우울하기 짝이 없는 소설이다. 소외되고 독립적이지 못한 여성, 아이를 잃은 부모,  첫사랑의 죽음을 접한 나, 정신병에 걸린 작가, 타국에서 죽은 아버지의 옷을 입은 편집장, 불륜을 위심받는 불행한 남편, 지하 방에 갇힌 젊은이들이 이 단편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왠지 소설의 주인공이라기엔 부족하고 어색해 보이는 그들. 책을 읽으면 그들의 심정에 어느 정도의 공감이 가면서도 마음 한켠은 내내 아리다. 주인공들으로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상황 앞에서 독자인 내가 더 좌절하고 분노한다. 대체 왜 이런 아픔이 생기는거야, 작가는 대채 왜 이런 글을 쓰는 거야 하면서.

작가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가진 채 마지막까지 읽어야만 했다. 이런 불행에 간접적으로나마 내가 동참했다는 것 자체가 싫었다. 하지만 ‘작가의 말‘을 읽으며 오해를 풀 수 있었다. 

˝이제 우리도 알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는 이들이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깊은 상실감 속에서도 애써 밝은 표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세상에 많을 것이다. 팩트 따윈 모르겠다. 그냥 그들을 느낀다. 그들이 내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다.

윗글을 읽고서야 저자의 의도를 이해하게 되었다. 삶의 막다른 길에선 그들에 공감하고 관심을 가지는 자세. 그것이 조금이나마 덜 아픈 자들이 가져야 할 마음 아닐까? 이렇게 이해고서야 책이 준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김영하라는 작가 참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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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서의 역사 - 나의 서양사 편력기 대우휴먼사이언스 18
이영석 지음 / 아카넷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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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종의 자서전이다. 저자는 역사학자로서 자신의 인생 역정과 그 과정에서 역사 연구가 어떻게 진척되어 왔는지 친절히 설명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삶으로서의 역사>라는 책의 제목이 와닿는다. 이 책을 통해 역사가 이영석의 개인적 삶을 들여다볼 수도 있지만, 그가 체계화한 ‘역사를 보는 눈‘을 배울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역사학의 교과서처럼 읽히기도 한다. 이점을 중심으로 독후 활동을 해보려 한다.

흔히 역사는 객관적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역사는 상당히 주관적이고 역사 연구는 더욱 그러하다. 물론 전문 연구자는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지만 그것인 완전할 수는 없다. 이런 점에서 포스트모던 역사는 의의가 있다. 저자는 이점을 인정하고 자신의 연구 자세를 수정하는 담대함을 보인다. 세상에 완벽히 객관적일 수 있는 것이 어디 있으랴. 이 책에는 개인의 삶이 역사가 되고 또 그 역사는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과정이 잘 드러난다. 1980년대에 저자는 왜 역사학(그것도 서양사)을 택했는지, 어떤 류의 책들을 읽었는지, 연구 자세는 어떠했는지를 통해 역사 연구의 주관성이 읽힌다. 역사 연구가 당대 사회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는 것은 당연지사다.

역사가 주관적이라 하면 거부감이 들지 모르겠으나 이는 위에서 밝힌 것처럼 인간의 속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역사가 의미를 가지는 것은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연구자들의 부지런한 자세 때문 아닐까 싶다. 저자 이영석은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개인적으로 한 번 강의를 들은 것이 전부(책은 4권 소장)지만 그는 성실한 연구자임에 분명하다. 저서와 논문의 숫자도 그렇지만 스스로 영국에서 1차 사료를 발굴하는 자세와 수도권이 아닌 곳에서 혼자 서양사를 연구하는 자세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게을러지고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환경에도 그는 스스로를 독촉해 지금에 이르렀다. 이런 점은 그가 연구자라는 점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존경의 마음이 들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임지현의 <역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떠올랐다. <삶으로서의 역사>에도 등장하는 임지현은 이영석과 동시대의 서양사학자로 그 역시도 치열한 연구와 남다른 시각으로 논쟁적인 글을 많이 써왔다. 그의 도발적(?) 주장들은 역사학계를 들쑤시기도 했지만 나 같은 독자들에게는 시원한 사이다처럼 다가왔다. 이에 비해 이영석의 글은 분석적이며 꼼꼼함이 두드러진다. 어느 누구의 글이 좋냐 나쁘냐 하는 그런 일차원적 구분은 아니다. 그저 연구자의 성향과 연구 자세가 드러나는 것일 뿐.
한편 이 책은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특히 그의 연구 이력과 영국사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서양사 전공자가 아니면 쉽게 다가서기 힘들다. 이점은 서양사가 대중에게 다가서기 위해 넘어야 할 장벽이 아닐까 싶다. 나 같은 역사 전공자도 이런데 일반인들은 어떨까 싶다. 이점은 저자 역시 고민하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원래 출판사에서는 저자에게 역사학 전공자들을 위한 책으로 써줄 것을 요청했으나 저자가 방향을 틀어 지금의 책으로 출간되었다고 한다. 저자의 의도에 공감하면서도 아쉬움은 남는다. 한국 역사학자들이 쓴 역사학 입문서들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실제 읽히는 책은 대부분 번역서들이다. 아직도 필독서의 반열에 올라 있는 <역사란 무엇인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물론 이 책을 뛰어 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눈에 맞는 역사학 입문서는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많은 학자들이 자신은 그런 정도의 역량이 못된다며 겸양해 하지만 이래서는 안될 듯하다.

역사가 개인의 삶을 통해 역사를 배웠다. 그의 연구 자세를 통해 나는 어떻게 공부하고 사회(혹은 역사)를 바라봐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나는 이 책보다 저자를 더 알게 되었다는 점에 독서의 의의를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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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 욕망+모더니즘+제국주의+몬스터+종교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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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가지 힘>은 현대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것들을 주제별로 나눠 설명하는 책이다. 저자는 이를 욕망, 모더니즘, 제국주의, 몬스터, 종교라는 이름으로 묶었다. 언뜻 이름만 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질 수 있겠으나 속내를 확인하면 금방 수긍이 간다. 대부분의 주제들이 지금 우리와 연결되는 것이기도 하고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이기도 하다.

먼저 인간의 ‘욕망‘은 역사를 움직이는 큰 힘이다. 물질과 그것에 대한 동경은 인간을 요동케 하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그 구체적 사례로 커피와 홍차, 금과 철, 브랜드와 도시 등을 들 수 있다. 두번째, ‘모더니즘‘은 멈추지 않는 열차에 비유된다. 가톨릭의 느슨함에 비해 프로테스탄트에서 비롯된 자본주의는 폭주 기관차처럼 앞으로 내달리기만한다. 브레이크를 상실한 것처럼. 여기서 비롯된 근대화는 앞날이 예견된 것처럼 보인다. 세번째, ‘제국주의‘는 영토 확장에 혈안이 된 유럽 제국의 열망을 설명한다. 성공한 제국을 통해 상대를 내 앞에 무릎 꿇리려는 남심의 문제를 지적한다. 네번째로 19세기부터 나타난 자본주의, 사회주의 , 파시즘을 ‘몬스터‘라 칭한다. 이 괴물들이 태어난 배경과 몰락하게 된 원인을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한뿌리 삼형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통해 세계사의 중심에 종교가 있었음을 강조한다.

이 책의 특징은 역사 전문가가 아닌 저자가 상식적으로 수긍이 되는 주제로 역사를 분류해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창의력이 ‘개별적인 것들의 연결짓기‘라고 말한 어느 전문가의 말이 맞다면 이 책은 그점을 잘 실천하고 있다. 위의 다양한 주제들을 대체로 알고 있지만 이처럼 멋지게 하나로 묶어낼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내의 많은 세계사 관련 서적들은 시대별내지 주제별 전공자들에 의해 전문적으로 서술되고 있어 이 책처럼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저자 사이토 다카시는 크게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공자의 입장에서 보면 눈에 거슬리는 대목이 있다. 그것은 이 책이 유럽중심주의에 매몰되어 있다는 점이다. 물론 아시아에 대한 설명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유럽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 저자가 설정한 다섯가지 주제가 대부분 유럽 태생이기에 때문에 어쩔 수 없기도 하지만 그는 고대, 중세에 대한 서술 중심이 유럽임을 숨기지 않는다. 책의 제목이 세계사이지만 저자가 생각하는 세계사는 유럽 중심의 것임이 명확해 보인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다는 점!

유럽중심적이지만 그것이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주류이고 또한 현재의 우리와 직접 연결된 부분이 많아 책은 쉽게 다가온다. 고개도 잘 끄덕여진다. 쉬운 내용이라 어린 학생이나 일반인이 접근하기에도 좋다. 역사를 이렇게 분류하고 이해하는 것 역시 나만의 역사관을 기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인다.

다만 책의 뒷편에 실린 해제에 대해 한 마디하고 싶다. 해제자인 우석훈은 현대 한국사가 죽음의 문턱에 있다고 진단한다. 역사학 전공자들도 적고 전문성을 갖춘 이들도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그는 거론한다. 이점에서 한국사학계가 약화되고 있는 점은 사실이다. 인문학이 강조되고 있지만 인문학이 위축되고 있고, 역사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지만 전문 역사 전공자는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고 한국사학이 죽어가고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 듯하다. 전공자들이 들으면 뒤로 자빠질 것이다. 그들의 열심과 헌신을 무시한 이야기다.

책의 해제에서 건져올린 최고의 문장은 ‘해석이 죽은 시대는 그 시대 차제가 죽었거나, 해석이 살아 있는 다른 시대에 필연적으로 종속될 수밖에 없다.‘이다. 나는 이 말에 절대공감한다. 해석은 시대마다 나오고 시대마다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흔히 후대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는 말이 콧방귀로 들릴 뿐이다. 그시대에는 그시대의 해석과 평가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후대에는 그 다름의 해석이 따른다. 그것이 같을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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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0-01-01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일본 만화를 보면 서양의 문화를 마치 일본인의 문화와 동일시하는 내용이 나와요. 아무래도 일본이 다른 동양 국가에 비해 서양 문화를 빨리 받아들여서 그런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것도 서양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생긴 동양인 특유의 서양 중심주의라고 생각해요.

knulp 2020-01-01 23:44   좋아요 0 | URL
동양인 특유의 서양 중심주의라는 말씀이 와닿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그들을 주류라고 인식하는거죠. 스스로를 한 수 깔고 들어가는. 공감합니다.
 

내 여행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난 왜 여행을 떠날까?
그 이유늘 생각케 된다.

"(여행은) 자기 의지를 가지고 낯선 곳에 도착해 몸의 온갖 감각을 열어 그것을 느끼는 경험. 한 번이라도 그것을 경함한 이들에게는 일상이 아닌 여행이 인생의 원점이 된다. 일상으로 돌아올 때가 아니라 여행을 시작할 때 마음이 더 편해지는 사람이 잇다면 그는 나와 같은 부류의 인간일 것이다. 이번 생은 떠돌면서 살 운명이라는 것. 귀환의 원점 같은 것은 없다는 것. 이제는 그걸 받아 들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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