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와 선비 - 오늘의 동양과 서양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백승종 지음 / 사우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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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한다는 것은 비교 대상들의 차이를 드러나게 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를 통해 대상들의 정체성을 더욱 명확히 알게 한다. 하지만 비교사는 쉬운 영역이 아니다. 가령 역사학에서만해도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로 세분화되어 있으며, 각 영역도 국가사로 나뉘어 있다. 대부분의 전공자들은 그 국가사 내지 국가의 한 시대만을 주요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한국사 전문가는 서양사 문외한일 수 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비교사는 연구자 개인이 도전하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는 영역이다. 그래서 대체로 어느 주제에 대한 비교가 필요할 경우 적어도 두 명 이상의 전공자가 등판할 수밖에 없다. 현재 이를 잘 수행하고 있는 조직으로는 한양대의 비교역사문화연구가 있다.

이렇듯 장황하게 첫문단을 쓴 이유는 <신사와 선비> 그 어려운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한국사 전문가로서 서양사 전반에 대한 글을 쓰자면 완전히 새롭게 공부해야 때문에 여간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저자는 한국사 박사학위를 독일에서 받은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어 상대적으로 수월히 이런 도전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책을 펼쳤다.

<신사와 선비>를 읽으며 든 생각을 모두 여기에 정리할 수 없다. 대신 내가 눈여겨 본 것을 짧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사도가 신사도와 연결되었다는 점이다. 이 둘 사이에 연결점이 있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무기를 들고 있는 기사들의 자세가 근대의 신사들에게 연결되었다니. 여기에는 종교적(기독교), 신분적(젠트리), 경제적(인클로저 운동, 산업혁명)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저자는 증명했다. 그리하여 기사도는 지난 1000년 이상 서구 사회의 변화를 추도하는 강력한 힘의 하나였다고 단언한다. 결국 나는 이 책을 통해, 서구사회는 전통의 힘이 여전히 작용하고 있으며 기사도의 영향을 받은 신사도는 산업혁명과 더불어 사회발전에 순기능하였음을 확인했다.

둘째, 신사도에 비해 선비정신은 현대의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우리는 일제 시대와 한국 전쟁을 겪으며 전통의 단절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또한 이 시대를 통해 조선 시대, 좁혀 지도층의 무능을 목격했다. 이때문에 선배들의 좋은 정신과 자세를 현재의 우리에게 직접 전해지지 못하고 책 속의 이야기로만 접하게 되었다. 그결과 우리는 신사도처럼 사회변화에 순기능할 수 있는 정신을 갖지 못했고 여전히 수 십 년째 정신적 혼란기(?)를 겪고 있다. 개인으로서 시민이 가져야 할 덕목을 외국에서 수입하기보다 우리의 전통에서 찾는 것이 좋지 않을까? 비록 서구산 민주주의와 자유와 평등 속에서 살고 있지만 그것은 원형 그대로 우리 사회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맞게 변형되어 정착되지 않았던가. 계승하여 좋을 선비정신을 우리는 찾을 필요가 있다.

셋째, 이 책을 통해 조선사회를 다시금 보게 되었다. 즉 선비의 눈으로 보는 조선사회는 지금까지 보아온 중앙집권적 국가의 모습과는 달랐다. 거창한 지방분권이라는 이름보다 마을공동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고, 선비들이 그 사회에서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확연히 알게 되었다. 또한 그들은 사회 지도층으로서 윤리적, 도덕적 사회의 구현을 위해 몸소 노력하였음도 알았다. 우리는 익히 조선 후기의 당쟁과 그로인한 사회분열을 중심으로 선비사회를 이해하였지만 이 책은 선비 사회의 순기능을 중심으로 살피고 있다. 저자의 판단으로 역기능은 제외한 것이다. 지역사회의 리더로서 선비들의 정신은 오늘의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다. 개인의 영달과 재산 축적의 방편으로만 생각하는 작금의 정치인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물론 부정적 선비관도 엄연히 있지만 선비들의 긍정적 역할을 중심으로 본 조선은 배울점이 분명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일관된 저술 행로가 눈에 띈다. 박사학위논문을 바탕으로 쓴 <한국사회사연구>(1996년)를 시작으로 올해 출간된 <선비와 함께 춤을>까지 저자는 중앙보다는 지방을, 조직보다는 개인을, 권세가보다는 상대적 약자 중심으로 글을 쓰지 않았나 싶다. 저자가 발혔듯이 미시사를 중심으로 글쓰기를 해왔기 때문에 이런 경향을 보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고뇌까지는 아니지만 심각하게 고민하고 생각하며 읽은 책이었다. 지나치게 전문적이지 않고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비교사 분야의 역작이라 생각된다. 글을 읽노라면 저자가 얼마나 진지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이 책을 썼는지 느껴진다. 그가 공부한 내용이 사회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는 확신 하에 현재 한국사회의 혼란 해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그는 이 책을 내놓은 듯하다. 부디 독자인 내가 무례하게 저자의 마음을 넘겨짚은 것이 아니길 빈다. 모두에게 일독을 원한다. 독서의 맛을 맛을 느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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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8-07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선비‘가 부정적인 의미의 인터넷 용어로 사용되고 있어서 그런지 젊은 세대는 선비를 고지식한 계층으로 인식하는 것 같아요.

knulp 2018-08-07 13:53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잘못된 전통을 이을 필요는 없겠지만 우리 전통문화 중 계승할 필요가 있는 것은 연구하고 분석하여 수용해야 합니다. 이책을 통해 크게 배운 바입니다. 더운 여름 잘 지내고 계시죠?

cyrus 2018-08-07 18:32   좋아요 0 | URL
네. 집에 에어컨 켜기가 두려워서 퇴근하자마자 찾는 곳이 도서관이에요. 전기세 폭탄 때문에 집에 편안히 쉬지도 못하다니.. 올해 여름 장난 아니네요.. ^^;;

knulp 2018-08-07 19:02   좋아요 0 | URL
ㅎㅎ건강히 잘 견디세요. 저희 동네 도서관은 자리 전쟁 중입니다.^^

양철나무꾼 2018-08-07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knulp님.
전 이분의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을 재밌게 읽었던 터라, 이 책도 눈독 들이고 있었는데,
이렇게 리뷰를 올려주시니 많은 도움이 됩니다.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꾸벅~(__)

knulp 2018-08-07 17:56   좋아요 1 | URL
아하 그러셨군요. 저도 저자의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쉽고 재밌게 쓰는 능력이 있는 듯했습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제가 기분이 좋네요^^
 
조선의 왕실과 외척
박영규 지음 / 김영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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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은 독서를 위해서라기보다 참고하기 위해서 산 책이다. 왕실과 그 친척들에 대한 호기심이 구매를 부추겼다. 그렇게 내게 와 오랜 시간 책장에 꽂혀 있었다. 간단한 참고용으로. 그래서 버릴 수 없는 꼭 필요한 자료가 되었다.

왕실 가족에 대한 호칭이나 품계 등을 통해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1부에서 살펴본다. 이어 2부에서 왕을 중심으로 왕비와 후궁 그리고 그들의 자녀와 배우자들에 대해 설명한다. 세밀한 설명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들의 개략적인 삶을 살필 수 있다.

일반인들이 쉬 찾을 수 없는 자료들이라 저자도 이 책을 쓰기 힘들었다고 토로한다. 다시는 쓰고 싶지 않은 책이라 말할 정도니... 조선의 왕 27명과 그 외척까지 다루었으니 그 내용이 얼마나 방대할지 짐작된다. 이런 책이 쓰여질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저자의 전작이었던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이 큰 힘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왕조실록을 읽으며 자료를 축적했을테니. 아무튼 게으른 독자인 내게 큰 도움이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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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 행복지수 1위 덴마크에서 새로운 길을 찾다 행복사회 시리즈
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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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과 다짐을 동시에 가지게 해주는 책이다. 넓고 광활한 북유럽 속 소국, 덴마크. 그들은 아픈 역사를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자기들에게 맞는 옷을 지어 입었다. 불평등에 대한 뉴스가 넘치는 우리 사회로써는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덴마크는 어떻게 지금의 번영을 누릴 수 있었을까?

그것은 내가 보기에 신뢰의 힘이다. 협상 파트너를 믿고 함께하는 것은 조직과 사회를 지탱하는 큰 힘이다. 사장과 노동자가 서로 믿을 수 있을까? 우리네 상황에서는 글쎄올시다 일듯. 하지만 덴마크에서는 소위 말하는 갑을관계가 없어 보인다. 상호의존적 관계가 잘 뿌리내리고 있다. 부러운 힘이다.

둘째, 그룬트비라는 걸출한 인물의 존재와 그의 주장을 수용할 역사적 배경이 있었다. 덴마크는 스웨덴과 독일에 연이어 패하면서 지하자원지대와 곡창지대를 잃었다. 절망적 상황이었지만 그룬트비는 민족의 단결과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협동조합이 출현하고 시민들이 대동단결하여 위기를 극복하게 되었다. 단순히 위대한 인물의 등장이라기보다 결국 시민의 힘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든 것이다.

셋째, 교육의 힘을 들고 싶다. 남보다 잘난 사람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평등한 사회의 기반을 이루는 교육을 실시했다. 다른 이의 표현을 빌리면 ‘위대한 평민‘을 기르는 교육이다. 이런 교육의 결과 급여의 50%에 이르는 세금을 부담하고 또한 그 세금의 집행을 거부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결국 신뢰의 힘과 연결되는 것이다. 또한 돈 잘버는 직업을 찾는 교육이 아니라 끝까지 자신의 꿈을 찾고 실현하는 법을 일러주는 교육이 실시된다. 직업간 차별이 거의 없으니 불평등이 자리잡기 힘들다. 교육과 사회가 별개인 게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물론 이외에도 책에는 다양한 성공 비결들이 있다. 저자의 주장대로 이는 바로 우리 상황에 적용되기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사례들을 통해 배울 점이 분명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교육의 힘은.

책을 읽으면 덴마크에서 감동이 느껴진다. 완전 남의 일이니 배아프진 않다. ㅎㅎ 참! tvn에 방영한 ‘행복난민‘편도 좋은 참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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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독했으나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재밌으니 멈출 수 없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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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사람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안식과 평안을 주는 시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또 어떤 사람을 만나야할지 조용히 일러준다.
정호승의 시는 이렇게 읽는 맛과 느끼는 맛을 동시에 준다.
짪은 글이 주는 힘이 크다.
그만큼 글이나 말이 길면 헛소리가 많을 수밖에 없다.
나를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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