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H.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역사학계의 대표적 명저다. 그의 역사관이 포스트모던 역사학의 도전을 받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의 주장은 유효해 보인다. 부끄런 얘기지만 대학생 시절엔 이 책을 이해하지 못해 그냥 던져버렸다. 그러다 교육대학원에 들어가서야 다시 읽게 되었다. 그것도 사상사 교수님의 도움으로 근근히. 일반인들에게 쉽지 않은 책이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이 책이 영화 '변호인'을 통해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는 모양이다. 그것도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처럼 말이다.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검찰에 의해, 후자는 국방부에 의해 불온 서적으로 지정되었다는 점일뿐. 이 때문일까? 두 책은 스테디셀러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렇게 정부가 지지해주니 말이다. ㅎㅎ


영화 속 내용이지만 검찰은 왜 스스로 <역사란 무엇인가>를 스스로 분석하지 못하고 외부 전문가(?)의 자문을 구했을까? 이런 책이 요즘엔 어느 고등학생 필독서로 지정되 있기도 하다. 한때 불온 서적이기도 했고 서른이 넘어서도 이해하기 어려웠더 책이... 나의 무지함에 그리고 시대의 변화에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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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금요일이다.

몸은 비록 직장에 매여 있지만.

 

오늘 행복할 수 있는 것은

가진 것은 비록 적지만 그 적은 돈으로 책을 지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새책과 헌책을 골고루 섞어 샀다.

수필, 역사, 종교, 소설 등 종류도 다양히.

 

이제 가진 포인트를 다 소진하여 책 사는 데 약간의 어려움(?)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어떠랴!

그간 모아둔 책도 많고 없으면 없는대로 조금씩 구매하면 그만인 것을.

 

언제까지 내가 이 행복감을 누리며 살지 모르겠지만,

눈이 멀어 스스로 읽지 못하는 그날까지 읽는 즐거움을 누리며 살고 싶다.

 

젊어서는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살았다.

나이 먹으며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분야를 찾게 되니 그쪽에 더 집중하고 즐기는 것 같다.

나를 이것을 '행복'이라 부른다.

 

읽고 쓰는 재미로 요즘 내가 산다.

봄날은 내게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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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의 취지에는 맞지 않지만 그래도 참다참다 다분히 정치적인 글 하나를 올립니다. 이런 글을 원치 않으시면 그냥 나가시면 됩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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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 사전에서 검색해보면 '안보安保'를 '편안히 보전함'으로 정의하고 있다. 단어가 가지는 원래 의미가 이렇다는 뜻이다. 이를 조금만 더 확대 해석하면 안보는 국가나 국민이 편안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취지의 정치적 함의도 지닌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떤까? 흔히 '안보'라 하면 '북한으로부터의 안전'이라는 뜻으로만 전용해서 쓰지 않는가? 그것도 보수 우익이 마치 자신들이 점유한양 급할 때마다 가져다 붙이는 용어. 그래서 진보나 좌파는 안보 개념이 없는 사람들로 매도되기 일쑤다. 과연 그럴까?

 

안보가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국민과 국가를 지키자는 의미로 사용하는 데 반대할 이는 없는 것이다. 북한의 위협은 현실이고 또한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들의 도발은 계속되어 왔으니까. 그런데 이 안보만이 진정한 안보일까? 이번 세월호 사태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청와대 안보실장 김장수 씨는 말했다. 세월호 사태, 즉 국가 재난은 국가안보...실 소관이 아니라고. 이 말의 참뜻은 국가안보는 오로지 북한의 위협에만 해당된다는 뜻 아닐까? 국민을 편안히 보전하는 안보는 국가안보에 해당되지 않는다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안보의 뜻을 그들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분이 바로 국방부 장관과 국회의원을 거쳐 그네씨 바로 밑에서 근무하시는 장관급 안보실장님이시다. 이것이 한국의 고위 공직자의 의식 수준이다. 국민의 현실적 안위보다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국민 없는 안보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내 나라 국민을 지키지 못하는 안보라면 애당초 이 말은 폐기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적어도 사전적 의미는 버려야 할 것이다.

세월호 사태를 맞아 이제 우리의 '안보'의식에 전환점을 마련해야 한다. 북한의 위협만이 아니라 국민의 안위를 위협하는 모든 것을 '안보'로 규정해야 한다. 이것이 국민을 편안히 보전하자는 안보 원래의 의미를 되살리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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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읽는 얇은 동화책에서 때로 많은 것을 배운다. 5~600페이지가 넘는 두터운 책보다 깊은 감동과 찡한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얼마전에 읽은 <행복한 왕자>의 경우가 그렇다. 사실 이 동화의 저자 오스카와일드는 <행복한 왕자>를 통해 약한 자와 가난한 자를 배려하지 못하는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영국사회를 풍자적으 로 그린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작금의 한국 현실에 비춰 다른 시각으로 읽게 되었다.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모 후보의 아들이 한 발언으로 한때 사회가 시끄럽기도 했다. 그 발언의 핵심은 대통령에게 소리지르고 국무총리에게 물병 던지는 미개한 국민들이 미개한 나라를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어쩌면 그가 자라온 환경에서 보자면 그렇게도 보일 것이다. 다 해주겠다는 데 왜 저리 미친짓하는 건지 그는 이해 못할 것이다. 그런 경험도 없었고 엘리트 집안의 자제로 부족함 없이 자라왔을테니. 그런 그에게 돌을 던질 생각은 없다. 다만 그런 자식을 키운 아버지가 과연 한 나라의 수도를 책임질 수장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들따름이다. 아들과 시민은 별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없이 이성적으로 정신차리라는 이 땅의 보수 권력층, 그리고 그의 아들들. 아직 파이를 나눌 상황이 못되니 파이를 더 키워야 한다는 성장주의자들. 여기에 빌붙은 생각없는 듣보잡들. 다들 한패거리 아닌가. <행복한 왕자>를 읽자니 내 안으로 더운 눈물이 흐른다. 우리에게 이런 지도자는 없는가. 종교적으로야 예수님이 부처님이 계시지만 현실의 우리에게 위안을 줄 리더는 진정 없는가 말이다.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그 속에서 공주인양 하는 리더는 필요 없다. 그가 아무리 말해도 듣는 이 없는데 어찌 그에게 기대하겠는가. 기댈 어깨가 필요한 이들을 감싸 안는 그런 지도자가 필요하다. 마음이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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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헌책 구매의 맛은?

필요해서 사고자 했지만 새책은 너무 비싸 헌책으로 샀는데 새책이 왔다는 거! ㅎㅎ

에릭 홉스봄의 <역사론>이 바로 그 책이다.

20000만원 짜리를 거의 반값에 샀는데 새책이 와서 상당히 기분이 좋았다는.

이런 행운이 종종 있기를 빈다.

알라딘 고마워~~

헌책은 너무 낡지 않고, 낙서가 많지 않기만 바랄 뿐인데 오늘은 운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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