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테르부르크의 대가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책세상 / 200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그에 대해서 나같은 무지한 독자는 무엇을 알고있는가. 세상이 그에대해 영혼의 작가라한다. 그렇다면 그런가보다. 그같은 존재는 어느방면에서든 한 사람은 있어야 할 것같다. 나와는 좀 먼 얘기는 아닌가. 비정상적인 삶을 살았더랜다. 의례히 그런 치가 있기마련 아닌가...

어느 날 도스또옙스키의 소설이 보고 싶었다. 왜인지 모르겠다. 그의 글을 잘 납득하지 못하는 나는 험준하고 견고한 산에 둘러쌓여 빠져나갈 궁리를 하는 하나의 미물이랄까. 남아공화국의 쿳시가 나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표도르에게 <악령> <까라마조프가의 형제> <미성년>의 모티프를 준 네차예프사건의 네차예프가 나온다. 사사건건 표도르와 논쟁하고 그가 상실한 용기와 행동을 상기시키는 세르게이 네차예프, 문학계의 대가인 도스또옙스키가 작아뵌다.

손으로 만지면 대일듯도 싶은 도스또옙스키. 역시나 자의식이 지나치게 강한 그는 페테르부르크에 왔다. 의붓아들이 죽었으므로. 죽음의 이유가 모호한것을 안것은 온 후이다. 그는 글을 쓰려는 실낱같은 마음을 품고 아들의 죽음을 맞는다. 죽은 아들을 팔아서라도 글은 써야한다. 그것이 장인정신이고 아니고는 중요치않다. 결과운운하는것도 무겁지 않다. 그는 써야하고 쓰고싶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자신은 왜 사람을 미물다루듯하는 나폴레옹과 다른가 고민했었다. 도스또옙스키는 만물을 관장하는 하느님과 누가 더욱 교활한가를 내기하고 있는 것인가.

중요할듯한 문구가 보인다. 우리는 추락하는 순간 가장 강렬히 살아있다. 낙관과 비관은 종이 한 장 차이이다.. 이런 류인가.

작가가 표도르를 평가하고자 쓴 것은 아닐것이다. 정상과 비정상이란 모호함에 있어서도 그러하지만 훗날 그를 평하는 우리들처럼 지켜봐야 할것 아닌가. 무엇보다 그를 직적접인듯 만날수 있어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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