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나요, 내 인생
최갑수 글.사진 / 나무수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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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세상이 아직 말랑말랑하게 보이던 시절, 어른이 된다는 것은 막연함에 포위되는 일이다. 가물거리는 기억을 헤집어 떠올려보면 마흔이라는 나이는 이미 모든 것을 알아 챈 나이로 기억된다. 인생의 쓴맛과 단맛의 절묘한 배합을 깨달은 나이라고나 할까. 그땐 그렇게 커 보이기만 하고 웅장해 보이던 그곳은 인생의 근엄함이 깃든 지점이었다. 하지만 그 치열한 순간을 통과하는 지금에서야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에 멈췄다.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 말이다. 사실 인생에 정답이 없다하건만 불확실함은 인생의 경계를 끝없이 맴도는 회오리바람이다.




그렇다보니 누군가가 걸어 간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망설이게 되고 주저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모험보다는 안전함을, 새로움보다는 편안함을 짜여 진 틀에서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산다. 이상理想보다는 명분名分이 차곡차곡 포개지는 그 속에서 열정은 밀려난다. 혹자는 그럴지도 모른다. 인생은 그렇게 명분을 쌓다 허물기를 통해 살다 가는 것이라고. 지리멸렬하게 반복되는 삶의 던적스러움에 때론 명분도 야속하게 다가설 때도 있다. 한 움큼의 위로가 한 덩어리의 빵보다 필요할 때도 있더라는 말이다.




<잘 지내나요, 내 인생>은 딱 그만큼의 거리감과 밀접함에 선 이야기다. 저자 최갑수가 인생의 풍광을 찍어대고 그 속에 담긴 인생의 파노라마를 마감 시간에 쫓겨 글을 휘날릴 때, 우리는 다른 곳 다른 자리에서 삶에 쫓기고 지쳐가고 있었다. 모양은 달라도 그 속살은 어슷비슷하다. 잘 나가는 지인들의 승승장구하는 소식에 한없이 위축되다가도 모르핀처럼 따박따박 꼽혀 금세 바닥을 보이며 사라지는 월급날에 즐거워한다.




인생은 언제나 요령부득,

운명과 우연의 절묘한 조합.

약간의 행운과 수많은 불행이 합쳐져 만들어진 것.

그러니 잘 사는 비법 같은 게 있을 리 없지.

끝까지 가든지 아니면 기름이 떨어져 포기하든지.

(p.198)




인생은 패턴이다. 낯설거나 익숙하거나 혹은 멀거나 가깝다. 그리고 삶의 무게만큼 무너지는 새로움 또한 휘발성이 강하다. 그러나 기약 없는 희망은 나를 살게 하는 동인이 되는지 모른다. 치이고 베인 자리에 새살이 돋아나듯 희망은 등대처럼 영롱하다. 그것은 나를 위무하고 사그라진 에너지를 채워주는 충전재가 된다. 그래서 누군가의 위로가 마흔에 즈음한, 인생을 치열하게 달려온, 그들에게 맞춤한 공감의 울타리를 만들 터이다.




감성코드는 환경에 따라 변한다. 그 옛날 공자가 쓴 <논어>의 위정 편에 보면 마흔, 즉 불혹은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는 지점을 뜻한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의 그곳은 정반대의 대척점에 서 있는지 모르겠다. 아직 나아가야할 길이 많음에도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 수 없는 혼돈의 순간처럼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다가선다. 이럴 때 멀리서 날아든 반가운 소식 한 자락처럼 최갑수의 글은 메마른 감성을 돋우게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하는 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p.175)




최갑수의 글은 지나쳐 버린 감성의 조각들을 끄집어내어 공감하게 만든다. 그의 곳곳을 둘러 싼 주위의 사물을 분해하고 재해석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를 통해 따뜻함이 봄날 햇살처럼 아련하게 퍼져 오른다. 내가 하지 못한 일들, 가보지 못한 미지의 그곳을 동경하고 대리만족하게 만드는 그것은 인생이라는 고독한 순간을 모두 통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아님을 뼈저리게 인식했지만 그 아무것도 아닌 그곳을 채울 순간의 에너지를 채워야 한다. 가수 이석원이 쓴 <보통의 존재>마냥, 보통으로 산다는 것 어렵고도 또 어렵다. 그러나 인생은 판타스틱하다.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 후회하고 또 후회하는 삶을 반복한다할지라도 열정의 불씨를 지펴 올리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지치고 힘든 점 위에 올라 선 우리 모두를 향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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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1-11 0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쵸~
삶이 폭폭해 눈물겹다가도, 그렇게 그렇게 사는 게 인지상정이다 싶어 위로가 되기도 하죠.
아무것도 아닌 그곳을 채울 순간의 에너지라...좀 어려운 걸요~^^

穀雨(곡우) 2011-01-11 09:11   좋아요 0 | URL
나무꾼님, 늦은 새해 인사드립니다.
개인적인 일로 책도 뜸했고 무엇보다 심신이 뒤엉켜 바빴답니다.
사는게 그런가 봅니다. 채우고 가지려 무던히 노력해 얻는 순간,
그게 전부가 아니더라는, 그리고 채울 자리가 어마무지하게 남더라는...
결국 탐욕이 화근입니다.
올해는 욕망을 다스리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좋은 일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마녀고양이 2011-01-11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곡우님, 오늘 글 너무 좋은데요.. 입 안으로 가만히 되새기고 있습니다.
마흔이라는 나이, 그 이야기에 더욱 가만히 입 안에 물고 있게 되네요.

후회할지도 모르는 삶이지만, 그래도 열심히 올라설거라고 긍정하는 심상이 전 참 좋아요.
삶이란 그래야 하는거잖아요.

너무 오랜만에 서재에 나타나셔서, 새해 인사 늦었습니다.
새해에 건강하시고 즐거운 일 가득하시기 바랍니다.

穀雨(곡우) 2011-01-12 15:27   좋아요 0 | URL
이래저래 좀 바빴어요. 이제 여유를 더 가지고 리듬을 찾으려구요.
항상 제 글에 과분한 칭찬을 아낌없이 퍼 주시는 마녀고양이님...^^
올해는 기분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폰더씨의 나비효과 - 당신의 작은 날갯짓, 세상을 바꾸다 폰더씨 시리즈 3
앤디 앤드루스 지음, 권기대 옮김 / 베가북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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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위대한 폰더씨 이야기>는 앤디 앤드루스를 스타작가로 만든 책이다. 현실과 상상을 적절하게 배합하여 만든 완성도 높은 영상처럼 매혹적인 자기계발서다. 그는 폰더씨를 통해 인생의 희로애락을 선명하게 보여 주었으며, 어떻게 사는 것이 값진 삶인지에 대해 절실하게 보여 주었다. 폰더씨가 던져 주는 인생항로의 화두, 공명통처럼 울림이 컸다. 때론 실패 앞에서 좌절하고 믿음을 잃게 되는 인간의 불확실한 인생을 위대한 위인들의 눈과 마음을 통해 그 길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독자들의 비워진 마음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코드를 읽고 채운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넘쳐 나는 자기계발서의 내용이 대동소이하다할지라도 그 중 눈길을 유독 오래도록 붙들어 매는 까닭은 실체 없는 마음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기계발서는 기대가치에 비해 수명이 짧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읽고 감명 받고 실천하고 습관으로 굳히는 과정이 지난하기도 하겠지만 익숙해져 버린 자기합리화의 모순에 빠지는 자가당착으로 이끄는 믿음이 문제다. 별 것 있겠냐는 생각, 그 사고의 출발선이 좋은 글과 행동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엇비슷한 패턴의 소재, 진부한 스토리 전개, 상업성에 치우친 중복된 내용 또한 자기계발서를 기피하게 만드는 다른 요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고 알 수 있다고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다. 인간은 관계에 민감하다. 타자와의 관계, 그것이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중요한 동인이 되기 때문이다.  관계의 목적은 개별화된 삶을 포섭하고 자의식을 고양시켜 주는 기틀이 된다. 관계가 삶의 모든 방향을 선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관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다. 본성은 감정을 유도하고 상황을 판단하는 이성에 의해 움직인다. 실제 본성에 의해 주도되는 상황은 수없이 많은 관계를 끌어안는 결합물인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소소하게 지나치는 생각, 넘겨짚는 가벼운 행동의 파급효과나 영향력은 얼마나 될까? 중국 고비사막에서 펄럭인 나비의 가냘픈 몸짓이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이르러 허리케인으로 바뀐다는 믿기지 않는 효과, 나비효과다. 사소한 행동이 몰고 온 파장은 놀랍고 또 놀랍다. 이 책 <폰더씨의 나비효과>의 얼개가 바로 이것이다. 전작인 위대한 폰더씨 이야기에 소개되었던 미국 남북전쟁 당시 체인벌린의 강단한 행동으로 인해 역사를 움직이고 세상을 바꾸었다는 내용이 이 책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유연한 사고는 한 번도 가 닿지 못한 곳, 미지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마인드맵을 그려 나가듯 일련의 연결고리를 형성하는 삶의 그물망은 촘촘하기도 하며 막강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인간이 사회적 관계라는 명제를 떠올린다면 확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잊고 산다. 두려움 앞에서 주저하기도 하고 불확실 앞에서 신뢰를 상실한다. 믿음은 물에 취약한 박피의 종이처럼 한없이 가볍다. 그렇지만 용기와 희망은 믿음을 강철보다 단단하게 상황을 주도하는 등불이 되기도 한다. 조슈아 체인벌린이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원동력이자 엄청난 믿음의 에너지가 된 그것은 희망이다.

 

그러므로 폰더씨와 같은 자기계발서가 꾸준하게 읽히고 자극을 받게 되는 이유는 바로 믿음에 있다. 비록 상투적이고 피상적인 소재에 불과한 내용 일색이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옳은 것을 담고 바른 방향으로 이끈다. 되돌려 생각해 보면 마음이 흘러가는 길을 다스리는 것이 우선이다. 그 길 위에서 사소하지만 작은 행동, 그리고 실천하는 의지가 목표를 담아내는 조타수가 될 것이다.  그러하기에 <폰더씨의 나비효과>는 삶이라는 거대한 비밀을 푸는 방법을 보여 주는 가이드와 같다. 이 책에 숨겨진 키워드를 찾고 거머쥐다 보면 세상을 보는 눈이 한층 밝아질 것 같다. 이치를 적확하게 깨우치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능력, 바로 지혜를 터득한다면 인생에서 이 보다 더 값진 게 어디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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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6 0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16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0-12-16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계발서가 꾸준히 읽히는 것은, 믿음에도 있지만 바람에도 있는거 같아요.
미치겠는 현실이나 불만족스러운 자신을 무엇인가 채워주기 바라고, 복구시켜 주기 바라는.
힘들 때일수록 자기계발서에 손이 가잖아요. ㅠㅠ

나비 효과, 저 그거 절대 공감이예요. 아무 생각 없이 한마디했다가
일파만파 퍼져나갈 때, 그 당혹스러움이란.. ㅠㅠ.. 반성하고 또 반성하게 된답니다, 그럴 때는.

곡우님, 너무 추워요. 단디 무장하고 다니셔요.

穀雨(곡우) 2010-12-16 09:17   좋아요 0 | URL
바람이나 꿈이 살면 살수록 희박해져가는 현실이 고단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마고님 말씀처럼 충전제같은 느낌도 들고 말입니다.^^

겨울이 추워야 제 맛이라고들 하지만 몇해만에 온몸이 긴장하는 날씨네요.
어흐....춥다.....ㅋㅋㅋ

2010-12-24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7 1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 인생 최고의 명언 - 멋진 인생을 위한 15가지 지혜
알렉스 로비라 지음, 박선영 옮김 / 청림출판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만약 인생을 값지게 사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환경, 조건 등을 따져 봐야 될 테고 마음의 상태를 드려다 봐야 할 테다. 하지만 자신에게 닥친 인생의 역경과 세파를 극복하는 방법 혹은 자세는 반드시 일정한 나름의 틀을 만든다. 아직 가보지 못한 미래의 불확실한 범주에 해당하는 영역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그 틀은 견고해지거나 혹은 허물어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주어진 선택의 상황이 불확정적인 순간일수록 인간은 두려움에 빠지거나 불안해지고 막연해진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결국 마음의 문제라는 간결한 문제만 남게 된다. 마음은 실체는 없으되, 상황을 움직이는 강력한 구심점이 된다. 마음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 무엇인지 안다면 아마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은 든든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마음을 다스리고 치유하며 단련시키는 방법은 다양하게 공존한다. 그 중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인 위대한 인물들의 행적이나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이다. 때론 그것이 일화의 형태로 메시지의 형태인 명언으로 이어지고 연결되기도 한다. 한 번 쯤 명언에 대해 아무런 저항 없이 크게 공감한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지 싶다. 나는 명언을 남긴 역사적 가치의 위상보다 그 순간의 절실함 또는 삶을 바라보는 진정성에 눈길이 오래도록 머물곤 한다. 상황을 주도하는 힘, 주체적이며 능동적인 에너지가 그들을 위대하게 만든 모티브가 되었으리라. 그것을 우리는 지혜라고 부르며 삶을 추동하는 에너지라고 지칭한다. 현명함에 대해, 두려움을 이겨내는 용기에 대해, 자유로운 삶을 위해 지혜는 우리를 풍요롭게 한다.

 

이처럼 멋진 인생을 위해 우리는 위인들이 남긴 행적을 거듭 되살펴 보게 된다. 이러한 이유가 진부한 소재로 치부되는 이러한 류의 책을 일축시키는 내재된 힘이다. 이 책 <내 인생 최고의 명언> 또한 분명한 진리를 다룬다. 격언이나 명언이 퇴색되지 않는 이유가 실체적 경험을 통해 검증되고 공감되었기 때문이다. 저자 알렉스 로비라는 이러한 가치에 대해 고무적으로 작용하고 판단하였으며 그만의 프리즘을 통해 알고리즘을 분해하여 해석하여 놓았다.  위대한 선인들의 고민과 사색의 추출물에 대해 인생을 관조하는 거대한 공감에너지로 바꾸게 만드는 알렉스의 이 책은 강한 영감을 불어 넣어 주기에 충분하다. 지식정보화사회에 사는 현대인의 어지럽고 혼탁해진 마음을 정화시켜 주고 희석시켜 주는 것으로 최고의 명언은 참된 값어치 이상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인생을 멋지게 만드는 순간을 '태도(attitude)'에 함축시키고 있다. 좋은 태도가 좋은 운을 불러 모으고 멋진 인생을 사는 첩경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태도가 몸에 밴 사람들의 공통점에 대해 그는 9가지 습관으로 분류했다. 긍정적인 마음자세, 남의 탓 하지 않기, 실수로부터 배우기, 언제나 자신감, 생생하게 꿈꾸기, 잘 참고 잘 결단하기, 자발적인 의미부여,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기, 행복 전도사와 같은 자세를 가리킨다. 각각의 자세들은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보편적인 진실이다. 그것이 비록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글로, 소설로 쓰여졌다할지라도 명징한 진실을 향한 돋을새김처럼 되뇌고 반복되어도 변질되거나 오염되지 않는다. 태도는 곧 행동을 유발하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생각은 감정과 이성을  대변하는 관념이다. 풀이해서 보면 관념은 마음이다.

 

그러하기에 문제는 저자의 반듯한 주장처럼 자세와 태도를 만드는 생각, 즉 마음에 있다. 이 책을 구성하는 총 15장에 함축된 내용들의 목적이 바로 마음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역경을 극복하고 한계를 이겨내는 힘에 대해 일갈하며 강렬한 열망을 분출하고 에너지를 만드는 긍정력에 대해 논하는 배경 또한 마음을 세우는 것에 향한다. 불가능이 뭔지 몰랐기 때문에 그것을 할 수 있었다.(p.84, 앨버트 아인슈타인) 어렵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 아니다. 감히 시도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p.110, 루사우스 세네카) 가능한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불가능한 것을 재차 삼차 시도하는 것은 값진 일이다.(p.131, 헤르만 헤세)

 

마음은 때론 신념의 다른 모습이다. 신념은 인간이 가진 본질적 자유에 대해 존재감을 부여한다. 신념은 인간을 추동하는 에너지가 될 것이며 그 바탕에 사랑이 있어야 한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겨내며 인생을 경이롭게 만든다. 나는 이성의 힘보다 사랑의 힘을 더 신뢰한다. 사랑이 값진 이유는 삶을 윤택하게 하고 살아가는 것에 목적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순간을 위해 알렉스는 명석한 겸손과 감사의 마음을 가질 것을 주문한다. 지혜와 힘과 지식의 비밀은 겸손이다. (p.142, 어니스트 헤밍웨이) 부족한 것들에 대해 불만족스러워하는 것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가 없기 때문이다.(p.154, 다니엘 디포)

 

이 책의 전체적인 맥락에 의하면 인생을 사는 의미는 사랑으로 집약된다. 사랑은 다정함으로 겸손을 깨우고 겸손은 감사를 뒤따르게 한다. 이와 같은 긍정적인 감정의 연결고리는 행동이라는 틀을 갖추고 그 틀은 습관이 되어 인격이 될 것이다. 인격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 되며 태도를 만들게 됨은 분명하다. 이렇듯 인생에 대해 어떻게 살 것인가는 우리 모두의 숙명이다. 비단 이 책이 일러주는 방법에 대해 식상해 할지라도 자신만이 갈고 닦은 마음의 지도를 다듬고 겸허한 순간을 수용하는 진실한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두말할 나위 없다. 그렇지만 그들이 남긴 명언 한 마디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한 번 쯤은 읽을 가치가 높은 책임은 분명하다. 다른 계획들을 세우다가 지나가 버리는 것이 인생이다. (p.198, 존 레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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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2-09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긍정적인 마음자세, 남의 탓 하지 않기, 실수로부터 배우기, 언제나 자신감, 생생하게 꿈꾸기, 잘 참고 잘 결단하기, 자발적인 의미부여,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기, 행복 전도사" - 좋은 얘기 맞네요.
행복 전도사만 빼고. 저는 이상하게도 행복 전도를 대놓고 내세우면 위화감이 느껴져요.
왜 그럴까요? ^^

마음은 신념의 다른 모습. 행동도 그런거 같구요. 아마 행동이 더 그렇겠죠. 마음은 인식하는 거지만, 행동은 무의식까지 짬뽕되어 나도 모르게 본심이 나와버리는거니까. 신념이란거, 나도 모르게 형성되는 것도 많이 있잖아요.

곡우님, 눈이 왔어요. 좋은 날 되셔여!

穀雨(곡우) 2010-12-09 15:42   좋아요 0 | URL
마고님 말씀처럼 행복을 전한다는 것은 좋은 일인데,
위화감이 느껴지는 현상.....아이러니하죠...^^
아마 지나친 논리나 주장을 펴기 때문이 아닐까해요.
공감할 수 있는 틀, 나와 너를 인정하는 틀이 있어야 행복 또한
바로 설 수 있지 않을까해요.

아...제가 있는 곳은 눈이 귀한 곳이예요. 대신 바람이 세차지요.
어제 오늘 모공을 자극하는 바람에 혼났더랬지요...^^

2010-12-09 2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10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흐름을 읽는다는 것, 중요한 일이다. 상황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모티브가 되기 때문이다. 요즘 바쁜 것도 이유겠지만 숲과 나무를 혼동하는 우를 범하고 사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이 앞선다. 근래 무엇에 쫓기듯 마음이 편칠 못하다. 중심을 잡고 집중을 하여야 함에도 그러질 못한다. 빽빽하던 하루 하루가 밑천을 드러내서 일수도 있고 속살같이 흘러가는 시간의 현기증에 숨이 막혀서인지 모르겠다. 

책을 읽어도 마음의 지도가 그려지질 않는다. 난독증에 걸려 무한반복 재생하는 도돌이표처럼 나는 읽은 곳을 읽고 또 읽는다. 하지만 혼탁하게 흐려진 생각은 분탕질하기에 바쁘다. 여유가 절실하다. 바쁜 것이 반드시 생산적이지 못함을 절실하게 인식한다. 바쁘다는 간단하고 직접적인 이유, 알고 보면 허당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귀가 맞질 않고 삐꺽삐꺽대는 소리만 요란하다.  

불규칙적인 리듬과 불협화음으로 흐름은 깨어졌다. 나는 흐름을 에너지의 맥이라고 본다. 에너지가 생성되고 발현하는 기저에는 의식 속에 머무는 생각의 모임이 핵심이다. 에너지는 원하는 방향과 대개 일치한다. 그러나 원하는 것과 일치하지 못하는 혼동의 현상, 난감하다. 누구나 불안, 두려움, 무지, 의욕상실 등 네가티브한 상태일수록 이러한 현상은 빈번하게 발생한다. 

나는 표리부동한 현실의 반영처럼 에너지 또한 구부러진다고 믿는다. 구부러진 에너지는 원치 않는 곳에 정박하기도 하며 혼란이나 충돌은 가중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부정적인 에너지의 방출이 스트레스가 될 것이고 기의 운행을 어지럽히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부정적인 에너지의 흐름을 다스리는 방법이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뒤따른다. 인간의 존재와 행위 양식의 본질을 파헤친 기념비적 저서 호모 루덴스의 저자 요한 하위징아는 '놀이'에 있다고 했다. '놀이'가 삶을 풍요롭게 하고 충만하게 만드는 원형이 된다고 하였으며 모든 형태의 문화가 표방하는 공통된 형태가 바로 '놀이'로 상징된다고 한다. 결국 '놀이'가 삶의 결락된 부분을 메워주는 충전제로 인간을 외부적 저항이나 내부적 갈등으로부터 부드럽게 윤활해주는 역할을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생전 즐겨 읽었다는 제레미 리프킨의 신작 <공감의 시대>에 의하면 인간은 생물적 유전자코드에 사회적 인간으로 진화해 왔으며 관계의 접촉에 감정이 전이되고 공감의 틀을 만든다고 하였다. 아직 완독하지는 못하였으나, 공감의 큰 힘을 여실히 보여주는 상당히 재미있는 책이다. 실제 잘 알려진 심리적 상황을 공감이라는 변주에 맞춰 사실적인 현상과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풀이되어 있어 피로감이 없다.

 

나는 놀이와 공감이 주는 엄청난 효과를 잊고 살았던듯 하다. 놀이의 의미부여는 고착화된 관념에 의지하는지 모른다. 놀이에 대한 자본주의적인 사고가 흡착되어 다른 관념을 받아들일 여지가 없다. 놀이는 쓸모없는 낭비된 시간이 아님을 알면서도 은연중에 시간을 버린다는 이분법적인 사고 속에 갇힌다. 그러므로 놀이를 거창하거나 생산적인 것으로 격상할 필요도 없거니와 에너지의 흐름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하는 모든 활동을 의미하지 않을까 한다. 무엇이든 과하면 모자람만 못하다고 했다. 그것도 따지고 보면 기의 운행과 일맥상통한다.  

아울러 공감은 흐름을 고무시키고 강건하게 만들어 주는 구실을 한다. 나 스스로에 대한 공감, 서툴다. 불안의 근원은 자기를 믿지 못해서 생긴다고 본다. 자신을 믿는다면 불안은 적당한 긴장으로 바뀔 것이고 그것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모으는 또 다른 방법이 될테다. 자신을 믿는다는 것, 어렵다. 과연 나는 나 자신을 믿는가?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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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소셜 네트워크 전문가들은 지금의 시대를 인간중심의 세계라고 일컫는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인간이 이룩한 문명의 시간 중 가장 번영한 최고의 황금기를 구가하는 중이다. 전 세계를 하나로 묶고 발생 가능한 정보의 획득과정이 만천하에 오픈된 사회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문화적 변화를 추동하는 동인이 되었으며 더 나아가 정치적 지각 판까지 흔들어 바꾸기는 계기가 되었다. 바야흐로 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뉴욕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지구 반대편에서 생생하게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사건에 대한 각양각색의 반응이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세상이다. 대개 팩트에 대한 평가는 가치판단의 문제다. 가치를 구성하는 요인은 목적의식을 설정하고 자아의 기준점을 관념이라는 거름망을 통해 개별화된다. 이러한 가치판단의 문제는 철학과 깊은 연관이 있다. 철학은 인간이 집단화되고 사회를 구성하며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게 될 무렵부터 긴밀한 상관관계를 맺어 왔다. 그것은 가치관으로, 삶의 준거점으로 인간을 보다 나은 세상으로 인도하는 시금석이 되어 왔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관, 즉 관념의 틀은 기술의 발달과는 별개로 변화의 속도에 둔감하다. 사회의 분화적 발달의 속도와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며 근래에 와서야 개인의 권리와 자유, 행복, 평등에 대한 가치판단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 또한 상대적 차별과 권리 상호간의 충돌에 대한 내재화된 문제를 잉태하고 있다. 토마스 홉스는 자연 상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판단하고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야지 시민사회로 이행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반면 존 로크는 인간은 모두 평등하며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정은 자유이며 이러한 상태에 대한 타자와의 충돌, 즉 불편한 상태 혹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정부에게 권리를 양도하여 국가를 창설하였다는 사회계약론으로 요약되는 그의 사상은 중세철학의 위대한 업적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가 다분화되고 가치충돌에 대한 문제가 다양화되면서 일차적인 기준점으로 모든 문제를 수용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산업혁명을 거치고 인쇄술의 발달로 교육의 평준화로 인해 지식의 보편화는 그 자신의 권리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음도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철학적인 접근, 미시적인 윤리의 보편화에 대한 판단은 유동적인 상황을 보편타당한 가치로 바꾸는 터전이 됨은 당연한 이치겠다. 마이클 샌던이 정의를 논하고 다시 도덕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문제의 출발선이 바로 개별화된 판단의 문제를 인식가능하고 공감할 수 있는 그것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이다. 그는 이미 정의에 대해 불편한 환부를 드러내며 우리를 향해 핏대를 세웠다.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그는 옳은 일은 하는 것이라고 했다. 옳은 일은 좋은 일에 선행하며 무연고적 자아, 즉 자율의지의 주체만이 인간을 감각적 존재보다 더 높은 존재로 격상시켜 준다고 했다.

 

마이클 샌던의 확고한 믿음의 원천은 옳은 일에 있다. 그의 논점은 임마뉴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의 핵심가치인 인간중심적인 사고를 지향한다. 공리주의자들의 쾌락에 근거한 행복에 대한 오류를 수정하고 점검하는 방향틀로 그는 칸트를 택했다. 목적에 대한 견고한 신념, 그것은 윤리를 일으켜 세우고 이 시대의 딜레마를 무찌르는 힘이 된다. 기실 자유주의에 대한 접근은 앞서 언급한 존 로크의 사회계약론의 이념처럼 정부에 대한 역할의 중요성을 내포하고 있다. 정부는 모든 권리를 이양 받아 개개인의 권리형평에 맞게 적용하여야 한다. 하지만 마이클 샌던이 이 책 <왜 도덕인가?>의 1부에서 언급한 동성애자, 낙태에 대한 가치충돌의 문제에서 볼 수 있듯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옳다는 관념의 총합은 인간의 도덕적 판단의 튼실한 자원이 되며 나아가 보편타당한 정치의 틀을 이루는 요소가 된다는 믿음이다.

 

그가 자본주의에 점령당한 인간 본성의 문제를 푸는 키워드로 철학과 윤리의 카드를 꺼내든 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의 창이기 때문이다. 속임수가 횡행하고 무관용이 판을 치는 이기적인 행동을 치환하는 방편이 될 것이다.  마이클 샌던이 주장하는 철학의 문제는 비단 미국사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미 글로벌화되고 웹 2.0시대를 사는 우리 사회에 그의 명징한 통념은 화두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의 전작 <정의란 무엇인가>의 문제와 연결되는 도덕성 결여의 시대를 사는 우리의 현재 위치를 제대로 보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준다. 물론 철학은 고민과 고민의 시간이 응집된 가치의 총체다. 공감의 문제와 밀접하다. 공감은 역차별이나 상대적 반사이익을 옳은 것으로 유지하는 근거가 된다.

 

이처럼 마이클 샌던이 던지는 이 시대의 화두는 우리 모두의 문제다. 자신의 권익과 자유의 근원적인 뿌리가 되는 윤리에 대한 진중한 문제다. 우리 사회가 정의와 윤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 또한 불편한 상태가 지속되기 때문인지 모른다. 누구에게나 인식 타당한 가치의 얼개를 구축하는 사회적 합의의 출발점에 바로 정의와 윤리가 존재한다. 이것은 완전한 상태의 이상理想, 그 너머가 아닌 현실의 내재된 이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치열한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시도가 될 것이며 다원주의를 극복하는 돌파구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윤리는 존재의 판단이 아닌 현상을 이해하는 목적이 될 것이며 인간을 한 차원 높은 상태로 이끄는 정신적 진화의 도화선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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