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미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그 시절 주말의 명화는 건조한 일상에 나에겐 소금처럼 위안이 되곤 했다. 할리우드식 꿈을 꾸고 희망에 달 떠 어디론가 하염없이 부유하곤 했다.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해 내고 언제나 정의는 굴복하지 않고 승리한다는 방정식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은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마 한 동안은 그 속에 도취되어 빠져 들었지 싶다. 지금 생각해보면 늘어 나 헤어진 티셔츠처럼 유치하기 짝이 없는 희석된 감동이지만 나는 크리스토퍼 리브의 강인한 체력과 시공을 초월하는 초능력을 흠모했다. 그것만 있으면 모든 게 이루어질 것 같고 우주 끝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가 한 손에 잡힐 것 같은 무모한 공상, 아니 몽상이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나는 슈퍼맨을 사랑했다. 슈퍼맨은 악당을 때려잡는 영웅중의 영웅이다. 다른 모든 영웅들을 일거에 제압하고도 남을 우월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그가 말도 안 되는 비교에, "슈퍼맨과 배트맨이 싸우면 누가 이겨요?"라는, 허덕일 때도 나는 슈퍼맨이 좋았다. 사람 좋은 서글서글한 눈빛으로 우리의 여주인공 마고 키더가 분한 로이스 레인에게 보내는 강렬한 신호, 애간장을 녹였다. 로키산맥이 달리고 바람을 잠재우던 슈퍼맨의 비행은 황홀했다. 엔딩의 허무함을 위무할 만큼. 

슈퍼맨이 아니었더라도 인간은 한계를 참지 못하는 유별난 종족이다. 구병모가 쓴 <아가미>와 굳이 아무런 역학관계가 없는 슈퍼맨을 끌어 온 것은 인간이 가진 한계, 그 속에 녹아 든 다양한 감각의 흐름이 맞물렸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인간이 진화를 거듭하고 변신을 또 다시 거듭한다면 아가미가 솟아나고 눈부신 무지갯빛 지느러미가 생기지 말란 법이 없으니 말이다. 어차피 인간의 기원은 물에서 나왔으니 부인할 수는 없다. 횡격막을 사이로 나란히 한 쌍의 폐포에 덮인 공기호흡을 위한 유일한 장치에 더 해 모세혈관을 통해 용해된 산소를 채집하는 아가미가 함께 공존한다면 포세이돈의 축복일까 아니면 저주일까.

상상은 의외로 가까운 거리에서 퍼져 나간다. 구병모의 <아가미>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모든 연결고리를 가동하면 일파만파로 퍼지는 감각은 동심원처럼 끝도 없지 싶다. 그미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가 무엇이 되었든 단련되고 고착된 시각의 거름망을 통해 자극은 시작된다. 하지만 결국 잃어버린 것, 상실의 순간을 회고하게 되리라는 공통점에 정박한다. 곤의 날렵하고 세련된 유영을 따라 물살의 저항에 감정을 끼어 맞추다 보면 매몰된 감정의 결락된 순간과 조우한다는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무언가를 버리고 또 버리기 위해서 산다. 갖기 위해 버리는 것인지 버리기 위해 갖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만큼 감정도 과소비되어 빈곤에 허덕이는지 모른다. 아픔도 슬픔도 기쁨도 모두 제 것 그대로의 그 날것의 상태를 상실했다. 날 선 세상에 치이고 넘어지다 보니 무엇이 진실인지 안다는 것이 오히려 두렵고 현실을 담보 잡힌 비현실이 판치는 세상이다. 그러니 아가미쯤 있다고 대수겠는가. 그 아가미를 통해 저 푸른 대양으로 부여잡지 못한 진실과 마주한다면 그 시절 내가 꿈꾸었던 슈퍼맨에 대한 환상과 무엇이 다를까.

애석하게도 현실은 냉혹하다. 짝이 맞지 않는 의자를 가운데 두고 춤을 추다 앉지 못하면 기회는 박탈당하고 추락으로 점철되는 세상의 이면에 도사린 날카롭게 뻗은 아픔의 촉수를 너무도 잘 안다. 실제 곤의 아픔은 처절한 빈곤의 상처가 발화한 그 시점에서라는 설정도 모두가 수긍할 감정의 고리를 낚아챘음 이다. 그러므로 곤의 수중생물로의 변신 내지는 회귀도 충격에 따른 현상을 극복할 소망이다. 그와 매개된 모든 이들이 또 다른 아픔과 상실을 반복하는 동안 응집된 감정의 편린은 애환이었다. 공유하는 자의 맹목적인 질투는 어색하지 않다. 그것이 사랑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가르쳐 주어서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강하도, 노인도, 강하의 어머니 이녕도 모두 물결이 쓸려간 뒤틀린 삶 속에서 아파했다. 그들의 아픔은 곧 곤을 향한 바람이었다. 던적스럽고 비루한 삶에 대한 실낱같은 바람.

곤이 품은 아픔의 지도를 관찰하는 역할을 자청하고 나선 숙달된 안내자 해류의 간결하고 건조한 태도가 없었다면 그저 그런 아가미를 단 한 남자의 망상에 지나지 않았을 테다. 해류가 가진 물속처럼 템포가 느려지고 굴절된 세상을 곤의 비현실적인 신비로움이 더해져 현실의 바람으로 변신할 추동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해류의 글자 그대로의 뜻처럼 시간도 공간도 모두 흐른다. 저항의 순간을 극복하는 것은 개별화된 몫이고 원죄에 가깝다. 그렇지만 나약한 현실을 거꾸로 돌려 세우는 힘은 스스로에게 내재된 능력이다.

아가미를 통해 숨을 쉬고 미끈거리도록 유영하는 공상의 시간을 선물한 구병모의 글은 기발하다. 식어 빠진 사랑이야기도 무미건조해 지루하기만한 불륜이야기도 <아가미> 앞에서 맥없이 무너지는 이유는 행간과 행간에 숨은 희망이 오롯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강렬한 에너지다. 전작 <위저드 베이커리>로 활자의 마술을 부리던 그녀의 언어가 다시 <아가미>를 통해 폐부 깊숙이 찔러 오는 심해의 아득한 물결처럼 그 맛은, 알싸함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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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4-26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주드님의 서재에서 바다 밑을 걷겠다는 문구를 읽었어요.
아가미에 대한 페이퍼를, 푸른 대양으로 뻗어나가려는 이야기를, 그리고 너무나 순수했던 슈퍼맨을 다시 회상하니
바다 밑에서 자신을 날것 그대로 마주치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정녕 함께하며 그러면서도 '나'를 바라볼 수는 없는걸까요?
아..... 저두 이 책 읽구 싶어요!

穀雨(곡우) 2011-04-27 08:54   좋아요 0 | URL
금방 읽히는 책입니다. 문고판으로 200페이지가 조금 넘으니 금세 바닥이 드러날거예요.
너무 빨리 도착한 끝자락만큼 밀려 오는 것도 많을 듯......^^

양철나무꾼 2011-04-27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위저드베이커리가 참 좋았어요.
아가미는 뭐 읽지 않았지만, 아들의 필독서여서 언젠간 곁다리로 읽게 되겠지만요.
님의 리뷰만으로도 영화 '그랑블루'가 생각나는 것이 알싸하고 짭쪼름한걸요~^^

穀雨(곡우) 2011-04-28 14:11   좋아요 0 | URL
맞네요. 그랑블루가 어찌 그렇게 안 떠오르던지...^^
그 영화...포스터만으로도 멋졌어요.
 

아이는 이제 세상에 난 지 오늘로써 꼭 한달하고 열흘이 흘렀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살이 차오르고 줄어드는 배냇짓만큼 허공을 맴돌던 눈짓이 서로를 향해 겹쳐지곤 합니다. 무엇이 그리도 신기하고 또 신기한 지 가뭇없이 초점을 맞추는 그 검은 눈망울에서 무한한 생명의 신비로움을 새삼 느껴 봅니다.

비록 밤낮으로 안아달라는 제법 매운 울음 신호를 보내 오지만 품에 안겨 까무룩 잠이 드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순하디 순한 천사와 같습니다. 느즈막에 온 이 아이를 은혜 '은'에 빛낼 '서'를 붙여 부르기로 했습니다. 여러 가지 고운 이름이 물망에 올랐으나 제 언니의 이름인 은솔에 맞춰 부르기 쉽고 예쁜 이름이라 여겨 흔쾌히 지어 불렀습니다. 아직 입에 붙질 않아 제 언니의 이름과 혼동해서 부르기도 하지만 이제사 부족했던 나머지를 채운 기분입니다.




 

이 아이를 보면서 위로 두 아이의 그 잊힌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 갑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잘 자던 아이가 갑작스럽게 자지러질 듯 울어 대는 통에 응급실로 뛰어 날랐지만 아무것도 아니더라는 황망함에 안도하던 기억들이 새록새록합니다. 아무래도 처음이여서 영아산통이겠거니 하는 지레짐작이 낳았던 결과지 싶습니다. 아이가 아프면 마음이 찢어진다는 말,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무럭무럭 건강하게 잘 커 주었으니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세 아이를 키운다는 것, 말처럼 쉽지만은 않겠지만 아이들이 있어 미처 몰랐던 행복과 마주한다는 것은 엄청난 기쁨입니다. 때론 지치고 힘들겠지만 아이가 도약해 가는 과정을 지켜 보고 응원하는 일은 정말이지 소중하고 설레는 시간들의 연속입니다. 맑디 맑은 웃음 한 소끔이면 육아로 지친 고단한 몸은 새로운 활력에너지로 넘쳐 흐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행복의 터전은 아내의 인내와 사랑이 없었다면 불가능할 일임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p.s) 갑자기 생각 난 마녀고양이님의 부탁, 이름 괜찮은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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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도 고모가 됩니다*^^*
    from 즐겁게~재밌게~ 2011-04-21 13:05 
    곡우님네 막둥이 은서~부르기도 좋고, 나이들어도 우아하고, 언니랑 돌림자도 맞으니 정말 이쁜 이름이네요~ 심사숙고하셨으니 아이도 잘 건강하게 클겁니다~ 저희 남동생네도 부부가 머리터지게 공부하더니 여러가지 이름중에 골라달라고조언을부탁하더군요~ 한문공부 좀 하셨다는 저희 큰아버지까지 동원해서 사주팔자에다가 획수까지 세어보고@@;또 아무리 뜻이 좋아도 괜히 정안가는 발음이 있지 않습니까? 저랑 엄마도 좀 참견했습니다ㅋ엄청 고민해서 결정된 쌍둥이들 이름입니다
 
 
양철나무꾼 2011-04-21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아내 분을 업고 다니셔야겠군요.
저는 요즘 주변에서 아기들을 보면 그렇게 예뻐보일 수가 없어요.
하지만 누가 제게 안겨주면, 저희 아들 키웠던 건 다 까먹고 말이죠, 어쩔 줄 몰라해요.
은서, 이름 참 예쁘네요.
제 성과 이름이 한글자씩 겹쳐요~^^

穀雨(곡우) 2011-04-21 09:20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저두 그랬어요. 처음으로 건네 주는 데 어떻게 안았지하는 난감함....^^
목욕할 때도 불안하다고 자지러지는데, 이젠 제법 적응을 했는지 거뜬하답니다.
아, 저도 아내를 업고 다니고 싶지만 크윽.....무너집니다...ㅋㅋ

blanca 2011-04-21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서, 너무 이쁜 이름이네요. 아가도 너무 이쁘고. 세아이.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실 것 같아요.

穀雨(곡우) 2011-04-21 10:40   좋아요 0 | URL
ㅎㅎㅎ 행복해지는만큼 웃음소리는 더 올라가지만 반면 주름살도 더 더 더 짙어집니다.ㅋㅋ

마녀고양이 2011-04-23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웃잖아요. 저렇게 작은데, 저 입가 좀 봐.
어쩜 좋아요, 너무 이뻐요. 저렇게 편안한 얼굴이라니.

은서, 너무 이쁜 이름이예요. 은혜를 빛내다, 참 좋아요.
곡우님.... 요즘 따님 보시는 낙에 쏠쏠하시겠어요, 순하기까지 하다니!

穀雨(곡우) 2011-04-25 10:52   좋아요 0 | URL
웃는 사진, 순간포착이었지만 깜놀했다는...^^
잠이 너무 너무 고프지만...그래도 좋아요...ㅋㅋ
감사합니다. 마고님...^^

감은빛 2011-04-28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아기가 너무 예뻐요!
세 아이들 모두 건강하게 잘 자라길 바랍니다.

저도 조금 전에 잠결에 뒤척이는 아이들 이불 덮어주었는데,
너무 예뻐서 어쩔줄을 모르겠더라구요. ^^

穀雨(곡우) 2011-04-28 14:14   좋아요 0 | URL
ㅎㅎㅎ 고슴도치 자식자랑입니다.^^
막내의 웃는 사진을 혼자보기 아까워 올리다 보니 다른 아이들도 밟히고 해서....ㅋㅋ
감은빛님은 아마 저 보다 훨씬 잘하실겁니다. 감사합니다.^^
 

 

장애障碍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편하거나 곤란한 경우를 말한다. 엄밀히 말해서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전적 정의에 불과하다. 실제 장애가 있다는 것, 그 존재만으로도 편견에 노출되는 것이 현실이다. 장애는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다르다는 잣대에서 비롯되는 관념이다. 정상이라는 생물학적 보편성이 장애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겠으나, 그 대가는 가혹하고 혹독하다. 

나는 장애의 불편이 누구에게나 존재한다고 본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경계에서 우리는, 정상인이라고 하는,  완벽할 수는 없다. 마음의 왜곡, 더 큰 장애다. 단지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무관심으로 재단한다면 이 또한 장애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오히려 정신에 병이 들면 그 위험성은 시한폭탄처럼 위험하다. 사람이 모두 똑같은 인성을 가지고 태어날 수는 없지만 몰 인격화되는 현상은 병적인 성공집착현상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성공의 도식을 분해해 보면 경쟁은 그림자처럼 엉겨 붙는다. 경쟁과 성공의 함의는 물질과 결합하고 빗나간 명예와 권력을 생산한다. 따지고 보면 정상인으로 태어났더라도 가난의 굴레를 벗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영원한 루저로 낙인찍는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은 보편적 가치문제다. 읽혀지고 쓰인 가치가 아닌 마음 속 깊이 공명하는 삶에 대한 윤리 항상성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성공에 뒤쳐져 절망하고 좌절하고 패자로 따돌림 되어 고귀한 목숨을 불태우는 기이한 현상이 자고 일어나면 발생하는 섬뜩한 나라,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 시큼해진다.

긴장은 해소되지 못하고 관용은 자취를 감추는 공격적 성향이 지배하는 갈등사회를 유발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누군가의 약점을 이용하고 악착같이 물고 흔드는 폭력성은 긴장이 가르친 필연의 결과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사회는 균형을 맞추어가는 힘, 에너지는 반드시 존재한다.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 수위에 올라 있는 마이클 샌든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보면 이해 가능하다. 책의 내용이 얼마나 좋은지는 차치하고라도 잃어버린 방향 감을 찾고자하는 절실함이 그랬을 테고 그것으로 인해 삶의 나침반이 되는 계기가 될 것임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스스로의 의지로 간극을 메워주는 자정작용이 장애를 극복하는 그들의 노력과 전혀 다르지 않다. 단지 불편하다는 상태는 그들에게 시간과 공간을 더 내어 주고 이에 앞서 동등한 시선을 담은 신호를 보내어 준다면 함께 사는 사회의 미덕을 절로 생겨난다. 때마침 4월 20일이 24절기 중 청명과 입하의 사이에 곡우가 있는 것도 엇비슷한 관념을 지니고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미친다. 곡우는 윤택하고 촉촉한 봄비가 대지를 적시는 고마운 하늘과 땅과 화합하는 시간임을 상기한다면 장애 또한 무엇이 다르겠는가.

자연이 주는 고마움이 절실한 이 때, 어쭙잖은 생각 한 꼭지나마 보태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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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되었습니다 - 초보 아빠의 행복한 육아 일기
신동섭 지음 / 나무수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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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임신, 출산, 육아는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아이를 가졌을 때의 설렘, 기쁨, 두려움, 막막함이 교차되는 상황은 정의할 수 없는 자연스런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이 모든 우려를 종식하는 무엇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거룩하고 찬란한 사랑이라고 믿습니다. 아이와 교감하고 밀고 당기기의 시간을 시나브로 통과하다 보면 그 어떤 진귀하고 값진 것보다 귀중한 사랑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키워낸다는 행위의 정체는 8할이 인고의 시간을 요구합니다. 참고 견디고 기다려 주기의 미학을 새롭게 배워나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부모는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지워진 기억의 흔적을 복구하고 어떻게 자랐는지를 이해하게 되는 겸허의 가치에 눈뜨게 된다는 것입니다. 역시 아이를 낳고 길러내 보아야 진정한 부모가 된다는 말씀은 틀림이 없습니다.

물론 험난하고 희생의 시간만이 기다리지 않음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마른 논에 물들어 갈 때와 제 자식 입에 밥 들어 갈 때처럼 아이가 쑥쑥 자라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놀라운 시간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뜻하지 않은 순간에 아이의 생글생글한 미소, 조합되지 못한 단어들 속에서 터져 나오는 '엄마', '아빠'의 지칭은 세상을 다 가진 기쁨과 비할 바가 못 됩니다. 단순한 행위의 모둠이 치열한 생존의 현장을 뚫고 나갈 힘을 그 속에서 보았을 부모로서의 기쁨이 무한히 클 테니 말입니다.

<아빠가 되었습니다>는 조금은 다른 소소하거나 투박한 아빠가 쓴 육아기록입니다. 주양육자가 아빠라는 합의나 선택이 사회적 인식을 허물기에 쉽지 않았음에도 누구보다 훌륭하게 아이를 키워낸 배울 점이 많은 에피소드입니다. 실제 아이를 계획하고 낳아 기를 때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 즉 경제적 저울대에 올라서서 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러한 불편한 진실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경제적, 사회적 상황을 제거할 수 없는 이유가 있으며 아슬아슬한 위기의식이 도사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삶의 무게중심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를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행복의 값어치는 물질과 교환할 수 없는 가치명제를 떠올린다면 피할 수 없는 진실이겠지요. 그러니 아이를 하나, 둘 낳아 기른다는 것의 경제적 무게보다 자녀를 늘려갈수록 기울기의 중심 추는 행복의 가치 쪽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간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말입니다. 그러므로 다자녀를 가진 부모들에게 경제적 문제를 상쇄하고도 남을 가치가 있는지를 묻는다면 그것은 (경제적)가치의 문제가 아닌 (행복) 당위의 문제라고 할 것입니다. 저 또한 세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불안한 상황이 그려지지 않는다면 거짓이겠지만 아이를 키우는 것에 그것이 차지하는 비중은 조금 불편한 정도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조금 더 나누고 무게를 줄이게 되며 신동섭 작가가 말한 타고난 아빠놀이터로서의 역할에 보다 더 충실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삶에서 향유할 수 있는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깨닫게 됩니다. 시쳇말로 철이 든다는 것이겠지요.

그런 관점에서 작가가 경험한 문제를 되새겨 본다면 통과해 본 자만이 공유할 수 있는 안도감이라는 단단한 연대의식이 배어 있습니다. 기실 저의 부모세대들과는 달리 지금은 아이를 돌보는 행위에 대해 지나친 관심과 집착을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비싸고 값어치가 나가는 육아용품을 선호하게 되고 아이를 위험에서 격리시키려는 노력을 더 기울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관심이 지나쳐서 나쁠 것은 없지만 때로는 그것이 독이 되는 경우가 있음을 은지아빠(지은이)도 그렇고 제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경험해 보게 하는 도전적 상황이 중요합니다.

알면서도 애지중지하게 되는 것은 눈에 넣어도 아플지 않을 만큼 소중한 아이이기 때문이겠지요. 애면글면 속을 끓이고 애간장을 녹이는 시간을 참고 견뎌내는 것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아이가 주는 사랑의 에너지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관심의 단추를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며 집착처럼 보이게 만드는 이유이겠지만 사실은 불안해서 입니다. 이 책에도 소개되어 있지만 아이가 아프거나 놀랬거나 삐뚤어진 행동을 보일 때면 난감하기도 하겠거니와 전문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조금만 울고 기력 없어 보이면 병원으로 내달리게 되고 인위적인 보호막에 가두는 고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 아프고 코 흘리더라도 자연 치유과정, 면역력을 키워나가는 힘을 키워줘야 함에도 오염된 환경으로 인해 위험에 노출이 증가한 상황을 고려하면 쉽게 물리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시간이 절로 해결해 주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육아의 경험을 통해 아이의 순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잡아내는 사람은 부모이며 탁월한 전문가입니다. 저는 은지아빠가 쓴 이 글을 통해 이제 제법 자라 제 목소리가 커진 두 아이를 길러 낸 순간과 지금 새록새록 살이 차오르는 아이를 함께 보며 공감의 몸짓을 나누었습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아이를 통해 경험한 벅찬 감동의 순간보다 아빠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 했는가에 더 마음이 머물게 되었습니다. 은지아빠가 주양육자가 되고 은지엄마가 조력자가 되어 손발이 맞는 협업플레이를 펼쳐 나가는 동안 저는 무엇을 했을까하는 반성의 목소리와 피할 수 없는 대면식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남들보다 낫다는 기준에 안도되고 고취되어 이만하면 되겠지 라는 자기합리화를 방패삼아  현실의 상황을 외면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부모의 무관심, 특히 아빠의 비협조가 육아의 고통을 더욱 왜곡되고 처절하게 만드는 것임을 알면서 말입니다. 반성하고 또 반성합니다.

언제나 아이가 제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 믿지 않지만 믿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인가 봅니다. 아빠를 향해 두 팔 벌려 온몸을 날려 기대오는 아이들, 신뢰가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온전히 상대를 믿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 테니. 이 책을 쓴 은지, 민수 아빠는 보편적인 아빠들이 경험하지 못한 순간의 달콤함을 온몸으로 체득했을 것입니다. 아이를 통해 겸손을 배우게 되고 바름에 눈 뜨게 되는 것도 우리는 아이를 지혜롭고 건강한 아이로 키워내고 싶은 본능이 있기 때문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감성 따뜻한 이러한 책이 쪼개지고 분화된 현대사회의 가치판단의 왜곡현상을 바로 잡아 줄 윤활유가 되리라 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은지와 민수의 해맑음, 보는 이를 절로 상쾌하게 하며 그 너머의 부모를 상상하게 만듭니다. 

 

엄마의 뇌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남자든 여자든 보살핌이라는
직접 경험을 통해
양육에 적합한 뇌로 변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이 양육자를
더 용감하고 똑똑하게 만든다.
-p.265, 아빠로 거듭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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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1-04-20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큰 애가 3개월이었을 때, 육아휴직(무급)을 받아서 6달동안 아기를 키웠습니다.
그때 주위에서 육아일기를 써보면 어떠냐고 해서, 몇번 끄적거린 게 있는데,
육아일기란게 쉬운게 아니더라구요.
아기와 함께 보낸 시간들.
정말 힘들었지만 또 그만큼 재미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穀雨(곡우) 2011-04-20 16:24   좋아요 0 | URL
완전 소중한 경험하셨겠군요. 저두 끄적이다만 기록들이 여기저기...ㅋㅋ
예전에 싸이가 유행할때 사진도 업뎃하고 글도 남기고 했는데....
정말 쉽지 않더군요....
 

소설읽기에 빠진 요즘이다. 밤 늦게 찾아 든 적막의 시간을 오롯이 소비했다. 하지만 읽어 내는 속도에 비해 쓰기는 시원찮다. 눈으로 가둔 것이 많아서일테고, 선명하게 접붙지 못한 생각의 얄팍함이다. 어느 님의 포스팅처럼 설익은 글은 젠체하거나 알은체하는 글로 공해를 유발할테니 말이다.  

이럴 때 일수록 나는 읽기에 더 매진한다. 읽는 것에 대한 목적이 무엇이든 읽다보면 읽다에 스민 가치, 공감한다에 맞닿는다. 공감은 때론 진한 커피향처럼 그윽하기도 하고 신선한 과즙처럼 탄성을 자아내곤 한다. 최근 몰아 읽은 작가들의 향연이 적확하게 그 상황을 재연했다. 

<위저리 베이커리>로 유명짜한 구병모 작가의 신간이다. 아가미가 소생한 한 남자의 삶을 꿈꾸듯 뒤쫓으며 암울한 현실과 조화롭게 버무린 내공이 전해오는 작품이다. 그녀가 쓴 글에는 생활인의 아쉬움과 현실의 차가움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더욱 현실적이게 도드라지게 한 것이 이 작품의 고갱이다. <아가미>를 통해 실재와 희망의 대척점을 발견했다. 청구하지 못한 현실의 가혹함, 궁지에 몰린 아픔의 적체로 변신을 거듭한 결과, 아가미가 자라고 비늘이 돋은게 아닐까? 결과야 어떻든 퇴화된 유전자의 기억이 두 개의 호흡기를 부여하는 돌연변이로 바꾸었더라도 그것이 위안이 되기도 할지 모르겠다.
 


정유정, 그녀가 사고를 칠 것이라 감은 있었지만 이렇게나 단시간에 원투펀치를 날릴 줄 몰랐다. 그녀의 전작 <내 심장을 쏴라>의 폭풍같은 흡입력보다 몇 단계 격상한 메가톤급이다. 젊은 영혼에게 창공을 훨훨 나는 희망을 <내 심장을 쏴라>에서 발산했다면 <7년의 밤>은 오밀조밀하게 엮인 스도쿠의 치밀함처럼 인간의 악마적 본성을 몽치로 내리치듯 강하게 날린다. 확연하게 변신한 그녀의 이야기에 정말 시간의 분초가 쏜살같이 스르륵 지나간다. 제 아무리 전문가의 경험과 확증을 통해 이 글을 집필했다고 하지만 그녀의 박학다식한 지식의 카니발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편견을 한 방에 그로기시켜 버린 그녀의 이야기, 대단하다는 수식어 외에는 달리 형용할 길이 없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물을 소재로 한다. 변신했거나 수몰되거나 교교히 흐른다. 방류된 물꼬를 따라 유영하다보니 어느새 피로도 함께 소멸되었다. 색깔이 다른 두 여성작가의 글에 소설읽는 재미에 몰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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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1-04-18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곡우님이 소설을 읽고 계시는 중이었군요. 아쉽게도 저 두 편을 다 읽어보지 못했네요. 읽지만 마시고 좋은 글도 예전처럼 많이 올려주시기를 바랍니다.^^ 막내는 한창 세상을 향해 조금씩 기어나가고 있겠군요.

穀雨(곡우) 2011-04-19 08:51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오랜만이네요.^^
터울이 있는 터여서 그런지 막내는 새록새록 변하는 모습이
시시각각 다릅니다. 하지만 피곤이 켜켜히 쌓이는 건 어찌할
수 없나 봅니다.ㅋㅋ

양철나무꾼 2011-04-19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구병모님의 위저드베이커리, 참 좋았거든요.
구병모 님은 구병모 님대로, 정유정 님은 또 정유정 님대로, 피로도 함께 소멸되셨다 하니 더욱더 솔깃한걸요~

穀雨(곡우) 2011-04-19 08:55   좋아요 0 | URL
책을 읽다 보면 상황을 그려보곤 합니다. 이미 가 보았던 내 마음의 현장을 작가의 상상이 빚은
설정과 대비시켜 읽다보면 꽤나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이번 책은 애써 그러지 않아도 낯익은
기시감처럼 상황이 단박에 이어지는 힘이 좋았습니다. 특히, 정유정 작가의 글에서는 더욱
강렬했습니다. 게다가 두툼한 두께를 무색하게 만드는 힘이 더욱 좋았구요....^^

June* 2011-04-19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아 ! 곡우님 .
 곡우님 닉네임에 깜짝 놀라고 예스가 아닌 알라딘에서 보니 왠지 모르게 두근두근.
 

穀雨(곡우) 2011-04-19 13:15   좋아요 0 | URL
쥰님, 이렇게 반겨 주시니 고마운데요...^^
댓글에 담긴 에너지에 오후를 즐겁게 시작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