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시다."한 시진 이상을 미동도 없이 서 있다가 도천백이 던진 한마디였다. 관호청은 아무 말 없이 강물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로 가자는 말인가?’ 따위의 질문은 무의미한 것이기도 하거니와, 지금 관호청은 전혀 말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동굴 벽에 부딪치는 바람에 배는 잠시 멈춘 상태였다. 하지만 물살에 실려 다시 흘러갈 것이다.‘어디든 가겠지. 이젠 나도 모르겠다.’
윤천회는 벌떡 일어서면서 두 팔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고는 관호청과 눈이 마주치자 광소를 터트렸다."와하하하! 하하……하……?"드디어 자신을 발견했으니 우선 탄성이 튀어나올 것이고 그 뒤에는 융숭한 대접이…….그런데 이게 웬일인가?환대는 고사하고 그저 동굴 벽을 보는 듯한 저 무심한 눈길은?자신을 마치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 하나쯤으로 취급하는 듯하지 않는가!"나 여기 있어요! 여기!"소리 높여 외쳐 보았지만 전혀 듣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암중인에 대해서 잘못 판단한 것은 아닐까?’‘혹시 보지 못하고 지나쳐 온 것은 아닐까?’한번 의심이 고개를 들자 그 뒤를 이어 불길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속았어! 그자에게 완전히 우롱당한 거야!’‘이미 죽었을 수도…….’
일 보, 이 보…… 일 장, 이 장…….그에 따라 좌측을 포위한 복면인들과의 거리는 단축되어 갔다.삼 장, 이 장, 그리고 일 장!팽팽한 긴장감이 장내에 감돌았다.일촉즉발(一觸卽發)!그러나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