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세잇의 서재 (jhj9378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94915265</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고만고만한 책에 줄을 긋다 그만그만한 글을 씁니다. 와중에 나누고 싶은게 하나 있다면, 책이 일상을 한 뼘쯤 다르게 만드리라는 믿음. 그 믿음으로 오늘도 페이지를 넘깁니다.</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Mon, 06 Apr 2026 19:12:27 +0900</lastBuildDate><image><title>jhj9378</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94915265503896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94915265</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jhj9378</description></image><item><author>jhj937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나의 문장이 나의 삶을 배신하지 않도록 - [몫]</title><link>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13362</link><pubDate>Wed, 25 Feb 2026 16: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1336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02533958&TPaperId=1711336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6552/72/coveroff/k60253395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02533958&TPaperId=1711336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몫</a><br/>최은영 지음, 손은경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09월<br/></td></tr></table><br/> 글쓰기는 단지 종이 위에 문장을 나열하는 행위만이 아니다. 내가 발 딛고 선 세계의 무게를 오롯이 감각하고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려는 몸부림이다.<br> 최은영 작가의 소설 『몫』을 읽으며 글을 쓴다는 것의 비정함과 숭고함 사이를 위태롭게 오가게 된다. 우리는 흔히 글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거나 혹은 글 뒤에 숨어 세상을 비판하는 것만으로 스스로의 도덕적 결벽을 증명받으려 하니까. 하지만 이 소설은 묻는다. 당신이 쓴 문장이 정말 당신의 삶과 일치하느냐고, 당신은 당신에게 주어진 ‘몫’을 다하기 위해 어디까지 자신을 몰아넣어 보았느냐고.<br><br>문장의 벽을 부수고 나아가는 일 소설 속 화자인 ‘당신’은 대학 교지 편집부에서 만난 희영과 정윤을 통해 글쓰기의 본질에 다가간다. ‘당신’이 꿈꿨던 글은 명료하다. “한 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글, 첫 번째 문장이라는 벽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글.” 이것은 단순히 유려한 문장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의 변화를 촉구하는 선언이다.<br> 하지만 현실에서의 글쓰기는 종종 초라한 질투와 결핍을 동반한다. ‘당신’은 희영이 가진 통찰력과 절제력, 그리고 타인의 상처에 깊게 공감하는 재능을 보며 동경과 동시에 깊은 열등감을 느낀다. 희영의 재능은 글쓰기에서는 빛날지언정 삶에서는 스스로를 갉아먹는 독이 되기도 한다. 타인의 고통을 내 것처럼 느끼는 감각은 예민한 칼날이 되어 자신을 먼저 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영은 쓴다. 그것이 그녀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자 그녀가 짊어진 존재의 ‘몫’이었기에.<br><br>읽고 쓰는 것만으로 면죄부를 얻는 이들에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었어.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나는 어느 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 털어 버리고 사는 사람들 있잖아.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정의롭다는 느낌을 얻고 영영 자신이 옳다는 생각만으로 사는 사람들.” 종종 정의롭다 생각하는 글을 공유하거나 비판적인 댓글을 다는 것만으로 사회적 책무를 다했다고 착각한다. 키보드 위에서 휘두르는 문장은 서슬 퍼렇지만 정작 그 문장이 가리키는 현장에서는 뒷걸음질 치고 있을지 모른다. 희영이 경계하는 것이 바로 그 지점인데, 문장이 삶의 방패가 되어선 안 된다고, 문장은 오히려 나를 세상의 풍파 속으로 밀어 넣는 창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br> 최은영 작가는 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미묘한 파동을 포착해 내는 데 탁월하다. 작품 속 인물들은 대개 선량하지만 그 선량함 속에 숨은 이기심과 비겁함을 정직하게 응시한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소설을 쓸 때의 원칙으로 ‘나의 가장 더러운 부분도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꼽았다. 『몫』은 바로 그 정직함의 산물이다. 자신이 쓴 글의 무게만큼 살지 못하는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br><br>상처의 조건과 공감이라는 저주받은 재능 소설 속 희영은 타인의 상처에 대한 직관을 지니고 있다. 작가는 이를 두고 “글쓰기에서는 빛날 수 있으나 삶에서는 쓸모없고 도리어 해가 되는 재능”이라 표현했다.<br> 우리는 공감 능력을 미덕이라 칭송하지만 진정한 공감은 수렁으로 함께 걸어 들어가는 일이다. 타인의 고통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는 일일 것이다. 스물한 살의 '당신'이 여성에 대한 폭력과 부조리한 가족주의에 분노하며 잠 못 이뤘던 것처럼 앎은 곧 고통이 된다. 아무것도 모르고 세상이 그럭저럭 잘 굴러가는 곳이라 믿었던 순진한 시절로 돌아갈 수 없게 되는 것. 그것이 글을 쓰는 사람이 감내해야 할 첫 번째 형벌이다.<br><br>나의 '몫'은 무엇인가 작가는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당신의 삶에서 어떤 몫을 감당하고 있느냐고. 정윤은 공평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었지만 ‘당신’이 느꼈던 미세한 소외감을 읽어내지 못했다. 혹은 읽어냈더라도 자신의 안온함을 위해 외면했을지 모른다. 반면 희영은 자신의 결핍과 초라함을 직면하며 끝내 답장하지 못한 편지들에 대한 미안함을 품고 살아간다.<br> 이 에세이를 쓰며 나는 내가 뱉어낸 무수한 문장들을 되돌아본다. 나 역시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내 할 일을 다 했다 자위하며 문장 뒤에 숨어 안전한 정의를 외치지는 않았는가. 누군가의 고통을 나의 사유를 풍성하게 만들 재료로만 사용하지는 않았는가.<br> 삶에서의 성찰은 대단한 깨달음에서 오지 않는다. 내가 쓴 문장이 나의 삶을 배신할 때 느끼는 그 서늘한 부끄러움에서 시작된다. ‘그대로’라는 말이 수많은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당신이 거기 있음을 확인해 주는 눈물겨운 인사인 것처럼,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도 끝내 지켜내야 할 인간다움의 ‘몫’을 서로의 눈에 보여주기 위함일 것이다.<br><br>다시, 첫 번째 문장이라는 벽 앞에 서서 『몫』은 결국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랑하고 싶었지만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서툰 영혼들이 글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증명하려 애썼던 기록이다. 희영이 정윤에게 보낸 마지막 인사는 비단 소설 속 인물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다.<br>정윤 언니, 내가 언니에게 관대하지 못했던 것을 용서해요. 그렇게 사랑하고 싶었으면서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거, 편지들에 답하지 않았던 거 미안해. 아주 오래 보고 싶었어요.<br>잘 지내.<br> 잘 지내라는 짧은 마침표 안에 차마 문장으로 다 옮기지 못한 삶의 무게가 심겨 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몫을 지고 살아간다. 누군가는 투사가 되어 벽을 부수고 누군가는 그 파편을 주워 모아 기록하며, 누군가는 그 기록을 읽으며 뒤늦은 눈물을 흘린다.<br>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문장을 쓰느냐가 아니라 그 문장이 내 삶의 어디쯤에 놓여 있는지를 살피는 태도일 것이다. 아는 척하지 않는 것, 내가 뭐라도 되는 척하지 않는 것, 그리고 나의 초라함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것. 그것이 최은영 작가가 말하는 소설의 정신이자 내가 문장을 대하는 태도여야 함을 깨닫는다.<br> 나와 당신의 문장은 평행선처럼 어쩌면 영원히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간극을 메우려 노력하는 행위 자체가 바로 우리의 ‘몫’ 일 것이다. 읽기 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단 한 줄의 문장을 찾기 위해 오늘도 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다시 첫 번째 문장이라는 벽 앞에 선다. 이미 쓴 문장이 앞으로 올 문장의 벽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6552/72/cover150/k60253395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65527224</link></image></item><item><author>jhj937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모든 것은 나의 손안에 -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947</link><pubDate>Mon, 23 Feb 2026 15: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94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72203&TPaperId=1710894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492/9/coveroff/893497220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72203&TPaperId=1710894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a><br/>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08월<br/></td></tr></table><br/> 마음속이 시끄럽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고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현실은 나에게 남아 자꾸 머릿속을 뒤섞는다. 알고 있는 것과 다스리는 것의 간극이 멀고 가까운 정도가 얼마나 비워내고 살아왔는지에 대한 바로미터는 아닐는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되고, 스스로 어떤 사람이었는지 생각하게 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곱씹게 된다. 과거는 히스토리고 미래는 미스터리며 현재는 선물이라지만. 히스테릭한 현재로 인해 과거도 미래도 돌아보고 예상하는 게 부질 없어진다.<br> 속이 시끄러울 땐 고주망태가 되도록 잔을 비워내는 게 도움이 안 되던데. 물론 아무 생각 안 나도록 몸을 움직이거나 일거리 취미거리를 찾아 시간을 채우는 것도 방법이 되겠으나 그때뿐인지라, 분을 삭일 방법을 찾다 메모장을 열었다. 여름이 다가오면 소개 글을 써야지 하고 두었던 책.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라는 소설인데, 스펙터클한 전개도 눈에 띄는 사건도 톡톡 튀는 기승전결도 없는 것이 슴슴한 평양냉면 같달까. 그럼에도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는 다만 평양냉면을 닮아서. 점심에 분명 먹고 왔는데 자려고 누우면 떠오르는 것처럼, 일상의 특별함이 아니라 소소한 평범함이 가진 밀도가 문장 전체에 녹아 있다.<br> 건축학과를 갓 졸업한 주인공 사카니시가 빡빡한 조직생활과 대학원 진학 대신 선택한 '무라이 설계사무소'에 취직하며 소설은 시작된다. '무라이 건축사무소'의 수장인 '무라이 슌스케'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고 하니, 1967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열린 20세기 건축전에서 일본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소개될 정도로 능력자이면서도 건축의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건축은 사람을 향해야 한다'는 자신만의 철학으로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건축가다. 이 정도 스펙이면 욕심을 부려봐도 되겠건만. 대형 건축회사를 차리고도 남겠건만. 소소한 건축사무소에서 올곧은 동료들을 모아 꾸려나간다.<br> 무라이 슌스케와 그 동료들이 건축을, 일을,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소설 곳곳에 숨어 있다. <br>잘된 집은 말이야, 우리가 설명할 때 했던 말을 고객이 기억했다가 자신의 집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그대로 전달하게 되지. 우리 건축가들의 말이 어느 틈엔가 거기 사는 사람들의 말이 되어 있는 거야. 그렇게 되면 성공인 거지.<br>..."혼자서 있을 수 있는 자유는 정말 중요하지. 아이들에게도 똑같아. 책을 읽고 있는 동안은 평소에 속한 사회나 가족과 떨어져서 책의 세계에 들어가지. 그러니까 책을 읽는 것은 고독하면서 고독하지 않은 거야. 아이가 그것을 스스로 발견한다면 살아가는데 하나의 의지처가 되겠지. 독서라는 것은, 아니 도서관이라는 것은 교회와 비슷한 곳이 아닐까? 혼자 가서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장소라고 생각한다면 말이야"<br>"한 점의 틈도 그늘도 없는 완벽한 건축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그런 것은 아무도 못 만들어. 언제까지나 주물럭대면서 상대방을 기다리게 할 만한 것이 자신한테 있는지, 그렇게 자문하면서 설계해야 한다네."..."고객이 시키는 대로, 납기를 지키기 위해서 일하라는 건 물론 아닐세. 만일 고객이 불평하거나 변경해 달라고 했을 때 마감이 임박할 때까지 주물럭거리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어? 자네가 잘못한 경우도 있을 수 있어. 그런 만일의 경우를 위해서라도 늘 시간은 봐둬야 하네. 그런 의미에서 건축은 예술이 아니야. 현실 그 자체지."<br>  무라이 설계 사무소는 여름이 되면 짐을 싸고 숲 속 여름별장으로 떠난다. 새들의 노랫소리로 가득한 고즈넉한 숲 속에서, 아침이면 어김없이 산책길에 나서는 무라이의 발소리와 삐걱이는 현관문 소리로 시작되는 여름별장. 국립현대미술관 설계경합을 목적으로 도착한 여름별장은 조용하고 아늑해 보이지만 설계사무소 직원들의 손에 녹아든 업무습관은 비할 데 없이 세밀하고, 톱니처럼 얽힌 직원들의 설계작업은 각자가 1인분의 역할을 소화해 내지 못하면 프로젝트를 제대로 마무리할 수 없다는 신념으로 가득하다.<br>... 나중에 유키코에게 물었더니 오전오후 합해서 최대 열 자루 정도 연필을 쓰는 것이 일의 정확성도 지켜지고, 연필도 정성껏 다루게 된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보다 더 깎아야 하는 것은 필압이 너무 강하거나 너무 난폭하거나 너무 서두르거나 그중 하나로, 즉 아무 생각 없이 일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선을 계속 긋고 있으면, 어느 지점부터 의식이 흐트러지는 때가 있다. 그 틈을 노려서 실수가 미끄러져 들어오니까 연필이 어떻게 닳는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설계도는 한 군데라도 놓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 버리면 다시 그리는 데 두 배 이상의 힘이 든다.<br>선생님은 내 의문에 미리 대답하듯이 말했다. "가구는 좀 더 뒤에 생각하자는 이구치 군 생각도 이해하지만, 건축이라는 것은 토털 계획이 중요하지. 세부적인 것은 나중에 해도 되는 것이 결코 아니야. 세부와 전체는 동시에 성립되어 가는 거야."... 무의식의 영역을 빼놓고 사람에게 태아시절의 기억은 없다. 그렇지만 이 손가락이 예전에 그렇게 세계를 탐색했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서 손을 움직일 뿐만 아니라 손을 움직이는 것이 생각으로 연결된다. 선생님의 건축 작법은 그 양쪽으로 성립되어 있다.<br>"덮어놓고 죽죽 조각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 노래한다는 것은, 즉 숨을 쉬면서 손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니까 손놀림이 가벼웠을 거야. 사람은 말이야, 그냥 의자에 앉아 있을 때조차 어깨에 힘이 들어가거든. 그렇지만 숨을 쉬면서 몸의 긴장을 풀면, 어깨에서 힘이 빠지지. 호흡을 편히 하면 어깨도 굳지 않아."<br> 안타깝게도 무라이가 뇌출혈로 쓰러지며 설계경합에는 결과물을 제출하지 못하고 무라이는 더 이상 설계사무소를 운영하기 어려워지게 되는데, 사무소 직원들의 안녕과 무운을 바라며 무라이는 마지막 편지를 남긴다.<br>일은 사무소 안에는 없고, 여러분의 손안에 있습니다.<br>부디 좋은 건축 일을 계속해주길 바랍니다.<br>모든 것은 내 손안에 있다. 속 시끄러운 것도 결국 내 안에 있고, 이걸 만든 것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도 나에게 달린 일이다. 그리하여 내가 나에게 바란다. 부디 하루하루를 쌓아 계속 나아가길.<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7492/9/cover150/893497220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4920956</link></image></item><item><author>jhj937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누가 구원할 것인가 - [13계단]</title><link>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946</link><pubDate>Mon, 23 Feb 2026 15: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94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039457&TPaperId=1710894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82/62/coveroff/k73203945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039457&TPaperId=1710894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13계단</a><br/>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25년 06월<br/></td></tr></table><br/> 그간 사형제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을까 싶다. 단순히 ‘존재해야 한다’, ‘폐지해야 한다’의 논쟁을 넘어 타인으로서의 인간이 누군가의 생명을 법적으로 사라지게 만드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이 사회에 있을지에 대한 관점이랄까. 다카노 가즈아키의 소설 『13 계단』은 그 질문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br>이야기는 전과자 준이치가 가석방 후 사회 복귀를 준비하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제안을 받으며 시작된다. 퇴직을 앞둔 교도관인 난고는 준이치에게 특별한 제안을 하는데, 조만간 처형될 사형수가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린 상태이고 그가 무죄임을 증명할 수 있게 수사를 도와주면 사례금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 사형수는 기하라 료라는 인물로, 강도살인죄로 사형이 확정되어 수감 중인 인물이다. 그를 구원하기 위한 시간은 단 두 달. 이렇게 세 사람의 기묘한 접점이 시작된다.<br> 형벌을 다룬 소설은 많지만, 『13 계단』은 조금 다르다. 작가는 사형제도의 존재 자체보다 그것이 돌아가는 방식, 절차, 시스템, 인간의 감정까지 냉철하게 들여다본다. 초점은 한 사람의 목숨이 걸린 이 판결이 과연 정당 했는가를 추적하는 과정에 맞춰져 있다. 준이치와 난고는 기하라의 사건과정을 복원하려 노력하면서, 수사의 허점과 증거의 약점을 하나하나 발견해 나간다. 그러다 보면 점차 소설을 읽는 우리는 확신할 수 없게 된다. 정말 기하라는 범인인가.<br> 소설 속에서 ‘13 계단’이라는 상징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일본의 실제 사형 집행 구조에는 교수형 집행장까지 이어지는 13개의 계단이 있다고 한다. 형틀까지 오르는 그 계단은 물리적인 구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법과 제도, 양심과 죄책감, 복수와 용서가 얽혀 있는 상징적 공간으로 보인다. 이 계단은 단지 사형수만 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를 판결한 판사, 수사한 형사, 감시한 교도관, 그리고 집행 버튼을 누르는 이들 모두가 관여된다.<br>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은 영화 ‘재심’이었다. 영화는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 사건’이라는, 전북 익산에서 한 택시기사가 흉기에 찔려 숨진 실제 사건을 다루는데, 사건 직후 경찰은 당시 15세였던 현우를 용의자로 지목한다. 현우는 강압 수사를 받았고, ‘범행을 인정하고 깊이 반성하는 점’을 참작하여 5년을 감형한 10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죄 없이 감옥살이한 것만으로도 억울한데 만기 출소 후 1억이 넘는 사망보험금으로 소송당하고, 이를 재심하는 과정에서 진범이 밝혀져 3년이 더 지난 2016년에야 무죄를 선고받는다.<br> 만약 현우가 사형을 선고받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법은, 과연 누구를 구제할 수 있었을까. 일본의 법 제도 아래 쓰였지만  『13 계단』은 이런 현실을 은유하면서도 매우 직접적으로 비판한다. 일본 역시 수많은 무기수, 사형수들이 기억이나 정황으로만 죄를 뒤집어쓴 채 갇혀 있다. 소설 속의 기하라는 실제로 그런 인물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렇게 모른 채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느냐의 물음에 있다.<br> 소설은 단순히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지 않는다. 이 소설이 강한 울림을 주는 이유는, 어느 입장도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따라가며,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복잡하고 모순적인지를 보여준다. 준이치는 과거에 우발적인 살인을 저질렀고 그 죗값을 치렀지만, 여전히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 난고 역시 과거에 사형 집행자의 역할을 했던 것을 계기로 죄책감을 지고 살아간다. 그들은 둘 다 ‘법의 심판’을 받았거나 그 체계에 몸담았던 사람들이지만, 결국 그들 자신이 느끼는 죄와 용서는 제도 바깥에 있다.<br> 이 지점에서 작가는 묻는다. ’죄는 법으로만 다스려질 수 있는가‘ 그리고 ‘인간은 정말 구원받을 수 있는가’ 이 두 질문은 소설의 말미로 갈수록 점점 더 선명해진다. 사형이라는 결정적 형벌은 법적으로는 명확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감정과 갈등, 회한과 후회는 그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특히 난고와 준이치에 의해 기하라 사건의 진실이 조금씩 드러날 때, 우리는 ‘판단하는 자’의 위치에서 벗어나게 된다.<br>『13 계단』은 우리 사회가 더 이상 강한 처벌이 곧 정의라는 단편적인 사고로는 복잡한 인간의 죄를 다룰 수 없음을 말한다. 정의는 때로 처벌보다 더 어려운 방식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그건 바로 누군가를 받아들이고 참회하게 하고 함께 살아가는 일이다. 너무 이상적인 말일지도 모르지만, 이 소설은 그렇게 이상적인 믿음을 현실 속에서 질문한다.<br>결국 이 소설은 촘촘하게 쓰인 한 편의 미스터리이지만, 우리 자신을 향한 질문이다. 우리는 지금 누구를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리는 누군가의 실수를 되돌릴 수 있는 용기를 가졌는가. 그리고 우리는, 완전하지 않은 법이 완전하지 않은 인간을 처벌할 수 있다고 믿을 것인가.<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82/62/cover150/k73203945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5826287</link></image></item><item><author>jhj937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변치 않는 기준, 본질 - [일의 감각]</title><link>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943</link><pubDate>Mon, 23 Feb 2026 15: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94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52934734&TPaperId=1710894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225/12/coveroff/k752934734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52934734&TPaperId=1710894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일의 감각</a><br/>조수용 지음 / B Media Company / 2024년 11월<br/></td></tr></table><br/> 나이가 들수록 저마다 살면서 기념할 꺼리들이나 잊지 않고 싶은 마법 같은 순간들이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누군가는 생일을,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처음 마주하게 된 순간이나 새로운 시작, 생명의 탄생, 감동으로 벅차올랐거나 변화의 기로에 놓였던 순간들 말이죠. 누군가는 월급날을 기다리기도 할 테고요 :)<br> 저도 제 나름에 기억하고 잊지 않으려는 순간들이 몇 가지 있는데요. 5월 14일이 그렇습니다.(벌써 어제가 되었네요.) 누군가에겐 로즈데이이겠으나, 저겐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며 밥벌이의 수단으로써, 나를 찾는 과정으로서, 내가 속한 곳에서 무언가로 기여하고 의미를 찾아온 ‘일’이라는 걸 시작한 날입니다. 열여덟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으니 기념할 만한 꺼리가 아닌가 싶습니다.<br> 특별하진 않지만 매년 이때가 되면 ‘그래, 그동안 잘했지’, ‘한 해 동안 이러이러했지만 올해는 더 나을 거야 ‘, ’또 얼마나 가슴 뛰는 새로운 일거리들이 기다리겠어 ‘ 하는 심정으로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자는 생각에 혼자 그럴 듯~까지는 아니더라도 괜찮은 점심 한 끼를 찾아 제게 주곤 합니다. <br> 별건 아닙니다. 네 뭐,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야죠 :)<br> 돌아보니 그동안의 일에 있어 수많은 부침과 변곡점의 순간이 있을 때마다 깨우침을 주었던 게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하게도, 『사생활의 천재들』- 정혜윤, 『프리 워커스』- 모빌스 그룹, 『일하는 사람의 생각』- 박웅현, 『지적자본론』- 마스다 무네아키, 『일을 잘한다는 것』- 야마구치 슈, 『언바운드』- 조용민, 『일의 격』- 신수정,  『Start with WHY』- 사이먼 시넥 같은, 일이라는 이 요망한 녀석을 어떻게 바라보고 마주 해야 할지에 대한 책들을 적절한 시점에 만나 다시금 뒤돌아보고 나아가게 해 준 것 같습니다. <br> 이번에도 우연히 『일의 감각』이라는 책을 접하고 배운 것이 많아, 조금 소개해볼까 합니다.<br><br><br> 조수용이라는 분의 글은 묘하게 말이 많지 않습니다. 짧고 단단한 문장들이 머릿속에 오래 남는데요. 화려하게 설득하려 들지 않고, 차분히 자신의 생각을 꺼내 놓는데 그게 오히려 더 크게 와닿을 때가 있죠.<br>오너의 신뢰를 얻으려면 오너의 고민을 내가 대신해 주면 됩니다. 이 이야길 듣고 예전 같았더라면 '사내정치'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을 이제는 조금 알겠습니다. 수많은 의사결정이 필요한 순간들에, 오너도 리더도 사람인지라 이해해 주고 공감이 필요하다는 것을요. 오너와 리더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조직이 원하는 바와 나아가려는 바를 이해하는 것이고, 오너가 가진 고민의 지점이야말로 정답이 아닌 해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이죠.<br>감각은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구분하는 능력입니다. 예전엔 뭐든 다 해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게 성실이고 책임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가려내는 감각이 오히려 더 중요한 거더군요. 중요한 일과 덜 중요한 일, 지금 당장 힘을 쏟지 않아도 되는 것을 구분해 내는 감각. 그건 결국 어디까지 내가 책임질 수 있는가에 대한 태도 같기도 했습니다.<br>사용자는 디자인을 분석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냥 느낍니다. 이 문장은 디자인뿐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도 자주 떠오릅니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묘하게 신뢰가 가는 사람.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왠지 마음이 끌리는 태도. 결국 그런 건 다 감각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책을 읽으며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감각이란 게 결국 훈련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감각 있는 사람은 없다고, 좋아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무엇이든 좋아하려는 노력, 그걸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그 말이 좀 오래 남더군요.<br>'사소한 일도 잘하는지’를 평가하는 게 아닙니다. 잘하고 못하고 이전에, 그가 일에 대해 가지는 마음가짐을 보는 겁니다.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더 잘 해내려는 마음가짐 말입니다.'내가 좋아하는 것’과 ‘타인에 대한 이해’가 만나는 지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결과물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저는 내 취향을 깊게 파고, 타인에 대한 공감을 높이 쌓아 올린 결과 만들어지는 것이 ‘감각’이라 생각합니다.제가 생각하는 감각은 ‘현명하게 결정하는 능력’입니다.<br> <br> <br> 이 책 덕분에 그간의 업무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을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아는 말, 누구나 하는 방식 속에서 내가 놓치고 있던 건 없었을까. 그렇게, 다시 천천히 돌아보게 됩니다.<br> 일도 감각도 결국은 ‘본질’이라 믿습니다. 전문적인 기술도, 일이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끝까지 해내려 하는 능력도 업과 일에 있어 중요하겠으나, 그 모든 건 결국 본질을 잃지 않기 위한 도구라 믿습니다.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나는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누구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지. 그걸 잊지 않기 위해 감각을 훈련하고, 상식을 지키고, 태도를 다듬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br><br> 5월 14일, 올해도 자신에게 점심 한 끼를 선물했습니다. 이유는 여전히 같고, 마음은 조금 더 단단해진 것 같아요. 얼마나 어떻게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스스로에게 바라는 건 앞으로의 일에도 여전히 중심이 있었으면 합니다. 정답이 아니라, 흔들려도 돌아올 수 있는 기준 같은 것 말이죠. 그게 바로 제가 지금 생각하는 ‘일의 감각’이고, 제가 믿고 싶은 ‘본질’입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225/12/cover150/k752934734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2251276</link></image></item><item><author>jhj937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참 어른이란 - [줬으면 그만이지 - 아름다운 부자 김장하 취재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941</link><pubDate>Mon, 23 Feb 2026 15: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94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92830441&TPaperId=1710894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727/3/coveroff/k59283044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92830441&TPaperId=1710894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줬으면 그만이지 - 아름다운 부자 김장하 취재기</a><br/>김주완 지음 / 피플파워 / 2023년 01월<br/></td></tr></table><br/>어른이라는 말의 무게 어릴 적 참 싫었던 별명 중 하나. 애늙은이. 어른들이 붙여주신 별명인데, 속이 깊다거나 의젓하다거나 어른스럽다의 순화된 의미로 그리 부르셨던 듯하다. 꼭 그렇지도 않았는데.<br> 우리는 언제부터 어른이라는 단어를 쉬이 쓰게 되었을까.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쉽게 어른이라 부를 수 없고, 오래 살아왔다고 해서 자동으로 존경이 붙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누군가를 진심으로 어른이라 부르기 위해서는 그 삶 전체를 낯빛처럼 들여다보고 나서야 비로소 입을 뗄 수 있는 것 아닌가. 어쩌면 지금 이 시대에 가장 결핍한 존재가 진짜 어른인지도 모르겠다.<br> 그런 가운데 작년 초에 만났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한 편. 《어른 김장하》. 문장도 아니고 설명도 없었지만 사람의 이름 앞에 어른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더라. 뭔가 싶어 봤지. 다큐멘터리를 워낙 좋아하니까. 이 다큐멘터리는 결국 어른이라는 단어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선언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의 삶을 따라가며, 그 사람을 어른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를 하나하나 보여주겠다는 조용한 다짐.<br> 다큐멘터리의 여운이 잊히지 않는 와중이었는데, 최근에 책으로 다시 만났다. 경남 지역 언론인이자 기자이신 김주완 님의 『줬으면 그만이지』. 김장하 선생의 뒷모습을 잡은 표지는 단조로웠고 제목은 툭 던지듯 무심했지만, 그 속엔 10년 넘게 한 사람을 추적하며 기록한 시간들이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다큐멘터리와는 또 다른 밀도의 진실이 그 안에 있더라. 카메라 대신 펜으로, 말 대신 침묵으로 채워진 참 어른의 삶.<br> 나는 이 두 기록 사이에서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어쩌면 이 글은 그 사이를 오가며 내가 받은 울림과 물음을 되새기고, 나름의 방식으로 기록을 덧대보는 시도일지 모르겠다. 김장하라는 사람을 통해, 우리는 다시 어른을 말할 수 있기를. <br><br>줬으면 그만이지 - 기대하지 않는 베풂줬으면 그만이지. 뭘 칭찬을 되돌려 받겠다는 것이오?<br> 어떤 말보다 단호하고, 어떤 철학보다 간결하다. 김장하 선생이 소개한 한 거지의 에피소드인데, 선생의 삶을 통째로 압축해 보여준다. 무언가를 베푼다는 것, 그리고 그 이후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것. 우리는 그 행위를 쉽게 선행이라 부르지만, 그의 태도는 선행조차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냥 당연한 일처럼,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내는 마음.<br> 기부란 뭐고 나눔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종종 베푸는 행위를 하면서도 의미나 반응을 기대한다. 그것이 당장 감사의 말이든 혹은 칭찬이든 혹은 언젠가 돌려받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심리든 말이다. 그렇게 보면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는 해야 할 것 아니오?'라는 말엔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많은 행동을 조건과 기대 속에서 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런 기대에 김장하 선생은 무심히 선을 그었다. '줬으면 그만이지.' 그 말에는 진심의 무게가 담겨 있다.<br> 40대의 젊은 나이에 명신고를 만들고 10년 넘게 이사장으로 계시다가 학교를 사회에 내놓으신 김장하 선생. 본인이 가난으로 인해 배우지 못했음이 안타까워, 같은 이유로 학업을 포기하지 않도록 많은 학생들을 장학금으로 도우시더라. 김장하 장학회에서 지원을 받은 어느 학생은 '저는 선생님 장학금을 받고도 특별한 인물이 못 돼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br>내가 그런 걸 바란 게 아니야.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야.<br> 이보다 더 분명한 가치관이 있을까. 김장하 선생에게 베풂이란 성과를 기대하는 일이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자기 몫을 다하며 살아가도록 조용히 밀어주는 일이었다. 기대하지 않기에 실망도 없고, 실망하지 않기에 또 미워할 일도 없는.<br> 선생은 말보다 실천으로 보여주셨다. 자신의 직업이자 생업인 약방의 수익은 '세상의 병든 이들, 곧 누구보다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거둔 이윤'이라며, '나 자신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되겠다'라고 했다. 어떤 명분도, 계산도 없었다. 다만 이 사회에 조금이라도 덜 아픈 자리를 남기고 싶었던 것뿐이다.<br>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단단해질 수 있을까. 어떻게 아무 기대 없이 베풀고, 아무 대가 없이 살 수 있을까. 그 대답은 어쩌면 그의 삶 전체에 있다. 그는 '기대가 없으니 실망도 없다'라고 했다. <br> 참된 어른은 자신이 심은 나무가 자라는 걸 바라보지 않는다. 그저, 물을 주고 그늘을 만들어줄 뿐이다.<br> ‘줬으면 그만이지’라는 말은 그래서 무심한 듯 보이지만, 그 안엔 깊은 책임과 윤리가 숨어 있다. 내가 한 행동을 나 스스로 감당하고, 거기서 멈추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진짜 어른의 방식 아닐까. 그 말 하나로 김장하 선생을 어른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br><br>명예보다 일상 – 약방을 비울 수 없어서 국가가 수여하는 훈장, 그것도 대통령이 직접 주는 국민훈장 모란장. 보통 사람들이라면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요, 감사 인사부터 기념사진까지 잔치처럼 치러질 만한 순간이다. 그런데 김장하 선생은 그 전수식 참석을 거부했다.<br> 그 이유가 뭐였냐면, 약방을 비울 수 없어서.<br> 이 한마디는 실로 기이하고, 또 기념비적이다. 누군가에게는 그 훈장이 권위이고, 업적의 증명이고, 살아온 시간에 대한 인정일 수 있다. 하지만 김장하 선생에게는 당장 자리를 비우는 게 더 큰 문제였나 보다. 누군가의 병을 듣고 약을 지어주는 일, 소문을 듣고 먼 길 찾아오는 손님의 말벗이 되는 일이 더 중요했나 보다. 훈장보다 일상, 명예보다 사람을 선택한 것이다.<br> 경남교육청은 발칵 뒤집혔다고 한다. 내 목이 날아간다며 교육감이 사정사정했다나. 이 일화는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된단다.<br> 김장하 선생은 그 순간에도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었다. 삶이란 결국 자리를 지키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떤 선택 앞에서도, 본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놓지 않는 일. 그것이 설령 많은 이들이 아까워할 훈장이라 할지라도.<br> 생각해 보면 명예란 늘 외부에서 붙여주는 이름표 같은 것이지만, 일상은 오롯이 자기 손으로 짓는 집과 같다. 김장하 선생은 그 집을 벗어나지 않았다.<br> 그가 그렇게 중시한 약방은 단지 약을 짓는 공간이 아니었다. 지역 주민의 안부가 오가고, 아픈 이들에게 말 한마디를 더 건네는 곳이었다. 그는 거기서 자신을 선생이 아닌 이웃으로 살았다. 훈장이 아무리 빛나도 그 하루의 삶이 더 값지다 여기신 것이겠지.<br> 우리는 종종 더 나은 자리를 향해 애쓴다. 부와 명예, 인정, 영향력. 그러나 그 자리가 나를 밀어낸다면, 진짜 손해는 그때부터 시작되는 건지도 모른다.<br> 지금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끝까지 머무는 것. 그것이야말로 어른의 방식 아닐까.<br><br>무재칠시 - 가진 것 없어도 어른일 수 있다 우리는 나눔을 생각할 때, 내가 가진 것 중에 무엇을 줄 수 있는가부터 고민한다. 그래서 나눔은 가진 게 많은 자들이 하는 것이라 생각하지. 돈, 물건, 시간, 재능 같은. 하지만 그중 어느 것도 없다면? 가진 게 없으면 베풀 수도 없는 걸까?<br> 김장하 선생은 그런 물음에 오래전부터 대답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br> 그가 소개한 개념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무재칠시(無財七施)’라는 불교의 가르침이다. 글자 그대로, 재물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곱 가지 베풂인데, 화안시(和顔施), 자안시(慈眼施), 언사시(言辭施), 심려시(心慮施), 사신시(捨身施), 상좌시(床坐施), 방사시(房舍施) 라고 한다.<br>그게 뭐냐면, 첫째가 화안시(和顔施)라는 겁니다. 얼굴빛을 환하게 해서 상대를 대할 때 이것도 큰 봉사라는 것이죠. 둘째는 자안시(慈眼施), 눈빛을 편하고 부드럽게 해서 상대를 바라보는 것도 큰 봉사라는 겁니다. 이건 재산이 없어도 되거든요. 그다음에 언사시(言辭施), 말씨를 부드럽게 해서 상대방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크나큰 봉사입니다. 그다음에 심려시(心慮施)라고 하죠. 마음 씀씀이입니다. 서로가 마음과 마음을 위로해 주는 그런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그다음에 사신시(捨身施)라고 하지요. 결국 몸으로 때우는 겁니다. 할머니가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걸 보면 좀 들어주고, 얼마든지 몸으로 때울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는 상좌시(床坐施), 자리를 양보하는 일입니다. 자리 양보하는 일은 큰돈 안 들여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마지막으로 방사시(房舍施)입니다. 요즘 와서는 그런 일이 좀 적겠습니다만, 그래도 방을 빌려줄 일이 있을 것입니다. 옛날에 나그네가 많이 다닐 때 그 나그네가 집 떠나서 어느 헛간에라도 좀 재워 달라 할 때 방에 재워주는 것, 이것은 정말로 엄청난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일곱 가지를 무재칠시라 그럽니다.<br> 처음엔 말장난처럼 들릴 수도 있다. 얼굴을 환하게, 눈빛을 따뜻하게, 말씨를 부드럽게 등등. 이게 진짜 베풂인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김장하 선생의 삶을 곱씹다 보면 알게 된다. 선생이 정말 그렇게 살았다는 것을.<br> 그는 누구에게든 정중했고, 말수가 적지만 필요한 말은 꼭 했다. 바쁘고 피곤할 때조차 약을 지러 오는 사람 앞에서 인상을 쓰지 않았다. 모임 자리에선 늘 먼저 일어났고 기꺼이 자신의 공간을 열어두었다. 그는 큰소리 없이 몸을 앞세우거나 젠체하지 않고, 그 대신 눈빛과 표정, 말씨와 태도로 세상을 대했다.<br> 그 삶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이런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어른이란 무엇으로 증명되는가? <br>공평은 사회의 근본이요, 애정은 인류의 본량이라.<br> 그 말에 답이 있다. 애정이 본디 인간의 바탕이라면, 어른은 그 바탕을 가장 고요하고 자연스럽게 실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무재칠시는 그래서 어려운 말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쉬운 나눔이다.<br> 돈이 없어도, 시간이 부족해도, 피곤한 날에도 우리는 누군가에게 부드러운 말, 따뜻한 시선, 잠깐의 자리를 내어 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조차 하지 못한 채 내가 풍족하지 않기에 줄 수 없다 한다. 김장하 선생은 베풂이란 결국 태도의 문제라는 것, 그런 삶의 태도에 조용히 이의를 제기하는 듯하다. <br> 그렇다면 나는 오늘 무엇을 실천하고 있는가. 나는 지금 누군가를 어떤 태도로 대하고 있는가.<br><br>김장하 바이러스 - 조용한 전염, 조용한 유산 사람 하나의 이름이 이렇게 오래, 그리고 깊게 전해지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그것도 소리 없이, 자랑 없이, 억지로 알려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br> 김장하 선생을 둘러싼 이야기들은 마치 전염병처럼 번진다. 누군가를 직접 만난 사람만이 아니라, 그를 기억하는 이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이들, 그가 한 일을 곁에서 지켜본 이들 사이로 조용히 퍼져간다.<br> 김주완 기자는 이 현상을 가리켜 이렇게 썼다.<br>등장하지 않은 사람들 중에도 이미 ‘김장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많았다.<br> 그건 아마도 김장하라는 사람이 말보다 삶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누군가를 설득하려 하지 않았고 자신이 옳다고 뭔가를 주장한 적도 거의 없다. 대신 본인이 옳다고 믿는 공평이라는 방식대로 살았을 뿐이다.<br> 그는 특출한 성공이나 유명한 제자, 결과로 평가받는 세상을 원하지 않았다. 대신, 그가 응시한 건 그저 자기 자리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귀히 여길 줄 아는 사람, 내세울 이름은 없어도 지킬 것을 지키며 하루를 통과하는 사람들. 그는 바로 그런 사람들의 삶이 어른스러움의 본질이라고 믿은 듯하다.<br><br>어른은 - 지켜야 할 마음을 다음 사람에게 건네는 사람 돌아보면, 나는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며 줄곧 한 사람을 말해왔지만 사실은 한 사람만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김장하라는 한 사람의 삶을 통해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어른의 표정을 떠올리고 싶었다.<br> 어른이라는 말이 너무 가볍게 쓰이거나, 반대로 너무 무거워 아무도 쓰지 못하는 시대. 그 속에서 진짜 어른은 어떤 사람인가 묻고 싶었다.<br> 어른은 단지 나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지켜야 할 마음을 다음 사람에게 건네는 사람이다.<br> 그것은 가르침이 아니라 영향력이고, 훈계가 아니라 울림이지 않을까.<br>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묻는다.<br> 나는 지금 어떤 마음을 품고, 어떤 마음을 건네고 있는가.<br> 나는 언젠가 누군가에게 어른이라 불릴 수 있을까.<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727/3/cover150/k59283044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7270319</link></image></item><item><author>jhj937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몸이 보내는 고장의 신호들은 -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 - 탐정이 된 의사, 역사 속 천재들을 진찰하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939</link><pubDate>Mon, 23 Feb 2026 15: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93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518786&TPaperId=171089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958/8/coveroff/896051878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518786&TPaperId=1710893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 - 탐정이 된 의사, 역사 속 천재들을 진찰하다</a><br/>이지환 지음 / 부키 / 2021년 09월<br/></td></tr></table><br/> 코가 맵다. 아니, 매운 건 둘째 치고 흐르는 콧물을 주체할 수가 없다. 좀 부끄럽긴 하지만 줄줄 흐르는 건 지저분하니까, 미용티슈 한 장을 반으로 쪼개고 고이 접어 돌돌 말아선 양쪽 코에 냅다 넣어보는데, 입으로 숨을 쉬느라 입술이 마르는 건 제쳐두겠으나 10분도 지나지 않아 돌돌 만 티슈마저 흥건해진다. 덕분에 쓰레기통으로 가기 전의 흔적들이 쌓여 휴지산이 되고, 훌쩍거림과 재채기는 무엇하나 집중할 수 없게 만든다. 잠은 또 어떻고. 코 한쪽만이라도 숨이 쉬어지는구나~ 싶다가도 잠자리에 들 시간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양쪽이 다 막힌다. 살 수가 없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울 순 없으니, 오늘도 항히스타민을 삼키지.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언제인지 모르게 어떻게든 잠에 들긴 한다. 이럴 때 드는 생각. 코를 떼어야 하나.<br> 출근길에 둘러보니 집 앞 초등학교의 담벼락엔 어느새 능소화가 얼굴을 내밀었다. 능소화가 피면 여름이라 했던가. 작렬하는 태양만큼이나 한껏 가슴과 두 팔을 열고 여름을 맞이하고 싶었건만. 나의 여름맞이는 올해도 어김없이 비염과 함께 시작하는구나. 환절기엔 영락없지. 콧물, 재채기, 후비루, 코막힘, 튼입술, 수면부족불가. 비염이 이렇게 무섭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이비인후과에 들르니, 선생님 말씀. '부비동염이네요~ 한참 고생하신 것 같은데 이 약 먹으면 이틀 안에 나을 겁니다~' 비염이 아니었나. 비염으로 시작되어 부비동염으로 옮겨간 것인가. 그래서 그렇게나 코를 '부비'댔나. 다행히 이틀 치 약을 거침없이 소화해 내니 거짓말처럼 증상이 사그라든다. (이 글을 빌어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선생님! 아 그런데, 조금 아이러니합니다 선생님. 취미가 사진이신 것 같은데, 사진 속에 선생님은 멋진 배경 속에 더 멋진 포즈와 함께 담배를 태우고 계시던데요. 이비인후과 전문으로서 괜찮으신 건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br> 동물들의 다양한 특성을 기반으로 수명을 산출한 학자가 그러던데. 인간의 생물학적 수명은 40년이라고. 그걸 넘어서였는지는 모르겠는데, 매년 한 두 군데씩 고장이 난다. 기관지가 좋지 않아 수시로 콜록 이거나 코가 막히는 것은 어릴 적부터 달고 살아 그러려니 하겠는데,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출산의 고통은 없었지만) 허리 속에 있다는 디스크는 1/4쯤 탈출한 듯싶고, 묵직~하게 세상에 나온 따님 덕분인지 손가락 손목 팔꿈치 어깨 목으로 이어지는 관절 라인은 각각이 매년 병원을 가는 이유가 된다. <br> 덕분인지 영양제와 건강보조제가 늘어난다. 눈도 좀 침침해지려 하는데, 그래도 책은 봐야 하니까. 더 나빠지기 전에 루테인은 물과 함께 삼킨 지 5년쯤 된 것 같고, 30대 후반의 어린(?) 나이였던 언젠가의 종합검진에서 발견된 골다공증으로 칼슘&amp;마그네슘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고, 기관지에 좋다기에 프로폴리스, 내 혈압 잡아야지 싶어 혈관 건강을 위해 속이 쓰려도 오메가 쓰리, 가끔 철야하려면 체력이 중요하니 종합비타민, 회식은 간빨(?)로 하는 거라길래 밀크시슬까지. 어째 줄진 않고 늘기만 하네. 꼭 내 업무 같군.<br> 내 몸이 종합병원 수준은 아니겠으나, 내 또래의 사람들은 다들 비슷하려나. 나이 듦에 따라 이렇게 구석구석 고장 나고 있으려나. 그래도 큰 질환이 없으니 감사해야 하나. 요즘이야 의학의 발달로 생물학적 수명을 훨씬 뛰어넘어서 살아가고 있긴 한데, 옛날 사람들은 어땠으려나.<br> 그럴 때 볼만한 책이 여기 있다.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라는 책인데, 건국대학교에서 정형외과 전문의로 활약 중이신 이지환 교수님이라는 분이 마치 셜록에 빙의한 듯, 역사적인 기록을 바탕으로 위인들이 겪었던 질병을 추리하고 그 병이 위인들의 삶과 업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꽤 흥미롭게 풀어낸다.<br> 세종대왕부터 시작해서 가우디, 니체, 도스토옙스키, 모차르트, 마리 퀴리, 모네, 로트렉, 프리다 칼로, 밥 말리 등 아주 다양한데, 우선 세종대왕부터 설명해 보자면, 세종은 20대부터 무릎통증, 30대부터 허리 통증을 앓았으며 40대부터는 눈 통증이 심해졌다고 한다. 특히 허리는 '유리처럼 깨지기 쉽고 대나무처럼 뻣뻣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눈은 '모래처럼 까끌거렸고, 때로는 사람 얼굴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악화' 되었다고 하더라. 그래서 전국 각지의 온천을 찾아다니셨구나. 그리고 몸이 비대해서, 아빠인 이방원(태종)이 산책도 하고 운동 좀 하라 권했다는 기록도 있단다. 역시 운동만이 살길인가 보다. 이런 기록을 종합해 볼 때, 세종대왕은 '강직성 척추염'을 앓았을 가능성이 높단다. 이 질병이 척추와 관절에 염증을 일으키는 만성질환인데, 허리뿐만이 아니라 눈에 염증까지 동반하기도 한단다.<br> 가우디는 어린 시절부터 관절염으로 고생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친구 사귀기도 어려워서였는지 홀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하고. 덕분에 혼자 자연을 관찰하며 독창적인 건축세계를 구축하는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평생 관절통을 달고 살다 보니 뼈에 큰 관심을 가졌고, 이러한 관심이 건축 양식에도 반영되었다고 본단다. 가우디는 1926년 노면 전차에 치였을 때, 남루한 옷차림 덕분에 부랑자로 오해를 받아 골든 타임을 놓쳐 사망하게 되었다는데, 이 또한 그의 병약했던 몸상태와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고.<br> 클로드 모네의 에피소드를 제일 눈여겨보았었는데, 미술은 잘 모르지만 잘 모르는 내가 봐도 모네 그림은 너무 아름다우니까. 인상파=모네 정도는 인지하고 있지. 그리고 수련 연작 정도도. 모네는 말년에 시력이 급격히 나빠져서, 그림의 색과 형태를 제대로 구분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갔단다. 그래서 후기작품들은 모네 특유의 아름다움을 잃고, 색상이 왜곡되고 형태가 뭉개져 마치 추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지환 교수는 모네의 이러한 시력 저하와 후기 화풍의 변화를 '백내장' 때문으로 추정한다. 백내장은 수정체가 혼탁해져 시야가 흐려지고 색상 구별 능력이 떨어지는 질환으로, 모네가 빛의 화가였음을 감안했을 때 그의 예술활동에 아주아주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br><br> 결국, 몸이 보내는 고장의 신호들은 삶의 주석 같은 것이겠지. 그 불편함들이 없었다면 멈춰 생각하지도, 돌아보지도 않았을 테니까. 누군가는 그런 고장 덕에 그림을, 누군가는 글을, 또 누군가는 건축을 남긴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남긴 건 없지만. 오늘 이렇게 코를 훌쩍이며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를 다시 떠올리고 누군가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그걸로도 충분하지 않을까.<br> 건강은 앞으로도 더 나빠지겠지. 그래도 몸이 보내오는 신호들에 일일이 불평만 하진 말아야지. 그렇구나, 그렇게 살아가는 거구나, 받아들이고, 받아 적으며 같이 살아갈 밖에.<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958/8/cover150/896051878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9580824</link></image></item><item><author>jhj937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문장 속에서 찾는 것은 - [밑줄과 생각]</title><link>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48</link><pubDate>Mon, 23 Feb 2026 12: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4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62036848&TPaperId=1710864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768/52/coveroff/k06203684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62036848&TPaperId=1710864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밑줄과 생각</a><br/>정용준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02월<br/></td></tr></table><br/>책에 그어진 한 줄의 흔적이 삶이 되어밑줄 긋는 것이 좋습니다. 그 문장이 몸과 마음에 천천히 스며드는 시간도 좋습니다. 정용준 작가의 『밑줄과 생각』을 펼치며 만난 문장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는 행위에 대해 이보다 아름다운 설명을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선릉산책』이라는 단편집으로 처음 만났던 정용준 작가. 『밑줄과 생각』은 오영수문학상과 젊은 예술가상을 동시 수상한 이력에 빛나는 작가가 15년간 소설의 안팎에서 쌓아온 사유의 기록이다. 37편의 산문을 통해 작가는 '읽기와 쓰기가 우리에게 주는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책의 진짜 매력은 단순히 문학론이나 창작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가는 문장과 밑줄을 통해 삶 전체를 관통하는 깊은 성찰을 펼쳐낸다.<br><br>문장 속에서 만난 삶의 진실들밑줄이 그어지면 책은 책 이상이 됩니다. 단어와 문장에 그어진 한 줄의 흔적은 마음에도 그어져 있습니다. 문신처럼 흉터처럼 남아 내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정용준 작가에게 밑줄은 단순한 표시가 아니다. 그것은 삶과 문학이 만나는 접점이며, 타인의 언어가 자신의 언어로 변화하는 순간의 기록이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작가가 나이에 대해 쓴 문장들이었다. <br>지금 이 순간에도 시작하는 육십이 있고 도전하는 오십이 있고 포기하는 스물이 있으며 안주하는 서른이 있다. 마흔이 되어 느꼈던 정체불명의 허무함과 불안감을 토로하면서도, 결국 나이란 숫자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이 담백하면서도 위로가 된다.<br><br>상실과 부재의 의미 특히 인상적인 것은 작가가 '0'에 대해 쓴 철학적 성찰이다. 0은 그냥 0으로서 존재하지만 1-1=0은 상실된 1로서의 0이다. 이별과 상실의 아픔을 수학적 논리로 설명하는 이 문장은 독창적이면서도 깊은 울림을 준다. 원래 0이었던 0과 1이었다 0이 된 0의 차이. 그것이 바로 '혼자'와 '둘이었다가 혼자'가 같지 않은 이유라는 통찰은 실연의 고통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가는 또한 죽음과 애도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사유한다. 애도라는 것은 단순히 슬픔이 아니라 삶 속에서 계속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오스트리아의 한 묘지에서 얻은 이 깨달음은 죽음을 끝이 아닌 다른 형태의 존재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인식을 보여준다.<br><br>감각하는 앎과 살아있는 지식 정용준 작가가 강조하는 것 중 하나는 '감각하는 앎'이다. 지식의 앎이 아니라 감각의 앎이 필요하다. 실제로 행동이 멈추고 새로운 행위를 만들어내는 진짜 앎이 필요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머리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몸과 마음으로 체득하는 진정한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작가는 색맹인 사람이 색을 보게 되는 안경을 쓰는 영상을 보며 자신의 일상을 돌아본다. 세계는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있다. 하지만 그것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느끼는 이에게 세계는 색을 보여주고 그에 걸맞은 감정을 선사한다. 같은 세상을 보면서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br><br>소설과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 작가에게 소설은 '인간의 감정과 마음을 잘 알려주는 도구'다. 밀란 쿤데라의 말을 빌려 '인간을 설명할 가장 탁월한 예술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소설이라고 답할 것이다'라고 단언한다. 이는 단순한 문학적 선언이 아니라, 오랜 시간 소설을 읽고 쓰며 체득한 진심 어린 고백이다. 작가는 존 쿳시, 아니 에르노, 알베르 카뮈, 조지 오웰, 프리모 레비 등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나눈다. 각각의 작가들이 어떻게 인간의 조건을 탐구하고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지를 보여주면서, 문학이 단순한 오락이 아닌 삶의 필수적인 부분임을 증명한다.<br><br>불명료함에 대한 경계와 진정성에 대한 추구 프리모 레비의 영향을 받아 작가는 '불명료함'에 대해 강하게 경계한다. 하지만 모호하다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아무 이유가 없기에 알 수 없는 어려움이다. 복잡한 것과 모호한 것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면서, 글쓰기에서의 정직함과 명료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것을 정확하게 지시할 단어를 찾는 것이 너무 힘들고 선명한 논리와 문장을 쓰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불명료함 뒤에 숨고 싶은 유혹이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료하게 표현하려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br><br>인간다움에 대한 깊은 성찰 '마음을 보여줄 수 없어 인간은 슬프다'는 문장은 작가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통찰 중의 하나이다. 작가는 인간의 복잡성과 내면의 깊이를 이해하면서도, 그것이 타인에게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 한계를 인정한다.우리는 각자의 문제에 있어 완전한 타인일 뿐이다. 이해한다고 해도 결국엔 서로에게 무관할 수밖에 없다.하지만 이러한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절망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다운 행위라고 말한다. 소설과 문학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br><br>문장 속에서 찾은 삶의 의미 정용준 작가의 『밑줄과 생각』은 단순한 문학 에세이를 넘어선다. 그것은 한 인간이 문학을 통해 삶을 이해하고, 자신과 타인을 받아들이는 과정의 기록이다. 작가가 그어온 수많은 밑줄들이 결국 삶의 밑줄이 되어,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다시 태어날 순 없다. 나 아닌 다른 것이 될 수도 없다. 그러나 다시 할 순 있다. 이 문장은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성숙한 인식을 보여준다.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것. 이 책이 전하는 중요한 메시지다.<br> 책을 덮으며 나는 내가 그어온 밑줄들을 다시 살펴보게 된다. 그 밑줄들이 단순한 표시가 아니라 삶의 흔적이라는 것을, 그것들이 모여 결국 나를 만들어간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정용준 작가의 말처럼, '그 언어와 내 언어가 섞이고 남의 언어를 닮은 새로운 나의 언어가 생기는' 순간들이 바로 독서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이 책은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깊은 공감을, 문학이 낯선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발견을 선사할 것이다. 무엇보다 한 줄의 문장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 동안 나 역시 수많은 밑줄을 그었다. <br>그 밑줄들이 언젠가 돌아본 나의 삶에 어떤 의미로 남길 바란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768/52/cover150/k06203684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7685241</link></image></item><item><author>jhj937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이 세상의 모든 사랑은 - [단 한 사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47</link><pubDate>Mon, 23 Feb 2026 12: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4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82935719&TPaperId=1710864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496/81/coveroff/k38293571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82935719&TPaperId=1710864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단 한 사람</a><br/>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09월<br/></td></tr></table><br/>어떤 사랑은 끝난 뒤에야 사랑이 아니었음을 안다. <br>어떤 사랑은 끝이 없어서 사랑이란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br>어떤 사랑은 너무 멀리 있어 끝이 없다.<br>어떤 사랑은 너무 가까이 있어 시작이 없다.<br> 최진영 작가의 『단 한 사람』이라는 소설을 만난 건 2023년의 늦은 가을로 기억합니다. 단 한 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수명중개인'으로서의 삶을 인지하게 된 목화. 할머니 임천자는 이 능력을 기적으로 믿었고 엄마 장미수는 저주로 여겼지만, 목화는 거부할 수 없는 세습된 이 운명을 감내하고 받아들이며,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해 갑니다.<br> 수많은 죽음 속에 살아진 단 한 명의 삶 앞에, 한 인간에게 선택과 구원을 내몬 신은 무심했고, 이 역할과 능력을 부여한 나무는 말이 없습니다. 수명중개인으로서 한 사람을 살리고서는, 어지러움과 구역질로 괴로워하는 목화가 내뱉은 저 문장 앞에 저는 오래도록 멈춰 서있었습니다.<br><br>어떤 사랑은 끝난 뒤에야 사랑이 아니었음을 안다.  오래된 이별을 떠올립니다. 그때는 분명 사랑이었는데, 사랑이라 믿었는데. 마주하고 있어도 보고 싶었고, 만날 나날이 기다려졌고, 빈틈없이 함께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뾰로통했던 순간들의 감정이 이별 후에야 내가 만든 이기심이며 외로움이었다는 걸 이제는 알겠습니다. 그 사람을 사랑했던 건지, 아니면 그저 사랑을 원했던 것인지. 그도 아니라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랑했던 것뿐인지. 내가 했던 사랑이 목적 없이 그저 사랑이면 되겠구나 믿고 싶었던 건 아닌가 되돌아보게 됩니다.<br><br>어떤 사랑은 끝이 없어서 사랑이란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아버지의 오토바이 뒷자리가 그렇게 싫었습니다. 동생과 집에서 놀다 찬장의 유리가 손등에 박혀 펑펑 울던 10살의 남자아이는, 아프고 놀라 울면서도 병원으로 달려가는 그 뒷자리가, 바람에 흩날리는 아버지의 등자락이 그렇게 부끄러웠습니다. 남루한 가정사정에도 내색 한 번 하지 않아 어른스럽다던 칭찬을 달고 살던 그 아이는 어느새 자라 아빠가 되었고, 열이 오른 딸을 업어 차에 앉히며 그 시절의 오토바이 뒷자리를 떠올렸습니다. 아이에게 끝없이 주고 싶은 지금의 마음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이제는 압니다.<br><br>어떤 사랑은 너무 멀리 있어 끝이 없다. 사랑은 질문이라 믿습니다. 궁금해하고, 관심을 갖고, 그로 인해 지금은 어디에 있을지, 무얼 하고 있을지, 어떤 생각을 할지, 무엇을 걱정할지 자꾸 알고 싶어지는 마음 말이죠. 그런데 질문하지 못하는 사랑은 너무 멀리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표현하지 못한 마음이 영원히 그 자리에 머물며, 밖으로 꺼내지 못한 고백, 전하지 못한 진심은 안타깝게도 그대로 마음속에 쌓여갑니다. 말하지 못한 사랑은 변질되지도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그 사람과의 물리적인 거리는 좁힐 수 있을지언정, 표현하지 못한 마음의 거리는 더 멀어져만 갑니다. 그래서 그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완성되지도, 정리되지도 않은 채 그렇게 부유합니다.<br><br>어떤 사랑은 너무 가까이 있어 시작이 없다. 아침마다 어머니는 ‘자네 밥은 먹었는가 ‘, ’ 퇴근은 제때 하는가 ‘, ’ 시국이 어지러우니 술자리도 조심하고 매사에 말도 조심하시게 ‘ 라며 안부를 건네십니다. 바쁨의 핑계로, 멀지 않은데 사신다는 안도로, 매일이 반복되는 지겨움으로 인해 짧은 이모티콘 하나로 그 문장들을 밀어두다 이내 알아챘습니다. 별일 없이 무탈하게 아들의 하루가 채워지길, 하루의 무게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무겁기를, 자주 보진 못하지만 제 삶의 가장자리를 지켜주겠다는 마음이시란 걸 말이죠. 선언적인 시작 없는 이 사랑을, 최진영 작가가 알아채고 제게 문장으로 전해주었습니다.<br><br>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은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내 마음의 헛헛함으로 인해 너무 멀거나 너무 가까워서 알아채지 못한 건 아닐는지요. 끝난 뒤에야, 지나간 뒤에야, 오래도록 아프고 난 뒤에야 사랑이었다고, 사랑이 아니었다고 겨우 이름을 붙이는 건 아닐는지요.<br><br>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이 세상의 모든 사랑은놓쳐버린 줄 알았던 후회에도다 흘려보냈다 믿었던 허탈함에도온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요.<br>너무 멀거나 가까워 알아채지 못했을 뿐사랑은 언제나 먼저 와 있고우리는 그걸 오래 지나서야하나의 문장, 하나의 추억으로되돌아보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496/81/cover150/k38293571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4968136</link></image></item><item><author>jhj937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긴긴 세월을 살아낸 비결은 -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 명함만 없던 여자들의 진짜 '일'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44</link><pubDate>Mon, 23 Feb 2026 12: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4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52830924&TPaperId=1710864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747/63/coveroff/k55283092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52830924&TPaperId=1710864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 명함만 없던 여자들의 진짜 '일' 이야기</a><br/>경향신문 젠더기획팀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12월<br/></td></tr></table><br/>그는 답답할 때면 들로 산으로 다닌다. "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이상해져부러. 아무 생각도 안 하고 들로 나가. 나가면 마음이 편항께. 정 답답하면 저그 나가서 소나무하고 이야기를 혀. 소나무야 소나무야 너는 어찌 이리 건강하냐. 나는 마음이 이래이래. 소나무하고 말하고 갈대하고 말하고... 나는 진짜 듣도 안 하고 보도 안 하고 그라고 살았네. 그래야 쓰겠다 싶어서." - 김춘자 님<br>『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했냐』는 제목부터 가슴을 울리는 책입니다. 경향신문 젠더기획팀이 수십 명의 6070 여성들을 만나 기록한 인터뷰집인데요. 평생 일했지만 세상이 '일'로 인정하지 않았던 고령 여성들의 삶을 담고 있습니다. 바깥일과 집안일을 오가며 평생을 'N잡러'로 살았던 여성들, 이름보다는 누구의 아내로, 엄마로 불린 여성들에게 명함을 찾아주고자 시작된 여정이 담겨 있습니다.<br> 새벽같이 일어나 밥하고, 애 보고, 장 보고, 일터로 나서고, 또 어쩌다 동네 일까지 도맡아 하지만 직업란에는 늘 ‘무직’이라고 쓰여야 했던 사람들. 국숫집 사장님으로, 탄광 대신 선탄장으로, 아이 셋을 키우면서도 자식들 통장보다 머릿속을 채워주고 싶었던 엄마들입니다. 이는 각자의 삶을 살면서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자기 자리를 지켜온, 우리 주변의 이야기입니다.<br> 김춘자 님도 그렇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꾸밈없이 날것 그대로입니다. 답답할 때면 들로 나가 소나무와 갈대에게 마음을 털어놓아야만, 그렇게 해야만 이 힘겨운 삶을 견딜 수 있다는 이야기. 화려한 이력서도 명함도 없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견뎌온 사람으로서의 진솔한 저 고백 앞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br><br>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이상해져부러. 생각이 마음을 이상하게 만듭니다. 너무나 놀라운 표현이라 자꾸 쳐다봤습니다. 생각이란 녀석은 정말 못된지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 마음이 무거워지고, 때론 숨이 막혀 세상을 좁게 만들기도 하지요. 특히나 이 시대를 살아낸 우리의 어머니들에게 주어진 생각의 무게는 더욱 묵직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살아온 시간이 뭐였을까' 하다가 그럼 '앞으로는 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지는 순간들 투성이일 거예요. 집안을 돌봐야 한다는 생각,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한다는 생각, 남편을 뒷바라지해야 한다는 생각, 나이 든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생각들이 층층이 쌓여, 숨 한 번 들이쉬는 순간에도 겹겹이 밀려옵니다. 이 모든 게 뒤엉킬 때 마음이 이상해집니다. 김춘자 님도 이런 생각들이 마음을 '이상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신 것 아닐까요. 병들게 하고, 옥죄고, 본래의 모습에서 멀어지게 한다고. 자책은 다짐이 되고, 다짐은 다시 체념이 되어 갑니다. 그래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로 합니다. 산으로 들로 나가기로 하죠. 이건 도피가 아니라 치유의 방법일 겁니다.<br><br>정 답답하면 저그 나가서 소나무하고 이야기를 혀. 소나무야 소나무야 너는 어찌 이리 건강하냐. 소나무와 대화하는 김춘자 님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자연을 친구로 여기고 소나무에게 말을 걸며, 갈대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듯이요. '너는 어찌 이리 건강하냐'라고 묻는 그 목소리에서 부러움과 경이로움을 동시에 읽습니다. 소나무의 건강함이 부럽고 그 생명력이 경이로운데, '이래이래' 아픈 내 마음과 대비되는 그 푸르름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정을 실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 대화는 단순한 부러움에서 끝나지 않는 듯합니다. 소나무의 그런 모습을 통해 자신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바람이 담겨 있겠죠. 자연과의 대화를 통해 마음의 결을 만지고 내 삶의 고단함을 고르는 일. 우리가 잊고 사는 능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디 하나 기댈 곳 없는 현실일지라도 자연과 대화하고, 나무와 친구가 되고, 바람과 인사를 나누는 능력. 김춘자 님은 이런 방식으로 자신만의 마음 둘 자리를 가꾸어 오셨나 봅니다.<br><br>나는 진짜 듣도 안 하고 보도 안 하고 그라고 살았네. 그래야 쓰겠다 싶어서. 이 마지막 이야기에서 세월이 묻은 지혜를 발견합니다. 듣도 안 하고 보도 안 하고 살았다는 것.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남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살았다는 뜻이겠죠. 세상의 잡음을 차단하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다는 의미일 겁니다. 무관심이 아니라 간절함이었을지 모릅니다. 살기 위해 외면해야만 했던 시절은, 견디고 또 견디며 살아낸 사람이라면 알겁니다. 김춘자 님의 이 말에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을 품고 살아온 삶의 무게가 들어 있습니다. 무심한 척 살았고 덤덤하게 지나온 듯 보이지만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고락이 있었는지 우리는 다 알 수 없어요. 그래서 삶이 고되었다는 말보다, 이렇게 살아냈다는 말이 더 깊게 다가옵니다. <br><br>긴긴 세월을 살아낸 비결은<br>거창한 생각이나 삶의 이정표가 아니라<br>그날그날의 내 마음이 상하기 전에<br>들로 산으로 나서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br>소나무에게 말을 걸고갈대에게 마음을 덜며그렇게 오늘 하루를 건너는 일<br>그런 날들이 쌓여<br>지금의 당신이 되었고<br>지금의 나와 우리를 만들었을 겁니다<br>말없이 세월을 견디며길을 터고 곁을 내어주신당신들의 삶에 조용히 감사를 전합니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747/63/cover150/k55283092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7476317</link></image></item><item><author>jhj937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우리는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 [일터의 설계자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43</link><pubDate>Mon, 23 Feb 2026 12: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4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02831293&TPaperId=1710864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923/34/coveroff/k70283129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02831293&TPaperId=1710864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일터의 설계자들</a><br/>나하나 지음 / 웨일북 / 2023년 01월<br/></td></tr></table><br/> 흔한 주간회의 풍경. 당면한 과제들은 넘쳐나고, (누군가가) 지시하고 (또 다른 누군가가) 지시받은 항목들은 끝이 없습니다. 잘했다, 잘못했다와 왜 그랬니와 어쩔 거니, 이래야 하지 않겠니가 난무합니다. 어찌 되었건 이래저래 회의는 흘러가죠. <br> 회의 말미. 딱딱하고 서걱거리기만 한 회사생활에 자그마한 활력이라도 불어넣어 보고자 팀원 한 명이 '스몰토크'를 주기적으로 하자는 제안을 합니다. 업무 이야기만하지 말고 월에 한 번쯤? 좀 멀어도 괜찮으니 맛집이라도 찾아가서 그냥저냥 이렇게 저렇게 사는 이야기라도 해보자고 말이죠. <br> 너무 좋은 제안 같습니다. 그간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바라보았는지, 개인적인 어려움이나 일상에 변화는 없는지, 여가시간에 관심 갖고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 새로 알게 된 트렌드나 재밌는 정보들을 공유하면서 말이죠. <br> 다들 좋다는데, 묵직한 펀치가 하나 날아듭니다. '근데 그런 건 평소에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 다들 아무 말 없는 걸 보니 비슷한 생각들을 하고 있나 봅니다. <br> 스몰토크, 중요합니다. 얼마나 중요한지 보시죠.<br> 소소한 잡담은 유대 관계를 형성하고, 이는 신뢰로 발전할 수 있죠. 잡담과 수다의 특징은 하고 난 후 내용은 생각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다 잊어버리고 그 사람과 내가 같은 시간을 보냈다는 유대감만 남지요. <br> 그런데 사실 일할 때는 그 유대감이 되게 중요하거든요. 밥이라도 한 번 먹어본 사람과 일하는 것과 소소한 얘기도 한 번 안 해본 사람하고 갑자기 일하는 거랑 다르잖아요. 그런 이유로 잡담을 수시로 많이 나누게 해요. 그 안에서도 정보들이 오가고요. 잡담을 많이 나누면 좋은 게, 보고를 하거나 결정해야 할 때 무겁지 않게 얘기할 수 있더라고요. 사전에 가볍게 물어봤으니 조금이라도 편하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죠. 그래서 잡담이 경쟁력이라고 생각해요.  - 홍성태, 《배민다움》<br> 저 문장은『일터의 설계자들』이라는 책의 내용입니다. '배달의 민족'으로 유명한, 우아한형제들의 피플실 팀장이신 나하나라는 분이 쓴 책인데요. (링크드인을 잠시 살펴보니 아직도 우아한형제들에 계시네요.) 9년간 우아한형제들에서 '배민다움'이라는 조직 문화를 만들어온 경험을 바탕으로, 일 문화가 어떻게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풀어쓴 책입니다.<br>잡담 속에 숨어있는 조직의 힘 우리는 언제부터 직장에서의 잡담을 비효율적인 것으로 여기게 되었을까요? 성과와 효율만을 추구하는 조직 문화 속에서 잡담은 마치 시간을 낭비하는 행위처럼 취급되는 듯합니다. <br> 하지만 저자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합니다. 잡담과 수다의 특징은, 하고 난 후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그 사람과 내가 같은 시간을 보냈다는 유대감이 남는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유대감이 일할 때 아주아주 중요하다고요.<br> 잡담이 유대감을 만들고, 유대감은 동료들끼리 일하는 데 있어 경쟁력을 만든다는 이야기는 단순해 보이지만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보고를 하거나 결정해야 할 때 무겁지 않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죠. 사전에 가볍게 물어봤으니 조금이라도 편하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테니까요. <br> 이는 단순한 대화 기법이 아니라 조직을 운영하는 데 있어 중요한 철학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많은 조직에서 소통의 문제는 '무엇을 말할지'보다 '어떻게 말을 꺼낼지'에서 시작되니까요. 잡담이라는 완충지대가 있을 때 비로소 진짜 중요한 이야기들도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다고 봅니다.<br>관계의 온도를 높이는 작은 실천들 우아한형제들의 일 문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지혜는 '관계의 온도'를 조절하는 섬세함이었습니다. 책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사례들을 보면, 구성원들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기 위해 의도적이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는데요. <br> 예를 들어 호칭을 '님'으로 통일하거나 영어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단순히 수평적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신규 직원이 조직에 적응할 때 가장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이름과 직급을 잘 기억했다 칭하는 일이고, 실수로 직급을 낮게 불러 불편한 감정이 생기지 않을지 걱정하더라는 설명이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br>소나기 말고 가랑비처럼 책에서 기억에 남는 표현 중 하나는 '일 문화는 소나기 말고 가랑비처럼'이라는 내용입니다. 우리 다운 행동이 무엇인지 기업이 강요하기만 하면 직원들은 '이제 그만~' 하고 귀를 닫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무언가로 자연스럽게 행동을 유도한다면 좀 다르지 않을까요?<br> 문화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미는 것이니까요. 강요는 억지로 따르게 할 수 있지만, 진정한 내재화로 이어지진 않습니다. 우아한형제들 사무실 바닥 곳곳에 새겨 두었다는 '인사받고 싶으면 먼저 인사하자'같은 문구들이 바로 이런 가랑비 접근법을 고민한 결과들이 낳은 산물일 겁니다.<br>100-1=0의 철학 저자가 강조하는 또 다른 중요한 개념은 '100-1=0'입니다. 감이 오시죠. 네, 오실 겁니다. 아무리 좋은 일 문화를 만들어 놨다고 하더라도, 단 하나의 실수로 제로가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일 문화가 얼마나 섬세하고 지속적인 관리를 필요로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인데요. 하지만 이것이 조직문화를 가꾸어 나가는 사람들에게 주는 두려움의 경고는 아닙니다. 오히려 간과해서는 안 될 가치가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죠.<br> 저자는 '좋은 일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 묻는다면, 직원에 대한 애정과 존중의 마음이라고 대답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관리가 아닌 관심. 이는 조직 운영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보였습니다. 통제와 관리 중심의 전통적 조직 운영에서 벗어나, 관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적 접근법으로의 변화인 것이죠. <br> (부러웠던 부분인데) 피플실이라는 조직은 매주 모든 부서를 찾아다니며 점심 사주고 커피사주는 게 핵심업무이고, 다양한 채팅채널에서 대화가 끊이지 않게 하는 것이 주된 과업이라고 하더군요. 진심을 다해 구성원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려는 것이죠. 진정한 내부영업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저 밥사주는게 부러웠다는 것만은 아닙니다 ^^;;; )<br>태도가 경쟁력이다 책을 읽으며 계속 떠오른 생각은 결국 태도의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저자 역시 인터뷰에서 최인아책방의 최인아 대표 말을 인용하며 '태도가 경쟁력'이라고 강조합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와 시스템이 있어도,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무용하다는 것이죠. 반대로 완벽하지 않은 환경일지라도, 올바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겁니다.<br>마음에서 시작되는 일의 의미『일터의 설계자들』을 관통하는 핵심은 결국 '일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가'입니다. 모든 것의 근원은 '일하는 사람의 마음'이고, 뻔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모든 건 마음에서 출발하니까요.<br> 하지만 그저 마음가짐의 중요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성원들이 어떻게 구체적인 실천으로 옮기도록 도울 것인가, 어떻게 지속 가능한 시스템으로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실용적인 방법들이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br><br> 그래서 우리는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그 ‘스몰토크’의 자리로요.  어떤 회의보다도, 어떤 의사결정보다도 중요한 것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이니까요.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 사이엔 온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일터의 설계자들』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지만 무심히 지나쳐온 것들과 작은 실천들이 모여 조직을, 일하는 사람을, 그리고 일 자체를 바꾼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br> 그런 의미에서 ‘잡담은 경쟁력’이라는 말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잡담은 우리가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여는 첫 번째 걸음이고, 무거운 말을 가볍게 꺼낼 수 있는 통로가 될 테니까요. 팀원들과 한 달에 한 번 맛집을 찾아 수다를 떨겠다는 그 제안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일할 수 있게 만드는 ‘가랑비 같은 문화’의 시작일지 모릅니다.<br><br> 회사생활에 있어 최고의 복지는 동료라 믿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회의가 (있다면) 끝나고 잠깐의 잡담이라도 나누어 보시는 건 어떨까요.<br> 그게 곧 우리가 더 오래, 더 잘, 함께 일할 수 있는 방법일 겁니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923/34/cover150/k70283129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9233428</link></image></item><item><author>jhj937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사랑을 말하고 상처를 만지며 용기를 건네다 -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41</link><pubDate>Mon, 23 Feb 2026 11: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4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3872353&TPaperId=1710864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209/36/coveroff/893387235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3872353&TPaperId=1710864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a><br/>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01월<br/></td></tr></table><br/>"다만 깊이 사랑하는 모자 모녀끼리의 눈치로, 어느 날 내가 문득 길에서 어느 여인이 안고 가는 들국화 비슷한 홑겹의 가련한 보랏빛 국화를 속으로 몹시 탐내다가 집으로 돌아와 본즉 바로 내 딸이 엄마를 드리고파 샀다면서 똑같은 꽃을 내 방에 꽂아 놓고 나를 기다려 주었듯이 그런 신비한 소망의 닮음, 소망의 냄새 맡기로 내 애들이 그렇게 자라 주기를 바랄 뿐이다."<br> 박완서 작가의 문장에는 언제나 일상의 기적과 삶에서 마주하는 깨달음이 스며있습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국화를 마음속으로 탐내고 있을 때, 딸이 똑같은 꽃을 사와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이 작은 기적. 이것이 바로 박완서 작가가 말하는 신비한 소망의 닮음이겠지요.<br> 이 문장에서 작가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이가 잘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채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연스럽게 배려할 줄 아는 아이로 자라기를 바라는 부모의 간절한 마음 말이죠. 엄마가 원하는 것을 딸이 알아서 준비하듯,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따뜻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거죠. 이런 소망의 냄새를 맡을 줄 아는 아이들로 자라주기를 원하는 작가의 마음이 닿아, 저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내 아이를 바라보게 됩니다.<br><br>박완서 작가와의 늦은 만남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그전까지는 박완서 작가의 작품을 단 한 편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오래된 학창 시절에, 국어 시험 지문 속에서 스쳐 지나간 이름으로만 기억하고 있었죠. 그러다 처음 만난 책이 바로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였습니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글마다 담긴 마음이 얼마나 넉넉하고 따스하던지요. 때로는 어머니의 다정한 다그침처럼 마음을 톡톡 두드려주기도 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밑줄을 긋고 또 그으며, 책 한 권이 꽤 지저분해졌습니다. 하지만 그 흔적들마다 작가의 말에 깊이 공감했던 순간들이 새겨져 있어, 그 또한 소중한 기록으로 남게 되었습니다.<br> 그래서였는지, 문득 작가님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습니다. 에세이로 처음 만났던 감동과, 이후 하나씩 읽어 내려간 여러 작품들에서도 감명을 받기도 했고요. 교육열이 높았던 작가의 어머니 밑에서 성장해 개성에서 서울로 상경하기도 하고, 서울대에 입학한 해에 6.25 전쟁으로 피난길에 올라야 했던 삶. 결혼과 육아를 병행하며 아내이자 엄마로 살아가다, 마흔이 넘어서야 비로소 등단할 수 있었던 그 시간 속엔 얼마나 많은 감내와 울분, 서러움이 켜켜이 쌓여 있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글을 쓰지 않고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었을 그 마음들이 조금씩 이해되더라고요. 더욱이 남편과 사별하고 몇 달 지나지 않아 하나뿐인 아들마저 떠나보낸 어머니의 마음은, 차마 다 헤아릴 수조차 없을 것 같았습니다.<br> 박완서 작가에게 글쓰기는 단지 직업이라 부르기 어려운 무엇이었을 겁니다. 그것은 박완서 작가가 살아내기 위한 방식이었고, 가슴속에 쌓인 상처를 어루만지는 치유의 방식이었으며, 세상과 마주하고 또 자신을 지켜내기 위한 창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늦깎이로 문단에 나섰던 그녀에게는 젊은 작가들과는 또 다른 단단한 무게감이 있었을 겁니다. 살아온 세월만큼 품은 이야기가 있었고, 그 세월만큼 깊어진 마음이 있었을 테니까요. 그런 지점이 쌓여 만든 문장들이 너무 좋았습니다.<br><br>결과보다는 여정을"부모가 자식에게 줘야 할 것 중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이 아닐까. 완성되고 구비된 물건이나 행복이 아니라 그것을 획득하기 위한 과정 말이다."<br> 박완서 작가의 이 문장을 읽고 나면, 문득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요즘 우리는 얼마나 결과에만 마음을 빼앗긴 채 살아가고 있는지, 아이에게 좋은 성적을, 좋은 대학을, 좋은 직장을 안겨주려 애쓰면서도 정작 그 과정에서 아이가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마음으로 성장해 가는지를 놓치고 있지는 않았을까 돌아보게 되거든요. 박완서 작가는 ‘완성된 무언가’를 건네는 대신, 스스로 얻어가는 ‘과정의 시간’을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이건 단순히 교육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겠죠.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결국 더 중요한 건 ‘어디에 도달했는가’보다 ‘어떻게 걸어왔는가’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정말 추구해야 할 건, 어쩌면 그 여정 자체일 테니까요.<br><br>답답함에 맞서는 용기"그래 도전을 하려거든 철저히 해라. 속 빈 강정인 기성 세대에게 너희들의 알찬 내실로 맞서거라. 팝송을 들으면서라도 좋으니 지독하게 공부하고 밤새워 명작을 읽고 진지하게 고민하거라. 그리고 답답한 일이 있거든 답답해하거라. 답답한 것과 맞서거라. 답답한 것을 답답한 줄 모르는 바보야말로 구제할 길 없는 바보가 아니겠는가."<br> 1970년대, 혼란과 변화의 한가운데를 지나며 박완서 작가가 건넨 이 말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깊은 울림을 줍니다. 작가는 단순히 젊은 세대를 다그치지 않습니다. ‘도전하라’는 말속에도, ‘철저히’라는 당부가 따라붙습니다. 그저 흉내만 내지 말고, 정말로 지독하게 고민하라고요. 밤새워 명작을 읽고, 팝송을 들으면서라도 괜찮으니 진지하게 생각하라고요.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남는 건 '답답한 일이 있거든 답답해하거라'는 구절이었습니다.<br> 참 이상하죠. 살다 보면 우리는 점점 무뎌집니다. 답답한 걸 답답하다고 말하는 법을 잊게 되고, 불편한 현실도 어느새 ‘원래 그런 거지’ 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런데 박완서 작가는 말합니다. 그 감각을 놓치지 말라고 말이죠. 세상이 답답할 땐, 답답해할 줄 알아야 한다고요. 그 답답함과 마주 서는 용기야말로 살아 있는 삶의 태도라고 말입니다.<br> 그 한마디에, 문득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 답답한 것을 답답하다고 느끼고 있는가. 그 무감함 속에 안주하며 살고 있진 않은가. 박완서 작가의 문장은 오늘도 그렇게 우리 마음 한구석을 조용히 건드리고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진정 살아 있는가 하고요.<br><br><br><br>그래서 오늘도 박완서 작가의 문장을 다시 펼쳐 듭니다.<br>다정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결과보다 과정을 더 오래 붙들었으면 하는 바람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제 목소리를 내라는 용기<br>우리가 살아가는 하루는 생각보다 낡고 거칠며 삐걱거립니다.때로는 그 하루를 무사히 버텼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다독여야 하는 날들이 있지요.<br>그럴 때마다 삶을 더 잘 살아가기 위해우리가 미처 챙기지 못했던 마음의 조각들을작가가 문장으로 조용히 건네주었습니다. <br>쉽게 말하지 못했던 마음이 거기 있었고세상이라는 무게에 눌리면서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단단한 이유도 그 속에 있었습니다.<br>박완서 작가는 거창한 이상이나 철학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오히려 너무 익숙해서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 속 장면들로사랑을 말했고, 상처를 어루만졌으며, 용기를 건넸습니다. <br>그런 문장들을 만났기에 조금은 더 따뜻하게 하루를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조금 더 조심스럽게 사람을 대하고 조금 더 진심을 담아 마음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br> 그건 아마, 박완서 작가가 남긴 선물일 겁니다.  책장을 덮은 뒤에도 오래도록 곁을 지키는 그 문장의 숨결.  그 안에 스며든 삶이, 여러분의 하루에도 채워지길 바랍니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209/36/cover150/893387235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2093668</link></image></item><item><author>jhj937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내가 가진 색은 - [무채색 삶이라고 생각했지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40</link><pubDate>Mon, 23 Feb 2026 11: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4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22938519&TPaperId=1710864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397/40/coveroff/k82293851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22938519&TPaperId=1710864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무채색 삶이라고 생각했지만</a><br/>김동식 지음 / 요다 / 2024년 02월<br/></td></tr></table><br/> 무채색. 대충 감으로 알지만, 사전을 살펴보니 '색상이나 채도는 없고 명도의 차이만을 가지는 색'이라고 합니다. 흰색, 검정, 회색. 색이 아닌 거죠. 동네의 학원가를 지나다 보면, 온통 무채색으로 무장한 학생들에 둘러 쌓일 때가 있습니다.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기 시작하는 대부분의 초등 고학년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 유독 그 시기에 주야장천 찾는 색이 아닌가 싶습니다. 색이 아니라서 그런지 뭔가 밋밋하고 단조로운 인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br> 그래서일까요. 『무채색 삶이라고 생각했지만』이라는 제목에서 반전의 여운이 느껴졌습니다. 저처럼 무미건조하고 둥글둥글하거나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어, 이렇다 할 색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한 분들이라면, 이 책이 가진 울림이 결코 작지 않을 거라 직감했습니다.<br> 김동식 작가의 첫 에세이집인 이 책은『회색 인간』이라는 데뷔작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가가 처음으로 자신의 내밀한 개인사와 작가로서의 생활을 기록한 작품입니다. 중학교 중퇴 후 10년 넘게 성수동의 주물 공장에서 일하며 살다가, 온라인 게시판에 쓴 단편소설들로 등단하게 된 작가 김동식. 정통(?)적이지 않은 경로로 세상과 연결된 이 작가의 고백은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소설처럼 읽히고, 믿기 어려운 기적 같은 서사를 품고 있습니다.<br>"내게 글쓰기는 친구였고, 행복이었고, 구원이었다. 글쓰기가 없었다면 난 성수동 지하의 지박령으로 살다가 죽었을 거다. 죽을 때까지 내가 어떤 색을 가진 사람인지 보지도 못하고, 나는 왜 사는지 그 이유도 모른 채로 눈을 감았을 거다. 몇 번을 말해도 부족할 만큼 내게 글쓰기는 소중하다"<br>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색’이라는 표현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작가는 글쓰기를 만나기 전까지 자신이 어떤 색을 가진 사람인지조차 몰랐다고 고백합니다. 그 말속에는 스스로를 무엇이라 설명할 수 없었던 시절의 무게와, 자신에게조차 무관심했던 시간의 단절이 담겨 있는 듯했습니다. 그러다 글을 쓰면서 비로소 자신의 색을 자각하게 된 거죠. 무채색이라 여겼던 삶 속에 스며든 ‘글’이라는 하나의 색. 그것이야말로 작가가 찾아낸 삶의 빛이었을 겁니다.<br> 김동식 작가의 문장은 멋을 부리지 않습니다. 화려한 수사나 젠체하고 어려운 말이 없죠. 오히려 일상의 사소한 장면에서 길어 올린 진심 어린 말들이 더 묵직하게 마음을 두드립니다. ‘마카롱 같은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그의 말처럼,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떠오르고, 보면 괜히 웃음이 나고 달달하게 위로가 되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는 작가의 마음이 전해집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오래도록 곁에 남는 이야기. 어쩌면 그래서 그의 문장은 결국 다양한 색채의 옷을 입고 독자의 마음을 물들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br> 그렇게 작가의 글쓰기를 향한 고백에 잠시 머물던 마음은, 어느새 ‘사랑’이라는 단어 앞에서 다시 멈추게 됩니다. 그가 말하는 사랑은 익숙한 표현은 아닌데요.<br>"궁금해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을 때 설명하기 위한 수단이 바로 사랑이구나. '사랑하니까 궁금하다'가 유일하게 말이 되는 설명이었다. 생산성 없는 궁금증을 설명하기 위해 사랑이 쓰인다면, 사랑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생산성 없는 궁금증이 쓰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내게 사랑이란 서로를 궁금해하는 일이다."<br> 문득 오래된 누군가를 떠올려봅니다. 그 사람이 왜 좋아졌는지, 왜 계속 생각났는지, 뾰족하게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 사람의 하루가, 그 사람의 기분이, 별것 아닌 그의 말투나 표정까지 궁금했던 날들. 궁금해하는 마음만으로 하루를 채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작가가 말하는 사랑이었구나 싶었습니다.<br> 사랑은 무언가를 해주거나 들어주기보다, 먼저 그 사람의 삶에 관심을 가지는 일일 겁니다. 알고 싶어 하고, 다가가려 하고, 그 마음의 결을 헤아려 보려는 관심 말이죠. 김동식 작가가 말하는 ‘생산성 없는 궁금증’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더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br> 우리는 자주 쓸모나 성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감정조차 효율의 언어로 설명하려 드는 이 시대에서, 설명되지 않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 문장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를 궁금해한다는 것,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야말로 진짜 사랑이지 않을까요.<br>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쩌면 조금 더 온기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br> 그러면서 다시, 한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단단히 붙들고 살아가기 위해선 어떤 기반이 필요할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자존감'이라는 단어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 자존감은 이 한 문장에서 잘 드러나 있었습니다.<br>"남들보다 더 좋아하고 잘하고 잘 알게 되는 일이 아마도 한 사람의 인생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자존감의 기틀이 되는 게 아닐까"<br> 김동식 작가는 ‘오락실에서 게임을 잘했던 기억’을 말하며, 자신이 잘하고 좋아했던 일에서 자존감의 뿌리를 찾았다고 고백합니다. 게임에 젬병이인 저로서는 부러운 능력입니다만, 남들이 보기에 대단한 업적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은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나는 뭘 잘하고, 뭘 좋아하고, 그렇기에 무엇이든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요. 그것이 그를 지탱해 준 겁니다.<br> 이 문장을 읽고 나니, 어린 시절 열심히 큐브를 돌리다 여섯 면이 딱 맞아떨어진 기억, 책벌레라는 별명이 듣기 좋아서 책을 이고 지고 다녔던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지금의 나를 만든 건 그때의 그 '작지만 확실한 내가 잘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적 성취가 아니라, 누구의 인정에 앞서 스스로를 지지할 수 있는 감각 같은 것이죠. 그 감각이 있기에 우리는 도전할 수 있고, 실망한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김동식 작가는 그런 마음을 글쓰기로 길어 올렸고, 작가가 길어 올린 그 문장을 통해 우리는 각자의 기억을 더듬게 됩니다.<br> 글쓰기를 만나기 전의 김동식은 공장에서 '기계의 부품' 같은 존재였지만, 글쓰기를 만난 후에는 '대체될 수 없는 고유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무채색의 삶에서 쨍한 채도를 가진, 나다운 삶으로의 전환. 글쓰기라는 매개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세상과 소통하며, 타인에게 위로와 즐거움을 전해주는 일. 그 과정이 작가에게는 자신이 가진 색깔을 발견하는 일이었을 겁니다.<br><br>『무채색 삶이라고 생각했지만』은 결국 김동식 작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자 우리에게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입니다. 작가는 말합니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글을 썼다고요. 글쓰기는 작가에게 삶의 이유이자 방향이었고,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였으며, 가장 오랜 친구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br>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가 무채색이라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인지도 모릅니다.고단하고 지친 하루의 끝에 잿빛 골목을 지나며때로는 나만 색이 없는 것 같아 서운한 날도 있겠죠. <br>하지만 누군가가 건네는 진심 어린 한마디또는 스스로에게 귀 기울여보는 짧은 한순간이 우리 삶에 색을 불러오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br>내가 가진 색을 남들과 비교하다가반짝이지 않는다는 걸 발견하더라도먼지 같은 일만 하다 먼지에 묻혀색이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여길지라도내가 나로 존재하기에 분명 그 색은 내 안에 있을 겁니다.<br>그러니 무채색이라 여긴 삶에도 어느새 색이 스며들고 있음을누군가의 문장을 통해 우리는 천천히 알아차리게 될지도 모릅니다.<br>글쓰기로 자신의 삶을 물들인 김동식 작가처럼우리도 각자의 방식으로 색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겠죠.<br>그리고 그 색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하며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것인지 깨닫는 순간이 온다면그건 분명 우리가 '살아있다' 말할 수 있는어떤 단단한 증거가 되리라 믿습니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397/40/cover150/k82293851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3974053</link></image></item><item><author>jhj937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삶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 숲속의 현자가 전하는 마지막 인생 수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39</link><pubDate>Mon, 23 Feb 2026 11: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3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22837807&TPaperId=1710863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269/12/coveroff/k822837807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22837807&TPaperId=1710863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 숲속의 현자가 전하는 마지막 인생 수업</a><br/>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지음, 토마스 산체스 그림, 박미경 옮김 / 다산초당 / 2022년 04월<br/></td></tr></table><br/> 여기, 스물일곱 살에 역대 최연소 임원이 된 청년이 있습니다. 해변가에는 멋진 집을 가지고 있고 회사에서는 차와 기사를 제공하는, 누구나 꿈꿔볼 만한 성공의 아이콘이 되었죠. 하지만 그는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쉴 새 없이 불안했죠. 그 사실을 깨닫게 되자 그의 삶이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br> 이는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라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수행을 하러 태국 밀림의 숲 속 사원으로 떠나죠. 17년간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나티코', 즉 '지혜가 자라는 자'라는 법명을 받은 파란 눈의 스님이 됩니다. 그리고 마흔여섯 살이 되어서야 다시 세상으로 돌아와서는, 사람들에게 혼란스러운 일상 속에서도 마음의 고요를 지키며 살아가는 법을 전하기 시작했답니다.<br>『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는 그가 남긴 처음이자 마지막 책입니다. 2018년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2022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가 전하고 싶었던 삶의 지혜를 담은 책이죠. 스웨덴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의 죽음 소식이 알려지자 스웨덴 전역에 거대한 애도의 물결이 일었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는지 짐작하게 됩니다.<br> 17년간의 수행으로 무엇을 얻었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br>"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다 믿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게 제가 얻은 초능력입니다."<br>참 인상적입니다. 보통 생각하게 되는 깨달음이나 초월적 능력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거든요. <br> 그 말은 초능력이 아니라,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씩 떠오르는 못된 생각에 휘둘리죠. 지나간 일에 매달리고, 오지 않은 일을 상상하며 불안에 사로잡히니까요. 생각은 생각일 뿐이라고, 그것이 반드시 진실은 아니라고 그는 담담하게 말합니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고요한 밀림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충분히 실천 가능한 것이라고요.<br>"우리는 그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은 생각일 뿐, 진실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만 하면 됩니다. 아울러 내면에서 벌어지는 생각의 곡예에 주목할 줄 아는 것은 유용한 기술입니다. 그래야 필요할 때 그런 생각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생각을 덜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법을, 그 생각에 더 냉철하게 접근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아, 희한한 생각이 또 떠올랐군. 괜찮아. 어차피 난 그 생각을 놓아버릴 거니까.'"<br>  저는 이 문장을 읽으며 제 안에서 하루 종일 벌어지는 생각들을 떠올렸습니다. 잠이 들지 않아 수면유도제를 삼키며 청한 밤을 지나 아침부터 시작되는 걱정, 주고받은 대화에 잘못된 것은 없었는지 되짚어보는 부정적인 생각들,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과거에 대한 후회가 뒤엉켜 만들어내는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들 말이죠. 그동안 저는 이 모든 생각들이 곧 저 자신이라고 여겼는데 나티코는 그것들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다고, 놓아버릴 수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br><br> "난 아직 마음을 다 비우지 못했어요. 당신도 아직 마음을 다 비우지 못했군요. 난 그렇게 이성적인 사람이 아니에요. 당신도 그렇게 이성적인 사람이 아니군요. 난 이따금 엉뚱한 생각에 빠지곤 해요. 당신도 그렇군요. 난 어떤 일에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반응하곤 해요. 당신도 마찬가지죠."<br> 그의 목소리는 다정합니다.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으로서의 성찰이나 닿을 수 없는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의 태도가 아니라, 같은 눈높이로 함께 앉아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사람의 말투입니다. 그래서 이 문장들을 읽을 때면 마치 '그래, 나도 그래. 그럴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프냐, 나도 아프다'던 드라마 다모의 한 장면 같습니다. 누구도 혼자 잘 견뎌야 한다고 채근하지 않죠. 그래서 위로가 됩니다. 조용하지만 깊이 있게, 부드럽지만 단단하게 말이죠.<br><br> 푸와 피글렛이 토끼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도 인상 깊었는데요.<br>"토끼는 참 영리해."<br>"맞아, 토끼는 참 영리해."<br>피글렛이 맞장구를 쳤습니다. <br><br>"게다가 토끼는 머리가 똑똑해."<br>푸가 칭찬을 계속했습니다. <br><br>"맞아, 토끼는 머리가 좋아."<br>피글렛이 다시 맞장구를 쳤습니다.<br>둘 사이에 한참 침묵이 이어지더니 푸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br><br>"그래서 토끼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나 봐."<br> 이 짧은 대화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습니다. 지혜롭고 똑똑하며 모든 것을 명확히 이해하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삶이 더 복잡하고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이야기처럼 들렸거든요. 그래서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결국엔 혼란스러워질 수도 있다는 진실. 그 말이 결국 너무 많은 걸 생각하고 너무 많은 걸 책임지려 하는 우리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일침처럼 느껴졌습니다.<br> 우리는 늘 괜찮은 사람이고 싶어 합니다. 능력 있고 실수하지 않고 감정을 잘 다루며 두루 잘 지내는 사람으로 말이죠. 하지만 그런 모습만을 고집하다 보면 내면의 아픔을 느끼는 일조차 서툴러지고, 결국엔 나 자신이 얼마나 지쳐있는지 놓치게 되는 것 같습니다.<br><br>"인간이 겪는 심리적 고통 대부분은 자발적인 것이며 스스로 초래한 고통입니다. 이 진리는 부처님의 무척 위대한 발견 중 하나입니다. 또한 우리가 반드시 겪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발달단계인 동시에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고통이기도 합니다."<br>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우리가 겪는 고통이 자발적이고 스스로 초래한 것’이라는 말이 너무 냉정하게 들렸거든요. 하지만 책을 조금씩 읽어가며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br> 우리는 실체가 없는 미래를 걱정하며 스스로를 괴롭히고, 지나간 실수를 되새기다 자책하며, 불확실한 내일 앞에 조바심으로 점철된 현재를 놓치기도 하잖아요. 그 많은 고통들이 실은 내가 내 안에서 끝없이 만들어낸 생각들 때문이었다는 걸 조금은 인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br> 물론 모든 고통이 스스로 만들어낸 건 아닐겁니다. 생로병사의 고통,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처럼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고통도 분명 존재하죠. 하지만 나티코가 말하는 건 그런 고통 위에 우리가 덧씌우는 불필요한 고통들, 그리고 그것이 그저 내가 만들어 낸 생각이라는 매개를 통해 자라난다는 사실입니다.<br> 그렇기에 그는 말합니다. 생각을 조금 덜 믿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고요.  필요할 때는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는 연습이 가능하다고 말이죠. 그 연습이야말로 삶을 조금 더 가볍고 조금 더 고요하게 만들어주는 지혜라고요.<br><br>"우리의 무지를 편견으로 가리지 않을 때, 우리 마음대로 앞일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을 참아낼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가장 현명해집니다."<br> 우리는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꺼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겠죠. 그래서 우리는 온갖 해석과 예측, 편견과 관념을 끌어와 어떻게든 세상을 이해하고 통제하듯 보이려 애씁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이름을 붙이고 예기치 못한 감정에도 설명을 덧붙이려 하죠.<br> 어쩌면 그 모든 애씀의 바탕에는, 모르는 상태로 남아있음이 만드는 불안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결국엔 그렇게 믿어버리죠. 세상의 이치를 꿰뚫고 모든 감정을 해석하며, 삶의 흐름을 계획대로 통제할 수 있어야만 괜찮은 사람이고 어른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요.<br> 하지만 나티코는 그 반대를 말합니다. 우리는 당연히 모를 수 있고 통제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말이죠. 우리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진정한 현명함은 모든 것을 아는 데 있지 않고 알 수 없는 세계 앞에서 당황하지 않으며, 그저 담담히 살아내는 데 있다는 걸 조용히 일깨워줍니다.<br><br> 루게릭이라는 질병을 앓으면서도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매 순간에 몰두하며 사람들에게 깊은 친절을 베풀었다고 해요. 우울한 생각이 몰려와도 늘 평화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것이죠. 그리고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떠납니다'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안락사를 선택했다고 합니다.<br><br> 책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겸손함이 참 좋았습니다.  자신의 말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주장하지 않으면서도그 안에 담긴 지혜는 깊고 따뜻했으니까요.<br>그는 우리에게 완벽한 답을 주려 하기보다우리가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조용히 안내해 주었습니다.<br>이 책을 읽으며 무엇보다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도모든 것을 통제하려 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br>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조심스레 전하고 싶습니다.<br>생각은 생각일 뿐이라는 사실삶이 완벽하지 않더라도<br>지금 모습 그대로 괜찮다고요.<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269/12/cover150/k822837807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2691257</link></image></item><item><author>jhj937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우리는 불완전하기에 - [약간의 거리를 둔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37</link><pubDate>Mon, 23 Feb 2026 11: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3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12535328&TPaperId=1710863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414/67/coveroff/k912535328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12535328&TPaperId=1710863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약간의 거리를 둔다</a><br/>소노 아야코 지음, 김욱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16년 10월<br/></td></tr></table><br/> 가끔은 마음을 지키기 위해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와 너무 가까워져 생기는 마찰. 거슬리는 말투나 제스처로 인해 생기는 의아함, 대화를 잘 주고받았다 생각했으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생기는 오해, 그로 인해 쌓여만 가는 기대와 실망의 반복. 가까운 만큼 더 조심스러워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이 다치게 되는 관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약간의 거리를 둔다』라는 책을 펼쳤을 때, 저는 이미 그 문장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br>“대부분의 경우 지나치게 관계가 깊어져 서로에게 어느덧 끔찍할 정도로 무거워진 덕분에 문제가 생긴다. 어머니 말씀처럼 사람이나 집이나 약간의 거리를 둬 통풍이 가능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최소한의 예의인 듯싶다. 서로의 신상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금물이다. 신상을 털어놓는 그 순간부터 특별한 관계가 되었다는 착각이 피어나기 때문이다.” <br> 특별한 관계로 인한 착각. 종종 경험하게 되는 순간이고 감정인 듯합니다. 사랑이나 우정,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너무 깊이 알고 있다고 착각할 때 오히려 상대의 고통이나 어려움에 무감해지기 마련이니까요. 이 어머니 이야기처럼, 사람이나 집이나 약간의 거리를 두어 통풍이 가능해지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람이 들어올 틈. 관계가 충분히 흐를만한 사이. 그 간격과 거리감으로 인해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고, 타인의 세계를 인정할 수 있는 시야도 갖게 됩니다.<br> 이 책을 쓴 소노 아야코는 일본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입니다. 안타깝게도 올해 초 93세의 나이로 멀리 떠나셨어요. 『인간의 분수』라는 제목으로 처음 출간된 이 에세이는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이후 『약간의 거리를 둔다』라는 제목으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어조는 읽는 이를 멈춰 서게 만듭니다. 너무 평범해서 놓치기 쉬운 생각들을 무릎 탁 치게 만드는 문장으로 길어 올리는 작가. 저는 그런 작가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습니다.<br><br>“좋아하는 일을 하든지, 아니면 지금 하고 있는 그 일을 좋아하면 된다.” <br> 이 문장은 어쩌면 지극히 단순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좋아하는 일’이라는 말에는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말하려면 우리는 그 일을 잘 해내야 하고, 타인에게도 인정받아야 하며, 지속적인 동력을 가져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되지요. 그렇게 되지 못하면 좋아하는 일이 아닌 것 같고, 실패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소노 아야코는 이 순서를 뒤집습니다.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라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태도 속에서 삶의 의미가 싹튼다고 말이죠. <br> 무언가를 갈아치우듯 일상이 늘 새롭게 바뀌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현재 하고 있는 일에서, 지금 선 그 자리에서 조금씩 정을 붙이고 의미를 발견해 보는 것. 때로는 그것이 삶을 더 단단히 붙잡아주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릅니다.<br><br>“사실 ‘남들만큼’이란 개념은 매우 모호하다. 무엇을 근거로 ‘남들만큼’의 존재라고 부르는 것인지, ‘남들만큼’의 허용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기준은 없다.” <br> 이 문장을 읽으며 마음 깊숙한 곳에서 긴 한숨이 나왔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남들만큼’이라는 잣대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 같아서요. 남들만큼 벌어야 하고, 남들만큼 인정받아야 하고, 남들만큼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남’은 구체적인 사람이 아니고, 어딘지 모르게 추상화된 타인의 평균이고 내가 만들어낸 이상한 기준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그 평균에 맞추려는 삶은 늘 자신을 바깥으로 밀어내게 만들죠. <br> 결국 중요한 건 그 불분명한 기준이 아니라, 내 안에서 명확해지는 삶의 기준이지 않을까요. ‘나만큼’ 행복하고, ‘나만큼’ 괜찮은 오늘을 살아도 된다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것이 먼저인지도 모릅니다.<br><br>“그중에서도 인내가 가장 필요한 곳은 사랑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줘야 할 때다. 상대를 소중히 생각한다면 그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견딘다.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 인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간을 받들어주는 힘이다.” <br> 사랑이 지속되기 위해선 언제나 감정이 고조되어야만 하는 줄 알았습니다. 따스함이나 설렘이 가라앉으면 멈추는 것이라 생각했지요. 그런데 이 문장은 그런 생각을 조용히 반박합니다. 사랑이란 결국 상대가 내 기대에 어긋나더라도, 실망스러운 말을 하더라도 떠나지 않고 곁을 내어주며, 나무처럼 굳건히 지키려는 태도라는 것이죠. 인내라는 말은 자칫 고통을 수용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지만, 그것은 사랑을 위한 가장 주체적인 선택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는 이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 사람 자체를 포기하지 않으려 애쓸 때, 비로소 인간적인 깊이와 품을 배우게 되는 건 아닐까요.<br><br>“노인의 불행은 누가 나를 부축해주지 않아서가 아니다. 부축받지 못했다고 불평하는 순간 불행해지는 것이다.” <br> 이 문장은 단지 노년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의 배려가 부족한 순간 우리는 쉽게 서운함을 느끼고 불평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마음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실제로는 결핍이라기보다 ‘받아야 할 것’에 대한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기대를 내려놓는 순간 삶은 훨씬 가벼워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겠지요.<br> 불행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불행을 택하는 방식으로 삶을 바라볼 때 그 표정은 더 어두워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불평하는 마음 대신 나 스스로의 선택으로 삶을 주도한다는 감각을 되찾는 일이 절실해 보입니다.<br> <br> 소노 아야코의 문장들은 조용하지만 단단했습니다. 그것은 단지 삶의 조언이나 처세의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 앞에서 큰 소리를 내지 않고, 피하지 않은 사람의 문장이었습니다. <br>거리를 둔다는 것은차갑게 등을 돌리는 일이 아니라관계 안에 공기를 불어넣는 일이었습니다. <br>숨을 쉴 수 있게 하고나를 지키며상대를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아주 작은 배려. <br>그 작은 배려가 나에게는 커다란 자유이고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되어주겠지요.<br>어쩌면 우리는 모두 부족한 사람들 인지 모릅니다. <br>완벽하게 사랑할 수도 없고완벽하게 이해받을 수도 없는. <br>그러나 바로 그 불완전함 때문에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거리일 수 있습니다. <br>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서로의 결핍을 인정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그런 거리 말입니다.<br>그래서 이제는 적당한 거리라는 이름의 다정함을 믿어보려 합니다. <br>그 거리를 지키는 것이나와 당신의 자리를 지키며서로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9414/67/cover150/k912535328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94146727</link></image></item><item><author>jhj937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좋은 문장이 하는 일은 - [2025 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35</link><pubDate>Mon, 23 Feb 2026 11: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3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42038673&TPaperId=171086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143/59/coveroff/k74203867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42038673&TPaperId=1710863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2025 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a><br/>백온유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04월<br/></td></tr></table><br/> 매년 이런저런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챙겨보는 편입니다. '한 놈만 패'는 편협한 독서습관으로 인해 관심 가는 작가분들을 탐색하는 시작점이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수상작품집'이잖아요. 얼마나 많은 작가분들이 수상과 등단을 바라며, 수많은 낮과 밤을 글과 사유에 매달리다 세상에 내놓았을까 싶어서 찾습니다. 아, 다른 책에 비해 반값 정도로 저렴하다는 것도 한몫하겠네요 :)<br> 수상작품집을 읽다 보면 그 해의 문학 지형도를 가늠해 보게 되는데요. 흐름이 어떻게 오고 가며, 어떤 이야기가 울림과 메시지로 주목받았지를 살펴보게 됩니다. 『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2025)』을 펼치고 눈에 띈 건 작가분들의 성별이었습니다. (오해가 없길 바랍니다. 이분법적인 사고로 나눈다는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수상작가 일곱 분 중 여섯 분이 여성작가시거든요. 좀 오래된 듯합니다만, 여성 작가분들이 문단의 가장 선명한 자리에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두드러진다’는 표현이 어색할 만큼, 이미 중심이 되어버렸다는 생각도 하고요. <br> '내가 사랑한 작가들' 연작을 요즘은 잠깐 쉬고 있긴 한데, 사실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며 연작으로 다루고 싶은 작가분들의 70% 정도가 여성작가분들이긴 합니다. 세상이라는 혼탁한 그림 앞에 섬세하고도 때론 날카로운 터치로 삶과 주변을 이야기하는 문장들에 공감되기도 하고, 제가 그 결에 잘 맞는 듯싶어서 말이죠. 앞으로도 권여선, 김금희, 최은영, 조남주, 정유정, 최승자, 정혜연, 한강, 정한아, 장은진, 클레어 키건(은 스코틀랜드?), 이기호, 천명관(은 남성?) 등의 작가분들에 대한 연작을 고민 중인데, 제가 생각해도 높은 비율이긴 하네요.<br><br> 여하튼, 이번 수상작품집 속 일곱 편의 소설은 서로 다른 색을 지녔지만, 어딘가 비슷한 결로 이어져 있습니다. 관계를 견디는 사람들, 몸과 마음을 다친 채 일상을 건너는 사람들. 쓸쓸하지만 찬란하게 그려낸 문장들이 모여 있었죠. 인상 깊었던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저는 현호정 작가의 『~~물결치는~몸~떠다니는~혼~~ 』이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왜였는지 짧게 설명드리자면, 낯선 문장과 마주했을 때의 찜찜하고도 묘한 매력이 느껴졌달까요.<br><br>“그냥 거기까지의 고통. 왜냐하면 또 통곡하고 절규, 몸부림 돌입하기엔 생존자들 일단 배고팠고요, 다친 데가 굉장히 아프기도 했고요. 무엇보다도 여기까지 이어진 질긴 목숨이 영 낯설어서. 이상해서. 징그러워서. 이게 내 것 같지 않아서. 그걸 가졌단 수치심도 내 것 같지 않아서.”<br> 문장이 출렁입니다. 파도처럼 밀려오고 정돈되지 않은 리듬으로 인해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몸과 혼이 따로 떠다니는 사람들. 이들을 덮치는 고통과 기억, 그리고 믿을 수 없는 나라는 존재. 읽는 동안 황정은 작가의 문장들이 떠올랐어요. 감정의 언어가 아니라 신체의 언어로 말하는 문장들. 이상하게 쓰이기 위해 고르고 벼른 흔적이 역력한, 쓰고 지우기를 반복한 문장으로 보였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낯선 정서를 통과시킬 수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br><br>“살아 있던 모든 것 멸종한 뒤라, 물리적으로 싹 거둬간 자리 숫제 체로 쳐서 훑어간 데를 방류된 화학물질이 거꾸로 한번 더 태운 보람 쏠쏠하여서, 여지 아주 없었고 많았어도 그래. 사람이 물속에서 맨눈으로 끔벅끔벅. 대단히 뭐 뵈는 게 있었겠습니까. 게다가 그 물이 맑았을 리 만무하지요. 기원후부터 이천오백 년 넘게 쌓인 쓰레기들이 이제 뭐 국적도 없겠다 가격표 떼고 골고루 흩어져 조각나 부서져 순환하다 엉겨 붙고 녹아들고 빛 반사하면서 바다 전체를 로맨틱한 분위기의 배스밤이 녹아든 밸런타인 욕조처럼 미끌미끌하고 반짝반짝하게 무엇보다 새카맣게 만들었으니까요”<br> 이 문장 또한 한참을 멈춰 있었습니다. 문장이 주는 충격과 아름다움,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절망이 한꺼번에 밀려왔거든요. 멸종 이후의 세계를 그리면서도 혼탁한 물 속을 '로맨틱한 분위기의 배스밤이 녹아든 밸런타인 욕조'라는 표현을 쓰는 이 대조법의 묘미라니. 절망적인 현실을 아름다운 은유로 포장하면서도, 그 너머에서 스며 나오는 절망감이 덧대어져 더욱 선명해 보였습니다.<br><br> 이 작품뿐만 아니라 다른 수상작들도 각각의 방식으로 '견디는 사람들'을 그려냈습니다. 성해나 작가의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에서는 팬심과 도덕적 딜레마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람들을, 성혜령 작가의 「원경」에서는 질병 앞에서 무너지는 관계를 다뤘죠.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문장은 이것이었습니다.<br>"하드보드지처럼 두껍고 견고한 사랑도 있을 테지만, 대개의 사랑은 습자지 같아서 단 한 방울의 반감과 의심으로도 쉽게 찢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어떤 사랑은 푹 젖어도 찢어지지 않고 도리어 곤죽처럼 질퍽해진다. 사랑이고 죄의식이고 찬미고 경멸이고 죄다 흡수해 종내 원형을 알 수 없는 상태로"<br> 사랑을 종이에 빗댄 이 은유가 참 절묘하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흔히 사랑은 견고하다, 사랑은 영원하다 말하지만 실제로 얼마나 쉽게 찢어지고 상처받는지를 성해나 작가는 습자지라는 일상적인 소재로 치환해버립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곤죽처럼 질퍽해진다'며, 사랑의 복잡하고 혼탁한 면까지 드러내죠. 사랑에 대한 죄의식, 찬미와 경멸이 뒤섞여 원형을 알 수 없게 된다는 것. 이런 감정의 복잡성을 이렇게 구체적이고 감각적으로 표현한 문장을 보면서, 좋은 문장이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br><br>성혜령 작가의 「원경」에서도 마음에 남는 문장이 있었어요.<br>"그런 일들은 언제나 일어나고 있었다. 직장생활을 십 년 정도 하니 주위에 아픈 사람이 많아졌다. 이전 직장 동료는 출근길에 쓰러진 뒤 안면 마비를 얻었다. 한쪽 입꼬리가 위로 당겨 올라갔는데 그는 멀쩡한 다른 쪽 입꼬리도 끌어올려 웃는 얼굴을 만들곤 했다. 병가가 끝나 돌아온 뒤 매일 웃는 얼굴로 제일 먼저 출근하는 동료를 보면서 신오는 이직을 결심했다."<br> 이 문장에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안면 마비로 한쪽 입꼬리가 올라간 동료가 다른 쪽 입꼬리도 일부러 끌어올려 웃는 얼굴을 만든다는 것. 그리고 그런 동료를 보며 이직을 결심하는 주인공의 마음. 여기에는 연민과 동시에 자신도 언젠가 그런 처지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 그리고 그런 현실을 견딜 수 없다는 솔직한 마음이 모두 담겨 있어요.<br> 이런 문장들을 읽으면서 저는 문학이 왜 필요한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 일상에서 흔히 마주치지만 잘 들여다보지 않는 순간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이렇게 섬세하고 정확한 언어로 포착해 내는 것.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아, 나도 그런 마음이었구나',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것. 그것이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이고, 좋은 문장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합니다.<br> 이번 수상작품집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작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상처받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려냈다는 점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절망적이지만 동시에 아름다웠고, 슬프지만 희망적이기도 했어요. 그 상처받은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가고 있고, 여전히 사랑하고 있으며, 여전히 무언가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겠죠.<br> 우리는 몸이든 마음이든, 크든 작든 모두 조금씩 상처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상처를 안고 일상을 통과해 나가죠. 때로는 현호정 작가의 문장처럼 '질긴 목숨이 영 낯설어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성해나 작가의 문장처럼 사랑이 '곤죽처럼 질퍽해져서'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며 함께 나아가는 것 같아요.<br> 일곱 편의 소설이 모두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결국 같은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고 상처받기 쉬운 존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이유와 가치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순간들, 따뜻한 연대의 가능성들이 우리를 지탱해 준다는 것이죠.<br><br>좋은 문장이 하는 일은 결국우리의 마음을 정확히 짚어내는 일일지도 모릅니다.<br>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드러내고혼자만의 경험이라 믿었던 순간들이실은 많은 이들의 마음과 겹쳐 있음을 깨닫게 하는 것<br>그 문장들 덕분에 우리는오늘도 위로와 용기를 얻고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143/59/cover150/k74203867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1435920</link></image></item><item><author>jhj937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혼자서는 완전해질 수 없지만 - [하프 브로크 - 부서진 마음들이 서로 만날 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34</link><pubDate>Mon, 23 Feb 2026 11: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3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42835666&TPaperId=1710863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177/36/coveroff/k942835666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42835666&TPaperId=1710863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하프 브로크 - 부서진 마음들이 서로 만날 때</a><br/>진저 개프니 지음, 허형은 옮김 / 복복서가 / 2021년 10월<br/></td></tr></table><br/>상처로 가득한 공간을 마주하다"처음엔 내게 도움을 청하는 여느 목장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br>말을 훈련하고 마주를 교육하는 건 지난 이십 년간 내 업이었다. 문제 있는 말에 얽힌 일화는 지겹도록 들었다. 잘 들어보면 이야기에 쏙 빼놓은 부분들이 있고, 말하는 이 스스로 깨닫지 못한 부분도 십중팔구 있다. 하지만 나는 아주 미세한 움직임 - 한쪽 귀를 쫑긋거린다든가 숨이 가빠진다든가 하는 - 도 말이 소통하는 신호임을 안다.<br>마주들이 이런 미묘한 언어를 일찍이 알아챘더라면 안 좋은 경험들을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번 요청은 달랐다. 말이 이런 행동을 보인다는 얘기는 생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쓰레기를 뒤지는 말, 약탈하는 말, 피에 굶주린 말이라니. 진짜일 리 없다고 생각했고, 진짜라면 내 두 눈으로 직접 봐야겠다고 생각했다."<br> 진저 개프니의 『하프 브로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말 조련사인 그녀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뉴멕시코의 대안교도소 목장에서 문제행동을 일삼는 말들을 도와달라는 요청이었죠. 쓰레기를 뒤지고, 사람을 공격하고, 피에 굶주린 말들이라니. 20년간 말과 함께 살아온 그녀에게도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였을 거예요. 그런데 막상 목장에 도착한 개프니가 마주한 것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풍경이었습니다. 말들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 말들을 돌보는 재소자들 역시 각자의 상처를 안고 있었으니까요. <br>"상처받은 인간들과 한때 야생이었던 말들 간의 이 밀폐된 관계가 오랜 세월 지속되어 오면서 재앙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목장은 서로 다른 종류의 상처들이 공명하는 공간이었습니다.<br><br>말(言)을 잃고 말(馬)을 얻다 개프니는 어린 시절부터 선택적 함구증을 앓았습니다. 여섯 살까지 말을 하지 않았고, 혼자 방에 있을 때조차 침묵을 택했죠. <br>"나는 이 세상에 나온 순간부터 무언의 상태로 살기를 택했다. 심지어 내 방에 혼자 있을 때조차 말을 하지 않으려 했다. 나는 잠잠한 공간에서 살았고, 거기서는 침묵이 나를 보호해 주었다. 나에게 언어는 보통 사람에게 그것이 가지는 의미-자신을 표현하는 힘-가 아니었다. 세상을 이해하는 힘도 아니었다. 나에게 언어는 모든 것을 베어버리는 칼과 같았다"<br> 그녀에게 언어는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모든 것을 베어버리는 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언어를 배워야 했어요. 동물의 언어, 특히 말의 언어를요. 귀를 쫑긋거리는 작은 움직임, 가빠지는 숨소리, 눈빛의 변화까지. 인간의 언어로는 전할 수 없는 것들을 읽어내는 능력을 키워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개프니가 목장에서 마법 같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근원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말들과 재소자들이 보내는 미묘한 신호들을 읽어낼 수 있었을 거예요. <br>"어떤 재소자들은 작위적인 자신감으로 위장한 채 움직인다. 팔을 크게 휘두르며 팀원들에게 버럭버럭 지시를 내리는 식이다. 반대로 몸에 생기라고는 한 방울도 안 남은 것 같은 이들도 있다. 암초에 딱 붙어사는 조그만 해양생물처럼, 물컹물컹한 무정형의 몸이다. 움직임 또는 움직임의 부재는 그 자체로 감정이 담긴 이야기다. 모든 걸 숨김없이 드러낸다. 상처받은 인간들과 한때 야생이었던 말들 간의 이 밀폐된 관계가 오랜 세월 지속되어 오면서 재앙을 만들어냈다. 가난에, 가족사에, 그리고 교정 시스템에 얻어맞은 거친 남자와 여자들이 자신도 모르게 매일같이 그 고통을 말들에게 전하며 목장을 돌아다니는 것이다."<br> 움직임, 또는 움직임의 부재가 그 자체로 감정이 담긴 이야기라는 것을 아는 사람. 그래서 그녀는 단순히 말을 조련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들과 돌보는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br><br>믿음이 만든 기적 목장에서 개프니가 만난 '토니'라는 재소자의 이야기가 인상 깊습니다. 마흔다섯 살의 그는 '윌리'라는 말을 돌보며 처음으로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를 보살피는 법을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br>˝있잖아요, 진저, 이런 기분은 정말 오랜만이에요. 마흔다섯 살인데 이제야 나 말고 다른 일에 마음 쓰는 법을 배우네요. 남을 보살피는 법 말이에요. 윌리 덕분에 배우는 셈이죠. 나를 믿어줬거든요.<br>있죠, 이 녀석이 나를 믿어주니까 기분이 좋더라고요. 아무도 나를 안 믿어주는데,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어요. 그럴 자격을 얻지 못했으니까 그랬겠지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br>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았다고, 그럴 자격을 얻지 못했다고 말하는 토니. 하지만 윌리는 그를 믿어주었고, 그 믿음이 그를 변화시켰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존재에게 온전히 헌신할 수 있게 된 순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치유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개프니가 목장에서 목격한 기적의 본질이었을 것입니다. 상처받은 존재들이 서로를 돌보며 치유되는 과정. 말은 인간을 닮고, 인간은 말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서로 다른 종이지만, 상처라는 공통분모로 연결된 그들은 서로를 거울삼아 자신을 이해해 갔습니다.<br><br>진정한 소통, 마음에 귀 기울이기개프니의 스승이 늘 하시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열린 그릇이 되려고 해 봐. 더 많이 열려 있을수록 말들도 제 마음을 더 전하려고 할 거야." <br> 이걸 들으며 개프니는 파도타기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파도와 하나가 되어 그 흐름을 타듯, 말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그 흐름을 읽어내는 것.<br> 열린 그릇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자신의 선입견과 판단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마음이 전하는 메시지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개프니는 말들과 재소자들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았어요. 대신 그들의 마음을 읽어주었습니다. 그러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상대방을 변화시키려 하기보다는, 그의 마음을 읽어주려 노력할 때 진정한 소통이 시작되는 것이죠.<br><br>변할 수 있다는 믿음 개프니는 목장에서 '루나'라는 말을 만납니다. 고립되고, 아무도 믿지 못하고, 공동체에서 편하게 지내지 못하는 루나의 모습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봤다고 고백합니다. <br>"지난 일 년간 나는 루나에게서 또 다른 나를 보았다. 루나의 고립, 아무도 믿지 못하는 태도, 이 공동체에서 편하게 지내지 못하는 모습. 그런 모습에서 외롭고 은둔적이었던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br>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루나는 변했습니다. 한때 사나운 짐승에 버금갔던 루나가 이제는 푹신한 동물인형과 더 닮은 모습으로 원형 마장을 한가로이 거닐고 있었어요. 그 모습을 보며 개프니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br>"나도 루나처럼 더 온화한 존재로 변했을까? 마침내 남을 믿을 수 있게 되고 어딘가에 속한 기분을 느끼는 사람이 되었을까?"<br> 이 질문에는 깊은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변할 수 있다는 믿음. 상처받은 존재도, 외로운 존재도, 시간과 관계를 통해 더 온화하고 따뜻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믿음 말이에요.<br><br>작은 구원이 모여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개프니는 일라이라는, 교도소에서 목장으로 이소 하려고 면접을 보러 온 사람의 이야기를 회상합니다.<br>"우리는 생명을 구하고 있어요. 한 번에 하나씩요."<br> 이 문장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습니다. 거창한 구원이나 극적인 변화가 아니라, 한 번에 하나씩 생명을 구하는 일. 한 마리의 말을, 한 사람의 재소자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구하는 일. 그렇게 작은 구원들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어온 걸 겁니다.<br> 개프니 역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목장에서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한 것이겠죠. 말들과 재소자들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구했으니까요. 이로서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에 갇혀 살던 그녀는 다른 존재들과 진정한 연결을 맺게 됩니다.<br><br>우리 모두는 하프 브로크입니다 '하프 브로크'는 말 조련사들이 쓰는 은어입니다. 반만 길들여진 말, 아직 미완성인 존재를 뜻하죠. 하지만 이 단어는 단순히 말에게만 적용되지 않을 겁니다. 우리 모두가 하프 브로크죠. 완전히 길들여지지 않은 채로, 잘 다듬어지지 않은 채로, 때로는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하면서도 관계를 통해 조금씩 변화해 가는 존재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br> 개프니가 목장에서 만난 말들처럼, 우리도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때로는 다른 이를 공격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만의 세계에 고립되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를 통해 치유될 수 있습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돌보며 믿어주는 경험을 통해 조금씩 더 온화한 존재로 변해갈 수 있어요.<br><br>결국 『하프 브로크』가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는완전함을 추구하기보다 서로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그 불완전함을 통해 연결되는 법을 배워가는 일일 겁니다.<br>혼자서는 완전해질 수 없지만함께라면 조금씩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br><br>개프니가 목장을 떠나며 마주한 현실처럼삶에서 변화는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br>어느 날 내 곁의 누군가는울타리를 벗어나 떠날 것이고나 또한 또 다른 길을 향해 나아가겠죠.<br>하지만 함께 나눈 시간서로를 돌보며 주고받은 마음과 신뢰는오롯이 우리 안에 남아우리를 조금 더 온전한 존재로 만들어 줄 겁니다.<br><br>어쩌면 삶이란완전해지려 애쓰기보다서로의 상처를 조심스럽게 보듬고서툴게나마 손길을 건네며조금씩 함께 변해가는 일인지도 모릅니다.<br>우리는 여전히 '하프 브로크' 겠지만서로를 통해 더 단단해지고 온화해진 존재로조금씩, 서서히 자라나길.<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177/36/cover150/k942835666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1773613</link></image></item><item><author>jhj937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진정한 자유란 - [모든 열정이 다하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33</link><pubDate>Mon, 23 Feb 2026 11: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3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2990X&TPaperId=171086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423/87/coveroff/893742990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2990X&TPaperId=1710863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모든 열정이 다하고</a><br/>비타 색빌웨스트 지음, 임슬애 옮김 / 민음사 / 2023년 03월<br/></td></tr></table><br/> 여기, 여든여덟에 삶에서 자유를 얻은 한 사람이 있습니다.<br> 진짜 자유란 무엇일까, 그리고 언제 우리는 진정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비타 색빌웨스트의 『모든 열정이 다하고』를 읽으며 오래도록 이 질문이 머물렀습니다. 소설 속 레이디 슬레인이 남편의 죽음 이후 자식들 앞에서 선언한 독립은 단순한 노년의 변덕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여든여덟 해 동안 미뤄온, 아니 포기했다고 믿었던 꿈에 대한 마지막 용기였습니다.<br><br>"살아온 모든 나날들을 총합하면 그저 삶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다. 평생의 삶에 대고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 묻기는 부조리했다. 꼭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을 두고 던지는 질문 같았다."   이 문장을 읽으며 위안을 받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들 - 나는 행복한가,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인가, 후회는 없는가 - 같은 질문들이 삶을 되돌아볼 때에 얼마나 의미가 있겠느냐, 그저 삶을 살아냈기에 그것만으로 합당하지 않겠냐는 목소리로 들렸거든요. <br> 비타 색빌웨스트는 1892년 영국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파격적인 삶을 살았던 작가입니다. 버지니아 울프와의 사랑으로도 유명하지만, 무엇보다 당대의 엄격한 사회적 관념에 맞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 용기 있는 여성이었어요. 『모든 열정이 다하고』는 그런 그녀가 1931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자신의 두 아들에게 헌정한 소설이기도 합니다. ‘끝내 자기가 원하던 것을 얻는 것이 인생인지도 몰라’라는 그녀의 말처럼, 이 소설은 늦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br> 레이디 슬레인의 선택에 공감하게 되는 이유는 그녀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야 진정한 '나'를 찾아간다는 점입니다. 총리의 아내로서, 여섯 아이의 어머니로서, 사회적 역할에 충실했던 그녀가 남편의 죽음 이후 자식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홀로서기를 선택한 것은 단순한 반항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것은 오래도록 억눌러온 자유로운 인간이길 바란 꿈, 온전한 자기 자신이고 싶었던 열망에 대한 마지막 응답이었습니다.<br><br>"그런데 자기 자신이란 정확히 누구였을까? 그녀는 과거의 스스로를 돌아보는 늙은 여자로서 자문했다. 이러한 궁금증은 아주 편안하고 아련한 심심풀이였지만 결코 멜랑콜리는 아니었다. 차라리 최후의 사치, 궁극적인 사치였다." <br> 이 문장에 오래 멈춰 있었습니다. 삶이란 늘 해야 할 일과 주어진 역할에 밀려 ‘나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유예하는 과정이기도 하지요. 그녀는 처음으로 해야 할 일이 없는 상태에서 그제야 사치처럼, 자신을 탐색하기 시작합니다. 노년은 보통 쇠퇴의 시간, 잃어가는 시간으로 여겨지지만 그녀에게 노년은 오히려 자신을 온전히 탐구할 수 있는 자유의 시간이었습니다.<br><br>"노인의 삶이란, 경기를 마친 뒤 저녁 무렵 침대에 몸을 던지고는 앞으로 경마 따윈 절대 안 하겠다고 다짐하는 기수의 삶이지요. 하지만 잊으신 것이 있네요, 벅트라우트 씨. 젊을 때는 위험하게 사는 걸 즐기면 즐겼지 – 사실 갈망하지요. – 저어하지는 않아요." <br> 이 문장에서 레이디 슬레인의 마음이 선명히 드러납니다. 그녀는 안락한 노년을 추구하는 평범한 노인이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모험을 갈망하고,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은 사람이었어요. 노년이 단지 조용하고 안정된 시기가 아니라, 삶의 열정이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는 시기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br><br> "그들은 뜨거운 감정을 느끼기에는, 경쟁하고 앞지르고 승리를 추구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았다. 그들은 뒤로 물러나 서 마지막 미뉴에트를 추는 쪽이 좋았다." <br> 젊음의 치열함이 사라진 자리에 오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마치 화려한 색채가 빠진 수채화 같은, 담담하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감정의 영역 말이죠.<br>하지만 레이디 슬레인이 진정 놀라운 순간은 죽음에 가까워졌을 때 다시 젊음을 경험하는 장면입니다. <br><br>"지금 느끼는 기쁨은 특히나 사적이었다. 예전처럼 또렷하지는 않았다. 또렷하기보다는 뿌옇고, 강렬하지만 막연했다. 그래서 그 정체를 밝혀낼 능력도, 그래야 한다는 의무감도 없이 그저 흠뻑 취할 뿐이었다."   이런 감정의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이는 진정한 자유를 맛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감각, 삶을 다 살아낸 이가 감정을 새롭게 느끼는 순간으로, 뜨겁기보단 뿌옇고, 명확하기보단 막연하지만 그럼에도 강렬하고 또렷한 울림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감정의 변화는 진정한 자유를 위해 애씀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어떤 영역 같았습니다.<br><br>"죽음에 이토록 가까이 다가선 지금, 그녀는 또다시 자기 앞에 위험한 모험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이번에는 더 용감하게 직면하겠다고,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고, 더 굳세고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다짐했다."  죽음 앞에서 새로운 모험을 꿈꾸는 레이디 슬레인의 모습은 중요한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진정한 젊음은 나이라는 숫자에 있지 않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용기에서 온다는 것.<br> 이 소설을 읽으며 저는, 레이디 슬레인의 절반쯤 되는 제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향해 용기 있게 나아가고 있는가 하고 말이죠. 레이디 슬레인이 여든여덟의 나이에 자유를 선택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언제든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주는 소설이었습니다.<br> 색빌웨스트의 문장들은 노년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넘어섭니다. 늙는다는 것이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이 자신을 탐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 모든 열정이 다했다고 여겨지는 순간에도 새로운 열정이 피어날 수 있다는 것.<br> 우리는 종종 나이를 핑계로 꿈을 포기하곤 합니다. 이제 늦었다고, 이미 기회는 지나갔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제한하죠. 하지만 레이디 슬레인은 그런 우리에게 말합니다. 진정한 삶은 언제든 시작될 수 있다고, 자유는 나이와 상관없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에요.<br> 『모든 열정이 다하고』라는 제목이 주는 아이러니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열정이 다했다고 여겨지는 순간, 레이디 슬레인은 새로운 열정을 발견합니다. 진정한 자신으로 살아가는 열정, 자유롭게 꿈꾸는 열정을 말이죠. 그녀의 용기 있는 선택은 나이 듦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br><br>이 소설을 덮으며진정한 자유란외적인 조건의 변화에 굴하지 않고내 안의 용기와 마주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br>언제든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야말로우리를 진정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겠죠.<br>여든여덟에 자유를 찾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나이와 상관없이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전할 수 있길 바랍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423/87/cover150/893742990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4238750</link></image></item><item><author>jhj937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우주의 역사 속에 우리가 존재하게 된 것은 - [시간의 기원 - 스티븐 호킹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이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32</link><pubDate>Mon, 23 Feb 2026 11: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3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75671&TPaperId=1710863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037/5/coveroff/892557567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75671&TPaperId=1710863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시간의 기원 - 스티븐 호킹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이론</a><br/>토마스 헤르토흐 지음, 박병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2월<br/></td></tr></table><br/> 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그리고 왜 우리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게 되었을까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한 번쯤 해봤을 질문일 겁니다. 스티븐 호킹이 평생을 바쳐 탐구한 것도 바로 이런 질문이었죠. 그리고 그의 마지막 동반자였던 토마스 헤르토흐가 『시간의 기원』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는 것은 호킹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고민했던 우주의 비밀입니다.<br> 토마스 헤르토흐는 벨기에 루뱅가톨릭대학교의 이론물리학 교수로, 1998년부터 20년간 호킹의 가장 가까운 연구 파트너였습니다. 단순히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넘어 우주의 기원을 함께 탐구하는 동반자였죠. 헤르토흐는 호킹이 배출한 수많은 뛰어난 물리학자 중 하나이면서 동시에 호킹의 마지막 이론을 세상에 전하는 유일한 증인이기도 합니다.<br> 이 책은 과학서이자 회고록입니다. 호킹의 연구 성과를 설명하는 동시에 루게릭병으로 몸이 부자유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우주의 비밀을 탐구했던 한 인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휠체어에 몸을 맡기고 컴퓨터로 세상과 소통하던 물리학자의 모습 뒤에 숨겨진, 유머를 잃지 않고 끝까지 호기심을 품었던 진정한 탐구자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br><br>뉴턴에서 시작된 물리학의 여정 헤르토흐는 우주론의 역사를 뉴턴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풀어냅니다. 뉴턴의 위대함은 단순함에 있었어요. '그는 단 몇 개의 수학 방정식을 사용하여 행성의 움직임을 말끔하게 설명했고, 태양계의 운동을 서술하는 기존의 모형들은 그의 원리에 따라 마술의 영역에서 현대물리학으로 환골탈태했다.' 뉴턴 이후 모든 물리학자들이 추구하게 된 것이 바로 이런 명쾌함이었죠. 복잡한 현상을 간단한 법칙으로 설명하는 것. 그것이 과학의 이상이 되었습니다.<br> 하지만 20세기 들어 과학자들은 우주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특히 진화론이 등장하면서 결정론적 세계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진화를 간단히 표현하면 '끊임없이 일어나는 우연한 사건의 사슬'이다. 낮은 수준의 복잡성은 높은 수준의 진화를 위한 환경을 조성하지만, 바로 이것 때문에 진화 과정에서 가능성이 희박한 경로가 선택되고 결정론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br> 이 문장을 읽으며 저는 우리 삶도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획하고 의도한 대로만 흘러가는 삶은 없겠죠. 예상치 못한 만남, 우연한 기회, 뜻밖의 어려움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면서 우리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곳에 서 있게 됩니다. 진화가 그런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우연과 필연이 얽히며 만들어내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br><br>생명친화적 우주의 비밀 호킹과 헤르토흐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질문은 '우주는 왜 생명체에게 우호적인 곳이 되었는가?'였습니다. 이 질문에는 놀라운 사실이 전제되어 있어요. '우주는 여러 면에서 생명체의 생존에 알맞게 세팅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물리학적인 상수들이 조금만 달랐어도, 별이 형성되지 못했거나 생명체가 탄생할 수 없었을 거라는 의미 이기도합니다.<br> 이를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인간원리입니다. 물리학자 브랜든 카터의 말을 인용하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전혀 특별하지 않다면, 자신이 관측한 우주를 잘못 해석할 여지가 있다. 우리가 생명친화적인 우주를 관측하게 된 진짜 이유는 자신이 '그런 우주'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br> 이 관점은 기존의 과학적 사고를 뒤흔드는 것이었습니다. 우주가 먼저 있고 그 안에서 우연히 생명이 탄생한 것이 아니라,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우주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관측할 수 있다는 거죠. 순서가 바뀐 겁니다.<br><br>호킹의 마지막 이론: 하향식 우주론 초기에 호킹은 빅뱅 깊은 곳에 숨겨진 무언가를 수학이 모두 설명해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상향식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연구를 거듭하면서 그는 생각을 바꾸게 됩니다. 다중우주 이론의 한계를 깨닫고, 전혀 다른 관점에서 우주를 바라보기 시작한 거예요.<br> '무경계 가설에 의하면 창조의 순간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구조적 특성이 점차 변하거나 사라지다가 결국에는 시간까지 사라진다.' 시간 자체가 사라지는 지점에서 우주를 바라본다는 것,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호킹의 통찰이 빛을 발합니다. '호킹의 최종 이론에서 '시간의 기원'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시작점이 아니라,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과거의 한계점이다.'<br> 이 문장을 읽으며,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의 순간을 떠올려봤습니다. 그 이전에도 분명 우리는 존재했지만 기억이라는 인식의 한계 때문에 그 너머는 알 수 없죠. 시간의 기원도 그런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절대적인 시작이 아니라 우리가 물리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의 경계선 이란 의미입니다.<br> 호킹의 하향식 접근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측자의 역할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론상에서 '발생 확률이 가장 높은 우주'가 아니라, '관측될 확률이 가장 높은 우주'다.' 우주의 역사는 우리가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거죠. 마치 양자역학에서 관측이 현실을 결정하는 것처럼요.<br><br>물리법칙도 진화한다 호킹과 헤르토흐가 도달한 결론 중 가장 혁신적인 것은 물리법칙 자체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우주와 함께 진화해 왔다는 이론입니다. 이것이 이 책의 제목이 다윈의 『종의 기원』을 연상시키는 이유죠.<br> '액체가 고체보다 대칭성이 높다는 뜻인가? 그렇다. 물의 분자 배열 상태는 어떤 방향에서 봐도 똑같다. 다시 말해서, 물은 회전 대칭을 갖고 있다. 반면에 얼음 결정은 기하학적으로 규칙적인 구조를 갖고 있는데, 이는 곧 물에 존재했던 회전 대칭이 붕괴되었음을 의미한다.'<br> 이 비유를 통해 헤르토흐는 우주 초기의 높은 대칭성이 어떻게 깨지면서 현재의 복잡한 물리법칙들이 생겨났는지를 설명합니다. 우주가 식어가면서 대칭성이 단계적으로 깨지고, 그 과정에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법칙들이 형성되었다는 거죠.<br><br>과학과 철학의 경계에서 호킹의 이론이 흥미로운 점은 과학의 한계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칼 포퍼의 반증가능성 원리를 인용하며, '반증 가능한 이론을 포기하고 반증 불가능한 이론을 수용하는 순간, 과학의 기능은 중단되고 과학으로부터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도 불가능해진다'라고 말합니다.<br> 하지만 동시에 우주의 기원을 탐구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과학의 경계를 넘나들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인정하는데요. 시간이 사라지는 지점에서, 인과율이 의미를 잃는 순간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철학적 언어를 빌려올 수밖에 없습니다.<br> 이런 겸손함이야말로 진정한 과학자의 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고, 자신들이 탐구할 수 있는 영역의 한계를 명확히 하면서도 그 경계를 조금씩 넓혀가는 것. 그것이 바로 호킹과 헤르토흐가 보여준 과학자의 모습이었습니다.<br><br>우리도 우주를 창조하고 있다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통찰 중의 하나는, 우리가 단순히 우주의 관찰자가 아니라 창조자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하향식 우주론에 따르면 우주가 우리를 창조했듯이 우리도 우주를 창조하고 있어요. 우리가 하는 질문, 우리가 하는 관측이 우주의 역사를 결정한다는 것이죠.<br> 이것은 단순히 물리학적 명제가 아니라 철학적, 심지어 실존적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는 수동적으로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현실을 만들어가는 존재라는 뜻이거든요.<br> 생각해 보면 우리 일상도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질문을 하느냐,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됩니다. 실패를 '끝'으로 볼 것인가, '새로운 시작'으로 볼 것인가. 만남을 '우연'으로 여길 것인가, '필연'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우리가 던지는 질문이 우리 삶의 의미를 결정하는 거죠.<br><br>스티븐 호킹이라는 사람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것은 호킹의 인간적인 모습들이었습니다. 헤르토흐는 호킹을 단순히 위대한 물리학자로만 그리지 않아요.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도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세상을 경험하며 끝까지 유머를 잃지 않았던 한 인간의 모습으로 남겨두었습니다.<br> '호킹에게는 마법 같은 구석이 있었다. 늘 지혜와 재미가 섞인 화법을 구사했고 진정으로 유머를 사랑했다.' 몸은 휠체어에 갇혀 있었지만, 정신만큼은 이 세상 누구보다 자유로웠던 사람. 그런 호킹의 모습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배우게 됩니다.<br><br>시간 속에서 길어 올린 의미 결국 『시간의 기원』은 우주의 기원을 찾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의미의 기원을 찾는 이야기입니다. 시간이 사라지는 지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호킹과 헤르토흐가 발견한 것은, 우주가 단순히 물리법칙을 따르는 기계가 아니라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이었어요.<br> 그리고 그 우주 안에서 우리는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자로서 존재합니다. 우리가 던지는 질문이, 우리가 하는 선택이 우주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의미죠. 이것은 엄청난 책임감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무한한 가능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br> 호킹은 '뿌리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는가에 따라 인류의 미래가 좌우된다'라고 믿었습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야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우주론은 단순히 학문적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주는 나침반이기도 합니다.<br><br> 140억 년 우주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존재하게 된 것은 정말 기적 같은 일입니다. 수많은 우연과 필연이 겹쳐서 만들어진 이 순간,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는 우주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죠. 그리고 그 이해 자체가 우주를 만들어가는 과정의 일부라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하고 의미 있는지 알게 됩니다.<br> 그러니 『시간의 기원』은 단지 우주의 시작에 관한 책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를 어떻게 이해하고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물리학이라는 언어로 쓰였지만, 그 안에는 인간에 대한 사유가 녹아 있고, 삶의 방향을 묻는 목소리가 숨어 있습니다. 질문을 멈추지 않는 태도, 관측을 통해 세계를 해석하려는 의지, 설명되지 않는 것을 기꺼이 껴안는 용기 - 호킹이 끝까지 놓지 않았던 이 자세들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잃지 말아야 할 삶의 감각과 닮아 있습니다.<br> 결국 우리가 만들어가는 시간은, 그런 태도 위에서 더욱 단단해지는 것 같습니다.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삶, 우연과 불확실성 속에서도 나만의 세계를 끊임없이 구성해 나가는 삶. 그것이 우리가 진짜로 살아낸 시간의 모습이 아닐까요.<br><br>열대야로 잠 못 드는 요즘,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 번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br>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그리고 나는, 왜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걸까.<br>그 질문 앞에 머무는 짧은 순간에<br>우리는 조금 더 나다워지고, 조금 더 단단해진 사람이 되리라 믿습니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037/5/cover150/892557567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0370596</link></image></item><item><author>jhj937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한 번뿐인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역사의 쓸모 -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3가지 통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30</link><pubDate>Mon, 23 Feb 2026 11: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3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92932480&TPaperId=1710863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323/80/coveroff/k392932480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92932480&TPaperId=1710863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역사의 쓸모 -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3가지 통찰</a><br/>최태성 지음 / 프런트페이지 / 2024년 07월<br/></td></tr></table><br/>과거가 우리에게 건네는 삶의 해답 언제부터인가 역사는 중요하지 않은 학문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당장 써먹을 곳도 없는 옛날이야기를 왜 알아야 하느냐는 질문 앞에서, 역사는 늘 변명하듯 자신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야 했죠. 하지만 최태성 선생의 『역사의 쓸모』를 읽으며 깨달았습니다. 역사는 변명할 필요가 없었어요. 오히려 우리가 역사를 외면하며 놓쳐온 것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죠.<br> 다들 잘 아시겠지만, 역사 강사이신 최태성 선생님은 30여 년간 역사를 가르치며 700만 명의 '랜선 제자'들과 만나온 대한민국 대표 역사 커뮤니케이터입니다. 그런 그가 이 책에서 던지는 질문은 명확합니다. '역사를 공부해서 어디에 쓰느냐'는 회의적 시선에 대해 '삶이라는 문제에 역사보다 완벽한 해설서는 없다'라고 당당히 답하는 거죠. 저자는 '희미한 불빛에 의존해 운전할 때면 잘 가고 있는지, 주변은 안전한 지를 확인하기 위해 백미러를 살핍니다. 그 어느 때보다 삶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각자의 인생을 운전해 나가는 우리에게는 삶의 주변을 살펴주는 역사라는 백미러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정말 적절한 비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미러가 아니라 룸미러이긴 하지만요 ㅎㅎ) 늘 앞만 보고 달려가는 우리는, 가끔 뒤를 돌아봐야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요.<br><br>일상 속에 스며든 역사의 흔적들 서울 종로의 피맛골이라는 골목 이름에서도 역사는 우리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양반들이 타는 말을 피해서 다니는 길이라 피맛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니, 그 좁은 골목길 하나에도 조선시대 신분제 사회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거죠. 안성맞춤이 안성의 맞춤유기처럼 품질 좋은 물건을 뜻한다는 것도, 방납업자들이 사또에게 주던 사례비를 '인정'이라고 불렀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역사가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일상 곳곳에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일 겁니다.<br> 우리가 쓰는 말 한마디, 지나다니는 길에도 오랜 시간이 쌓여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일상이 훨씬 풍성해집니다. 저자가 계속 강조하는 것처럼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입니다. 단순히 연도와 사건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마음과 선택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그들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그 결과는 어땠는지를 살펴보면서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한 통찰을 얻는 거예요. 역사를 통해 우리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수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과의 만남에서 얻는 지혜가 바로 역사의 진정한 쓸모가 아닐까 싶습니다. 염장을 지른다는 표현이 장보고를 배신한 염장의 이야기에서 나왔다는 것처럼, 우리가 지금 쓰는 말들 속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선택이 녹아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br><br>기득권을 내려놓은 사람들의 꿈과 현재적 의미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같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모두 상류층 집안의 엘리트였고, 신분제의 혜택을 가장 잘 누린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갑신정변으로 그런 특권을 없애고자 했으니까요.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으려 했던 겁니다. 양반과 상인의 차별 없이 다 같은 사람으로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꿈이었죠. 이 대목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 권력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면서도, 역사 속의 인물들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했다는 사실이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br> 경주 사람들이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 농사를 지으러 나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황룡사 9층 목탑이길 바란 것이 선덕여왕의 깊은 뜻이었다고 합니다. 신라인들의 마음을 모으는 것, 우리도 강해질 수 있다는 비전을 신라인 모두와 공유하려는 것이었죠. 선덕여왕의 이 통찰이 특별한 이유는,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높은 탑을 세운다고 해서 저절로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는 건 아닐 겁니다. 그 탑이 상징하는 바, 즉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과 비전을 공유할 때 비로소 진정한 리더십이 발휘될 테니까요. <br> 내가 가진 작은 특권이라도 공동체를 위해 내려놓을 용기가 있는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과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십이 발휘되고 있는지, 과연 지금의 우리는 어떠한지 돌아보게 됩니다.<br><br>갈등과 열정, 그리고 성찰의 지혜 책에서 인상 깊었던 문장 중 하나는 이것이었습니다. '갈등은 당연한 것이고 뜨거움도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뜨거움이 혹시 빗나간 열정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요즘처럼 사회 곳곳에서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시대에 이 말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갈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갈등이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는 뜻이겠죠. 열정은 좋지만 그 열정이 파괴적이 아닌 건설적 방향으로 흘러야 한다는 지혜일 겁니다.<br> 3·1 운동이 대한'제'국을 대한'민'국으로, '백성'을 '시민'으로 바꾼 계기였다는 해석도 같은 맥락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단순히 독립운동이었다는 것을 넘어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거죠. <br> 역사는 이렇듯 과거의 일이면서 동시에 현재 진행형인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지금 벌이고 있는 모든 갈등과 논쟁도 언젠가는 역사가 될 텐데, 그때 우리의 선택과 행동이 어떻게 평가받을지 생각해 본다면 좀 더 신중해져야 할 겁니다. 뜨거운 열정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열정이 옳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점검하는 냉정함도 필요하다는 것을 역사가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죠.<br><br>정도전이 보여준 문제의식과 개혁정신 정도전에 대한 저자의 해석은 정말 깊은 울림을 주었는데요. 왕과 귀족만이 사람 취급을 받던 시대에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민본주의를 실현하려 했던 정도전. 유배당하고 유랑하면서 만난 비뚤어진 세상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그런 세상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의 마음이 생생하게 전해져 왔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사회와 자신에 대한 인식과 비판의 불을 항상 환하게 밝혀놓았으면 합니다'라고 당부합니다.<br>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왜 이렇게 되었는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는 자세, 이것이야말로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도전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지금의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책을 찾으려 애써야 합니다. 정도전이 작은 것 하나까지 치밀하게 고민했던 것처럼 우리도 단순히 비판하는 데 그치지 말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겠죠. 역사는 단순히 과거를 아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통해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라는 걸 정도전의 삶을 통해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의 개혁정신은 지금도 우리가 배워야 할 소중한 유산이라 생각합니다.<br><br>삶의 완벽한 해설서로서의 역사 최태성 선생은 '삶이라는 문제에 대한 가장 완벽한 해설서는 역사'라고 이야기합니다. 도저히 풀리지 않는 문제에 부딪쳤을 때,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선택과 그 결과가 담긴 역사에서 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죠. 인생을 살다 보면 혼자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럴 때 역사 속 인물들의 이야기가 큰 위로와 지혜를 주는데,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고 비슷한 고민과 갈등을 겪었기에 그들이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떤 결과를 맞았는지 살피다 보면 우리 앞에 놓인 길이 조금 더 선명해지곤 합니다.<br> 결국 『역사의 쓸모』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한 번뿐인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일 겁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답을 찾기 위해 역사라는 거대한 도서관으로 우리를 안내하죠. 정약용, 정도전, 박상진 같은 인물들을 멘토로 소환하면서, 그들의 삶에서 어떤 통찰을 얻을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만의 궤적을 그리며 살다 갔다는 것일 텐데요. 남들이 정해놓은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해서 자신만의 인생을 만든 위인들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가치를 실현하려고 노력했고요.<br>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결국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한 준비 작업일 겁니다. 수많은 사람의 선택과 그 결과를 돌아보며, 어떤 선택이 나의 삶을 더욱 의미 있게 할 것인지 예측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래서 역사는 쓸모가 있습니다. 아니, 쓸모를 넘어서 꼭 필요합니다.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들이 모여서 우리의 인생을 만든다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고요.<br><br>과거를 통해 현재를 비추어보고그 속에서 더 나은 삶의 태도를 모색하는 일그것이야말로 최태성 선생이 우리에게 건네고자 했던역사의 쓸모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br>우리의 하루는 사건의 연속이 아니라 어쩌면어제보다 조금 더 단단한 마음어제보다 덜 흔들리는 시선으로 오늘을 살아내는 일의 반복일 겁니다.<br>그 안에서, 삶이 어디로 가는지 모를 때역사를 통해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는 이야기를 통해무너진 마음을 일으켜 세우고다시 걸음을 내딛게 하는 힘이 되길 바랍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323/80/cover150/k392932480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3238042</link></image></item><item><author>jhj937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무심코 지나치는 작은 냄새 하나에 - [코끝의 언어 - 우리 삶에 스며든 51가지 냄새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27</link><pubDate>Mon, 23 Feb 2026 11: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2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82837609&TPaperId=1710862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305/33/coveroff/k88283760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82837609&TPaperId=1710862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코끝의 언어 - 우리 삶에 스며든 51가지 냄새 이야기</a><br/>주드 스튜어트 지음, 김은영 옮김 / 윌북 / 2022년 05월<br/></td></tr></table><br/> 읽은 책 속에서 인상 깊었던 문장을 길어 올리고, 그 문장에 대한 저만의 해석과 책의 내용, 그리고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연작 에세이 '나와 당신의 문장은'을 쓰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 열네 번째 이야기로, 주드 스튜어트의 『코끝의 언어』를 통해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후각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해 보려 합니다.<br> 이 책을 읽으며 저는 ‘좋은 문장이 하는 일’은 결국 우리의 코끝이 하는 일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향으로 세상을 감각하게 하고, 잊었던 기억을 소환하며, 때로는 위험을 경고하고 새로운 깨달음을 안겨주는 것. 문장이 그러하듯, 냄새 또한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이었음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br><br>감각의 미학을 탐험하는 저널리스트, 주드 스튜어트『코끝의 언어』의 저자인 주드 스튜어트는 『슬레이트』, 『애틀랜틱』 등 유수의 매체에 디자인과 문화에 대한 글을 기고해 온 저널리스트입니다. 오랫동안 시각적인 것에 집중하며 직업적인 시야를 넓혀왔던 그녀는 우연한 계기로 ‘후각’이라는 감각에 깊은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도 후각으로 세상을 새롭게 감각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하고요.<br> 작가는 이 책을 빌어 비 오는 날의 흙냄새, 갓난아기 냄새, 달콤한 바닐라, 시원한 바다 내음 등 일상적이면서도 특별한 온갖 냄새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과 숨겨진 이야기를 펼쳐 보입니다. 이제는 지구상에서 사라져 맡을 수 없는 냄새부터 예전에는 없다가 새로이 생겨난 향에 대한 낯설고 참신한 지식까지, 냄새라는 작은 주제가 과학, 역사, 지리, 예술을 넘나들며 거대한 세계를 펼쳐 보이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자 자신의 감각적인 경험과 최신 논문, 전문가 자문까지 거친 꼼꼼하고 방대한 자료 조사는 냄새의 놀라운 세계를 더욱 생생하게 느끼게 합니다.<br> 우리는 흔히 시각이나 청각을 가장 중요한 감각이라고 생각하지만, 작가는 후각이야말로 가장 근원적이고 즉각적이며 순수한 감각이라고 말합니다. 눈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것을 코는 냄새로 알아채고, 이 절대적인 판단의 수단이 위험, 음식, 쾌락 등 삶을 형성하는 모든 것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죠. 멀쩡해 보이는 음식이라도 악취가 나면 먹지 않고, 아무리 아름다운 공간이어도 낯설고 불쾌한 냄새가 나면 발을 들이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책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온 후각의 중요성을 재발견하게 하고, 삶의 감각을 뒤흔드는 경이로운 코끝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합니다.<br><br>냄새, 그 숨겨진 언어의 비밀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냄새가 가진 이중적인 면모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무향’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조차 사실은 완벽하게 향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그랬습니다. <br>‘무향’ 제품은 꾸며진 무대의 허구와 같다. 자극적이거나 나쁜 냄새를 제거한 뒤 희미하지만 기분 좋은 냄새를 입혀놓은 것이기 때문이다.<br> 우리가 무향이라고 믿었던 제품들 속에서조차 은은하게 조작된 향을 맡고 있었던 것이죠. 이는 우리가 얼마나 냄새에 대해 무지하고, 또 얼마나 많은 냄새들이 우리의 인지 아래에서 조용히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습니다. 완벽한 무향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에는 미세하게나마 그 고유의 향이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습니다.<br> 또한 자연 속 냄새들이 가진 놀라운 비밀에도 많은 관심이 갔는데요. 비로 인해 흙에서 피어나는 독특하고 기분 좋은 냄새, ‘페트리코’에 대한 이야기가 그랬습니다.<br>식물이 토양에 분비하는 지방산(주로 팔미트산과 스테아르산)이 비가 오는 동안 더 농축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가뭄이 끝난 뒤 종종 식물이 폭발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을 깨달은 이사벨과 토머스는 혹시 마른땅의 비 냄새, 즉 페트리코가 천연의 비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쉽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사실 페트리코는 주변 다른 식물의 성장을 지방산으로 지연시켜 물이 귀해질 때 경쟁에서 이기려는 식물의 방어책이었다. 다시 말해 식물이 분비한 화학물질의 축적물이 우리가 맡는 바로 그 비 냄새의 정체다.<br> 우리가 비 오기 전이나 이후의 상쾌함으로만 알았던 냄새(페트리코)가 사실은 식물들의 생존을 위한 치열한 경쟁의 결과물이었다는 사실이, 아름답게만 느껴졌던 자연의 향기 속에도 이처럼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이처럼 냄새는 단순히 감각적인 것을 넘어 생존과 경쟁, 그리고 소통의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br> 식물들이 냄새를 통해 서로 소통한다는 이야기도 깊은 인상을 주었는데요.<br>대부분의 식물이 그렇듯이, 풀잎은 냄새를 수단으로 서로 소통한다. 꽃이 피는 식물은 자신의 향기로 꽃가루받이를 해줄 매개자를 유혹하고, 과실수는 냄새로 자신의 씨를 퍼뜨려줄 동물을 부른다. 식물은 자기들끼리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 사실은 아직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동물과 달리 식물은 한 장소에 뿌리를 박고 살아간다. 천적이 다가와도 도망칠 수가 없다. 그래서 냄새로 천적을 피하고 서로에게 경고를 보내준다.<br> 갓 깎은 잔디에서 풍기는 싱그러운 냄새가 사실은 식물들이 공격을 받았을 때 다른 식물에게 보내는 위험 신호라는 사실은 정말 경이로웠습니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존재들이기에 냄새를 통해 천적을 피하고 서로에게 경고를 보낸다는 점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자연의 지혜를 엿보는 듯했습니다. 냄새는 자연의 숨겨진 언어이며, 우리는 그 언어를 통해 자연과 더 깊이 교감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br><br>냄새, 삶의 이면을 드러내다 냄새는 단순히 기분 좋은 향기만을 지칭하진 않죠. 때로는 위험을 알리는 경고가 되기도 합니다. 작가는 청산가리와 같은 독극물이 가진 냄새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br> 청산가리는 동물의 세포가 음식을 에너지로 변환하는 생체역학적 과정을 방해함으로써 세포가 산소를 쓰지 못하게 막는다. 청산가리에 의한 죽음은 기본적으로 세포 수준에서의 질식사다.... 사과와 복숭아의 경우에는 딱딱한 씨 안에 청산가리가 들어 있다. 우리가 먹지 않고 버리는 부분이다. 다른 식물의 경우 찧거나 빻아서 물에 헹궈버리면 청산가리가 씻겨 나간다. <br> 살인을 다룬 여러 소설을 살펴보면 희생자가 비터 아몬드 냄새를 느끼면서 뒤늦게 그 의미를 깨닫고 패닉 상태에 빠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다른 독극물들은 나중에야, 그러니까 살육의 냄새를 한참 풍긴 후에야 자취를 드러낸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쓰였던 수포작용제 루이사이트에서는 제라늄 향이 매우 강하게 난다. 또 다른 수포작용제 디포스겐에서는 아니스 냄새가 난다. 또 어떤 신경작용제는 과숙된 또는 혹은 썩은 과일 냄새가 난다.<br> 달콤한 아몬드 향이나 꽃 향기가 치명적인 독극물의 냄새일 수 있다는 사실은 섬뜩하면서도, 냄새가 가진 강력한 이중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름다운 향기 속에 숨겨진 위험, 그리고 그 위험을 뒤늦게 알아차리는 인간의 무력함이 대비되며, 냄새가 우리 삶의 얼마나 깊은 곳까지 관여하고 있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했습니다.<br> 반대로 식욕을 돋우는 냄새의 비밀도 흥미로웠습니다. 고기를 굽거나 빵을 구울 때 나는 고소한 냄새의 정체인 '마이야르 반응'에 대한 설명이 그랬습니다.<br>식품이 가열되면, 식품에 함유되어 있던 당분이 분해되어 아미노산과 반응한다. 이때 입맛을 자극하는 냄새 화합물이 많이 방출되며 특별한 풍미가 나타난다. 마이야르 반응은 바로 이 일련의 화학반응을 칭한다. 방출되는 화합물은 대부분이 탄화수소와 알데하이드다. 마이야르 반응은 끓이거나 볶거나 굽는 동안 갈색으로 변하는 모든 음식이 왜 그렇게 유혹적인 냄새를 풍기는지를 설명해 준다.<br>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맡는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들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복잡한 화학반응의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냄새는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중요한 감각이며,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끊임없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br> 하지만 작가는 우리의 뇌가 모든 냄새를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br>사람의 뇌는 동시에 네 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냄새를 처리하지 못하고 곧 그 냄새에 취해버린다<br> 이 문장을 읽고 나니, 향수 매장에서 풍기는 복잡 다단함이나 향신료 가득한 시장에서 금세 코가 마비되는 듯한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우리의 후각은 놀랍도록 예민하지만, 동시에 한계 또한 명확하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이는 우리가 냄새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이 왜 그토록 어려운 일인지를 설명해 주는 듯했습니다.<br><br>코끝의 언어로 세상을 다시 감각하다『코끝의 언어』를 읽는 내내 우리가 얼마나 시각 중심적인 삶을 살아왔는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에만 집중하며 코끝의 언어를 외면해 왔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냄새가 가진 놀라운 힘을 일깨워줍니다. 인간의 기억은 냄새를 띠고 있고, 냄새가 없는 체험은 대체로 쉽게 잊힌다는 말처럼, 후각은 우리의 기억과 인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프루스트의 소설 속 홍차와 마들렌 향미가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듯, 냄새는 시간을 초월하여 우리를 특정 순간으로 데려다주는 강력한 매개체가 됩니다.<br> 이 책은 단순히 냄새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냄새를 통해 세상을 새롭게 감각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갓난아기의 체취, 오래된 책 냄새 등 일상 속의 냄새는 물론 유령의 냄새나 성자의 향기 등 신비로운 향까지, 그 냄새가 나는 이유를 화학적으로 분석하며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세상의 비밀을 드러냅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세상이 달리 보이고, 매일 지나치는 수많은 향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br><br> 결국 『코끝의 언어』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당신의 코끝이 보내는 언어에 귀 기울이고 있는가 하고요.<br>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판단하려 하지만, 사실 코끝은 그 어떤 감각보다 먼저, 그리고 가장 본능적으로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던 것이죠.<br> 이 책을 통해 삶에서의 잔잔한 깨달음을 얻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작은 냄새 하나에 우주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냄새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냄새는 우리에게 과거를 상기시키고, 현재의 위험을 알리며, 미래의 가능성을 암시하기도 합니다.<br>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문장들을 만나고, 그 문장들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어쩌면 냄새 또한 우리 삶의 중요한 문장들 인지도 모릅니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며, 우리에게 끊임없이 메시지를 전하는 코끝의 언어들이겠지요.<br> 이 책을 통해 여러분도 코끝의 언어를 익히고, 그 언어를 통해 세상을 더욱 풍요롭게 감각하는 경험을 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삶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이, 어쩌면 바로 우리의 코끝에서 시작될지도 모르니까요.<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305/33/cover150/k88283760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3053342</link></image></item><item><author>jhj937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어떤 관계들은 완성되지 못한 채 - [두고 온 여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25</link><pubDate>Mon, 23 Feb 2026 11: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2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9006&TPaperId=171086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294/95/coveroff/893643900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9006&TPaperId=1710862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두고 온 여름</a><br/>성해나 지음 / 창비 / 2023년 03월<br/></td></tr></table><br/>"형. 토마토는 과일이게, 채소게."<br> 성해나 작가의 『두고 온 여름』을 펼치며 처음 밑줄 그은 문장입니다. 평범한 질문처럼 보이지만, 이 문장 안에는 어쩐지 형과 동생 사이의 미묘한 거리감이 담겨 있더라고요. 피 하나도 섞이지 않은 동생인 재하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중국냉면 국물에 땅콩 소스가 섞이지 않게 살살 젓가락질하며, 답 없이 무뚝뚝한 형 기하에게 이어서 이야기합니다.<br>"식물학적으로는 과일인데 법적으로는 채소래. 웃기지?<br>근데 난 어느 쪽이든 괜찮다고 봐. 과일이든 채소든. 그런 게 다 무슨 상관이야."<br> 토마토가 과일인지 채소인지를 묻는 재하의 질문은, 아마도 간접적인 물음이었을 겁니다. 우리가 형제인지 아닌지, 가족인지 아닌지. 그런 식의 분류와 정의가 정말 중요한 건지. 재하의 마지막 말처럼, 정말 '그런 게 다 무슨 상관'일지 말이죠.<br> 성해나 작가의 첫 장편소설인 『두고 온 여름』을 읽으며 저는 계속해서 이런 질문들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관계라는 것의 복잡함과 불완전함에 대해서요. <br>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성해나 작가는 『빛을 걷으면 빛』, 『혼모노』 등의 소설집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라는 박정민 배우의 추천사 덕분에 『혼모노』를 쟁여두고 있는데요. 『두고 온 여름』을 읽고 나니 어서 펼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br><br>비정에는 금세 익숙해지지만"비정에는 금세 익숙해졌지만, 다정에는 좀체 그럴 수 없었습니다."<br>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마음을 품고 살아가고 있을까 싶어서요. 상처받는 일에는 쉽게 무뎌지면서도, 정작 누군가의 따뜻함 앞에서는 어쩔 줄 몰라하는 마음. 작가는 이어서 말합니다. <br>"홀연히 나타났다가 손을 대면 스러지는 신기루처럼 한순간에 증발해 버릴까, 멀어져 버릴까 언제나 주춤. 가까이 다가설 수 없었습니다."<br>『두고 온 여름』은 부모의 재혼으로 잠시 형제가 되었다가 다시 남남이 되어버린 기하와 재하의 이야기입니다. 기하의 아버지가 재하 모자와 재혼하면서 만들어진, 어색하고 불완전한 가족관계. 그들은 함께 살았지만 진정으로 마음을 나누지는 못했죠. 기하에게는 갑작스럽게 생긴 새로운 가족이 부담스러웠고, 재하에게는 마음을 닫고 있는 형이 안타까웠을 거예요.<br> 작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들려줍니다.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되는 두 사람의 기억들. 서로를 이해하려 애썼지만 결국 닿지 못했던 진심들. 그 과정에서 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됩니다.<br><br>어머니의 울음"한 말을 하고 또 하다 어머니는 돌연 말을 멈추었습니다. 그녀의 어깨가 조용히 떨렸습니다."<br> 재하의 어머니가 우는 장면이 유독 남습니다. '고여 있던 것을 흘려보내듯 잠잠히' 우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재하가 깨달은 것은, <br>"어떤 울음이 안에 있던 것을 죄다 게워내고 쏟아낸다면, 어떤 울음은 그저 희석일 뿐이라는 것을 저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비워내는 것이 아니라 슬픔의 농도를 묽게 만들 뿐이라는 것을요."<br> 울음에도 종류가 있다는 것, 어떤 울음은 정말로 마음을 비워내는 역할을 하지만 어떤 울음은 그저 슬픔을 희석시킬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성해나 작가는 이렇게 우리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포착해 냅니다. 그래서 읽는 내내 아 정말 그런 마음이었겠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죠.<br> 재혼 가정의 어머니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조심스러웠을까요. 새 남편의 아들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 자신의 아들 재하는 또 어떤 마음일지 헤아려야 하는 복잡함. 그 모든 감정들이 희석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마음에 쌓여가는 걸 어머니는 알고 있었을 겁니다.<br><br>무언가를 두고 왔다는 완전하지 않음"아무것도 두고 온 게 없는데 무언가 두고 온 것만 같았다."<br> 소설 속에서 이 문장이 반복될 때마다 저는 계속 멈춰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았는데 뭔가 중요한 걸 놓쳐버린 것 같은 그 허전함. 기하와 재하에게는 서로가 그런 존재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짜 형제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남처럼 지낼 수도 없었던 애매한 관계. 마음을 다 주지도, 완전히 거두지도 못한 채 남겨둔 그 시간들.<br> 인릉의 홍살문을 지나며 기하의 아버지가 한 말도 기억에 남습니다. <br>"산자도 망자도 이 문으로 드나든단다. 보이냐 너희도?" <br> 아버지는 뜬금없는 말을 던지고 허공을 바라보죠. 무언가 서 있는 것처럼. 어쩌면 아버지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만들려 했던 가족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그 불완전함 속에서 서로가 상처받고 있다는 것을요.<br><br>십오 년 만의 재회 소설은 십오 년 후 기하와 재하가 다시 만나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스트리트 뷰에서 우연히 발견한, 예전 동네의 중식당에서 본 재하 모자의 모습. 기하는 '묵은 감정들이 사라진 자리에 희미한 부채감'만 남은 마음으로 재하를 찾아갑니다. 이제는 '반갑고 은근히 그리운 마음'을 안고 말이죠.<br> 하지만 재회는 복잡한 감정들을 불러일으킵니다. 예전과 비슷하면서도 많이 달라진 재하의 모습, 더 이상 세상에 없는 어머니의 소식, 아버지에 대해 몰랐던 사실들까지. 그 모든 것들이 기하를 혼란스럽게 만들죠.<br> '셋이 함께 찍은 사진은 그것이 유일합니다.'라는 문장을 읽으며, 문득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사진 속에서 세 사람은 손을 맞잡고 부드럽게 미소 지었지만, 그 순간이 영원하지는 못했죠. <br>"우리가 버티지 못하고 놓아버린 것들, 가중한 책임을 이기지 못해 도망쳐버린 것들은 다 지워지고, 그 자리에 꿈결같이 묘연한 한여름의 오후만이 남습니다."<br><br>성해나 작가가 건네는 위로 성해나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조용한 위로를 건넵니다. 모든 관계가 완벽할 수는 없다는 것, 때로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상처 주는 것이 불가피함을 인정하면서도, 그 불완전함 자체를 부드럽게 껴안으라고 말하는 것 같거든요.<br> '이편에서 왔다가 저편으로 홀연히 사라지는 것들. 어딘가 숨어 있다 불현듯 나타나 기어이 마음을 헤집어놓는 것들.'이라 표현한 문장처럼, 우리 삶에는 예측할 수 없이 나타났다가도 사라지는 관계들이 있고, 때로는 그것이 우리 마음을 깊이 흔들어놓기도 합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는 것도, 다가가려 하지만 어색해하는 것도 모두 그런 관계의 불확실성 앞에서 우리가 택할 수밖에 없는 방식들인 것이죠.<br> 소설 말미에 기하와 재하가 인릉을 함께 걸으며 나누는 대화들을 읽다 보면, 이들이 과거와는 조금 다른 현재도착해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전히 완전하지는 않지만,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은 예전보다 더 너그러워진 것 같거든요.<br>"그때는 형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괜찮습니다."<br><br>두고 온 여름이 건네는 인사『두고 온 여름』은 섣부른 비관이나 막연한 긍정 없이 삶에서 놓친 순간을 조심스레 돌아보고 건져 올린 눈부신 결과물이라 생각합니다. 상처 주고 상처받은 과거를 한 장면 한 장면 곰곰이 되짚는 동안 자책과 후회, 미련과 원망이 가슴에 생겨나지만, 그로 인해 피어나는 살핌과 헤아림이 실패한 관계를 뒤늦게나마 따뜻하게 감싸 안습니다. 설령 관계가 다시 원만해지거나 감정이 복원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삶에 다음 장면으로 이어지도록 열어두는 것이죠.<br> 이 소설을 읽으며 저는 '치유의 과정'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상처를 외면하거나 억지로 잊으려 하기보다, 그 상처를 직시하고 짚어보는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치유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과거와 화해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br>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크고 작은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때로는 그 관계가 뜻대로 되지 않아 아파하고, 때로는 미처 다 전하지 못한 진심 때문에 후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두고 온 여름』은 그런 우리에게 따스하면서도 잔잔한 위로를 건넵니다. 모든 관계가 완벽할 수 없고, 모든 감정이 해소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인연과 마음을 소중히 여기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입니다.<br> 『두고 온 여름』은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두고 온 여름'을 돌아보게 합니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관계였든, 어떤 감정이었든, 그 모든 것을 따뜻하게 보듬어 안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건네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통해 많은 분들이 자신의 '두고 온 여름'에 애틋한 안부를 건넬 수 있기를 바랍니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294/95/cover150/893643900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2949534</link></image></item><item><author>jhj937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나만의 진짜 공을 찾아서 - [합체 (반양장) - 제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23</link><pubDate>Mon, 23 Feb 2026 11: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2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285001&TPaperId=171086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64/2/coveroff/895828500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285001&TPaperId=1710862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합체 (반양장) - 제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a><br/>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0년 08월<br/></td></tr></table><br/>박지리, 경계를 허무는 이야기꾼 올해의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다가 '박지리문학상'이라는 게 있는 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박지리? 박경리도 아니고 박지리? 그래서 찾아봤죠. 궁금하니까. 박지리 작가는 스물다섯의 나이에 『합체』로 제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등단했습니다. 문학 전공자도 아니고, 작가 수업을 따로 받아본 적도 없는 그야말로 '신인' 작가였다는 점이 놀라운데요. 주로 인간의 본질과 사회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었다고 하네요. 특히 『맨홀』, 『다윈 영의 악의 기원』,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 등 여러 작품에서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사회가 가진 모순이나 인간 내면의 심리를 날카롭게 꿰뚫는 탁월한 능력을 풀어냈다는데, 서른한 살에 요절합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출판사에서 박지리 작가의 이름을 내건 문학상을 만들게 되었다던군요. 그래서 작가의 작품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어요. <br><br>난쟁이 두 형제의 성장통『합체』는 난쟁이인 아버지의 유전인자로 인해 키가 자라지 않는 일란성쌍둥이 형제 오합과 오체의 성장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키 컸으면' 하는 바람은 그야말로 지상 최대의 목표였죠. 형 합은 전교 우등생이지만 운동에는 영 소질이 없고, 동생 체는 공부는 꼴찌지만 농구만큼은 자신 있는 친구들인데요. 이처럼 성적부터 성격까지 닮은 구석이라곤 없는 두 형제에게는 '키'라는 공통의 고민이 있었습니다.<br> 어느 날, 동생 체는 약수터에서 '계도사'라는 기묘한 인물을 만나 키 크는 비기를 전수받게 됩니다. 그리고 형 합과 함께 계룡산의 '형제동굴'로 33일간의 수련을 떠나게 되죠. 이 황당하고 엉뚱한 여정 속에서 두 형제는 자신들의 가장 큰 콤플렉스와 마주하고, 진정한 성장이란 무엇인지 깨달아 갑니다.<br> 이 책은 단순히 키 크는 방법을 찾아 떠나는 모험담만은 아닙니다.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루저라고 손가락질받는 이들의 고뇌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죠. 또한, 사회적 편견과 고정관념에 맞서는 용기,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가족 간의 사랑과 이해를 따뜻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br><br>나만의 '진짜 공'을 찾아서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지점 중 하나는 '나만의 진짜 공'이라는 비유였습니다.“합, 체, 니들은 아버지가 가지고 노는 이런 공 말고, 너희들의 공을 찾아야 해. 너희만의 진짜 공.”<br> 작은 행사들을 돌며 연예인이 아닌 예능인으로 살아가는 쇼쟁이 난쟁이 아버지의 이 말은 두 형제에게,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아버지는 매일 수많은 공을 하늘로 쏘아 올리며 관객을 웃기는 일을 합니다. 하지만 그 공들은 아버지가 선택한 것이 아닌, 생계를 위해 주어진 '가짜 공'들이었죠. 아버지는 아들들만큼은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고, 세상이 원하는 대로 휘둘리지 않으며, 스스로가 진정으로 원하는 '진짜 공'을 찾기를 바랐습니다.<br>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공들을 만나게 됩니다. 남들이 다 가졌다고 하는 공, 성공이라고 불리는 공, 번듯해 보이는 공... 때로는 그 공을 따라 달리느라 정작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소설 속 합과 체가 '키'라는 공에 매달리듯이 말이죠. 하지만 작가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이 굴리고 있는 그 공이 정말 당신만의 '진짜 공'이 맞느냐고요.<br><br>평범함에 대한 갈망, 그리고 혁명소설 속에서 체는 자신의 신체적 콤플렉스 때문에 괴로워하며 계도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제가 어떻게 생각하든 다른 사람이 절 난쟁이,라고 부르면 저는 난쟁이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도사님, 전 만족을 바라는 게 아니에요.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기만 했어도, 이 두 다리가 눈에 띄지만 않아도 좋겠어요."<br> 이 문장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함을 꿈꾸기보다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솔직한 고백. 우리 사회는 평범함을 끊임없이 강요하면서도, 동시에 그 평범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을 낙인찍는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대곤 합니다. 체의 말은 이러한 사회적 편견과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담겨 있는 것이죠.<br> 하지만 체는 단순히 좌절하지 않습니다. 혁명을 꿈꾸죠.“체, 체, 체. 체의 가슴이 터질 듯 울렁댔다. 혁명이란 말이 가슴에 콱 박혀 들었다. 무슨 혁에 무슨 명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이 세상을 다 뒤집어엎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란 건 알아들었다. 다 뒤집어엎고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 그러면 키 작은놈은 커지고, 키 큰 놈은 작아지고, 못생긴 놈은 잘생겨지고, 잘생긴 놈은 못생겨질 수도 있다는 것인가, 그게 혁명인가”<br> 체에게 혁명은 단지 세상을 뒤엎는 거창한 일이 아니라,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자신을 억압하는 사회의 기준을 뒤집는 일이었습니다. 자신과 이름이 같은 '체 게바라'를 형님으로 모시며 그가 세상을 뒤집는 혁명을 이룬 것처럼, 자신도 평범해지고 싶다는 그 간절한 바람이 곧 그만의 혁명이 되는 것이죠. 이는 우리가 각자의 삶에서 겪는 어려움과 좌절 앞에서 어떻게 맞서 싸우고, 어떻게 나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듯합니다.<br><br>진짜 생존 수단, 그리고 시간의 의미계도사는 두 형제에게 또 다른 중요한 가르침을 줍니다.“거창한 게 아냐. 사자한테 안 먹히려고 죽을 듯이 뛰는 가젤 본 적 있지? 사자 같은 이빨이 없으니까 대신에 그렇게 달리기라도 하잖아. 인간도 마찬가지야. 가젤의 다리처럼 각자 생존 수단 한 가지씩은 만들어야 한다고.” “안 만들면 어떻게 되는데?” “잡아먹히는 거지.” “누구한테? 사자?” “바보 같긴, 사자가 아니라 이 세상이다, 이 세상.”<br> 이 대화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반드시 자신만의 생존 수단을 만들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충고로 다가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생존 수단은 단순히 직업이나 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겁니다. 그것은 나를 지켜내고, 세상의 파도 속에서 흔들리지 않을 나만의 강점, 나만의 가치, 나만의 지혜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잡아먹으려 할 때, 우리는 가젤이 뛰는 것처럼 나만의 방식으로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죠.<br> 그리고 소설의 말미, 계룡산에서의 33일이 심심할 것에 대비해 체가 가져간 라디오에서, 우연히 계룡산을 찾아와 수련했던 선배(?)의 사연이 소개됩니다. 매번 1등만 하던 이 수련 선배는 막상 수능 당일 첫 시간에 시험을 치르다 말고 뛰쳐나와 생을 마감하려하죠. 마침 시간을 돌려주겠다는 계도사를 만나고 나서 형제동굴에 가게 되는데요.<br>"할아버지가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했는데요, 뭐 그건 저에겐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렇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세상의 시간이 진짜 되돌아간 건 아니지만 그날, 죽지 않고 동굴로 들어가 다시 살 결심을 한 것으로 제 시간만큼은 돌려졌다고요."<br>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불안에 사로잡히는 대신, 지금 이 순간의 선택과 결심이 우리의 시간을 되돌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큰 위로가 됩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을 먹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시간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요.<br><br>합과 체가 전하는 잔잔한 깨달음『합체』는 키라는 콤플렉스를 통해 청소년기의 고민을 풀어내지만, 그 이야기는 비단 청소년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키'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누군가는 외모일 수 있고, 누군가는 학력이거나 재산일 수도 있습니다. 사회가 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느끼며 스스로를 '루저'라고 여기는 순간들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br> 이 책은 그런 우리들에게 유쾌하고 상쾌하며 통쾌한 '성장 비기'를 전해줍니다. 중요한 것은 남들의 기준에 맞춰 키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진짜 공'을 찾고, 나만의 방식으로 '혁명'을 일으키며, 나만의 '생존 수단'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세상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br>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합과 체가 고군분투하는 농구 시합인데요. 합과 체가 키 크기에 성공했는지 여부는 알려드리지 않겠습니다만, 중요한 건 합과 체의 내면이 성장했다는 점일 겁니다. 아버지가 말한 '좋은 공의 조건'을 경기 중에 몸소 깨닫는 것처럼, 외부적인 변화보다 내적인 성장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이겠죠.<br><br>삶은 계속되는 농구 경기처럼"계절은 가을이었고, 바람은 상쾌했고, 하늘에는 누가 쏘았는지 모를 빛나는 공이 어제에 이어 오늘도, 오늘에 이어 내일도 쉬지 않고 튀어 오르고 있었다."<br>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마치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삶이라는 농구 경기에서 우리는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공을 놓치기도 합니다.<br>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공이 튀어 오르는 한우리는 계속해서 달리고시도하고자신만의 '진짜 공'을 찾아 나설 수 있다는 것이죠.<br>『합체』는 가볍게 읽히면서도 어느 순간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삶에 대한 깊은 시선을 담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루저라고 생각하는 우리 모두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세상에 맞서 당당하게 살아갈 용기를 전해주는 박지리 작가님의 따뜻한 응원이 담겨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br>이 책을 통해 당신만의 빛나는 공을 찾으시길.그리고 그 공을 힘껏 하늘로 쏘아 올리는 멋진 삶을 살아가시길 응원합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764/2/cover150/89582850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640221</link></image></item><item><author>jhj937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뭐 어때, 재밌으면 되었지 - [리처드 파인만 - 사랑과 원자폭탄, 상상과 유쾌함으로 버무린 천재 과학자, 파인만의 일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19</link><pubDate>Mon, 23 Feb 2026 11: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1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536789&TPaperId=1710861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044/19/coveroff/k45253678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536789&TPaperId=1710861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리처드 파인만 - 사랑과 원자폭탄, 상상과 유쾌함으로 버무린 천재 과학자, 파인만의 일생</a><br/>크리스토퍼 사이크스 지음, 노태복 옮김 / 반니 / 2017년 02월<br/></td></tr></table><br/><br> 우리가 마주하는 문장 속에는 때로 한 사람의 인생이 통째로 담겨 있기도 합니다. 그 문장들이 우리에게 건네는 이야기는 단순한 지식을 넘어,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 방식에 대한 깊은 사유로 이어지곤 하죠. 이번에 나누고 싶은 문장은 바로 크리스토퍼 사이크스가 엮은 『리처드 파인만』이라는 책 속에서 발견한 것들입니다. 이 책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리처드 파인만의 삶을 BBC 다큐멘터리 제작자의 시선으로 담아낸 작품입니다. 파인만이라는 인물이 과학의 영역을 넘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던지는지, 그의 특별한 인생 여정을 통해 함께 탐험해 보고자 합니다.<br><br>파인만의 발자취를 쫓다 이 책의 저자인 크리스토퍼 사이크스는 영국의 저명한 영상물 제작가입니다. 특히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에 대한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깊이 있는 이해를 보여주었는데요. (저는 보지 못했지만)『발견의 즐거움』, 『탄누투바를 향하여』 등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파인만이라는 인물을 세심하게 다루고 있다고 합니다. 사이크스는 1981년 칼텍에서 물리학 교수로 재직 중이던 파인만을 처음 만나 다큐멘터리 제작에 착수했습니다. 이 책은 그 과정에서 수집된 방대한 자료로, 파인만과의 인터뷰는 물론 가족, 친구, 동료 과학자들과의 대화 내용을 편집하여 엮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 덕분에 우리는 한 사람의 인생을 다각도에서, 물리학자로서의 업적뿐 아니라 인간적인 면모와 깊이까지 만나볼 수 있게 됩니다. 사이크스의 작업은 단순한 전기를 넘어, 파인만이 남긴 삶의 지혜와 열정을 우리에게 오롯이 전달하는 통로 역할을 합니다.<br><br>천재, 그 이상 『리처드 파인만』은 흔히 '천재 물리학자', '노벨상 수상자'라는 수식어로만 기억되는 파인만의 삶이 얼마나 다채롭고 흥미로웠는지를 보여주는데요. 파인만은 영화 '오펜하이머'로 익히 알려진 맨해튼 프로젝트의 최연소 리더이자 봉고 연주자였으며, 그림을 사랑했고, 호기심 가득한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그는 '재미'라는 동력으로 움직였는데, 이 책을 보는 것 자체도 파인만이 세상을 향해 가졌던 멈추지 않는 호기심을 따라가는 재미가 느껴집니다.<br> 파인만의 삶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지점은 그가 어떤 일을 함에 있어 '놀고 싶고 알고 싶은 욕구'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책 속에는 이런 파인만의 생각이 담겨 있는데요.<br>"제가 욕구를 언급하는 건, 일단 그것부터 생겨야 하니까요. 능력보다는 놀고 싶고 알고 싶은 욕구 말이에요. 라마누잔이 바로 그랬어요. 수랑 놀다 보니 재미있는 성질을 자꾸 찾아냈고, 마침내 아무도 몰랐던 걸 발견해 냈죠.” <br> 이 문장에서 저는 진정한 배움과 창조의 시작이 순수한 내적 동기, 즉 즐거움에서 비롯된다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에게 물리학은 일이 아니라, 끊임없이 탐구하고 놀 수 있는 흥미로운 놀이터였던 것이죠.<br> 많은 사람들이 파인만 같은 천재는 IQ가 월등히 높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 그의 IQ는 123이었다고 합니다. (높은 것 아닌가 싶긴 하네요) 하지만 파인만은 이 수치에 개의치 않고 오히려 자신의 모든 행위를 '재미'라는 필터를 통해 바라보았습니다.<br>“나는 중요한 걸 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진 않아. 하지만 물리학과 수학을 좋아하지. 그다지 중요하진 않은 일이지만 재미있어.” <br> 저 역시 이 문장을 통해 제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을 다시금 되짚어 봅니다. 삶의 순간들을 그저 재미있어서 하는 일들로 채워나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과 성장의 열쇠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사회적인 중요도나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내면에서 솟아나는 즐거움에 충실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파인만이 우리에게 전하는 가르침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br><br>지혜로운 삶의 태도 - 질문하고, 행동하며, 이해하다 파인만은 과학자를 넘어, 삶과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가진 철학자에 가까웠습니다. 그는 우리가 어떤 것을 하는 이유를 끊임없이 되물어보아야 한다고 강조했죠. “어떤 걸 하는 이유를 계속 되물어보아야 한다는 것이죠. 상황이 바뀔 수 있으니까요.” <br> 이 말은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과 목표가 언제든 변할 수 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고정된 사고방식에 갇히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하며, 본질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함을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챌린저호 폭발 사고의 원인을 단 하나의 얼음 잔 실험으로 명쾌하게 밝혀냈던 그의 일화는 이러한 그의 태도를 잘 보여줍니다. 그는 기존의 복잡한 보고서나 절차에 얽매이지 않고,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문제의 핵심을 꿰뚫었던 것입니다.<br> 그는 또한 감정보다는 행동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어떤 걸 느끼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올바른 질문인 것 같습니다. 느낌은 어떤 행동을 시작하기 위해 중요하긴 합니다.” <br> 때로는 우리의 감정이 우리를 주저하게 만들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파인만은 느낌은 시작을 위한 동기일 뿐, 결국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이성적이고 실용적인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책을 찾아 나가는 그의 방식과도 연결됩니다.<br> 파인만은 인간의 불행이 무지와 이해의 부족에서 비롯된다고 보았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거나 스스로가 알지 못함을 인정하지 않을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지식은 단순히 정보를 아는 것을 넘어, 사물의 본질을 깊이 이해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임을 파인만은 일깨워 주었습니다. 끊임없이 배우고 탐구하며 세상의 이치를 깨달으려는 노력이 우리를 더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으로 이끌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죠.<br><br>과학과 삶의 경계에서 - 호기심과 도덕의 균형 파인만은 과학적 탐구에 있어서도 독특한 관점을 유지했습니다. 그는 수학과 물리학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연의 작동 방식이 꼭 수학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수학적 추론이 왜 그런 식으로 꼭 작용해야 합니까? 어떻게 보면, 우리가 물리학에 관해 더 많이 알아내면서 유용한 수학을 발전시켰고, 수학의 발전이 물리적 세계를 이해할 필요성 때문에 촉진되었으며, 둘은 함께 발전한다는 겁니다.”<br> 이는 수학이 자연 현상을 기술하는 도구일 뿐 아니라, 물리학적 이해의 필요성에 의해 발전해 온 상호 보완적인 관계임을 시사합니다. 그는 이론적 틀에 갇히지 않고, 오직 '세계에 관해 더 많이 알아내려는' 순수한 호기심으로 연구에 임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물리학의 궁극적인 법칙을 찾고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아뇨, 아닙니다. 저는 세계에 관해 더 많이 알아보려고 할 뿐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 대답은 과학자의 진정한 태도, 즉 미지의 세계를 향한 겸손하고 끊임없는 탐구 정신이구나 싶더라고요.<br> 그의 인간적인 면모는 도덕적 관점에서도 드러납니다. 그는 사람들이 착해지거나 박애주의자가 되려고 너무 애쓴다고 보며,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그게 요점이 아냐. 요점은 남한테 해를 안 끼치는 거야.”<br> 이 실용적이고 간결한 도덕관은 거창한 이상보다는 실제적인 행동, 즉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최소한의 윤리가 가장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그의 삶은 이러한 철학을 충실히 따랐습니다. 그는 누구에게나 편견 없이 다가갔고, 사회적 지위나 권위에 굴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진실을 추구했습니다. 봉고 연주, 그림 그리기, 낯선 곳으로의 여행 등 물리학 외에도 수많은 것에 관심을 가졌던 그의 삶은 그래서 더욱 풍요로웠습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인생을 다채롭게 만들었다고 믿었습니다.<br><br>삶의 마지막까지 이어진 열정과 로맨스『리처드 파인만』은 학문적 업적뿐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 특히 사랑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다룹니다. 열다섯 살에 만난 알린과의 사랑은 그녀가 결핵으로 고통받는 상황에서도 변함없었고, 심지어 요양소로 가는 도중 결혼식을 올릴 만큼 절절했습니다. 알린이 세상을 떠난 후 그가 그녀에게 썼지만 끝내 부치지 못하고 봉인되었던 편지는 그의 순수하고 깊은 사랑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이야기로 남아 있습니다. '추신 : 이 편지를 부치지 않은 걸 이해해 줘요. 당신의 새 주소를 모르기에.'라는 마지막 문장은 읽는 이의 마음을 저미게 하죠.<br> 이후 그의 마지막을 지켰던 아내 기네스와의 일화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노벨상을 거부하려 했던 파인만을 '거절하면 더 유명해질 것'이라며 설득했던 그녀의 지혜는 파인만이라는 거장이 얼마나 인간적인 사랑을 받았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5년에 걸친 암 투병 끝에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 그가 남긴 '두 번 죽기는 싫어. 그건 정말 지루하단 말이야'라는 말은 죽음 앞에서도 유머와 삶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던 그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죽기 전까지도 친구와 함께 '탄누투바'라는 미지의 땅을 꿈꾸었던 그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호기심과 모험 정신을 놓지 않았습니다.<br><br>파인만이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리처드 파인만』은 한 천재 물리학자의 전기이지만, 그 이상으로 우리에게 진정한 삶의 의미와 태도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공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저는 파인만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바로 '순수한 호기심과 즐거움으로 삶을 대하는 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지식과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 자체가 가장 큰 보상임을 몸소 보여준 것이죠. 사회적 명예나 물질적 풍요를 넘어, 오직 자신의 내면에서 솟아나는 즐거움과 호기심에 충실했을 때, 비로소 진정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요.<br> 우리는 종종 삶의 목적을 외부에서 찾으려 하거나, 결과에만 집착하여 과정의 즐거움을 놓치곤 합니다. 하지만 파인만은 '재미'와 '앎의 욕구'가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작은 호기심들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탐구하는 과정 자체에서 기쁨을 찾아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또한,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도덕적 원칙을 지키면서, 이해와 지식을 통해 스스로의 불행을 극복하고 더 나은 세상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br>『리처드 파인만』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틀에 박힌 사고에서 벗어나며, 미지의 세계를 향한 열린 마음을 가질 것을 권합니다. 그의 삶은 그 자체가 하나의 위대한 발견이었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문장들 속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의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입니다. 순수한 호기심과 즐거움으로 가득 찬 파인만의 삶처럼, 우리 또한 나만의 '재미'를 찾아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가는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0044/19/cover150/k45253678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0441987</link></image></item><item><author>jhj937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그래서 우리는 끝내 살아내고 - [이만큼 가까이 (리마스터판) - 제7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18</link><pubDate>Mon, 23 Feb 2026 11: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1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4535&TPaperId=1710861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721/48/coveroff/8936434535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4535&TPaperId=1710861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만큼 가까이 (리마스터판) - 제7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a><br/>정세랑 지음 / 창비 / 2021년 08월<br/></td></tr></table><br/> 우리의 삶은 어딘가 삐걱거리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불운과 마주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작은 기적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한 뼘씩 성장해 나가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겠죠.<br> 이번에는 특유의 명랑함과 재치로 우리를 위로하는 작가, 정세랑의 『이만큼 가까이』를 통해 제가 얻은 인사이트를 나누려 합니다.<br> 정세랑 작가는 주로 청춘의 성장통, 상실감, 그리고 그것을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냅니다. 때로는 기발한 상상력을 더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기도 하고, 일상 속 작은 순간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아내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죠. 그녀의 문장은 늘 기대보다 한 발 더 나아가는 재미를 선사하며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과 위로를 건넵니다.<br>『이만큼 가까이』는 이러한 세계를 잘 보여주는 작가의 초기작 중 하나입니다. 신도시 외곽의 작은 도시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여섯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성장의 진통과 상실감, 그리고 이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담담하면서도 경쾌하게 담아냈습니다. 마치 우리의 학창 시절을 보는 듯 친근한 감성을 자극하며, 읽는 내내 따뜻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소설이었어요.<br><br>낡은 2번 버스, 그리고 우리 소설은 파주와 일산을 오가는 '2번 버스'를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이 낡은 버스는 주인공 '나'와 주연, 송이, 수미, 민웅, 찬겸 등 여섯 명의 친구들이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내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자 그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중요한 공간이 됩니다. 그들은 이 버스 안에서 음악을 듣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 짝사랑으로 아파하며 십 대의 덜컹거리는 길을 함께 헤쳐 나갑니다.<br>"2번 버스. 그 망할 버스에 대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 버스를 빼놓고는 아무 얘기도 할 수 없다. (…) 우리 여섯 명은 곧 쓰러져 죽을 것 같지 않으면 매일 그 버스에 탔다. 누구 한 사람 타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졌다. (…) 버스가 퍼져버리면 우리 여섯은 눈길을 헤치고 더 큰길로 나가기 위해 애를 썼다. 운동화가 젖는 건 예사였다. 발가락이 얼어 떨어져 나가지 않은 게 지금 와서도 다행이다. 그런 경험들이 우리를 우리로 만들었다. 2번 버스가 아니었다면 우리도 우리가 아니었을 것이다."<br> '같이'의 가치에 대해 생각합니다.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경험했던 사소한 불편함이나 어려움들이 사실은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성장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는 것이죠. 낡은 2번 버스는 그들에게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것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위안을 얻으며, 흔들리지만 쓰러지지 않고 함께 지나온 시간의 상징이었어요. 비록 세상이 우리를 홀로 남겨두는 것 같아도, 곁에는 늘 묵묵히 함께 걸어가는 이들이 있다는 따뜻한 위로를 전해주는 듯했습니다.<br><br>권위와 나약함 사이의 코끼리 소설 속 주인공 '나'는 영화 미술 일을 하면서 감독들과의 관계에서 자신만의 방식을 지켜나갑니다. 그녀의 태도에서 제가 밑줄 그었던 문장들은, 사회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데요.<br>"감독들이 대부분은 함께 지내기 매우 힘든 사람들이어서도 그렇지만, 내가 권위에 별로 반응하지 않는 타입인 게 더 컸다. 좋은 어른은 좀처럼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나쁜 어른은 내세울 권위가 없다."<br>"... 감독들에 대한 나의 냉랭한 태도는 다른 스태프들에게 호감을 살 정도였다. 굽히는 사람이 아니다, 아부하는 사람이 아니다, 실력으로만 승부하는 사람이다, 그런 평판을 얻었다. 사실 그건 여차하면 그만두고 엄마랑 할머니랑 국숫집이나 해야지 하는 건성의 마음 때문이었지 실력이랑은 별로 상관없었다. 어차피 영화 해서 나오는 돈은 너무 적어서 뒤늦게나마 받을 때마다 코웃음이 나왔다. 떼이지만 않으면 다행인 그런 돈 때문에 안 그래도 코끼리만 한 감독들의 에고를 더 키워주긴 싫었다. 귀여운 코끼리가 아니다. 일 년에 사백여 명을 죽이는 코끼리다. 한 사람쯤 아부를 안 해줘야 덜 쿵쾅거린다."<br> 주인공의 이러한 태도는 단순한 반항심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지키고, 부당한 권위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단단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겁니다. 특히 '일 년에 사백여 명을 죽이는 코끼리'라는 비유는, 과도한 에고와 불필요한 권위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지 날카롭게 꼬집는 듯했습니다. 때로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불필요한 아부를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자신을 지키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공이나 돈보다, 자신만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문장이었습니다.<br><br>첫사랑의 상실, 그리고 남겨진 흉터 소설은 첫사랑인 주완이와의 이야기를 통해 청춘의 아름다운 설렘과 동시에, 예기치 않은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을 섬세하게 다룹니다. 주완이와 함께 보냈던 '히치콕 주간', '우디 앨런 주간' 등은 영화를 통해 세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특별한 시간이었고, 그들은 서로에게 세상의 전부가 되어가고 있었지요. 하지만 행복했던 첫사랑은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어려움을 맞게 됩니다.<br>"주완이에게도 비슷한 곳에 흉터가 있었다. 수미와는 다른 쪽 눈이었지만, 흰 선이 남아 있었다. 주완이도 누구에게 맞았던 걸까. 일방적으로 맞은 걸까. 다른 누구를 때리려다 그랬던 걸까. 수미의 저 상처도 그런 흰 선으로 잘 아물까. 그렇게 가늘고 희미하게 아물기 전에 다시 다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너무 오래 수미를 쳐다봤는지 수미가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저쪽으로 젖히자 수미의 교복 칼라가 눈에 들어왔다. 그다지 깨끗한 상태가 아니었다. 우리 엄마가 봤더라면 난리를 치며 약을 풀어 담가놓을 만한 상태였기에 나도 고개를 돌렸다. 해결할 능력이 없는 문제에 마음을 쓰는 건 별로라고, 정말 별로라고 속으로 되뇌며 이어폰을 껴버렸다."<br> 상처와 흉터에 대한 이 문장은, 비단 물리적인 상처뿐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남겨진 아픔까지도 의미하는 듯했습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원치 않는 상처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그 상처가 아물지 못한 채 흰 선처럼 남아 있기도 하지요. 주인공은 수미의 상처를 보며 주완이의 흉터를 떠올리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마음을 쓰는 것을 '별로'라고 이야기하며 이어폰을 끼웁니다. 이는 감당하기 힘든 아픔 앞에서 애써 외면하려는 청춘의 불안하고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아픔들이 모여 우리를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된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합니다.<br><br>살아내고야 마는 존재소설은 첫사랑의 죽음이라는 상실 앞에 친구들이 느끼는 절망감과 동시에, 그것을 이겨내고 삶을 지속해 나가는 방식을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특히 주연이의 대사는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데요.<br>"내 생각에, 인간은 잘못 설계된 것 같아." <br><br>주연이가 말했을 때 아무도 '왜 또?' 하고 반문하지 않았다. <br><br>"소중한 걸 끊임없이 잃을 수밖에 없는데, 사랑했던 사람들이 계속 죽어나갈 수밖에 없는데, 그걸 이겨내도록 설계되지 않았어." <br><br>우리는 그렇게 모여서 함께 망가지고 고장 나고 그러다 한 사람씩 사라질 것을 예감했으나 이른 포기의 달콤함 같은 것이 깃들어 있어서 그리 무거워지진 않았다. 열 개의 인디언 인형처럼 하나씩, 운이 좋으면 길게 머물 거고 아니라면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었다. 순서를 기다리면서 담담하게 치킨을 먹고 생일 파티를 하고 경조사를 챙겼다. 살아진다는 어른들의 말에 진저리를 내면서도 살아졌다.<br> 이 문장은 삶의 본질적인 비극성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소중한 것들이 사라지는 경험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주연이의 말처럼, 그러한 상실을 온전히 이겨내도록 설계되지 않은 것만 같은 무력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소설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주인공과 친구들은 함께 망가지고 고장 나면서도, 이른 포기의 달콤함 속에 담담하게 삶을 이어갑니다. 마치 열 개의 인디언 인형처럼, 언젠가는 사라질 것을 예감하면서도 현재를 살아내는 것이지요. 어른들이 말하는 '살아진다'는 말이 때로는 진저리 나게 느껴져도, 결국 우리는 살아내고 마는 존재라는 것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문장이었습니다. 이는 곧 슬픔과 상실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는, 무심하지만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듯했습니다.<br><br>불운으로부터 비롯된 존재들 소설은 우리가 마주하는 불운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찾아오는 불운이 우리의 삶을 뒤흔들고, 우리가 존재하게 된 근원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말이죠.<br>"그러나 사실 불운은 늘 기분 나쁘게 도사리고 있었다. 잠시라도 잊으면 말도 안 되게 끔찍한 짓을 저질러 우리를 환기시킨다. 아주 가까이에 있어, 이만큼 널 흔들어 놓을 수 있어. 쉽게 죽일 수도 있어. 그런 식으로 난데없이 공격받으며 살아가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는 그런 불운으로부터 비롯된 존재이기도 하다. 내가 삼팔선을 넘은 할아버지의 불운에서 태어난 것처럼. 나의 뿌리는 불운이요, 나를 키운 것도 불운이요, 내가 끝내 다다를 결말 역시 불운이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적겠지만 말이다."<br> 이 문장은 저에게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불운을 피하고 싶어 하고, 그것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라지요. 하지만 작가는 불운이 늘 우리 가까이에 도사리고 있으며, 때로는 우리의 존재 자체가 불운으로부터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는 역설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전쟁과 같은 거대한 불운 속에서 할아버지가 삼팔선을 넘어왔기에 '나'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죠. 이는 삶의 아이러니와 함께, 우리가 마주하는 불운조차도 결국은 우리 삶의 일부이자 우리를 만들어가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깊은 통찰을 선사합니다. 어쩌면 불운은 우리를 좌절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고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요.<br><br>눈물 냄새를 맡는 사슴처럼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주완이의 눈물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는 단순한 비유를 넘어, 사랑하는 존재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 그리고 치유의 과정을 상징하는 듯합니다.<br>"어미 사슴은 풀숲에 숨겨놓은 아기 사슴의 눈물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했다. 사슴마다 눈물 냄새가 고유해서, 바로 구별해 낸 다음 달려가 달래줄 수 있다고 말이다. 우리 동네는 밤이 되면 사슴과(科) 동물들이 내려오는 사슴의 나라였다. 특히 고라니나 노루가 많았다. 밤이 물러가도 눈물 냄새는 남겨놓아서 우리는 언제나 그 남은 입자들을 들이마시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주완이의 눈물 냄새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br> 사랑하는 사람의 아픔과 슬픔을 알아채고, 달려가 위로해 줄 수 있는 능력. 그것은 어쩌면 사슴의 능력처럼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경험을 통해 깊어지는 마음의 지혜일 것입니다. 소설 속 친구들은 주완이의 죽음이라는 상실 앞에서 통곡하기보다는, 기나긴 시간을 건너는 법을 배우고 서로의 시간을 이해하고 견뎌냅니다. 그 과정 속에서 아팠던 상처는 희미한 흉터로 남게 되고, 굳이 쿨하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로 서로를 지켜주는 '우리'가 되어가는 것이죠.<br><br>삶의 불완전함을 끌어안는 용기 정세랑 작가의 『이만큼 가까이』는 잊고 지낸 우리의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완벽하지 않고,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좌절하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서로에게 위안이 되고 힘이 되어주며 성장해 나가는. <br> ‘있는 듯 없는 듯 살다 간 사람, 있다가 없어진 사람, 있어도 없어도 좋을 사람, 없어도 있는 것 같은 사람, 있다가 없다가 하는 사람, 있어줬으면 하는 사람, 없어져버렸으면 하는 사람, 없느니만도 못한 사람, 있을 땐 있는 사람, 없는 줄 알았는 데 있었던 사람, 모든 곳에 있었던 사람, 아무 데도 없었던 사람, 있는 동시에 없는 사람, 오로지 있는 사람, 도무지 없는 사람, 있다는 걸 확인시켜 주는 사람, 없다는 걸 확인시켜주지 않는 사람, 있어야 할 데 없는 사람, 없어야 할 데 있는 사람......... 우리는 언제고 그중 하나, 혹은 둘에 해당되었다’<br> 위 문장처럼,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로 삶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을 끌어안고,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며 '이만큼 가까이' 함께 걸어가는 것이 바로 삶의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br> 소설은 슬픔과 상실의 시간을 지나온 주인공과 친구들이 이제 '안정된 음역'을 지닌 삼십 대의 목소리로 편안하게 서로에게 말을 건넨다고 말합니다. 이는 곧 시간이 흐르면서 상처가 아물고, 그 아픔 속에서 더 단단하고 지혜로운 존재로 성장한다는 의미겠지요. 반짝이던 첫사랑과의 순간들을 그리워하면서도, 현재의 우리를 소중히 여기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 것. 이것이 바로 『이만큼 가까이』가 우리에게 건네는 따뜻한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br> 그리고 그 메시지는 단지 소설 속 인물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말처럼 느껴졌습니다. 청춘의 서툰 사랑과 상실, 어른이 되어 마주하는 권위와 불운, 그리고 끝내 살아내고야 마는 존재로서의 우리 삶. 『이만큼 가까이』는 그 모든 굴곡 속에서도 여전히 곁에 머물러 주는 사람들이 있음을 일깨워줍니다.<br>  삶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완벽한 해답은 주어지지 않지만, 누군가의 눈물 냄새를 알아채고 불완전한 모습 그대로 곁을 내어주는 순간들 속에서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다정해질 겁니다. 그래서 결국 중요한 건 멀리서 반짝이는 어떤 이상이 아니라, 지금 내 옆에서 이만큼 가까이 함께 걸어주는 사람들일 것입니다.<br> 결국 삶은 덜컹거리는 버스처럼 흔들리며 흘러가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눈물 냄새를 알아보고, 흉터를 쓰다듬으며 다시 일어섭니다. 완전하지 않아 더 아름다운 순간들, 사라졌지만 여전히 곁에 남아 있는 목소리들, 그 모든 것이 모여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을 겁니다.<br><br>『이만큼 가까이』는 말합니다. 멀리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아니라바로 곁에서 이만큼 가까이손 내밀어 주는 사람이 삶의 기적이라고. <br>그래서 우리는 끝내 살아내고다시 사랑하며또다시 걸어갑니다. <br>불완전함을 끌어안은 채그러나 다정하게.<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721/48/cover150/8936434535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7214888</link></image></item><item><author>jhj937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삶의 부당함에 - [단명소녀 투쟁기 - 1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17</link><pubDate>Mon, 23 Feb 2026 11: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1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32733796&TPaperId=1710861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475/1/coveroff/k83273379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32733796&TPaperId=1710861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단명소녀 투쟁기 - 1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a><br/>현호정 지음 / 사계절 / 2021년 07월<br/></td></tr></table><br/>나는 나의 죽음을 죽일 수 있다.<br> 현호정 작가의 『단명소녀 투쟁기』를 읽고 난 뒤 오래 마음에 남은 문장입니다. 이 한 줄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그리고 우리 각자가 짊어지고 살아가는 운명에 대한 깊고 단단한 의지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력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맞서 싸우겠다는, 그래서 결국 이겨내겠다는 의지.<br>『단명소녀 투쟁기』를 읽으며 다시금 삶과 죽음, 그리고 그 경계에 선 인간의 본질적인 질문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관계의 복잡함과 불완전함 속에서 피어나는 우리 내면의 투쟁을 섬세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br><br>현호정, 삶의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꾼 현호정 작가는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이상하리 만치 흔들리는 문장들. 이상하게 쓰이기 위해 고르고 벼른 흔적이 역력한. 쓰고 지우기를 반복한 문장으로 낯선 정서를 통과시키려는 작가의 의도와 리듬감이 너무도 선명히 남아있어서요. 현호정 작가는 박지리문학상을 이 『단명소녀 투쟁기』로 수상하며 등단합니다. 작가의 작품들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특한 상상력과 서사로 인간 본질과 사회의 이면을 탐색하는 것이 특징인 것 같아요. 특히 『단명소녀 투쟁기』에서 보여주는 설화를 재해석하는 방식, 그리고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스토리텔링 기법을 활용하는 점은 독보적인 문학 세계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작품 속에서 '죽음'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것을 단순히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위한 투쟁'으로 그려내며 독자들에게 삶의 의미를 다시금 곱씹게 만듭니다.<br><br>스무 살 전 단명할 운명을 지닌 소녀의 긴 여정『단명소녀 투쟁기』는 열아홉 살 소녀 구수정이 입시 전문 점쟁이를 찾아갔다가 '스무 살 전에 단명할 운명'이라는 예언을 듣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신인지 스님인지 무당인지 알 수 없는 북두라는 자의 예언에 수정은 절망하는 대신 '싫다면요?'라고 되묻고 자신의 삶을 이어 나가기 위한 긴 여정을 떠납니다. 죽음이 덮치기 전에, 그보다 먼저 달아나 살 작정으로 말이죠.<br> 수정의 여행은 지극히 현실적인 G시의 지하철역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술에 취한 남자와의 만남, 그리고 갑작스레 나타난 날개 달린 사자만큼 커다란 개 '내일'의 등에 올라타면서 수정은 현실계를 벗어나 다른 세계로 이동하게 됩니다. 검은 산들이 둘러싼 분지에서 수정은 자신처럼 열아홉 살이지만 반대로 '죽기 위한 여정' 중에 있는 이안을 만나게 됩니다.<br> 삶을 찾아 나선 수정과 죽음을 찾아 나선 이안. 극과 극의 목적을 가진 두 사람은 함께 여행을 하며 저승의 바위 사막, 마을, 강을 건너 작은 섬에 이르는 등 낯선 이계의 풍경 속에서 각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미션을 수행해 나갑니다. 명부에 그려진 악사, 청소부, 눈-인간 등 기괴한 존재들을 죽여야만 수정은 삶에, 이안은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잔혹한 설정은 이 소설의 독특한 서사를 더욱 몰입하게 만듭니다.<br><br>생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단단함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깊이 새겨진 문장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수정이 느끼는 감정들과 맞닿아 있습니다. 특히 북두와 수정이 처음 마주하는 장면은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br>그 눈을 수정도 똑바로 봤다. 새카맣고 작은 눈동자가 깊고 멀었다. 우물에 빠진 채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이런 느낌일까. 이렇게 막막하고 이렇게 두렵고 이렇게… 행복할까?<br> 죽음을 예고하는 존재와의 만남에서 느껴지는 막막함과 두려움. 하지만 그 속에서 묘하게 피어나는 '행복할까?'라는 질문은 삶과 죽음에 대한 수정의 복합적인 감정을 보여줍니다. 어쩌면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상황 앞에서 비로소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는 역설적인 순간을 표현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도 종종 예상치 못한 사건 앞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것처럼 말이죠.북두가 설명하는 죽음의 모습 또한 제게는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br>죽음은 소나기처럼 움직인다고 북두는 설명했다. 지평선에서부터 먹구름과 비가 솨아아 달려오는 모양으로 죽음도 다가온다고. 그러므로 만약 구름이 움직이는 속도보다 더 빨리 달린다면 비를 맞지 않을 수 있듯이, 죽음과 반대 방향으로 계속 움직이면 죽음을 조금,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늦출 수 있다는 말이 되었다.<br> 죽음을 소나기에 비유하고, 그보다 더 빨리 달리면 죽음을 피할 수 있다는 비유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움직임'과 '의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삶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 그것이 바로 단명이 예정된 수정이 삶을 투쟁하는 방식이 아닐까 싶었죠. 우리 역시 삶이라는 여정에서 닥쳐오는 수많은 어려움 앞에서 멈춰 서기보다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가야 한다는 조용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듯했습니다.<br>수정과 이안이 저승 신에게 각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힘을 합치라는 북두의 조언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닌 '함께' 헤쳐나가야 할 삶의 과제를 상징하는 듯합니다.<br>— 함께 저승으로 가거라. 힘을 합쳐 문 앞에서 저승의 신을 붙잡아, 각자 원하는 것을 얻어 내렴.<br>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죽음이라는 거대한 운명 앞에서, 수정과 이안은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개인의 문제를 사회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고, 서로 연대하여 해결해 나가야 함을 시사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와 함께, 함께라면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다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br> 책 속에서 청소부라는 캐릭터를 통해 드러나는 '질서'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날카롭게 보여줍니다. 청소부는 '질서에 맞추어 모든 존재를 제자리에 놓아두는 일'을 자신의 역할이라고 주장하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능력이나 자격이 없는 자는 죽어도 무방하다는 궤변을 늘어놓습니다.<br>—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어린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저라고 늙은 몸을 쉬이고 싶은 마음이 없을까요. 그러나 제가 죽으면 마을은 지탱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악사는 다르지요. 음악이 없어도….<br> 이 문장을 읽으며 저는 소위 '기성세대'라고 불리는 구성원들이 정해놓은 사회의 기준과 질서 속에서, 젊은 세대가 겪는 어려움을 떠올렸습니다. 특히 '대학 입시 결과에 따라 정상성 세계의 진입자 아니면 낙오자'로 분류되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경직된 시선으로 개인의 가치를 평가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수정은 이러한 기성세대의 궤변 속에서 미성년의 죽음이야말로 어긋난 질서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죽음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대신, 스스로의 삶을 쟁취하려는 수정의 투쟁은 사회가 정해놓은 부당한 질서에 맞서 싸우는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았습니다.<br> 수정과 이안이 서로를 죽여야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마지막 미션은, 삶과 죽음, 그리고 관계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수정이 자신의 여정의 의미를 인식하며 내뱉는 말은 제 마음에 가장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br>— 망친 게 아니야.<br>— 그럼?<br>— 구한 거야. 이룬 거야. 최선을 다했기에 흔적이 남은 거야.<br>— 그럼 잔해를 떠안고 살아가. 고약한 피 냄새에, 무질서에 익숙해질 각오를 해. 폐허를 쉼터로, 몰락을 휴식으로 착각하면서.<br>—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경고야?<br>— ….<br>— 나에게 그런 것들은 이제 조금도 두렵지 않아. 그리고 나는 그것들의 이름을 실제로 바꾸어 부르겠어. 폐허를 쉼터로, 몰락을 휴식으로… 영원히…. 그러면 그건 더 이상 착각이 아니게 되겠지. <br> 이 대화는 삶에서 마주하는 실패와 좌절, 그리고 그로 인해 남겨지는 흔적들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망친 것'이 아니라 '구한 것'이고, '이룬 것'이며, '최선을 다했기에 남은 흔적'이라는 수정의 깨달음은 우리의 삶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중요한 자세를 일깨워줍니다. 폐허를 쉼터로, 몰락을 휴식으로 여기겠다는 결연한 의지는 외부의 부정적인 시선과 평가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재정의하겠다는 주체적인 선언과 같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삶의 역경 속에서 찾아야 할 '단단함'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br><br>우리는 모두 단명(短命)을 타고난 단단(斷短)한 존재현호정 작가의 『단명소녀 투쟁기』는 단순히 스무 살 전에 죽을 운명에 맞서는 한 소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는 오늘날 '단명'의 운명을 짊어진 채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경쟁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고, 때로는 실패와 좌절 속에서 마치 단명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끼기도 합니다.<br> 하지만 수정의 투쟁은 우리에게 희망을 보여줍니다. '나는 나의 죽음을 죽일 수 있다'는 결연한 의지처럼, 우리 또한 우리를 억압하고 죽음으로 이끄는 사회 시스템과 내면의 두려움에 맞서 싸울 수 있습니다. 『단명소녀 투쟁기』는 섣부른 낙관론을 펼치기보다, 삶의 고통과 어려움을 직시하고 그 속에서 스스로 단단해질 것을 요구합니다.<br> 관계의 불완전함 속에서 상처받고 사회의 부당한 질서 앞에서 좌절하며 때로는 죽음보다 나쁜 것들에 둘러싸여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 것 같은 순간에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수정이 자신의 운명에 '싫다면요?'라고 되물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삶의 부당함에 '싫다면요?'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용기는 '단명'이라는 운명을 '끊어낼' 수 있는 '단단함'에서 비롯될 것입니다.<br>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오늘날의 주요한 서사적 활동에 소설이라는 형식을 부여하고, '덧없이 공중에 흩어지는 이야기의 기억들이 조금 더 오래 생존하도록' 합니다. 수정과 이안의 여행이 소설 속 현실 세계에서 아무도 모르는 비밀로 남을지라도, 그들의 투쟁은 독자들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어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br>이처럼 우리 모두가 자신의 '단명'에 맞서 '단단'해질 것을 약속하는사람들이 많아지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br>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투쟁을 통해단명소녀가 아닌 연명소녀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475/1/cover150/k83273379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4750148</link></image></item><item><author>jhj937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나는 어떤 마음을 팔고 싶은가 - [슈퍼 포지셔닝의 전략가들 - 초파격의 차별화를 만드는 래디컬 컨셉의 법칙]</title><link>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16</link><pubDate>Mon, 23 Feb 2026 11: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1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32038402&TPaperId=1710861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214/25/coveroff/k23203840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32038402&TPaperId=1710861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슈퍼 포지셔닝의 전략가들 - 초파격의 차별화를 만드는 래디컬 컨셉의 법칙</a><br/>김동욱 지음 / 래디시 / 2025년 04월<br/></td></tr></table><br/> 언제부터인가 회사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거나, 어떤 일을 기획할 때면 습관처럼 '이 기술/솔루션 영역의 최근 트렌드는 뭐지?'를 먼저 검색하는 제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늘 남들보다 한 발 앞서가야 한다는 생각, 혹은 최소한 뒤처지지는 말아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일까요. 모두가 '지금은 이게 대세'라고 외치는 파도 위에서 어떻게든 균형을 잡으려 애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과연 그 파도에 몸을 맡기는 것이 정답일까, 파도 자체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할까 하고요.<br> 바로 그때, 김동욱 작가님의 ‘슈퍼 포지셔닝의 전략가들’이라는 책을 만났습니다. 이 책은 '이제는 어떻게 상품을 팔까(selling)를 생각하지 마세요. 어떻게 마음을 파볼까(exploring)를 고민해야 합니다'라는 문장으로 저의 마음을 사로잡았죠. 트렌드를 쫓는 행위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 깊숙한 곳을 탐험하고 그 안에 자리 잡는 것이 진짜 성공의 열쇠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 순간이었습니다.<br><br>작가는 어떤 사람인가 이 책을 쓴 김동욱 작가는 23년간 광고 기획자로 일하며 수많은 성공적인 캠페인을 만들어 온 분입니다. ‘피키캐스트’, ‘우유 속에 해시태그’, ‘데상트 블레이즈’ 같은 이름만 들어도 아, 그 광고~ 하고 떠오르는 작업들을 하셨지요. 특히 ‘Share hair’ 캠페인으로 칸 크리에이티브 페스티벌에서 수상한 이력은 그의 크리에이티브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졌는지 보여주는 듯합니다. <br> 그는 인생의 방향, 전략, 그리고 크리에이티브라는 세 가지 문제를 ‘컨셉’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현재는 AI를 활용한 마케팅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고 하니,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도전하는 진정한 전략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br>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은 '컨셉'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독창적인 컨셉을 찾아내고, 이를 통해 브랜드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이죠. 단순히 제품을 예쁘게 포장하는 것을 넘어, 브랜드의 본질을 파고들어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그가 추구하는 바라고 할 수 있습니다.<br><br>책 속으로『슈퍼 포지셔닝의 전략가들』은 치열한 시장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8가지 브랜드를 분석하며, 그들이 가진 고유한 ‘래디컬 컨셉’ 전략을 보여줍니다. '래디컬(Radical)'이라는 단어는 '급진적인', '근본적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이 책은 단순히 눈에 띄는 일시적인 임팩트를 넘어, 브랜드의 DNA에 깊숙이 자리 잡는 근본적인 차별화 포인트를 어떻게 구축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br> 책은 거창한 비전에서 시작하지 않고, 작은 도전에서 출발해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래디컬 한 정체성을 구축한 브랜드들의 사례를 소개합니다. 물을 팔면서 ‘리퀴드 데스’라는 섬뜩한 이름을 붙여 논란을 즐기는 브랜드, 혹은 화장품 업계의 오랜 미신을 깨부수는 ‘디오디너리’와 같이 기존의 규칙을 거침없이 깨는 브랜드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익숙함을 벗어나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br> 특히 디오디너리 이야기는 인상적이었는데요. ‘그들은 자사 제품과 전혀 관련 없는 진실까지 공개합니다. 예를 들어, 그들은 데오드란트를 판매하지 않음에도 데오드란트 성분에 대한 진실을 밝힙니다.’라는 문장은 그들의 전략이 얼마나 파격적인지 잘 보여줍니다.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진정한 가치를 전달함으로써 소비자의 마음속에 신뢰를 심는 것, 그것이 바로 그들의 전략이었습니다.<br><br>내가 그은 밑줄 이 책에서 저는 여러 인상적인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첫 번째는 ‘슈퍼 포지셔닝’의 의미입니다. ‘소비자가 특정 카테고리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슈퍼 포지셔닝의 핵심입니다.’라는 문장은 제가 늘 고민해 왔던 ‘어떻게 하면 사람들 마음속에 각인될까?’에 대한 명쾌한 답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이는 브랜드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에도 적용할 수 있는 중요한 인사이트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떤 분야에서 '그 사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존재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진정한 성공이 아닐까요.<br> 두 번째는 문제의 본질을 다시 규명하는 것의 중요성입니다. 룰루레몬이 ‘그들이 창업 때부터 페르소나로 삼아온, 그래서 그들에게 지금의 성장을 가져다준 그 페르소나에만 의존하는 것이 문제’라고 판단했던 것처럼, 때로는 성공의 원인이라 여겼던 것이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더 좋은 해결책을 원한다면, 더 나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문장은 저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문제의 본질을 재정의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br> 세 번째는 고난을 대하는 자세입니다. '고난은 세상에 없던 것들을 만들어내거나 한 번도 해보지도 않은 일을 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연료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인생에 주어진 고통을 피하고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천국은 없습니다'라는 문장은 저에게 용기와 위로를 동시에 주었습니다. 삶에서 마주하는 어려움을 단지 피하고 싶은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동력으로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br> 마지막으로, ‘아니요(No)’를 대하는 태도입니다. 베른하르트라는 인물이 'No'를 실패가 아닌 'Not right now(지금은 아니다)'로 받아들였다는 내용은 저의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거절당하거나 실패했을 때, 그것을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잠시 멈춰 서서 다음 기회를 모색하는 유연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br><br>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슈퍼 포지셔닝의 전략가들』은 그저 마케팅 책으로 치부해선 안됩니다. 이 책은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고 있죠. <br>트렌드를 쫓는 삶이 아니라, 나만의 고유한 컨셉을 만들어내는 삶실패를 두려워하는 대신, 실패를 통해 새로운 길을 찾아내는 삶<br>그리고 무엇보다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진정성을 탐구하고 그 진정성을 세상과 나누는 삶에 대해 이야기합니다.<br> 저 역시 저의 글쓰기를 통해 삶의 잔잔한 깨달음과 사유를 계속해서 나누고 싶습니다. '나와 당신의 문장은'이라는 연작 에세이가 저의 래디컬 컨셉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거창한 시작이 아니더라도, 꾸준히 저의 진심을 담아 글을 써 내려간다면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될 수 있지 않을까요.<br>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우리는 다시 한번 멈춰 서서 물어야 합니다. '나는 어떤 마음을 팔고 싶은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야말로 우리 자신을 슈퍼 포지셔닝하는 첫걸음일 테니까요.<br> 그 길 위에서 우리가 그은 밑줄들이 삶의 가장 밝은 이정표가 되어주기를 바라봅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214/25/cover150/k23203840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2142507</link></image></item><item><author>jhj937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구멍 앞에서 - [맨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13</link><pubDate>Mon, 23 Feb 2026 11: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1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62531890&TPaperId=171086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281/21/coveroff/k96253189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62531890&TPaperId=1710861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맨홀</a><br/>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7년 07월<br/></td></tr></table><br/>"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소방관인 그 사람이 가스 선에 라이터를 갖다 대며 집을 폭파시켜 버리겠다고 협박하는 그런 때가 아니라 결국 언젠가는 늙어 버릴 그가 어느 날 나에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짧은 편지를 써서 내 손에 쥐여 주는 순간이라는 걸."<br> 박지리 작가의 『맨홀』을 펼치며 이 문장 앞에서 한참을 멈춰 섰습니다. 폭력보다 더 잔인한 것이 사과라니. 가해자의 참회가 피해자에게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이 거짓말 같은 진실 앞에, 저는 문득 우리가 용서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상처를 가려왔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br><br>시멘트로도 막을 수 없는 것들 거리를 걷다 가끔 바닥으로 눈을 돌리면 맨홀 뚜껑을 마주치게 됩니다. 아스팔트 위에 질서 정연하게 배치된 원형 또는 직사각형의 금속 덮개들. 우리는 그 아래 무엇이 있는지 굳이 생각하지 않고 지나갑니다. 보이지 않으니까 없는 것처럼 여기죠. 하지만 도시가 배출해 내는 많은 오염물과 축축한 그것들이 그 어둠 속으로 흘러들어 간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br> 박지리 작가가 제시하는 '맨홀'이라는 은유는 바로 여기서 출발합니다. 우리가 보지 않으려 하는 것, 덮어두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죠.<br>"십 년간 나를 불러들인 구멍은 구청에서 고용한 사람들이 시멘트로 막아 버렸다. 하지만 여기 밤거리를 달리는 이 구멍은 무엇으로 막아야 할까."<br> 물리적인 구멍은 시멘트로 막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의 구멍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을 메우려는 모든 시도가 실패로 돌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그 구멍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br><br>악취로 기억되는"그날들은 흐르지 않는 물처럼 맨홀 속에 그대로 고여 있었다. 악취가 났다. 그렇지만 이곳에 맨홀이 존재하고 내가 뚜껑을 열고 계속 들어오는 한, 나는 그 고역스런 구정물 속에서 계속 잠수를 해야 했다."<br> 이 문장을 읽으며 저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떠올렸습니다. 마들렌 과자에서 피어오르는 기억의 향기와는 정반대의 상황이죠. 『맨홀』의 주인공에게 기억은 달콤한 향수가 아니라 '악취가 나는' 구정물입니다.<br>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주인공이 그 어둡고 냄새로 가득한 공간을 계속 찾아간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곳만이 아버지의 가정폭력을 피하는 수단이며 자신의 진짜 모습과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기 때문일 겁니다. 지상의 세계에서는 '소방영웅의 아들'이라는 가면을 써야 하지만, 맨홀 속에서만큼은 자신의 어둠을 숨기지 않아도 되니까요.<br><br>반복되는 유전자"나는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분노에 휩싸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엄마와 누나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폭언을 퍼붓고 폭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br> 이 부분을 읽으며 가장 섬뜩했던 건 폭력이 대물림되는 방식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아버지를 그토록 증오했는데도 결국 아버지와 같은 모습으로 누나와 엄마를 대하게 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죠.<br> 여기서 작가가 제기하는 것은 단순한 환경론이 아닙니다. '폭력적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폭력적이 된다'는 뻔한 인과관계가 아니라,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괴물성'에 대한 근본적 질문입니다. 선량하고 피해를 당한 사람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경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모호하다는 것이죠.<br><br>사과라는 이름의 또 다른 폭력 다시 처음 문장으로 돌아가 봅니다. 왜 주인공은 아버지의 사과를 가장 두려워할까요?사과는 관계의 복원을 전제로 합니다. 가해자가 사과하고 피해자가 용서하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환상을 제공하죠. 하지만 어떤 상처는 용서해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또 어떤 기억은 사과를 받아도 계속 아물지 않고 덧나기만 할 뿐입니다.<br> 더 잔인한 건 사과가 피해자에게 또 다른 부담을 지운다는 점입니다. 사과를 받으면 이제 용서해야 한다는 압박, 원망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기대, 그리고 무엇보다 가해자를 이해해야 한다는 요구까지. 주인공이 두려워하는 건 바로 이런 것일 겁니다.<br>"사과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았다. 아무리 사과를 해도 한번 저지른 짓이 없던 일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니까."<br>강아지 달이에게 사과하며 깨달은 이 진실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과는 과거를 지우지 못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현재를 더 복잡하게 만들 뿐이죠.<br><br>무의미한 일상"운동장은 셀 수도 없이 많은 검은 폐타이어로 둘러싸여 있다. 아무리 달리고 달려도 바퀴는 도통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쓸데없이 제자리에서 돌고만 있다. 하지만 의미 없는 회전을 하고 있는 것이 어디 이 타이어들뿐인가."<br> 이 장면에서 저는 카뮈의 『시지프스 신화』를 떠올렸습니다. 끝없이 바위를 굴려 올려야 하는 시지프스처럼 우리에게 의미 없어 보이는 일들을 그것이 내가 짊어진 죄인 것인 양 반복하며 살아가죠. 하지만 카뮈가 시지프스의 '반항'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았다면, 박지리는 그 무의미함 자체를 직시하라고 말합니다.<br> 청소년 보호관찰소의 폐타이어들은 한때 길 위를 달렸지만 이제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람에 섞여 불어오는 고무 냄새에는 수백 개의 타이어가 달리면서 내는 바퀴 소리가 희미하게 살아 있다'라고 작가는 말합니다. 죽은 것들도 흔적을 남긴다는 뜻일까요. 의미 없어 보이는 회전도 작은 기억을 남긴다는 의미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살아간다고 믿는 모든 움직임이 사실은 제자리를 맴도는 것에 불과하다는 뜻일까요.<br><br>기억에는 별다른 경계선이 없어서"기억에는 별다른 경계선이 없어서 발 없는 유령들이 시간의 장벽을 소리도 없이 넘어 다닌다."<br> 이 문장이 특별한 이유는 기억을 '유령'으로 형상화했기 때문입니다. 유령은 죽었지만 죽지 않은 존재, 과거에 속하지만 현재에 나타나는 존재죠. 우리의 기억도 그와 같습니다. 지나간 일이지만 현재를 지배하고, 끝난 관계이지만 지금도 우리를 괴롭히죠.<br> 특히 트라우마가 된 기억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시간의 순서를 무시하고 불쑥 나타나서 우리를 과거로 끌고 가죠. 소설 속 주인공의 의식이 현재와 과거를 자유롭게 오가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br><br>어쩌면 우리 모두는『맨홀』에서 가장 불편한 진실은 주인공에게 이름이 없다는 점입니다. 친구들은 모두 이름으로 불리는데 그는 그냥 '나'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서술 기법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적 선택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나 이 '나'가 될 수 있다는 뜻이거든요.<br> 우리는 모두 각자의 어둠을 품고 살아갑니다. 대부분은 그 어둠을 잘 통제하며 살아가지만, 어떤 순간, 어떤 조건에서 그 어둠이 터져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죠. 주인공도 원래는 선량한 아이였어요. 하지만 견딜 수 없는 현실 앞에서 결국 괴물이 되어버립니다. 이것이 이 소설이 주는 가장 큰 공포라 생각합니다.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 우리 모두 잠재적으로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br><br>허허벌판에 선 우리들"땅바닥에 여행 가방을 내려 둔 채 표지판도, 사람도 하나 없는 허허벌판에 서서 발이 묶인 것처럼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아이의 뒷모습이 보인다."<br> 이 장면이 가슴 아픈 이유는 그 아이가 결국 우리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갈 곳이 없는 고아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우리의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가족이 있어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귀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사회적 위치를 이루었지만 정작 마음 둘 곳은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니까요.<br> 주인공은 소방영웅의 아들이라는 사회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껍데기일 뿐, 진짜 자신은 여전히 허허벌판에 홀로 서 있는 아이나 다름없죠.<br><br>구멍과 함께 살아가는 법 결국 『맨홀』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메울 수 없는 삶의 구멍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는 답을 주지 않습니다. 주인공도 끝까지 자신의 구멍을 메우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패배를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그 구멍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 자체가 시작일 수 있거든요.<br> 우리는 모두 완전하지 않은 존재들입니다. 각자의 어둠을 품고 있고,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죠. 그 불완전함을 숨기려 하기보다는 인정하고,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어요.<br><br>작가가 남긴 마지막 질문박지리 작가는 서른두 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너무 일찍 떠난 천재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할 말을 잃었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br>『맨홀』을 읽고 나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하지만 그 무거움이 곧 깨달음이기도 하죠.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 했던 진실들과 마주하게 되고 우리 안의 어둠을 직시하게 되니까요. 어쩌면 그것이 문학의 역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편안한 위로를 주는 게 아니라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하는 것, 우리가 보지 않으려 했던 것들을 보게 만드는 것이요.<br> 박지리 작가가 우리에게 남긴 『맨홀』이라는 구멍은 아직도 열려 있습니다. 그 구멍을 들여다보는 것은 여전히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진실들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진실들과 마주할 때 비로소 우리는 조금 더 진정한 자신에게 가까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br><br>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구멍 앞에 우리는 여전히 서 있습니다. 그 구멍을 메우려 하지도 도망치려 하지도 않고 그저 그것의 존재를 인정하며 말이죠.<br>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용기일지 모릅니다. <br>완전해지려 애쓰지 않고 상처를 숨기려 하지 않으며우리 안의 어둠까지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 <br>그래서 오늘도 우리는각자의 맨홀 뚜껑을 조심스레 열어그 어둠 속에서 길어 올린 진실 하나를가슴에 품고 지상으로 올라옵니다.<br>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가장 정직한 삶의 방식일지도요.<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1281/21/cover150/k96253189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2812161</link></image></item><item><author>jhj937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표백된 세상에서 고유한 색을 찾는다는 것은 - [표백 - 제1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개정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12</link><pubDate>Mon, 23 Feb 2026 11: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1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72633007&TPaperId=1710861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241/8/coveroff/k872633007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72633007&TPaperId=1710861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표백 - 제1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개정판</a><br/>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09월<br/></td></tr></table><br/> 장강명 작가는 스스로를 ‘월급사실주의 소설가’라 칭하며, 2011년 『표백』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가 주로 작품에서 다루는 것은 한국 사회의 첨예한 문제들인데요. 『댓글부대』, 『한국이 싫어서』 같은 작품들이 그렇듯, 시대의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이를 문학으로 고발하는 ‘탄광의 카나리아’ 역할을 자처하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의 첫 장편소설인 『표백』은 바로 그 시작점에 놓여 있는 작품이고요.<br>『표백』은 소위 ‘스펙 좋은’ 다섯 명의 젊은이가 모여 5년 후 차례로 자살하기로 약속하는 충격적인 이야기입니다. 이들이 선택한 극단적인 행동의 배경에는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Great Big White World)’라는 허무하고도 완벽한 세상이 있는데요. 소설의 화자가 바라보는, 자살의 주동자, 세연이라는 인물은 그 세상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br>“그런데 이제 나는 세상이 아주 흰색이라고 생각해. 너무너무 완벽해서 내가 더 보탤 것이 없는 흰색. 어떤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이미 그보다 더 위대한 사상이 전에 나온 적이 있고, 어떤 문제점을 지적해도 그에 대한 답이 이미 있는, 그런 끝없이 흰 그림이야. 그런 세상에서 큰 틀의 획기적인 진보는 더 이상 없어.”<br> 그들의 눈에 비친 세상은 더 이상 새로운 획을 그을 수 없는, 이미 완성된 흰색의 도화지였습니다. 혁명도, 위대한 업적도 모두 기성세대가 이뤄낸 과거의 유산이 되어버렸죠. 젊은 세대에게 남겨진 역할은 그저 기성세대가 그린 밑그림을 따라 붓질하는 ‘유지·보수자’의 삶뿐입니다. 이들은 ‘누가 빨리 책에서 정답을 읽어 체화하느냐의 싸움’ 속에서 자신의 다채로운 생각과 야심을 모두 지워버려야만 했고, 세연은 그 과정을 ‘표백’이라 불렀습니다.<br>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알 수 없는 반복된 실패와, ‘패배의 길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화가 많이 나는’ 삶 속에서 그들은 서서히 자신을 지워나갑니다. 세상은 이미 답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그 답을 찾는 기계가 되어야 하는 것이죠. 이러한 세상에 대한 세연의 절망은 극에 달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자살을 세상에 대한 ‘저항’이자 ‘야유’로 정의하며,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선을 넘어 세상의 개념을 바꾸고자 합니다.<br> 그녀의 자살은 개인의 비극을 넘어선 하나의 사회적 선언이자, 이 완벽한 세상에 더 이상 보탤 것 없는 청춘의 ‘표현 방법’이었습니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사회가 바뀌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에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메시지를 던지려 한 것이죠. 하지만 이 지점에서 저는 이 소설이 던지는 가장 중요하고도 불편한 질문에 마주하게 됩니다. <br> 과연 세상이 우리를 향해 '왜 사느냐'라고 물을 때, 그 대답이 오직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일’에만 국한되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인가.<br>“자살 선언에 대한 내 반론의 핵심은 모든 사람이 위대한 일을 할 필요는 없다는 거야. 세연은 세상을 바꾸고 사람들의 존경을 얻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무가치한 것처럼 얘기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잖아.” <br> 소설 속 화자는 세연의 자살 선언에 대해 조용히 반론합니다. ‘호모사피엔스라는 동물종으로서 잘 가꿔진 숲길을 걸을 때 거부할 수 없는 작고 소소한 기쁨을 맛본다면, 그 숲을 지키고 가꾸는 일에 가치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고 말이죠. 저는 이 문장이 이 소설이 던지는 허무와 절망의 파도 속에서 유일하게 건져낼 수 있는 구명조끼처럼 느껴졌습니다.<br> 우리는 늘 ‘거대한 무엇’을 꿈꾸도록 학습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한 이전 세대들의 거대한 업적 앞에, 우리의 삶 또한 그에 비견될 만한 ‘위대함’으로 채워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주인공의 말처럼, 우리 앞의 세대들도 결국 ‘가방 하나 들고 해외 출장 나가고, 밤새워 일하고, 거리에서 돌 던진’ 수많은 개인들의 작은 노력이 모여 거대한 역사를 이룬 것이었습니다.<br> 그런 의미에서 세연의 야심은 ‘어린아이다운 것’이었다는 휘영이라는 기자가 된 친구의 지적이 마음에 깊게 와닿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 아닌, ‘사랑과 관심을 바라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토록 위대한 일을 갈망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들의 ‘표백’은 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위대한 사람’으로 증명하고자 했던 과도한 야심이 좌절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br> 소설은 사회적 구조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혀 절망하는 청춘의 초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냅니다. 하지만 그 끝에 저는 조금 다른 사유를 해보게 됩니다. ‘완성된 사회’는 더 이상 영웅을 필요로 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한 사람의 존재 가치를 무의미하다 칭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존재의 가치는 ‘무엇을 성취했는가’라는 거대 담론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침에 눈을 뜨고, 따뜻한 밥을 먹고, 사랑하는 사람과 눈을 맞추고, 비 오는 날 창밖을 바라보는 그 지극히 평범하고도 작은 순간들 속에서 찾아지는 것이니까요.<br> 어쩌면 ‘표백’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거창한 ‘혁명’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대신, ‘위대해지려는 욕망’을 벗어던지고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와 조용히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일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을지라도, 우리 각자의 삶은 그 자체로 의미 있고 가치 있습니다. 존재의 의의는 그런 것들로 희석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br> 작가는 소설 말미에 주인공의 말을 빌어 웹사이트를 하나 만들고 싶다 합니다. 세연과 그 일당들이 수많은 젊은이들의 자살할 뜻을 모으려는 와이두유리브닷컴(www.whydoyoulive.com)이란 사이트에 대한 대답으로 디스이즈더리즌닷컴(www.thisisthereason.com)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죠. 삶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에게 ‘이것이 살아갈 이유’라고 말해주는 사이트. <br><br>삶의 이유는 거대한 진리와 사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우리가 하루하루를 채워나가는작은 행동과 의미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라 믿습니다. <br>세상의 모든 색이 희미해져도우리 각자의 내면에 빛나는 고유한 색깔을 지키는 일. <br>그것이 바로 우리가 ‘표백’의 시대에 맞서 싸워야 할가장 중요한 싸움이라 믿습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241/8/cover150/k872633007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2410810</link></image></item><item><author>jhj937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우리도 언젠가는 사라질 존재이지만 - [나무 (가을 에디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08</link><pubDate>Mon, 23 Feb 2026 11: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0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62030130&TPaperId=1710860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044/89/coveroff/k86203013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62030130&TPaperId=1710860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무 (가을 에디션)</a><br/>고다 아야 지음, 차주연 옮김 / 책사람집 / 2024년 12월<br/></td></tr></table><br/>"고목이 온기를 품은 것일까, 아니면 새로 자란 나무가 한기를 막아주는 것일까."고다 아야의 『나무』를 펼치며 처음 밑줄 그은 문장입니다. 쓰러져 죽은 가문비나무에서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작가가 던진 질문인데요. 단순해 보이는 문장이지만 그 안에는 삶과 죽음, 그리고 시간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다 생각했습니다.<br> 고다 아야는 일본 근대문학의 거장 고다 로한의 둘째 딸로 태어나 1990년까지 86년을 살았습니다. 다섯 살에 어머니를 잃고 스물두 살에는 남동생마저 떠나보내는 슬픔을 겪었죠. 결혼 10년 만에 이혼하고 딸과 함께 아버지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함께했던 작가입니다. 『나무』는 그녀가 말년에 13년 6개월에 걸쳐 일본 전국의 나무를 찾아다니며 기록한 유작으로, 출간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어요. 작가의 이런 개인사를 알고 나니 왜 그녀가 나무에게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보려 했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상실을 겪으며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시선이랄까요.<br><br>두 번의 생명을 사는 나무들"나무는 뿌리를 내리고 서 있을 때의 생명과, 잘려서 목재가 된 이후의 생명 이렇게 두 번의 생명을 갖는다."호류지 대보수에 참여한 도편수들의 말을 인용한 대목입니다. 1,200년 묵은 나무일 지라도 대패로 한 번 쓱 밀면 여전히 향기를 풍기고, 습기를 머금으면 부풀고 건조하면 쪼그라든다는 고백.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이 장면에 우리 인생에도 '두 번의 생명'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시간들이고, 두 번째는 우리가 남긴 것들이 다른 사람들 안에서 계속 살아가는 시간들 이겠지요. 고다 아야의 글이 지금도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 것처럼요.<br>"이는 '형태를 바꾼다'는 것이다."  포플러가 목재로 가공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작가가 내린 결론입니다. 자연 속에서의 나무는 시간을 들여 서서히 형태를 바꿔가지만, 인간의 보살핌 속에서는 단 몇 시간 만에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죠. 어떤 변화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아주 천천히 일어나고, 어떤 변화는 갑작스럽게 우리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버립니다.<br><br>여러 세대가 함께 사는 지혜"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보다 훨씬 더 윗대 할아버지부터 현재의 아버지, 자식, 손자, 증손자, 증손자의 아들까지 모두 한 그루 안에 뒤섞여 살아가는 것 같다." 폭포벚나무를 보며 작가가 써 내려간 감상입니다. 아주 오래된 가지부터 올해 자란 어린 가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한 그루 안에 공존하고 있다는 것. 인간 세계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나무는 그렇게 여러 세대가 함께 살아간다고 합니다.<br> 이 문장을 읽으며 저는 문득 우리들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할머니에게서 어머니로, 어머니에게서 딸아이에게로, 그리고 그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그 무엇.  DNA 로만 설명할 수 없는, 습관이나 성격, 가치관 같은 것들이 복잡하게 얽히며 전해지는 과정.<br> 나무의 관점에서 보면 개별적인 존재라는 경계가 모호해 질지 모릅니다. 어디서부터가 할아버지이고 어디서부터가 손자인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죠. 다만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생명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그저 신비스러울 따름입니다.<br><br>똑바로 서는 것과 뿌리의 힘"비스듬히 서 있는 나무는 더 많이 애를 써야 할 겁니다." 편백나무에 대해 장인이 설명합니다. 똑바로 자란 나무와 비스듬히 자란 나무 중 어느 쪽이 더 편할지는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고 하죠. 비스듬히 서 있는 나무는 자기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고, 그 결과로 껍질에 뒤틀림이 생겨 좋은 목재를 얻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br> 이 대목을 읽으며 저는 우리 인생에서도 '똑바로 서는 것'의 중요성을 생각해 봅니다. 여기서 말하는 '똑바로'는 도덕적 완벽함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본성에 맞게, 자연스럽게 성장해 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죠.<br>"잔뿌리는 나무라는 구조의 말단이지만, 구조의 말단은 온 힘과 노력을 쏟고 있다."  거대한 나무의 뿌리를 보며 작가가 느낀 감동입니다. 말단이라고 해서 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체를 떠받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죠. 뿌리 없이는 나무가 존재할 수 없듯이, 우리 사회도 이런 '말단'의 노력 없이는 지탱될 수 없을 겁니다.<br><br>목재가 아닌 살아있는 아름다움"왜 살아 있는 아름다움을, 숨결을 기억해주지 않는 것인가. 우리의 감수성은 이제 소멸해 버린 걸까?" 사람들이 편백나무를 목재로써만 인식하고, 살아있는 편백나무의 아름다움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작가의 안타까움이 드러나는 문장입니다. 이는 단순히 나무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닐 겁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전반에 대한 성찰이겠지요. 사람을 볼 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 사람의 쓸모만을 보고, 존재의 의의와 가치를 놓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직업이나 학벌, 재산 같은 외형으로만 사람을 평가하고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들과 경험, 내면의 아름다움은 보려 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이 겹쳐집니다.<br> 고다 아야가 바라는 것은 '생명의 시를 읊으며 산과 들에서 살아가는 모습과 생애를 마치고 아름답고 튼튼한 목재가 된 모습 둘 다 사랑스러워하는 마음'입니다. 즉, 존재의 모든 단계와 모든 형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이죠.<br><br>온기를 품은 죽음의 의미다시 처음의 문장으로 돌아가 봅니다. "고목이 온기를 품은 것일까, 아니면 새로 자란 나무가 한기를 막아주는 것일까."작가는 이어서 말합니다. "죽은 후에도 이처럼 온기를 품을 수 있다면 그걸로 괜찮다." 이 문장에서 고다 아야라는 사람의 삶에 대한 태도를 엿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죽음 이후에도 누군가에게 온기를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다고 여기는 마음. 상실을 경험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성숙한 지혜는 아닐는지요.<br> 실제로 고다 아야의 『나무』는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여전히 독자들에게 온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책 속의 나무들처럼, 그녀의 글 역시 '두 번째 생명'을 살고 있는 셈이죠.<br><br>나무에게서 배우는 삶의 자세『나무』를 읽고 나니 나무가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시간을 보여주는 존재로서생명의 연속성을 증명하는 존재로서겸손과 인내를 가르쳐주는 스승 같은 존재임을 되새깁니다.<br> 우리는 종종 다른 삶을 동경하여 다른 사람이 되기를 원하거나, 누군가가 나의 삶을 바꿔주기를 기대하곤 합니다. 하지만 나무는 그렇지 않습니다. 주어진 자리에서, 주어진 조건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른 생명들에게 그늘을 주고, 산소를 뿜어내며, 아름다움을 선사하죠.<br>덕분에 일상에서 만나는 나무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지나쳤던 가로수들도공원의 큰 나무들도각자의 이야기를 가진 존재들이라는 것. '죽은 후에도 이처럼 온기를 품을 수 있다면 그걸로 괜찮다'는 작가의 말처럼우리도 언젠가는 사라질 존재이지만누군가에게 온기를 줄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br>나무처럼 한 자리에서 묵묵히꾸준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기여하는 삶.<br>고다 아야가 나무들에게서 배운 것처럼우리도 우리 주변의 평범한 것들에서 삶의 지혜를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br>중요한 것은 그저 바라보려 하고들으려는 마음일 테니까요. 오늘 길에서 만날 나무 한 그루가우리에게 어떤 소중한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하게 됩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044/89/cover150/k86203013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0448996</link></image></item><item><author>jhj9378</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지는 해(日落)처럼 사라지고 다시 떠오르는 - [그해 여름 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06</link><pubDate>Mon, 23 Feb 2026 11: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94915265/1710860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02733373&TPaperId=1710860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433/87/coveroff/k20273337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02733373&TPaperId=1710860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그해 여름 끝</a><br/>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앤드) / 2021년 07월<br/></td></tr></table><br/>『그해 여름 끝』은  제목과 달리 한여름의 짙은 더위 속에 시작됩니다. 주인공인 중대장 자오린과 지도원 가오바오신은 총기 분실 사건으로 인해 인생의 변곡점을 맞게 되는데요. 변변치 않은 출신으로 인해 군 생활에 사활을 걸고 있던 두 사람, 적당한 때를 지나 더 이상 실패도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말년, 거의 마지막 차수가 될 진급을 앞두고 있던 그들에게 이 총기 분실 사건은 한순간에 모든 걸 잃게 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였습니다. 이 두 사람이 겪는 심리적 압박감을 따라가다 보니, 겉으로 드러나는 사건의 긴박함보다 더 깊은 곳에 흐르는 불안과 절망이 함께 읽혔습니다.<br> 중대장은 지도원에게 '지도원 자네가 내게 부대대장을 맡으라고 한다면 나는 죽어도 고개를 돌리지 않을 걸세!'라고 말하며 자신의 진급에 대한 강한 열망을 드러냅니다. 이 한 문장에는 평생을 군대라는 조직에 헌신하며 오직 승진만을 바라왔던 한 인간의 절박한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간절함과는 무관하게 총을 훔친 범인은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운명처럼 두 사람을 조롱하고 있는 것만 같았죠. 지도원이 '라오가오, 보아하니 총을 훔친 범인은 자네와 나를 겨냥하고 있는 것 같네'라고 말할 때, 저는 이들이 겪는 고통이 단순한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속해 있는 군대라는 거대한 부조리의 시스템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음을 눈에 담았습니다.<br>  이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은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속 주인공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끝없이 기다리던 '고도'가 끝내 오지 않는 것처럼, 자오린과 가오바오신이 갈구하는 '진급'과 '도시 호구' 역시 그들에게 결코 주어지지 않을 허망한 약속처럼 보입니다. 군대라는 텅 빈 무대 위에서 진급이라는 허상과 잃어버린 총이라는 상징적 존재를 찾아 헤매지만 그들의 행동은 결국 자신들의 삶을 송두리째 짓누르는 거대한 권력의 기제 앞에 의미 없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습니다. 특히 당시 중국의 농촌 출신 인민들에게 '도시 호구'는 단순한 거주지로서의 의미를 넘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계층 사다리적인 권리였기에, 이들이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목표가 얼마나 허망한지를 더욱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옌롄커는 이를 통해 인간의 고통이 사회적 불합리성, 즉 도시와 농촌이라는 이분법적 구조 속에서 어떻게 발생하고 소외되는지를 날카롭게 지적합니다.<br>그럼에도 삶의 몫을 살아내는 사람들 삶의 무대가 아무리 부조리로 가득할지라도 그 안에는 따뜻한 온기가 존재합니다. 옌롄커는 이 혹독한 이야기 속에서 인간적인 연민과 성찰의 순간을 놓치지 않습니다. <br>"몰래 엿들었지. 그렇다고 날 원망하진 말게. 듣고 나서 감동을 받으면서도 질투가 나기도 했지. 우리가 살면서 뭘 더 바라겠나? 자기 인생의 몫을 살아내는 것뿐이지. 자네도 자신을 너무 속박하지 말았으면 좋겠네. 꼭 찾아가 보도록 하게."<br> 이 문장은 경쟁자이자 때로는 속박의 대상이었던 지도원이 중대장에게 던지는 진심 어린 위로입니다. '자기 인생의 몫을 살아내는 것'이라는 말은 사회가 규정한 성공과 실패의 틀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로서의 삶에 충실하라는 의미처럼 다가옵니다. 인생의 방향이 총기 분실 사건으로 인해 예상 못한 방향으로 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비로소 자신의 삶을 온전히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나가는 것이죠. '세상만사가 다 그렇지. 마음이 풀리면 되는 일 아니겠나'라는 한마디에 담긴 담담한 체념은, 더 이상 저항할 수 없는 현실 앞에 평온을 찾아가는 또 다른 방식처럼 보입니다.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것. 이것이 옌롄커가 고통으로 얼룩진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 중 하나일 겁니다.<br>강 아래로 헤엄쳐 사라지는지는 해 이 작품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지는 해(日落)에 대한 묘사입니다. 총기 분실이라는 긴박한 상황과 대비되는, 지극히 고요하고 아름다운 순간인데요.<br>"맞아요, 아버지. 그곳은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뭐라고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고요해서 누군가 그곳에 도착하기만 하면 마음이 백지장처럼 깨끗해질 것 같았어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그곳의 지는 해(日落)였습니다. 해는 강에서 헤엄쳐 나와 강 아래로 헤엄쳐 사라졌어요."<br>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합니다. '해는 강에서 헤엄쳐 나와 강 아래로 헤엄쳐 사라진다'는 표현은 삶과 죽음의 경계, 그리고 모든 것의 순환을 시적으로 보여줍니다. 마치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떠오르는 것처럼, 혹은 한 인간의 고통과 좌절이 끝나고 새로운 평온이 찾아오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지는 해는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찾은 영혼의 안식처, 삶의 끝자락에서 마주한 깨달음처럼 다가옵니다.<br> 결국 옌롄커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깁니다. 총을 잃어버린 사건은 주인공들에게 불행이었지만 동시에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보고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 역시 때때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통제할 수 없는 불행이 닥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도 우리는 지는 해처럼 고요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발견하고, 그 순간을 통해 다시 일어설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br><br> 어쩌면 우리는 모두 자오린과 가오바오신처럼 잃어버린 총을 찾아 헤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승진이든, 성공이든, 인정이든, 우리가 간절히 추구하는 것들이 때로는 신기루처럼 아른거리다가 어느 순간 손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사라져 버리곤 하니까요. 하지만 옌롄커가 이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그런 상실의 순간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 그리고 그 이어짐 안에서 언제나 예기치 못한 아름다움과 마주한다는 것일 겁니다.<br>'해는 강에서 헤엄쳐 나와 강 아래로 헤엄쳐 사라진다'는 문장처럼우리의 고통도 영원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br>지는 해가 다시 떠오르듯절망 끝에서 만나는 작은 위안들이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겠죠.<br>결국 삶이란 무엇을 얻느냐가 아니라무엇을 잃었을 때 어떻게 견뎌내느냐의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br>그 견딤의 과정에서 우리는 비로소'자기 인생의 몫을 살아내는'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지 않을까요.<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433/87/cover150/k20273337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4338700</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