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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스티븐 제이 굴드 자연학 에세이 선집 3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 / 현암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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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과학과 담을 쌓고 살지만, 나도 한때는 공룡소년이었다. 초등학교 때, <쥬라기공원>을 본 후, 공룡 관련 책들을 읽으며 공룡 이름을 줄줄 외우고 다녔다. 공룡에 대해 읽으면서 고생물 전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하, 은, 주, 춘추전국시대, 진, 한, 위진남북조..."하고 중국 왕조들 이름을 외우면서, "선캄브리아대, 캄브리아기, 오르도비스기, 실루리아기, 데본기, 석탄기..." 하며 지질시대 이름을 외웠다.(삼국지와 쥬라기공원은 초등학교 때 내게 가장 핫한 컨텐츠였다.) 그 중에서도 캄브리아기의 할루키게니아라는 괴상한 생물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는데, 7개의 다리와 7개의 촉수만으로 이루어진 그 특이한 모양새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의 6장 "공룡 광풍"에서 개탄하듯이 공룡에 관한 관심이 과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중학교 올라가면서부터 생물 교과서에 공룡이 아니라 완두콩과 초파리가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고등학교 때, 도서관에서 우연히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라는 책을 읽게 되었고, 고생물학에 대한 감동으로 전율했다. 평소에는 근처에도 가지 않던 과학 서가에서 우연히 그 책을 발견했던 것은 아마 이 책이 캄브리아기의 버제스동물군을 다루고 있었고, 초등학교 때 꽂혔던 할루키게니아를 떠올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캄브리아기, 갑작스럽게 탄생한 다세포생물들은 오늘날의 어떠한 생물들과도 유사하지 않은 전혀 다른 종류의 생물들이었다. 역사의 테이프를 다시 돌린다면, 어쩌면 인류를 비롯한 포유류, 파충류 대신, 할루키게니아나 오파비니아 같은 괴상한 생물들이 오늘날 지구를 지배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책의 주장은 신선하게 다가왔고, 오늘날의 생태계가 현재와 같은 구성이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의 결과라는 사실 그 자체가 일종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과학서적임에도 불구하고 문과인 나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쓴 저자의 뛰어난 필력에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과학글쓰기의 일인자로 불리는 스티븐 제이 굴드가 책의 저자였다.(<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에 나오는 버제스동물군의 발견에 대해서는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의 16장 "미끄러운 경사로에서 나타난 문학적 편향"에도 간략하게 나온다.)

 굴드 자신이 가장 뛰어나다고 인정한 35편의 에세이들을 모은 이 책 역시 과학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들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쓰여져 있다. 왜 여자뿐 아니라 남자에게도 젖꼭지가 달려 있는가? 야구는 잘 알려진 것처럼 뉴욕주 쿠퍼스타운에서 탄생했는가? 히라코테륨이라는 말의 선조 동물의 크기를 묘사할 때, 왜 모든 미국의 과학교과서는 폭스테리어라는 듣도 보도 못한 개의 일종과 비슷한 크기라고 말하는가? 오리너구리나 가시두더지 같은 단공류(알을 낳는 포유류)는 태반을 가진 다른 포유류들에 비해 진화가 덜 되거나 열등한 동물들인가? 러시아의 무정부주의자 크로포트킨이 다윈의 적자생존이론을 비판한 건 단순히 그의 이상주의적 경향이 빚어낸 잘못인가? 1941년의 다마지오의 56경기 연속 안타 기록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매료되었다(masmerize)'라는 단어의 어원이 된 매스머의 최면요법은 무엇이었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이 책에 나와 있다. 언뜻 보기에는 과학과 별 관련이 없어보이는 야구 이야기나 타자기 이야기로부터도 생물학의 심오한 이야기를 자유자재로 풀어내는 저자의 글쓰기 능력은 독자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하나하나가 보석 같은 이 에세이들은 두고두고 읽어야 할 것이다.

 굴드는 생물학이 수치의 엄밀함, 예측, 실험을 다루는 견고한 물리과학과 달리, 역사 속의 복잡한 대상을 다루는 역사과학이라고 부른다. 앞에서 나는 중국의 왕조 순서들 외우듯이 지질시대의 순서를 외웠다고 했다. 그런데 굴드 역시 의식적으로 인류의 역사와 지구의 역사를 유비시키고 있다.

 야구의 기원에 대해 논한 3장 "쿠퍼스타운의 창조 신화들"은 인류의 역사와 지구의 역사를 대비시키며 과학의 심오한 문제를 풀어낸 대표적인 에세이다. 1907년, 야구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만들어진 위원회는 애브너 더블데이가 "1839년에 쿠퍼스타운의 양복점 뒤편에서 구슬치기를 하다가 그림을 그리고 경기 규칙을 설명했으며, 이 운동경기에 "베이스 볼"이라는 오늘날 사용되는 이름을 붙였다"(66,67)는 설을 채택했다. 이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이야기였다. 18세기 영국의 하류층을 중심으로 유행하던 다양한 공놀이가 19세기 전반 미국으로 들어왔고, 19세기 후반 오늘날의 야구로 확립되었다는 것이 굴드가 제시한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쿠퍼스타운 신화"가 탄생한 이유는 1907년 당시의 위원회가 야구의 기원이 미국에 있고, 그 창시자가 남북전쟁의 영웅인 애브너 더블데이라는 설명을 애국적 관점에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굴드는 야구의 기원과 마찬가지로 진화의 역사 또한 연속적이며, 어떤 특정한 출발점과 원인을 찾을 수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굴드는 역사에 의미나 목적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17장 "밝게 빛나는 커다란 땅반딧불 애벌레"에는 17년간을 애벌레로 산 끝에 몇 주간 나무에서 울다가 죽는 매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다면 17년을 사는 매미는 어떤가? 매미의 애벌레가 영광스러운 며칠을 끈기 있게 기다리며 오랜 기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내는 것은 아니다. 애벌레는 지하에서 활동적인 삶을 영위한다. 물론 그중에는 긴 수면기도 있지만, 여러 차례 허물을 벗으며 왕성하게 성장하는 기간도 포함된다. (365,366)

 우리는 흔히 매미를 완성된 형태로 보고, 애벌레는 그 과정에 있는 것으로 보지만, 실제로는 애벌레도 매미 못지 않게 완성된 존재이며, 결코 매미가 되기 '위하여' 애벌레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가 우연의 연속이며, 의미나 목적이 없다는 굴드의 역사관은 영국의 보수주의 사상가인 마이클 오크셧의 역사관을 연상시킨다. 물론 이 책에서 오크셧의 이름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표현은 다를지라도 역사의 목적이나 의미를 부정하는 둘의 역사관은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다. 오크셧은 "우리는 출발점도 없고 목적지도 없는 한도 끝도 없는 바다를 항해하고 있으며, 우리의 유일한 목적은 평평한 배 위에 계속 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단선적 진보를 믿었던 E.H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이러한 오크셧의 역사관을 비판했지만, 오늘날의 포스트모던적 관점에서 보면, 오크셧의 관점에 일리가 있다.

 이러한 관점은 어찌 보면 허무주의를 조장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굴드는 아무런 의미나 목적 없이 우연의 결과로 나타난 역사 그 자체에서 역설적인 경이로움을 발견한다. 충분히 다른 형태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그 자체가 경이롭지 않은가, 라고 말하는 것이다. 굴드는 "한 가지 방식으로 모든 답을 얻기에는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흥미롭다"(745)라고 말하며, 특정한 하나의 원리에 역사를 환원시키려는 시도를 반대한다. 그리고 현존하는 모든 것들의 다양성을 긍정한다. 굴드가 제시하는 다양한 생명들의 이야기가 매력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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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평전 - 조선 후기 민족 최고의 실천적 학자
박석무 지음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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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건축학개론>에 이런 장면이 있다. 건축학개론 수업을 듣는 여주인공(배수지)에게 교수가 어디 사느냐고 묻자 여주인공은 정릉이라고 답한다. 교수는 다시 정릉이 누구의 능인지 아느냐고 묻는다. 여주인공은 "정조?"라고 찔러 보지만 교수는 고개를 젓는다. 여주인공이 다시 "정종?"이라고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하지만 교수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젓는다. 그러자 여주인공은 "정약용?"이라고 더욱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하고, 강의실은 웃음바다가 된다. 그 이후 그녀의 별명은 '정약용'이 된다. (참고로 정릉은 최근 <정도전>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신덕왕후 강씨의 능이다.)

 <다산 정약용 평전>에 대한 서평을 시작하기 위해서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를 꺼낸 데는 이유가 있다. <건축학개론>의 에피소드는 어떤 의미에서는 정약용에 대한 한국 사람의 일반적인 인식을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약용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다. <성균관스캔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대중 사극에도 정약용이 등장하고, 내가 다니고 있는 대학에도 "다산경제관"이라는 이름의 건물이 있다. 그만큼 정약용이라는 이름 자체는 우리에게 무척 친숙하다.

 그런데 막상 정약용이 뭐한 사람인지를 묻는다면 대답이 궁해진다. 정약용이 누구냐고? 정조, 실학, 목민심서, 유배, 기중기, 화성..... 거기서 멈출 수밖에 없다. 마키아벨리나 푸코의 생애와 사상이라면 어느 정도 상세하게 알고 있는데, 정작 조선의 대표적인 학자 정약용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니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이 책이 반가웠다. 저자는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등을 쓴 다산 연구의 일인자 박석무 교수님. 색인까지 660페이지가 넘는 하드커버, 표지도 밝고 산뜻한 느낌이 나서 마음에 든다. 저자의 평생의 연구 성과가 이 660페이지의 책에 농축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기대되었다.

 정약용은 1762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친가와 외가 모두 명문가였다. 1783년 성균관에 들어가 정조의 눈에 들었고, 1789년 전시에 수석으로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뛰어난 능력과 강직한 성품, 정조의 총애로 주변의 질투와 중상을 샀다. 그리고 그의 형 정약종과 자형 이승훈 등이 천주교 신자였고, 정약용 또한 한때 천주교를 공부했었던 경력이 문제시되었다. 관직 생활 동안 천주교에 관련되어 있다는 노론 벽파의 모략이 끊이지 않았고, 몇 번이나 좌천된 끝에 1799년 벼슬을 사직한다.

 1800년 정조가 죽으면서 그의 인생은 전락한다. 1801년, 천주교에 대한 박해인 신유옥사가 벌어진다. 천주교 신자임을 부인하지 않았던 정약종은 처형당했고, 정약용과 형인 정약전은 유배를 가게 된다. 정약용은 천주교와 인연을 끊은지 오래였지만, 반대파의 모함에 휘말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후 정약용은 18년간 유배생활을 하면서 경학 연구 등에 매진한다. 그동안 막내 아들과 형 정약전이 부고를 들어야만 했던 정약용의 삶에서 비애가 느껴진다. 1818년 유배에서 풀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흠흠신서>를 완성하고 당대의 학자들과 교류하며 보내다가 1836년 75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한다.

 책을 읽으며 정약용의 다재다능한 능력에 놀랐다. 학자로서 경학을 연구하여 사서오경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고, 행정가로서 목민관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였다. 법의학과 수사에 대한 책 <흠흠신서>를 저술하는가 하면, "장수의 재주도 겸비하고 있"었다 하고, 의서 <마과회통>을 저술하고 순조가 위독할 때 진찰을 하기 위해 불려갔을 정도로 의술에도 조예가 깊었다. 기중기를 발명하여 화성 축조 기간을 몇 분의 일로 줄일 정도로 과학기술에 눈이 트여 있었는가 하면, 유배지에서 수많은 시를 적었고, 음악에도 조예가 있었다고 한다. 승려 혜장스님과도 교류가 있었다. 못하는 게 없는 사람을 르네상스인이라고 하는데, 정약용이야말로 진정한 르네상스인이었다.

 자연스럽게 정약용이 정조의 죽음과 다른 당파의 모함 때문에 그 뜻을 펼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워진다. 정조가 조금 더 오래 살았고, 진정으로 백성을 생각할 줄 알았던 정약용이 조금 더 오래 더 높은 관직에 올라 평생동안 꿈꾸었던 대담한 개혁을 이루었다면 조선이 그렇게 쇠망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 시절인연이었음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리고 덕분에 정약용이라는 뛰어난 학자로 남았다는 점은 전화위복이라 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한 정약용의 다양한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 

 정치학을 공부하고 있는터라 정약용의 사상의 내용에 주목하며 읽었지만, 솔직히 그 내용이 추상적이어서 이해하기 어려웠다. 정약용의 정치사상에 대해 저자는 공렴, 공정과 청렴이라는 말로 정리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공정과 청렴은 공직자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이 아닌가? 물론 실천을 못하는 공직자들이 수두룩하지만 말이다. 공렴을 정약용 특유의 사상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전제(田制)를 개혁하여 가난한 백성들의 삶을 향상시키고, 공정한 인재 등용을 하려 했다는 정약용의 이상 또한 추상적으로 느껴진다. 백성(국민)을 위한다고 말하지 않는 정치가가 어디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어떻게"라는 방법이 문제 아니겠는가?

 정치가로서의 정약용이 잘 이해되지 않았던 반면에 학자로서의 정약용에 대해서는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약용의 학문적 성실성과 강직하면서도 온화한 성품을 드러내는 에피소드가 있다. 성균관에서 공부하던 시절, 퇴계와 율곡의 이발기발 논쟁에 대해 정약용은 율곡의 기발설이 옳다고 정조에게 답변을 올렸다. 당시 노론은 율곡의 학설을, 남인은 퇴계의 학설을 지지하고 있었다(그 이유에 대해서는 나와있지 않다. 당파싸움에 철학적 대립도 개입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남인이었던 정약용이 율곡의 설을 지지하고 나섬으로써 남인들로부터 배척을 당하게 된 것이었다. 정조는 그의 공정한 평가를 칭찬했다. 이후에도 정약용은 반대되는 노론, 소론의 인물들과 학문적 교류를 이어갔다. 정약용을 공격하여 유배보낸 것이 노론 벽파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당파에 구애되지 않는 그의 태도는 배워야겠다 싶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사실은 유배지에서 청나라의 최신 유교 연구 동향을 꿰뚫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오규 소라이 등 일본의 유학 동향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정약용은 아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대개 일본이라는 나라는 원래 백제에서 책을 얻어다 보았는데, 처음에는 매우 몽매하였다. 그 후 중국의 절강 지방과 직접 교역을 트면서 좋은 책을 모조리 구입해 갔다. 책도 책이려니와 과거를 통해 관리를 뽑는 그런 잘못된 제도가 없어 제대로 학문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는 그 학문이 우리나라를 능가하게 되었으니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487,488)

 18세기까지도 유학에 대한 학문적 수준은 우리나라가 일본에 비해 월등히 우수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미 다산이 "그 학문이 우리나라를 능가"했다고 평했다는 사실이 신선했다. 그리고 "과거를 통해 관리를 뽑는 잘못된 제도" 때문에 학문이 발전하지 않았다는 해석 또한 놀랍다. 일반적으로 명대에 완성된 과거제도가 성리학의 완성으로 여겨지지 않던가? 정약용은 왜 과거제도를 비판했을까? 신분에 구애되지 않고 인재를 등용한 조선과 중국의 과거제도가 일본의 신분제에 비해 학문을 장려하지 못한다는 그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다른 리뷰어 분들이 이미 지적했듯이, 평전치고는 지나치게 정약용의 훌륭한 성품과 공적들에 대한 찬탄으로만 가득차 있는데다가 두꺼운 책 치고는 서술이 밋밋한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자세하면서도 총체적으로 저술했다는 점에서는 다산 정약용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결정적 한 권이라고 할 수 있겠다.

 

 P.S.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과거제도는 시가를 짓거나 정책적 제안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학문 연구는 소홀해 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고시공부 한다고 학문이 발전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런 것 같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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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과 지적 사기 - 통섭은 과학과 인문학을 어떻게 배신했는가
이인식 기획, 김지하 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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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과와 이과,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대화만큼 어려운 일이 없을 것이다. 나 또한 전형적인 문과인간으로서 이과와는 담을 쌓고 살아온 지라, 항상 자연과학에 대한 막연한 경외의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몇 년 전, 한국에서 때 아닌 "통섭" 열풍이 불었다. 미국의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1998년 쓴 Consilence: The Unity of Knowledge라는 책을 2005년, 최재천, 장대익이 한국어로 번역해 출판하면서 <통섭: 지식의 대통합>이라는 제목을 붙였던 것이다. 이후, 최재천, 장대익 교수를 중심으로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대화라는 의미로 통섭이 인구에 회자되었다.

 그런데, 이 통섭, 혹은 Consilence라는 개념은 그 애매한 의미 때문에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통섭과 지적 사기>라는 이 책은 통섭에 대해 비판적인 학자들의 논고를 모아 출판한 책이다. 이인식은 통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컨실리언스'는 원산지인 미국에서조차 지식융합이나 기술융합을 의미하는 보통명사로 사용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데, 한국으로 수입되어 원효스님의 이름을 팔아 '통섭'이라는 그럴싸한 단어로 둔갑해서 융합과 같은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동안 학식과 사회적 지명도가 꽤 높은 지식인들의 말과 글에서 통섭이 융합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생뚱맞게 사용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자괴감과 수치심을 느꼈는지 모릅니다. (259)

 원래 윌슨이 사용하는 Consilence라는 개념은 최재천 교수가 전파하고 있는 통섭과 다른 의미이고, 미국에서는 한국처럼 통섭 개념이 유행하지도 않았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 통섭이라는 개념의 무엇이 문제인가 하면,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자연과학의 틀로만 보려는 "자연과학적 제국주의"의 함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환원주의적 시각은 진화생물학과 뇌과학의 유행으로 드러난다. 유전자와 뇌를 통해서 인간의 의식과 행동을 파악하려는 환원주의의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틀로 모든 것을 재단하려는 환원주의에 대해서는 나 역시 경계하고 있고, 특히 유전자와 뇌과학에서 보이는 결정론적 시각에 대해서는 반감을 가지고 있기에 그러한 시각에서는 흥미로운 책이었다. (반면에 이 책의 저자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자연과학자들이 그렇게 단순한 환원주의를 주장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다양한 저자들의 논고를 모은 책인 셈 치고는 논고들 사이에 중복되는 내용이 많다는 것이다. 조금 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논고를 모았다면 더 충실한 책이 되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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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그리고 19 - 18대 대선으로 본 진보개혁의 성찰과 길
이창곤.한귀영 엮음 / 밈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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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8대 대선에서 야권은 왜 졌을까? 정상호 서원대 교수는 "18대 대선은 환경만을 놓고 본다면 결코 야당에게 불리하지 않았던, 정확하게 말하면 제법 유리하였던 (중략) 오히려 예외적 상황 속에서 치러졌다"(161)고 말한다. 이명박 정부의 지지도는 추락했었고,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정권 교체를 희망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후보는 100만 표 이상의 차로 졌다.

 다음이나 트위터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들에서는 간단한 대답을 얻을 수 있다. 첫째, 부정선거 때문이다. 둘째, 50대가 1번을 찍었기 때문이다. 물론 국정원과 국군 사이버사, 국가보훈처 등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은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 될 심각한 문제다. 두 후보의 TV토론이 있었던 2012년 12월 16일 밤 있었던 경찰의 국정원 댓글조작사건에 대한 중간수사결과 발표에 대해 야권 지지자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근데 솔직히 말해서, 그러한 사태의 심각성과는 별개로, 댓글 때문에 100만 표 이상의 큰 차이로 진 것 같지는 않다. 둘째로 50대보수화론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이야기다. 50대에서 득표율에 뒤졌다면, '왜 50대가 야권에 투표하지 않았는가'를 탐구해야 할 일이다. 그러한 분석 대신에 50대 유권자들의 선택을 무개념과 몰상식에 의한 것으로 단죄하는 데 그친다면, 그야말로 "자신과 상대로 '선과 악'으로 구분하고 과도한 적대의식을 보이면서 국민들에게 양자택일을 종용하는"(175) 일이 될 것이며, 진정한 성찰을 이루기 어려울 것이다.

 다행히도 18대 대선에 대한 각계 전문가들과 학자들의 전문적인 분석이 나왔다. 2013년 12월, 18대 대선으로부터 1년쯤 될 무렵 나온 책이 바로 이 책, <18 그리고 19>다. 세대문제, 중도, 안철수, 리더십, 지역운동, 언론, 외교안보, 복지, 경제민주화, 노동, 정치개혁 등의 다양한 논점들에 대해 총 21명의 필자들의 논고를 모았기 때문에 보다 총체적이고 다각적인 관점에서 18대 대선의 의미를 탐구하고 있다.

 물론 다양한 관점에서의 분석이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결국 어떤 변인이 대선 패배의 진짜 원인이었는가를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에서 열거된 주요한 원인들을 내 나름대로 종합해 보자면, 1.복지 등의 주요 공약에서 여당에 의제를 선점당했고, 2.문재인 후보의 리더십이 약했고, 3.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이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고, 4. 그러다 보니 TV토론에서 이정희가 보여준 것과 같은 네거티브 캠페인에만 치중했던 것이 역효과를 낳았고, 5.애시당초 민주당과 진보진영의 기반이 약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매체들에서도 한번쯤은 들어본 적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실증적인 데이터 분석을 통해 잘 정리된 만큼,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된다. 결국 민주당의 무능이라는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민주당은 정권교체 여론이 60%를 상회하는 분위기에서 치러진 총, 대선에서 졌다. 선거는 구도라고 하는데, 이렇게 좋은 구도에서 패배했으니 결국 사람이 문제라고 할 수밖에 없다. 갑자기 터진 악재 때문에 무너졌다면 할 말이라도 있겠으나 그것도 아니다. 또 한 번은 그럴 수 있으나 두 번이나 졌다는 점에서 불운을 탓할 수는 없다. 민주당은 딱 부러지게 실력 때문에 졌다. 더도 덜도 아니고 자신이 가진 역량만큼만 보여주는 선거를 치렀기 때문에 패배했다. (140)

 선거정치에 한해 말한다면 민주당은 시종일관 노무현 모델에 의지하고, 그에 매몰되어 있었다. 새로운 집권 전략을 마련할 상상력도, 당의 체질을 바꿀 담대한 용기도 보여주지 못했다. (147)

 이 책이 나온 이후, 요란스럽게 민주당과 안철수신당이 합당을 했지만, 지지율은 저공비행 중이고, 야당이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여전히 야권은 국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박근혜 대통령은 공약을 줄줄이 후퇴시켰다. 대선 당시 TV토론에서 "그래서 제가 대통령 되려는 거 아니에요"라고 말했던 것이 무색하다. 새누리당의 홍문종 사무총장은 지난 2월 25일, 공약 후퇴에 대해 "아버지가 다이아 반지와 세계여행 약속 못 지켰지만, 어머니는 행복하게 잘 산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40303125411479)고 한다.

 문제는 문재인 의원이 대통령이 되었더라도 과도한 복지공약에 대한 후퇴는 불가피했으리라는 점이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대선 당시 문재인 의원의 복지 공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박근혜 후보에 비해 큰 복지 공약을 지닌 문재인 후보가 재정조달 면에서 차이를 드러낼 부분은 증세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문재인 후보 캠프는 증세를 적극적으로 주창하지 못했고, 구체적인 방안도 내놓지 못했다. 부자감세가 100조 원이라며 이것만 철회하면 동일한 금액이 마련될 것처럼 주장했다. 하지만 이 금액은 2008년 감세가 예정대로 진행되었을 때 추계한 상징적 규모로 2009년부터 이루어진 부분적 감세 철회를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감세 혜택이 중소기업과 중간계층에도 제공되었기에 이 몫까지 제외하면 부자증세 방식으로 되돌릴 수 있는 세수는 실제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문재인 후보의 증세 공약이 부실했고 이 카드로는 복지 논쟁을 적극적으로 돌파하기 어려웠다.
 (중략) 야권이 내놓은 재정지출 혁신방안은 원론적 수준에 그쳤고, 보편복지를 주창한다면서도 실질적인 증세방안도 내놓지 못했다. 중간계층 이상이 참여하는 보편증세론은 등장하지도 못했고, 부자증세론 역시 1% 최상위층을 명시했을 뿐 여기서 얼마만큼의 재정이 조달되는지 분명히 말하지 못했다
. (246)

 만약에 당선이 되었다면 증세 없는 복지라는 문제를 어떻게 풀었을지 상상도 안 되지만, 당선되고 나서 "아버지가 다이아 반지와 세계여행 약속 못 지켰지만, 어머니는 행복하게 잘 산다"라는 이야기를 할 거라면, 선거는 실현가능성과 관련없이 '누가 더 뻥을 그럴 듯하게 치느냐'의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대선으로부터 1년 반 가까이 지났지만, 한국정치의 현재는 여전히 카오스적 상황이다. 앞으로 과연 한국정치는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는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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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 도시 -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
데이비드 하비 지음, 한상연 옮김 / 에이도스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나는 한강 이북 주민이다. 중학교 시절, 당시에도 충분히 복잡하게 얽혀 있던 서울 지하철노선도를 보면서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분당선과 8호선을 타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수도권 지하철노선도를 보며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간 이 도시는 끝없이 성장하여, 지금은 신분당선, 9호선, 공항철도, 수인선, 용인경전철, 의정부경전철, 경의선, 중앙선 등 새로운 노선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다. 수원까지 가던 1호선은 천안까지 그 촉수를 뻗쳤고, 춘천으로는 기차 대신 전철을 타고 갈 수 있게 되었다. 점점 복잡해져 이제는 제대로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의 지하철노선도를 보면, "서울"이라는 도시가 마치 괴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흔히들 하는 이야기지만, 전세계의 도시들이 점점 비슷해져 가면서 개성이 없어졌다고 한다. 파리나 베를린, 모스크바 같은 유럽 도시들은 몰라도, 서울, 도쿄, 베이징, 상하이, 타이베이, 두바이, 뭄바이 등의 도시들은 모두 '빌딩들, 빌딩들, 더 높은 빌딩들'로 묘사할 수 있을 정도다. 물론 도시들마다 나름대로의 개성이 있기는 하겠지만, '도시'는 동시다발적인 세계화의 최첨단을 보여준다. 세계화로 인한 압축적 발전은 각 도시들이 겪은 역사적 시간들을 없애고, 비슷비슷한 모양새로 획일화시킨다. 데이비드 하비는 <반란의 도시>에서 세계화, 자본주의를 압축해 놓은 공간, 즉 도시의 역사를 분석하고 있다.

 하비는 "도시 공간의 형성은 자본주의 역사 내내 과잉 자본과 노동을 흡수하는 주요 수단이었다"(85)고 말한다. 19세기 파리나 런던에서부터 20세기의 뉴욕, 그리고 오늘날의 상하이나 뭄바이까지 모든 도시들은 그러한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도시의 부동산 개발을 통해 저소득층을 외곽으로 몰아내고, 이주노동자들에게 노동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위기가 도시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주택이 가차 없이 압류되고 도시 주택시장에서 약탈 수법이 횡행하며 사회적 서비스가 감소하는 상황, 더불어 거의 모든 도시 노동시장에서 고용기회가 사라져 몇몇 도시에서는 고용 전망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오늘날의 위기는 예전에도 그랬듯 도시 위기의 양상을 띠고 있다." (102)

 저자에 따르면, 2008년의 서브프라임 사태는 그러한 자본주의의 위기를 가장 극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저자의 제안은 자본주의로부터 도시에 대한 권리와 도시의 공동성을 되찾자는 것이다. 저자는 '대도시는 공동적인 것을 생산하는 공장'이라는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의 정의를 인용하면서 이를 반자본주의 운동의 시발점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의 위기라는 저자의 진단이 다소 원론적인 반면, 그 처방은 지나치게 이상적인 것으로 보인다. 도시를 통해서 자본주의의 위기를 진단할 때, 저자가 들고 있는 사례들은 추상적이거나 단편적인 감이 있어 하나의 체계적인 분석을 구축하기에는 원론적으로 느껴진다. 반면에 도시를 되찾기 위한 반자본주의 운동의 예로 들고 있는 것이 파리코뮌, 68혁명, 월스트리트 점령운동이라는 점에서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원서가 나온 2012년까지만 해도 월스트리트 점령운동이 무언가 거대한 가능성을 가진 운동이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졌을지 몰라도, 지금은 2008년 한국에서 있었던 광우병 반대 촛불시위와 마찬가지로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운동, 잊고 싶은 과거가 되지 않았는가?

 마르크스주의자인 저자는 인정하기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오늘날 도시에서 '반란'은 불가능하다. 지하철노선도가 아무리 복잡해도, 사흘이 멀다하고 미세먼지 주의보가 내려도, 집값이 내릴 줄을 몰라도, 살기 좋은 도시는 아닐지라도, 나는, 그리고 우리 대다수는 '도시'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어쨌든 자본주의 도시는 나름대로의 매력을 가지고 있고, 이를 쉽사리 극복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자본주의 운동을 주장하기 보다는 자본주의 도시 안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모색하는 것이 훨씬 유의미한 실천으로 생각된다.

 저자의 진단과 처방은 다소 이상적일지 몰라도, 도시와 자본주의의 문제를 사유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는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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