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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의 오후 - 남자, 나이듦에 대하여
우에노 지즈코 지음, 오경순 옮김 / 현실문화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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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고령화, 저출산, 핵가족화, 비혼 및 이혼의 증가, 간병, 고독사... 기존 가족 제도의 해체로 인해 한국사회와 일본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비슷하다. 아니, 일본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몇 년 뒤에 한국사회가 경험하게 된다고 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80년대 일본 학계를 뒤흔들었던 페미니즘 논객 우에노 치즈코가 최근 '노후'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독신의 오후>는 노년을 맞이하는, 혹은 이미 노년을 맞이한 독신 남성들을 위한 책이다. 돈, 성, 건강, 가족, 인간관계, 그리고 죽음 등 독신 남성이 부닥치게 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솔직담백하게 적어내리고 있다. 문장이 술술 잘 읽혀내려가는 데다가, 실용적인 조언 또한 적혀 있어 재미있게 읽힌다. 예를 들어 저자는 "남자 홀로 나이듦의 10가지 방법"이라는 십계명을 열거한다.

 1. 의식주의 자립은 기본 중 기본
 2. 건강 관리는 본인 책임
 3. 술, 도박, 약물에 빠지는 것은 금물
 4. 과거의 영광을 자랑하지 말 것
 5.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
 6. 사람과의 만남에 이해관계를 따지지 말 것
 7. 이성 친구들에게 다른 마음을 품지 말 것
 8. 다른 세대 친구를 사귈 것
 9. 자산과 수입 관리는 확실하게
 10. 여차할 때를 대비해 안전망을 준비해둘 것
(210,211)

 조목조목 그 사례들을 들고 있는데, 모두 다 수긍이 가는 내용들이다. 한국의 독신 남성들이 이 책을 읽으면 아마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사실 저자도 "인간이란 나이와 상관없이 적응하기 마련이구나 싶어 감탄했다"(66)고 이야기하고 있듯이, 노년을 맞이한 독신 남성들도 어떻게든 살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비혼이었던 독신은 물론, 이혼하게 된 독신 남성들도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적응해 갈 것이고, 나름대로의 생존방식을 배워가지 않겠는가.

 우리 세대의 남성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저자는 일본의 전형적인 가부장적 남성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쓰고 있는데, 우리 세대 남성들은 기본적인 가사노동은 할 수 있고, 가정에 대해서도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아마 이 책에서 저자가 걱정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보다 젊은 세대의 남성들이 노년이 될 무렵에는 해당사항이 없어질 것 같다. (물론 경제적 측면에서는 더 심각한 문제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 얼마 전, 현재의 젊은 세대는 나이든 세대에 비해 평생 혜택이 더 적다고 하는 뉴스도 나왔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아직 노년을 걱정하기에는 젊은 나이인지라 이 책이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물론 20대 중반인데도 연애경험이 없는 소위 "모태솔로"라는 점에서 이대로 결혼을 할수는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결혼 말고 연애"가 더 시급한 문제다.ㅠㅠ

 사실 "혼자"라는 것이 한편으로는 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외롭기도 하다. 누구나 그렇듯이 혼자 있고 싶은 때도 있고, 누군가와 같이 있고 싶은 때도 있지 않겠는가. 저자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세상에는 함께해서 기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함께하면 불편한 사람도 있는 법이다.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운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 또한 있다. '내 시간'이란 혼자 있고 싶을 때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과, 혼자 있고 싶지 않을 때 누군가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의 조합이다. (184)

 인생은 어차피 고독한 것이라고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해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연애하고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저자의 고정된 성관념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특히 남성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독신 남성에 대해 쓴 책이라 어쩔 수 없는지 몰라도). 남성에 의한 간병 강간이나 간병 살인 사례가 많다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라고 하니 그렇다치더라도(출처가 없긴 하지만, 거짓말은 아니리라 믿는다), 다음과 같은 부분은 극히 한정된 사례에 저자의 개인적 편견을 덧씌운 것에 불과하지 아닌가 싶다.

 남자란 '죽지 않으면 결코 낫지 않는 병'과도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때가 있다. 다름 아닌 돈과 권력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여자란 여자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남자에게 선택받아야 하지만, 그 반대는 성립되지 않는다. (중략) 남자가 남자가 되기 위해서 여자는 필요하지 않다. 남자는 남자에게 인정받음으로써 남자가 된다. 여자는 그다음 포상으로 딸려 온다.
 이런 남성 집단의 모습을 전문 용어로 '호모 소셜(homo-social)'이라 부른다. 호모 섹슈얼에 가까운 천황을 향한 무한한 지극정성과도 같은 사랑이 남자들 사이에 존재한다. 남자가 정말로 사랑에 빠지는 대상은 여자가 아닌 남자다. (중략)
 남자들을 보더라도 여자에게 선택받는 것보다는 동성인 남성에게 "너 꽤 쓸 만한데."라는 말을 듣는 것을 최고의 찬사로 여기는 면이 있다.
(125,126)

 물론 그러한 경우도 있겠지만, 지나친 일반화라는 생각이 더 강하다. 나만 해도 그런 경험이 전혀 없는데 말이다. "일본 최고의 지성"이라는 분이 쓴 글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웃긴다.


 P.S. 138페이지에 "가모메 죠메이의 <호조키>"라고 나오는데, 잘못되었다. "가모노 쵸메이(鴨長明)의 <호조키>(方丈記)"가 맞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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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파마피아]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피파 마피아
토마스 키스트너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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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월드컵에서 한국은 졸전 끝에 예선 탈락했지만, 그래도 월드컵 시즌인지라 신간추천페이퍼에 월드컵 관련 서적들, <축구의 세계사>와 <피파 마피아>이 추천되었다. 그 중 <피파 마피아>가 선정되었다. 얼마 전 서점에 가서 실물을 보니 <축구의 세계사>가 선정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가 48000원 짜리 책을 공짜로 받는 것이 송구스럽기도 하거니와 1200페이지짜리 두께에 압도당했다. 만약 그 책이 선정되었더라면 한 달 내내 <축구의 세계사>만 읽고 있을 뻔 했다.

 

 6월 9일 출판된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 토마스 키스트너는 세월호 사고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아마도 세월호 사고에 대해 외국인이 언급한 최초의 책들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금권에만 눈이 먼 탐욕이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경우, 어떤 참사가 빚어지는가 하는 점은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사고가 여실히 보여줍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의 침몰은 300여 명이 넘는 젊은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이 불행한 사고로 한국은 정체성 위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중략) 인간의 경제는, 건전한 사회는 도대체 경쟁을 어느 선까지 감당해야 할까요? 기업과 사조직의 이해관계가 인간 본연의 욕구를 짓누르는 어처구니없음을 언제까지 좌시해야만 할까요? 그리고 '세월호'의 비극은 분명히 보여줍니다. 이익추구 집단과 감독관청이 이처럼 밀접하게 맞물릴 때 참극은 피할 수 없습니다. 독립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족벌경영이 판을 치면서 이해당사자끼리 서로 이익만 키워주는 부패를 막을 길이 없습니다. 규제가 줄어들수록 돈벌이라는 탐욕에 제동을 걸기가  그만큼 더 어려워집니다. (중략) 바로 그래서 오락산업의 가장 통제받지 않는 부문인 프로축구 역시 인간의 인생을 지배하는 권력과 너무 지나친 의미를 부여받아서는 안 됩니다. (중략) 축구는 그저 스포츠 경제, 스폰서 경제, 정치 그리고 미디어의 힘으로 부풀려진 가죽 공을 둘러싼 비즈니스일 따름입니다. 모두 저마다 여기서 이득을 얻어내려 혈안이 되는! (8, 9)

 규제받지 않은 경제권력의 탐욕이 만들어내는 문제라는 점에서는 세월호 참사와 피파의 부정부패가 공통점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피파의 부패로 인해서 세월호참사처럼 직접적으로 사람이 죽지는 않으리라는 점에서 둘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다소 비약이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세월호 참사의 원흉으로 소위 '관피아'가 지목되면서, 별안간 '철피아(철도마피아)' '해피아(해양마피아)' '언피아(언론마피아)' '학피아(학벌마피아)' 등 마피아 시리즈가 회자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브라질월드컵에서 한국이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마피아시리즈의 정점을 찍은 것이 '축피아(축협마피아)'다. 대한축구협회의 폐쇄적인 성격과 인맥주의가 한국 축구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비판으로부터 '축피아'라는 말이 나왔던 것이다. 대한축구협회가 축피아라면, 보다 더 규모가 큰 국제축구연맹(FIFA) 또한 일종의 마피아라는 것이 저자의 비판이다.

 이 책에는 18년째 피파 회장 자리에 있는 블라터를 중심으로 한 피파 인물들의 스캔들이 서술되어 있다. 온갖 협잡과 음모, 부정부패가 난무하는 피파의 모습을 읽다보면 피파에 대한 환상이 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FIFA나 IOC 같은 조직들이 자본으로부터 독립되어 순수하게 스포츠만을 추구할 수는 없는 일인 것이다. 아디다스의 호르스트 다슬러는 올림픽과 월드컵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면서 IOC의 회장에 사마란치를, FIFA의 회장에 아벨란제를 앉히는 데 성공했다. 이후 스포츠 대회는 자본의 전시장이 되었는데, FIFA 회장에 블라터가 취임하면서부터 그러한 경향은 가속화되었다. 아무도 블라터의 연봉이 얼마인지 모를 정도라고 하니 FIFA의 불투명성은 알 만하다.

 사실 생소한 고유명사가 너무 많이 등장하고, 잘 모르는 여러 스캔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도 하여 잘 읽히는 책은 아니다. 그냥 막연하게 'FIFA도 부정부패가 만연한 곳이군'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최근 카타르의 월드컵 개최에 대한 뇌물 의혹이 뉴스에 올랐는데, 이 책에도 자세한 내막이 나와 있다.

 그런데 생소한 고유명사들 속에서 반가운 이름을 발견했으니,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이다. 이 책에 따르면 정몽준은 블라터 FIFA 회장의 강력한 반대파라고 한다. 그런데 2002 한일월드컵 개최에 얽힌 정몽준 회장의 활약 또한 적혀 있다.

 2002년 월드컵이 한국과 일본에 주어진 것을 돌아보자. 축구라는 경로를 통해 자국의 대통령이 되고 싶어 일본과의 공동 개최를 위해 싸운 정몽준은 정말 많은 것을 월드컵에 투자했다. (중략) 피파 회장 아벨란제는 일본의 단독 개최를 강력하게 지지했다. 다행스럽게도 정몽준은 아벨란제의 사위를 공략할 수 있었다. 돈 되는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테이셰이라를 이용해 아벨란제를 움직이려 했다. 이렇게 해서 테이셰이라는 1995년 상파울루 출신의 사업 친구 조제 아빌라와 함께 자동차업계에 진출했다. CBF 회장이 '현대'라는 자동차 브랜드의 브라질 영업권을 따냈다. (중략)
 한국과 일본은 서로 선물하는 일이 없다. 틈만 나면 서로 비난하고 매수를 일삼는다. 1999년 스코틀랜드의 데이비드 윌은 지원국 일본이 위원들에게 랩톱과 같은 값비싼 개인 선물들을 뿌렸다고 확인했다.
(274, 275)

 어? 이런 얘기는 처음 듣는데? 문제는 의혹이 개최만이 아니라 한국전 경기에 대해서도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2002년 8월 25일, 아시아월드컵이 끝나기가 무섭게 피파는 이탈리아 검찰의 고소에 직면해야만 했다. 월드컵에서 심판을 맡았던 비론 모레노가 16강전에서 이탈리아를 고의적으로 탈락시켰다는 게 고소장의 내용이었다. 주최국 한국과 맞섰던 이탈리아가 이 경기에서 1대 2로 패했기 때문이다. 모레노의 석연치 않은 판정을 보면 이 에콰도르 출신의 심판이 정말 개최국에 유리하게 휘슬을 불었다고 믿을 구석이 많다. (중략) 한국은 두 번이나 그런 모호한 심판 판정 덕을 보았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을 승리로 장식하고 8강전에서 한국이 만난 상대는 스페인이다. 다시금 명백한 오심이 월드컵 개최국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실제로 이런 오심이 의도적인 것인지 하는 물음에는 누구도 확실한 답을 할 수 없다. (210, 211)

 이런 얘기는 일본 넷우익들이 할 법한 이야기가 아닌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글은 피파를 오랜 세월 취재해 온 저널리스트가 제3자적인 입장에서 쓴 글이다. 물론 저자의 분석이 어느 정도 타당한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나는 그때 한국의 16강전, 8강전 경기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고, 저자의 의혹이 정당한 것인지 판단할 전문지식도 없다. 2006, 2010, 2014년 월드컵의 2승 3무 5패라는 한국의 성적을 보면, 히딩크 감독의 능력 외에 개최국 버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기는 한다. 하긴, 정몽준 명예회장도 얼마 전 서울시장 선거에서 "세계축구연맹(FIFA) 책임자가 ‘한국이 준결승에 올라간 건 정몽준이란 사람이 월드컵 축구심판을 전부 매수해서 한 것 아니냐’라고 하는데 내 능력이 그 정도면 괜찮은 것 아니냐"고 농담삼아 이야기했다고 하는 걸 보면(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40603500044), 한국 외 나라들의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히 오가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중학교 때, 빨간 티셔츠를 입고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를 외쳤던 나로서는 한국의 4강신화가 이렇게 의혹으로서 논해지는 걸 보니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스포츠가 만들어낸 열광으로부터 한 발 떨어져서 냉정하게 본 월드컵은 어떤 모습일까? 책의 말미에는 월드컵 때문에 교육, 복지 예산이 삭감되는 데 반발하는 브라질 사람들의 월드컵 반대시위가 언급되어 있다. 비록 2002년의 한국에서는 월드컵에 대한 반성 대신 열광만이 있었지만, 12년이 지난 지금은 2002년 월드컵이 가진 의미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박지성 선수의 은퇴와 홍명보 감독의 사퇴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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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시대의 한국정치
손호철 지음 / 푸른숲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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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국의 가장 저명한 정치학자들 중 한 분인 손호철 교수님의 책, <신자유주의 시대의 한국정치>는 15년 전에 출판된 책이지만, 지금 읽어도 시사하는 부분이 큰 책이다. 아니, 오히려 이 책을 보며 그간의 한국정치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바가 크다.

이 책에는 내각제, 노동운동, 진보정당, 민주화 등 한국정치에 대한 다양한 주제의 논고들이 실려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IMF와 김대중정부다. IMF사태가 터지고,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해가 1997년이다보니,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 또한 당연히 IMF와 김대중정부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고용유연화, 정리해고와 같은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소위 "신자유주의" 정책들은 김대중 정부가 IMF 극복을 위하여 시작한 것들이라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신자유주의 개혁을 통해 IMF를 극복하려 했던 김대중 정부의 정책에 비판적이다. 우선 저자가 진단한 IMF의 원인은 신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군부정권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온 관치경제가 아니라,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가 관치경제와 결합되면서 생긴 것이다.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신자유주의 정책 또한 정리해고나 민영화 등을 통해 민주주의의 야기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또한 김대중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재벌개혁에는 미온적이며, "한국적 특징인 정경유착, 연고주의와 결합한 '크로니(Crony) 신자유주의' 내지 '정경유착형 신자유주의'로 나아가고 있다"(172)고 지적한다. 차라리 철저한 신자유주의 개혁을 성공시켰다면 나았을 것을, 관치경제 시절부터 이어져 온 한국 특유의 정경유착 문화와 결합되어 양자의 나쁜 점만이 남은 것이 한국형 신자유주의라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상당히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저자는 지역주의에 대해서도 중요한 주제 중 하나로 다루고 있다. 저자는 87년 대선에서 민주세력의 분열로 인해 영남 대 호남의 지역주의 구도가 확립되었고, 97년 당시 제기되었던 호남 지역주의론 역시 오히려 지역주의 구도가 강화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3김의 사당화 문제 등 3김정치, 유훈정치를 비판한 저자이기에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실제로 김대중 정부 이후 해소는커녕 부분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지역주의의 안타까운 현실을 생각하면, 지역주의에 대해 지역주의로 대항하는 것이 얼마나 황당한 일이 아니겠는가.그러한 의미에서 보자면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전남 순천 곡성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당선된 것은 지역주의 해소에 기여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할 수 있겠다.

15년 전에 쓰여진 문제의식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은 저자의 탁월한 분석이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의 정치현실이 그동안 별다른 발전을 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현재 한국정치를 옭아매고 있는 요소들 중 대부분은 15년 전에 이미 가시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과연 정치가 발전하기는 하는지, 한국정치에 희망은 있는지 암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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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여신 - 개콘보다 재미난 곽현화식 수학 과외가 시작된다
곽현화 지음, 소순영 감수 / 중앙M&B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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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때 문과를 선택한 이후, '수포자'로서의 길을 살아온 내가 이 책을 산 이유는 단 하나. 저자가 개그우먼 곽현화라는 거. 예쁜 얼굴과 글래머러스한 몸매 외에 곽현화가 주목받는 특이사항은 이대 수학과 출신이라는 것. 그래서 곽현화가 쓴 책이면, 뭔가 화보집 같은 느낌이 드는 수학 이야기가 담겨 있는, 재밌는 책일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뿔싸, 책을 사고 보니 이건 그냥 중학교용 수학 참고서가 아닌가? 물론 곽현화 사진이 중간중간 많이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너무 작은 데다가 너무 얌전한 사진들뿐이었다. 그래도 간만에 중학교 시절을 회상하며 읽어보려고 했는데...... 문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로도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인지라 못 풀겠다는 것.ㅋㅋㅋ 그리고 말투가 상당히 오글거린다.ㅋㅋㅋ

 

 중학교 다니는 사촌동생한테 선물해야겠다. 참고서로 산다면 모를까, 혹시라도 나처럼 성인 남성이 므흣한 생각을 가지고 사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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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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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읽다보니 기상천외한 소설이 하나 더 생각났다. 이안 감독의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고 감명받아 샀던 원작 소설 <파이 이야기>다.

 결론적으로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가 원작 소설보다 훨씬 낫다. 기본적인 이야기 골격은 비슷하지만,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가 압도적인 영상미와 적절한 연출이 돋보인 걸작인 반면, 원작소설은 평범하다. 물론 내가 영화를 먼저 접하고 소설을 뒤늦게 읽은 탓에 핵심적인 반전을 비롯한 스토리 전체를 미리 알고 있었던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영화가 워낙 뛰어났던 탓에 소설의 매력이 반감되었다.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나중에 봤더라면 둘 다 재미있게 봤을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인도 폰디체리에서 캐나다로 가족들과 이주하러 가던 중, 배가 침몰하고 가족을 모두 잃은 '파이'의 이야기다. 놀랍게도 파이는 구명보트에서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함께 태평양을 227일간 표류하게 된다. 극한의 위기상황에서 주인공 파이는 신에 대한 믿음과 리처드 파커와의 우정을 통해 삶을 이어간다.

 이야기는 수십년 후, 캐나다에 정착한 파이가 소설가에게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그런데 아저씨 파이가 과거를 회상하는 어조가 지나치게 무미건조해서, 영화의 활발하고 위트 넘치는 파이의 캐릭터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재미가 덜 할 수밖에 없다. 폰디체리에 살던 신앙심 깊은 소년 '파이'와 태평양 바다 위에 떠도는 소년 '파이', 그리고 아저씨가 된 현재의 '파이'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것 같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전반부의 신앙고백 부분은 부담스러웠고, 후반부의 태평양에서 조난당해 표류하는 이야기도 그리 실감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단순히 인생의 역경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종교가 필요하다는 교훈담일 뿐이었다. 비슷한 메시지를 던지면서도 관객에게 생각의 여지를 던져 주었던 영화와 비교된다. 영화를 먼저 보았다면 굳이 볼 필요가 없는 소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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