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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시대 - 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알랭 드 보통 지음, 최민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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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어머니가 DMB로 뉴스를 듣는 소리에 깬다. 그리고 전날 저녁 뉴스와 토시 하나 다르지 않은 뉴스를 들으며 아침식사를 하고 집을 나선다. 주부인 어머니는 하루 종일 DMB로 뉴스를 보시겠지만, 학생인 나도 뉴스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다. 종이신문을 보지는 않지만,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흥미를 끄는 뉴스, 특히 연예 뉴스가 있으면 꼭 클릭하게 되고, 뉴스에 달린 댓글을 보고 킥킥거린다. SNS에서도 쉴 새 없이 새로운 뉴스를 읽게 된다. 저녁에는 집에 와서부터 쭉 TV 뉴스를 틀어놓게 된다. 특히 스포츠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나 기상캐스터가 오늘 무슨 옷을 입고 나오는지에 이목이 집중된다. 밤에 자기 전에 채널을 돌리다가 심야뉴스를 잠시 보고 잠자리에 든다. 주말이면 아침부터 밤까지 뉴스에 중독된 시대, 바야흐로 '뉴스의 시대'다.

 온갖 이례적인 사건들을 이처럼 단호히 추적함에도 불구하고 뉴스가 교묘히 눈길을 회피하는 딱 한 가지가 있다. 그건 바로 뉴스 자신, 그리고 뉴스가 우리 삶에서 점하고 있는 지배적인 위치다. '인류의 절반이 매일 뉴스에 넋이 나가 있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언론을 통해 접할 수 없는 헤드라인이다. (10, 11)

 도대체 우리에게 뉴스란 무엇이길래, 뉴스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저자는 뉴스가 공포, 불안, 분노, 질시, 그리고 쾌락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한다. 뉴스는 끊임없는 재난과 범죄를 보도함으로써 공포와 불안을 야기하고, 극악무도한 범죄자들과 정치인들에 대한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성공한 유명인사들에 대한 질시를 야기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과 관계 없는 뉴스들을 보며 모종의 쾌락을 느낀다. 뉴스를 일종의 오락(entertainment)으로 소비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뉴스는 우리에게 각기 할당된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거나 흥미진진한 문제들을 찾아냄으로써, 그리고 이 더 큰 관심사들이 자기 자신에게만 초점이 맞춰진 불안과 의심을 삼켜버리도록 용인함으로써 우리를 사로잡은 문제로부터 도피하는 탈출구가 될 수 있다. 기근, 침수된 마을, 잡히지 않은 연쇄살인범, 내각의 사퇴, 내년 최저생계비에 대한 경제학자의 예측 같은 외부의 혼란이야말로 우리를 내면의 평온이라는 감각으로 인도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15)

 저자는 이러한 범죄와 사건사고, 부정부패만을 보도하는 뉴스의 부정적인 보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동전의 훨씬 유쾌한 쪽은 결코 뉴스가 되지 않는" 현실을 지적한다. "87세 할머니가 일면식도 없는 15세 행인의 도움으로 철도역 층계를 세 계단 오르다"(50)와 같은 일상의 작은 기적들은 살인이나 강간 같은 극히 일어나기 드문 사건들에 밀려 뉴스가 되지 못한다. 흔히 하는 우스갯소리지만, "개가 사람을 무는 것은 뉴스가 되지 않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되는 것"이다. 요컨대 뉴스는 우리가 세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우리는 뉴스란 기본적으로 밖에서 벌어지는 일을 설명하는 한 묶음의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국가가 그저 절단된 손, 불구가 된 할머니, 지하실에 죽어 있는 소녀 셋, 당혹스러워하는 수상, 수조 파운드에 달하는 부채, 기차역에서의 동반자살, 그리고 해안 지대에서 벌어진 치명적인 오중추돌 사고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중략)
 뉴스가 제공하는 국가에 대한 소식들이 국가 그 자체는 아니다.
(52)

 어떤 의미에서는 저자의 이러한 문제의식이 위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정치나 사회에 대한 비판 대신 온갖 "미담"들만이 뉴스를 차지하게 된다면, 그것은 저널리즘이 아니라 어용뉴스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매체비평이나 언론 관련 서적들과 비교했을 때, 이 책이 원론적이고 추상적이다 못해 나이브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것은, 아마 저자가 뉴스의 배후에 있는 권력이나 자본의 문제는 다루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한국의 언론이 서양의 언론과 비교했을 때 심각하게 절망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고 싶지는 않다). 저자는 뉴스가 권력이나 자본과는 별개로 존재하며, 뉴스의 문제를 뉴스라는 대상과 그 뉴스를 보는 사람들의 문제로만 보고 있다. 

 그렇게 저자가 내놓은 결론은 다소 황당하다.

 우리는 전쟁, 부채, 폭동, 실종된 아이들, 시사회 뒤풀이, 신규 상장, 불한당 같은 미사일 등이 전례 없는 중요성을 갖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뉴스가 부추긴 인상에서 놓여날 필요가 있다.(중략)
 뉴스가 더이상 우리에게 가르쳐줄 독창적이거나 중요한 무언가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챌 때 삶은 풍요로워진다. 그때 우리는 타자와 상상 속에서만 연결되는 것을 거부할 것이다. 타자를 정복하고 망가뜨리고 만들거나 없애는 일을 그만둘 것이다. 아직 우리에게는 할당된 짧은 시간 속에서 견지해야 할 자신만의 목적이 있음을 자각하면서 말이다.
(291, 292)

 저자의 주장은 뉴스를 잠시 끄자는 것이다. 어차피 뉴스에 보도되는 사건사고들은 우리에게 큰 의미를 가지지 않으니, 우리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주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데 뉴스를 보는 시간을 할애하자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든다. 사적인 문제에만 얽매여 공적인 문제에는 무관심한 태도가 바람직한 것일까? 국회에서 어떤 정책들이 결정되고, 어떤 사회적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무관심해도 괜찮을 만큼, 사회를 신뢰할 수 있을까? 나는 신뢰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데 말이다. 만약 뉴스를 보지 않고 지내다 어느 날 병원에 갔더니 의료민영화로 의료비 폭탄을 맞게 된다면? 만약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해 있는 줄 모르고 어떤 나라에 여행을 가게 된다면? 아니, 보다 근본적으로, 뉴스를 안 보고 타인과 대화가 되는가?

 그렇지만 이러한 불안을 가지게 되는 것 자체가 뉴스에 단단히 중독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뉴스는 우리의 실생활과 별다른 상관이 없는지도 모른다. 물론 공적인 문제에 대해서 완전히 관심을 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겠지만, 쓸데없는 뉴스는 과감하게 끊을 수 있는 뉴스다이어트가 필요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뉴스가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지를 알고, 주체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찾아나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현대사회는 정치적 의지를 가진 사람들의 진을 빼는 데 검열보다 훨씬 더 교활하고 냉소적인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이 힘은 사람들 대다수를 혼산스럽고, 따분하고, 정신 사납게 만들어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일에 관여한다. 그리고 이는 가장 중요한 사안의 맥락을 대다수 대중이 단 한순간도 붙잡을 수 없도록 무질서하고, 복잡하고 단속적인 방식으로 사건들을 보도하는 행위를 통해 이루어진다. (36)

 '뉴스의 시대'란 뉴스의 홍수 속에 살면서도 그 뉴스들이 우리의 일상생활에 가지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뉴스과잉의 시대'인 것이다. 뉴스과잉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하게 되는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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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한번은 순례여행을 떠나라 - 회복과 치유의 길, 시코쿠 88寺 순례기 일생에 한번은 시리즈
경민선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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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은 혼슈, 홋카이도, 규슈, 시코쿠, 4개의 큰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혼슈가 가장 큰 섬으로 아오모리부터 후쿠시마, 도쿄, 나고야, 오사카, 교토, 히로시마, 야마구치 등 주요 도시들은 이 혼슈에 속한다. 홋카이도는 혼슈 북쪽에 있는 큰 섬으로, 춥다는 특징이 있다. 규슈는 한국과 가까운 섬이라 한국 사람에게 익숙하다. 후쿠오카, 구마모토, 나가사키, 가고시마 등이 규슈에 속한다.

넷 중에 가장 작은 섬인 시코쿠는 참 애매하다. 고치현, 도쿠시마현, 가가와현, 에히메현, 네 개의 현으로 이루어진 시코쿠는 딱히 떠오르는 큰 도시도 없고, 인구도 적고, 뚜렷한 특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굳이 떠올리자면, 고치현은 시바 료타로의 소설로 유명한 사카모토 료마의 고향이고, 에히메현의 마쓰야마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도련님>의 무대가 된 곳이고, 가가와현은 우동이 유명하다. 도쿠시마현은... 모르겠다. 자연경관은 좋지만, 그냥 한 마디로 시골이다.

그런데 시코쿠에도 한 가지 중요한 관광자원이 있어, 일본 전역으로부터 순례자들이 온다. 바로 시코쿠 전역에 구카이(空海)스님과 88개 사찰을 지정해 놓아 순례를 하게끔 해 놓은 것이다. 총 1200km라는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을 "오헨로상"이라고 부른다(자동차나 자전거로 순례하는 사람도 있지만, 원칙적으로는 도보 순례다). 한국 사람 중에서도 시코쿠 88개 사찰 순례길을 도보로 순례하러 가는 사람들이 꽤 있는 듯하다. 그래서 시코쿠 순례길에 한국어 안내판이 늘자, 일본 혐한 세력이 혐한 스티커를 순례길에 붙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실은 나 또한 언젠가 시코쿠로 88개 사찰 순례를 하러 가는 것이 꿈이다.

이 책은 저자가 43일간 시코쿠 순례길을 순례하고 쓴 책이다. 사실 처음에는 별 기대 않고 손에 든 책인데, 의외로 재미있었다. 저자가 글을 잘 쓰는 데다가 순례 도중의 에피소드들도 흥미로웠다. 순례 중에 만난 할머니의 아버지가 일제강점기에 서울에서 순사를 했다는 얘기를 듣고 불편한 심정이 들었다는 이야기, 전 세계를 여행 중인 스페인 청년과 일본인 여성 커플 이야기, 시코쿠 순례길에 대한 책을 번역한 할머니 등 순례 중에 만난 사람들의 사연들이 흥미롭다. 순례길 그 자체보다도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초점을 맞춘 책이다.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노숙 여행을 하다가 야영지인 줄 알고 찾아간 "스바루"가 알고 보니 으리으리한 호텔인 탓에 난감해 하던 저자가 호텔에 사정을 이야기하자, 호텔 측에서 친절하게도 뒷뜰을 야영지로 제공해 주었다는 에피소드다. 일본 사람들의 친절함이 묻어나는 이야기다.

이 책의 문제점은 저자가 일본어를 모른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예는 "젠코야도"다. 시코쿠 88개 사찰 순례길에는 젠콘야도(善根宿)라는 게 있다. 시코쿠 주민들이 도보 순례자들을 위해 무료로 숙식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시코쿠 순례의 매력 중 하나이고, 저자도 몇 번이나 젠콘야도들 이용한 탓에 책에서 백 번 정도는 나오는데, 저자가 젠콘야도를 "젠코야도"라고 표기해 놓은 탓에 책을 읽다가 난감한 기분이 든다.

어쨌든 이 책을 읽으면 시코쿠 88개 사찰 순례를 가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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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공모자들 - 일본 아베 정권과 언론의 협작
마고사키 우케루 지음, 한승동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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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한국어판 제목을 정말 잘 지었다. 일본어 원제는 <일본을 의심하는 뉴스의 논점>이라는 괴상한 제목인데, <보수의 공모자들-일본 아베정권과 언론의 협작>이라니, 흥미진진하다.

저자 마고사키 우케루는 일본 외무성 관료 출신인데,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 맹렬히 비판해온 좌파 논객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한국에도 <일본의 영토분쟁>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가 소개되었다. 일본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어, 한국에서도 평판이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데 일본의 평론가들은 한 번 떴다 싶으면 대동소이한 내용의 책을 찍어내는 경향이 있다. 이 책 역시 기존에 다른 저작들이나 인터넷 매체에서 저자가 주장해 온 내용의 재탕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이 책의 내용은 간단히 말해서 아베정권이 미국 네오콘 세력의 의향을 일방적으로 따르고 있는 탓에, 잘못된 정책을 시행하고 있고, 이를 일본의 언론들이 정확히 보도하고 있지 않다는 비판이다. TPP 교섭 참가, 원전 재가동, 센카쿠문제에 대한 과민반응, 오키나와 후텐마기지 이전 모두 아베정권의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언론이 그에 대한 적절한 비판을 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화제들에 대해 망라하며 이야기하고 있는 탓에 구성이 다소 두서없이 산만한 감이 있다.

일반 책들보다 작은 사이즈인데다 옮긴이의 말을 제외하면 200페이지도 안 되는 짧은 책이라 술술 읽힌다. 일본에 대해 잘 모르는 한국의 독자들이라면, 아베정권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는 책이기는 하다.

그런데 이 책에는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저자는 아베에 대한 미국 언론의 평판이 나쁘다며, 폴 크루그먼의 칼럼을 소개하고 있다.

이어서 1월 13일자에는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일탈하는 일본(Japan Steps Out)>이라는 논문을 기고했다. 자민당의 정권 복귀를 "수십 년에 걸쳐 일본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 '(멸종된) 공룡'의 부활"이라고 단언한 뒤, 아베에 관해 다음과 같은 생각을 드러냈다.

일본통 사람들로부터 아베를 '좋은 놈'(good guy)이라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들었다. 외교정책에서 '문제아'(very bad)이며 (아베가 주장하는) 경기부양책도 고전적인 돈 뿌리기 정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뉴욕타임스>는 <워싱턴프스트>와 나란히 미국 지식층의 의견을 대표하는 신문으로, 그들의 논평은 설사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무시하기 어렵다. 그런 신문에 왜 아베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잇따라 등장하는 걸까. (100, 파란색은 마고사키 우케루, 초록색은 폴 크루그먼 칼럼의 인용)

그런데 크루그먼의 칼럼 원문을 보면, 저자가 인용한 문단의 다음 문단, 즉 마지막 문단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중요치 않다. 그의 동기가 무엇이든, 아베는 나쁜 전통을 깨 부수고 있다. 그리고 그가 성공한다면,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이다. 스태그네이션의 선구자인 일본이 우리에게 그 탈출 방법 또한 제시할 것이다.

But none of that may matter. Whatever his motives, Mr. Abe is breaking with a bad orthodoxy. And if he succeeds, something remarkable may be about to happen: Japan, which pioneered the economics of stagnation, may also end up showing the rest of us the way out.
(http://www.nytimes.com/2013/01/14/opinion/krugman-japan-steps-out.html?_r=0)

양적완화정책의 지지자인 크루그먼은 아베노믹스 경제정책을 지지한다며 이 칼럼을 쓴 것인데, 저자는 아베를 비판하기 위해, 칼럼의 일부를 발췌 인용하며, 전체 취지를 정반대로 왜곡시켜버린 것이다. 저자가 악의를 갖고 왜곡한 것인지 영어 해석능력이 부족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자소개를 보면 "1966년 도쿄대학 법학부를 중퇴하고 외무성에 입성해 영국, 미국, 소련, 이라크, 캐나다 등에서 36년간 외교 관리로 근무했다"고 하니 아마 전자가 더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하긴, 일본 외무성에서 1966년에 채용한 관료들의 영어실력이 그 정도로 엉망이었을 가능성도 있긴 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신문이나 텔레비전 등 대형 미디어의 보도'를 의심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14)고 역설하고 있는데, 신문이나 TV보다도 저자의 이야기를 의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내가 크루그먼의 칼럼을 읽어본 적이 없었더라면, 크루그먼을 아베정권의 비판자로 오해하지 않았겠는가. 아베 비판도 좋지만 이런 식의 편향된 왜곡은 문제다. 저자인 마고사키씨의 팬으로서 유감스럽다.

또 하나, 저자의 잘못은 아니지만, 오해를 부를 부분이 있다. 저자는 "미국과 역사적으로 인연이 깊은 필리핀에서도 20여 년 전에 미군이 물러남으로써 현재 동남아시아에는 미군기지가 하나도 없다. 아세안(동남아시아연합)이 외국군 기지를 인정하지 않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82)라고 말한다. 일본어 원서가 나온 2013년 8월 당시로서는 맞는 말이다. 그런데 중국의 위협이 심해지면서, 올해 4월 필리핀은 미군에 기지를 허용하기로 했다고 한다.(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04/13/0200000000AKR20140413025200084.HTML?input=1179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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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민주당 정권의 탄생과 붕괴 - 대내외정책 분석을 중심으로
진창수.신정화 엮음 / 오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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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슷한 시기에 제목이 너무나도 비슷한 두 권의 책이 나왔다. <일본 민주당정권의 성공과 실패>와 <일본 민주당정권의 탄생과 붕괴>다. 두 권 모두 일본 민주당정권에 대해 국내학자들의 논문을 모은 책인데, 둘 중 어느 책을 먼저 읽을까 고민되었다. 발행일을 보니 <성공과 실패>가 5월 25일, <탄생과 붕괴>가 6월 16일. 발행일이 조금 더 빠른 <일본 민주당정권의 성공과 실패>를 먼저 읽었다.

 <성공과 실패>와 비교했을 때, 현대일본학회가 중심이 되어 만든 <일본 민주당정권의 탄생과 붕괴>의 특징은 13개의 논문이 수록되어 있어 민주당의 선거정책, 조직과 지지기반, 정치주도론, 증세 없는 복지확대, 소비세, 원전정책, 지역주권, TPP, 대북정책 등 다양한 논점을 포괄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쟁점들에 대한 종합적인 논고들을 읽을 수 있었다.

 2009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내세운 매니페스토는 소득제한 없는 어린이수당 등 증세 없는 복지확대가 주축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정권교체에서 성공하고 나자, 매장금이나 낭비 삭감으로 얻을 수 있는 재원이 한정적이라는 사실에 직면했고, 공약의 대폭 수정, 혹은 후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토야마내각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된 것이 후텐마기지 이전문제였다. 총선에서 하토야마는 오키나와 헤노코로 이전이 결정되어 있던 후텐마기지를 현외, 혹은 국외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지만, 집권 후에는 미국의 냉담한 반응과 오키나와 및 연립 파트너인 사민당의 강경한 태도 사이에서 하토야마는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하토야마의 뒤를 이은 간 나오토는 참의원 선거 직전, 구체적인 전략이나 합의 없이 소비세를 인상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고, 참의원선거에서 과반수를 잃는 결과를 낳았다. 이후 참의원에서 야당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으면서 정권운영은 상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2007년 참의원 선거 이후 민주당이 후쿠다, 아소정권의 발목을 잡았던 것을 생각하면 뿌린 대로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참의원선거 이후 "야당의 태클-여당이 추진하는 정책의 실패-여당의 리더십 하락-지지율 하락-야당의 태클"의 악순환을 반복하다가 아무런 실적도 내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2012년 총선에서 정권을 자민당에 넘겨주게 된다. 동일본대지진과 센카쿠문제, 세계적 경제불황 등 예상치 못했던 사태들에 대해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던 것 또한 민주당에 치명적이었다.

 간 나오토가 리더십을 잃고 노다내각이 들어서면서부터 민주당정권은 자민당정권과의 차별성을 잃어간다. "자민당 노다파"라는 비아냥까지 들은 노다정부는 외교적으로는 미일동맹 강화로 축을 옮겼고, 관료에 의존하는 형태로 돌아섰다. 소비세 인상, TPP 협상 참가, 원전 재가동 등 민주당 지지자들이 원하는 정책과는 거리가 멀었고, 소비세 인상에 반대한 오자와파의 반발 또한 심해졌다. 그 결과, 오자와파가 탈당, 분당하였고, 아무런 대책 없이 맞이한 2012년의 총선에서 민주당은 참패를 하게 된다.

 일본 민주당의 실패 원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 소선거구제, 양원제, 의원내각제라는 정치제도가 여당의 권력기반을 불안정하게 만든다는 점. 2010년 참의원선거에서 민주당이 패배하고, 여소야대상태가 되자, 민주당의 정권운영은 어려워졌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들었다. 임기가 보장받는 대통령제와 달리 의원내각제에서 지지율 하락과 분점국회는 수상의 리더십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고, 잦은 수상 교체가 일본 정치의 한 특징이 되었다.

 2. 일본 언론과 여론의 부화뇌동. 하토야마내각 초기에 70%를 넘었던 내각지지율은 이후 하락을 거듭하게 된다. 애당초 과도한 기대에 기반한 지지율이었지만, 금세 실증을 내 버리는 언론과 여론 탓에 정권 자체는 항상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

 3. 2009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공약으로 내세운 '증세 없는 복지확대'가 집권 이후 재원이라는 현실적 문제에 직면하면서 후퇴,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 이에 대한 여론의 실망이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4. 하토야마내각 당시 후텐마 미군기지의 현외 혹은 국외 이전이라는 공약의 표류. 오키나와, 미국, 연립파트너인 사민당과 합의 모두에서 실패하면서 집권 초기의 지지율이 급락하는 사태를 맞이하였고, 미일관계는 악화되었으며, 사민당의 연립내각 이탈로 중의원에서 3분의 2의석을 잃었다. 무엇보다 민주당의 약점으로 생각되었던 안보 및 외교 정책에 대한 불안을 야기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치명적이었다.

 5. 2010년의 센카쿠 어선충돌사건과 2012년의 센카쿠 국유화 사태에 있어서의 미숙한 대응.

 6. 동일본대지진과 세계적 경기후퇴라는 예상치 못한 사태와 이에 따른 재정적자 확대.

 7. "자민당 노다파"라 불리는 노다 요시히코가 수상이 되면서, 소비세 인상, TPP 협상 참가, 미일관계 중시, 관료 의존, 원전 재가동 등의 정책을 추진하며 자민당과의 차별화 실패.

 8. 친오자와파와 반오자와파로 대표되는 계파간 갈등과 여기에 중첩되는 당정갈등. 이는 오자와 이치로의 분당으로 이어졌다.

 9. 오자와, 하토야마 등 정권 주요인물들의 정치자금 스캔들.

 단일사례라서 변수가 너무 많다. 위의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발현한 결과, 민주당정권은 붕괴할 수바에 없었던 것이다. 한국의 18대 대선에 대한 보고서 <18, 그리고 19>를 읽었을 때도 느꼈지만, 실패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일본 민주당은 마키아벨리가 말한 비르투(virtu, 역량)가 부족했다고밖에 할 수 없다.
 
 현재 여당인 자민당, 공명당은 중의원에서는 3분의 2를, 참의원에서는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반면, 야당은 사분오열되어 민주당, 유신회, 모두당, 묶음당, 생활당, 사민당, 공산당, 신당개혁, 차세대당 등 9개의 야당이 난립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당의 폭주를 제어할 세력이 없기에 아베내각의 승승장구가 계속되고 있다. 이것이 민주당정권 3년3개월이 낳은 결과라고 생각하면 씁쓸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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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민주당정권의 성공과 실패 SNU일본연구총서 6
박철희 외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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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중의원 480의석 중 308의석을 차지하며 탄생한 일본 민주당정권은 한국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지지율 하락을 거듭한 결과, 3년 3개월만인 2012년 총선에서는 불과 57석밖에 차지하지 못하는 참패를 거두며 물러났다. 그 뒤를 이어 탄생한 것이 자민당의 아베 신조 내각으로, 우경화 행보를 보이며 한일관계 역시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본 국내외의 기대를 모으며 탄생한 일본의 민주당정권은 왜 그 모양이 되고 말았을까?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가 중심이 되어 6명의 국내학자들이 쓴 6편의 논문을 모은 책이 바로 <일본 민주당정권의 성공과 실패>다. 사실 정권교체에 성공했다는 사실 외에 민주당정권이 '성공'한 게 있는지는 책을 읽고 나서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민주당정권의 간략한 역사와 대외정책에 대해서 짧으면서도 잘 분석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분석은 한일관계에 대해 분석한 제6장이다. 여기서는 민주당정권 초기(하토야마, 간내각)에서의 한일관계의 우호적 전환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미일동맹과 아시아와의 공생을 동시에 추진한 간내각의 외교정책을 자민당정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외교기조라며 칰켜세운다. 그러나 노다내각은 미국과의 관계를 아시아와의 관계보다 중시하는 자민당적 외교방식으로 회귀하며 한일관계가 악화되었다.

 한편 저자(최희식 교수)는 이명박 전대통령의 독도방문 등 한국의 과민반응 또한 한일관계를 악화시킨 원흉으로 꼽고 있다.

 한일관계를 중시하며 '뼛속까지 친일파'라 야유받던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민주당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자국 영토 수호의지를 명확히 보여준 이웃 나라 대통령의 모습 속에 권력 변동기에 직면한 중국 지도부는 센카쿠 문제에 강경하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일본 정부 또한 흥분하며 냉정함을 잃어 갔다. '정치 실패자'로 낙인된 극우적 성향의 아베, 제3의 극을 표방하며 등장한 일본 유신회가 부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준 것이다. (292)

 그렇다. 청와대 요직에 계셨고 일본통으로 잘 알려진 어떤 분이 아베가 수상이 된 것은 이명박 전대통령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걸 들은 적 있다. 2012년 자민당 총재선이 있을 무렵, 아베를 자민당 총재로서는 큰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명박 전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자, 자민당 내의 우익적 조류가 부상하면서 아베가 자민당 총재가 되었고, 총선에 승리하면서 수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한일관계, 중일관계가 민주당정권 말기에 그 정도로 악화되지 않았더라면, 자민당에서도 보다 온건한 인물이 총재, 수상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일부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2년 이명박정부와 노다정부 사이에 위안부문제가 해결 직전까지 갔었다고 한다.(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2806449&cloc=olink|article|default) 물론 2012년에는 양국정부가 사실상 레임덕상태에 빠져 있었고, 각각 국내의 반대파로부터 굴욕외교라는 비판을 받고 있었기에, 그러한 합의가 실질적인 해결을 가져왔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만약 2012년에 총리의 사과로 합의를 도출했다면, 그 이후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들이 눈을 감으실 때 여한이 없으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아베정권의 급격한 우경화를 보면, 민주당정권 시절 한일관계를 보다 진척시키지 못했던 것은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한 눈에 알 수 있는 다소 지엽적인 오기 두 가지가 신경쓰였다. 먼저 민주당정권과 자민당정권의 지지율을 비교하면서 나온 대목

 이를 기존 자민당정권의 역대 내각과 비교해 보면, 가장 지지율이 높았던 '[호소카와 68%→고이즈미 50%→가이후 및 하타 47%]'에는 크게 못 미치나, '[무라야마 내각 37%→오부치 내각 37%]'와 거의 흡사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134)

 호소카와와 무라야마내각도 "자민당 정권의 역대 내각"으로 분류하고 있는 것처럼 이해된다. 무라야마 도미이치는 사회당이었지만, 자민당과의 연립내각이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호소카와내각은 비자민비공산 8개정당의 연립정권이었다.

 또 하나. 민주당의 역사에 대해 논하는 대목이다.

 1993년 하토야마 유키오, 간 나오토, 오카다 가츠야 등이 자민당을 이탈하였다. (161)

 간 나오토는 사회시민연합 소속으로 당선된 이후, 현재까지 자민당 당적을 가진 적이 없고, 1993년 당시에는 사회민주연합 소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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