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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핸드 타임 -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최후 러시아 현대문학 시리즈 1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하은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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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레닌>(2003)이라는 독일 영화가 있다. 1989년 베를린의 벽이 무너질 당시, 혼수상태에 빠진 주인공의 어머니가 6개월만에 깨어나는데, 열혈 공산당원이었던 어머니에게 차마 동독이 망하고 통일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할 수 없었던 주인공은 어머니에게 아직 동독이 망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는 코미디 영화다. 통일 직후의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풍자하고 있는데, 동독 시절 어머니가 즐겨먹던 통조림을 찾기 위해(통일 이후에는 브랜드가 없어져 구하기 힘들었던 듯하다) 쓰레기장을 뒤지던 주인공을 보고 이웃집 할아버지가 혀를 차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고, 이제는 청년이 쓰레기장까지 뒤지네. 동독시절에 이런 일은 없었는데..."

 

동독(독일민주공화국)이 성립된 것은 기껏해야 1949년이지만, 소련은 1917년부터 1991년까지 74년간 존속했다. 소련이 멸망했을 때, 거의 모든 사람들은 소련 이전의 러시아를 기억하지 못했고, 소련이 그들의 조국이었다. <굿바이, 레닌>의 주인공 어머니는 영화 마지막에 숨을 거두지만, 많은 소련인들은 1991년 이후에도 러시아인(혹은 벨라루시인, 아르메니아인, 타지크인, 체첸인 등등)으로서 삶을 이어가야만 했다. 실제로 소련인들에게 소련의 붕괴는 세상의 종말과도 같은 충격이었다고 한다. 이 책의 인터뷰이 중 한 명인 마르가리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런데 갑자기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어요. 그냥, 없어진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을 내려다 보니 어느새 다른 국가의 국기가 걸려 있었던 거예요.다른 나라에서 살게 된 거죠. 남의 나라에서요.(140) 

 

1985년 고르바초프의 등장으로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의 도입으로 소련은 개방적인 분위기로 변한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보수파는 국가비상사태위원회를 조직하여 1991년 쿠데타를 일으켜 고르바초프를 감금하는데, 이에 반항한 수십만의 소련 시민들이 모스크바의 의사당로 몰려들었고, 쿠데타는 실패로 끝난다. 이를 계기로 소련은 해체되고, 러시아연방 등으로 분열된 것이다.


그러나 10년뒤,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쿠데타가 성공했으면 어땠을 거냐는 질문에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랬다면 위대한 나라를 보존했겠지요."

"공산당이 아직 정권을 잡고 있는 중국을 한번 보세요. 지금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에요."

"조국을 배신한 대가로 고르바초프와 옐친을 심판했겠죠."(중략)

"전 그날 의사당에 모였던 사람들 중 하나에요. 지금 느끼는 기분은 '속았다'에요. (35, 36)


소련의 전체주의 체제가 붕괴한 이후는 결코 고르바초프를 지키기 위해 들고 일어섰던 사람들이 생각하던 것 같은 장밋빛 유토피아가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일부 사람들이 부호가 되어 빈부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어떤 사람은 소련 붕괴 이후의 90년대를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끔찍한 시절이었거든요. 머릿속에서 180도 회전이 일어났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변화를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정신줄을 놓은 사람들도 허다했어요. 정신병원이 환자들로 북적거렸죠. (중략) 거리에선 총소리가 줄곧 들렸어요.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갔고, 매일 여기저기서 싸움이 일어났죠. 뭔가를 더 가져 가려고,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가져야 했기 때문에 싸움이 일어났던 거예요. 어떤 사람은 파산했고, 어떤 사람은 감옥에 갔어요. (40)


 

알렉시예비치는 소련 붕괴 후 20여년간 정신없이 뛰어들어 흩어지는 수많은 이름없는 사람들의 온갖 목소리들을 하나하나 주워담았다.


"옐친과 그 일당들이 우리의 모든 것을 훔쳐갔소! '술을 마셔요! 부자 되세요!' 언제쯤 이 모든 것이 끝나려는지....."(중략)

"나 같으면 저 빌어먹을 부르주아들을 탱크로 싹 밀어버릴 텐데!"

"공산주의는 유대인 칼 마르크스가 만들어낸 거야."

"우리를 구원해줄 유일한 사람은 스탈린 동지뿐이야. 이틀만 스탈린이 되돌아와서 모두를 쏴 죽였다면.... 그런 뒤에 얼마든지 다시 흙으로 돌아가 누워도 되잖아."

"주여, 주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제 모든 성인을 섬길 거에요!"

"이 스탈린의 개들아! 너희 손에 묻은 피가 채 식지도 않았다, 이놈들아! 황제 일족은 왜 죽인 거냐, 이 나쁜 놈들아! 네놈들은 아이들마저 잔인하게 도륙했잖아!"

"위대한 스탈린 없이 위대한 러시아 를 만들 수는 없어." (46, 47)


그 과정에서 스탈린체제와 제2차세계대전부터 고르바초프의 등장과 소련 붕괴, 그 이후에 대한 사람들의 갖가지 기억들을 모은다. 그러한 평범한 사람들의 기억들은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보완하기도 하며 국민들이 가진 하나의 단일한 서사를 해체시킨다. 예를 들어 히틀러와 싸워 이긴 소련의 위대한 영웅들의 전쟁으로 기억되는 제2차세계대전에 대해 다른 목소리들, 다른 기억들을 복원해낸다. 나치 독일의 학살로부터 도망쳐 빨치산에 참가했지만 오히려 소련 빨치산들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았던 유대인의 기억, 소련의 통치보다 독일 점령군의 통치가 나았다며 독일 앞잡이와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어느 여인의 기억, 전쟁이 끝난 후 먹을 것을 구걸하던 독일군 포로에 관한 기억, 스파이로 몰려 수용소로 보내진 어느 아이의 기억... 수많은 작은 목소리들을 건져 올림으로써 평범한 서민들의 작은 이야기들을 완성해냈다.

 


제2차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전쟁세대는 소련 붕괴 이후의 변화가 익숙치 않고, 신러시아를 당연시하는 젊은 세대에 대해 다음과 같은 불만을 토로한다.


"우리 손자들이었다면 아마 '위대한 조국전쟁'(제2차세계대전을 가리킴)에서 패했을 거야. 요새 애들에겐 사상도 원대한 포부도 없어." (중략)

"내가 아이들에게 이런 얘기를 해주면 애들은 옛날이야기 취급을 해버리지. 그러곤 이런 질문들을 해. '왜 군인들이 연대 깃발을 사수하기 위해 죽었던 거예요? 다시 새로운 깃발을 만들면 됐잖아요.' 날 보고 대체 누굴 위해 전쟁을 하고 사람을 죽였느냐고 묻는다니까. '스탈린을 위해서 하셨어요? ' 어이구, 이 철없는 것들아! 너희들을 위해서다, 너희들!

"항복을 하고 독일놈들의 군화를 핥았어야 했나 봐......(262)


청년세대는 노년세대의 성과를 이해하지 못하고 노년세대는 그런 청년세대에 울분을 토하는 모습은 우리나라의 세대갈등과도 비슷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소련시절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고, 스탈린을 찬양하는 인터뷰이들 중 몇 명은 스탈린 체제 당시에 자신의 가족, 혹은 자기자신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수용소에 수감된 적이 있다는 것이다. 스탈린 시절 부인의 가족이 폴란드에 남았다는 이유로 잡혀가 감옥에 수감되었던 바실리 노인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영국 스파이, 일본 스파이들, 가방 끈이 짧았던 어떤 시골 영감은 마구간을 방화했다는 이유로 잡혀 들어왔고, 어떤 대학생은 유머를 잘못 말해서 잡혀 왔었지. (중략) 그 유머 때문에 학생은 '일체의 연락이 불가능한 수용소 10년형'을 선고받았어. 스탈린과 닮았다는 이유로 체포된 운전수도 있었어. (246)


바실리 노인은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명예회복을 위해 전쟁에 참가했고, 당원자격을 되찾았다. 그러나 그의 부인은 이미 죽은 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옐친의 러시아를 혐오했으며, "난 공산주의자로 죽고 싶어. 그게 내 마지막 소원이야"(256)라고 말했고, 실제로 자신의 유산인 아파트를 공산당에게 남기고 죽었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일종의 스톡홀름증후군 같은 것일까? 한국에서도 청년세대가 박정희를 비판하면 "그 시대에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라고 역정을 내는 노인들이 있다고 하는데, 소련과 스탈린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비슷한 심리인 것일까?


전쟁, 수용소, 감시와 밀고, 빈곤, 혁명, 학살, 테러, 이민, 사랑, 자살... 이 모든 것들을 경험한 러시아인들은 참 불행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항상 고통에 대해서 말을 하죠. (중략) 우리들은 수용소에서 복역했고, 전쟁을 치를 때는 시체로 천지를 덮었어요. 맨손으로 체르노빌에서 핵연료를 퍼냈지요. 그랬는데 지금은 무너진 사회주의 폐허 위에 앉아 있어요. (중략) 우리는 우리만의 언어가 있어요, 바로 고통의 언어에요. (52)


러시아인들만큼 고통과 절망을 사랑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 또 있을까? 아니다. 이 책에 묘사된 고통과 절망의 이야기들은 전세계 어느 곳에서나 모습은 약간씩 바뀌어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보편적인 것들이다.


예를 들어 나는 이 책의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으며 한국을 떠올렸다.


대중 사이에서 소련에 대한 동경이 일어났고, 스탈린 숭배자들도 나타났다. 19세에서 30세까지 젊은이들의 절반 이상이 스탈린을 '가장 위대한 정치가'로 꼽고 있다. (중략)

구시대적 발상들, 다름 아닌 '위대한 제국', '철의 손', '러시아만의 고유한 길' 등의 사상들이 부활하고 있다. 소련의 국가가 다시 불리고, '나쉬'라는 이름이로 불리는 콤소몰도 활동하고 있다. 공산당을 재현한 것 같은 집권당이 버젓이 활동하고 있다. 대통령의 권한은 공산당 총서기장의 절대적 권력과 같다. 그리고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정교회가 대체하고 있다. (19)


시민혁명으로 독재체제를 무너뜨렸으나 그 결과 찾아온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빈부격차에 실망하고 과거의 독재를 그리워하는 나라, 역시 이 나라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위대했던 시절의 독재자를 닮은 강한 지도자를 원하는 나라, 과거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극단적 대립이 계속되는 나라, 자신의 나라에 희망을 느끼지 못해 다른 나라로 이민하고 싶어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은 혐오하는 나라, 국가를 위한 전쟁에 나서는 영웅들은 찬양하면서도 딸의 의심스러운 자살에 대한 진실을 요구하는 어머니를 경찰이 잡아가는 나라. 물론 구소련이나 러시아보다는 우리나라가 훨씬 좋은 나라임은 틀림없지만, 어쩐지 우리나라도 러시아와 같은 모순 가득한 문제들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가지 번역상의 문제가 눈에 띈다. 일단 "공산당 매니페스토(정권 공약)"(406)라고 되어 있는 단어는 문맥상 마르크스, 엥겔스의 <공산당선언>이 맞을 듯 싶다. "별장"이라고 번역하면 될 단어를 굳이 "다차"라고 러시아어 단어로 표기하는 것 또한 납득이 되지 않았다. 러시아문화에 관한 역자의 설명이 필요한 부분도 대부분 넘어간다. "아는 지인"(452)이라는 잘못된 표현도 또한 나온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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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툽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황중환 그림 / 자음과모음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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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파울로 코엘료의 우화 179편을 모은 우화집이다.


삶의 지혜를 모은 책이라고 하는데, 신이 등장하는 내용이 너무 많다. 가치있는 삶을 살자는 것이 대략적인 주제인 것 같은데, 힐링과 자기계발을 버무린 종교에세이 느낌이 난다. 내가 속세의 때가 많이 묻어서 그런지 뜬구름 잡는 소리만 늘어놓은 책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글에 곁들어진 황중환의 일러스트는 좋은데 말이다.


예를 들어 144번 우화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곡예사가 광장 한가운데에 꼼짝 않고 서 있다가, 갑자기 오렌지 세 개를 손에 쥐더니 공중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구경하면서 그의 훌륭한 솜씨와 우아한 몸짓에 감탄했다. (중략)

"우리네 인생도 저 모습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오렌지 하나가 공중에 떠 있는 동안 양손에 오렌지 한 개씩을 쥐고 있죠.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세 번째 오렌지입니다. 아무리 솜씨 좋고 능숙하게 던져봐야 소용없어요. 오렌지는 자기 고유의 길을 따라가니까요. 저 곡예사처럼 우리도 세상 속으로 우리의 꿈을 던지지만, 그 꿈을 마음대로 통제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꿈을 신의 뜻에 맡기고, 그 꿈이 자신의 길을 위엄 있게 완수하는지, 때가 되었을 때 우리의 뜻대로 실현될지 여쭈어야 합니다." (255)


이 글을 읽고 무슨 소리인지 머릿속에 물음표만 떠오른다. 비유의 핵심을 이루는 "곡예사의 오렌지=우리의 꿈=신의 뜻에 맡겨야 함"이라는 논리구조가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책에 나오는 내용 대부분이 이렇게 납득이 안 가는 비유들만 실려 있어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물론 가슴에 와 닿는 이야기도 있긴 있었다.


제자가 스승에게 말했다.

"저는 수년 동안 진리를 깨닫고자 노력했습니다. 이제 곧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다음 단계는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스승이 물었다.

"너는 무엇을 해서 생활비를 버느냐?"

"아직 생활비를 벌어본 적이 없습니다. 부모님이 저를 부양하시죠. 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스승이 말했다.

"다음 단계는 삼십초 동안 해를 쳐다보는 것이다."

제자는 스승님 말대로 했다.

이윽고 스승은 제자에게 주위의 모습을 묘사해보라고 했다.

"햇빛 때문에 눈이 부셔 주위가 보이지 않습니다."

스승이 말했다.

"진리만 추구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은 절대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해만 계속 쳐다보는 사람이 결국엔 눈이 멀 듯이 말이다." (26,27)


이 이야기를 읽고 생활비도 못 버는 대학원생인 내 처지를 두고 하는 이야기 같아서 처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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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그가 나를 떠났다 - 2005 페미나상 상 수상작
레지스 조프레 지음, 백선희 옮김 / 푸른숲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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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그가 나를 떠났다>라는 한국어판의 낚시성 제목 때문에 이 책을 손에 든 사람이 느낀 감정은 "뭐, 이런 소설이 다 있냐"라는 것이다. 제목에서 풍겨나오는 프랑스소설로 서정적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실험주의적 포스트모던 소설의 분위기에 당황하게 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스물아홉, 그가 나를 떠났다>라는 제목은 한국어판의 제목이고, 프랑스 원제는 <정신병동>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부조리극의 성격을 띄는데, 여주인공 지젤에게 수도꼭지를 갈아주겠다고 6년동안 사귄 남자친구 다미앙의 아버지가 찾아와 대신 이별을 전혀면서 시작된다. 다미앙의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끊임없이 횡설수설을 늘어놓는다. 말 그대로 의식의 흐름을 따르는 다미앙의 횡설수설은 어찌 보면 아포리즘 같기도 하고 상황과 맞지 않아 일종의 유머를 느끼게 만든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정당방위는 아니지. 그 애가 가해자니까 모든 살인자와 마찬가지로 대가를 치러야만 할 거야. 걱정 마라. 시간이 네 고통을 덜어줄 테니. 반면 매번 네가 웃는 얼굴로 또는 핏발 선 눈으로 입꼬리에는 조소를 머금고 하염없이 흘린 눈물로 패인 듯 홀쭉하고 창백한 뺨의 슬픈 얼굴을 하고 그 애의 기억을 스칠 때마다 그 애의 고통은 한층 더 생생해질 거다. 결국 그 애가 너보다 괴로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애의 고통이 더 길어질 것은 분명해. (69)

난 그저 그 애의 말을 전하러 온 것뿐이다. 그 애는 나 대신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를 보낼 수도 있었겠지. 그런데도 날 선택했어. 왜냐하면 우리는 아주 잘 통하거든. 그 애는 나를 속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처럼, 일종의 분신처럼 여기지. 당연히 같은 가문의 같은 핏줄을 타고났으니까. 게다가 이런 부탁은 나로서는 나쁘지 않은 소일거리지. 칠 년 전에 우리는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적이 있어. 그 애가 자기에게 생부가 따로 있을 거라고 상상했거든. (70,71)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지젤은 다미앙의 집에 거듭 전화를 걸지만, 다음과 같은, 다미앙의 어머니로부터 마찬가지로 맥락 없고 황당한 악담을 듣는다.

우리는 네가 사라져버렸으면 한다. 어서 꺼져버려. 유적이나 호기심을 끌 만한 것도 없고 기후도 끔찍한 낯선 나라로 가서 살라고. 다미앙이 휴가 때라도 결코 찾아갈 일이 없다고 확신이 드는 그런 곳으로 말이야.
절대로 자살할 생각은 하지 마라. 너도 알다시피 다미앙은 죽음을 좋아하지 않아. 그 애는 충격을 받을 테고, 그리고 네 어머니가 찾아와서 그 애에게 비난을 퍼부을 게 뻔하니까. 그러면 우리 애가 몇 주 동안이나 괴로워할 거야.
넌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자살 기도를 할 테지 하지만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우리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망치는 사람들을 지독히 경멸한다고 말해두고 싶구나. 삶이란 모든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가서는 너무도 잔인한 방식으로 잃고 마는 소중한 물품이야. (91, 92)

이후로도 소설 내내 다미앙의 어머니는 아들의 헤어진 여자친구 지젤을 괴롭힌다. 이후의 소설 줄거리는 계속 이 모양이어서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소설이 형식면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실험주의를 따르고 있다면, 소설의 내용면에서의 주제는 가정 내에서 지나치게 비대해진 어머니의 존재로 인해 괴로워하는 가정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다미앙은 여자친구에게 제대로 이별도 고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하고 주체적이지 못한 인간으로 그려진다. 다미앙의 아버지 또한 다미앙의 어머니에게 휘둘리고 억눌린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다. 아들의 여자친구를 못마땅하게 여겨 헤어지게 만든 것도 모자라, 거의 스토커 같은 행위로 지젤을 괴롭한다. 다미앙과 다미앙의 아버지는 다미앙의 어머니이 위세에 눌려 남성성을 거세당한 존재로 그려진다. 아들에게 지나치게 집착하고, 남편을 억압하여 가정을 불행에 빠뜨리는 어머니의 이야기는 한국 드라마 등에서도 자주 그려지는데, 실험주의적 기법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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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 시드니 걸어본다 7
박연준.장석주 지음 / 난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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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여름, 시드니에 갔었다. 시드니로 말하자면, 한국과 비슷한 곳이어서 시차가 한 시간밖에 나지 않지만, 위도는 정반대여서 계절이 정반대인 신기한 곳이다. 시드니에 가기 전에는 막연히 남쪽에 있으니 발리나 스리랑카처럼 따뜻한 남쪽 나라이리라 생각했지만, 시드니는 적도보다는 남극에 더 가까이에 위치해 있다. 덕분에 한국의 무더운 여름을 피해 피서를 잘 하고 왔던 기억이 있다.

시드니 체류기인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를 읽으며 서큘러 키, 조지 스트리트, 달링 하버, 본다이 비치, 팬케이크 온더 록스 등등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지명들이 머릿속에서 되살아났다. 알타이, 페루, 발리, 스리랑카, 치앙마이, 라오스처럼 내가 가 보지 못했던 곳들에 대해 읽던 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2016년 2월의 알라딘신간평가단 추천에세이로 선정된 책은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와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를 먼저 읽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더니 신기하게도 두 권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체류, 산책, 독서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와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한 달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의 체류를 다루고 있고, 한 곳에 오래 머물다 보니 가이드북에 나오는 관광지를 쫓아다니는 여행을 즐기기보다는 산책과 독서처럼 일상적인 행위가 책의 주된 내용을 이룬다.

예를 들어 저자 중 한 사람인 장석주는 걷기를 다음과 같이 예찬한다.

걷는 자들은 숲길이건 들길이건 해변을 끼고 있는 길이건 시내 한복판 길이건 상관없이 걸음을 뗄 때마다 그 길에서 자신이 몸으로 존재함, 즉 존재의 느낌을 돌려받는다. 걷기는 몸의 모든 감각들을 일깨운다. 걸을 때 오감 속에서 느낌들이 풍부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중략) 이것은 활력을 주는 해방과 자유의 느린 몸짓이며,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다. 걸으면 기분이 좋아지며 영문 모를 기쁨이 가득 차오른다. 두말할 것 없이 느릿느릿 걷는 일은 속도와 효율성을 섬기는 현대성에 맞서는 저항이다. (중략) 느림은 사람들이 눈이 시뻘개져서 매달리는 수익의 창출이나 효율성의 극대화, 그리고 현대적 삶의 필요들에 대한 무관심과 그것을 방기하는 행위에 속한다. (170)

생각해보면, <처음 보는 유목민 여행>과 이 책은 문학동네에서 내고 있는 에세이 '걸어본다' 시리즈의 하나이니, 걷기에 대한 예찬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한편 저자들이 시인이니만큼 시드니에서 책 읽는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또다른 저자인 박연준은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책은 펼쳐지고 넘겨지고 접히고 웅크린 채로, 쌓이거나 잊힌 채로, 읽히거나 방치된 채로, 가장 많은 시간은 '기다리면서' 낡아간다. 색이 바래고 미세하게 부풀어오르며 책 역시 '나이'를 갖게 된다. 우리와 같이 늙는다.
책도 저마다 운명, 혹은 팔자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오후엔 얇고 오래된 책 한 권을 들고 시티에 나가봐야겠다. 저 책의 운명에는 시드니를 걸어보는 일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55)

산책과 독서를 주제로 한 여행이라는 점에서는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와 비슷한데, 이 책의 특징은 바로 박연준과 장석주 두 저자가 시인 부부이며, 시드니 여행이 신혼여행이라는 점에 있다(이름만 봐서는 둘 다 남자 같은데 박연준이 여자다). 전반부는 박연준이, 후반부는 장석주가 담당하여 쓰고 있는데, 장석주의 파트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박연준 파트에는 JJ(책에서 박연준은 장석주를 JJ라고, 장석주는 박연준을 P라고 부른다)와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되풀이 나온다. 그래서 솔로가 읽기에는 시쳇말로 '오글거리는' 부분이 많아 괴롭다. 안 그래도 발렌타인 데이라서 괴로운데ㅠㅠ

시인이라서 그런지 글에 대한 시적 고민이 엿보인다. 예를 들어 장석주는 칫솔모에서 만물의 운명을 발견한다.

시드니에 도착한 지 보름이 지나갈 무렵 치약은 닳고 칫솔모는 끝이 뭉툭해진다. 양치질을 하려다가 닳은 칫솔모를 한참 바라본다. 만물은 그 시작에서부터 소멸이라는 소실점을 향해 달려간다. 한번 생겨나면 반드시 닳아지고 바스러지며 줄어들고 쪼개져서 (중략) 사라지는 게 만물의 운명이다. (중략) 시간은 안 보이지만 흔적조차 없는 게 아니다. (177)

기상천외한 발상에서 시인다움을 느끼게 된다. 시인이라서 '詩드니'인 것일까?

박연준은 한 편의 시로 시드니 여행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나도 그 시를 인용하고 끝마치겠다.

낯선 곳을 여행해보면 안다.
여행은 불편을 동반한 낯선 상황의 연속이라는 것을.
불안과 스트레스를 동반하며
그리 익숙함을 그리워하게 만든다는 것을.

돌아와보면 안다.
익숙할 때 즈음 그곳을 떠나왔음을.
이곳의 익숙함이 달콤하고 감동스럽게 느껴지지만
잠깐일 뿐이라는 것을.
조만간 권태에 빠져,
불편과 낯선 상황을 향해 달아나고 싶어할 것임을.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살 수 있다면 좋겠다.
서울을 서울 밖에서 바라보듯 거리를 두고,
돌아와서도 헤매야 한다. (100)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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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 - 한껏 게으르게, 온전히 쉬고 싶은 이들을 위한 체류 여행
김남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12월
평점 :
품절


'헬조선'이 괜히 헬조선이 아닌지라, 한국은 겨울엔 모스크바보다 더 춥고, 여름엔 카이로보다 더 덥다고 한다. 제발 덥거나 춥거나 한쪽만 했으면 좋겠다. 일 때문에 한국에 1년간 살던 미국인 친구는 한국 사람이나 음식에 대해서는 호감을 표했으나 한국의 날씨에 대해서는 "내 고향 텍사스에서는 50도 가까이 돼도 습기가 없어서 여기보다 덜 괴롭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뚜렷한 사계절(황사-더위-장마-추위)을 경험하고 귀국했다.

개인적으로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지만,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라서 추위에 괴로워하는 나날이 이어지다보니 차라리 열대의 남국으로 떠나고 싶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에 나오는 여행지는 발리, 스리랑카, 치앙마이, 라오스, 네 곳이다. 모두 가 본 적 없는 곳들이다.

책 속에 나오는 아누라다푸라, 폴로나루와, 누와라엘리야 등의 이름만 들어도 낯선 장소들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 책은 여느 여행에세이와는 한결 달랐다. 이 책의 제목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살아보기'다. 가이드북에 나오는 관광지를 일일이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3주 내지 석달간 말 그대로 '살아보는' 저자의 여행은 관광과 이주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체류에 있다. 발리 현지의 나염 원피스를 입고, 발리어를 한두마디 배워 인도네시아 현지 전통 요리를 배우는 저자의 여행방식은 현지인들의 삶 그 자체에 스며드는 것이었다. 유명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청춘>이 흥행하자 라오스에 한국인 관광객이 몰려들어 현지의 삶이 오염되는 것을 저자가 안타까워하는 부분을 보면 저자가 현지의 생활을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방비엥이 다시 옜 모습을 찾아가는 대신 식당과 게스트하우스 주인들이 비즈니스를 걱정할 무렵 한국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2014년 가을, TV에서 <꽃보다 청춘>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된 직후부터였다. 지금 방비엥의 주 수입원은 한국인 관광객이다. 이렇게 밀려오는 한국인 관광객들의 여행 방식은 비슷하다. "이거 칠봉이가 맛있다고 했던 거야. 먹어보자. "<꽃청춘>의 걔네들이 머물렀던 숙소에서 자고 싶은데 방이 없대." "블루라군은 꼭 가야 해. 걔들이 점프한 데잖아." 라오스에서 실제 내 귀에 들려온 대화들이다. 먹고, 자고, 움직이는 모든 것을 방송에 나왔던 대로 한다. TV가 여행자를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고 있다. 이제 귀찮은 선택을 할 필요가 없어졌는지도 모른다. (중략)
라오스를 여행하면서 자기만의 라오스를 찾기보다는 <꽃보다 청춘>의 라오스를 소비할 뿐이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그 집단적인 소비 행위에 타인들을 위한 배려가 끼어들 틈은 없다. (374, 375)

유명 관광지들을 다니는 대신에 저자가 즐기는 여행은 산책과 독서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산책에 대한 예찬을 논한다.

인류의 위대한 인물 중에는 산책이 취미이자 특기였던 이들이 많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자면 소요학파는 아리스토텔레스, '방랑에 병들어 꿈은 마른 벌판을 헤매이누나'라고 노래했던 하이쿠 시인 바쇼,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쓴 장 자크 루소, 너무 많이 걸어 다리를 잘라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스스로 의심할 만큼 오래 걸었던 방랑시인 랭보, 파리의 아케이드를 걸어 다니며 사색했던 발터 벤야민,  월든 호숫가에 집을 짓고 살며 산책을 즐겼던 소로. 좋아하는 호숫가를 산책하다 감기에 걸려 세상을 뜬 시인 워즈워스도 빼놓을 수 없다. 그들에게 걷기나 산책은 존재의 방식이자 사색의 수단이다. (62, 63)

나 역시 성격이 게울러서인지 여행지에 가서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산책이나 독서를 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히키코모리라서 한국에서도 집-학교-집을 반복하던 나인데, 여행을 가서까지 관광지를 열심히 찾아다니는 것보다는 산책이나 하고 그저 책이나 읽는 것이 더 편하다. 치앙마이의 도서관에는 한글로 된 책이 1천 권이나 있다고 한다. 저자처럼 치앙마이에서 느긋하게 몇 주일간 체류하면서 도서관이나 오고 가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생각해보면 여행과 책은 서로 닮아 있다. 질문을 던짐으로써 일상과 그 일상을 둘러싼 세계에 균열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그렇게 가장 온순한 방법으로 자신이 쌓아온 세계를 부수고 더 넓은 세계를 열어준다는 점에서. (254)

그렇게 말하면 "왜 굳이 비싼 돈 써서 외국에 나가 산책이나 하고, 책을 읽는가? 그럴 거면 한국에서 하지"라고 묻는 사람이 있을 법 하다. 저자가, 그리고 내가 여행에서 바라는 것은 한국의 서울에서는 쉽사리 얻을 수 없는 여유다. 발리, 스리랑카, 치앙마이, 라오스에서는 번잡한 한국의 삶과는 다른 느린 삶이 있다고 한다.

사철 꽃이 피는 곳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산책도 하면서 한껏 게을러지고 싶었다. 딱히 만날 사람도 없고, 꼭 사고 싶은 물건도 없고, 꼭 봐야만 하는 것도 없는 곳. 덜 쓰고, 덜 가지고, 덜 만남으로써 느긋해지고 싶었다. 여행이 주는 긴장감은 덜고, 일상이 주는 지루함은 벗어나 여행과 일상 사이에 머무를 수는 없는 걸까. (5)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 여행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이 아닐까 싶다. 치앙마이의 게스트하우스를 배경으로 하는 일본 영화로 <POOL>이라는 작품이 있다고 한다. 나중에 치앙마이에 가게 된다면, 한 번 봐야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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