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가기 위한 나츠메 소세키의 진통이 느껴진다. 그러나 결코 (마음)에 뒤지지 않는다.가슴 속을 훑고 지나가는 처연함 속에서도 언뜩 비치는 섬뜩함은 소세키만의 전매특허.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는 다리는 없다는 백 년 전의 이 절망적인 선언에 왜 위안을 받는 걸까. 작가로서의 삶이 고작 10년, 고통스러웠을 그의 10년간이 우리에겐 축복과 위안이어라...
어쩔 수 없는 필연에 의해 언젠가부터 황정은은 사회 속의 개인에 대해 쓰기 시작했고, 이제는 역사를 관통하는 개인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누군가는 그가 거장의 길을 가고 있다고 평가할 지 모르겠다. 그만큼의 요건을 충분히 갖추었음을 이 책이 입증하고 있으니까...그러나 나는 예전의 황정은에게 더 많은 애착을 갖는다. 황정은풍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던 시기가 있었다. 최근 몇 년간 한국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이 그의 내면을 변화시켰고 그 단어를 앗아갔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황정은의 세계는 아직 조금은 남아있다. 그건 황정은만의 고유한 것이라 쉽게 사라지지는 않는다. 때때로 나는 그 세계에 오래 머물고 싶어 한다. 이 세계 보다 그 세계가 더 친근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늘 그렇지만 이번 책도 아껴 읽었음에도 너무 빨리 끝났다. 늘 그렇듯이 저녁 나절, 하릴없이 하늘을 바라보다 황정은, 기다림에 지쳐...라고 혼자 중얼거리는 밑도 끝도 없는 그리움의 시간이 다시 시작된다.
심시선이 떨군 나뭇가지에서 뻗어나 굵직한 기둥을 이룬 이 믿음직한 나무를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처음에는 그다지 친하지도 감정 이입되지도 않았는데 헤어지려고 하니 아쉬운 친구 같은 느낌이다. 유쾌하기도 마음 아프기도 했다. 다행히 재능 넘치는 작가하고는 나혼서만 다음 기약을 해두었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