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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어떻게 유럽을 지배하는가 - 브렉시트와 EU 권력의 재편성
폴 레버 지음, 이영래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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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U의 역사와 독일

헝가리 출신의 경제학자 벨라 발라사(Béla Balassa)는 경제통합의 단계로 유럽통합 과정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관세를 철폐하고 생산된 물품이 유통 거래되는데 이용되는 차별이 제거된 자유무역 단계이다. 서유럽 중심의 유럽통합의 목적은 전쟁을 야기한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경제성장을 이루며 소련의 공산주의를 견제하는 것에 있었다. 미국은 마샬플랜으로 서유럽의 재건을 목표로 했고, NATO와 같은 군사적 조직화가 이뤄졌다. 그 과정에서 프랑스 외무장관 슈만은 독일과 프랑스 사이의 갈등 해결을 위해 그리고 독일은 전쟁 이후 전범국에서 탈피하고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프랑스와 협력하여 독일의 석탄과 철강을 공동관리하자는 안을 마련했다. 1952년 파리조약을 통해서 ECSC가 탄생했고, 이후 EEC, Euratom1957년 로마 조약을 통해 설립되었다.

두 번째 단계는 관세동맹이다. 관세동맹은 공동의 대외통상정책을 의미하며 대외적으로 공동의 관세를 결정하는 기구가 필요하다. FTA는 계약 국가 사이에서만 관세를 폐지하지만, 관세동맹은 조약 가입국 모두가 국외자들과 공동관세를 시행한다는 차이를 갖는다. 1967ECSCEEC 그리고 Euratom을 합병하고 EC를 설립하면서 서유럽 대륙국가를 중심으로 공동시장, 공동농업정책을 추진했다. 이후 정치적으로 안정된 국가로 이뤄진 EC는 대외 통상정책을 시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빠른 속도로 통합되기 시작했다.

세 번째 단계는 공동시장이다. 이 단계에서는 생산요소가 조직 내 국가끼리 공유되고 경제활동과 이동의 자유가 보장된다. 1985년 유럽은 솅겐 조약을 체결하여 통합국가 간 국경철폐를 선언했다. 그리고 1987년 헤이그에서 단일유럽의정서(SEA)를 체결하여 시장경제를 활성화했다. 이러한 경제통합의 성과를 바탕으로 단일경제통화권이 추진됐고, 1991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으로 EU가 출범한 이후 공동시장이 급진적으로 추진됐다. 그 결과 공동외교안보정책, 경제와 화폐동맹, 유럽사법내부정책이라는 유럽공동체의 3가지 기틀을 마련하여 EU의 안정적인 체제를 마련했다. 경제적 동맹체인 유로랜드가 이때부터 확립되기 시작했다.

네 번째 단계는 경제동맹이다. 경제동맹 상황에서는 단일 화폐를 사용하여 재정, 금융정책의 통합이 이뤄진다. 이 단계에서 경제주권의 상징인 화폐는 초국가적 조직에게 이양되었다. 1999년 유럽경제통화동맹(EMU)이 공식 출범하게 되었고, 2002년부터 유로만을 법적통화로 사용하게 된다. 현재 유로화 사용국가는 19개 국가에 달한다. 현재 유럽통합은 경제동맹 차원에 머물러 있다. 아직 재정정책에 있어서 금리만 통합되었고 나머지 부분들(세금, 임금)에 대한 완전한 통합이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정치, 군사적 통합도 어려운 숙제로 남아있다.

마지막 단계는 전면적 경제통합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명실상부한 초국가적 단일 정부 형태의 정치적 단일체가 완성된다. 이 단계에서는 정치, 군사적 통합체가 가능해지고 유럽 헌법을 제정하여 EU에 독자적인 법인격을 부여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현재 EU는 이 단계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유럽통합과 독일의 관계는 절대 분리될 수 없다. 초기 유럽통합의 목적은 유럽의 안정을 유지하여 미국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소련의 공산주의의 전방으로써 독일을 이용해 봉쇄하는 것이었다. 독일은 미국의 도움으로 재군사화가 가능해졌으며, 정치적, 경제적으로 정상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또한, 소련의 붕괴로 경제적으로 약소국인 동유럽 국가들이 들어오자 독일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해졌다. 하지만 통합을 방해하는 요소들은 산적해 있다. 언어의 다양성, 규모가 큰 회원국들의 대화 지배, 그리고 초국가성과 주권성의 공존은 유럽 통합을 방해하는 대표적인 요소들이다. 외교안보, 사회, 제정 정책들에 대한 통합은 실패했다. 그리고 난민유입 문제로 인해 유럽 전역은 극우주의에 물들고 있으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국은 브렉시트로 EU를 탈퇴하겠다고 선언했다. 영국의 트럼프라 불리는 보리스 존슨이 총리로 선출됨에 따라 브렉시트는 노딜 브렉시트로 향하는 것 같다. 유럽 통합의 운명은 이제 전범국에서 경제 대국으로 탈바꿈한 독일이 쥐고 있다. 하지만 독일은 EU통합에 적극적인가? 그들은 전면적 경제통합을 선호하는가? 독일은 어떻게 유럽을 지배하는가?

 

2. 이미 배가 부른 독일은 어떻게 유럽을 지배하는가

독일은 어떻게 유럽을 지배하는가의 저자 폴 레버는 유럽이 독일어를 쓰고 있다라고 말한 폴커 카우더의 말을 인용하며 EU 내의 독일의 위상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EU는 독일의 이익에 부합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유럽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다. 독일의 부활은 유럽통합과정을 통해서 가능했다. EU의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그것은 세계 1, 2차 대전에 대한 반성과 함께 독일의 위협을 해소하고자 하는 다른 유럽국가와 주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독일의 이해관계가 합치되어 이뤄진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독일의 1대 총리인 아데나워는 서독의 주권을 회복해 민주주의적 가치를 재건하고, 전승국들이 체결한 서독 점령조례를 폐지하고자 했다. 또한, 그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독일 경제를 재건해야만 했다. 미국의 마샬플랜과 유럽통합 과정은 서독의 필요를 충족시켰다. 그 결과 서독은 2차 세계대전이 종전한 뒤 불과 10년 만에 주권을 회복했고, NATO 가입을 통해 점령조례가 폐지되고 군사적 재무장마저 허용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독일은 제조업 중심 산업을 육성하여 유럽 내 경제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현대 독일은 GDP399백만 달러로 세계 4위이며, EU국가 중 가장 높은 경제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2002년부터 도입된 유로화는 독일에 호기로 작동했다. 화폐 가치가 높은 독일의 마르크화는 그보다 가치가 떨어진 유로로 바뀌면서 독일은 수출이 용이해졌다. 유로는 수출주도형 경제국가에게 유리했지만 수입국에게는 불리한 심각한 역내 불균형 문제를 안고 있었다. 독일은 유로화를 이용하여 자국 경제를 활성화했고, 그 덕분에 세계 금융위기로 그리스가 외환위기를 겪으며 유로존 위기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와중에 독일은 자국 경제를 유지했다. OECD의 발표에 따르면 독일의 실업률은 200610%에서 20183.4%까지 꾸준히 떨어졌다. 유로존 국가들이 경제위기인 2010년에서 2012년까지 10%에서 12%까지 상승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또한, 유럽 연합 시장을 통해 1992년부터 2012년까지 연간 약 37억 유로를 추가로 벌어들이며 무역수지에 있어서 EU 국가 중 최대 경제이익을 누렸다. 독일에서는 더 이상 과거 패전국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유럽 경제 정책 수립에 독일이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냉엄한 현실이다. 모든 회원국은 독일의 관례와 가치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조항을 만들고, 독일이 대변하는 모델의 성공을 인정했다. 또한, 독일은 EU에서 인기가 가장 많으며, EU 예산에 크게 이바지하는 국가이다. 다른 나라들은 독일을 따르기로 선택했다. 하지만 윌리엄 패터슨 교수의 말처럼 이 일은 독일이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독일은 마지못해 자리를 맡은 패권국이다. 헨리 키신저는 지금의 상황을 유럽을 지배하겠다는 독일을 패배시키고 나서 70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거꾸로 승리자들이, 주로 경제적인 이유로 유럽을 이끌어달라고 독일에 간청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이미 독일은 유럽 통합을 통해서 얻고자 한 목적을 달성했다. 독일은 이미 배가 불렀다. 독일이 추구하는 것은 EU가 한 몸이 되어 유럽연방국이 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독일의 국가 이익에 부합하는 EU를 구축하는 것이다. 영국이 브렉시트로 EU를 탈퇴하자 독일을 견제할 수 있는 유럽의 강대국은 거의 없다. 이러한 배경에서 독일은 자국의 경제적 영향력에 상응하는 군사력 확장을 포기하고 온건함을 유지하며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지금의 질서에 만족한 독일에 EU의 진전된 통합을 이야기하는 것은 마이동풍(馬耳東風)에 불과할지 모른다. 독일 정치인들은 유럽 통합의 궁극적인 목적지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어떤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

 

3. 위기의 EU, 향후 행방은 어떻게 될 것인가?

독일과 유럽은 포스트모던의 낙원 속에서 살고 있다. 유럽은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서 군사강국의 의지를 완전히 상실했다. 유럽은 국방예산을 GDP 대비 2% 이상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1990년대 발칸 반도 분쟁에서 군사적 무능함을 보여주었다. 미국의 국제전문가 로버트 케이건은 유럽의 낙원은 미국 덕분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한다. 즉 냉전 시기 미국이 외부 위협으로부터 유럽을 보호하고, 발칸 분쟁과 같은 내부 위협을 해소했기 때문에 유럽은 평화를 구가할 수 있다. 그것은 냉혹한 현실이다. 하지만 최근 미국의 행보를 살펴보면 더는 국제경찰의 역할을 다할 것 같지 않다. 미국 지정학 전략가 피터 자이한은 셰일 가스 개발로 에너지 자금의 꿈을 이룬 미국은 이제 세계 질서 유지에 관심이 없다. 미국의 동맹은 각자 도생을 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셰일 가스 개발로 미국은 2018년에 세계 최대 석유 생산국에 등극했다. 미국은 중동 가스에 흥미를 잃었으며, 독일, 일본, 한국 등 동맹국에 방위비 분담금을 요구하며 자국의 부담을 줄여나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NATO 동맹국, 특히 독일과 프랑스 등에 GDP 대비 2% 이상의 국방비를 사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은 이를 추진할 어떤 의지도 없다. EU군 창설 계획은 EDC(유럽방위공동체)의 실패로 물거품이 되었고 기능주의적이고 가시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경제영역의 통합만을 추구했다. 폴 레버는 유럽 군대를 지지한다는 공언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유럽 연합 집행위원회나 유럽의회가 군사 작전 관리에 진지한 책임을 맡는 것은 바라는 독일 정치인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미국 없이 평화를 구가할 수 없는 유럽은 포스트 아메리카의 시대가 도래하는 와중에도 여전히 아무런 대책을 마련해 놓고 있지 않다.

유럽은 극우주의에 물들고 있다. 독일 내무 장관 토마스 데메지에르는 모든 EU 회원국들에게 난민 수용 문제에 대해 역할을 요구했으며, 의무적 할당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중유럽과 동유럽 등 경제적으로 낙후된 국가들은 이 제안에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집행위원회는 독일의 요구를 반영한 방안을 만들었으며 이를 시행했다. 독일은 유럽 내에서 인권을 선도하는 국가로 인정받고 싶었겠지만, 그 결과는 브렉시트와 극우정당의 성장이었다. 폴 레버는 극단주의는 독일에서 절대 살아남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정계는 여전히 평화롭고 기민련이 자리를 계속 지킬 것이라고 말한다. AfD의 부상은 단지 표면 아래 숨어있는 불만이 많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라는 것이 그의 견해이다. 그의 책이 출간하고 얼마되지 않아 이뤄진 2017 독일총선은 극우정당 AfD(독일을 위한 대안당)의 성장을 보여준다.

AfD2013년 금융위기 당시 반유로화를 통한 유로존 탈퇴를 내세우며 등장했다. 2013년 총선 당시 득표율 4.7%5%의 벽을 넘지 못해 연방하원에 진입하지 못했지만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2017년 연방하원 선거에서 12.6% 득표율을 획득하며 연방 하원 제 3당으로 입성하게 되었다. 고작 4년 만에 보여준 대안당의 성장은 독일 정치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대안당은 이민과 난민 문제 등 선동적인 의제를 내세워 기성 정당과 차별점을 두었고, 선동정치를 통해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킴으로써 성장할 수 있었다.

유럽 내부에서 극우주의가 확산된 배경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유로존 위기로 인한 경제침체의 여진이 아직 가시지 않고 있다. 그리고 시리아 내전으로 난민이 유입되면서 국경철폐에 대한 솅겐조약에 회의하게 되었고, 각국은 난민할당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벌였다. 그리고 브렉시트로 인해 양적 확대, 질적 심화의 과정을 지속한 유럽통합 과정을 역행하는 것이다. 통합유럽의 흐름이 후퇴되자 유럽에 신민족주의가 등장할 가능성을 키웠다.

이러한 우려는 결국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정당의 약진으로 이어졌다. 2019년에 있었던 유럽의회 총선을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극우정당이라 불리는 ENF(국가와 자유의 유럽)EFDD(자유와 직접 민주주의의 유럽)은 각각 58, 54석을 획득하여 이전 의회보다 각 22, 12석이 증가했다. 반면 EPP(유럽인민당)S&D(사회민주진보동맹)은 각각 3732석이 감소하여 기성정당의 후퇴와 극우정당의 약진이 이뤄졌다. 극우정당들이 강력한 민족주의를 표방한다는 점에서 미뤄볼 때, 극우정당의 성장은 유럽통합 과정을 역행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민족주의는 배타성이며 이는 곧 다양성 속의 통일성이라고 하는 EU의 모토을 배격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유럽통합은 전면적 경제통합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리고 독일은 현재 이 문제를 해결할 어떤 의지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

 

4.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변화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독일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 EU를 자국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유럽 통합을 진전할 진지한 방법을 마련할 것인지 답을 내놔야 한다. 최근 새로운 EU 입법의 부족에 대해서 계속 불평하고 있는 유럽 의회는 더 큰 유럽을 부르짖을 것이고, 사회-환경 문제를 책임지고 있는 개별 집행위원들은 분명히 그에 좌우되는 일을 하는 자국 관리들로부터 새로운 제안을 내놓으라는 압력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독일이 비용이 발생할 수 있는 일에 신중하다면 전체로서의 집행위원회는 당연히 과도한 모험을 피하는 선택을 할 것이다. 독일은 변하는 국제정세에 발맞춰 직접 나서야 한다. GDP 대비 국방비를 2%이상 높여 유럽 독자적인 군사력을 증진하는 한편, 다른 유럽국가들도 이에 동참하게끔 유도해야 한다. 그리고 최종적인 목표는 NATO와 다른 EU군을 창설하는 것이다. 통합된 군사력은 미국의 참여 없이도 유럽 대륙을 자조할 수 있게 할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 있었던 만큼, 유럽은 러시아의 위협으로부터 자조해야 한다. 또한, 무분별한 국가 가입을 경계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낙후된 국가는 사전 산업화 과정을 통해 어느 정도 성장을 시킨 이후에 가입하게 함으로써 유로의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극우주의의 경계이다. 독일은 인권의 선도국가인 마냥 난민을 무분별하게 수용해서는 안 되며 이를 타국에게 의무적으로 요구해서도 안 된다. 유럽 시민들이 난민으로부터 느끼는 공포는 실재하는 것이며, 이를 무시할 경우 극우주의 정당의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다. 독일과 각 유럽국가는 난민을 수용하기 이전 난민을 수용하는 절차의 신뢰성을 우선 유럽 시민들에게 납득을 시킨 뒤, 선별적으로 수용함으로써 극우정당의 성장을 차단해야 한다. 브렉시트로 인해 역행한 유럽통합과정을 제자리에 놓기 위해서는 국제적 현실을 먼저 인지하는 것이 요구된다. 더 이상 과거의 몽상가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하지만 독일은 이 문제에 대비할 의지를 갖고 있는가? 세계가 ‘disunited state’로 사분오열될 가능성이 존재하는 가운데, 강대국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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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박완서를 읽다
김민철 지음 / 한길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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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

 

이 책은 박완서 작가의 꽃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작가는 1931년 태어나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겪고 2011년에 선종하기까지 한국의 현대사와 함께했다. 그의 소설은 자신이 직접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자전적인 소설가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꽃과 함께했다. 문학에 대해서조차 문학은 내 마음의 연꽃이라고 꽃에 비유해 이야기했던 것처럼, 그의 소설에는 꽃의 이름뿐만 아니라 꽃에 대한 묘사, 꽃을 주인공의 성격이나 감정에 이입하는 방식이 넘쳐난다. 그를 꽃의 작가로 부르고 싶은 저자의 말이 이해가 될 수밖에 없다. 박완서 작가는 꽃을 허투루 표현하는 법이 없다. 능소화를 보곤 불꽃이 온몸을 핥는 것 같아서 황홀해지곤 했지라고 말하거나, 동생을 보곤 조잘대는 시냇물 위로 점점이 떠내려 오는 복사꽃잎을 떠올린다거나, “너무나 참혹한 인간이 저지른 미친 짓에 대한목련 나무의 비명 등, 작가는 꽃을 통해 인물과 시대적 환경을 더욱 깊이 있게 고찰한다. 이 책의 저자는 소설의 중심주제 속에서 작품과 꽃의 관계성을 말한다. 또한, 저자의 노고로 직접 찍은 꽃 사진과 그 꽃의 생태와 생김새를 설명해주면서 꽃의 의미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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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의 책을 직접 읽어본 적은 없지만, 그의 작품은 학창 시절 교과서를 통해 간접적이나마 접해본 기억이 있다. 특히, 해바라기가 등장한 옥상의 민들레꽃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자리한 작품 중 하나이다. 아파트 투신자살을 다룬 이 책은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도 벌어졌던 일이기에 인상 깊게 읽었다. 특히 주인공이 자살하려고 하는 와중에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민들레를 보곤 그 의지를 꺾은 장면은 한참 동안 내가 길거리에서 민들레를 찾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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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줌의 흙에서 자라난 민들레만큼 효과적으로 삶의 의지를 보여주는 메타포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내가 이 소설을 읽고 민들레가 쉽게 내 눈에 띈 것처럼, 꽃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것은 나에게 의미가 되었다. 박완서 작가는 자신의 소설에서도 변변찮은 꽃들마저도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그것의 의미를 부여한다. “작가는 사물의 이름을 아는 자란 말은 이름을 통해서 그 사물에 타인들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는 작가의 숙명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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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소설에 친숙하지 않다. 소설은 나에게 너무나도 어렵다. 여러 수사법을 이용해 그 소설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일은 나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이유가 메타포로 사용된 소설 속 소품들을 잘 모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존재의 형상을 내가 잘 알지 못하기에 소설이 친숙하게 다가오지 않았던 것 같다. 옥상의 민들레꽃에서 민들레는 그것의 생김새나 생태를 잘 알고 있기에 의무부여가 쉽게 와 닿았다. 하지만 동생을 시냇물 위로 떠내려오는 복사꽃잎로 표현하거나, 결혼과 이혼문제를 석류나무나 노란 장미로 표현하고 죄의식의 상징으로 채송화를 사용했을 때, 쉽게 와 닿지 않았다. 목마른 계절에서 칸나를 잎새조차도 푸르지 못하고 붉은빛이 도는 핏빛 칸나도 마치 오랜 한발 끝에 지심에서 내뿜는 뜨거운 화염처럼 처절한 저주를 주위에 발산하고 있다.”라고 묘사했을 때 그나마 직접 붉은색을 묘사해줬기에 망정이지, 만약 핏빛이란 문구가 없었더라면 그것이 전쟁의 참화를 의미하는 것인지 깨닫는데 한참이 걸렸을 것이다. 철학이 개념적 언어로 고된 읽기를 선사한다면 소설은 메타포를 해석하고 그것과 서사의 관계를 파악해야 하는 고된 읽기이다. 소설가가 이름 없는 꽃에 이름을 부여하여 존재의 의미를 제공해주듯이, 그것을 읽는 독자는 그 꽃의 생태, 형태들을 알아야 진정한 소설 읽기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다. 하지만 나와 같이 게으른 독자들이 있는 것처럼, 꽃으로 박완서를 읽다는 이 게으른 독자들에게 좋은 해석서를 제공해준다. 꽃을 통해 의미를 부여하는 여러 소설가가 있듯이, 이 책은 소설 속에서 꽃의 사용법을 알려줄 도감이 되어줄 듯싶다. 결국, 의미를 다시금 부여하는 사람은 작가를 넘어선 독자에게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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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섬 : 나의 투쟁 4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손화수 옮김 / 한길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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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젊은 거장인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는 자신의 유년기를 소설로 담았다. 나의 투쟁 4 유년의 섬은 그 이전의 저작들과는 다른 이야기를 꾸민다. 1권은 아버지의 죽음, 2~권은 연애와 결혼과 같은 어른의 세계에 주목했다면, 이번 책은 그의 순수하고 힘이 넘치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담았다. 덕분에 다른 책을 읽지 않아도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 뮨재 없었다. 오히려 어른의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가 사회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유년의 삶을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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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의 삶에 대한 그의 묘사는 노골적이라고 할 만큼 사실적이다. 유약하다고 할 만큼 눈물을 자주 흘리고 양심의 가책으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에서 어리숙함을 볼 수 있다. 그리곤 어린 시절 정체성의 혼란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그의 행동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언젠 종교에 심취해 을 근절하고자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포르노 잡지를 보고, 어떨 땐 바위섬에서 불장난을 하거나 지나가는 자동차에 돌을 던져 차를 망가뜨리는 위험한 장난도 서슴지 않다. 여성스럽고 섬세한 모습을 보이던 그가 무대에서 락 공연을 펼치기도 한다. 이러한 모순들은 유년이기에 가능했던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함을 보는 것 같았다. 스테인드글라스 마냥 다양한 색채를 보여주는 것이 유년의 삶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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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유년기의 삶이 항상 낭만적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그의 적은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의 존재는 동양 고유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노르웨이는 여성 참정권 운동이 일어난 다른 유럽국가보다도 빠른 시기인 1913년에 여성 참정권이 보장되었다. 하지만 그 국가조차도 가부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 같다. 그의 아버지는 폭군 그 자체였다. 그는 아버지를 증오했다. 아버지는 집 안에서 자신이 세운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화부터 내고 보았다. 그는 여러 금기 사항으로 자식들을 통제하는 엄격한 가부장적 인물이었다. 칼 오베는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상한 우유를 억지로 마셨다. 이를 눈치채지 못한 아버지도 같이 우유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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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우유가 상했잖아! 에잇!”

아버지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때 나를 바라보던 아버지의 눈빛은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어쩐 일인지 아버지의 눈빛은 내가 짐작했던 것처럼 화를 내는 눈빛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눈빛은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맞닥뜨렸을 때 볼 수 있는 의아함과 놀라움을 담고 있었다.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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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당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가 부모로서 정상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면 아들이 왜 상한 우유를 참고 마셨는지 생각했어야 했다. 그는 아들이 자신의 눈치를 극도로 살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기반성의 길을 걸어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행동을 고치고 억압과 강압이 아닌 사랑으로 자식을 보듬어줬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 멍청했다. 그는 아들의 입장을 헤아리지도 못한 채 행동을 고치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생각하지 못함이 불러놓은 악이란 말인가? 그나마 다행인 건 칼 오베는 가부장을 재생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자식들을 사랑한다. 아이들은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행히 자식은 아비를 닮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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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바쁠 대학교 3학년, 지금의 삶을 챙기느라 바쁜 나머지 과거의 일을 다시금 떠올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것이 이미 의미를 상실한 것만 같은 유년의 삶이라고 한다면 더더욱 어렵다. 그때 그 시절 난 어떻게 살았는지 생각해봤지만, 단지 깨져버린 유리조각 마냥 굴러다니는 파편만 남아있다. 그것들을 모으면 아름답게 꾸며진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들 수 있거나 괴이한 작품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본래의 모습은 떠오르지 않는다. 떠오르는 유년의 삶은 극단의 대칭이 이뤄진 천칭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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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유년의 삶을 떠올려봤다. 그다지 기억나는 건 없다. 기억난다고 해도 추억거리라고 할 만한 건 극히 일부만 남았다. 난 칼 오베와 상당히 닮아있다. 성격은 유약했고 잘 울었다. 소위 비행 청소년들의 손쉬운 표적이었고, 폭력에도 쉽게 노출되었다. 지금은 그다지 기억나는 것이 없다. 그들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정말로 기억이 나지 않는 건지, 무의식적으로 그들을 지워버렸는지 모르겠지만, 다만 알 수 있는 사실은 그 경험이 모든 극단을 피하고 중용을 지키고자 하는 나의 가치관을 확립하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폭력을 동원하는 행위 대부분에 거부감을 느낀다. 친구 중 몇몇은 이런 나의 가치관에 답답해하고 나를 회색분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난 이런 내가 싫진 않다. 부족하다고 생각되더라도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겪어오며 만들어진 나의 모습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고 현재를 살아갈 뿐이다. 칼 오베가 아버지를 통해서 아비의 역할을 깨우쳤던 것처럼, 나 또한 폭력의 위험성을 그들로부터 배웠을 뿐이다. 난 이렇게 만들어진 나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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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칼 오베와 달리 내 유년기에 아름다운 스테인그라스를 남겨준 부모님의 사랑에 깊은 은혜를 느낀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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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그레이트북스 8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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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한나 아렌트의 대표적인 저서이자 그를 논란의 중심에 있도록 만든 악의 평범성이 처음 언급된 책이기도 합니다. 그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은 필요 없을 정도로 이미 유명합니다. 아이히만은 1939년에 전쟁이 발발하자 유대인 이주를 담당하는 제국중앙보안본부에서 근무했으며 강제이주를 위한 방안을 구상했습니다. 유대인 집단 학살인 최종 해결책을 효과적으로 이뤄졌고 덕분에 수백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들은 가스실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시대에서 나치는 유대인의 법적 인격을 파괴했고, ‘도덕적 인격을 뿌리 뽑았으며, 인간의 저항 능력을 박탈함으로써 개성자체를 말살했습니다. 유대인은 나치에 의해 인간이기를 포기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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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히만은 단지 상급자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며 변명했습니다. 다른 이들은 그가 형량을 줄이고자 하는 변명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렌트는 달랐습니다. 역사의 객관적인 법칙을 찾기보다는 개별적 사건의 보편적인 의미를 밝히고자 한(이야기하기 방법) 아렌트는 그의 증언과 삶을 통해서 한 가지 치명적인 교훈을 찾았습니다. 바로 말과 사유를 무시하는 무시무시한 악의 평범성이란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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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에게 악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평범한 악을 일으킨 무사유는 무슨 의미인가요? 기존 철학적 전통은 악의 근원을 자만심과 질투심, 증오심, 탐욕에서 찾았습니다. 그리그 그곳에서 비롯된 악을 폭력적이고 파괴적이며 인간의 보편적인 속성과는 다른 초월적인 악마성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렌트가 마주한 것은 기존의 악과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것은 천박했습니다. 틀에 박힌 기계적인 사고, 정형화되고 상투적인 문구밖에 사용할 줄 모르는 아이히만은 멍청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의 악은 근본적 동기에서 일어나는 악이 아니었습니다. 무사유에서 비롯되고 멍청할 뿐만 아니라 그 동기 자체도 진부하기 그지없는 악은 최종해결책(유대인 학살작전명)’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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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는 진리를 찾고자 하는 지성적 활동과는 다릅니다. 사유를 나와 나 자신의 소리 없는 대화라고 정의한 아렌트는 사유가 언어를 매개로 진행된다고 말합니다. 나와 내 친구는 대화를 통해 우정을 재확인합니다. 고독 속에서 이뤄지는 사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유는 (현상에서의)나와 (정신에서의)나 사이의 대화이며 친밀감과 우정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나와 나 자신이 추구하는 바가 다를 경우 자기모순이 발생합니다. 그 예가 양심의 가책입니다. 하지만 이 양심의 가책마저도 없다면? 자기모순 자체를 폐기하고, 나와 나 자신과의 대화 자체를 단절시켜 상대방을 이해하고 연민하며 동정하는 모든 과정 자체를 포기한다면 어떨까요? 친구 둘이서 범죄를 저지르는 행위를 건전한 우정이라 볼 수 없듯이, 나와 나 자신의 자기모순 과정을 버리고 폭력을 지향하는 것은 참된 우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스스로와 대화하지 않는 무사유이자 악의 평범성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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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박찬주 전 대장의 발언을 통해 그의 천박하기 짝이 없는 악을 보았습니다. 자기와 병사의 관계를 마치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로 비유하며 불공정한 명령을 정당화했습니다. 자신의 처가 저지른 폭력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변명했으며, 군의 위계질서를 들먹이며 갑질을 합리화했습니다. 종국에는 삼청교육대가 지닌 이유도 모른 채 군인권센터장인 임태훈씨가 그곳에 가야 한다고 말하며 논란만을 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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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가지 않은 사람이 군대에 대해 논할 자격이 있느냐.”는 임태훈씨를 비판하는 모든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발언은 멍청하기 짝이 없습니다. 난민의 권리를 요구하는 사람이 난민일 필요는 없으며, 여권을 옹호하는 사람은 여성일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군인의 권리를 말하는 사람은 군인일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임태훈 소장은 아렌트의 의미에서 사유하는 인간입니다. 그는 입대하지 않았으면서도 성소주자와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군인들의 인권을 위해 싸웠습니다. 그는 나와 나 자신과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서 군인들의 처지를 생각했고, 비난에 대해 정치적 행위로 응수하는 인간입니다. 반면 박찬주 전 대장은 삼청교육대가 초래한 악행을 고려하지 않으며 군인이 사용할만한 상투적인 언어를 사용해 사유하지 않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했습니다. 그의 사유를 장악한 것은 20세기 군부독재 시절에나 어울릴 질서이며 반공 이념입ㄴ다. 사유하지 못하는 사람이 정치영역에 들어선 순간 공적영역은 파괴됩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 정치영역은 무사유적 인간의 등장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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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누구도 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당신은 정치영역에서 추방되어야 합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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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 - 정치의 존재이유는 자유다 인문고전 깊이읽기 9
홍원표 지음 / 한길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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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구성

 

한길사의 인문고전 깊이읽기시리즈 중 아렌트는 아렌트 사상의 핵심을 가장 깔끔하고 정교하게 설명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책의 저자이자 아렌트 권위자이신 홍원표 교수님은 아렌트 정치사상에서 자유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중점으로 저술하셨습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 재판을 계기로 사유하지 않음이 초래한 악의 평범성, 그리고 파괴된 정치영역을 목격했습니다. 그는 활동적 삶에서 정신의 삶으로 관심 분야를 넓혔으며, 사유하는 능력의 정치적 성격을 부각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아렌트의 작업을 통해서 홍원표 교수님은 아렌트 사상을 잇는 외올실정치적 사유로 보았습니다. 이 책은 말하는 능력에서 비롯된 사유능력이 정치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다원적 세계를 유지하여 전체주의 공포를 해소하고자 한 아렌트의 사상적 노력이 무엇인지, 최종적으로 정치의 존재 이유인 자유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고자 합니다. 이렇듯 제1장에서는 정치적 사유에서의 사유의 의미를 파악하고, 2장 활동적 삶에서는 인간의 조건과 조응하는 노동, 작업, 행위를 파악합니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행위를 발현할 수 있는 공공영역이 소멸했다는 점을 말한 뒤, 인간소외의 문제점을 직시합니다. 그리고 3장에서는 활동적 삶이 이뤄지는 현상세계와 구분되는 정신세계를 분석하고, 이곳에서 이뤄진 정신의 삶을 서술합니다. 정신의 삶인 사유, 의지, 판단은 인간의 자아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언어를 매개로 나와 나 자신과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의미를 추구하는 사유, 정신활동에 머물지 않고 각기 다양한 상황에서 적절한 행위를 선택하고 추진하는 의지, 과거에서 의미를 회복하게 하고 과거를 넘어선 확장된 정신으로 나가게 하는 판단 작업을 통해서 현상세계에서 정치영역을 회복할 수 있는 희망을 역설합니다. 4장 새로운 시작에서는 인간의 조건에서 핵심이라 볼 수 있는 탄생성, 즉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능력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인간은 탄생을 통해 세계에 우연히 등장하게 되었고, 언어 행위와 정치적 행위를 통해서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새로운 시작입니다. 5장에서는 자유를 정치의 존재 이유로 규정합니다. 새로운 시작에서 제시되었다시피 인간은 자신만의 정치적 사유를 근거로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실천할 수 있을 때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즉 새로운 시작은 이사야 벌린이 구분한 자유 개념 중 적극적 자유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흔히 주류 정치학인 자유주의가 표방하는 자유 개념은 ‘~으로부터의 자유즉 간섭으로부터의 자유인 소극적 자유를 지향합니다. 하지만 아렌트는 인간의 자유를 새로운 시작, 즉 자신의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자유를 정치적 자유를 보았기 때문에, ‘~로의 자유자기 결정권이란 의미에서의 적극적 자유를 추구합니다. 전통적으로 적극적 자유는 공화주의 이론가들의 자유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적 인간 개념을 물려받은 한나 아렌트는 정치에서의 적극적 자유를 회생하여 공화주의 정신을 되살리고자 합니다. 이후 6장에서는 정치에서 정당한 권력은 오직 민주주의적 가치를 기반으로 시민의 동의에 있다고 말합니다. 권력자의 자의적인 힘, 즉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규정한 독재자들의 힘은 폭력으로 해석하며 시민적 힘인 권력과 구분합니다. 7장에서는 혁명의 폭력적이고 정치적 속성을 부각하며, 정치영역을 새롭게 만들어낸 미국의 독립혁명 정신을 강조합니다. 8장에선 우연성을 담보로 한 정치적 행위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기 때문에, 책임과 용서를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9장에서는 인간 소외문제를 해결하고 세계사랑으로서 후마니타스를 제시하고, 10장을 통해 정치영역을 훼손하고 인간소외를 악화하는 이데올로기와 거짓말 정치를 경고합니다.

 

2. 책의 특징

 

올해 퇴임하신 홍원표 교수님은 아렌트 학회의 회장을 역임하고 많은 아렌트 저서들을 번역하신 한나 아렌트의 전문가이십니다. 교수님께서는 최근 아렌트의 유작이자 미완의 저서인 정신의 삶: 사유, 의지를 번역했으며 거기에서 중심 개념인 정치적 사유를 통해 아렌트 사상을 외올실로 잇고자 하십니다. 다른 서적을 확인해보면 대부분 아렌트의 정치사상을 인간의 조건에서 제시된 활동적 삶, 혹은 사유를 악의 평범성에 한정 지어 소개합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아렌트는 아이히만 재판 이후 관심 분야를 사유하는 정신의 삶으로 옮겼으며, 사유하지 않고 저지르는 활동들은 정치를 파괴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인간의 조건아렌트는 노동, 작업, 행위라는 활동적 삶이 균형을 이뤄지는 경우에만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노동이란 가치만이 중시되고 다른 활동은 터부시되고 있습니다. 결국, 아렌트는 현대사회를 노동하는 동물의 승리로 규정하며, 활동적 삶만 가지곤 공적 영역을 재활성화할 수 없다고 간접적으로 인정합니다. 인간의 조건말무리에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가장 활동적이며, 그가 혼자 있을 때 가장 외롭지 않다.”라는 카토의 말을 인용하여 사유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활동적이라는 정신의 삶의 기초적 구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사유하는 사람이 가장 활동적일 수 있을지 둘째 치더라도, 활동적 삶과 정신의 삶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요? 활동적 삶은 우리가 살아 움직이는 현상세계에서 이뤄지며, 정신의 삶은 저 너머의 세계라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신의 삶이 단지 추상적이고, 공상적인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홍원표 교수님은 아렌트의 시적 은유를 강조합니다. 아렌트 책을 읽어보면 정신과 현상의 심연’ ‘어두운 시대그리고 사유는 카드게임과 같다라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이 도처에 있습니다. 아렌트가 어린 시절 시에 관심이 많았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아렌트는 자신의 저작 곳곳에 시적 은유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홍원표 교수님은 은유 정신의 삶과 활동적 삶을 잇는 징검다리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은유를 활용한 이야기하기서술 방법을 통해서 아렌트는 역사에서 보편적인 의미를 도출합니다. 전체주의를 어두운 시대라고 표현하고 베트남 전쟁을 위기라고 표현한 것이 바로 그 예입니다. 역사로부터 도출한 보편적 의미를 통해서 정치적 행위, 실천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을 긍정했습니다. 아렌트는 은유와 정치적 사유를 자유로운 대화와 소통이 이뤄지는 공공영역을 강화하고, 우정의 대화를 통해 인간에 대한 사랑인 후마니타스를 가능하게 만든다고 봅니다. 이처럼 홍원표 교수님은 아렌트의 사상적 족적을 후기 저작인 정신의 삶의 사유를 중심으로 아렌트의 사상을 서술한다는 점에서 가장 아렌트를 철저히 해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렌트의 사상은 쉽게 다가가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아렌트의 청사진을 정치적 사유란 외올실로 잇기 때문에 아렌트 사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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