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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시대의 논리 ㅣ 창비신서 4
리영희 지음 / 창비 / 1990년 10월
평점 :
4월 22일 오후 7:34
<해전사>와 <전론>. 벌써 아득하다. 스무 살에 대학생이 돼 학보사에 들어갔을 때 선배들로부터 받은, 몸을 움직이지 않았으나, 충격을 받았던 책이다. 세상이 변했고, 밥도 먹고 살게 돼 다시 읽는다. 변한 세상이지만 아직도 변하지 않은 의식으로 사람들이 행동한다. 좌와 우가 균형 있어 조화로운 세상으로 가는 길은 더딘 걸음으로, 때론 휘청거리며 갈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억압과 박해로 먼저 갔다. 대나무 뿌리 마냥 넓고 깊은 지성이 있다는 김용옥 선생처럼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아직도 소수다. 미국에서 죽은 메카시는 이 나라에서 여기저기 살아있고, 때론 좀비처럼 살아난다. 아무래도 우리 세대가 사라지고 내 자식들의 세대가 되어야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그것도 우리부터 말하고 행동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할 것이다.
1974년에 나온 당시 금서. 40년이 지난 글이지만 시대를 읽어 내는 리영희님의 혜안은 심장처럼 벌떡거린다. 개정판 서문에 저자가 “절판시켜도 아깝지 않은 때가 되었다”고 하지만 아니다. 저자가 먼저 저 세상에 갔음으로 다시 개정판이나 수정판이 나올 수는 없겠다만, 우리 시대의 고전이라는 자리는 오래도록 지속되어야 한다.
- 강요된 권위와 언론자유 : 寓話, “우화도 그렇고 현실도 그렇고 역사는 한 단계의 투쟁이 끝나면 으레 ‘임금은 알몸이다’라고 폭로한 소년의 용기에 열중한 나머지 힘없는 소년에게 그런 엄청남 임무를 떠맡기게 된 그 사회의 실태에 대해서는 눈이 미치질 않는다. 문제시해야할 중요한 것은 그 영광(또는 해결)까지의 과정에 얼마나 많은 인간적 타락과 사회적 암흑과 지적 후퇴가 강요되었느냐 하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이겠다.”
- 법적 구조와 정치의 내적 정신 : 위기에서 되살아날 수 있는 하나의 사회의 내면적 자질에 관해서 토크빌은 “문제는 법적 구조보다도 정치의 내면정신에 있다.” “하나의 국가나 국민의 생활원리가 되어주는 일반적 정치의 내적 정신이 건전치 못할 때 법적 구조의 건전이란 기대하기 어렵다.”
- 국가 권력과 이성 : “해피엔딩으로써 슬펐던 과정을 잊을 수 있는 것은 관객의 경우다. 슬픔을 겪은 주인공은 종말의 행복보다도 불행했던 과정에서 잃어버린 가치를 아쉬워하게 마련이다. 그 차이는 불행을 체험한 사람과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의 위치의 차이다.”
- “운명을 같이 할 수밖에 없는 한 사회의 대중이 오도된 사고방식이나 정세판단을 하고 있을 때 그것을 깨우쳐야하는 것은 언론과 지식인의 최고의 책임이자 의무이다.” “오늘의 사실을 오늘에 규명하지 않고 먼 훗날 ‘이제는 말할 수 있다’고 비화 읽을거리의 자료로 생각하는 한, 통치계급의 횡포는 계속되고 대중은 암흑을 더듬는 상태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 1971년의 상황 : “우리 사회에서는 일본군대 지도자들의 내왕 같은 것도 정부는 대부분 ‘국가이익’ 또는 ‘국가안보’의 이유로 밝히지 않고 있다는 신문관계자의 말이다.” 이러니 대중이 알 수 있는 길,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는 거다.
- 국가이익- 지배자의 논리 : 헤럴드 라스키 “권력자란 자기의 부정과 과오를 은폐할 수만 있다면 그 목적을 위해서는 언제나 국민의 자유를 부정하려한다. 그리고 권력자에 의한 이 자유의 부정이 성공할 때마다 다음번에 자유를 부정하는 것은 그만큼 쉬워진다.” 국가안보 라는 이름으로 집권세력이 내세우는 국가이성은 처음부터 이성적 통의를 그 분야에서 배제해버리려는 원리이다. 바로 이처럼 간단한 이유에서 그것은 자유와 어울릴 수 없다. 국가이성은 진리도 이성도 전제하지 않으며 오직 항복만 요구한다.“(『현대 국가에서의 자유』)
- 밀리터리 멘탈리티 : 통킹만에서 월맹 어뢰정이 불법으로 미국 순양함을 공격했다는 조작으로 의회로부터 대통령의 비상대권을 탈취하는 데 성공한 정부와 군부는 그 의회 결의와 그 도착으로 흥분된 미국인 감정을 ‘현실’로 하여 다음은 대규모 폭격을 ‘현실화’한다.
--메카시즘의 결과 : 1950년대에 메카시즘의 공포분위기와 사상통제라는 반지성주의가 미국국민의 창조력과 자유를 철저하게 위축시킨 탓에 정부와 학계와 여론 지도층에는 거의 어용적 성격의 지식인만 남게 되었다.(오웬 라티모어). 여기야 더 말한 나위가 없지 않은가
- 냉전 의식의 자기기만성 : “냉전시대의 기이한 신, 우상, 권위의 실태를 묻는 회의가 필요한 때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그때, 1971년 리영희의 시대 인식이다. 이래서 책을 읽는 거다.
- 중국 외교의 이론과 실제 : 중공문제와 우리의 관념정리, 중공 대와 관계의 70년대적 조건, 중공 대외관계의 변천, 제도적 관계와 상황적 관계, 중공 국제관계의 제측면, 중공 군사력과 정치적 전환에 관한 탁견을 『정경연구』 1971년 1월호에 싣고 있다.
- 대륙중국에 대한 시각 조정 : 대립적 신화의 타파, ‘죽의 장막’(미국의 주장일 뿐)이라는 신화, 대륙정권의 합법성 여부 문제, 개인숭배에 관한 시각, 모택동 사상, 언론과 문예의 자유 문제 등에 관하여 바로잡는다.
- 권력의 역사와 민중의 역사(장개석 시대) : 우리가 배우지 못한 역사, 가르치지 않은 세계사, 배워야할 세계사다. 장개석과 이승만이 오버랩 된다. 공산당군은 1949년 4월 21일 영시를 기해 400마일의 장강 연안 공격 출발점에서 일제히 도강했다. 저항하는 국민당군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광동에 천도했던 국민당 정권은 대만으로 건너갔다. 955만 8천 평방킬로미터의 땅과 4억 5천만 인민을 버리고
- 사상적 변천으로 본 중국 근대화 백년사 : 중국 근대화 투쟁의 사상적 기조는 서구문명의 ‘부정과 극복’이다. “닉슨이 그곳에서 만난 모택동과 주은래와 비행장에 마중 나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로 5.4의 아들들이다. 그리고 110년 전 성왕과 백성이 일체가 되는 ‘대동’사상을 품고 공상적 사회주의의 실현을 위해 반란을 일으킨 태평천국의 손자이기도 하다.
- 현해탄 : 동경대 교수와의 대화에서 “내가보는 바로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군사적 역할이 본격화된다면 그것은 일본 쪽에서 그러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한국 쪽에서 일본군대를 불러들이려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유신과 김춘추가 당군을 끌어들인 것부터 우리 역사에서 여러 지도자들이 외세를 끌어들인 결과가 이렇게 가슴 치게 한다.
- 미군 감축과 한일 안보관계의 전망 : 미국이 역할을 줄이겠다는 정책 방향이다. 한국, 미국, 일본이 군사적으로 엮여있다. 더럽게 싫어도.
- 일본 재등장의 배경과 현실 : 3류 국가로 만들려던 미국의 정책이 중공의 등장, 한국전쟁으로 바뀌어, 군사비 부담 없이 일본이 재건하고 재무장하도록 지원한 결과다.
- 베트남 전쟁 : 미국의 조작으로 시작하여 실패한 전쟁, 드골의 예언이 100% 맞았다. p245~451까지에서 베트남의 민족성에 감탄한다. 우리보다 훨씬 낫다.
- <전환시대의 논리>는1974년 6월 초판이 나와 30쇄를 찍었고, 2006년 3월2판이, 2판 17쇄는 2015년에 나왔다. 본문 545쪽 분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