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을 살아보니
김형석 지음 / 덴스토리(Denstory)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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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을 살아보니

2018.9.16.()

김형석 교수의 책을 만난 것은 35년쯤 됐으리라. 온전하지 않은 상태로 집안에 뒹굴던 것을 읽은 거다. 책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즈음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을 읽어가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 것으로 기억한다. 2018. 97세임에도 건강하게 활동하며 글을 쓰는 김형석 교수의 에세이 <백년을 살아보니>를 읽는다.

에세이를 사 읽는 일은 드문 일이다. 내 취향을 아는 선배가 이 책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며 읽어보라 빌려준다.

 

똑같은 행복은 없다는 행복론, 결혼과 가정에 사랑이 있는 고생은 기쁨이라는 인생이야기, 우정과 종교, 돈과 성공, 명에를 다룬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노년의 삶으로 나누어 풀어 놓았다. 서문에서 당신은 육필 원고만 제공했을 뿐이라고 밝힌다. 여기까지만도 쉽지 않은 대단한 일이다.

 

김교수의 행복론은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유지해야하며, 경제적으로는 생활의 기초필요조건을 갖춘 중산층이면 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한다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지혜와 통찰이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침을 들어가며 알렉산더의 삶과 견준다. 소유는 상실했을 때 고통과 불행을 느끼게 하니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자는 말이다. 정신적 가치추구를 목표로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은 국민의 80% 이상은 100년 이상에 걸쳐 독서를 한 나라지만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러시아는 그 과정을 밟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통계치의 출처를 밝히지 않은 에세이라 아쉽다.

영국 작가 키플링의 작품에서 숲 지킴이의 홀로 사는 삶(일을 할 때는 작업복을 입지만 저녁식사는 말끔하게 신사복으로 갈아입고 저녁식사를 마치면 다시 작업복으로 갈아입는)을 꺼내 인간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고 김대중 대통령도 가택연금 당시 안방에서 거실로 나올 때 정장 차림으로 출근하는 삶의 태도를 가졌음을 떠올린다. 성장과 행복의 기준은 타인과의 비교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에 기준을 두어야 한다.

경제는 중산층에 머물면서 정신적으로는 상위층에 속하는 사람이 행복하며, 사회에도 기여하게 된다.”고 행복조건으로 경제를 정의한다.

감사하는 마음이 행복의 요건이라며 손기정 옹의 세금이야기, 고당 조만식 선생의 머리카락 이야기를 들려준다. 높은 희망과 가능성이 행복이라는 임어당의 생각을 기억한다며 행복은 감사하는 마음과 공존한다고 한다.

 

결혼과 가정에 대한 입장은 소박하다. “이기주의자는 사랑을 하지 못 한다.” “결혼은 사랑의 출발이다.” “실연을 해도 사랑을 해봐야 더 귀한 인간적 성장을 이룬다.”며 쇼펜하우어와 니체는 결혼을 하지 않아 따뜻한 사랑을 체험하지 못했노라고 말한다. 감정이 아름다운 여자로 사는 삶과 욕심보다 지혜, 지혜보다 자녀 사랑이 자연스러운 자녀의 성장을 이끄는 부모의 역할이라고 경험을 풀어 놓는다.

고칠 민족성에 대한 답변으로 흑백논리라고 말한다. 조선이 주자학과 같은 형식 논리를 취하는 동안에 흑백논리라는 민족적 전통을 만들었다는 주장은 낯설다. 물리학자들이 색팔면체 설명으로 흑백은 이론적으로만 가능한 색깔이라며 실재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중간의 회색을 나쁘게 보지 말자는 뜻을 담고 있다. 회색을 모두 배제하면 삶의 현실을 내팽개치는 거란다. 사람의 장점과 단점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당신이 기독교도 임에도 절대주의 신앙을 배제해야한다고 주장하며, 플라톤을 경계하는 것은 그의 최고의 이상은 인간애의 정신과 과정을 배제하기 때문이란다. 죽음은 자연의 섭리다. 누가 오래 살았는가를 묻기보다는 무엇을 남겨 주었는가를 묻는 것이 역사란다.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에서 강 이편에서 강 저편을 탐하지 말라고 타이른다. 하 사람의 인생은 대나무가 자라는 것과 같다. 마디마디가 단단해야 한다. “돈은 악마와 같이 우리를 유혹한다.”며 소개한 독일의 세 강도 이야기가 재미있다.(길 떠난 세 강도가 황금덩어리를 발견하고 돌아오는 길에 욕심 탓에 배에서 떨어뜨리고, 칼과 독술로 서로를 죽인다는) 베푸는 보람을 깨닫고 실천하는 동안 개인과 사회는 성장과 발전을 거듭한다.

 

늙음은 말없이 찾아온다니 그리 알아둘 일이다. 사람은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다며 공부하거나 취미생활하고나 봉사활동 하란다. 내기 푸대접 받았어도 상대방을 대접할 수 있는 인품, 모두의 인격을 고귀하게 대해 줄 수 있는 교양, 그 이상의 자기수양은 없다고 삶의 지혜를 나눈다. 97세에도 구름사진가의 꿈을 꾸는 김교수는 늙지 않았다.

 

<빽년을 살아보니>20168월에 초판이 나왔고, 20187월에 23쇄를 찍었다. 본문 300쪽 분량이며, 뒷 표지은 인생의 황금기는 60~75세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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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도경 - 송나라 사신 고려를 그리다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10
서긍 지음, 한국고전번역원 옮김, 조동영 감수 / 서해문집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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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도경 高麗圖經

2018.9.14.()

 

세상에 첫 책 <독서로 말하라>를 내놓았다. 홍보한다고 동분서주하고 반응에 민감해지더라. 처음 경험하는 스트레스다. 책읽기에 소홀하니 머릿속이 텅 빌 것을 염려한다. 수일 전에 고려도경외 여섯 권을 사들이고도 며칠은 책을 들었다가 놓기를 반복했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새벽에 눈을 뜨고 <고려도경>을 읽고, 독서노트를 남긴다.

 

<고려도경>은 학창시절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를 다녀가 남긴 기록으로 후대에 고려를 이해하는 자료가 되었다고 배웠다. 시험 답안엔 서긍이나 고려도경을 쓰면 됐었다.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았다. 어찌하다보니 서해문집에서 내놓은 오래된 책방 시리즈중 하나다. <징비록>, <간양록>과 견주며 읽는다. <징비록>은 조선의 고위관료가 후세를 경계하려는 의미로 지었으니 녹봉을 받는 고위직으로서 의무를 다한 것이다. <간양록>은 일본에 포로로 가 있던 기간에 개인이 보고 듣고 배운 바를 적었으니 조선을 아끼는 마음이 지극한 자료다. 이에 견주어 <고려도경>은 송나라 휘종 황제가 고려에 사신을 보내며 고려의 풍속을 살펴오라는 명에 따른 것이다. 오늘날 공무원이 해외에 다녀오면 제출해야하는 국외체험보고서 격인 사행보고서다.

서긍은 송에서 파악한 고려에 대한 지식을 배경으로 개경에 다녀간 경과와 견문을 그림을 곁들여 엮어냈다. 서긍의 선지식에는 오류도 있으나 있는 그대로 평가하고 주관적인 평가도 곳곳에 남겨 두었다. 보고서에 들어있던 그림이 망실되어 아쉽다.

 

서긍이 고려에 다녀간 것은 1123(고려 인종)으로, 북송이 금나라에 멸망하기 4년 전이다. 당시 국제정세는 송, , , 고려가 자국의 입장에 따라 외교전을 벌인다. 송나라 휘종은 요에 대한 굴욕을 씻고자 요의 동쪽 금나라와 협공으로 요를 치려고 하고, 고려는 네 나라가 균형을 이루기를 바랐다. 송의 의도를 파악한 고려는 송에게 사신을 보내 송의 계획을 포기하라고 종요하였다. 그러나 송은 계획대로 금과 손잡고 요는 멸하였으나, 강대해진 금에게 망국의 화를 당하고 휘종 부자가 북으로 끌려가는 참변을 당한다. 고려의 국제정세 파단이 옳았다.

서긍의 여행일정을 정리하면 요동을 금이 지배하니 바닷길을 이용해야 했다. 서긍 일행은 관선 두 척과 민간 소유 선박 여섯 척으로 출발했다. 저장 성 연안 항구에서 출발하여 흑산도, 고군산군도, 예성강 입구에 이르는 17일간의 배를 타야했다. 돌아가는 길은 바람이 좋지 않아 42일이 걸렸으니 개경 체류 한 달을 포함하여 대략 3개월이 걸렸다.

 

<고려도경>은 제1건국에 관하여부터 제40같은 문물까지 왕실계보, 성곽, 궁전, 의식용 물품, 의장과 호위, 수레와 말, 의식주 관련 사항, 연회, 숙소, , 바닷길 등에 대해 기록한다. 방대한 기록은 서긍 혼자만의 관찰은 아닐 것이다. 송에서 출발한 사신 일행은 뱃사람을 포함하여 모두 200명이 넘는 규모였다. 사신의 지위 고하에 따라 관찰 조사할 내용을 분담하였고 이를 취합하여 <고려도경>을 엮었을 것으로 판단한다.

 

다음은 책을 읽어가며 밑줄치고 메모한 내용이다.

도성 수비 근위부대 병력이 상시 3만을 유지했다.

당시 불승 중에 중국어로 독경할 수 있는 자가 있어 서긍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사민(四民)의 업 중에 선비를 귀하게 여기므로, 글을 알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는 기록으로 보아 교육열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듯하다. 한국고전번역연구원의 고려도경 서문은 우리 겨레가 오래 전부터 문화를 사랑하고 중시하였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이해하자고 말한다.

고려는 공예를 숭상하여 기술자의 수입과 사회적 지위는 농민들이 따라가지 못했다고 한다. 민가에 대한 기록에 풀로 지붕을 덮어 비바람만 막는 수준이라 마치벌집이나 개미구멍 같은 데 열에 한두 집만 기와를 얹었다고 한다. 사람이 살면서 장사하는 가옥이 없다. 조세에 관한 것을 제외하며 고을에서 송사를 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서긍은 고려의 의식을 보면서 孔子가 살고 싶다고 하고 더럽다 하지 않은 이유다라고 적었다. 땅값이 오를 것을 예상하여 공자가 동이로 오려한 것이 아니다. 예와 악을 중시했던 공자 판단에 동이에는 가 살아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나라의 등급을 정할 때 수레의 수를 보아 차등을 두었다. 서긍이 고려에 도착했을 때 사신을 받드는 안장과 말이 대력 왕의 것과 같아 참람되고 사치하다고 사양한다. 이는 사후 행장에서 보이는 서긍의 모습과 일치한다. 당시 고려의 관부, 복식, 풍속 등에 요나라에서 유래한 것이 있음을 발견하나 대부분이 중국에서 들여온 것임을 확인하고 있다. 개경의 정부 창고에는 쌀 300만 섬을 쌓아 두었다고 한다. 서긍이 관찰한 바에는 내외직의 현직에 있어 녹을 받는 관원이 3000여 명이고, 녹은 없이 논밭을 급여 받는 사람이 14000여 명으로 파악하고 있다. 고려에서 송에 의관을 요청한 후 의술에 통달한 자가 많아졌다고 한다.

 

거란이 고려에게 패한 것은 재가화상 무리 힘 때문이라고 들었다 한다. 재가화상은 형벌을 받고 복역하고 있는 자들로 수염과 머리를 깎아 버렸기 때문에 화상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서희의 담판이 정사라면 서긍이 들은 바는 야사다. 백성의 삶을 관찰한 바에는 남녀의 혼인은 경솔히 합치고 쉽게 헤어진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시대 內外法에 비추면 주목할 만하다. 제사 지내기를 좋아하고 부처를 좋아하나 시체는 들 가운데 버려두고 봉분을 만들지 않는다고 관찰하였다. 에 불교의 영혼관 때문이라며 일본도 1세기 전에 이와 같았다고 한다. 고려에 밀이 적어 산동성이나 하남성 지역에서 사온다. 이 대단히 비싸 큰 잔치가 아니면 쓰지 않는다.

 

중국인에 비해 고려인은 목욕을 자주한다. 고려에는 籌算이 없어 출납회계를 나무에 칼로 긋어 표시하고 버리니 지난 일을 따져 볼 수 없겠다고 보고 있다. 에 우리나라에서 1910년대까지 전남 일부 지역에서 결승을 사용했단다.

후주後周에 유학하고 돌아오다 거란에 잡혀 벼슬한 최광윤이 거란의 침입 야심을 고려에 알려 지방 호족들의 군대를 연합해 30만 광군을 편성했다고 한다. 고려에 유통되던 그림부채는 일본에서 만든 것이다. 고려의 선박 건조 기술은 정교하지 않다. 배에 다락방이 없고 돛대와 노, 키가 있는 수준이다.

 

<고려도경>은 서해문집에서 20058월 초판 1쇄를 발행하고, 독자는 2015년 초판 2쇄본, 본문 304쪽 분량으로 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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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철학하다 - 21세기 불교를 위한 하나의 초상
이진경 지음 / 휴(休)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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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를 통해 익숙해진다는 의미를 생각하게 해준다. 부모님이 특별한 종교 활동을 하지 않았기에 무신론자로 살아갈 수 있다. 어린 시절 이웃집 어른을 따라 교회에 다니다 부흥회의 분위기에 질겁하고, 소풍 길에 다녔던 절은 볼 거리이거나 쉼터 이상의 의미가 없었다. 책을 통해 이슬람을 만나고 왜곡된 프로파간다에서 참모습을 찾으려 읽는다. 부모님과 함께한 어린 시절의 익숙함이 종교보다 자신을 믿고 살아간다.

 

<불교를 철학하다>는 시대정신을 잊지 않고 살아 온 이진경님이 불교를 종교보다 철학으로 이해하고 안내하는 불교철학 기본서 라고 판단한다. 바람 쐬러 다녔던 절, 스님들, 불교라는 종교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일체유심조가는 걸 잡지 말고, 오는 걸 막지마라정도였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보왕삼매경을 보고 좋다고 느낀 것도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이 책을 읽고 불교 철학을 온통 이해했다고는 더욱 말할 수 없다. 몇 가지 불교 철학 개념을 알고 이해한 것만으로도 기쁘다.

<불교를 철학하다>14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는데, 1나의 본성은 내 이웃이 결정한다에서 막혔던 가슴이 터지고, 답답함이 사라지며 ! 그래, 그래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연기적 사유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책이란 독자가 읽었을 때 책이다. 가지고만 있으면 책이 아니라 짐이거나 스트레스일 뿐이다. 좋아했던 남자의 변심을 원망하고 안타까워하고 붙잡아 두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연기를 받아들이지 못함이다. 연기緣起가 무엇인가? 어떤 조건에 연하여 일어남이고, 어떤 조건에 기대어 존재함이다. 그 조건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음, 사라짐이다.

“‘연기적 사유는 모든 형이상학적 사유와 결별한다.” 주역의 모든 것은 변한다와 같은 변화를 긍정함을 토대로 한다. 그러니 불변한 것을 찾으려는 서양의 형이상학은 설 자리가 없어지는 거다. 어떤 조건에도 변하지 않는 본성이나 실체 같은 건 없다. 하나의 동일한 사물이나 사실조차 조건이 달라지면 그 본성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신혼 초기에 남편과 아내의 모습이 10, 20년 후에 같기를 기대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연기적 사유는 동일한 것조차 조건에 따라 본성이 달라짐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란 하던 것을 계속 하게 하는 성향으로 관성적인 잠재력이 포함되어있다고 한다. “업은 본성이 아닌 것조차 반복되면서 본성처럼 몸과 입, 의지에 달라붙어 관성적인 언행을 만들어낸다.” 연기적 조건의 차이에 업의 힘이 끼어들어 변화를 만들어간다.

 

불교의 가르침중 하나가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상이란 조건이 달라져도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이고, 무상이란 동일성이 없음, 동일성에 반하는 차이가 있음이다. “무상을 본다는 것은 동일해 보이는 것조차 끊임없이 달라져가고 있음을 봄이다.” 무상을 보지 못하고 동일성을 유지하려 할 때 애착과 집착이 일어나 고통을 느끼고 고통을 받는다. 때로는 폭력이 되기도 하는 동일성의 사유도 배운다. 차이에서 출발하는 불교 철학은 차이화에서 생긴 다양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동일성에 가두려는 힘에 대항하며 차이를 긍정할 것을 요구한다.

 

근대 과학의 분석적 인과성과 불교 철학의 연기적 인과성을 비교한다. ‘동일한 조건이라면 이라는 단서로 독립변수와 종속 변수로 분석하는 인과는 서양의 분석법이다. 분석적 인과성에서 변수간 인과관계가 필연적이어야 하지만, ‘연기적 인과성이란 필연성을 요건으로 하지 않는다. 필연성을 가진 법칙마저 조건에 따라 다른 결과를 빚어내는 우연성도 무시하지 않는다. ‘카게무샤의 눈물에서 우리는 조건, 관계에 따라 다른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자아가 강하면 빨리 늙는다를 풀어낸다. 자아는 환경이나 관계 등 외부와의 만남에 의해 그때마다 만들어지는 잠정적인 안정성이라 본다. 행동패턴은 익숙해진 일상생활을 쉽고 편하게 해 주는데, 이는 새로운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폭이 패턴 안에 제약된다. “삶의 가능성이 라고 불리는 성격이나 패턴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오십 정도가 되어야 자아가 안정된다는 말은 자아에 갇혀가는 시기라는 말이다. 자아가 강하다는 것은 나와 남에게 자랑거리가 아니다 남에게 폐가되고, 나에게 안타까운 어떤 상태를 표시할 뿐이란다. 그렇기도 하다.

 

지구는 가장 큰 공동체다. “일정하게 유지되는 대기비율처럼, 지구의 온도 역시 그런 항상성을 갖는다. 이런 이유에서 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일 뿐 아니라, 강한 의미에서 하나의 생명체다.”

 

끌어당겨 내 것으로 가지려는 마음(탐심 貪心), 밀쳐 내거나 제거하려는 마음(진심 嗔心) : “오지 않은 것을 얻기 위해 치달리고, 갖고 있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 집착하며, 가버린 것을 붙잡으려 애쓰고, 바로 옆에 있는 것을 피하려 하며, 피할 수 없이 다가온 것을 밀쳐내려 버둥거린다.”

 

라는 지혜는 선악호오, 미추정사 美醜正邪를 분별하지 않는 것이 요체다. 분멸은 모두 의 기준을 척도로 행해진다. “호오미추의 척도를 내려놓고 애증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저 사람이 하는 얘기가 들리고 그가 왜 저런 생각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분별하지 말라는 뜻은 호오미추의 판단을 떠나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란 연기적 조건을 모두 지워 남는 것이 아무런 본성도 규정성도 없음이다. “공성을 본다는 것은 수많은 규정 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음을 보는 것이고, 최대치로 열린 잠재성 속에서 어떤 것을 보는 것이다.”

 

윤회는 영생불사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말한다. 삶이란 모면할 수 없는 고통으로 가득 차 있기에 영원히 산다는 것은 그런 고통 속에 영원히 머문다는 것이다. 윤회의 중단은 고통스런 삶의 중단이요, 그로부터 벗어남이다. 열반, 해탈은 영원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연기적 조건 속에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당대에는 혁명적 발상이다. “고통을 외면하고 도망치는 게 아니라, 고통을 차분하게 직시하고 그 안에서 넘어서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석가모니가 새로운 깨달음의 길을 다시 찾아 나선 이유였다.” 고통이나 번뇌 없는 깨달음은 없다. 윤회하는 현세적 삶과 별개의 해탈이나 극락 같은 것은 따로 없다. 윤회하는 삶을 떠나야 할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에서 자신의 삶을 긍정할 만한 것으로 바꾸어가라는 가르침이다. 고통에서 배우려고만 한다면 깨달음을 향한 길을 알려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난 것이다.

 

가까운 자가 아니라 멀리 있는 자를 사랑하라.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가 만나는 이들에게 최대한 기쁨을 주고 최대한 슬픔을 덜어주며 살라. 나와 가까운 사람에게 베푸는 자비와 사랑은 집착이다. “연민 없이 사랑하라.” 동정이나 환대는 평등성과 거리가 멀다. 동정이나 연민에는 주는 자와 받는 자의 비대칭성이 전제되어 있다.

 

一切唯心造 : “내가 갖고 있는 마음이 일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밖에서 내게 다가온 연기적 조건이, 그 조건 속에 스며들어 있는 마음들이 나의 마음을 만들고 모든 것을 만든다.”

 

十二緣起 : 無明///名色/六處///////老死

앞에 것이 뒤 것의 조건이다. 뒤는 앞이 있어서 일어난다.

 

미움 없이 미워하라.”눈 업이 보고, 코 없이 냄새 맡는 것들”, “十二緣起의 어느 부분들은 읽어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불교를 철학하다>는 휴에서 201611월 초판을 내놓았고, 20179월 초판 6, 본문 356쪽 분량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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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철학자의 생각법 - 사유의 풍경으로 걸어 들어가다
로제 폴 드루아 지음, 백선희 옮김 / 책세상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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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18.7.3.()

허리를 세우고 걷는 행위와 생각하는 것은 동물과 인간을 구별하는 기준 중 하나다. 생각, 사고할 수 있는 인간이기에 철학을 발전시켜 왔던 사람들을 철학자라 부른다. 걷기와 철학자! 칸트가 걷는 시간에 태엽시게를 맞췄다는 일화가 진실인가 거짓인가를 구분하기 전에 떠오른다.

이동방법으로 걷는 행위가 자동차와 엘리베이터를 타고부터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매일 만보 걷기를 하려고 애쓰는 까닭은 하체를 튼튼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걷는다. 목표는 목표로 존재하고 월 2~25천보를 걷는다. 걷는 과정에서 인사이트와 사고의 융합도 경험한다. 글 쓰는 기간에 걷기는 엉킨 실타래를 풀 듯 글감을 늘려주고 다듬기도 한다. 건강을 목적으로 걷다가 경험한 통찰은 걷기의 가치를 키워준다는 걸 지난겨울에 경험했다.

그러니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이란 제목에 목차도 살펴보지 않고 구입한다.

전반부의 글 전개는 걷는 것을 조감하는 행위로부터 말하기, 글쓰기와 연계하려 한다. 조금은 억지스럽다. 인간이 걷는 행위를 아무리 철학자라지만 100여 페이지에 풀어가니 재미를 느끼기가 쉽지 않다.

다만, 걷기, 산책이란 행위를 꾸준히 했던 철학자들을 소개하는 세 번째 산책네 번째 산책은 지식으로써 의미를 갖는다.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밤늦게 출발할 만보 걷기를 할 일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덮고 60분간 걷다 왔고, 샤워를 마치고 독서노트를 쓰도록 움직였다는 것이 중요하다.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은 네 개의 산책으로 구성했다.

프롤로그 : 로봇이 위험하고 정교한 이를 해내지만 인간의 사소한 동작을 구현하기는 어렵다. 나이 들어감을 세월의 타격으로 표현한다. 이 책이 걷기, 말하기, 생각하기의 관계를 둘러싸고 구성되었음을 밝힌다. “말하는 건 걷는 것과 마찬가지로 추락이 시작되었다가 만회되고 다시 이어지면서 나아간다.” “생각하기와 걷기는 서로 닮았다. 생각 또한 불안정한 균형을 통해 나아간다. 무한히 균형을 잃었다가 되찾으면서 멀리 나아간다.” “철학은 걷기 방식과 유사한 존재 양식에 따라 이어진다. 넘어지면서, 넘어지는 걸 스스로 막으면서 무한히 반복하고 다시 시작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는 양식이다.”

 

첫 번째 산책 : 플라톤 철학의 핵심인 동굴의 비유는 우리가 감각의 허상에 사로잡힌 포로들이며, 진실의 그림자에 불과할 뿐인데 눈에 보이는 세계를 실제 세계로 여긴가는 걸, 지실은 저 너머 다른 곳에 있으며 우리가 찾아야 한다는 걸 알려주려 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소요자라는 별명을 갖게 된 것은 아침 일찍, 때로는 몇 시간 동안 씩 걸으며 성찰하고 말하는 습관이 있었던 탓이다.

회의주의자들은 미와 추, 선과 악, 진실과 거짓, 기쁨과 슬픔은 어떤 확실한 차이가 존재하지 않기에 선택할 일이 아니라고 한다. 세상의 겉모습을 보고 이런 대비들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뿐이다.

디오게네스가 이런 사람인 줄 몰랐다. 그는 집, 부인, 자식을 버렸고, 통 속에서 자고(이것만 알렉산더와의 일화로 알려져 있다), 신전에서 먹을 것을 훔치고, 사람들 앞에서 자위를 하고, 행인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단다. 화폐도 위조 했다네. ‘삶과 자연만 존중했다고 한다. 현대 기준으로 보면 연일 재판받고 교도소에 있어야 할 철학자다.

세네카 편에서는 로마에서 걸음걸이로 직업과 여자의 정숙함을 판단했다고 한다. “너는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향해 걷고 있다

 

두 번째 산책 : 힐렐의 일화를 소개한다. “성서 전체를 한 문장으로 말해달라고? 문제없네.” 힐렐은 사람들이 네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걸 네 이웃에게 하지 말라. 이것이 토라 전체의 말이네. 나머지는 모두 해설이네. 이제 가서 공주하게나......” 공자의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과 다름이 없다.

간주곡 : “일반적인 생각의 차원을 떠나 철학적 생각과 그 고유한 방식에 몰두하면 걷기와 생각의 닮은 점이 분명해진다.” “명백한 사실들을 문제 삼지 않고, 확실한 사실로 믿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하지 않는다면 철학도 없다.”

 

세 번째 산책 : 오컴이 활동하던 13세기 유럽은 모든 학자들이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며 라틴어로 말하고 읽었다. 오컴은 우리가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 존재하는 것을 처음으로 명백하게 구분하는데 이는 비트켄슈타인이 나오기 600년 전이다. ‘오컴의 면도날

몽테뉴는 서재에서 백 보를 걸으며 <수상록>의 텍스트를 받아 적게 하고 구술했단다.

루소는 걷기에는 내 생각을 활기차고 생기 넘치게 만드는 무엇이 있다. 나는 제자리에 멈춰 서서는 거의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내 몸이 움직여야만 정신이 깃든다.”라고 말했다. “낭만주의자들은 산책을 예술로, 하나의 존재방식으로, 거의 삶의 이유로 만든다. 어디론가 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발견하기 위한 걷기, 이것이 혁신이다.” 산책을 예술로라는 구절은 젊은 연인들이라면 끄덕일 듯하다. 저자는 루소가 <인간불평등기원론>을 쓴 원동력이 걷기에 있었다고 판단한다. 우리도 걸어야 한다.

칸트에게 걷기는 군대 같은 엄격함이 필요한 건강법이자 엄청난 작업을 하며 버티는 방법이었을 것이라고 본다. 저자는 칸트가 생활유지를 위해 많은 시간을 역사학, 지리학, 문학, 법학을 강의해야 했기에 대단히 일찍 일어났고, 사시사철 일했으며, 매일 일이 끝나면 걸었다고 한다. 칸트는 혼자 걷기와 코로 숨 쉬며 걷기 방법을 썼단다.

데카르트, 디드로, 공자, 노자, 붓다, 헤겔도 많이 걸었던 사람으로 묘사한다.

네 번째 산책 : 쾨뢰시 초머 산도르라는 철학자를 처음 알게 됐다. 언어에 재능이 있던 헝가리인인 그는 헝가리어의 기원을 찾아 헝가리에서 터키, 페르시아를 거쳐 티베트에 도착했고 이 걷기 여정에서 터키어, 페르시아어, 티베트어를 익혔다. 히말라야에서 걸어서 벵골과 콜카타까지 더 걸었다. 티베트에서 7년간 머무르며 영국의 부탁을 받고 티베트어-영어 사전과 티베트어 문법책을 만들었다. 이후 아시아를 한 바퀴 돌아보러떠났다가 아샘의 다르질링에서 쉰여덟에 이질로 죽는다.

소로는 하루에 적어도 네 시간 이상 걸었다. 월든 호수에 살 때. 소로가 걸은 것은 어디론가 가기위한 것이 아니라 낯선 것에 다가가기 위해서 였다.

걷기는 관찰과 반추의 원천이자 영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이 문장에 공감한다.

니체도 한 평생을 걸었다. 오직 시각을 다양하게 늘리기 위해서 이었으리라고 저자는 추측한다.

키르케고르, 비트켄슈타인의 걷기에 대해서도 저자의 생각을 밝힌다.

 

에필로그 : 철학, 걷기, 말과 생각은 동일한 내적 움직임에 의해 작동되는 유일하고 동일한 활동이다.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은 책세상에서 본문 219쪽 분량으로 201711월 초판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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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7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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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스키타이 초원에서 크림반도를 거쳐 콘스탄티노플과 피렌체, 파리, 런던을 휩쓴 흑사병이 유럽 인구의 삼분의 일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은 역사다.

<La Peste> 는 알베르 까뮈가 2차대전후 알제리 오랑이란 항구도시에 베르나르 리유라는 의사를 서술자로 두고 인간의 삶을 그린 소설이고.

역사와 철학이 주지 못하는 걸 문학이 줄 수 있음을 장 타루가 페스트에 굴복하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확인한다. 그는 성스러움을 추구하고 인간에 대한 봉사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던 사람이었기에. 노트를 기록하고 작품해설을 보려한다. 내가 느낀 것과 해설의 간극이 얼마나 가까운가를 알고 싶다. Peste는 베르나르 리유라는 의사가 Peste가 창궐하기 전에 허약한 아내를 요양원으로 보낸 후부터 시작한다. 리유는 소설의 주인공이다. 장 타루, 리사르, 늙은 카스텔, 그랑, 랑베르, 코타르, 라울, 파늘루라는 조연과 Peste가 시작돼서 수많은 목숨을 먼나라로 데려가고 제풀에 힘이 떨어져 폐쇄된 도시가 개방되기까지, 봄부터 이듬해 봄까지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까뮈는 5부로 소설을 구성했으나 독자인 나는 내 나름대로 를 동심원이 확대되는 것처럼 4단계를 거치며 소설을 재구성하여 읽는다.

첫 단계에서 도지사 리사르와 의사인 베르나르 리유의 입장차이, 즉 도시에 퍼지는 병을 Peste라 인정할 것인가 인정하지 않을 것인가를 두고, 관료와 의사의 서로 다른 시각을 보인다. 다음과 같이...... 리사르는 주저하다가 리유를 건너다보았다. “솔직하게 당신 생각을 말해 주시오. 당신은 이것이 Peste라고 확신합니까?” “질문을 잘못하셨습니다. 이건 어휘의 문제가 아니고 시간 문제입니다” “선생의 생각은 결국하고 지사가 말했다. “이것이 설령 Peste가 아니라 해도, Peste가 발병했을 때 취하는 예방조치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겠군요” “기어코 제 의견을 필요로 하신다면 사실 제 의견은 그겁니다두번째 단계는 Peste를 공식화하는 단계다. 지사가 파리로부터 받은 전보공문에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Peste사태를 선언하고 도시를 폐쇄하라.” 세 번째 단계는 베르나르 리유와 장 타루의 대화이다. “신이 있는가 없는가?” Peste로 죽어가는 사람수가 급격히 늘어갈 때 신을 탓할 것인가, 신을 원망할 것인가를 두고 이루어지는 대화를 삼단계로 본다.

마지막 단계는 인간에 대한 봉사가 평화를 가져온다. “인간에게는 경멸해야할 것 보다는 찬양해야할 것이 더 많다고 말하고 싶어 리유가 서술자로서 이야기를 쓴 거라는 고백이 네 번째 단계다.

 

호텔에 살고 있는 장 타루는 차장 검사를 아버지로 두었기에 한 때 유복한 시절을 지내 넉넉해 보이는 젊은이다. 그는 Peste 창궐로 도시가 폐쇄된 기간 내내 수기를 써 일상을 기록한다. 성스러움을 추구하고 인간에 대한 봉사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던 사람이다. 11월에 장타루와 리유는 테라스에서 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며 우정의 시간을 갖는다. 리유는 타루의 인생을 들어주고 방파제와 가까운 바다에서 수영하며 달콤한 추억을 만든다. 정월에는 타루가 Peste에 굴복한다. 수용소에 격리하지 않고 베르나르와 어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리사르는 도지사로 Peste를 공식화하기를 주저하는 전형적인 관료지만 책임을 다하다 죽는다.

늙은 카스텔은 Peste 혈청을 만들기를 반복하고 10월에는 실험한다. 그가 만든 혈청의 효과였는지, 겨울이 왔기 때문인지, Peste가 힘을 잃어서인지 명확치 않지만 그랑이 살 수 있었던 까닭중 하나다.

그랑은 시청 하급 공무원으로 아내 잔은 그를 떠났지만 잊지 못하고 글로 그리움을 쌓아둔다. 그랑은 Peste 막강한 힘을 발휘하던 때 봉사대인 보건대에서 서기 비슷한 역할을 해낸다. 베르나르 리유는 그랑을 보잘 것 없고 존재도 없는 영웅으로, 가진 것이라고는 약간의 선량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본다. 그랑에게도 Peste가 들어온다. 떠나간 아내 잔에게 행복하게 살라는 편지를 쓰고 싶다며 스러져가는 모습을 보며 울 수밖에 없었다. 소설 한 장을 넘기니 쥐가 다시 나타난다. 그랑의 병세가 호전돼서 소설 끝까지 살아 봉사한다.

랑베르는 폐쇄된 도시에서 탈출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신문기자다. 탈출 직전에 탈출을 포기하고 오랑에 남아 보건대 일에 동참한다.

코타르는 연금생활자로 한 때 자살을 기도했지만 폐쇄된 도시로 들여오는 물자를 암거래해 돈을 모은다. Peste가 쇠퇴하자 불안해하고 급기야 총을 쏘는 미친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체포된다.

라울은 랑베르의 도시 탈출을 도와주려 노력한다. 1만 프랑을 받기로 하고.

파늘루는 인간보다 신의 의지에 믿음을 깊게 가진 카톨릭 신부다. Peste가 만연하자 자원봉사에 열성적으로 힘을 보탠다. 그는 신부가 의사로부터 진찰을 받는다면 그것은 모순이라고 의사의 진료를 거부한다. 병명미상으로 기록된 죽음을 맞이한다.

 

소설 3부는 Peste 절정기의 아랑을 묘사한다. 봄에 시작된 Peste8월에 절정에 이른다. 공포와 반항을 내포한 생이별과 귀양살이, 시내에서도 격리구역 설정하기, Peste균을 없애겠다는 의도로 빈발하는 방화. 최대한의 신속성과 최소한의 위험성을 바탕으로 한 장례식. 곤궁이 공포보다 절박해지는 상황. 절망에 습관이 되어버린다는 것은 절망 그 자체보다 나쁜 것이다. 개와 사람의 죽음의 차이는 확인도장을 받느냐 마느냐의 차이다.

소설 4부는 9월부터 12월까지의 기록이다. 10월에 큰 비가 내리고, 혈청은 성공하지 못하고, 혈청을 투여한 어린이가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모두 큰 충격을 받는다. 11월은 비가 내리고 기온이 내려간다. 태양이 힘을 잃어간다. 12월이 되면 그랑의 병세가 절망과 희망을 주고받는다.

소설 5부는 정월부터 이월까지의 기록이다. Peste가 약화된다. 겨울추위와 함께. 카스텔의 혈청도 효과가 나타나고. 병이 제풀에 힘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 흥분과 의기소침이 교차한다. 단말마의 고통과 기쁨의 중간지점이다. 정월에 장 타루가 죽음에 굴복하고 이튿날 베르나르 리유는 일주일전 요양 가있던 안내가 죽었다는 전보를 받는다. 2월 어느날 오랑시는 폐쇄했던 문을 연다. 랑베르가 기차역에서 아내를 기다릴 때 행복은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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