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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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2019.1.28.()

 

저자의 문제의식은 금속활자로 만들어 낸 책이 어떤 역사적 역할을 했는가를 진지하게 고려한 적이 없다.”에서 출발한다. 이는 고려와 조선이 어떤 책을 찍었는지,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의도에서 책을 콘텐츠를 쓰고, 책을 만들고, 보급하고 소유했는가?”라는 당연한 질문에 대한 탐구다. 책은 독자에게 자신의 내용을 강요하거나 설득한다. 책은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에게 족쇄를 채우고,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을 해방시킨다. 그 의도를 알아차리는 것이 진정한 독서다. 인간의 역사는 곧 의도를 갖는 책의 역사들이다. 이와 갖은 사고방식에 터해 책의 날개에태종이 주자소에서 책을 인쇄해 팔라.”고 명령함으로서 조선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나아가 조선의 사대부가 그 책으로 만들어졌고, 결과로서 유교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는 책들이 600년간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판단한다.

 

이끄는 말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를 읽으며 자극된 왕성한 지적 호기심을 잊지 않고 싶다. 오래 기억하고 싶어 이끄는 말에서 밝힌 내용을 뜻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옮겨본다.

문자의 행렬을 해독해 나가는 게 책읽기다. 임진왜란 때 조선 전기까지 전해오던 고려 이전의 서적이 모두 소실되었다. 활자나 인쇄기술 쪽 연구는 진행되고 있으나 그 활자와 인쇄 기술이 쏟아낸 책들이 어떤 성격이었는지, 어떤 사람, 혹은 어떤 세력의 어떤 의도로 어떤 과정을 통해 얼마나 인쇄 보급되었는지, 또 그것이 양반 상놈을 포함하는 사화구성원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별반 알려진 게 없다. 활자와 인쇄술의 우수성만 되풀이하는 형국이다.

금속활자의 의미는 방대한 종수의 책을 찍어냈던 조선시대에 더 두드러졌다. 금속활자의 활용은 정도전의 아이디어였고, 태종이 정도전을 제거한 뒤 그 아이디어를 채택해 계미자를 만들어 책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금속활자는 다종 소량인쇄하고 널리 보급하기 위해서는 지방에서 목판으로 번각되거나 필사본으로 복제되었다. 대량 복제에는 목판 인쇄를 이용했던 것이다. 이런 기술은 당시 세계적으로도 수준 높은 것이었다.

讀書曰士, 從政曰大夫. 사대부는 기본적으로 독서인이다. 처음부터 한글로만 쓰인 책을 찍기 위해 한글 금속활자를 만든 적이 없었으니 세종과 그 시대의 지식인들의 생각에는 백성과 책을 연결시키는 상상력이 부족했다. 양반-남성의 영원한 제국을 위한 것이었다. 조선후기 민중의 손으로 만든 문학작품은 대부분 필사본이었다. 조선은 교서관(校書館)이나 지방 감영 등 국가 기관을 통해 책을 인쇄하고 유통시켰다.

조광조는 성리학의 윤리로 조선의 모든 인간을 윤리적 인간으로 만들려 하였다. 조광조로 대표되는 기묘사림은 소학, 삼강행실도 등 막대한 분량의 다양한 윤리서를 찍어내 보급하는 것을 과업으로 삼았다. 이어 퇴계와 율곡은 자신들의 시대에 비로소 인쇄된 <주자대전>을 정독하고 성리학에 대한 이해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었다. 조광조 이후에 조선조 학문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서양 중세에 라틴어가 귀족과 승려의 전유물로 성서는 민중이 읽지 못했고, 양피지에 쓰여 고가였기에 쉽게 구할 수도 없었다. 조선과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정도전, 태종, 세종, 조광조, 이황, 이이는 조선 전기 서적 문화의 중심에 서 있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지향한 책 문화는 양반-남성의 지배를 합리화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조선 서적문화를 이해하는 기본 틀이다.

조선에는 출판업자가 없었고 상업적 출판은 20세기 초에 나타난다. 조선조에는 사후 간행된 문집 2,300부를 친지에게 나누어 주는 수준이었다. 문인과 지식인들의 독서 대상은 중국의 책들이었다. 조선 저자의 것이 아니었다. 명나라 성조때 편찬된 <사서대전>,<오경대전>은 세종 때 수입된 이후 조선에서 사서오경의 독점적인 판본이 되었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은 중국에서 수입된 책에 코멘트를 달아 편집한 것이고, 이익의 <성호사설>은 중국 최신 서적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정리한 책일 뿐이다. 18세기 후반 조선 학계의 탁월한 업적은 직간접적으로 북경 유리창에서 수입된 서적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박지원의 산문과 그의 사유는 이 시기 중국에서 수입된 공안파(公安派)의 비평이론과 김성탄(金聖歎)의 소설 비평에 기원을 두고 있다. 책벌레 이덕무가 골몰했던 책들도 거개 중국의 신서였으며, 또 그의 참신한 산문의 이론적 근거 역시 공안파의 저작에 있다. 이러한 박지원류의 문체와 사유를 탄압했던 정조의 文體反正 역시 이 시기 북경에서 수입된 서양 서적들의 이단적 사유의 유통을 금지시키려 한 것이었다. 새로운 사유에 긍정적 진보적 사례인 박지원, 박지원과 대척점에 있던 보수로 그만의 독서 원리와 방법을 구축한 홍석주, 다독을 목적으로 삼은 독서가였던 유만주 모두 중국책의 애독자이자 비평가였다.

조선의 독서 문화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붕괴되었다. 언문일치운동으로 막대한 양의 책이 폐기되거나 일제강점기에 해외로 반출되었다. 한글을 쓰자도 한문서적을 살리자는 것도 민족주의의 주장이었다. 역사는 책벌레가 만든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언어화되고, 그 언어를 담아 유포하는 것이 바로 책이기 때문이다.”

 

1. 혁명의 완성을 꿈꾸었던 정도전의 금속활자 : 목판인쇄는 단 1종의 인쇄물을 얻는다. 금속활자는 대량인쇄가 가능하다. 조선조에서 금속활자는 소량인쇄에 이용하였다. 정도전의 <서적포를 설치하는 시>를 썼으나 금속활자가 활용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태종 이방원이 계미자, 세종은 갑인자를 만들어 서적을 인쇄했다.

2. 정도전의 아이디어를 훔친 태종의 계미자 : 13921월 서적원을 설치하고 7월 조선이 건국되어 서적원의 관제가 조선으로 이관되었다. 1395<대명률직해>가 목활자로 인쇄되었는데 이두로 구결을 소상히 달았다. 1400년 태종이 주자소를 설치하고 금속활자를 제작하였다. 9개 월 만에 수 십 만자의 활자를 제작했다. 1410년 태종은 비로소 주자소에 명하여 서적을 인쇄해 팔게 했다.(태종실록)” 조선전기의 권력은 왕권에서 연산군이후 신권으로 넘어갔다.

3. 타고난 독서가 세종 그리고 금속활자 : 세종은 밤 1시에서 3시 사이에 일어났단다. 사신과의 대화를 위해 중국어도 배웠다. 중국어 습득을 위해 유학생을 요동과 북경에 보내고자 하였으나 중국이 거절했다. 세종대에 갑인자가 주조되는데, 활자 크기가 커지고, 밀납이 아닌 대나무로 활자를 고정해 인쇄 속도가 빨라졌다. 계미자는 하루 10장미만, 경장자는 20, 갑인자는 40장을 인쇄할 수 있었다. 갑인자는 조선의 대표 활자다. 당시 중국은 비용 탓에 목판으로 회귀하였고 일본은 금속활자를 몰랐으니 조선이 최고의 수준이었다. 그러나 금속활자는 사대부의 전유물이었고 조선활자는 대략 10만에서 30만자였다.

4. 모든 인간을 도덕화하라 : 조광조가 꿈꾸던 이상 사회는 모든 개인이 도덕적 인간이 되는 사회였다. 이를 실현하려 <삼강행실도>,<이륜행실도>,<여씨향약>,<열녀전> 등을 보급하였다. 이 모든 윤리서적은 <소학>에 근원을 두고 있다. <소학>은 인간의 일생과 일상을 구체적으로 제약한 규범이었다. 중종은 <소학> 1,300부를 찍어 관료와 종친에게 나누어주었다. 기묘사화는 소학화파와 반소학화파의 대립이었다. 소학에 근거한 사림들의 도덕 위주의 문화를 쇠퇴하게 만들었다. 선조 때 사림은 정계에 복귀한다. 소학도 부활한다. 그렇다고 도덕적 사회가 된 것은 아니다. 당쟁이 시작됐다. 그들 역시 과거 부패한 정권과 다르지 않았다.

5. 주자대전을 섭렵한 퇴계 이황 : 1419년 세종 1년 영락제로부터 <성리대전>,<사서대전>,<오경대전>을 받아다가 인쇄하여 전국에 배포하였다. <성리대전>은 성리학을 공부하는 학습용 책으로 성리학의 기본 개념을 서술하고 있다. 퇴계가 43세 되던 해에 주자대전을 접한다. 퇴계는 성리학의 이해를 위해 100권의 <주자대전>을 탐독하고 48권에 이르는 주자의 편지를 훑어가며 주자 당시의 송대 지식인과 송대 역사에 대해 정밀하게 탐구했다. 이를 바탕으로 퇴계는 <주자서절요>를 지었고, 1561년에 2010책으로 처음 간행했다. 이후 전국적으로 간행되어 주자학으로 들어가는 가장 보편적인 문이 되었다. 이후 봇물처럼 제자들에 의해 관련 서적이 쏟아졌다. 장유는 1632<개복만필>에서 중국에는 다양한 학문이 존재하는데 반해 조선은 오로지 주자학만 안다고 학문의 편협성을 한탄했다.

6. 율곡 이이의 독서예찬 : <자경문>독서란 옳고 그름을 분별하여 일을 행하는데 실천하는 것이다. 만일 살피지 않고 오뚝 앉아 독서만 한다면 무용한 학문이 된다고 정의한다. 일을 하지 않으면 책을 읽고 사색하는 것이 율곡의 일과였다. 율곡에게 독서는 인간 행위의 윤리성을 판단하는 준거였다. 조광조-퇴계-율곡에 이르는 사림정권이후 학문의 다양성이 실종되었다.

7. 미암 유희춘의 책 모으기 : 임진왜란 기간 경복궁 불타고 고려로부터 전해온 전적과 조선 건국후 200여 년 동안 생산된 방대한 문서가 재가 됐고, 전국 지방 관아에서 축적하고 있던 엄청난 양의 목판들도 재가 됐다. <이암일기>는 조선 전기 사람들의 생활사 복구 자료로 중요하다. 유희춘의 장서 축적은 목판을 소장한 교서관에 인쇄에 필요한 비용과 종이를 대고 목판 인쇄본을 받아 보관한 것과 지방의 감사나 지방관에게 부탁하여 인쇄한 것이다. 선물 받은 책, 물물교환, 매매, 사신단을 통해 수입, 대가를 지불한 필사 의뢰 등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3,500책 이상 소장하였다. 전쟁과 세월이 지나 그의 축적은 오유(烏有 : reverting to nothing 흔적 없이 이전 상태로 돌아가다) 되었다.

8. 세상의 모든 것, 이수광의 지봉유설 : 20권으로 당시 중세인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7권은 문장(문학)이다. 이전의 한국 역사에서 이와 유사한 저작은 없었다. 독서와 메모의 축적이 새로운 저술로 나오게 된 거다. 책은 3,435 조목, 등장인물 2265, 서적의 저작자 348명을 포함한 책이다. 이수광은 베트남, 라오스, 타일랜드, 자바,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필리핀 등 30개 아시아 국가와 포르투갈, 영국, 구라파국 여러 나라를 소개한다. 명나라 사람 정효가 1599년에 저작한 <오학편>을 인용한 것이다. 명나라 사람이 지은 <속이담>이란 책을 읽고 최초로 천주실의를 언급하기도 하였다. <곤여만국전도>와 책을 통해 서양을 인식했다. 사신으로 갔다가 북경에서 안남, 유구, 타일랜드 사신과 필담으로 대화를 나누고 한시를 주고받았다. <지봉유설>은 유서(類書 : 여러 문헌에서 발췌한 지식을 유사한 내용끼리 묶어 분류해서 묶은). 성리학이 성과 , 같은 관념의 조작에 몰두할 때 이수광은 현실의 구체성을 다뤘다는데 의미가 있다.

9. 허균이 만든 가짜 책과 이단 시비 : 허균이 이탁오를 만나고 그의 <장서 : 유가의 역사의식을 뒤집은 책>,<분서: 이탁오 사상의 핵심인 동심설, 하심은론, 사론을 실어 둔>를 읽었다고 하나 우리의 선입관과 달리 이탁오처럼 성리학에 철저하게 각을 세운 사상가는 아니었다. 공금을 횡령한 듯하고, 문장이 뛰어난 천재인 것은 틀림없으나 경박했다.

10. 이단 아닌 이단자 박세당 : 주석가의 주장이 권력과 결합해 비판의 목소리를 뭉갤 수 있다면 진리가 된다. 진리를 만드는 것은 논리의 적합성이 아니라 오로지 권력일 뿐이다. 정이와 정호, 주자가 <대학>의 착간을 지적해 바로 잡았듯이 박세당도 착간을 바로잡았다. 그 결과가 <사변록>이다. 주자가 했듯이 대학과 중용의 중요한 문장을 자기 생각에 따라 다시 배열했다. 이는 당쟁에서 정통을 벗어난 이단의 빌미가 됐다. <사변록>에서 이단성을 찾을 수 없다. 정쟁에 희생된 것이다.

11. 장서가 이의현의 책자랑 : <경자연행잡지>에 이의현의 북경방문 42일간의 기록이 있다. 18세기 후반 유리창에서 51, 1,328권의 서적과 서화 15건을 구입해 왔다. 양명학파 계열의 문집과 이탁오의 책도 구입했다. 조선 지식인에게 중국 서적을 공급하던 파이프라인 역할을 했던 서반(청의 궁정 예식 안내원)을 통해 서적을 구입했다. 조선에 금속활자나 목판본으로 찍은 책은 중국 24와 같은 거질의 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의현은 출세했지만 골수 노론으로 새 책과 새 세상이 소용없었다.

12. 한가하게 쓴 방대한 사전 이익의 성호사설 : 3030, 3,000개 항목을 담아낸다. <성호사설>도 유서류의 저작이다. <지봉유설>과 다른 점은 사회비평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시험 공부를 위한 학문이 사람의 본성을 해친다. , 부등 문장으로 국가 경영 인재를 선발하는 것은 잘못이다. 서울과 시골의 문화적 불평등이 권력의 불평등이 된다. 혼인으로 당파를 형성하는 고질명은 명철한 임금도 어쩔 수 없다. 노비제도 폐지. 재물은 노동의 대가여야 한다.’ 등을 담고 있다. <성호사설>은 정약용,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정인보 등 사회를 고민 했던 양심적 학문의 계보다.

13. 홍대용, 북경 유리창에 가다 : 1765년 홍대용의 북경 방문은 조선의 학문과 예술, 문학에 파란을 일으켰다. 홍대용이 청의 지식인들을 만나 인맥을 구축한 것은 조선후기 지성사의 전환점이 된다. 이들의 인맥을 통해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박지원, 김정희가 중국학자와 문인들을 만나 우정을 쌓고 학문과 문학, 예술을 논할 수 있었다. 동시대의 홍대용은 신문물을 받아들였으나 정조는 북경에서 수입된 책이 조선 지식인을 오염 시키고 주자학을 해친다고 판단하여 서적 수입금지령을 내렸다. 당시 북경에는 수 만권을 갖춘 대형서점이 11개나 있었으나 조선에는 서점이 없었고, 서적 거간꾼인 서쾌만 존재했다.

14. 책을 읽는 바보 이덕무 : 이덕무는 서파(庶派)였다. 분하지만 참고 단정한 길을 걸었다. 지적 행위로서의 독서에 몰두했다. <사소절>,<관독일기>

15. 연암의 문학은 어디서 왔는가 : 연암의 문학이 독창적이지 않다는 결론을 여러 증좌로 설명한다. 연암의 산문을 가능케 한 것은 외부의 사유, 곧 책이었다. 청대 문인이자 비평가인 김성탄의 <수호지>비평에서 영향을 받았다. 이탁오 사상의 영향을 받은 원굉도의 문학은 오로지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사유와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라 주장한다. 연암이 필사한 책과 자신의 발언을 통해 알 수 있다. 열하일기와 산문은 작가의 독창적 사유를 개성 있는 언어로 드러낸 것이다.

16. 책을 탄압한 호학의 군주, 정조 : <홍재전서> 정조는 자신이 다스리는 세상을 가장 보수적인 정통주자학에 의해 완벽하게 작동되기를 원했던 사람이다. 서양서적, <금병매>, 소품, 고증학을 이단적 사유로 보고 문체반정으로 사상을 통제했다. 문체반정이란 된서리를 맞은 <열하일기>는 당대에 인쇄되어 유통되지 않았다.

17. 이옥의 문제반정 : “만물이란 만 가지 물건이다. 진실로 하나로 할 수 없다.” 획일화와 일반화는 폭력이다. 이옥의 글에서 시공간에 따른 다양성, 개별성을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로써 이옥에게 성리학의 一理的 세계관은 해체된다.

당신은 술집에서 왔다 둘러대지만 창가에서 온 줄 나는 알아요. 어닌 일로 한삼위에 연지가 꽃처럼 찍혀 있나요. 당신, 내 머리에 대이지 말아요. 옷에 동백기름 묻어나니까요. 당신, 내 입술 가까이 오지 아요. 붉은 연지 부드럽게 흐를 듯해요. 차라리 장사꾼의 아낙이 될지언정 난봉꾼의 아낙은 되지를 마오. 밤마다 어디를 쏘다니는지 아침이면 돌아와 하느니 술타령인걸요.”

18. 다산 정약용의 다작 : 다산의 저작은 박학과 다독의 소산이다. 박제가의 <북학의>, 박지원의 <열하일기> 다산 정약용의 여러 자작들은 당대에 인쇄되거나 보급되지 못했다. 1900년에야 인쇄 발행됐다. <여유당전서>1936년에야 출판됐다.

19. 사대부의 이상적 삶과 서유규의 임원경제지 : 서유구는 경화세족으로 장서구축은 그들의 문화였다. 서유구의 가문은 18세기 후반 북경발 신학문을 수용한 최고 수준의 학자가문이었고, 훈육을 받을 수 있었다. 사직 후 18년간 학적 노동의 결과로 11352책의 <임원경제지>를 남겼다. 전원에서 품위 있는 삶, 자족적인 삶을 위한 방법을 담고 있다. 900여 참고자료에서 찾아낸 자료로 구성한 책이다.

20. 홍석주 가문의 책읽기 : 홍석주가 아우 홍길주에게 준 <홍씨독서록>을 통해 한 분야에 깊이 빠진 공부보다 넓게 많이 읽는 것이 내게는 맞는 것 같다.

21. 유만주-한 젊은 지식인의 광적인 독서체험 : 유만주의 아버지 유한준(1732~1811)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문장의 작자다. <흠영>에 독서 기록을 남겼다. 13년간 하루도 빼지 않고 기록한 일기다. 수많은 책을 읽었고 <수호지>에 매료됐으며, <서양기>를 읽어 기하학, 곤여전도, 지동설을 알고 있었다. 박학의 추구는 18세기 지식인들 사이에 유행이었다.

22. 신채호의 영어책과 고서 : 신채호의 학문은 한학에 기초하고 있다. 상해 망명 시절에 영어를 배웠는데 능통했다. 구서 읽기를 쓸데없는 지난 이야기라 하고 근대 지식인의 신서만 찬미하는 것은 노예근성이 초래한 바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던 민족주의자, 독립운동가, 역사학자, 문필가, 아나키스트였다. 일제 강점기에 한문으로 된 서적은 한국인이 돌보지 않는 사이에 일본인들이 헐값에 사들이고 빼앗고 훔쳐 가져갔다.

 

다음은 저자 강명관의 시각으로 학교 교육이 담아내지 못했던 것들로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언사. 한문과 교수로 오랫동안 한문서적을 읽고 연구한 결과로 본다.

저자는 조선을 통치한 27명의 왕중 세종만이 仁政과 왕도정치로 백성을 위했을 뿐 나머지는 수탈자였다.”고 판단한다.

조광조가 <소학> 보급에 전력투구한 것은 철저한 가부장적, 남성 중심적 시각에서 오직 지배층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일이었다고 저자는 판정한다. 윤리와 도덕만 진리로 강요될 때 그것은 폭력이 된다고. 공감한다.

조선 지식인들이 퇴계의 노력 덕분에 주자에 대해 깊이 이해했으나 주자라는 거대한 호수를 벗어날 수 없었다고 안타까워하며, 퇴계를 존경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무슨 책을 읽을 것인가? 는 학문이란 무엇인가 묻는 것과 같이 거창한 문제라고 본다. 율곡이란 천재에 의한 텍스트의 고정과 절대화는 당연히 다른 텍스트를 배제했고 조선 사림의 사유를 편협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한다.

허균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조선 후기 사회에서 서구 근대의 모습을 찾으려는 한국인의 욕망이 만들어 낸 허구라고 본다. 허균이 4,000여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었으나 이를 읽고 소화해낸 것은 아니라고 볼 때 소장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정조에 대하여 저자는 일반의 평가와 달리 정조를 근대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본다. 새로운 사유에 철퇴를 내리고, 주자학 서적 보급에 골몰한 정조가 개혁군주일 수 없다는 것이다. 서유구의 임원경제지가 잡다하다는 평가에 대해 새 책은 쉽지 않다.” <도덕경>,<장자> 석가, 예수, 마호메트의 어록 <자본론>,<종의기원>,<꿈의 해석> 말고 대부분은 해설과 각주에 불과하다는 게 저자 생각이다. 저자는 18세기 조선의 학문은 청에 1세기 뒤졌다고 본다. 책읽기가 무너짐에 따라 한국 사회의 교양층이 무너지고 있다고 본다.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을 읽으며 생각한 독자 의견이다.

이두를 연구하려면 조선 태종때 목활자로 인쇄된 <대명률직해>도 포함해야 한다. 이두로 구결을 소상히 달았다고하니. 한국에 양주동이후 이두를 읽고 해석하는 사람이 남아있는지. 한국 여성들의 억울함의 시원은 조선 조광조의 의식에 있다. 고려나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남성과 여성의 상하는 그리 크지 않았다. <소학>에 대한 저자의 비판적 견해에 대부분 공감하나 학교 현장에서 자기 주변 청소를 할 줄 모르고, 휴지를 주우라면 내가 왜 주워야하느냐고 되묻는 상황이다. 우리 부모 세대가 <소학>의 일부라도 실천하고 가르쳤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소학은 눈을 뜨면 침구를 정리하고 소제하라고 가르쳤다. 퇴계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 준 것은 책을 읽는 기쁨이다. 하나의 완성은 나머지의 배제라는. 율곡의 <격몽요결>은 개인의 삶의 자세를 만들어가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 20대 초반부터 격몽요결을 틈틈이 읽고 썼다. 오유(烏有)라는 어휘를 배웠다. 에도시대에 일본에는 서점이 많아 서적의 거래가 활발했다. 일본의 근대화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문화의 축적이 근대화의 수용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라는 신상목의 견해에 공감한다. <지봉유설><성호사설>에 대한 평가에서 오늘날 독서가들이 가야할 길을 본다. 지혜에 이르는 길은 知思識見解라는 개념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이탁오 평전>을 읽은 것이 조선 후기 문화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넓게 읽어야 겹치는 부분이 생기는 거다. 유홍준 교수의 가치가 학계에서 대중의 인식보다 비중 있게 여기지 않는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감이 온다. 이덕무는 내가 어려울 때 견주어 힘을 내게 하는 인생의 데카르트 좌표다. “교과서는 인간의 지식을 제한하는 감옥이다.”는 저자의 격한 표현은 교과서는 지식의 일부로 임으로 평생 공부하여야 한다로 바꾸어 수용한다. 신채호남 남과 북에서 인정 받듯이 어떤 이데올로기든 일제 강점기에 독립을 위해 힘쓴 사람들은 높게 평가하고, 일본에 빌붙어 호가호위한 이들도 그에 맞는 평가를 해야만 한 단계 도약이 쉬울 것이다.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는 푸른역사에서 2007년 본문 380쪽 분량으로 내놓았다. 지적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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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 시간 - 세상의 모든 것을 만나다
최보기 지음 / 모아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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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시간

2019.1.26.()

2019126일 토요일 오후다. 오전에 <지리 창문을 열면>을 읽고, 오후에 <독한시간>을 읽었다. <독한시간>은 북칼럼니스트의 칼럼을 묶어 낸 책이다. 북칼럼니스트가 추천한 책을 읽는 것은 여러모로 장점이 있다.

첫째, 먼저 읽고 추천하기에 질 낮은 책을 피할 수 있어 안전하다. 땀 흘려 책을 쓴 작가에게는 미안하지만, 읽다보면 짜집기와 허망한 이론, 얕은 지식을 모은 책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 넓게 보고 책을 선택할 수 있다. 독자가 모든 책을 다 읽을 수도 없거니와 좋아하는 분야가 있다. 북칼럼니스트가 추천하는 책을 읽다보면 그와 내 취향과의 차이를 자연히 알게 된다. 덕분에 눈여겨보지 못한 영역을 늦게라도 챙겨볼 수 있다.

셋째, 북칼럼니스트는 필연적으로 다독가여야 한다. 고전과 신간, 베스트셀러와 많이 팔리지 않지만 의미 있는 책들을 읽고 골라낼 수 있다. 그러니 북칼럼니스트가 추천하는 신간은 믿고 살 수 있다.

 

<독한시간>을 읽어가며 63권을 어떻게 묶었는가를 눈여겨보았다. 변화와 혁신,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출발하기 위한 전략을 인생의 봄을 만나다로 묶었다. ‘찬란한 여름을 맞이하다로 묶은 영역은 노력, 타인의 삶이 아닌 자신의 삶, 행복, 여성이해, 아이들의 삶을 응원 위해 알맞은 책들이다. 문학작품에서 만난 인간의 삶과 죽음, 일깨움, 역사읽기, 배우는 책읽기, 자연에 관한 책들을 묶어 가을날의 사색과 함께하다를 만들어냈다. 읽고 쓰기, 평생 독서, 발상의 전환을 담은 책들을 겨울의 지혜에 맞서다라는 장 제목으로 묶었다.

 

짧게 쓴 글이라 미끄럼틀 타고 내려가듯 쉽게 읽힌다. 현학적인 냄새도 풍기지 않아 추천한 책을 독자가 스스로 선택하게 열어두었다. 아마도 추천도서 63권을 다 읽은 사람은 세계에서 오직 저자 최보기님일 것이다. 하지만 그 기록 보유기간을 장담할 수 없다. 많은 독자들이 따라 붙을 것이고 읽어가는 독자 중에 나도 있을 터이니

 

<독한시간>은 본문 244쪽 분량으로 2019122일에 발행한 최신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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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창문을 열면 - 청소년을 위한 지리학개론, 2019 올해의 청소년교양도서 봄분기(상반기) 부문 선정 도서, 2020 전국지리교사모임 추천도서
서태동.하경환.이나리 지음 / 푸른길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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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 수업에서 손을 뗀지 9년째다. 지도가 재미있어 선택한 지리교육이 30여년 내 전공이었다. 현직에 있을 때 책을 내보고 싶다는 꿈은 꿈이었는데, 상무고등학교 서태동 선생님과 하경환, 이나리 선생님은 지리교사의 꿈을 실천했다.

 

지리는 공간 속에 자리를 잡아 장소를 만들고, 장소 간의 이동을 통해 지역성을 만들어 내며, 동시에 다양한 스케일로 세상을 바라보는 플랫폼이다. 이제 지도를 통해 지리를 느끼면서 다시 지도 밖으로 행군하는 용기를 갖자!”고 바램을 피력한다.

 

부제가 청소년을 위한 지리학개론이다. 청소년으로 빙의해서 읽고자 시작했다. ‘1장 지리, 세상의 모든 것은 적벽대전과 칠종칠금,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방법, 공간을 책과 영화, sns등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추어 지리를 소개한다. 2장부터 8장까지는 입지, 공간, 장소, 이동, 지역, 스케일, 지도를 다룬다. 저자의 장소감을 소개하는 신두리 해안사구를 읽으며 추억을 떠올린다. 1990년 신두리와 8km 거리에 있던 원이중학교에서 근무했다. 소풍 장소로 결정된 신두리 사구까지 걸어서 오고갔다. 당시 권혁재 교수님의 지형학에도 소개 되지 않았었으니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해안지형이었다. 미리 알지 못하고 수년이 지나 권교수님의 지형학에 신두리가 소개돼 중요성을 알게 됐으니 지리를 배웠다고 하나 제대로 배운 게 아니었다.

 

읽다보니 행정한다고 교과수업을 하지 않고 지낸 시간이 길어 청소년의 시각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사실이나 개념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앞선다. 세월이 흘렀나보다. 지오캐싱(geocaching)은 처음 접한다.

 

자녀나 주변 친구의 자제들이 중고등학생이라면 선물해주면 좋을 책이다. 지리가 뭔지 모르고 지리과에 점수로 합격한 학생들에게도 먼저 읽어 보게 추천한다. 지리를 오해하는 사람에게 지리를 전공하면 요런 거를 배운다고 알려 줄 수 있는 책이다. 학부에서 배운지 오래되고 중학교에서 지리, 역사, 일반사회를 가르치다가 감도가 떨어지는 선생님도 두 시간만 내면 주욱 훑어보고 학부시절로 돌아가보는 추억을 만들 수 있다.

 

<지리 창문을 열면>을 집필하신 서태동, 하경환, 아나리 선생님에게 고마움을 보낸다. 책은 지리서적 전문 출판사인 푸른길에서 본문 194쪽 분량으로 201810월에 초판이 나왔고, 12월에 2쇄를 찍어냈다. 345쇄가 넘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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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은 인문학이다 - 흥미진진 영어를 둘러싼 역사와 문화, 지식의 향연
고이즈미 마키오 지음, 홍경수 옮김 / 사람in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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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원은 인문학이다

2019.1.25.(금)


<어원은 인문학이다>를 고를 때 우리보다 번역에 훨씬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붓는 일본의 시각에서 나올만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어원을 찾아가는 것은 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메이지시대 이래로 서구사상을 통째로 번역했던 경험이 가능하게 한 책이다. “서구인에 의한 일영사전 출간보다 50여 년이나 앞서 일본인들이 영어를 습득하기 위해 영일사전을 만들었다”는 사례에서 보듯 적극적인 자세가 있었다. 

앞부분을 읽다가 장시간 비행기를 타야만하는 시간에 읽기에 딱 맞겠다 싶어 미루어 두었다. 단어마다 1000자 내외로 풀어 놓아 짬이 나는 대로 읽기 쉽고도 좋게 편집돼 있다. 여행 계획이 취소돼 한달음에 읽는다. 

신화를 포함한 세계사의 흐름을 이해하고 있지 못한 상태라면 400쪽이 넘는 분량과 172개 어원이 뒤죽박죽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행히 편집 경력자인 저자는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 중세, 근세(전), 대항해시대, 근세(후), 아메리카 대륙의 개척시대, 근대, 세계대전, 전후 21세기로 장을 나누어 세계사 흐름에 따라 어원을 배치하였다.

그리스 신화에서 찾은 어원 12가지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요약한 느낌을 받으며 반가운 마음으로 카오스부터 가이아, 아프로디테, 니케, 뮤즈, 아마존, 아킬레스, 멘토, 세이렌, 판을 만난다. 이후부터는 학교에서 배운 그리스 역사에 따라 어원을 풀어간다. 강연자라면 강연 중 에피소드로 활용할 수 있겠다. 대부분의 어원을 풀어가는 이야기가 신화와 역사, 문학, 전쟁, 과학기술과 연관된 내용이다. 다독자라면 과거에 읽은 책에서 봤던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을 밟을 거다. 

<향연>에서 소크라테스가 ‘모든 것을 초월한 아름다운 그 자체’‘아름다움의 본질과 원형’을 ‘아름다움의 이데아’라 정의하고 이를 추구하고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결론 내렸음을 소개하며, ‘남녀 간의 육체관계 없는 정신적인 사랑’으로 사용되는 플라토닉 러브는 오해라고 밝혀낸다. 11세기 초 Doomsday Survey가 세계 최초의 토지조사 기록이라는데 우리역사 보다 앞선다. ‘광대한 플랜태저넷 왕조’에서 마그나카르타를 인정할 수박에 없었던 존 왕의 처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는 하루 시간 노동, 의료비 무료, 안락사 승인이라는 복지 정책을 그려냈음을 배운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G. 오웰의 <1984>가 유토피아와 반대되는 Dystopia를 그린 소설이다.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새로운 단어와 표현 3,000여개 중 유명한 것은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으로 be 대신 다른 동사를 넣어 재치 있게 쓰는 표현을 소개한다. 아메리카의 추수감사절은 필그림스가 1620년 가을에 도착해 겨울 동안 반이나 죽어나갔으나, 이듬해 가을에 풍족한 수확에 감사하며 식량을 원조해 준 인디언을 초청해 벌인 잔치였단다. 공식을 외우지 않아도 될 수 있는 체감 방법에 따르면, 화씨 60도는 섭씨 15.6도로 날씨 좋은 가을날 온도, 화씨 90도는 섭씨 32.2도로 한여름 평균온도, 화씨 100도는 37.8도로 한여름 가장 더운 날 정도다. 골드러시 당시 일본에서 표류해 간 어부 ‘만지로’는 ‘료마가 간다’에서 언급된 일본인이다. 한국전쟁 때 중국군이 미군 포로에게 공산주의를 믿으라고 강요한 행위를 중국어로 세뇌(洗腦)라고 하고, 그대로 직역해 brainwashing이 됐다. <Dear John letter>라는 노래가 ‘이별의 편지’고, 2개월 후 <Forgive me, John>이 나왔다는 ‘전쟁과 여인’의 에피소드도 재미있다.


영어를 업으로 살아야한다면 어원별로 용례를 요약해 두고 쓰면 좋겠지만 나는 아니다. 저자 고이즈미 미키오는 역사와 어원을 결합한 이런 종류의 책은 세계 최초라고 자부한다. 옮긴이와 저자의 인연으로 한국에 번역된 책이다. 사람인출판사에서 2018년 11월 본문 415쪽 분량으로 초판을 내놓았다. 내용은 깊이가 얕지만, 책을 쓴 저자는 역사와 문화에 대한 깊이가 있어야만 가능한 책이다. 많이 팔리는 이유로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가 추천한다는 광고 문구 덕도 있을 듯. 극장의 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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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 리들리의 본성과 양육 - 인간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매트 리들리 지음, 김한영 옮김, 이인식 해설 / 김영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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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초 파블로프와 개 실험과 손다이크, 프로이드의 이론을 배웠다. 인간의 의지, 소박하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것인데 뭐 하러 개에게 실험을 하는가 생각하기도 했다. 때로는 학습이론이 더 유용하다 판단했다. 본성이란 단어에서 성선설과 성악설을 떠올리고, 욕망, 리비도를 떠올린다. 인간에게 식욕, 수면욕, 성욕이 기본적인 본성이라는 수준을 넘어 생각하며 살지 않았다. 문제가 있는 학생을 대할 때 가정 사정, 가족의 직업, 평소 성격, 친구 관계 등 될 수 있는 대로 여러 시각을 종합해서 보기도 했다. 때로는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는 원인을 찾기도 했다. 간혹 불행하게도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서로에게 포기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도 했다. 학생을 가르쳐야하는 직업에서는 본성을 극복하고 양육하는데 힘을 써야한다고 여기는 것이 일반적인 판단이다. 환경의 중요성에 비중을 두고 환경을 바꿔보려 시도한다.

 

좋은 책이라 판단하는 <본성과 양육>을 읽고 추천한 페이스북 친구의 글을 보고 읽자 판단했다. 20세기 내내 인간의 행동은 유전에 의해 결정되는가.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가를 둘러싼 100년 간 논쟁을 파헤친 책이다. 옮긴이의 표현대로 본성과 양육의 논쟁사를 다룬 서사시다. 427쪽 분량으로 수많은 이론과 연구사례를 담고 있다. 생물학, 우생학, 화학, 사회학, 교육학, 사회생물학, 진화심리학 등 학제간 연구 결과를 토대로 저자 매트 리들리는 양육을 통한 본성이란 결론을 내린다.

 

본성과 양육의 논쟁을 학자별, 역사 순으로 정리해보면

양육(환경)이 인간 행동을 지배한다.

존 로크(1632~1704) : 타블라 라사(tablula rasa) 빈 서판 같은 인간 마음에 경험이 채운다. 본성을 부정하고 양육을 옹호하는 개념

존 왓슨(1878~1958) : 행동주의 심리학 창시, 훈련만으로도 성격을 임의대로 바꿀 수 있다.

이반 파블로프(1849~1936) : 조건반사 이론

지그문트 프로이드(1856~1939) : 어린 시절 경험이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

프란츠 보아스(1858~1942) : 문화가 인간을 본성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에밀 뒤르켐(1858~1917) : 사회적 현상은 생물학적 요인에 의해 설명될 수 없다.

장 피아제

 

본성(유전)이 인간 행동을 지배한다.

우생학의 뿌리(!?) : 플라톤은 <공화국>에서 뛰어난 남녀를 부부로 만들고 열등한 자들끼리의 결혼을 막아야한다고 주장하여 본성을 강조한 것임.

장자크 루소(1712~1778)와 임마누엘 칸트(1724~1804) : 인간은 본성을 타고 난다

찰스 다윈(1809~1882) : ‘종의 기원을 통해 인간 본성의 보편성 주장

윌리엄 제임스(1842~1910) : 미국 심리학자로 마음도 신체기관들처럼 생물학적 적응을 통해 진화된다고 주장하며 본성 강조

프랜시스 골턴(1822~1911) : 다윈의 사촌으로 본성과 양육이란 용어 최초 사용하여 본성과 양육간 논쟁 시작. 우생학 造語.

20세기 미국에서 우생학이 인기를 얻어 사회악에 대한 특효약으로 지배 기득권층을 사로잡음. 미국의 우생학이 독일로 건너가 나치 정권의 이데올로기가 됨. 2차 대전 이후 우생학의 인기는 사라지고 1972년 미국 우생학회는 사회생물학회로 명칭 변경.

1958년 미국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1928~ ) :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언어능력이 있어 누구나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문장을 얼마든지 말하고 이해한다. 촘스키의 주장을 진화심리학자들이 승계해 사람의 마음은 생물학적 적응의 산물이라고 주장

1992년 심리학자 레다 코스미데스와 인류학자 존 투비 부부에 의해 진화심리학이 독립함

 

1990년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 따른 논쟁

󰋯 크레이크 벤터 : 유전자수가 적어 생물학적 결정론이 옳다고 보기 어렵다며 환경강조

󰋯 스티븐 핑거(1954~ ) : 인지과학, 신경학, 진화심리학의 성과에 따라 빈 서판 이론을 비판하며 본성을 강조하나 유전과 환경의 복잡한 상호작용이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 매트 리들리(1958~ ) : ‘양육을 통한 본성이론 주장. 본성과 양육이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는 양육에 의존하고 양육은 유전자에 의존한다. “유전자는 행동의 원인이자 결과인 것이다!”

 

공산주의와 나치즘이란 독재 체제는 본성 대 양육 논쟁에서 가장 극단적인 사례로 공산주의의 사회 개조론은 양육을, 나치즘의 생물학적 결정론은 본성을 옹호하는 이데올로기다. (여기까지는 해설 요약에 따름)

 

저자인 매트 리들리가 하고자하는 말은

유전자를 두려워하지 말라. 유전자는 신이 아니라 톱니바퀴다.”, “좋은 부모는 여전히 중요하다.”, “개성은 욕구에 의해 강화된 태도의 산물이다.”, “평등주의자는 본성을 강조하고, 속물은 양육을 강조한다.”, “유전자와 본능을 깊이 이해할수록 그 필연성은 더욱 작아진다.”, “사회 정책은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사는 세계에 적응해야 한다.” 자유 의지를 믿는다. 객체가 되지 말고 주체가 되기를 소망한다. 본성과 양육을 주장하는 각 개념의 진실은 서로의 오류를 입증하지 않는다. 높은 상관성이 인과관계를 성립시키는 것은 아니다.

 

옮긴이 김영한은 본성 대 양육의 논쟁에서 우리 사회의 좌익과 우익의 논쟁을 떠올린다. 자유와 평등, 개인과 사회 같은 오래된 갈등과 이분법에서 타협점을 찾고 싶다는 희망을 말한다. <본성과 양육 : NATURE VIA NURTURE>는 김영사에서 2004년 초판이 나왔고, 나는 2017년 초판 10쇄를 읽고 배운 거다. 유전이야 환경이냐 라는 논쟁을 잘 정리한 양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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