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지리 교과서 1 - 자연지리 - 사람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 살아있는 휴머니스트 교과서
전국지리교사연합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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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지리교과서

자연지리 - 사람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

2019.4. 10.()

 

세상이 변하니 과거에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이 소중해지고, 한 때 중요했던 것이 쓸모가 없어지기도 한다. 지리교육을 전공하고 수십 년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치다가 이제는 가르치는 일을 그만 둔 마당이지만, 요즘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지리는 내가 배우던 때와 어떻게 다를까가 궁금했다. 2011년 전국지리교사연합회에서 지은 <살아있는 지리교과서>란 대안교과서를 가르친다면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생각한다. 새로운 지식들이 덧붙여져 만들어진 책이니 낯선 것들과 이미 시간이 지나 잊혀져가던 것들만 모아 본다.

 

- 열대 계절풍기후(짧은 건기, 긴 우기)가 추가되었고, 소노라 사막, 알베도(albedo), 빙핵(ice core)분석, 해양 컨베이어 밸트 시스템, 암석의 순환과 지형 형성 메커니즘, 생화학적 풍화와 염풍화, 섭입, 습지의 유용성을 강조, 심층해류, 분출공(블랙 스모커), 메테인 가스도 새롭게 자연지리에서 다루는 내용이다.

- 지구 환경의 위기를 독립된 장으로 다룬다.

- p. 268~269 dp '수인성 질환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연간 800만 명으로 전쟁 사망자수의 10배다와 연간 물 관련 질병으로 인한 전 세계 사망자가 3,575,000으로 기록되어 오류. 기준연도도 밝히지 않음

 

덧붙인 雜多

커피밸트 : 남북회귀선 사이

열대기후를 열대우림, 사바나로 배웠는데 열대 계절풍기후(짧은 건기, 긴 우기)가 추가

사헬의 의미 : 아라비아어로 바닷가라는 뜻. 초원지대

소노라 사막(미국 서남부) : 사와로 선인장 이야기에서 선인장 수명은 200

투르케스탄 사막은 가지고 있는 지도에 미표기 상태

아타카마 사막에서 그물망에 응축된 안개가 물방울이 되고, 물탱크는 11만 리터의 물을 저장하여 식용수로 사용한다.

낙타는 물을 마시지 않고 320km를 갈 수 있다. 낙타는 원산이 아메리카로 빙하기에 구대륙으로 이동했으며, 쌍봉낙타는 영하 40도의 추위를 견딘다.

튀르크계의 유르트는 둥근지붕, 몽골의 게르는 원추형 지붕

1월 평균기온 영하 3도가 온대, 냉대기후의 경계(이걸 잊었었다니......)

산업 혁명후 혼합농업이 상업적 혼합농업과 낙농업으로 분화

알베도(albedo)는 지표에서 반사되는 태양복사 에너지의 비율로 눈과 얼음이 높다.

세르파는 티베트어로 동쪽에 사는 사람이다.

지구 기후 변화는 빙핵(ice core)분석으로 추정한다. 40만 년 간 기온이 일정한 주기로 오르내렸다.

쇤비제 : “인류의 과거를 이해하는 일은 기후학 없이는 완전하지 못하다.”

기후 변화 이론 네 가지 : 대규모 화산 폭발로 발생한 화산재가 지구를 뒤덮어 기온하강, 태양의 흑점이 많이 나타날수록 지구 기온이 온화해진다. 지구의 자전축이나 공전궤도의 변화는 지구의 기온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해양 컨베이어 밸트 시스템의 변화가 기후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지형의 형성, 변화, 소명의 메카니즘을 암석의 순환과 관련지어 설명

암석의 풍화는 물리적 화학적 풍화만 다루다가 뿌리나 미생물에 의한 생화학적 풍화, 공기나 물의 염분에 의한 염풍화로 세분화

섭입 : 지구의 표층을 이루고 있는 판이 서로 충돌하여 한쪽이 다른 쪽의 밑으로 들어가는 현상

세계적 대표습지 : 호주의 카카두, 보츠와나의 오카방고, 플로리다의 에버글에이즈, 아마존강 유역. 습지의 유용성을 강조

미시시피 수운 교통 발달 조건은 상하류의 고도차가 120m에 불과하다,

마그마의 성분 차이와 서로 다른 분화 방식은 화산 형태와 화산 지형 형성에 영향(현무암질 용암은 유동성이 크다)

빙하는 지구 표면의 10% 가량이다. 18천 년 전에는 1/3이 빙하였다.

에스커 : 융빙수에 의해 이끌려 내려와 쌓인 둔덕 모양의 퇴적지형

핑고 : 주빙하 지형에서 성장한 얼음체 위의 돔 모양 최적층

파묵칼레(목화의 성)/카렌/탑 카르스트(하롱베이)

구푸 왕의 피라미드는 석회를 시멘트로 사용

순록은 타이가 숲에서 여름이면 툰드라 초원으로 이동하고, 겨울이면 숲으로 돌아온다.

산호 : 열대우림 만큼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지구 온난화를 방지하고 석회암을 만듦

세계 5대 갯벌(연안습지) : 황해안, 캐나다 동부 연안, 미 조지아 동부 연안,북해 연안, 아마존강 유역 연안은 자연의 콩팥이다.

해류는 바람, 염분의 농도, 수온 등에 따라 대순환을 하면서 대기를 순환시키고 더불어 지구의 온도를 조절하는 역할

심층해류와 표층해류 : 심층해류의 순환주기는 2,000. 온난화로 해류 심층 밸트에 이상이 생겨서 해수의 흐름이 차단되고 해수의 열 교환이 일어나지 않으면 지구는 서서히 식어 빙하시대가 될 것.

대표적 조력 발전소 : 프랑스의 랑스, 러시아의 키슬라야, 캐나다의 아나폴리스

분출공(블랙 스모커) : 평균 수심 2,000m 이하 심해에는 400도의 온천수를 뿜는 분출공이 존재한다. 주변에 수많은 생물이 서식하는데 과학자들은 여기에서 지구 최초의 생명체가 탄생한 것으로 추측한다.

바다는 식량, 자원, 대체에너지를 책임질 인류공동재산이다.

노벨상에 빛났던 살충제 DDT는 이제 재앙의 대명사

영국공군에 의한 보르네오 고양이 공수 작전은 생태계 복원 노력이다.

지구 온난화이 주범에는 이산화탄소 뿐 아니라 메테인 가스(영구동토층이 녹으며 매장됐던 동식물이 노출되어 부패하며 생긴다)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열대림의 파괴 속도 : 38ha/분당(100m 폭의 불도저가 1분마다 3.8km를 달리며 원시림을 파괴하는 속도다)

아마존 밀림 파괴의 주요인은 소사육(60%)과 농경(33%), 특히 팜유를 얻기 위해 밀림을 벌채하고 야자수 농장을 조성하는 일이다. 항암제 원료의 25%를 열대림에서 구한다.

햄버거 커넥션 : 햄버거 한 개 = 열대림 한 그루

에리직톤 : 허기가 가시지 않는 저주를 받은 신 = 현대인의 자화상

오존층은 대류권 위에 펼쳐진 성층권에 위치함으로 오존층 파괴가 오존주의보와는 관련 없다. 오존층은 지구 생태계에서 자외선을 막아준다. 자외선의 양이 많으면 생물종이 견디기 어려우며, 사람은 피부암 백내장에 걸릴 확률이 높다.

프레온가스 방출 - 성층권 도달 - 오존층 파괴 - 자외선이 여과 없이 통과 - 인체와 동식물에 악영향

물을 살리는 일은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 지구 담수중 사용 가능 비율은 1%.

가상수 : 소비재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물의 총량. 소고기가 월등히 크다(500g/1,500갤런)

콜탄 : 전자회로에 T는 금속 탄탈의 원료로 전 세계 매장량의 80%가 콩고에 있다.)

석유를 원료로 만들어지는 화학 제품의 수는 7만종 이상이다.

Desertec(Desert + Technology) : 2003~2050년 사하라, 아라비아 사막의 태양열 발전 에너지를 유럽으로 보내려는 계획으로 원자력 발전소 390개 분량과 맞먹음

덴마크 혼스 레프 풍력 공원(Homs Ref windmill Park)은 세계 풍력 에너지의 3% 차지.

교토 급수탑/시로가네 공원.핀란드 생태 주거 단지 비키

 

<살아있는 지리 교과서> 자연지리 - 사람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은 2011Humanist에서 본문 303쪽 분량으로 내놓음. 다음은 인문지리를 공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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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3 1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grhill 2022-12-07 23:24   좋아요 0 | URL
예 재미있어요. 학생 아니라도 읽어보면 좋을 듯합니다
 
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 - 하루 일과로 보는 100만 년 시간 여행
그레그 제너 지음, 서정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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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영국 대중 역사 평론가의 책 <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는 저자 그레그 제너가 편집자의 노력으로 나오게 됐다고 밝힌다. 다양한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어떻게 엮어내는가는 편집자의 몫이다. 우리말에도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한다고 하지 않는가. 저자가 알고 있는 방대한 낱개의 역사적 사실들을 잠에서 깨 활동하고 잠에 들기까지를 축으로 13개장으로 묶었다. 깨어나기, 아침식사, 샤워, 산책, 연락, 옷 고르기, 술 마시기, 이 닦기, 침대에 눞기, 자명종 맞추기란 장에서 각각에 역사를 추적해 적고 있다. 영국인이다보니 서구에 치우쳐 기술하지만 중국, 일본의 사례도 일부 소개한다. 잡학상식을 늘려 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새롭게 알게 되거나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옮겨본다.

1: , 하루를 시작해 볼까?

시간 측정이 정확해짐에 따라 이윤과 효율에 대한 집착이 생긴 것처럼 보인다. 영국 전역에 그리니치 표준시가 적용된 것은 1880년이다. 그리니치 표준시를 경도 결정의 본초자오선으로 정하자는 것은 1884년의 일이다.

문명사회가 가장 처음 부딪힌 문제는 그 많은 대변을 어디에 버려야 하는가였다. B.C 2,600년경 인도 하라파에 오수를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보내기 위해 집에서 정화조까지 이어지는 관을 설치했다. 로마에만 엉덩이를 나란히 하고 앉는 공중변소가 144개였다. 로마인도 그리스인과 마찬가지로 가정에서는 주로 요강에 의존했다. 이슬람 사회는 위생을 중시해 변을 보고 난 후 몸에 오물이 남지 않을 때까지 닦아내는 관습이 있었는데 자갈로 밑을 닦았다. 헨리 8세는 자신의 밑을 닦던 사람에게 변기 담당관Groom of Srool’이라는 칭호를 내리고 많은 급료와 특권을 주었다. 프랑스에서 화장실을 따로 두는 일이 일반화된 시기는 18세기다. 영국에서 수세식 변기가 보급된 것은 1861년 런던 대박람회 이후의 일이다. 중국은 9세기경 화장지를 사용했다. 요즘과 비슷한 화장지가 대량 생산된 시기는 1857년이다. 비데가 만들어진 것은 1980년대 일본에서다.

고대 로마인은 하루 한 끼를 먹었고, 배고프면 간식을 먹었다. 18세기 후반까지 영국에서 삼시세끼를 챙겨먹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점심은 1800년대 초반에 시작된 관습이다. 전기냉장고가 부엌에 들어온 것은 1950년대다. 자위행위에 대한 혐오에서 말린 곡물로 만든 식품을 권장했는데, 후에 시리얼로 발전한다. 세계인구의 70%정도는 우유의 젖당을 분해하지 못한다. 6,000년 전 돼지를 가축화한 곳은 중국이다. 이슬람 사회에서 돼지를 불결한 동물로 여겨 먹지 않는 것은 유대교의 영향을 받아 햄을 금지된 죄악이라는 뜻의 하람haram으로 부른다. 유대교의 율볍 카시루트에 따라 발굽이 갈라졌지만 되새김질을 하지 않거나, 되새김질은 하지만 발굽이 갈라지지 않은 짐승 고기를 먹을 수 없다. 병조림은 나폴레옹 치세에, 양철 캔 통조림은 프랑스 기술을 가로챈 영국에서 확산시켰다. 상한 고기의 역한 냄새를 없애주기 때문에 향신료가 인기가 있었다는 주장은 요즘에 만들어진 허구다.(비싼 향신료를 먹을 만큼 부유한 사람이라면 신선한 육류와 채소를 먹지 상한 음식을 먹을 까닭이 없다.) 감자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은 프랑스 식품학자 앙투안- 오귀스탱 파르망티에다. 그는 프로이센 전쟁 포로로 3년간 감자를 배급받아 먹고도 튼튼한 몸으로 풀려나 알아챈 것이다. 카이사르와 마르쿠스가 지중해를 건너 이집트로 간 까닭은 빵의 원료인 밀을 나일강 유역에서 얻기 위해서였다. 18세기 프랑스에서 빵은 사실상 공공서비스였다. 흰 빵은 비효율적인 이용방식이다.

인류의 조상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이의 공격을 자주 받았다. 크레타인은 욕조에 냉온수를 사용했다. 종교마다 목욕 문화가 달랐는데, 예언자 무함마드가 청결은 신앙심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공언해 이슬람 신도들은 날마다 몸을 씻는 일을 중요하게 지켰다. 이슬람이 위생 분야에 남긴 가장 큰 공적은 로마의 공중 목욕 전통을 계승하여 하맘hammam을 만든 것이다. 오늘날 터키식 증기탕을 말한다. 심자군 전쟁에서 유럽인은 하맘에 매혹되었다. 이후 유럽 곳곳에 하맘과 비슷한 공중목욕탕이 생겨났다. 14세기 흑사병 창궐에 따라 공중목욕탕이 금지되었다. 비누는 19세기에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2: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을까?

페니키아 문자는 아람Aram문자를 파생시켰고, 아람 문자는 히브리문자로, 그 후에 아랍 문자로 갈라졌다. 그리스 문자는 페니키아 문제 체계를 받아들였고, 로마자 체계를 만들었다. 러시아와 불가리아에서 쓰는 키릴 문자는 그리스 문자를 토대로 한다. 아테네에 헤메로드로메(하루 종일 달리는 사람)라는 직업이 있었다. 사도 바울이 역사상 최초의 대량 메일 전송자 일지 모른다.

가죽을 부드럽게 만드는 무두질은 오랜 의복 취득방법이다. 아마포의 역산느 3만 년 전으로 올라간다.(람세스 보존). 로열 모슬린. <레위기>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라는 구절 탓에 중세에 줄무늬가 금기시 되었고, 나병 환자, 사생아, 상형집행인 등 소외 계층만이 입었다. 파리에서는 자전거나 말을 탈 때를 제외하고는 여성의 바지 착용을 금지하는 법규가(사실상 사문화 되기는 했지만) 2011년까지도 폐지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티셔츠가 대세가 된 것은 1951년 말론 브란도가 출연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상영 이후다.

단단한 유리와 코르크 마개 덕분에 샴페인의 원거리 도달이 가능해졌다. 샴페인중 크리스탈은 검색해 보니 70~80만원이다.

젓가락은 손가락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로 만이 사용하는 식사 도구다.

농경의 시작과 인류의 과음이 시기적으로 거의 일치한다. 서구에서 포도주를 마시는 행위는 문화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상징했다. 칭기즈칸의 정복으로 버려진 땅에서 다시 나무가 자라면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7억 톤이나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했다. 지구 온난화를 막은 거다.(<인류는 어떻게 기후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가> PLOWS, PLAGUES, and PETROLEUM의 내용과 같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지적 생각(후일 금주법의 문제를 예상하듯) : “인간의 욕구를 법률로 통제하고 법죄가 아닌 일을 범죄로 규정하는 일은 이성의 범위를 넘어서는 행위이므로 금주법은 그 자체로 일종의 무절제다.” 미국에서 금주법 시행 시기는 1919~1933ᅟᅧᆫ까지다.

9,000년 전 파키스탄의 메르가르에서는 세계 최초로 치과 치료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인이 치과의사에게서 받는 치료 대부분이 프랑스 해군에 복무했던 피에르 포사르 덕분이다. 그는 치아 교정’, ‘금이나 납으로 이를 충전’, ‘의치’, ‘치과치료용 의자를 사용한 치의학의 아버지. 플라스틱 치실과 칫솔은 1940년대에 이르러 가능했다.

길이가 같은 진자 두 개는 진폭이 다르더라도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는 것을 발견한 이는 갈릴레오 갈릴레이다. 역사 자체는 반복되지 않지만 사람의 삶은 반복된다.

 

<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는 와이즈베리에서 20176월 초판을 본문 479쪽 분량으로 내놨고, 20181월에 4쇄를 찍어, 독자가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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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견문 3 -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유라시아 견문 3
이병한 지음 / 서해문집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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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쾌하다.

저자의 호연지기가 독자의 가슴에도 불을 댕기고 바람을 넣는다.

글과 사진은 고전이 주지 못하는 생기를 담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을 조망하는 스케일만 큰 게 아니다. 유라시아의 역사, 정치, 경제, 문화, 미래까지 꿰어본다. 특히, 발칸의 젊은 리더와 폴란드 사상가도 만난다. 러시아 푸틴의 책사와 인터뷰는 성과 속을 아우르는 관점으로 폭도 넓다.

저자의 비정상의 정상화란 개념은 독서를 통해 처음 만난다. 서유럽과 미국이 중심인 서구 세계가 동양 세계를 침탈했던 20세기가 가고 21세기는 중국과 러시아, 아랍, 유럽이 유라시아 세계를 형성해 가고 있고, 그래야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구대륙의 문명(유학, 힌두, 이슬람, 그리스 정교)이 서구의 억압과 침탈을 털고 일어나고 있음을 3년간 관찰한 기록이다. 2019년 저자는 41살이다.

 

<유라시아 견문 1> ‘몽골 로드에서 할랄 스트리트까지를 읽고 <유라시아 견문 2> ‘히말라야에서 지중해까지를 선택해 읽었고, <유라시아 견문 3>을 기다렸다. <유라시아 견문 3>에서 리스본, 바티칸, 파리, 테헤란,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브뤼셀, 사라예보, 베오그라드, 크로아티아, 코소보, 폴란드, 부다페스트, 아테네, 키예프,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카잔, 아스타나, 타쉬켄트, 바이칼, 블라디보스토크, 삿포르, 하얼빈, 선양이 견문을 위해 거친 곳이다.

기억하고 싶은 내용이 너무 많아 다 옮길 수 없다. 1A4 9, 2A4 7장으로 요약했었다. 분량을 줄이기 위해 저자의 관점(비정상의 정상화), 개념, 알지 못했던 사실로 구분해 보려한다.

 

1. 관점 : 카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의 시간은 중세의 시간’(De-Modern Time)이다. 서구는 서양의 일부분으로 책에서 유럽 기독교 국가로 제한한다. 대항해 시대, 신대륙의 발견은 이베리아의 확산, 중세의 확대라고 본다. 아조레스 미군 기지를 걸프전, 유고내전, 이라크 전쟁에 폭격의 전초기지로 쓸 수 있도록 해주었기에 포르투갈 총리가 EU 수장에 오른 것처럼, 반기문의 UN총장 당선은 이라크 전쟁 부역의 공. 사서삼경의 유입은 라이프니츠, 칸트, 헤겔에 이르기까지, 계몽철학 곳곳에 중국의 충격(17~18세기 기독교 없이도 문명국가가 가능한가?)’이 아로 새겨져 있다.(황태연의 <공자와 세계>, <패치워크 문명의 이론>에서 다룬) 계몽주의의 출발은 공맹이다. 자가발전이나 내재적 발전이 아니라 동서 문물 교류, 융복합과 통섭의 소산이었다. 칸트의 고민인 선악 논리, 흑백 논리에서 벗어나 진리의 정도 여부를 따지는 발상의 전환은 <중용>의 근대화였다.

쇠락하는 프랑스어보다는 이슬람 문명의 보편어인 아랍어가 세계어로서의 위상을 (다시)누릴 날이 머지않았다.

- 프랑스 역사학자 엠마뉘엘 토드의 시각 : 어떤 공화국이 수백만이 거리로 나와 특정 종교를 모욕할 수 있는가? 경제적, 사회적 약자를 문화적, 종교적으로 박해하는 반동적 행위다. 프랑스는 부지불식간 자기반성 능력을 잃어버린 사회 비공화주의적 공화국이 되었다. 안정된 사회는 관용적이나 불안정한 사회에서 도리어 획일화, 동질화가 심해진다.

이란 혁명은 이슬람에 바탕한 현대적인 공화정이 가능하다는 모델을 제시하여 전 지구의 무슬림 공동체(움마)에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서세동점은 200년 묵은 적폐다. 색다름을 새로움으로 수용하지 못하는 고정관념이 고약한 장애물이다. 낯선 것을 익숙한 틀로써 재단하기 일쑤다.

1차 대전의 의의는 제국의 해체다. 합스부르크, 오스만, 러시아, 독일제국이 붕괴하고 민족주의, 국민국가가 시대정신이 되었다.

유고 공습의 본질은 자본주의도 소련식 국가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실험을 추구했던 유고를 지워버리려고 했다는 거다.

만사를 토론하는 것만큼 비효율적인 회합이 없다. 동등하게 토론할 실력과 토의할 만큼 공부가 되어 있지 않으면 중구난방과 횡설수설이 오고가다 오리무중으로 빠져 허무하게 끝난다.

- 크로아티아의 젊은 리더 스레츠코 호르바트의 시각 : EU는 붕괴하고 있다.

- 폴란드 사상가 리샤르트 레구트코의 시각 : 공산당의 선전기구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가짜뉴스는 같다. 유럽의회는 야당 없는 의회로 주요 의사 결정은 지배 카르텔에서 한다. 선출되지 않은 사람들이 주요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니 왕년의 소비에트 연방과 유사하다. EU는 민주주의와 전혀 거리가 먼 기구다.

동서유럽은 통합된 것이 아니라 동유럽이 서유럽에 흡수되고 병합된 것이다. 프롤레타리아나 세계시민이란 개념은 실제 공동체와 동떨어진 극단적인 추상체에 불과하다.

미국이 소련을 침공해 체제를 전환 시킨 게 아니라 지레 무너진 거다. 자연스럽지 못한 인공적인 유토피아였기 때문이다.

20세기 핵가족화의 결과로 평균화, 획일화 되었다. 민주화가 아니다. 민주화된 가족에서 아이들의 경험 세계가 점점 일천해 지고 있음을 직시하지 않는다. 학교도 민주화로 사제 관계가 증발하고 똑같은 인조인간을 양성한다.

그리스의 독립과 희랍 일체론이 발칸에서 저마다 민족주의적 각성을 불러 일으켜 유럽의 화약고가 되었다.

19세기 러시아와 오스만의 수차례 전쟁은 그리스 정교도와 무슬림간 문명으 충돌이다.

베를린 장벽 붕괴는 서방의 승리이자, 혁명주체들의 입장에서는 성과 속, 고와 금의 대결에서 오래된 영성이 승리한 역사의 귀환이다.

- 푸틴의 책사 알렉산드르 두긴의 시각 : 프랑스 혁명이 문명의 파과가 아니라 진보가 되기 위해서라도 앙시엥레짐에서 유효했던 태도와 관습을 통째로 버려서는 안 된다. 근대사회가 온전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전통 사회의 원리가 기저에 튼튼하게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자유는 절제되고 평등은 조율도어야 한다. 그렇지 못해서 혁명이 후 대혼란이 일어나고 그 대혼란을 평정하기 위해 극심한 독재 체제가 자리 잡는 것이다. 문명사회는 혁명파의 시각처럼 지배와 피지배의 단순 구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보수주의란 과거와 현재 ,미래를 분절적으로 사고하지 않는 것이다. 과거보다 현재, 현재보다 미래를 중시하는 불평등한 시간관을 거부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보편적 가치를 옹호하는 것이 보수주의다. 뿌리는 열매와 현재를 공유한다. 뿌리에서 자란 줄기와 열매가 더 진보한 것이 아니다. 뿌리는 근간이고 근본인 것이지, 선후가 아니고 과거 미래는 더더욱 아니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는 프롤레타리아트나 부르주아를 기각한다.

소련이 1979년 아프카니스탄에 개입한 것은 미국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무슬림의 각성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후세인 제거와 카디피 축출에는 달러 결제가 아닌 유로화, 아프리카 통화인 디나르를 결제수단으로 쓰려했기 때문이다.

‘~의 파리라는 서술은 비서구의 서구화, 적폐의 소산이다.

 

2. 개념 : 시간은 앞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아래로 쌓여 공간을 이룬다. 그렇게 축적된 시공간의 지층이 바로 역사다.

유고슬라비아의 자화상 : 7(국경)-6(공화국)-5(민족)-4(언어)-3(종교)-2(키릴과 로마문자)-1(하나의 국가)

서구문명을 그리스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는 것은 19세기에 발명한 전통이다.

러시아의 고의식파(古儀式) : 동방정교의 정통성과 순수성을 옹호하며 저항한 세력(프로테스탄트). 신의식파가 러시아의 주류로 등극한다.

시간이 누적되어 공간을 이룬다. 공간은 시간을 소환한다.

 

3. 사실 :

아르헨티나에서 예수회는 십자군의 반대편에 서 있었다. 스페인의 식민 통치에 맞서 원주민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프란체스코 현 교황은 경제학 교과서의 낙수효과는 가짜 이론’Fake Theory라고 성토한다. 고용 없는 성장으로 인간의 비극을 양산하는 경제체제의 선진화를 비판한다. 20110년 가톨릭교도의 7할이 남반구에 살고, 4할이 남아메리카에 살고 있다. 가톨릭 세계의 제1 언어는 스페인어다. 프랑스 인권 선언(1789)이 여성과 노동자, 유색인종을 배제한 미완의 것이다. 반면에 예수회 선교사들이야말로 성서가 가르치는 인류 평등에 바탕하여 노예와 원주민을 보호했다(?)

칸트의 비판<중용>의 주석서였다. 중국 위협론의 기원은 17~18세기 신을 부정한 중국의 유학이 유럽에 전해진 것에 있다. 케네, 볼테르, 라이프니츠, 빌핑어, 칸트, 헤겔이 중국의 유학을 유럽에 확산 시켰다. <대학>이 처음 번역된 것은 1592년이다. 쿠플레의 저서 <중국의 철학자, 공자>17,18세기 유럽 지식인의 필독서였다. 특히 <맹자>는 혁명을 설파한 불온서적이었고, 주권재민을 설파하고, 성선설로 원죄론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고, 인의예지의 존중으로 인권과 민권에 눈을 뜨게 된다.

자크아탈리는 사회주의자에서 신자유주의자로 전향한 원로 지식인이다.

에밀 뒤르켐의 <프랑스의 자살>은 근대사회에 만연한 의미의 상실, 내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의의의 부재를 예민하게 포착한 고전에 값하는 명저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은 서구의 담론 분석에 그쳤으나, 푸코의 이란론은 서구를 역사의 생산자로, 비서구를 역사의 소비자로 간주하는 주객 관계자체를 허물어뜨렸기에 더 급진적이다.

20세기후반 구축해 두었던 일국 단위 복지 모델이 EU 통합과 더불어 크게 흔들리는 것은 세계화의 덫이다. 어떤 체제와 이념과 사상도 영구불변할 수 없을 것이다. 자유주의 또한 성쇠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듯하다.

유고슬라비아의 유고는 남쪽이라는 뜻. 보스니아까지가 서로마 영역이었고, 세르비아부터는 동로마 강역이었다.

공산당 간부들과 그 체제에 부역했던 이들이 민주화 이후 신흥 지배층으로 이행한 것은 동유럽의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해방후 한국의 정국과 유사하다. 체제는 변했으되 지배층은 변하지 않았다.

1920년 오스만 제국의 그리스정교도 130만은 그리스 영토로, 그리스에 살던 무슬림 60만은 터키로 이주했다.

냉전의 전초전은 그리스에서 노쇠한 영국을 대신한 싱싱한 미국이 반공 정책의 총대를 메고 봉쇄정책을 편다. 그리스가 발칸에서 유일하게 공산화되지 않은 나라였다. 이는 한국전쟁, 베트남 내전에 미국이 개입하는 원형이 되기도 했다.

미국 소프트 파워의 힘으로 서구의 기원으로서의 그리스가 학문적으로 정립되고 그리스 민주주의라는 20세기 신화가 널리널리 퍼져나갔다. 문화 냉전의 소산이자 발명된 전통이다.

동방 정교의 세계관이 응축된 작품이 <죄와 벌>이다. 국가와 사회와 종교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이 동방정교의 핵심 사상이다. 러시아에서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그리스 고전을 원전으로 배운다. 러시아 교양의 양대 축이 정교와 그리스 사상이다.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은 유라시아 문헌 번역을 전담하는 기구를 만들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은 1991년부터 이후부터 태어난 신입생에게 <코란><논어>를 읽으라고 가르친다. 러시아인 가운데 2,000만이 무슬림이다. 모스크바에는 200만 무슬림이 살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많은 무슬림이 거주하는 도시는 모스크바다.

카잔은 유라시아의 이슬람화와 튀르크화를 선도하는 전위였다. 그 카잔을 복속시킴으로써 러시아는 유라시아 제국으로 굴기할 수 있었다. 레닌, 트로츠키, 마르크스는 러시아내 무슬림에 대해 무지했다.

비단, , 종이, 터키석, 커피, 우유와 요구르트, 버터와 치즈는 튀르크인의 유목망을 따라 유라시아 저역으로 확산되었다.

볼셰비키 혁명 당시 시베리아에서 결전이 벌어졌고, 미국은 블라디보스토크를 통해 물자를, 일본은 7만 명의 군사를 출병하여 백군을 지원했다. 소련을 우랄 서쪽으로 봉쇄하고 동쪽에 울란우데나 치타를 수도로 삼아 극동 공화국을 세우려 했다. 1918년 이르쿠츠크까지 장악했던 일본군이1925년 최종적으로 물러났으나, 이 실전 경험이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는 관동군의 주축이 된다. 1860년 베이징조약으로 연해주를 내준 중국은 만주에서 동쪽 바다로 나가는 출구를 잃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한반도 종단철도로 연결하고 거제도까지 이어 거제도를 러시아의 홍콩으로 만든다는 계획을 입안했다.

일본 정보장교 후쿠야마 야스마사는 단기필마로 1892211일 베를린을 출발하여 1893812일 도쿄에 도착한다. 14천 킬로미터. 17개월. 500. 유라시아를 견문하고 보고한다. 다시 1895년 배를 타고 동남아시아, 인도, 오스만제국, 페르시아, 카프카즈, 바그다드,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을 견문하고 32편의 공식보고서를 제출한다. 둘 다 일본 대외정책의 초석이 된 문헌이다. 대단하다. 후일 영일동맹 체결의 일등 공신이다.

저자 이병한은 홋카이도 대학에 있는 슬라브-유라시아 연구소, 북극연구소를 참관하고, 1880, 1881년 메이지 일본이 오스만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에 사절단을 파견했음을 확인하고 자괴감과 열패감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메이지 일본이 서구 편향적이지만은 않았고, 이슬람 세계로, 슬라브 세계로, 전방위적이고 전면적인 개화를 추진했다.

강희제는 라틴어를 배웠고, 공맹의 철학이 한글로도 유통되기 전에 벨기에 예수회 선교사 쿠플레는 <중국의 철학자, 공자>를 라틴어로 번역하여 출간했다. 그 소산으로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소현세자는 환국 두 달 만에 숨을 거둔다. 여장부였던 아내 강빈마저 역모로 몰려 죽는데 아비 인조가 함량 미달이었다.

 

4. 평가

박지원의 <열하일기>보다 넓고 깊다.

알렉시스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보다 더 넓고 깊다.

20세기의 이데올로기와 냉전이란 국제사회 이해를 뛰어 넘는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미래를 조망한다.

로마 문자 공론장만 읽어서는 진실의 절반도 접근할 수 없다. 키릴문자와 한문, 아랍문자 공론장을 보태어 관점의 균형을 취해야 한다. 그래야 세력 균형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 21세기는 신대륙과 구대륙이 반전한다. 신세계와 구세계가 반전한다. 중국은 더 이상 20세기 국민 국가가 아니다. 21세기의 새판, 유라시아의 중원이다.

 

출판사의 평가 : 좌우, 근대와 전근대, 서구와 비서구라는 3중의 분단체제를 넘어서는 유라시아사를 재구성한 책이다.(뒷표지에서)

 

<유라시아 견문 1. 2. 3>는 본문이 1,833쪽 분량으로 대작이다. 지리나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면 좋겠다. 시야를 한반도란 고립 된 섬에서 밖으로 돌리려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읽어보길 바란다. <유라시아 견문 3>은 서해문집에서 20191월 본문 672쪽 분량으로 내놓았다. 흥미진진해 전혀 지루하지 않다. 단문으로 쓰여 읽기도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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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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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CBS 시사자키 정관용과 추석이란 무엇인가되묻는 인터뷰를 글로 읽었다. 누군가의 글에서 필사하기 좋은 책이란 평도 있었다. 인터뷰는 미혼, 여성, 취준생, 학생들이 좋아할 소리였다. 필사하기 좋은 책이란 평은 필사하기 좋은 칼럼이 실린이어야 한다. 독자 주관에 따른 평가로 두 문장이 최대치다. 저자가 서울대 교수이자 철학과 정치사상을 가르친다는 걸 감안하면 절대값은 더 떨어진다. 많이 팔리는 책이 좋은 책인 것만은 아니다. 책의 인기도는 글보다 대중매체, 쏠림 현상 같은 외적인 요인의 영향이 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럼에도 술과 노래방을 좋아하지 않는다거나, 책은 사서 봐야한다고 믿는다거나, 공부는 폭넓게 해야 한다거나(다양한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해석함), 행복에 대한 평가, 직관, 질문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나와 맞는다. 논어, 대학, 맹자, 중용을 일 년 단위로 돌아가며 원문으로 읽는다는 게 부러워 나는 완역본이라도 그리해야겠다. 그럴 기회가 없을 터, 책보다는 사람으로 만나면 좋을 것이다.

 

<아침에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읽고 독서노트를 쓰기 시작한 시각이 오전 430분이다. 어젯밤 잠들기 전에 내일 아침에 독서노트를 정리하자 마음먹었으니 나는 저자와 달리 죽음보다 삶을 선택했다. 저자의 책 제목이 역설임도 안다. 아침을 맞이하는 태도에 좋고 나쁨은 없다. 개인의 상황에 따라 선택할 뿐이다. 루크레티우스의 우리는 없는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은 무시한다. ...... 삶은 그런 식으로 소진되며, 죽음은 예기치 않게 다가온다.” 문장과 우리는 시체를 짊어지고 다니는 불쌍한 영혼들에 불과하다는 에픽테토스의 말을 프롤로그에 실었다. 책의 제목이 담은 역설을 이해하라는 안전장치인가.

 

내가 사는 오늘 하루는 자살한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지 않았던 하루다. C 일보 Bang의 아내 자살이 석연치 않다는 씁쓸함이 떠오른다. 책의 곳곳에서 저자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 수명 연장이란 사회적 죽음과 육체적 죽음 사이의 길고 긴 연옥이다.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을 바라다보면, 그 덧없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쉽게 불행해진다. 시간은 인간이 삶을 견디기 위해 만든 가상현실. 거리를 두어야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다는 미학자들의 주장. 아름다움의 향유를 위한 필요조건은 시야의 확대와 상처의 존재. - ‘설거지의 이론과 실천에서 밥의 시작은 장보기요 마지막은 설거지. 밥 짓기와 설거지를 다른 영역으로 본 중년 남성 독자의 의식을 바꾼다. 냉장고에서 반찬통을 꺼내 그대로 먹느냐와 예쁜 접시에 덜어 먹느냐가 문명이냐 야만이냐를 구분한다는 글을 아내에게 강조했다가는 무슨 소리를 들을지 알 수 없으나 화가 나에게 미치리라. 주례사는 신랑신부가 처한 상황에 맞게 해야. 경험하지 못한 것은 말하지 말아야한다, 알 수 없으니.(자식에 대한 에피소드에서). “한문에서 이자가 대상어의 앞에 올 때와 뒤에 올 때의 뜻이 어떻게 달라지는가?” 이건 찬근이에게 물어봐야한다.

 

저자는 입시공부의 공부가 공부의 전부라는 착각이 문제라고 보는 데, 독자는 많은 사람들이 학교를 졸업하면 공부는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본다. A가 부패했다는 사실이 B의 실력을 보장하지 않는다. 인과관계나 상관관계를 쉽게 판단할 수 없으니 억지로 꿰맞추려 하지 말아야한다. ‘당겨진 활시위만이 이완될 수 있다.’ 책을 읽는 이유가 무어냐는 질문에 어느 소설가의 답변은 남이 침범할 수 없는 내면을 갖기 위해. 부정이 관행을 넘어 정의의 반열에. ‘위력이란 무엇인가를 읽어보니, 저자는 논문을 읽지 않고 심사한 지도교수로부터 논문이 통과된 것을 수치의 기억으로 갖고 있다. 내 논문에 빨강 색연필로 수정할 부분을 체크해 다시 돌아보도록 지도해주신 고려대학교 권혁재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고독이 한때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황야가 아니다.(스가 아스코) 하나, 아무 말 잔치를 벌이는 사람은 이성적 질의응답 능력이 없다. , 모순을 참아내는 정신의 굳은살은 서슴없이 부정을 저지르게 한다. , 불의와 헛소리에 대한 알레르기를 고독한 독백으로만 표현하는데, 세 가지는 주입식 교육의 결과다. 주도적으로 공부하고 토론할 줄 알아야 질의응답, 저항, 참여하는 사람을 기를 수 있다. 2001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문자 해독률은 높지만 문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은 OECD 국가 중 최하위(p. 205)라는데 근거를 찾아 봐야겠다. 우리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에 헌신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다고. 크롬웰은 복음서에 근거가 없다고 성탄절을 금지했음을 역사서가 아닌 에세이에서 배운다.

공모 당선작인 영화평론 안토니아스 라인>과 문예지에 실었던 글은 책과 어울리지 않아 불편하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어크로스에서 본문 343쪽 분량으로 20181130일 초판 1쇄가, 나왔고 두 달 만에 8쇄를 찍어냈다. 사회적 지위가 미치는 영향을 생각한다

당겨진 활시위만이 이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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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
애덤 호크실드 지음, 이순호 옮김 / 갈라파고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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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 동안 한 가지에 몰두했다. 기억하는 지식을 열거하고, 영화를 다시 보고, 책을 읽어가며 현재와 과거를 연결해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테마는 스페인 현대사다. 마인드맵을 그려보면 이것저것이 떠오른다. 미얀마와 버마처럼 에스파니아와 스페인도 같다. 피레네 산맥의 소국 안도라에 대한 기억과 아라곤과 카스티야 왕과 여왕의 정략결혼으로 만들어진 에스파니아, 레콩퀴스타, 대항해시대, 영국 엘리자베스에게 청혼 했다가 거부당한 펠리페 2세와 무적함대, 로욜라와 예수회, 알람브라 궁전, 가우디의 건축 사그라다 파밀리아,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 투우, 마드리드를 기억한다. 요즘 까미노 데 산티아고 800km가 인기이고 레알 마드리드라는 프로축구팀, 카탈로니아와 바스크의 지역성, 700년 넘게 이슬람의 영역이었고, 파올로 코엘료의 소설에 등장하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도 적어 본다. 목축 형태로서의 이목, 잉그리드 버그만이 게리 쿠퍼에게 키스할 줄 모른다는 증거로 코는 어떻게 해야 하나를 묻던 장면이 떠오르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영화 게르니카랜드 앤드 프리덤을 다시 본다. <스페인 내전>을 읽어 영화 세 편의 배경이 스페인 내전임을 확인한다.

 

<스페인 내전>의 원제는 ‘SPAIN IN OUR HEARTS’. “조지 오웰, 헤밍웨이 그리고 세계의 지식인, 시민들은 왜 스페인으로 갔는가?”,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 스페인 내전에 대한 최고의 입문서라출판사의 유혹은 영화 랜드 앤드 프리덤을 보면서 느낀 이념의 충돌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스페인 내전>을 읽기로 했다.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도 읽어야겠다. 스페인 내전은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민주주의와 나치즘, 파시즘이라 불리는 전체주의와 공산주의가 유럽의 지식인들에게 나를 선택해달라고 하던 시기인 193611월에 시작되어 1939331일에 끝난다. 2차 대전의 시작을 독일이 폴란드를 전격 침공한 193991일로 하고 있으니 스페인내전은 1차 대전과 2차 대전의 사이에 끼어 있었던 내전이다. 선거로 정권을 잡은 공화파 정부와 프랑코라는 군인 독재자가 스페인의 패권을 두고 벌인 내전이다. 내전이지만 내전이라고 내팽겨 쳐 둘 수 없는 내전이었다. 당시 무정부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민주주의 이념을 따르던 사람들과 군부, 노동자, 학생 지식인, 특히 스페인의 국교랄 수 있는 가톨릭이 서로 다른 편이 되고 독일, 이탈리아, 소련이 국가적으로 지원하고 영국, 프랑스, 폴란드, 헝가리, 미국에서는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의용군들이 스페인에 개인자격으로 들어와 국제여단을 조직하고 내전에 참가했기 때문이다.

스페인 내전은 프랑코가 이끈 국가주의자군과 공화파 정부군의 내전이다. 공화파 정부는 선거로 구성된 합법정부인데 독재자 프랑코의 쿠데타로 위험에 처하자 유럽의 무정부주의자들, POUM(스탈린에 반대하는 공산주의자들), 스페인 공산주의자들(스탈린의 지원을 받는)이 연합하여 대항한다. 무정부주의자들은 바르셀로나에 근거지를 두고 민병대를 조직하고, POUM도 혁명의 순수성을 가지고 민병대를 운영한다. 공화국 정부는 경찰과 군대로 대항하는데 크게 두 개의 파벌로 분열돼 저항한다. 경찰과 스페인 공산주의자들이 협력하고, 무정부주의자들과 POUM이 협력한다. 외국에서 공화파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의용병이 된 사람들은 알바세테에 본부를 둔 국제여단 본부의 지휘를 받는다. 3인터네셔널(코민테른)이 스페인 공산당의 요청에 따라 조직한 국제여단은 소련의 지원을 받았다. 국제여단의 각국 부대 중 미국 의용병으로 구성된 에이브러햄 링컨 대대의 활약과 관점에서 스페인 내전을 기록한 책이 <스페인 내전>이다. 국제여단은 이념은 제각각 이었으나 사회정의에 관심을 갖고 세계는 전보다 더욱 정의롭고 자유로운 곳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던질 각오를 지녔던 무명의 보통 사람과 다수의 유명인을 끌어들였다. 훗날 독일 수상이 된 빌리 그란트, 조지 오웰, 헤밍웨이, 앙드레 말로, 이태리 외무장관이 되는 피에트로 넨니 가 참전하였고, 셍떽쥐베리와 인도의 네루도 스페인 내전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스페인 내전은 이념의 전쟁터 였고, 프랑코를 지원한 히틀러는 신무기 실험장으로 여겼으며, 이 경험을 바탕으로 2차 세계대전에서 신무기를 사용했다. ‘산티아고 가는 길에 주목하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스페인의 현대사를 다시 보았다.

 

저자 애덤 호크실드는 들어가는 말에서 유럽에서는 스페인 내전이 도덕과 정치의 시금석, 다가올 세계대전의 서막으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스페인 내전은 그 뒤에 일어난 2차 세계대전에 묻혀 우리의 집단 기억 속에서는 대체로 사라졌다고 본다. 저자는 공화파 정부에 무기금수조치를 취한 미국 정부와 달리, 일반 미국인들은 공화파와 국가주의자 양쪽 모두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증거를 내놓는데, 미국 정유사 텍사코가 프랑코군에게 무상으로, 외상으로 석유를 수출 했고 미국 정부도 모른 체 하고 지나갔다. 알베르 카뮈가 쓴 글을 소개한다. “우리 세대의 사람들이라면 가슴 속에 모두 스페인을 간직하고 있다. ... 옳은데도 패할 수 있고, 무력이 정신을 이길 수 있으며, 용기가 보상 받지 못한 시대가 있다는 것을 체득한 곳이 바로 스페인이었다.”라고. 스페인의 위기에 대해 사람들이 도덕적이고 선명한 시각을 갖고 있었다. ‘마치 여기서 저항하지 않으면 어디서 저항하겠느냐는 것과 같았기에 후일 미국의 인권운동 시위, 60년대 베트남전 반대 시위, 80년대 중앙아메리카 내전에 미국이 개입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기억할 것은 공화파 정부에 무기를 팔았던 유일한 소련은 스페인 공화파 난민을 굴라크(강제노동수용소)에 가두고 스탈린이 씌운 범죄의 희생양이 되었다. 힘이 없으면 지배층보다 힘없는 국민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음을 역사에서 배운다. 미국 공산주의자들이 개인 자격으로 스페인 내전으로 달려간 것은 당대의 공산주의가 왜 그처럼 강한 호소력을 지녔고, 그 시대 소련이 왜 많은 지식인들에게 희망의 등불로 비쳐졌는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일제 강점기에 많은 지식인들이 소련의 지원을 받아 독립 운동을 했던 것과 가은 맥락이다. 의열단장 김원봉이 이념 탓에 남북 어디서도 인정하지 않는 아픔의 기원도 이념 탓이다. 저자는 이상주의와 용기가 지혜와 언제나 같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그들을 알아가는 가슴 뭉클한 경험을 했다고 말하며 본문을 전개한다. <스페인 내전>11장의 전투 상황 지도를 배치하여 이해를 돕는다. 그럼에도 구글 지도를 열어 전투지역을 찾아가 지형을 살펴보는 일은 지리학을 전공한 독자이기에 해야 하는 즐거움이다.

 

책을 읽어가며 당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하여 밑줄 친 부분을 옮겨 본다.

경제공황 당시 소련 정부가 미국의 기술자와 전문가들에게도 취업의 기회를 개방하자 여덟 달 사이에 10만 명 이상이 응모했다.(p. 38)

소련에 어떤 결점이 있든 간에, 파시즘에 강경하게 맞설 수 있는 유일한 강대국으로 본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p.52)

스페인에서 19362월 자유주의파, 사회주의당, 스페인 공산당 등이 연합한 인민전선이, 의회 다수당이 되기 위해 돈을 물 쓰듯이 쓴 우익 정당을 꺾고 총선에서 승리했다(p.54)

에티오피아 셀라시에 황제의 국제연맹 연설 오늘은 우리 차례지만, 내일은 당신들 차례일 겁니다.”(p.57)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말로가 각 나라에서 지원한 조종사들로 조직한 비행대대 또한 공화파를 지원했다(p.68)

자유주의적 공산주의, 혹은 국가 없는 공산주의를 믿는 무정부주의자들은 경찰, 왕실, , 세금, 정당, 가톨릭교회, 사유재산을 사라져야할 것들로 보았다. 무정부주의는 산업화 이전 시대의 이데올로기였다.(p.80)

공화파 정부가 급히 필요했던 것은 원조가 아닌 무기를 살 수 있는 권리였다. 스페인은 세계 4위의 금 보유국이었다.(p.82) 그러나 영국, 프랑스, 미국은 무기를 파지 않았고, 멕시코만 신속한 도움을 제공했고 무기와 탄약을 판 나라는 스탈린의 소련이었다.(p.84~86)

무정부주의자는 가톨릭교회를 증오하여 당신을 신에게 맡기겠습니다라는 뜻의 아디오스(adios) 대신 살루드(saiud 건강히)로 작별 인사를 했다.(p.95)

프랑코의 생각,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내주느니 마드리드를 파괴하겠다.”(p.115)

공산주의자들의 문제점은 자신들이 언제나 옳다고 믿는 점에 있었다. 그들에게 두 가지 길이란 없었다. 하늘아래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아는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의 작품만 죽어라 연구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들은 편협한 종교 집단들이 그들의 경전만을 믿듯 그것들만을 맹목적으로 믿었다.”(p.149)

공산주의자들은 이교도보다도 오히려 이단자들을 극렬하게 증오한 오래된 종교 형태를 보였다.”(p.151)

독일 공군의 게르니카 융단 폭격은 유럽의 한 도시를 거의 초토화한 역사상 첫 폭격이었다.(p.262) 마드리드 폭격에 분노하고 있던 피카소는 벽화 형태로 <게르니카>를 그렸다. 게르니카 폭격이 큰 분노를 일으킨 이유는 프랑코와 스페인 가톨릭교회 성직자들이 그 사건 자체를 강력하게 부인했기 때문이다.(p.260)

공화국의 유일한 무기 공급원은 소련이었고, 스페인 공산주의자들은 그 대가로 경찰과 군대 요직을 지속적으로 요구하였고, POUM 지도부에 대해 모스크바 스타일의 숙청 재판을 하라고 까지 요구했다(P.277)

미국은 중립을 지켰지만, 텍사코는 전쟁을 한 것이다.(P.363)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편을 들고 있다는 미국의 중립 정책이 미칠 영향을 강조하는 글(P.401)

공화파에 대한 공습은 지중해 서부 마요르카 기지에 있던 이탈리아 공군기지에서 무솔리니의 폭격기와 독일의 폭격기가 15분이면 바르셀로나와 발렌시아까지 닿았다.(P.403)

중요성이 조금 떨어진다고 하여 그 이유의 정당성까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P.425)

19381028, 바르셀로나의 대로인 디아고날 거리에서 국제여단 잔여병력 2,500명의 고별 열병식이 열렸다. 26개국 의용병들이 모두가 참가했다.(P.476)

1939년부터 36년간 프란시스코 프랑코는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의 통치 기간 보다 길게 스페인을 통치한 뒤 치매기를 보이다가 82세를 일기로 숨졌다.(P.496) 프랑코통치 기간 내내 스페인은 가톨릭이 막강한 힘을 보유했고 여성의지우가 매우 열악했다. 고문이 일상화된 경탈국가였고, 교수형구로 죄수를 처형했다. (P.496)

스페인 내전에서 독일의 지원을 받았던 스페인이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편을 들어 추축국에 가담하지 않은 까닭은 프랑코가 프랑스의 일부 지역과 아프리카의 많은 영토를 원하는 요구를 히틀러가 들어주지 않은 탓이다. 그러나 주요 해군 기지를 제공해 독일 U보트의 활동 범위를 크게 늘려 주었다. 스페인령 모로코와 카나리아 제도도 독일 잠수함들의 연료 보급창이 되었다. 스페인 병사 45천 명은 히틀러를 지원하였다.

스페인 내전에서 독일이 얻은 것들 : 보급로가 길 때는 차량의 종류를 최소화할 것, 폭격기에는 전투기 호위를 붙일 것, 조종사에게 악천후와 야간 항공에 대비한 추가 훈련을 시킬 것, 소련 전차와 대결하기 위해서는 전차 개량이 필요하다는 것 등 여러 가지 중요한 교훈을 터득했다.

19391월 루즈벨트는 각료회의에서 스페인에 취한 금수조치가 중대한 실책이었던 것 다고 발언하였다. 조지 오웰의 <카탈루냐 찬가>는 그가 죽기 전 10년 동안 800부만 팔렸으나, 냉전기에 소련의 배신행위를 보여 줄 수 있는 초기 사례로 지적되며 수백만 부가 팔렸다. 1945년 연합군은 동유럽 각지에 퍼져 살던 독일인 처만 여명을 강제 추방하였고 그 과정에서 50만 명 이상을 죽게 만들었다. 2차 세계대전은 누구에게나 좋은 전쟁일 수 없다.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 미국인 2,800명은 2016년에 모두 죽었다.

자신이 모든 것을 주고자 하는 의지를 펼침으로써 세상이 더욱 공평해지고 자유로워졌다고도 말했다. 또한 그런 봉사 정신과 희망이 가득한 정신이야말로 심오한 영감의 원천이다.”(P.532) 현대 스페인 역사의 이면에는 이렇게 민간인 전투원들의 엄청남 희생이 수반된 피비린내 나는 내전과 이후 36년에 걸친 프랑코 독재의 어두운 내막이 숨어있다.

 

<스페인 내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 ‘SPAIN IN OUR HEARTS’는 갈라파고스에서 20171211쇄를 본문 614쪽 분량으로 내놓았다.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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